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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ll Chapters of 불온한 정착: Chapter 221 - Chapter 230

322 Chapters

221화

“맞아요~.”사라가 대신 대답했다.예비 신부의 눈이 조금 더 커졌다. 설마 했는데 정말 CH건설 회장이라는 대답이 돌아오자 신기한 듯 강수를 다시 한번 바라봤다.그런데 곧 표정이 묘하게 변했다.어디선가 본 얼굴.단순히 기사에서 봐서 익숙한 게 아닌 것 같았다.예비 신부가 고개를 갸웃했다.“근데 혹시…… 서희 아시나요?”준호의 얼굴이 굳었다.사라는 눈을 깜빡였다.강수의 표정에는 변화가 없었다.“김서희요.”예비 신부는 세 사람의 미묘한 정적을 전혀 알아차리지 못한 채 웃었다.“저 서희랑 대학 동기예요~.”이번에는 사라가 예비 신부를 자세히 봤다.“서희랑?”“네. 같은 과는 아니었는데 교양 수업 같이 듣고 친해졌어요. 졸업하고는 자주 못 봤지만.”예비 신부는 기억을 더듬듯 강수를 바라봤다.“맞죠? 서희 결혼식 사진에서 뵌 것 같은데.”준호가 눈을 질끈 감았다가 떴다.하필.수많은 사람 중에 하필 자기 예비 신부가 서희의 대학 동기일 줄은 몰랐다. 두 사람이 대학 때 알았다는 건 들었지만, 사진까지 봤다는 생각은 못 했다.“자기야.”준호가 급히 끼어들었다.“일단 앉자.”“잠깐만.”예비 신부는 여전히 궁금한 얼굴이었다.“내가 맞게 기억하는 것 같은데.”사라는 강수를 한번 올려다봤다.강수는 피하지 않았다.“알아.”낮은 대답이 떨어졌다.예비 신부가 반가운 듯 웃었다.“역시! 서희 남편분 맞으시죠?”준호의 표정이 완전히 굳었다.사라의 얼굴에서도 웃음기가 조금 사라졌다.그제야 예비 신부도 이상함을 느꼈다.준호가 왜 갑자기 말이 없어졌는지, 조금 전까지 편하게 웃던 사라가 왜 자신을 가만히 바라보는지.무엇보다 방금 준호는 강수를 분명히 사라의 남자친구라고 소개했다.예비 신부의 시선이 천천히 움직였다.강수.사라.다시 강수.“어…….”입술이 조금 벌어졌다.준호가 의자를 빼며 다시 말했다.“앉아서 얘기하자.”“아니, 잠깐.”예비 신부가 준호를 봤다.“내가 잘못 기억한 거야?”준호는 바로 대답하지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09-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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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2화

사라는 예비 신부의 걱정스러운 얼굴을 잠시 바라봤다.서희가 결혼식에 온다는 말에도 크게 놀라지 않았다. 대학 동기라면 이미 청첩장을 받았을 수도 있었고, 참석하기로 한 것도 이상하지 않았다.오히려 신부가 자기 결혼식을 앞두고 이런 일까지 신경 써야 하는 게 더 이상했다.사라가 웃었다.“그건 저희 셋의 문제예요~.”예비 신부가 눈을 깜빡였다.“결혼식에서 불편하지 않게 할게요.”“그래도 혹시 마주치시면…….”“괜찮아요.”사라는 가볍게 손을 저었다.“그날 저희 봐도 그냥 모른 척해주세요.”“모른 척이요?”“네.”사라는 강수를 한번 보고 다시 예비 신부에게 시선을 돌렸다.“괜히 저희 때문에 신경 쓰면 결혼식 망치잖아요.”“아니, 망친다기보다…….”“두 분 결혼식인데 왜 우리 때문에 신경 써요.”준호가 그제야 굳었던 어깨에서 힘을 뺐다.“그러니까. 자기가 신경 쓸 일 아니야.”예비 신부가 준호를 흘겨봤다.“넌 알고 있었으니까 그렇게 쉽게 말하지.”“그건 맞는데.”“나 진짜 놀랐거든?”“알아.”“말도 안 해주고.”준호가 난감한 얼굴로 사라를 한번 봤다.사라는 바로 말했다.“준호 잘못 없어요.”예비 신부의 시선이 돌아왔다.“제가 말하지 말라고 한 건 아닌데, 준호가 남한테 말할 일도 아니었잖아요.”“그래도 저는 결혼할 사람인데…….”“그건 두 분이 알아서 싸우세요.”사라가 너무 자연스럽게 선을 긋자 준호가 웃음을 터뜨렸다.“야, 민사라.”“왜. 맞잖아.”“불 지펴놓고 빠지냐?”“너희 연애에 내가 왜 끼어.”준호가 어이없다는 듯 웃었다.강수는 옆에서 말없이 물잔을 사라 쪽으로 밀어줬다. 사라는 보지도 않고 자연스럽게 받아 한 모금 마셨다.그 모습을 본 예비 신부의 시선이 잠시 두 사람 사이에 머물렀다.처음에는 당황스러움이 컸다.서희의 남편이라고 기억하는 남자가 사라의 남자친구로 앉아 있다는 사실부터 이해하기 어려웠다.그런데 눈앞의 두 사람은 불안해하거나 서로 눈치를 보지 않았다.너무 평범했다.오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09-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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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3화

사라는 물잔을 들고 있던 손을 잠시 멈췄다.예비 신부의 시선이 자신에게 머물러 있었다. 술을 마시지 않는다는 사실 하나만 물은 것 같지만 표정을 보니 단순한 호기심은 아닌 듯했다.사라는 입술을 살짝 오므렸다.“먹긴 하는데…….”“아.”“그냥…… 모른 척하세요~.”끝을 살짝 늘이며 웃었다.예비 신부는 몇 초 동안 사라를 바라봤다. 뭔가 더 묻고 싶은 얼굴이었지만 이내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네. 그럴게요.”더 묻지 않았다.사라도 설명하지 않았다.아직 서희에게조차 뜬금이의 존재를 말하지 않았다. 오늘 처음 제대로 만난 사람에게 먼저 알려줄 이유는 더더욱 없었다.사라는 아무 일 없었다는 듯 물을 한 모금 마셨다.예비 신부도 약속대로 화제를 돌렸다.“음식은 괜찮아요?”“맛있어요.”“다행이다. 준호가 여기 맛있다고 계속 우겨서 잡은 거거든요.”사라가 피식 웃었다.“준호가 먹는 거 하나는 잘 찾아요.”“맞아요. 그건 인정.”“여행할 때도 그랬어요. 처음 만났을 때부터 맛있는 데 찾는 건 기가 막혔거든요.”예비 신부가 웃었다.“둘이 여행하다가 만났다고 했죠?”“네. 여행지에서 우연히 만났다가 친해졌어요.”“준호한테 들었어요. 사라 씨랑 여행 다닐 때 얘기도 가끔 했거든요.”“내 욕도 했죠?”“조금?”“역시.”마침 자리로 돌아오던 준호가 그 말을 들었다.“뭔 역시야.”사라가 고개를 들었다.“너 내 욕했다며.”“내가 언제.”“했다는데?”준호가 예비 신부를 봤다.“내가 얘 욕했어?”예비 신부가 태연하게 웃었다.“조금?”“봐.”“야, 민사라. 너도 내 욕했잖아.”“응.”“너는 왜 당당한데?”“사실만 말했으니까.”준호가 어이없다는 듯 웃으며 자리에 앉았다.“여행할 때부터 진짜 하나도 안 변했어.”“사람이 한결같아야지.”그때 전화를 끝낸 강수도 자리로 돌아왔다.준호가 사라의 접시를 보다가 눈썹을 올렸다.“근데 너 왜 이렇게 조금 먹어?”사라가 바로 인상을 썼다.“많이 먹었거든?”“네가?”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09-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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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4화

사라는 예비 신부의 난처한 얼굴을 보다가 휴대전화를 턱으로 가리켰다.“전화받으세요~.”“지금요?”“네.”사라는 별일 아니라는 듯 물잔을 들었다.“저희랑 있다고 이야기 안 하면 되니까.”예비 신부가 잠깐 망설였다.준호도 맞은편에 앉은 사라를 봤다.“괜찮겠어?”“뭐가?”“서희 전화잖아.”“그러니까 받으라고.”사라는 물을 한 모금 마셨다.“나랑 오빠 여기 있다고 말할 필요는 없잖아.”강수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다만 테이블 위에 놓였던 손이 잠깐 멈췄다가 다시 움직였다.예비 신부는 결국 전화를 받았다.“여보세요?”사라는 자연스럽게 입을 다물었다.준호도 더 이상 말을 하지 않았다.전화기 너머로 서희의 목소리가 작게 새어 나왔다.-지금 통화 괜찮아?“응. 괜찮아.”-청첩장 받았어. 고마워.“벌써 봤어?”-응. 아까 확인했어.예비 신부의 시선이 순간 테이블 위 청첩장으로 향했다.사라는 아무렇지 않게 남은 음식을 뒤적였다.“결혼식 올 거지?”-응. 간다고 했잖아.“그냥 다시 확인하려고.”-갈 거야.목소리가 평소보다 가라앉아 있었다.예비 신부의 표정이 조금 달라졌다.“서희야.”-응?“너 목소리 왜 그래?”잠깐 정적이 흘렀다.-그냥 좀 피곤해서.“어디 아파?”-아니야. 잠을 잘 못 잤어.사라의 젓가락이 잠시 멈췄다.아주 짧았다.곧 아무렇지 않게 다시 음식을 집었다.강수는 그 움직임을 봤지만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예비 신부가 걱정스러운 목소리로 물었다.“무슨 일 있어?”-……아니.대답이 늦었다.“진짜?”-응. 그냥 잠이 안 왔어.“밥은 먹었어?”이번에는 더 긴 침묵이 흘렀다.사라는 천천히 씹던 것을 삼켰다.-아직.“지금 몇 신데 아직도 안 먹었어.”-입맛이 없어.“그래도 뭐라도 먹어. 그러다 쓰러져.”-알았어.예비 신부는 서희가 신경 쓰이는지 몇 마디를 더 했다. 죽이라도 시켜 먹으라고 하고, 너무 힘들면 연락하라고 했다.사라는 조용히 듣고만 있었다.강수의 얼굴에는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09-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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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5화

준호는 맞은편의 사라를 한번 바라봤다.사라는 아무런 신호도 보내지 않았다. 말해라, 말하지 마라 하는 눈치조차 없었다. 턱을 괴고 앉아 그저 준호가 알아서 대답하기를 기다리고 있었다.준호가 입을 열었다.“아뇨. 없는 것 같아요.”전화기 너머가 조용했다.“있어도 잘 말하지 않으니까요.”사라의 입꼬리가 슬쩍 올라갔다.틀린 말은 아니었다.준호가 사라를 여행지에서 처음 만났을 때부터 그랬다. 신나면 시끄럽게 떠들고 별것 아닌 이야기는 끝도 없이 늘어놓으면서, 정작 자기 속에 깊숙이 들어간 일은 먼저 꺼내지 않았다.-그래요?“예.”-준호 씨한테도요?준호가 피식 웃었다.“사라 원래 그렇잖아요.”서희는 바로 대답하지 않았다.준호는 괜히 말을 보태지 않았다. 사라가 임신했다는 사실은 당연히 말할 수 없었고, 어젯밤 세 사람 사이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 자신이 아는 척할 일도 아니었다.잠시 후 서희가 말했다.-알겠어요. 괜히 물어봤네요.“아닙니다.”-결혼식 때 봬요.“예.”전화가 다시 예비 신부에게 넘어갔다.그녀는 서희에게 밥은 꼭 챙겨 먹으라고 몇 번이나 당부한 뒤 통화를 끝냈다.휴대전화가 테이블 위에 놓이자 준호가 길게 숨을 내쉬었다.“야.”사라가 눈을 깜빡였다.“왜?”“너 때문에 내가 왜 이렇게 긴장해야 되냐.”“내가 뭐 했는데.”“옆에 네 남자친구 앉아 있고 전화기 너머에는 그 남자 와이프가 있는데 안 긴장하게 생겼냐?”예비 신부가 준호의 팔을 툭 쳤다.“목소리 낮춰.”“우리밖에 없잖아.”“그래도.”사라는 둘을 번갈아 보다가 웃었다.“그러니까 그냥 평소처럼 하면 되지.”“너는 그게 돼?”“응.”“대단하다, 진짜.”사라는 어깨를 으쓱했다.강수는 말없이 사라 앞에 놓인 접시를 한번 내려다봤다.“다 먹었어?”“응.”“가자.”“벌써?”“피곤하잖아.”사라가 눈을 동그랗게 떴다.“나 안 피곤한데?”“아침부터 졸았어.”준호가 바로 끼어들었다.“회사에서 또 잤냐?”사라의 표정이 굳었다.강수의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09-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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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6화

한 주가 흘렀다.그동안 사라는 의사가 시킨 대로 비교적 얌전히 지냈다.야근도 하지 않았고, 회사에서도 오래 서 있는 일은 피했다. 처방받은 영양제도 꼬박꼬박 챙겨 먹었다. 물론 스스로 챙긴 날보다 강수가 식탁 위에 물과 함께 꺼내놓은 걸 먹은 날이 더 많았다.오늘도 정기검진을 위해 두 사람은 함께 산부인과에 들렀다.초음파 화면 안의 작은 생명은 지난주보다 또 조금 달라져 있었다.빠르게 뛰는 심장소리가 진료실을 채우자 사라는 저도 모르게 웃었다.“뜬금이 잘 있죠?”“네. 심장도 잘 뛰고 있어요.”의사는 화면을 조금 더 살핀 뒤 지난번 보였던 유산기도 많이 안정됐다고 설명했다.강수가 바로 물었다.“이제 괜찮습니까.”“현재는 많이 좋아졌어요. 그래도 아직 초기니까 무리하지 않는 건 계속 지켜주시고요.”“네.”사라가 옆에서 강수를 힐끗 봤다.자기가 진료받는데 대답은 늘 강수가 더 잘했다.“그럼 저 이제 평소처럼 다녀도 돼요?”“일상생활은 괜찮아요. 다만 피곤하면 쉬시고 무리한 활동은 피해주시고요.”사라가 고개를 끄덕였다.진료를 마치고 나온 뒤 강수는 처방전과 초음파 사진을 챙겼다. 사라가 손을 내밀었다.“사진 줘.”강수가 건넸다.사라는 걸음을 옮기면서도 사진을 한참 들여다봤다.“오빠.”“왜.”“또 컸어.”“어.”“뜬금이 나 닮았나?”“저걸 보고 알아?”“느낌이 있잖아.”“없어.”사라가 입술을 삐죽였다.“오빠 안 닮았으면 좋겠다.”강수가 내려다봤다.“왜.”“성격 무서울 것 같아.”“민사라.”사라가 웃으며 먼저 병원 출입문을 빠져나갔다.강수는 곧바로 뒤따라 나왔다. 사라가 초음파 사진을 가방에 넣느라 멈추자 자연스럽게 한 손으로 어깨를 감싸 사람들이 오가는 길에서 안쪽으로 옮겼다.“앞 보고 해.”“잠깐만.”“차에서 해.”“알았어.”사라는 가방을 닫고 강수 옆에 붙어 주차장 쪽으로 걸었다.두 사람은 알지 못했다.조금 떨어진 곳에 서 있던 여자가 걸음을 멈췄다는 것을.여자는 처음에는 강수를 알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09-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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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7화

전화기 너머에서 잠깐 침묵이 흘렀다.“어? 민사라?”동창이 기억을 더듬듯 이름을 한번 되뇌었다.“어…… 그러네.”서희는 숨도 제대로 쉬지 못한 채 기다렸다.“맞아. 민사라!”손끝이 차갑게 식었다.“대학 때 몇 번 봤잖아. 너랑 같이 있을 때. 머리가 길어서 바로 생각을 못 했어.”서희는 눈을 감았다.역시 사라였다.다른 여자일 가능성조차 사라졌다.“둘이…… 확실히 산부인과에서 나온 거야?”“응. 나도 거기서 진료받고 나오다가 본 거니까.”“같이?”“같이 나왔어.”동창은 그제야 서희의 목소리가 이상하다는 걸 느낀 듯 잠시 말을 멈췄다.“근데 서희야, 무슨 일이야? 사라가 어디 아픈 거야?”서희는 대답하지 못했다.산부인과라고 해서 반드시 임신인 건 아니었다.검진을 받을 수도 있었다.몸이 좋지 않을 수도 있었다.그런데 왜 강수가 같이 갔을까.그 질문을 떠올리는 순간, 일주일 전 르베르에서 봤던 모습이 다시 선명해졌다.사라가 다리가 아프다고 말하자마자 움직였던 강수.앉히고.종아리를 살피고.조금만 움직여도 시선이 따라붙었다.술을 마시느냐고 물었을 때 사라는 대답하지 않았다.며칠 뒤 준호의 예비 신부와 통화했을 때도 준호는 사라에게 무슨 일이 있는지 묻는 자신의 질문에 애매하게 답했다.있어도 잘 말하지 않으니까요.그 말까지 머릿속에서 이어졌다.서희가 입술을 깨물었다.“사라가 뭐 들고 있지 않았어?”“들고 있었는데 자세히는 못 봤어.”“종이 같은 거?”“글쎄. 멀어서.”동창이 잠시 생각하더니 말했다.“작은 사진 같은 걸 보고 있었던 것 같기도 하고.”서희의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초음파 사진.가장 먼저 떠오른 단어였다.아니라고 생각하려 해도 한번 떠오른 생각이 사라지지 않았다.“서희야.”“응.”“너 진짜 괜찮아?”“……응.”“근데 왜 자꾸 물어? 사라한테 직접 물어보면 되잖아.”서희는 입을 다물었다.직접.일주일 전까지만 해도 자신은 사라의 집에 앉아 있었다.그런데 사라는 아무 말도 하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09-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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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8화

강수의 걸음이 멈췄다.주차장으로 향하던 중이었다. 조금 앞에서 걷던 사라는 그가 따라오지 않자 돌아봤다. 강수는 휴대전화를 귀에 댄 채 아무 말 없이 서 있었다.전화기 너머에서도 아무 소리가 들리지 않았다.서희는 그 침묵만으로 심장이 내려앉는 기분이었다.아니라면 바로 아니라고 했을 사람이다.“맞아?”강수의 시선이 사라에게 향했다.사라는 가방끈을 잡은 채 눈으로 물었다.왜?강수는 짧게 대답했다.“어.”서희는 숨을 들이마시는 것조차 잊었다.손에서 힘이 빠져 휴대전화가 미끄러질 뻔했다. 겨우 고쳐 잡았지만 입술이 움직이지 않았다.맞다.사라가 임신했다.그것도 강수의 아이를.“……몇 개월인데?”“아직 초기야.”“언제 알았어?”강수는 잠시 말이 없었다.서희의 목소리가 떨렸다.“언제 알았냐고.”“얼마 안 됐어.”“그래서 그날 술 마시냐고 물었을 때…….”말끝이 흐려졌다.그제야 모든 게 확실해졌다.사라가 대답하지 않은 이유도, 강수가 다리가 아프다는 말 한마디에 곧바로 움직였던 것도, 두 사람이 자신에게 말하지 않은 또 하나의 일이 있다는 것도.서희는 헛웃음을 흘렸다.“이거였구나.”강수의 눈이 가라앉았다.“그날 당신이 있다고 했던 거.”“어.”“나한테 말 안 한 게 임신이었어?”“내가 말하려고 했어.”“언제?”강수는 대답하지 않았다.서희의 눈에 금세 눈물이 고였다.“언제 말하려고 했는데?”“정리되면.”“뭐가 정리되면?”목소리가 조금씩 높아졌다.“이혼? 아니면 내가 당신이랑 사라 관계를 이해하면?”“서희야.”“나 이해 못 해.”서희는 단호하게 잘랐다.지난 일주일 동안 아무리 생각해도 이해되지 않았다. 사라가 했던 말도, 강수가 했던 말도 머리로는 무슨 뜻인지 알았지만 자신의 마음으로 받아들일 수는 없었다.그런데 그 사이 아이까지 있었다.“나한테는 집이 왜 중요하냐고 물었어. 내가 지키고 싶은 게 집인지, 결혼인지, 당신인지 묻더라.”서희가 울면서 웃었다.“근데 둘은 이미 아이까지 만들었네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09-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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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9화

사라는 잠깐 생각했다.“응.”대답은 짧았다.그러다 정확한 주수가 바로 떠오르지 않는지 미간을 살짝 찌푸렸다.“9주인가?”휴대전화를 귀에서 조금 떼고 옆에 선 강수를 올려다봤다.“오빠. 뜬금이 9주지?”강수의 눈이 사라에게 내려왔다.“어.”“9주래.”사라는 다시 휴대전화를 귀에 댔다.전화기 너머에서는 아무 말도 들리지 않았다.“서희야?”-……뜬금이?“응.”-그게 뭐야.“아기 태명이야.”서희의 손끝이 떨렸다.태명까지 있었다.임신 사실을 이제야 알게 된 자신과 달리 두 사람에게는 이미 아이를 부르는 이름이 있었다.9주.서희는 그 숫자를 머릿속으로 되뇌었다.9주 전에도 자신은 강수의 아내였다.그보다 훨씬 전부터 두 사람은 만나고 있었다는 것도 알고 있다. 그런데 머리로 알고 있던 관계와 아이의 존재는 전혀 다른 무게로 다가왔다.“언제 알았어?”“병원에서.”-그건 알아. 임신한 거 언제 알았냐고.“얼마 안 됐어. 생리 안 해서 검사해봤는데 두 줄 나와서 병원 갔어.”사라는 사실 그대로 대답했다.-그때 강수 오빠도 같이 갔어?“응.”서희가 눈을 감았다.“오늘도?”“응. 오빠는 계속 같이 가.”너무 자연스러운 대답이었다.그래서 더 아팠다.특별한 날 한두 번 따라간 게 아니라 처음부터 함께했고, 앞으로도 함께할 사람처럼 들렸다.서희는 마른 입술을 적셨다.-너 왜 나한테 말 안 했어?사라는 잠시 입을 다물었다.“말할 상황 아니었잖아.”-그날 우리 몇 시간이나 얘기했어.“응.”-내가 너 어디 아프냐고도 물었잖아.“응.”-술 마시냐고도 물었고.사라가 작게 숨을 내쉬었다.“그래서 대답 안 했잖아.”-그게 대답이었어?“아니.”사라는 차분하게 말했다.“그때는 말하고 싶지 않았어.”서희의 눈에서 다시 눈물이 떨어졌다.-왜?“오빠가 자기가 말한다고 했고.”사라는 잠깐 강수를 봤다.“나도 그날 네가 우리 관계 알자마자 찾아온 건데 임신 얘기까지 바로 하는 건 아닌 것 같았어.”-그럼 언제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09-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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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0화

사라의 얼굴에서 표정이 사라졌다.서희가 자신에게 화를 내는 건 받아들일 수 있었다. 강수에게 원망을 쏟아내는 것도 당연했다. 자신이 서희의 가장 친한 친구였고, 강수는 아직 법적으로도 서희의 남편이었다.하지만 방금 그 말은 달랐다.사라의 손이 배 위에 그대로 멈췄다.“그건 아니지.”목소리도 전보다 단단해졌다.전화기 너머의 서희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아이는 오빠와 나의 아이인 거고.”사라는 천천히 말을 이었다.“우리 셋하고 엮지 마.”-사라야, 나는…….“나도 그건 못 참아.”서희의 말이 끊겼다.사라는 화를 내거나 목소리를 높이지 않았다. 그렇다고 방금 말을 이해하려고 애쓰지도 않았다.서희가 얼마나 화가 났는지 안다.억울한 것도 안다.자신의 임신을 우연히 알게 된 순간 어떤 기분이었을지도 대충은 짐작할 수 있었다.그렇다고 아직 태어나지도 않은 아이까지 그 감정 안에 넣는 건 다른 문제였다.“나한테 화내.”사라는 짧게 말했다.“오빠한테도 화내고.”배 위에 얹힌 손끝에 조금 힘이 들어갔다.“근데 뜬금이는 아니야.”-내가 아이한테 뭘 하겠다는 게 아니잖아.“알아.”-그냥 내가 그런 감정을 느낄까 봐 무섭다고 한 거야.“그것도 알아.”사라는 입술을 꾹 다물었다가 다시 열었다.“그래도 나는 듣기 싫어.”서희의 숨소리만 작게 들렸다.“네가 어떤 마음인지 내가 정할 수 없는 건 맞아. 전에 말했잖아. 네 감정은 네 거라고.”그 말이 지금은 서희에게 잔인하게 돌아왔다.“근데 그걸 나한테 말하면서 뜬금이까지 우리 셋 사이에 넣지는 마.”서희의 눈물이 다시 흘렀다.-너는 정말…….말이 끝까지 이어지지 않았다.사라는 기다리지 않았다.“끊을게.”-잠깐만, 사라야.“나중에 얘기해.”사라는 그대로 통화를 끝냈다.화면이 꺼졌다.한동안 휴대전화를 내려다보던 사라가 강수에게 내밀었다.“여기.”강수는 받아 들었다.사라의 얼굴을 한번 내려다봤다.“뭐래.”“뜬금이 미워할까 봐 무섭대.”강수의 표정이 순식간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09-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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