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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ll Chapters of 불온한 정착: Chapter 291 - Chapter 300

322 Chapter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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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원 주차장을 빠져나온 차가 회사 방향으로 접어들었다.강수는 사라를 집에 보내려 했지만 결국 실패했다. 사라가 오늘 할 일이 남았다며 회사로 돌아가겠다고 버텼고, 강수는 몇 번이나 상태를 확인한 끝에 옆자리에 태웠다.대신 조건이 붙었다.무리하지 말 것.점심 제대로 먹을 것.조금이라도 이상하면 바로 말할 것.사라는 처음 두 개까지 듣다가 웃었다.“오빠, 나 임신 처음 아니야.”강수의 시선이 잠깐 사라에게 향했다가 다시 도로로 돌아갔다.“알아.”그 짧은 대답에 사라는 더 놀리지 않았다.자신도 알고 있었다.처음이 아니어서 더 무서운 거였다.사라는 안전벨트 아래로 아직 평평한 배를 한번 쓸어보다가 갑자기 몸을 일으켰다.“아!”강수의 손이 바로 뻗어 사라의 팔을 잡았다.“왜.”“엄마!”“엄마가 왜.”“보여줘야지!”사라는 금세 휴대전화를 꺼냈다.“뜬금이 돌아온 거 엄마한테도 보여주자.”강수가 한 손으로 운전하며 사라를 한번 봤다.“해.”사라는 곧바로 미화에게 영상통화를 걸었다.신호가 두 번쯤 가고 화면이 연결됐다.“사라야.”화면 속 미화는 앞치마를 두르고 있었다.“엄마! 뭐 해?”“나물 다듬지. 너는 회사 아니야?”“회사 가는 중.”“옆에 강수야?”사라가 화면을 옆으로 돌렸다.운전 중인 강수의 얼굴이 잡혔다.“엄마.”“강수야.”“네.”“둘이 어디 갔다 와?”사라가 기다렸다는 듯 화면을 자기 쪽으로 돌렸다.“엄마, 놀라지 마.”미화의 손이 멈췄다.“왜. 무슨 일 있어?”“좋은 거야.”“뭔데.”사라는 씩 웃으며 손을 내밀었다.“오빠, 사진 줘.”강수는 센터콘솔 위에 고이 올려둔 초음파 사진을 집었다.사라가 받으려 하자 손을 바로 놓지 않았다.“구기지 마.”“안 구겨.”“조심해.”“알았어.”“민사라.”“아, 진짜 안 구긴다고.”강수가 그제야 놨다.사라는 카메라 앞으로 초음파 사진을 들었다.“엄마, 보여?”미화가 화면 가까이 얼굴을 가져왔다.“뭔데?”“잘 봐봐.”잠시 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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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주 뒤, 두 사람은 결혼식을 올렸다.사라가 그렇게 어렵게 골랐던 드레스를 입고 버진로드 앞에 섰을 때 강수는 한동안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드레스 피팅 때처럼 괜찮다는 말 하나로 끝낼까 봐 사라가 먼저 눈을 가늘게 떴지만, 강수는 다가와 사라의 손을 잡으며 짧게 말했다.“예뻐.”“오늘은 바로 말하네?”“연습했어.”“거짓말.”강수의 입가가 아주 조금 움직였다.미화는 그 모습을 가장 가까운 자리에서 지켜봤다.사라가 드레스를 입고 나타난 순간부터 눈물을 훔치던 미화는 강수와 눈이 마주치자 얼른 고개를 돌렸고, 사라는 그런 미화를 발견하고 입 모양으로 엄마라고 불렀다.그리고 사라의 부케에는 작은 장식 하나가 함께 달려 있었다.뜬금이의 첫 초음파 사진이었다.다시 돌아온 뜬금이는 이제 사라의 배 안에 있었지만, 처음 자신들에게 왔던 아이까지 잊지 않겠다는 두 사람의 약속이었다.강수와 사라는 손을 잡고 함께 걸었다.사람들 앞에서 영원을 맹세하고 반지를 다시 확인했으며, 식이 끝난 뒤에는 미뤄두었던 긴 신혼여행도 떠났다.사라가 가고 싶다고 표시해둔 곳을 따라 움직이는 여행이었다.한곳에 오래 머물기도 했고 갑자기 일정을 바꾸기도 했다. 강수는 계획이 틀어져도 아무 말 없이 따라왔고, 대신 사라가 무리해서 걷기 시작하면 가차 없이 숙소로 데려갔다.“나 임산부지 환자 아니야.”“알아.”“근데 왜 자꾸 쉬래.”“피곤하잖아.”“조금.”“그럼 쉬어.”결국 사라는 투덜거리면서도 강수 옆에 누웠다.여행이 끝나면 다시 르베르로 돌아왔다.그리고 계절이 바뀌었다.시간은 빠르게 흘러 어느새 사라의 배는 제법 무거워져 있었다.임신 8개월.이제 뜬금이는 초음파 화면 속 작은 점이 아니었다.사라가 소파에 앉아 있으면 배 한쪽이 불쑥 튀어나왔고, 강수가 손을 올려놓으면 기다렸다는 듯 안에서 움직일 때도 있었다.“오빠.”“왜.”“또 찼어.”강수의 손이 바로 배 위로 내려갔다.잠시 기다리자 손바닥 아래에서 단단하게 밀어내는 움직임이 느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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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후 회장실은 모처럼 느슨했다.결재할 서류도 대부분 끝났고, 예정되어 있던 외부 일정 하나가 취소되면서 한 시간가량 시간이 비었다. 정민은 소파에 기대 커피를 마시고 있었고, 덕배는 맞은편에 앉아 휴대전화를 만지작거렸다.강수는 책상 뒤에 앉아 있었다.일 얘기로 시작했던 대화는 어느 순간 사담으로 흘렀다.“형님.”덕배가 문득 강수를 불렀다.“왜.”“아들 나오면 진짜 이름 차건으로 하실 겁니까?”“어.”“뜬금이보다 확실히 사람 이름 같긴 한데.”정민이 피식 웃었다.“당연한 소리를 왜 그렇게 하냐.”“아니, 형수님은 진짜 뜬금이로 출생신고 할 수도 있는 사람이잖아.”강수가 덕배를 봤다.“안 해.”“형님이 막으셨습니까?”“어.”정민이 커피잔을 내려놓았다.“사라가 순순히 넘어갔어?”“내가 지으랬어.”“그래서 건?”“어.”덕배가 고개를 끄덕였다.“남자답네. 차건.”그러다 슬쩍 웃었다.“근데 형님 딸 원하셨다면서요.”강수의 시선이 덕배에게 향했다.정민이 바로 웃음을 삼켰다.덕배는 눈치 없이 계속했다.“형수님이 다 말하던데. 초음파 보기 전까지 속으로 딸이었으면 했다면서.”“배덕배.”“예.”“닥쳐.”“예.”대답은 빨랐지만 입꼬리는 그대로였다.정민이 고개를 저었다.“그러게 적당히 해.”“너도 웃었잖아.”“난 소리 안 냈어.”“비겁한 새끼.”“회사에서는 비겁해야 오래 살아.”강수는 둘을 무시하고 서류를 넘겼다.덕배가 잠깐 조용해지나 싶더니 다시 입을 열었다.“근데 형님.”강수는 이번에는 대답도 하지 않았다.“진짜 둘째도 생각 있으십니까?”서류 넘기던 손이 멈췄다.정민도 흥미롭다는 듯 강수를 봤다.강수가 무심하게 말했다.“왜.”“형수님이 그러던데요. 건이 나오기도 전에 둘째는 딸이라고 했다면서.”정민이 결국 웃었다.“그 말까지 했어?”“형수님이 얼마나 황당했으면.”강수의 미간이 좁아졌다.“민사라가 별걸 다 말하고 다니네.”바로 그때였다.회장실 문 밖에서 익숙한 목소리가 들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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덕배와 정민이 돌아간 뒤에도 사라는 회장실에 남아 있었다. 강수는 다시 책상 앞에 앉아 밀린 서류를 보고 있었고, 사라는 맞은편 소파에 기대 앉아 종이봉투에서 하나씩 간식을 꺼냈다. 배가 많이 나오고부터 한 번에 많이 먹지는 못했지만 배고픈 시간은 더 자주 찾아왔다. 과자를 하나 입에 넣던 사라가 갑자기 생각났다는 듯 고개를 들었다. “아, 오빠.” “왜.” “엄마 내일 오신대.” 서류 위를 움직이던 펜이 멈췄다. “여기?” “응. 우리 집.” 강수가 눈을 들었다. 사라는 아무렇지 않게 과자를 하나 더 집었다. “아까 연락 왔어. 건이도 많이 컸고 이제 언제 나올지 모르니까 미리 올라오겠대.” “아직 두 달 남았잖아.” “예정일이 그렇다는 거지. 엄마는 애가 꼭 날짜 맞춰서 나오냐고 하던데?” 강수는 잠깐 말이 없었다. 사라가 웃었다. “그리고 건이 태어나면 나 몸조리도 해주고 내려가시겠대.” 이번에는 강수의 시선이 완전히 서류에서 떨어졌다. “얼마나 계신대.” “안 정했어.” “그래?” “응. 내가 회복하는 거 보고.” 사라는 별일 아니라는 듯 말했지만 강수는 한동안 아무 대답이 없었다. 미화가 르베르에 며칠 머물렀던 적은 있었다. 하지만 이번에는 달랐다. 아들이 사는 집에 잠깐 들르는 게 아니라 손자가 태어나기를 기다리고, 며느리의 산후조리까지 해주겠다는 것이었다. 아주 오래전 끊겨버렸던 가족의 시간이 이제는 너무 자연스럽게 다음으로 이어지고 있었다. 사라가 강수를 빤히 바라봤다. “왜.” “뭐가.” “싫어?” “아니.” 대답은 즉시 나왔다. “그럼 왜 표정이 그래?” “원래 이래.” “그건 맞는데.” 사라가 웃으며 소파에서 몸을 일으키려 했다. 강수가 바로 자리에서 일어났다. “있어.” “나 오빠한테 가려고.” “내가 가.” 결국 강수가 먼저 다가왔다. 사라는 다시 소파에 등을 기대고 그가 옆에 앉자 자연스럽게 팔에 붙었다. 이제 배 때문에 예전처럼 옆구리에 쏙 들어가지는 못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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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 날 아침, 강수와 사라는 함께 미화를 데리러 내려갔다.사라는 조수석에 앉자마자 안전벨트를 배 아래로 편하게 정리했고, 강수는 출발하기 전 그것부터 확인했다. 좌석 각도도 보고 발밑에 둔 작은 쿠션도 다시 밀어줬다.“됐어?”“어.”“나 진짜 괜찮아.”“알아.”“그런데 왜 다섯 번째 확인해?”강수는 대답하지 않고 차를 출발시켰다.사라는 피식 웃으며 창밖을 봤다.도시를 빠져나가 익숙한 시골길로 접어들자 풍경이 달라졌다. 좁은 길과 밭이 이어지고, 멀리 낮은 집들이 드문드문 보였다.이 길도 이제 낯설지 않았다.처음에는 강수에게 너무 오래된 상처가 묻어 있던 곳이었지만, 이제는 두 사람이 함께 찾아오는 집이 됐다.미화의 집 앞에 도착하자 사라는 창문 너머를 보다가 눈을 크게 떴다.“오빠.”“왜.”“저게 다 뭐야?”마당 한쪽에 짐이 쌓여 있었다.큰 여행가방 하나.보자기 가방 두 개.아이스박스.종이상자까지.그리고 그 옆에 미화가 서 있었다.사라가 안전벨트를 풀며 웃었다.“내가 뭐랬어. 바리바리 싸 온다니까.”강수가 차에서 먼저 내렸다.사라도 문을 열려는데 강수가 이미 조수석 쪽으로 돌아와 있었다.문이 열렸다.“천천히.”“나 내릴 수 있어.”“알아.”강수가 팔을 내밀었다.사라는 그 팔을 잡고 차에서 내려오며 배를 한번 받쳤다.미화가 바로 다가왔다.“사라야.”“엄마!”사라가 반갑게 팔을 벌리자 미화의 얼굴부터 환해졌다.“아이고, 배 봐.”“많이 나왔지?”“사진으로 보는 거랑 다르네.”미화는 사라를 안으려다 큰 배 때문에 멈칫했고, 결국 어깨를 감싸 안았다.“몸은 괜찮아?”“응. 완전 괜찮아.”“숨 차는 건?”“가끔.”“다리 붓고?”“조금.”“잠은?”“건이가 밤에 축구 안 하면 잘 자.”미화의 손이 조심스럽게 배로 향했다.“건아. 할머니 왔다.”사라가 웃었다.“엄마, 얘 이제 이름 알아듣는 것 같아.”“정말?”“오빠가 부르면 잘 움직여.”강수가 뒤에서 짐을 들다 말했다.“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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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라의 얼굴이 금세 환해졌다.“그래. 우리 집인데.”미화가 두 사람을 번갈아 바라봤다.사라는 너무 당연하다는 얼굴이었고, 강수는 이미 트렁크에서 다음 짐을 꺼내고 있었다.“엄마 이제 여기서 손님 아니야. 먹고 싶은 거 있으면 냉장고 열어 먹고, 필요한 거 있으면 그냥 쓰고. 방도 엄마 마음대로 써.”“그래도 너희 신혼집인데.”“신혼여행도 갔다 왔는데 뭐.”사라가 배를 한번 받치며 웃었다.“그리고 우리 이제 둘이 아니잖아.”“그건 그렇지.”“엄마까지 왔으니까 넷이지.”미화의 눈이 사라의 배로 내려갔다.“건이까지?”“응. 나, 오빠, 엄마, 건이.”사라가 손가락까지 하나씩 접어가며 세자 미화가 웃었다.강수가 짐을 모두 꺼내고 트렁크를 닫았다.“올라가요.”“오빠, 나 하나 들게.”“됐어.”“가벼운 거.”“가.”“저 봉투 가볍잖아.”사라가 작은 보자기 가방을 집으려는 순간 강수가 먼저 들어 올렸다.사라의 손에 남은 건 아무것도 없었다.“나 임산부지 귀족 아니거든?”“알아.”“근데 왜 아무것도 못 들게 해?”미화가 사라의 팔짱을 꼈다.“그냥 둬. 들고 싶다잖아.”사라가 강수를 봤다.양손에 가방과 상자를 잔뜩 든 채 먼저 엘리베이터 쪽으로 걷고 있었다.“엄마.”“응?”“저거 은근히 고집 세.”앞에서 강수의 목소리가 들렸다.“다 들려.”“들으라고 했어.”르베르 23층에 도착하자 사라는 미화를 데리고 먼저 2301호로 들어갔다.현관문이 열리자 미화가 천천히 안을 둘러봤다.몇 번 와본 집이었다.그런데 여행가방까지 가지고 들어오니 느낌이 달랐다.사라는 신발을 벗자마자 말했다.“엄마 방부터 보자.”“너 좀 앉아.”“나 안 힘들어.”“오는 내내 화장실 두 번 갔잖아.”“그건 건이가 방광을 눌러서 그래.”뒤따라 들어온 강수가 짐을 내려놓았다.“앉아.”사라가 돌아봤다.“둘이 똑같은 말 하지 마.”“앉으라고.”“싫은데?”강수는 말없이 사라를 봤다.사라도 마주 봤다.몇 초 지나지 않아 미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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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화가 르베르에 머물기 시작한 뒤 집의 아침 풍경이 조금 달라졌다.강수가 출근 준비를 마치고 나오면 주방에는 이미 미화가 있었다. 사라는 그 옆에서 과일을 집어먹거나 식탁에 앉아 건이에게 아침부터 말을 걸었다.“오빠, 밥 먹고 가.”“먹었어.”“뭘 먹었는데?”“토스트.”미화가 바로 끼어들었다.“그게 밥이야?”강수가 현관으로 향하던 걸음을 멈췄다.사라가 웃었다.“엄마, 잡아. 또 도망간다.”결국 강수는 식탁으로 돌아왔다.그렇게 셋이 아침을 먹었다.출근할 때도 사라와 미화가 함께 현관까지 나왔다.“다녀와.”“강수야, 점심 챙겨 먹어.”“네.”강수는 신발을 신다가 사라의 배를 한번 보고, 미화가 옆에 있는 걸 확인하고서야 문을 나섰다.사라는 문이 닫히자 미화를 봤다.“엄마.”“왜?”“오빠 요즘 안심하고 출근하는 것 같지?”“내가 있어서?”“응.”미화는 대답 대신 웃었다.낮에는 둘이 밥을 먹고 장을 보기도 했다. 사라가 출산용품을 펼쳐놓으면 미화는 필요 없는 것과 꼭 필요한 것을 골라줬고, 건이가 움직이면 하던 일을 멈추고 둘이 배에 손을 올렸다.그러던 어느 날 사라가 말했다.“엄마, 회사 가볼래?”“회사?”“응. 오빠 회사.”“내가 거길 왜 가.”“아들 회사 궁금하지 않아?”미화가 잠시 망설였다.사라는 이미 가방을 챙기고 있었다.“가자. 내가 구경시켜줄게.”“너 몸 무거운데.”“차 타고 가서 엘리베이터 타는데 뭐가 무거워.”결국 오후가 되자 두 사람은 CH건설에 도착했다.회장실 문을 열자 강수가 먼저 사라의 배부터 봤다.그다음 미화를 봤다.“어떻게 왔어요?”“내가 데리고 왔어.”사라가 대답했다.“엄마한테 오빠 회사 보여주려고.”미화는 넓은 회장실을 천천히 둘러봤다.“여기서 일하는구나.”“네.”“생각보다 크네.”사라가 옆에서 웃었다.“엄마, 회장이잖아.”“회장인 건 알지.”미화의 시선이 책상 위 가족사진에서 멈췄다.결혼식 때 찍은 사진이었다.사라와 강수.그리고 사라가 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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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개월을 지나 이제 막 10개월째에 들어선 저녁이었다.예정일이 가까워질수록 강수는 회사에 나가는 날을 줄이더니 결국 아예 르베르에서 일을 보기 시작했다.회장실에서 처리하던 보고는 정민이 직접 가져왔고, 사뇌파 쪽 급한 일은 덕배가 정리해 연락했다. 정말 강수가 직접 움직여야 하는 일만 남겨두고 나머지는 전부 집에서 처리했다.사라는 처음 며칠은 어이가 없었다.“오빠, 나 내일 당장 애 낳는 거 아니야.”“몰라.”“뭘 몰라?”“언제 나올지.”그 말이면 끝이었다.미화까지 강수 편을 들었다.“막달에는 진짜 몰라. 갑자기 신호 오는 거야.”“엄마까지 왜 그래.”“그러니까 멀리 돌아다니지 마.”결국 사라는 보호자가 둘인 생활에 익숙해졌다.그날 저녁도 세 사람은 함께 식탁에 앉았다.미화가 끓인 된장찌개와 생선구이, 나물 몇 가지가 올라왔고 사라는 밥을 반쯤 먹은 뒤 젓가락을 내려놓았다.“배불러.”강수가 바로 봤다.“별로 안 먹었잖아.”“건이가 자리를 다 차지했어.”사라는 커다랗게 솟은 배를 손바닥으로 쓸었다.“엄마, 얘 진짜 많이 내려온 것 같지?”미화가 사라의 배를 살폈다.“조금 그런 것 같기도 하고.”“요즘 밑으로 묵직해.”강수의 젓가락이 멈췄다.“언제부터.”“며칠 됐어.”“왜 말 안 했어.”사라가 황당한 얼굴로 그를 봤다.“말했어.”“언제.”“어제도 말했고 그저께도 말했거든?”미화가 웃었다.“강수야, 사라가 매일 말했어.”강수는 입을 다물었다.사라가 피식 웃었다.“내 말 안 듣지?”“들었어.”“근데 왜 또 물어.”“확인한 거야.”“그래. 그렇게 하자.”저녁을 다 먹은 뒤 미화가 그릇을 모았다.사라가 바로 손을 뻗었다.“엄마, 내가 할게.”“놔둬.”“나 하루 종일 아무것도 안 했어.”“애 키웠잖아.”사라가 멈칫했다.“뱃속에서?”“그게 제일 큰일이지.”사라는 웃으며 의자를 뒤로 밀었다.“그래도 그릇 정도는—”몸을 일으키는 순간이었다.사라의 표정이 이상하게 멈췄다.강수가 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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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원에 도착했을 때는 집에서 출발할 때보다 진통 간격이 눈에 띄게 짧아져 있었다.차가 응급 출입구 앞에 멈추자 강수가 먼저 내렸다. 미화가 출산 가방을 챙기는 사이 강수는 조수석 문을 열고 사라에게 팔을 내밀었다.“천천히.”“응.”사라가 한 발을 내딛다가 그대로 멈췄다.아랫배가 다시 단단하게 조여왔다.“아…… 잠깐.”강수의 팔을 잡은 손에 힘이 들어갔다.“사라야.”“기다려. 지금…… 아파.”강수는 재촉하지 않았다.허리를 받친 채 사라가 숨을 고를 때까지 그대로 서 있었다.미화가 등을 천천히 쓸었다.“숨 쉬어. 급하게 하지 말고.”“엄마, 이거…… 생각보다 많이 아픈데?”“이제 시작이야.”사라가 눈을 크게 떴다.“이게 시작이라고?”미화가 웃을 상황이 아닌데도 웃음이 났다.강수의 표정은 더 굳었다.진통이 조금 가라앉자 의료진이 준비한 휠체어에 사라가 앉았다. 곧바로 산부인과로 이동했고 상태를 확인하는 동안 강수는 사라의 손을 놓지 않았다.검사를 마친 의료진의 움직임이 빨라졌다.“분만 진행이 빠릅니다.”강수의 눈이 의사에게 향했다.“얼마나 걸립니까.”“정확한 시간은 단정할 수 없지만 출산이 임박한 상태라 바로 분만실로 이동하겠습니다.”사라가 눈을 깜빡였다.“바로요?”“네. 아기 상태 확인하면서 진행할게요.”사라는 순간 말이 없어졌다.집에서 양수가 터졌을 때까지도 실감이 덜 났다.병원에 오면 기다리고, 진통하고, 한참 뒤에야 낳는 줄 알았다.그런데 바로 분만실이라니.사라가 강수를 올려다봤다.“오빠.”“어.”“진짜 낳는대.”강수의 손이 사라의 머리를 한번 쓸었다.“알아.”“나 갑자기 무서운데.”그 말에 강수의 얼굴이 멈췄다.사라는 웬만한 일에는 겁먹지 않았다.아파도 웃었고, 무서운 일이 생겨도 먼저 부딪치는 여자였다.그런 사라가 무섭다고 했다.강수가 몸을 숙였다.“나 들어가.”“같이?”“어.”사라의 손이 그의 손을 더 세게 잡았다.“끝까지 있어.”“있어.”“나 손 부러뜨려도 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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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기 울음이 분만실 안을 가득 채웠다. 사라는 한동안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온몸의 힘이 빠져 손가락 하나 움직이는 것도 힘들었지만 고개만은 울음소리가 들리는 쪽으로 돌렸다. 눈물이 멈추지 않고 흘러내렸다. “건이…….” 목소리가 제대로 나오지 않았다. 의료진이 빠르게 아기의 상태를 확인하는 동안에도 사라의 눈은 그쪽만 쫓았다. “아기 건강합니다.” 그 말을 듣는 순간 사라가 눈을 질끈 감았다. 울음이 터졌다. 강수는 사라의 손을 잡은 채 움직이지 않았다. 평소처럼 굳은 얼굴이었다. 그런데 눈이 붉었다. 사라가 강수의 손을 더듬어 잡았다. “오빠.” “어.” “들었어?” “어.” “건이 건강하대.” 강수의 손가락이 사라의 손을 단단히 감쌌다. “들었어.” 잠시 뒤 아기가 사라에게 왔다. 작았다. 그런데 사라가 기억하고 있던 초음파 속 작은 형체와는 비교할 수도 없을 만큼 컸다. 붉어진 얼굴. 꽉 감은 눈. 작은 입을 벌려 힘껏 우는 모습. 사라는 아기를 보는 순간 다시 울었다. “아…….” 떨리는 손이 올라갔다. 혹시라도 아플까 손끝으로 조심스럽게 머리를 만졌다. 따뜻했다. 진짜였다. 사진이 아니었다. 화면 속 작은 점도 아니었다. 자기 앞에서 숨 쉬고 울고 있었다. “건아.” 아기가 울었다. 사라는 눈물범벅이 된 얼굴로 웃었다. “엄마야.” 강수가 고개를 숙였다. 사라는 아기의 얼굴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처음 뜬금이를 확인했던 날이 떠올랐다. 심장소리를 들었던 날. 초음파 사진을 들고 둘이 자기들 거라고 했던 날. 그러다 너무 빨리 보내야 했던 날. 피가 흐르던 다리를 붙잡고 가지 말라고 했던 자신까지. 사라의 입술이 떨렸다. “건아.” 눈물이 아기의 얼굴에 떨어질까 고개를 조금 옆으로 돌렸다. 한참 울고서야 다시 바라봤다. “잘 돌아왔어.” 강수의 눈이 감겼다. 사라는 울면서도 계속 말했다. “오는 길 멀었지?” 작은 손이 움직였다. “엄마가 오래 기다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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