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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ll Chapters of 불온한 정착: Chapter 51 - Chapter 6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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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1화

“안돼요.” 사라는 인터폰을 통해 전달받은 말을 듣자마자 잘라 말했다. “어제 준호랑 같이 밥 먹으려고 예약했어요.” 정민의 시선이 슬그머니 회장실 문으로 향했다. “제가 그대로 전달해도 되겠습니까?” “왜요? 안 될 말 했어요?” “아뇨. 저는 그냥 오래 살고 싶어서.” 사라는 피식 웃고 다시 모니터로 시선을 돌렸다. “예약까지 했는데 어떡해요. 점심은 제 개인 시간이잖아요.” 정민은 더 이상 설득하지 않았다. 그리고 정확히 삼 분 뒤. 회장실 문이 열렸다. 강수가 직접 나왔다. 비서실을 가로질러 오는 긴 다리를 본 정민은 조용히 서류를 들고 자리에서 빠져나갔다. 사라는 끝까지 모니터만 봤다. “민사라.” “네.” “점심.” “약속 있다고 했는데요.” “들었어.” “그럼 끝났네.” 사라의 손가락이 다시 키보드 위를 움직였다. 강수는 그녀의 책상 앞에 서 있었다. “어제도 봤잖아.” “어제는 술 먹었고 오늘은 밥 먹는 거죠.” “맨날 만나?” “이틀 만났는데 맨날은 아니죠.” 강수의 턱이 굳었다. 그녀는 자신이 왜 이러는지 알아보라더니 정작 알아볼 틈조차 줄 생각이 없는 모양이었다. “어디서 먹는데.” 사라의 손이 멈췄다.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 “그건 왜요?” 강수는 대답하지 않았다. 사라가 눈을 가늘게 떴다. “설마 또 찾아오려고?” “…….” “회장님.” 사라가 웃음을 터뜨렸다. “진짜 그러지 마요. 나 친구 없어져요.” 강수는 웃지 않았다. 오히려 사라의 책상에 한 손을 짚으며 몸을 숙였다. “그 새끼가 너 좋아하면?” 사라가 눈을 깜빡였다. “준호가요?” “그래.” “어제 장난친 거 아직도 신경 써요?” “대답해.” 사라는 의자에 등을 기대며 강수를 올려다봤다. “좋아하면 좋아하는 거죠.” 강수의 눈빛이 바로 가라앉았다. “넌?” “나는 아니고.” 그 짧은 대답 하나에 강수의 굳었던 어깨가 아주 미세하게 풀렸다. 사라는 그 변화를 놓치지 않았다. “회장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09-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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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2화

예약된 테이블은 창가의 2인석이었다. 먼저 도착해 있던 준호는 사라 뒤로 들어오는 강수를 보자 한동안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진짜 왔네.” “내가 뭐랬어.” 사라는 아무렇지 않게 의자를 빼 앉았다. 문제는 남은 자리였다. 준호가 자연스럽게 사라 맞은편 의자를 가리켰다. “여기 앉으시면 되겠네요.” 강수는 움직이지 않았다. 직원이 급히 의자 하나를 더 가져오자 강수는 그것을 사라 옆에 놓고 앉았다. 준호의 입꼬리가 올라갔다. 사라는 메뉴판을 펼치느라 보지 못했다. “준호야, 너 그거 먹을 거지?” “어.” “그럼 이것도 시키자.” 두 사람은 강수를 사이에 두지 않고 익숙하게 메뉴를 골랐다. 강수는 메뉴판조차 펼치지 않았다. “회장님은 뭐 드실래요?” “네가 골라.” “나랑 입맛 다른데.” “상관없어.” 사라가 어깨를 으쓱하고 주문을 끝냈다. 음식이 나오자 준호가 자연스럽게 사라 앞의 고수를 자기 접시로 가져갔다. 강수의 눈이 그 손을 따라갔다. “너 아직도 고수 못 먹냐?” “그걸 음식이라고 왜 먹어.” “여행 다니면서 별건 다 먹으면서.” “고수는 안 돼.” 준호가 웃었다. “포르투갈에서도 네 거 내가 다 먹어줬잖아.” 강수의 젓가락이 멈췄다. 둘만 아는 기억이었다. 사라가 웃으며 준호 접시에 고기를 하나 올려줬다. “그러니까 오늘도 먹어.” 강수의 시선이 이번에는 고기 한 점에 꽂혔다. 잠시 뒤 자신의 접시가 사라 앞으로 밀렸다. “이것도.” 사라가 내려다봤다. “뭐가요?” “고기.” “드세요.” “너 방금 쟤 줬잖아.” 사라가 눈을 깜빡였다. 준호가 고개를 숙였다. 웃음을 참는 게 뻔히 보였다. “회장님 손 있잖아요.” “네가 줘.” “왜요?” “보조 비서잖아.” 사라가 기가 막힌 얼굴로 강수를 쳐다봤다. “보조 비서가 밥도 먹여줘요?” “접시에 놓으라고 했지 누가 먹여달래?” “진짜 손 많이 가네.” 투덜거리면서도 사라는 고기 한 점을 그의 접시에 던지듯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09-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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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3화

사라는 강수 쪽으로 끌려온 의자를 내려다보다 한숨을 내쉬었다. “준호야, 너 그만 장난쳐.” “뭘.” “알면서 뭘이래.” 준호가 웃자 사라는 이번엔 옆에 앉은 강수를 올려다봤다. “회장님도요.” “내가 뭘.” “둘 다 똑같거든요?” 사라는 의자를 잡아 원래 자리로 밀었다. 드르륵. 강수가 좁혀놓은 거리가 다시 벌어졌다. “사람을 앞에 두고 누가 데려가니, 꼬시니. 왜 둘이 마음대로 정해요?” “난 회장님 반응이 재밌어서 그런 건데.” 준호가 능청스럽게 대꾸했다. “그러니까 그만하라고.” 사라는 다시 젓가락을 들었다. “그리고 너 내 스타일 아니야.” “내가 뭐가 어때서?” “난 자상하고 따뜻한 남자가 좋거든.” 준호의 시선이 자연스럽게 강수에게 향했다. 큰 체격에 서늘한 인상, 오른쪽 얼굴을 길게 가로지른 흉터까지. 아무리 좋게 봐도 방금 사라가 말한 남자와는 거리가 멀었다. “그럼 회장님은 더 아니네.” 사라가 강수를 한번 올려다보더니 피식 웃었다. “그러게.” 강수의 표정이 굳었다. “뭐가 웃겨.” “아무것도요.” 사라는 태연하게 음식을 입에 넣었다. 강수만 입맛이 떨어졌다. 자상하고 따뜻한 남자. 평생 자신과 어울린 적 없는 말이었다. 남들이 자신을 어떤 남자로 보는지 신경 써본 적도 없었다. 그런데 사라의 취향이 자신과 정반대라는 사실은 이상할 만큼 거슬렸다. “그런 남자 만나면 너도 정착하냐?” 준호가 물었다. 사라의 젓가락이 접시 위에서 잠깐 멈췄다. “글쎄.” “왜. 이상형 나타나면 잡아야지.” “안 나타나.” “그걸 어떻게 알아?” 사라는 잠시 접시를 내려다봤다. 그러다 아무렇지 않게 웃었다. “이미 있거든.” 강수의 시선이 들렸다. 준호도 눈을 깜빡였다. “뭐가?” “남자.” “뭔 남자?” “늘 내 마음속에 사는 남자 있어.” 밝은 목소리였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조금 전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09-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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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4화

강수의 눈빛이 미세하게 달라졌다. 멀리 있다는 말과 다시는 못 만난다는 말은 전혀 다른 의미였다. “죽었어?” 사라의 손이 가방끈 위에서 멈췄다. 아주 잠깐이었다. 그러다 평소처럼 입꼬리가 올라갔다. “점심시간 끝나가요.” 대답은 없었지만 그것으로 충분했다. 강수의 얼굴에서 조금 전까지 남아 있던 질투가 사라졌다. 준호도 더 이상 장난치지 않았다. “사라야.” “왜.” “회사 가야지.” 사라가 먼저 자리에서 일어났다. “준호야, 계산하고 와. 회장님이 사준대.” “야, 같이 가.” “나 늦었어.” 사라는 손까지 흔들어 보이고 먼저 식당을 빠져나갔다. 준호가 그 뒷모습을 바라보다 강수에게 시선을 돌렸다. “회장님.” 강수가 지갑을 꺼내며 눈만 들었다. “왜.” “그건 더 묻지 마세요.” 손이 멈췄다. “너 알아?” “조금요.” “누군데.” 준호가 씁쓸하게 웃었다. “그걸 제가 말하면 사라한테 죽어요.” “…….” “알고 싶으면 직접 물어보세요.” 준호는 더 말하지 않았다. 강수 역시 억지로 캐묻지 않았다. 회사로 돌아가는 차 안에서 사라는 평소와 똑같았다. 태블릿을 열어 오후 일정을 확인하고, 밀린 메일을 정리했다. “세 시에 설계팀 보고 있고요. 네 시 반에는 재무팀 들어와요. 아, 아까 일본 쪽 수정 계약서 왔어요. 그것도 확인하셔야 돼요.” 강수는 대답하지 않았다. “회장님?” “듣고 있어.” 사라가 힐끗 바라봤다. “왜 그렇게 봐요?” “내가 뭘.” “아까부터 계속 보잖아요.” 강수는 창밖으로 시선을 돌렸다. 조금 전 식당에서 잠깐 사라졌던 웃음이 자꾸 떠올랐다. 처음 봤을 때부터 민사라는 늘 가벼워 보였다. 술을 마실 때도, 낯선 사람을 만날 때도, 위험한 상황에서도 겁먹기보다 먼저 움직였다. 어디에도 오래 머물 생각이 없는 사람처럼 미련도 없어 보였다. 그런데 그런 여자가 한 남자를 여전히 마음속에 두고 있었다. 다시는 만날 수 없는 남자를. “많이 좋아했어?”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09-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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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5화

오후 세 시가 조금 넘어서야 설계팀 보고가 끝났다. 사라는 회의실을 빠져나오며 뻐근한 목을 좌우로 꺾었다. 일본 출장에서 돌아온 다음 날부터 밀린 일정이 한꺼번에 몰리니 잠깐 숨 돌릴 틈도 없었다. “아, 피곤해.” 비서실로 돌아온 사라는 제 자리에 놓인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발견했다. 빨대까지 꽂혀 있었다. “이거 누구 거예요?” 정민이 모니터 너머로 눈만 들었다. “사라 씨 거.” “누가 줬어요?” 정민의 시선이 슬쩍 회장실로 향했다. 사라도 따라봤다. “……설마.” “전 아무것도 모릅니다.” 사라는 커피를 들고 곧장 회장실로 들어갔다. 강수는 재무팀 보고서를 보고 있었다. “회장님. 이거 회장님이 시켰어요?” “어.” “왜요?” “피곤하다며.” 사라가 눈을 깜빡였다. “그걸 들었어요?” “들렸어.” 사라는 빨대를 물고 한 모금 마시면서도 강수를 빤히 바라봤다. 평소의 차강수라면 피곤하면 집에 가서 자라고 했을 인간이었다. “왜 그렇게 봐.” “이상해서요.” “뭐가.” “갑자기 자상한 척하잖아요.” 강수의 손이 멈췄다. 사라의 눈이 가늘어졌다. “설마 점심에 내가 한 말 때문에 그래요?” “아니야.” 대답이 너무 빨랐다. 사라의 입꼬리가 올라갔다. “맞네.” “일이나 해.” “회장님 귀엽다.” 강수의 시선이 번쩍 들렸다. “뭐?” “귀엽다고요. 칭찬인데.” 사라는 웃으며 소파로 가 태블릿을 펼쳤다. 네 시 반부터 시작된 재무팀 보고는 예상보다 길어졌다. 한 시간이 넘어가자 사라는 다리를 꼬았다 풀고, 펜을 돌리다 몰래 하품까지 삼켰다. 강수의 시선이 몇 번이나 그녀에게 향했다. 결국 보고 중간에 손을 들었다. “십 분 쉬지.” 재무이사가 잠시 놀란 얼굴을 했다. 평소 강수는 시작한 회의를 중간에 끊는 일이 거의 없었다. 사람들이 밖으로 나가자 사라는 소파에 몸을 푹 묻었다. “살았다.” 강수가 테이블 위의 물병을 집었다. 그대로 건네려던 손이 잠시 멈췄다. 그는 아무렇지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09-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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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6화

강수의 시선이 낯선 이름 위에 오래 머물렀다. 민사라보다 다섯 살 위. 서류상 관계는 남매였다. 사라는 친자가 아니었다. 일곱 살에 지금의 가족에게 입양됐고, 민서후는 그 집의 친아들이었다. 강수는 다음 장을 넘겼다. 몇 줄 되지 않는 기록을 읽던 눈이 어느 한곳에서 멈췄다. 사망. 날짜를 계산하면 사라가 열여덟이던 해였다. 강수는 의자에 등을 기대었다. 점심때 했던 말들이 그제야 하나씩 맞춰졌다. 늘 마음속에 사는 남자. 아직도 좋아하는 사람. 다시는 만날 수 없을 만큼 멀리 있는 사람. 그리고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정착하고 싶었던 남자. 강수의 눈빛이 서늘하게 가라앉았다. 남매였던 사람을 좋아했다는 사실보다 먼저 든 생각은 다른 것이었다. 열여덟. 너무 어렸다. 그 나이에 대체 무슨 일이 있었기에 지금까지 저렇게 아무렇지 않은 얼굴로 살아가는지 알 수 없었다. 강수는 다음 장으로 손을 가져갔다가 멈췄다. 알고 싶었다. 사라가 말하지 않는 것까지 전부. 마음만 먹으면 알아내는 건 어렵지 않았다. 하지만 이상하게 손이 가지 않았다. 내 마음은 내가 정하는 거지. 점심때 사라가 했던 말이 또 떠올랐다. 강수는 결국 서류를 덮었다. 잠시 후 회장실 문이 열렸다. “다시 시작해도 돼요?” 사라가 고개만 빼꼼 내밀었다. “어.” “다들 들어오라고 할게요.” 아무것도 모르는 얼굴이었다. 강수는 서류봉투를 서랍 안으로 밀어 넣었다. 회의는 저녁이 가까워져서야 끝났다. 사람들이 빠져나간 뒤 사라는 테이블 위에 흩어진 자료를 정리했다. 아침부터 이어진 일정에 지쳤는지 움직임도 평소보다 조금 느렸다. “오늘 진짜 길다.” “퇴근해.” 사라가 고개를 들었다. “아직 회장님 일정 안 끝났는데요?” “내부 결재만 남았어.” “그럼 그것까지 하고.” “가라고.” 사라가 눈을 가늘게 떴다. “또 자상한 척.” 강수의 미간이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09-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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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7화

엘리베이터 안의 공기가 순식간에 달라졌다. 사라는 휴대폰을 든 채 강수를 바라봤다. 조금 전까지 남아 있던 웃음은 흔적도 없었다. “그 이름 어떻게 알아요?” 강수는 바로 대답하지 못했다. 그 짧은 침묵만으로도 사라는 눈치챘다. “나 조사했어요?” “인사기록을 봤어.” “왜요?” “궁금해서.” 사라가 헛웃음을 흘렸다. “궁금하면 물어봐야죠.” 엘리베이터가 지하주차장에 도착했다. 문이 열렸지만 사라는 움직이지 않았다. “어디까지 봤어요?” “많이 안 봤어.” “어디까지.” 평소와 달리 존댓말 끝에 웃음기가 없었다. “네가 입양됐다는 거.” 강수는 잠시 말을 멈췄다. “민서후가 가족이었다는 거랑 사망한 것까지.” 사라의 턱이 아주 조금 굳었다. “그게 많이 안 본 거예요?” “…….” “나한텐 많은데.” 그 말에 강수의 입이 다물렸다. 사라는 먼저 엘리베이터에서 내렸다. 강수가 뒤따르자 그녀가 걸음을 멈추고 돌아섰다. “회장님은 궁금하면 다 알아봐도 돼요?” “그런 뜻은 아니야.” “준호도 캐묻고, 내 일정도 바꾸고, 이제는 과거까지 조사하고.” 사라가 고개를 기울였다. “나 좋아하는지 알아보는 데 이게 다 필요해요?” 강수의 미간이 좁아졌다. “그것 때문에 본 것만은 아니야.” “그럼요?” 대답할 말이 없었다. 알고 싶었다. 그게 전부였다. 그런데 입 밖으로 꺼내고 보니 그것만큼 제멋대로인 이유도 없었다. “알고 싶었어.” 사라가 잠시 그를 바라봤다. “나는 말하고 싶지 않았는데.” 강수의 표정이 굳었다. “그 생각은 안 했어요?” “……미안하다.” 사라의 눈이 조금 커졌다. 차강수의 입에서 사과가 나올 줄은 예상하지 못한 모양이었다. 하지만 그것으로 웃지는 않았다. “하지 마요, 다음부터.” “알았어.” “정민 실장님 시켜서 더 알아보는 것도.” “안 해.” 사라는 그제야 시선을 거뒀다. 강수는 묻고 싶은 게 목구멍까지 올라왔지만 삼켰다. 민서후가 어떻게 죽었는지.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09-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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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8화

“늦게 끝났어.” 강수는 짧게 대답하며 테이블 위의 휴대폰을 집어 들었다. “혼자 간다길래 도착하면 연락하라고 했고.” “아.” 서희는 별다른 의심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사라 원래 혼자 잘 다니는데. 오빠가 그런 것도 챙겨줘?” 강수는 화면을 껐다. “늦었으니까.” “잘했어.” 서희가 웃으며 다시 그의 품으로 파고들었다. “내가 회사에 따라다니면서 챙겨줄 수도 없잖아. 오빠가 좀 챙겨줘.” 강수의 팔이 그녀의 어깨를 감쌌다. 당연한 듯 자신을 믿는 목소리가 묘하게 무거웠다. “피곤하다. 자자.” “응.” 서희의 이마에 입을 맞춘 강수는 함께 침실로 향했다. 익숙한 집이었다. 익숙한 여자였고, 평소와 다를 것 없는 밤이었다. 그런데 침대에 누운 뒤에도 쉽게 잠들지 못했다. 옆에서는 서희가 그의 팔을 베고 잠들어 있었다. 강수는 천장을 바라보다 눈을 감았다. 낮에 웃으며 말하던 사라의 얼굴과 주차장에서 차갑게 굳었던 얼굴이 번갈아 떠올랐다. 알고 싶다는 이유로 선을 넘었다. 그런 자신에게 사라는 화를 냈고, 사과를 받아들인 뒤에는 뒤돌아 혼자 가버렸다. 잡지 말라는 사람을 붙잡지 않는 것. 그게 이렇게 어려운 일인지 처음 알았다. 다음 날 오전. 사라는 외부 미팅을 마치고 점심 무렵 회사로 돌아왔다. 양손에는 작은 빵집 봉투가 들려 있었다. “정민 실장님.” “네.” “이거 드세요.” 정민이 봉투를 받아 들었다. “제 것도 사 오셨습니까?” “지나가는데 유명하대서요.” “역시 사라 씨밖에 없습니다.” “오버하지 마요.” 사라가 웃으며 남은 봉투를 들고 회장실로 들어갔다. 강수는 결재서류에서 눈을 들었다. 사라가 책상 위에 봉투를 툭 내려놓았다. “회장님 것도.” “내 것도 샀어?” “싫으면 정민 실장님 줘요.” 강수가 바로 봉투를 제 쪽으로 당겼다. “누가 싫대.” 사라가 피식 웃었다. “맛있대요.” 강수는 봉투 안을 들여다봤다. 단팥빵 하나와 크림빵 하나. “뭐가 네 거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09-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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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9화

강수는 오후 일정을 평소보다 일찍 끝냈다. 저녁 일곱 시, 약속 장소에 도착하자 서희가 차에 올라타며 환하게 웃었다. “진짜 일찍 왔네.” “네가 일찍 오라며.” “말은 했지만 이렇게 잘 들을 줄 몰랐지.” 서희가 자연스럽게 그의 팔에 매달렸다. 강수는 그녀의 머리를 가볍게 쓰다듬었다. “뭐 먹고 싶어.” “예약했다며?” “싫으면 바꾸게.” “좋아. 오빠랑 먹으면 다 좋아.” 강수의 입가에 옅은 미소가 걸렸다. 서희와 있는 시간은 편했다. 자신이 살아온 세계와 전혀 닮지 않은 여자. 따뜻하고 조용한 서희 곁에서는 굳이 날을 세울 필요가 없었다. 그래서 사랑했고, 결혼했다. 식사를 마친 뒤 둘은 근처를 걸었다. 쇼윈도 앞에서 서희가 걸음을 멈췄다. “저거 예쁘다.” 가느다란 다이아몬드 목걸이였다. 강수가 바로 매장 문을 열었다. “들어가.” “구경만 한 건데.” “마음에 든다며.” 직원이 목걸이를 꺼내오는 동안 강수는 쇼케이스 앞에 서 있었다. 그러다 무심히 움직이던 시선이 멈췄다. 가느다란 체인에 작은 장식 하나만 달린 팔찌. 화려하지도 않았다. 그런데 이상하게 한 사람이 떠올랐다. 민사라. 작고 가느다란 손목에 채우면 잘 어울릴 것 같았다. 강수의 미간이 살짝 좁아졌다. “오빠.” 고개를 돌리자 목걸이를 착용한 서희가 거울 앞에서 웃고 있었다. “어때?” 강수가 다가가 목걸이 위치를 바로잡아주었다. “예뻐.” “살까?” “마음에 들면.” 서희가 환하게 웃었다. 잠시 후 화장실에 다녀오겠다며 매장을 나가자 강수의 시선이 다시 팔찌로 향했다. 몇 초간 바라보던 그가 직원을 불렀다. “저것도 줘.” “선물용으로 준비해드릴까요?” “어.” “목걸이와 같이 포장해드릴까요?” 강수가 매장 밖을 한번 확인했다. “따로.” 작은 상자가 그의 손에 놓였다. 강수는 그것을 정장 안주머니 깊숙이 넣었다. 사라가 달라고 한 것도 아니었다. 팔찌가 있는지도 모른다. 그런데 보자마자 사라가 떠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09-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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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0화

강수의 눈빛이 순식간에 차갑게 가라앉았다. 휴대폰을 쥔 손에 힘이 들어갔다. 수화기 너머로 물소리와 여러 사람의 웃음소리가 희미하게 섞여 들렸다. “너 어디야.” “저요? 가평이요.” “가평?” “네. 펜션 왔어요.” 강수의 턱이 굳었다. 연차를 내고 펜션에 갔다는 것도 처음 알았는데 그곳에 남자까지 있었다. “누구랑 갔어.” 잠시 조용하던 사라가 웃었다. “또 시작이에요?” 그 한마디에 강수는 입을 다물었다. 더 알아보지 않겠다고 약속한 지 얼마나 됐다고 남자 목소리 하나에 바로 같은 짓을 하고 있었다. “……그냥 물어본 거야.” “준호가 여행 다니면서 알게 된 애들 모인다고 해서 왔어요. 저도 예전에 몇 번 본 애들이고.” 준호. 하필 그 이름이었다. “그 새끼도 거기 있어?” “당연하죠. 준호가 불렀는데.” “몇 명.” “회장님.” “몇 명인지 묻는 거야.” 사라가 작게 웃었다. “여자 둘, 남자 셋. 저까지 여섯.” 그때 멀리서 누군가 사라를 불렀다. “어, 고마워 태민아.” 강수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태민은 누구야.” “준호 친구요. 포르투갈에서 한번 같이 놀았던 애.” “친해?” “지금 하나씩 다 조사하고 있잖아요.” 이번에는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강수는 길게 숨을 내쉬었다. 정민에게 전화 한 통이면 펜션 위치부터 같이 간 사람들의 이름까지 알아내는 건 어렵지 않았다. 하지만 안 한다고 했다. 사라에게 직접. “……알았어.” “근데 왜 전화했어요?” 강수의 시선이 책상 서랍으로 향했다. 그 안에는 어젯밤 산 팔찌가 들어 있었다. “오늘 안 나오니까.” 전화기 너머가 잠시 조용해졌다. “나 없어서 심심해요?” “아니.” 대답이 너무 빨랐다. 사라가 킥킥 웃었다. “맞네.” “끊는다.” “전화는 회장님이 해놓고.” “놀아.” “네. 내일 봐요.” 통화가 끝났다. 강수는 휴대폰을 내려놓았다. 준호, 태민, 남자 셋. 쓸데없는 것들만 머릿속에 남았다. 결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09-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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