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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ll Chapters of 불온한 정착: Chapter 31 - Chapter 40

322 Chapters

31화

“어.” 강수가 전화를 받으며 객실 문을 열었다. — 자기, 방 들어갔어? “방금.” 전화기 너머로 들리는 서희의 목소리에 하루 종일 굳어 있던 강수의 표정이 자연스럽게 풀렸다. 넥타이를 느슨하게 풀어내며 창가로 걸어간 그는 불빛으로 가득한 일본의 밤거리를 내려다봤다. — 저녁은 먹었고? “먹었어.” — 사라는? “먹었겠지.” — 같이 안 먹었어? “호텔 들어오자마자 야식 찾던데.” 서희가 웃음을 터뜨렸다. — 역시 민사라네. 자기야, 걔 일할 때 끼니 잘 거르니까 좀 챙겨줘. 강수는 문득 회의가 끝나자마자 배고프다고 칭얼거리던 사라를 떠올렸다. “누가 누굴 챙겨.” — 그래도 네가 어른이잖아. “걔 스물넷이야.” — 자기보다 열두 살이나 어리잖아. 강수가 피식 웃었다. “알았어.” — 보고 싶어. 잠시 조용해진 강수의 얼굴에 옅은 미소가 번졌다. “나도.” 사랑해서 결혼한 여자였다. 따뜻하고 다정해서 좋았고, 자신과 전혀 다른 세상에서 살아온 여자라 더 소중했다. 강수에게 서희는 집으로 돌아가면 당연히 있어야 하는 사람이었다. 다음 날 아침부터 일정은 빠듯하게 돌아갔다. 일본 거래처 본사 회의실에 들어선 사라는 전날보다 훨씬 차분했다. 단정하게 묶은 머리에 검은 재킷까지 걸치고 강수 옆에 앉은 모습에서는 평소의 장난기조차 찾기 어려웠다. 본격적인 협상이 시작되자 일본 측은 예상대로 현지 운송비 문제를 다시 꺼냈다. 사라는 상대의 설명을 끝까지 들은 뒤 강수에게 통역했다. “회장님, 운송 일정 변경 가능성을 이유로 비용 부담 주체를 확정하기 어렵다는 입장이에요.” “어제 보내온 수정안은.” “말 바꾸는 중이죠.” 사라가 작게 대답하더니 다시 일본 측을 향했다. 한동안 빠른 일본어가 오갔다. 강수는 끼어들지 않았다. 상대가 말을 돌릴 때마다 사라는 준비해온 자료를 정확히 찾아냈고, 기존 합의 날짜와 금액까지 짚어가며 빠져나갈 구멍을 막았다. 결국 두 시간이 넘는 협상 끝에 일본 측이 먼저 한발 물러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09-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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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2화

다음 날 오전 일정이 사라진 덕분에 저녁은 온전히 자유시간이 됐다. 호텔에 도착하자마자 박 부장은 피곤하다며 객실로 올라갔고, 정민 역시 확인할 일이 있다며 먼저 자리를 떴다. 로비에 남은 사라는 휴대전화를 들여다보다 그대로 밖으로 향했다. “어디 가.” 뒤에서 들린 목소리에 사라가 돌아봤다. 강수였다. “놀러요.” “혼자?” “네. 왜요?” 강수의 시선이 짧은 치마 아래로 드러난 사라의 맨다리를 훑었다가 다시 얼굴로 올라왔다. “길이나 잃어버리지 마.” “저 세계여행 3년 한 여자예요.” “그거랑 길 잃는 거랑 무슨 상관이야.” “걱정돼요?” “사고 치면 내가 귀찮으니까.” 사라가 피식 웃었다. “그럼 같이 가요.” 강수의 눈썹이 올라갔다. “싫어.” “그럼 안녕.” 미련도 없이 돌아선 사라가 유리문 밖으로 사라졌다. 강수는 그 뒷모습을 잠시 바라보다 엘리베이터 쪽으로 몸을 돌렸다. 십여 분 뒤. 사라는 길거리 음식점 앞에서 강수를 다시 만났다. “어?” 꼬치 하나를 입에 물고 있던 사라의 눈이 동그래졌다. “왜 따라왔어요?” “누가 널 따라와.” “그럼 여긴 왜 왔는데.” “밥 먹으러.” 사라는 주변에 늘어선 수많은 가게를 둘러보다 다시 강수를 봤다. “하필 여기?” 강수는 대꾸하지 않고 가게 안으로 들어갔다. 사라는 잠깐 고민하더니 냉큼 따라붙었다. 결국 두 사람은 작은 식당에 마주 앉았다. 사라는 메뉴판을 펼치자마자 이것저것 주문했고 강수는 그런 그녀를 어이없다는 듯 바라봤다. “그걸 다 먹어?” “네.” “아까도 먹었잖아.” “그건 간식.” “하루 종일 먹네.” “잘 먹는 게 죄예요?” 음식이 나오자 사라는 정말 쉬지 않고 먹었다. 맛있는 게 생기면 강수 쪽으로 접시를 밀었고, 강수가 거절하면 직접 그의 앞접시에 올려놨다. “이거 먹어봐요.” “됐어.” “맛있다니까.” “네가 먹어.” “아저씨 진짜 말 안 듣네.” 강수는 결국 젓가락을 들었다. 사라가 만족스럽게 웃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09-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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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3화

강수는 소파에 놓아둔 재킷을 집어 들며 곧장 몸을 일으켰다. “어디야.” 수화기 너머의 사라는 평소답지 않게 목소리를 죽이고 있었다. 안내판을 대충 보고 들어간 탕이 하필 남탕이었고, 알아차렸을 때는 이미 밖에서 남자들의 목소리가 들리고 있었다. “거기서 움직이지 마.” “저도 그러고 싶거든요. 근데 사람 더 들어오고 있어요.” “민사라.” “네.” “가만있어. 내가 갈 테니까.” 전화를 끊은 강수는 직원에게 상황을 설명한 뒤 커다란 수건을 받아 안으로 들어갔다. 늦은 시간이라 이용객은 많지 않았지만 출입구 근처에는 이미 몇 명의 남자가 있었다. 안쪽 바위 뒤에서 젖은 얼굴만 빼꼼 내민 사라를 발견한 순간, 강수의 미간이 깊게 구겨졌다. “회장님.” 늘 겁도 없이 덤비던 여자가 귀까지 새빨개져 있었다. 젖은 머리카락을 뺨에 붙인 채 물속 깊숙이 몸을 숨기고 있었다. “나와.” “미쳤어요? 어떻게 나가요.” “그럼 밤새 거기 있을래?” 강수는 시선을 돌린 채 수건을 크게 펼쳤다. “눈 감고 일어나.” 잠시 머뭇거리던 사라가 결국 눈을 질끈 감았다. 물소리가 들리고, 강수는 끝까지 고개를 돌린 채 다가가 큰 수건으로 그녀를 완전히 감쌌다. “됐어.” 사라가 조심스럽게 눈을 떴다. 그 순간 강수의 한쪽 팔이 등을 받치고 다른 팔이 무릎 아래로 들어왔다. 작은 몸이 그대로 들리자 사라가 놀라 그의 목을 끌어안았다. “잠깐, 나 걸을 수 있는데.” “수건 풀려도 괜찮으면 걸어.” 사라의 입이 즉시 다물렸다. 29센티미터의 키 차이에 체격까지 큰 강수의 품에 안기자 수건에 감긴 사라는 거의 보이지 않았다. 사람들이 있는 곳을 지날 때마다 사라는 얼굴까지 그의 가슴에 묻었고, 강수는 그런 그녀를 더 깊숙이 품 안으로 가렸다. 객실에 들어와 문이 닫히고 나서야 강수가 사라를 내려놓았다. “옷 갈아입고 네 방 가.” “알았어요.” 대답은 했지만 사라는 움직이지 않았다. 수건 아래로 물방울이 떨어져 카펫에 작은 자국을 만들었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09-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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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4화

침대 위로 눕혀진 사라는 자신을 내려다보는 강수에게서 눈을 떼지 않았다. 조금 전까지만 해도 몇 번이나 나가라고 말하던 남자의 얼굴에서는 더 이상 그녀를 밀어내려는 기색을 찾을 수 없었다. 강수의 한쪽 팔은 사라의 옆을 짚고 있었고, 다른 손은 여전히 그녀의 허리를 단단히 감싸고 있었다. 사라가 먼저 손을 뻗었다. 손끝이 강수의 셔츠 가장 위쪽 단추에 닿았다. 하나를 풀고, 그 아래의 것을 다시 풀었다. 서두르지도 망설이지도 않는 손길이었다. 강수가 낮게 불렀다. “민사라.” “왜요.” “후회 안 해?” 사라는 대답 대신 마지막 단추를 풀어냈다. “그 질문 아까 했어야죠.” 그리고 강수의 목을 끌어당겼다. 입맞춤은 다시 길어졌다. 사라는 그의 입술이 잠시라도 떨어지면 먼저 따라붙었고, 강수 역시 더는 피하지 않았다. 거칠어진 숨이 가까이 뒤섞이는 동안 조금 전까지 두 사람 사이에 남아 있던 망설임마저 빠르게 흐려졌다. 사라의 핑크빛 봉긋한 가슴에 솟은 핑크빛 유두. 강수는 천천히 사라의 몸을 눈으로 담고 있었다. 한참 말이 없던 강수의 시선을 알아차린 사라가 눈썹을 살짝 들어 올렸다. “왜요? 예뻐서?” 그 상황에서도 당당하게 묻는 목소리에 강수의 입가에 어이없는 웃음이 스쳤다. “너는 지금도 그런 말이 나오냐.” “왜. 아니에요?” 강수가 대답하지 않자 사라는 그것마저 긍정으로 받아들인 듯 웃었다. 하지만 여유는 오래가지 못했다. "이걸 다 내 밑에 넣는다고?" 사라의 눈이 순식간에 커졌다. “잠깐만!!” 강수의 눈썹이 올라갔다. 사라는 조금 전까지의 당당함도 잊어버린 채 그를 한 번 보고 다시 아래를 확인했다. 믿기지 않는다는 표정이 너무 노골적이라 강수가 결국 헛웃음을 터뜨렸다. “무슨 분홍 소세지야?” “……뭐?” “아니, 잠깐만.” 사라는 진지했다. 강수가 어이없다는 듯 그녀를 내려다봤다. “겁나?” “겁나는 게 아니라 계산 중이에요.”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09-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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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5화

사라는 본능적으로 강수의 표정을 살폈다. 방금 전까지 웃고 있던 남자의 눈빛이 달라져 있었다. 평소 회사에서 마주하던 무심하고 냉정한 얼굴도 아니었고, 서희의 옆에서 보았던 느긋한 모습과도 달랐다. 두 눈이 풀린 사라가 강수를 올려다봤다. “맛있네요, 회장님.” 강수는 허리를 더욱 움직이며 낮게 대꾸했다. “더 먹어, 그럼.” 살 부딪히는 소리와 사라의 신음 소리가 뒤섞이고, 강수의 허리짓에 맞춰 함께 움직이는 사라를 보며. “이런 건 어디서 배웠어?” 사라는 대답 대신 그의 목을 끌어안으며 다시 입을 맞췄다. 조금 전까지 장난스럽게 웃던 얼굴에는 어느새 다른 열기가 가득했다. 사정감이 오는 강수는사라는 사라 입속에 사정하는 한다. 크기가 버거우면서도 강수의 정액을 꿀꺽꿀꺽 삼키고는 입으로 마무리해 준 사라 이미 선은 넘었다. 이제 와 멈춰야 할 이유를 찾는 게 더 우스웠다. “한 번 더.” 사라가 먼저 강수의 목을 끌어당겼다. 두 사람의 입맞춤이 다시 길어졌다. 강수의 품에 완전히 갇힌 사라는 숨이 흐트러질 때마다 그의 어깨를 붙잡았고, 강수 역시 더는 거리를 만들려 하지 않았다. “하흣…….” 짧은 숨이 새어 나왔다. 사라는 눈을 질끈 감았다가 다시 떴다. 정신없는 와중에도 강수의 얼굴을 확인하듯 바라보더니 기어코 입꼬리를 올렸다. “회장님.” “왜.” “진짜 체력 좋네요.” 강수의 미간이 꿈틀했다. “입 다물어.” “칭찬인데.” “지금도 말이 나오냐.” “제 입은 원래 별도로 움직여요.” 강수가 헛웃음을 터뜨렸다. 회사에서도 똑같은 말을 했던 여자였다. 목에 칼이 들어왔을 때도 겁을 먹기는커녕 상대를 물어버렸고, 죽을 뻔한 일을 겪고 돌아오는 차에서는 태평하게 잠들었다. 그런 민사라가 지금 자신의 품 안에 있었다. 강수는 순간 웃음을 거뒀다. 서희의 얼굴이 떠올랐다. 어젯밤 사랑한다고 말했던 아내. 출장길에 오르기 전까지도 아무것도 의심하지 않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09-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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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6화

욕실 문이 열렸을 때 강수는 침대 끝에 앉아 셔츠 단추를 채우고 있었다. 샤워를 마친 사라는 젖은 머리를 수건으로 대충 털며 나왔다. 밤새 같은 침대에 있었던 여자라고는 믿기지 않을 만큼 멀쩡한 얼굴이었다. 휴대전화를 확인하더니 곧바로 테이블 위 태블릿까지 켰다. “회장님, 열 시 미팅이에요. 아홉 시 십 분에는 나가야 하고요. 조식 먹으려면 지금 내려가야 돼요.” 강수는 대답하지 않았다. “안 먹어요?” “민사라.” “네.” “너 아무렇지도 않아?” 사라가 눈을 깜빡였다. “뭐가요?” “어젯밤.” “아.” 짧은 탄성 뒤에도 표정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왜요. 후회해요?” “내가 묻잖아.” “나는 안 하는데.” 사라는 캐리어를 열어 오늘 입을 옷을 꺼냈다. 아무렇지 않다는 것과 아무 생각이 없다는 건 달랐다. 서희가 떠오르지 않은 것도 아니었다. 가장 친한 친구의 남편과 선을 넘었다는 사실은 분명 마음 한쪽에 무겁게 남아 있었다. “서희한테는 미안하죠.” 장난기가 빠진 목소리가 낮게 내려앉았다. “근데 회장님한테 책임지라고 할 생각은 없어요. 성인 둘이 좋다고 한 건데 누가 누굴 책임져요.” 강수의 눈빛이 가라앉았다. 편해야 할 말이었다. 울지도 않고, 매달리지도 않고, 자신에게 무엇이 되어 달라고 요구하지도 않았다. 그런데 이상하게 마음에 들지 않았다. “씻어요. 늦겠어요.” 사라는 벌써 화장대 앞으로 가버렸다. 강수는 자리에서 일어나 바지를 집어 들었다. 주머니에 손을 넣는 순간 손끝에 딱딱한 것이 걸렸다. 작은 들소 모양 열쇠고리였다. 그것을 꺼내자 거울 너머로 본 사라가 눈을 동그랗게 떴다. “어? 아직도 가지고 있었네.” “네가 처넣었잖아.” “버릴 줄 알았죠.” “왜 버려.” 사라가 들소와 강수를 번갈아 보더니 웃었다. “회장님 이런 거 안 좋아하게 생겼잖아요.” “그럼 왜 넣었어.” “닮아서.” 사라가 태연하게 머리를 말렸다. “필요 없으면 버려요.” 강수는 손바닥 위 작은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09-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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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7화

3엘리베이터 안의 공기가 순식간에 굳었다. 사라는 귀에서 휴대전화를 천천히 떼며 강수를 올려다봤다. 조금 전까지 웃음이 가득했던 얼굴에 황당함이 번졌다. 옆에 서 있던 정민마저 시선을 슬쩍 피했다. “뭐라고요?” “못 들었어?” “들었는데, 회장님 입에서 나온 말이 맞나 싶어서요.” 강수는 대답하지 않았다. 사라는 잠시 그를 빤히 보다가 다시 휴대전화를 귀에 댔다. “준호야, 내가 이따 다시 전화할게.” 전화를 끊자 강수의 시선이 화면을 따라 움직였다. “누군데.” “친구라니까요.” “어디서 만난.” 사라의 눈썹이 올라갔다. “진짜 취조하네.” “대답해.” 낮고 짧은 목소리였다. 사라는 어이없다는 듯 웃었다. “여행할 때 만났어요. 포르투갈에서.” 3년 동안 한곳에 머물지 않고 돌아다녔던 사라에게 여행지에서 생긴 인연은 한둘이 아니었다. 숙소에서 만나 며칠을 같이 다닌 사람도 있었고, 우연히 일정이 맞아 국경을 함께 넘은 사람도 있었다. 준호 역시 그중 하나였다. 리스본의 작은 게스트하우스에서 처음 만나 열흘 가까이 함께 돌아다녔고, 서로 여행지가 달라진 뒤에도 가끔 연락을 주고받았다. 귀국했다는 소식을 들은 준호가 만나자고 연락해 온 것뿐이었다. “그래서 잤어?” 강수가 다시 물었다. 이번에는 사라가 헛웃음을 터뜨렸다. “그게 그렇게 궁금해요?” “물었잖아.” “안 잤어요.” 대답을 들은 순간 강수의 굳었던 턱이 아주 미세하게 풀렸다. 그 변화를 사라는 놓치지 않았다. 눈을 가늘게 뜨더니 강수의 얼굴을 아래위로 훑었다. “뭐야.” “뭐가.” “방금 안심했죠?” “아니.” “했는데.” “민사라.” “왜요.” 사라의 입꼬리가 슬금슬금 올라갔다. “회장님 지금 질투해요?” 정민이 작게 헛기침했다. 강수의 시선이 즉시 날아갔다. “한정민.” “저 아무것도 못 들었습니다.” 때마침 엘리베이터 문이 열리자 정민은 기다렸다는 듯 먼저 빠져나갔다. 사라도 웃으며 따라 나가려 했다. 강수의 손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09-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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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8화

엘리베이터 안의 공기가 차갑게 가라앉았다. 사라는 강수에게 빼앗긴 휴대전화를 내려다보다 천천히 손을 내밀었다. “줘요.” 강수는 움직이지 않았다. “걔 만나지 마.” “싫은데요.” 짧은 대답이었다. 사라는 웃지도 않았다. 장난으로 넘길 생각이 없는 얼굴이었다. “회장님.” “왜.” “우리 한번 섹스했다고 나 통제하지 마요.” 강수의 눈매가 서늘해졌다. “한 번?” 사라는 순간 말문이 막혔다가 어이없다는 듯 헛웃음을 흘렸다. “지금 횟수가 중요해요?” “네가 먼저 말했잖아.” “그 말이 아니잖아요.” 사라는 손바닥을 다시 내밀었다. “휴대폰 줘요.” 강수는 한동안 그녀를 내려다봤다. 작은 체구로 눈 하나 피하지 않고 자신을 올려다보는 모습이 기가 막혔다. 조직의 간부들도 그의 표정이 이 정도로 굳으면 말을 아꼈다. 그런데 민사라는 겁먹기는커녕 제 물건부터 돌려달라고 손을 내밀고 있었다. 결국 강수가 휴대전화를 건넸다. 사라는 받아 들자마자 화면을 확인했다. “그리고 준호는 여행할 때 만난 친구예요. 그 이상도 아니고.” “알아.” “아는데 왜 그래요?” 강수는 대답하지 않았다. 왜 그런지 자신도 설명할 수 없었다. 사라가 다른 남자와 잤는지 궁금했고, 아니라는 대답에 안도했다. 귀국하면 둘이 술을 마신다는 말은 더 거슬렸다. 어젯밤까지 제 품 안에 있던 여자가 한국으로 돌아가 아무렇지 않게 다른 남자와 마주 앉아 웃는 모습을 떠올리는 것만으로 속이 뒤틀렸다. 그 감정에 이름을 붙이는 순간 더 우스워졌다. 질투. 서희와 결혼한 자신이 할 감정은 아니었다. “회장님은 서희한테 돌아가잖아요.” 사라의 말에 강수의 시선이 멈췄다. “그런데 내가 누구를 만나고, 누구랑 술을 마시는 것까지 회장님 허락을 받아야 해요?” “허락받으란 말 안 했어.” “만나지 말라면서요. 그게 그거지.” 사라는 담담했다. 비꼬지도 않았고 화를 터뜨리지도 않았다. 그래서 더 반박하기 어려웠다. “난 회장님한테 서희랑 자지 말라고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09-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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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9화

강수는 닫힌 문 앞에 서 있었다. 한 번 두드리고 기다렸다. 아무런 기척이 없었다. 다시 한번 손등으로 문을 두드렸다. 이번에는 조금 더 세게. 여전히 조용했다. 강수의 미간이 서서히 구겨졌다. 분명 조금 전 이 방으로 들어왔다. 그런데 대답은커녕 안에서 움직이는 소리조차 들리지 않았다. 일부러 무시하는 건가. 그 생각이 들자 기분이 더 나빠졌다. “민사라.” 낮게 이름까지 불러봤지만 돌아오는 대답은 없었다. 강수는 한동안 문을 노려보다 결국 돌아섰다. 정민이 아직 복도 끝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안 들어가십니까?” 강수의 시선이 날아갔다. “뭘 봐.” “아무것도 안 봤습니다.” “가.” “네.” 정민은 더 묻지 않았다. 다만 엘리베이터에 올라타기 직전까지 굳은 강수의 표정을 한번 확인했다. 그 시각 사라는 강수가 문 앞에 있었다는 사실조차 몰랐다. 객실에 들어오자마자 옷부터 벗어 던지고 욕실로 들어간 탓이었다. 따뜻한 물줄기를 한참 맞고 나서야 뻐근했던 몸이 조금 풀렸다. “아, 살겠다.” 샤워를 끝낸 사라는 가운을 걸치고 젖은 머리를 털며 욕실 밖으로 나왔다. 침대 위에 던져둔 휴대전화가 깜빡였다. 준호에게 메시지가 와 있었다. [아까 왜 갑자기 끊겼냐?] 사라는 화면을 보자 피식 웃었다. [회장님이 끊었어.] 답장을 보내자 곧바로 전화가 걸려왔다. “왜.” - 회장님이 네 전화를 왜 끊어? “몰라. 오늘 좀 이상해.” - 너 사고 쳤냐? 사라의 손이 잠깐 멈췄다. “내가 언제 사고 안 쳤냐.” 대충 웃어넘긴 사라는 침대에 털썩 누웠다. 준호와 몇 마디를 더 주고받다가 귀국하면 보자는 약속만 다시 확인하고 전화를 끊었다. 그뿐이었다. 사라에게는 정말 그뿐인 통화였다. 반면 옆 객실로 돌아온 강수는 소파에 앉은 채 좀처럼 움직이지 않았다. 재킷을 벗어 던지며 주머니에서 들소 열쇠고리가 바닥으로 떨어졌다. 툭.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09-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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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화

사라는 한동안 강수를 올려다봤다. 충전기를 빌리러 왔다가 졸지에 남의 객실 안까지 들어온 것도 황당한데, 이제는 왜 자기 싫다는 이유까지 설명해야 하는 모양이었다. “그냥 싫다니까요.” “어제는 좋다며.” “어제는 어제고 오늘은 오늘이죠.” 강수의 미간이 좁아졌다. 그 표정을 보던 사라가 기가 막힌다는 듯 웃었다. “제가 뭐 섹스에 미쳐 사는 여자로 보이나 봐요?” “누가 그래.” “지금 회장님이 그러잖아요.” 사라는 젖은 머리카락을 한쪽으로 넘겼다. “준호 전화 왔다고 걔랑 잤냐고 물어보질 않나, 만나지 말라고 하질 않나. 이제는 어제 잤으니까 오늘도 당연히 잘 거라고 생각하고.” 강수의 턱이 굳었다. “내가 언제 당연하다고 했어.” “그럼 왜 싫냐고 자꾸 물어요?” 사라가 눈을 가늘게 떴다. “내가 이 남자 저 남자랑 아무 때나 자는 여자로 보여요?” “그런 뜻 아니야.” 대답은 생각보다 빨랐다. 사라의 눈이 잠깐 커졌다. 강수는 그녀를 내려다보며 낮게 덧붙였다. “그렇게 본 적 없어.” 장난기 하나 없는 목소리였다. 사라는 잠시 입을 다물었다가 어깨를 으쓱했다. “그럼 됐고.” 또 저렇게 끝냈다. 강수에게는 중요한 대화 같은데 사라는 언제든 마침표를 찍고 돌아설 준비가 되어 있었다. “어제는요.” 사라가 말을 이었다. “그냥 분위기가 그래서 그런 것뿐이에요.” 강수의 시선이 멈췄다. “분위기?” “네.” “그뿐이라고?” “그럼 뭐가 더 있어야 돼요?” 사라는 정말 모르겠다는 얼굴이었다. 일본까지 함께 출장을 왔고, 낯선 곳에서 예상하지 못한 순간이 겹쳤다. 서로 끌렸고, 둘 다 멈추지 않았다. 사라에게는 그걸로 설명이 충분했다. 후회하지 않는다. 그렇다고 의미를 만들어 붙일 생각도 없다. “좋았고, 하고 싶었고. 그래서 한 거죠.” 사라가 태연하게 말했다. “그게 전부예요.” 그게 전부. 강수의 눈빛이 차갑게 내려앉았다. 차라리 후회한다고 했으면 덜 거슬렸을지도 몰랐다.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09-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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