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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odos los capítulos de 선왕의 남총을 처분하는 법: Capítulo 111 - Capítulo 1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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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

등잔이 꺼졌다.심지가 타들어 가는 냄새가 잠깐 남았다가 그것도 없어졌다. 여울은 소매를 쥔 손을 그대로 두고 어둠 속에서 눈을 뜨고 있었다.잠은 오지 않았다. 와도 안 될 것 같았다.창호가 희어지기 시작할 때 담 밖으로 첫 순찰이 지나갔다. 강진의 숨이 한 번 길어졌다가 고르게 돌아왔다. 그 숨소리를 여울은 처음 듣고 있었다.쪽문 쪽에서 발소리가 멎었다. 목화가 마루를 딛는 소리. 도홍이었다.문은 두드리지 않았다. 마루에 무엇을 내려놓는 소리만 났다.강진이 눈을 떴다.여울은 눈을 감지 못했다. 눈이 마주쳤다. 갈색 눈이 어둑한 방 안에서 여울을 보고, 여울이 쥔 제 소매를 보았다.“안 잤느냐.”“……잤습니다.”“거짓말도 아침부터 하는군.”강진이 소매를 당겼다. 여울의 손이 따라가다가 놓았다. 손바닥이 밤새 쥔 자리의 모양대로 굳어 있었다.강진은 일어나 앉아 흐트러진 저고리 깃을 여몄다. 그러고 문을 열지 않은 채 말했다.“도홍.”“예, 전하. 조회 채비를 가져왔습니다.”“들어와라.”여울이 이불을 끌어 올렸다. 도홍이 곤룡포를 받쳐 들고 들어와 문턱 안쪽에 꿇었다. 여울 쪽을 보지 않으려고 애쓰는 눈이었다.강진은 방 가운데 서서 옷을 받았다. 붉은 비단이 등잔 하나 없는 방에서는 검게 보였다. 도홍이 옥대를 매는 동안 강진의 눈은 이부자리 쪽에 있었다.“무릎은.”“……허운 나리께서 평지는 걸어도 된다 하셨습니다.”“그러면 걸어라. 내일 조회에 선다.”여울의 손이 이불 끝을 쥐었다. 지난번 휘정전의 서늘한 바닥과 줄지어 숨을 들이켜던 소리가 한꺼번에 왔다.“……예.”“낮에는 죄인이다. 조회가 있는 날은 거기 선다. 밤에는 여기 있어라.”도홍의 손이 옥대 고리에서 잠깐 멎었다가 움직였다.강진은 익선관을 받아 제 손으로 썼다. 문을 나서기 전에 돌아보지 않았다. 돌아보지 않는 등이 문밖의 빛을 받아 붉어졌다.—마당에 볕이 들자 단이가 세숫물을 떠 왔다. 대야를 문턱 안쪽에 놓으면서 방 안을 한 번 둘러보았다. 벽에 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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죄인은 선다

“무엇이 정반대입니까.”봉수는 대답 대신 눈을 감았다. 허운이 새 베를 무릎에 감는 동안 입을 열지 않았고, 다 감은 뒤에야 짧게 말했다.“낮과 밤입니다.”그러고는 더 말하지 않았다. 여울도 더 묻지 않았다. 문턱에 선 채로, 베 밑에서 검붉게 비치는 무릎만 보고 있었다.—아침 햇살이 휘정전 뜰의 돌바닥을 반만 데우고 있을 때, 여울은 도홍의 뒤를 따라 그 반을 걸었다.군사 둘이 양옆에 붙었다. 팔은 잡지 않았다. 잡지 말라는 분부가 있었다고 도홍이 담을 지날 때 말해 주었다.흰 옷이었다. 의금부에서 돌아온 뒤로 입는 옷 가운데 제일 낡은 것을 골랐다. 단이가 고르지 말라고 했고, 여울은 골랐다.문턱에 섰다. 전각 안은 지난번처럼 서늘했다.양쪽으로 갈라 선 대신들이 고개를 돌렸다. 지난번처럼 홀이 틀어지고 사모가 기울었다. 다만 숨을 들이켜는 소리는 없었다. 목에 보일 것이 없어서였다.“죄인 하여울, 입시하였사옵니다.”도홍이 아뢰었다. 어좌에서는 아무 말도 내려오지 않았다. 여울은 문턱 안쪽 돌바닥에 눈을 두고 섰다.이헌이 홀을 고쳐 쥐었다.“전하. 지난 조회에는 무릎을 다쳤다 하시어 세우셨습니다. 오늘도 세우시니, 이것이 법도가 되는 것이옵니까?”“된다.”전각 안이 그 한마디만큼 조용해졌다.“처분이 내릴 때까지 죄인은 조회에 선다. 조회가 있는 날은 매번. 도승지는 적어라.”붓 소리가 났다. 한겸은 고개를 들지 않았다.이헌은 숨을 한 번 더 걸고 홀을 내렸다. 윤척이 그 옆에서 입을 열었다가 다물었다. 대비마마께서도, 로 시작하려던 말이 나오지 못한 채 들어갔다.예조에서 창 사신 귀국 뒤의 답례 예물을 아뢰었다. 병조에서 북도 순시 길의 역참을 아뢰었다. 여울은 서 있었다.서 있는 것 말고는 할 일이 없었다. 무릎이 당겼다. 발끝에 힘을 주자 덜했다.대신들은 처음에는 여울을 보았고, 그다음에는 어좌를 보았고, 조회가 반쯤 지났을 때는 저마다의 문서를 보고 있었다.여울은 그것을 보았다. 사람들이 저를 보지 않게 되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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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손으로

저녁 연기가 서별당 지붕 위로 낮게 깔리고 부엌에서 솥 긁는 소리가 끝났을 때, 여울은 흰 옷을 개어 바느질 상자 옆에 놓았다.내일 빨 옷이었다. 소매 안쪽에 땀이 마른 자리가 뻣뻣했다.단이가 저녁상을 내가고 뒷방으로 건너갔다. 봉수가 문을 닫아 주는 소리는 나지 않았다. 허운이 닫아 주었다.여울은 등잔에 불을 붙이지 않았다.어둠 속에 앉아서 담 밖 소리를 들었다. 해시 순찰이 지나갔다. 그 뒤에 오는 발소리는 늘 한 사람 것이었다.쪽문이 열렸다.강진은 검은 도포였다. 문을 닫고 방 안의 어둠을 잠깐 보더니, 제 손으로 등잔에 불을 붙였다. 심지가 타며 여울의 얼굴 반이 밝아졌다.“불도 안 켜고 있었군.”“……기름을 아꼈습니다.”“아낄 것 없다. 도홍에게 들이라 하마.”강진이 이부자리 곁에 앉았다. 도포 자락에서 밤바람 냄새가 났다.“걸었느냐.”“마당까지는.”“휘정전까지도 걸었다.”여울은 대답하지 못했다. 강진의 손이 턱을 잡아 등잔 쪽으로 돌렸다. 목을 보는 눈이었다. 옷깃 위에 아무것도 없는 것을 보고 손을 놓았다.“앉을 수 있겠느냐. 무릎이.”“……예.”그 말에 강진은 더 묻지 않았다. 묻지 않고, 손도 대지 않았다. 여울의 옷고름을 보고 있을 뿐이었다.여울은 그 눈이 무엇을 기다리는지 알았다.손이 올라갔다. 제 손으로 고름 끝을 잡았다. 매듭이 손가락 사이에서 풀리는 동안 강진은 움직이지 않았다. 고르게 쉬려고 애쓰는 숨소리였다.저고리 앞이 벌어졌다.“……네가 푸는군.”낮은 목소리였다. 쉰 데가 있었다.강진의 손이 그제야 왔다. 벌어진 깃 안으로 들어오지 않고 허리를 끌어안았다. 여울의 이마가 그 가슴에 닿았다. 도포 아래 심장 뛰는 것이 빨랐다. 제 것보다 빨랐다.“흰 옷은 왜 그리 낡은 것을 입었느냐.”“……죄인이라서요.”강진이 웃었다. 소리가 없었다. 웃고 나서 여울의 귀 밑에 입을 댔다. 입술이 닿고, 이가 닿았다.“죄인은 이것도 가지고 서 있어라.”귀 밑이 뜨거웠다. 여울의 손이 강진의 도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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빨래

“여기 있다.”그 말을 들으면서 잠들었는데, 깨어 보니 이불 위를 누르던 팔은 없었다. 창호가 희었고 등잔은 꺼져 있었다. 기름이 다한 것이 아니라 누가 끈 것이었다.여울은 귀 밑에 손을 댔다. 손끝에 닿는 자리가 조금 부어 있었다.—볕이 마당 한가운데까지 내려오고 우물 쪽에서 두레박 줄이 삐걱거릴 때, 여울은 대야 앞에 쪼그려 앉으려다 무릎 때문에 그만두었다.앉지 못하면 서서 하면 됐다. 대야를 마루 끝에 올렸다.단이가 물동이를 안고 쪽문으로 들어왔다. 대야를 보고, 그 앞에 선 여울을 보고, 물동이를 내려놓지도 않고 말했다.“제가 한다니까요.”“내가 한다고 했다.”“무릎도 못 굽히시면서요.”“그래서 서서 한다.”단이는 입을 삐죽이면서 물을 부었다. 흰 옷이 물에 잠겼다. 여울은 소매를 걷고 손을 넣었다. 찬물이 손목까지 왔다.“오라버니.”“왜.”“귀 밑에…….”단이의 눈이 여울의 귀 아래에 멎어 있었다. 여울은 머리칼을 넘기려던 손을 물속에 그대로 두었다.“안다.”“……가리실 거예요?”“가리지 말라 하셨다.”단이는 그 말을 듣고 물동이를 들어 올렸다. 빈 동이인데 무거운 것처럼 들었다. 그러고 우물로 가다 말고 돌아섰다.“전에는 옷깃으로 가리셨잖아요.”“전에는 가리고 싶었다.”“지금은요?”여울은 옷을 비볐다. 땀이 마른 자리가 물속에서 풀렸다.“지금은 내일 거기 서야 한다.”단이가 돌아섰다. 돌아서기 전에 얼굴이 빨개진 것을 여울은 보았다. 저보다 먼저 빨개지는 아이였다.—봉수가 마루에 나와 앉은 것은 허운이 다녀간 뒤였다. 벽에 기대 앉아 다리를 뻗은 채였다. 다친 팔은 받침에, 무릎은 새 베에 싸여 있었다.여울이 빨래를 짜는 것을 봉수는 보고 있었다. 보기만 했다. 일어나려는 기색이 두 번 있었고 두 번 다 그만두었다.“여울님.”“예.”“그것은 소인이 하던 일입니다.”“지금은 못 하시잖습니까.”봉수는 대답하지 않았다. 여울은 짠 옷을 털어 담 아래 줄에 걸었다. 흰 옷이 바람에 한 번 부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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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한 종이

선정당 들창 밖으로 해시 순찰의 발소리가 멀어지고 등불 심지가 한 번 튀었을 때, 한겸은 어제 조회의 기록을 강진 앞에 펼쳤다. 예조와 병조의 아룀 사이에 한 줄이 있었다.죄인 하여울 입시. 처분이 내릴 때까지 조회마다 선다. 어명.강진은 그 줄을 읽었다.“이대로 둔다.”“예, 전하.”한겸이 붓을 든 채 물러나지 않았다.“할 말이 있으면 해라.”“……우상이 내일 조회에서 국혼을 다시 아뢸 것입니다. 대비전이 조용하니 그 틈에 제 이름을 세우려는 것입니다.”“대비전은 왜 조용하냐.”“모릅니다. 자경전은 문을 닫은 채입니다. 최 상궁은 곁채에서 나오지 않습니다.”강진은 기록을 접어 한겸에게 돌려주었다.“우상이 아뢰면 듣겠다. 듣고 적어라. 답은 하지 않는다.”한겸이 물러갔다. 뒤편 어둠에서 현이 무릎을 꿇었다.“곽명은 서관 길에서 사흘째 묵고 있습니다. 나졸 둘이 따릅니다.”“누가 찾아왔느냐.”“아직은 없습니다.”“서관에 들어가기 전에 누가 오면 이름을 받아 와라.”현이 사라졌다. 강진은 익선관을 벗어 상 위에 놓고, 검은 도포를 제 손으로 걸쳤다. 도홍이 문밖에서 옷자락을 여며 드리려다 손을 거두었다.“전하. 내일 아침 채비는…….”“서별당으로 가져와라. 앞으로도.”도홍은 예, 하고 허리를 굽혔다. 굽힌 채로 한 번 더 말했다.“내일은 죄인이 조회에 서는 날이옵니다. 전하께서 거기서 옷을 갈아입으시면, 궁 안이 다 알게 됩니다.”“알게 두어라.”강진이 먼저 나섰다.—서별당 쪽문은 잠겨 있지 않았다.마루에 올라서니 방 안이 어두웠다. 창호에 비치는 불빛이 없었다. 강진은 문을 열고 들어가 닫았다.숨소리가 들렸다. 고른 숨이었다. 이번에는 잠든 척이 아니었다.강진은 더듬어 등잔을 찾아 불을 붙였다. 불빛이 이부자리 위로 번졌다. 여울은 벽 쪽으로 돌아누운 채였다. 이불이 어깨까지 올라와 있었다. 제 손으로 올린 이불이었다.그 옆, 상 위에 항아리가 있었다.강진은 항아리를 보았다. 뚜껑의 종이가 그대로였다. 봉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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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관 가는 길

여울의 등이 도포에 닿았다 떨어지는 것을 세다가, 강진은 잠들었다. 등잔은 켜 둔 채였다.같은 밤, 도성에서 서쪽으로 사흘 길이었다.—역참 봉놋방의 문풍지가 밤바람에 떨리고 마당의 말들이 코를 푸는 소리가 간간이 들릴 때, 곽명은 제 봇짐을 풀어 헤치고 있었다.뒤질 것이 없는 짐이었다. 옷 두 벌, 짚신, 딸들이 싸 준 마른 떡. 그래도 손은 뒤졌다. 버릇이었다.나졸 둘은 윗목에서 코를 골았다. 정배 가는 죄인을 지키는 나졸치고는 편한 잠이었다.파직이었다. 서도 변방 정배. 곽명은 그 두 마디를 역참마다 한 번씩 떠올렸다.왕은 끝까지 저를 보지 않았다. 그것은 익숙했다. 익숙하지 않은 것은 좌상이었다. 신은 모르는 일이옵니다. 사랑채에서 이십 년 동안 제 이름을 부르지 않던 그 목소리로.문밖에서 마당의 자갈이 밟혔다.곽명은 짐 위에 손을 둔 채 고개를 들었다. 나졸들은 깨지 않았다. 문풍지 너머로 사람 하나가 섰다.“곽 나리.”낮은 소리였다. 나리라는 말을 곽명은 오랜만에 들었다.문을 조금 열었다. 상인 차림의 사내였다. 등불 없이 왔고, 얼굴을 보이려고 하지도 않았다.“누구냐.”“서도 관찰사 나리의 사람입니다. 도성에서 뒤따라왔습니다.”곽명의 손이 문고리에서 굳었다.서도 관찰사. 이문. 좌상의 큰아들이었다. 곽명이 좌상 집 문객의 아들로 그 집 마당을 쓸 때, 서당에 가던 어린 도령이었다.사내가 소매에서 종이 한 장을 꺼내 문틈으로 밀었다. 봉하지 않은 종이였다. 이름도 없었다.서관에 들거든 관아에 오지 말고 동문 밖 객주로 가라. 거처와 사람이 있다.곽명은 두 번 읽었다. 세 번째는 읽지 않고 종이를 접었다.“관찰사께서 무엇을 원하시느냐.”“분부는 전부터 있었습니다. 대감 댁에서 나오는 사람은 받으라고. 대감의 일은 대감의 일이라 하셨습니다.”사내는 그 말만 하고 돌아섰다. 자갈 밟는 소리가 마당을 건너 멀어졌다. 담 너머에서 개 한 마리가 짖다가 그쳤다.곽명은 문을 닫았다.방 안이 어두웠다. 나졸의 코 고는 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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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번째

창호가 희어지기도 전에 쪽문이 열리고, 옷을 받쳐 든 도홍의 걸음이 마루에서 섰다.여울은 이미 깨어 있었다. 등잔은 밤새 켜져 있었다. 심지가 길어서 기름이 반이나 줄었는데도 불은 아직 밝았다.강진이 일어나 앉았다. 눈을 뜨자마자 여울을 보았다.“일어나 있느냐.”“……예.”“오늘은 거짓말이 아니군.”도홍이 들어왔다. 지난번처럼 문턱 안쪽에 꿇고, 지난번처럼 이부자리 쪽을 보지 않았다. 다만 오늘은 곤룡포를 펼치는 손이 떨리지 않았다.여울은 이불을 끌어 올린 채 보았다. 붉은 옷이 입혀지고 옥대가 매이고 익선관이 씌워지는 것을, 등잔불 아래서 처음부터 끝까지 보았다.보라고 하는 것이었다. 가리지 말라는 것과 같은 말이었다.“씻고 흰 옷을 입어라. 도홍이 다시 온다.”강진이 나갔다. 마루에서 단이가 숨을 죽이는 소리가 났다. 뒷방 문이 조금 열렸다가 닫혔다.—휘정전 문턱의 돌이 지난번보다 덜 찼다.여울은 같은 자리에 섰다. 흰 옷은 어제 빤 것이라 소매가 조금 줄었다. 머리칼은 귀 뒤로 넘겼다. 넘기라고 한 사람은 없었다.고개가 돌아왔다. 홀이 틀어지고 사모가 기울었다. 눈들이 귀 밑에 와서 멎었다가, 지난번보다 빨리 돌아갔다.이헌은 돌아보지 않았다. 홀을 가슴 앞에 받친 채 어좌만 보고 있었다.“죄인 하여울, 입시하였사옵니다.”“적어라.”붓 소리가 났다. 그것이 전부였다.예조가 아뢰고 호조가 아뢰었다. 여울은 발끝에 힘을 주고 섰다. 무릎이 어제보다 덜 당겼다.윤척이 홀을 들었다.“전하. 대비마마께서도 근심하시는 바이오나, 내전이 오래 비어 있사옵니다. 예조에 명하시어 간택의 절차를 살피게 하심이…….”여울은 돌바닥을 보았다.간택. 그 말이 전각 안에서 돌았다. 대신들의 눈이 이번에는 여울에게 오지 않았다. 올 까닭이 없었다. 죄인은 그 말과 상관이 없는 사람이었다.“적어라.”어좌에서 그 한마디가 내려왔다. 윤척이 숨을 들이켰다.“전하, 답을…….”“적으라 했다.”윤척이 홀을 내렸다. 여울은 그 사이 한 번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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닫힌 문

서별당 마루에서 여울이 흰 옷의 소매를 당겨 내리던 그 시각, 자경전 안마당에는 볕이 들어도 소리가 들지 않았고, 곁채 문은 닫힌 채였고, 윤척은 그 마당을 가로질러 오면서 제 발소리를 두 번 죽였다.대비는 창호를 등지고 앉아 있었다. 찻잔이 앞에 있었다. 김이 나지 않는 잔이었다.“대비마마께서도 근심하시는 바라고 아뢰었습니다.”“그래서.”“적으라 하셨습니다. 두 번.”대비는 잔을 들지 않았다. 윤척은 말을 마친 뒤 대비 쪽을 보았다. 대비가 보고 있지 않아도 보는 버릇이었다.“죄인은 또 섰느냐.”“섰습니다. 귀 밑에…… 보이는 것이 있었습니다.”“아침에 그 방에서 곤룡포를 입었다지.”“그리 들었습니다.”대비는 창호 쪽으로 고개를 조금 돌렸다. 빛이 뺨의 한쪽만 밝혔다.“선왕은 여덟 해 동안 그 아이를 안방에서 멀리 두었다. 낮에도 밤에도. 내 아들은 사흘 만에 궁 안에 다 보였다.”윤척은 대답하지 못했다.“그것이 무엇인지 아느냐.”“……소신은.”“급한 것이다. 급한 사람은 기다리면 된다.”윤척은 홀을 고쳐 쥐었다. 쥔 손에 땀이 배었다.“좌상은 의금부를 잃었습니다. 앞으로 사람을 잡으려면 승정원의 글이 있어야 한다 하옵니다.”“안다.”“그러면 조정에서 사람을 세울 수 있는 것은…….”“너다. 그래서 급하게 굴지 말라는 것이다.”문이 열렸다. 최령이 찻상을 들고 들어왔다. 연금 중인 사람이 드는 찻상이었다. 자경전 밖으로 못 나갈 뿐, 안에서는 전과 같이 움직였다.최령이 새 잔을 놓고 식은 잔을 거두었다. 거두는 손이 잔 가장자리에서 한 번 미끄러졌다. 소리는 나지 않았다.대비는 그 손을 보았다.“손이 왜 그러느냐.”“……아무것도 아니옵니다.”“아무것도 아닌 손이 잔을 놓치느냐.”최령이 엎드렸다. 대비는 더 묻지 않았다. 윤척은 그 사이에 눈을 어디 둘지 몰라 제 홀을 보았다.“우상.”“예, 마마.”“예조에 간택 절차를 살피라는 말은 네가 한 것으로 해라. 내 이름을 앞세우지 마라.”“대비마마께서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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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지 않은 밤

볕이 마루 끝에서 기둥 아래로 물러나는 동안, 여울은 줄어든 흰 옷의 소매를 뜯고 있었다.빨아서 줄어든 소매였다. 단이가 옆에서 실을 꿰어 주었다.“그냥 입으셔도 돼요. 반 치도 안 줄었는데.”“서 있을 때 손목이 보인다.”“보이면요?”여울은 대답하지 않고 솔기를 뜯었다. 단이가 실 꿴 바늘을 내밀다가 제 손가락을 찔렀다. 작게 아, 하고는 손가락을 입에 넣었다.허운이 다녀간 것은 그 뒤였다. 뒷방에서 봉수의 무릎을 보고 나와, 마루에 앉은 여울의 무릎도 보았다.“담 밖까지는 아직입니다. 마당은 하루 두 번. 서 있는 것은 반 시진 넘기지 마십시오.”“조회는 반 시진이 넘습니다.”허운은 흠, 하고 약 이름을 혼자 중얼거렸다. 그러고는 대답 대신 봉수 쪽을 돌아보았다.“저 어른은 나흘은 더 누워 계셔야 합니다. 일어나려 하면 여울님께서 말리십시오.”“제 말을 들으십니까.”“여울님 말만 들으십니다.”허운이 나갔다. 여울은 뜯은 소매를 다시 붙였다. 반 치가 길어졌다. 손목이 가려졌다.—저녁 연기가 걷히고 담 위 하늘이 붉다가 검어지는 동안, 여울은 등잔 옆에 앉아 심지만 보고 있었다.기름은 채워져 있었다. 항아리의 봉한 종이는 뜯겨 있었다. 뜯은 사람은 여울이 아니었다.불은 붙이지 않았다.단이가 저녁상을 내가면서 등잔을 보았다.“오라버니, 안 켜세요?”“아직.”“어두운데요.”“어두워도 된다.”단이는 상을 든 채 잠깐 서 있다가 나갔다. 뒷방 문이 닫히는 소리가 났다. 봉수가 닫은 소리였다. 성한 손으로 닫으면 소리가 작았다.—해시 순찰이 담 밖을 지나갔다.여울은 그 발소리가 모퉁이를 돌 때까지 듣고, 그 뒤를 들었다. 뒤에 오는 발소리가 없었다.바람이 창호를 두드렸다. 그것뿐이었다.여울은 무릎을 폈다. 폈다가 다시 모았다. 불을 붙이면 오지 않는 사람을 기다리는 방이 됐다.어둠 속에서는 그냥 앉아 있는 방이었다.벽 너머에서 봉수가 기침을 했다. 한 번, 두 번. 그러고 낮은 목소리가 벽을 넘어왔다.“여울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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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잔

창호가 다 희어지도록 쪽문은 열리지 않았다.도홍의 발소리도 오지 않았다. 올 사람이 여기서 자지 않았으니 올 까닭이 없었다.여울은 일어나 이부자리를 갰다. 이불 하나였다. 둘이 덮던 이불을 혼자 개니 가벼웠다.—낮에는 봉수가 일어섰다.허운이 나흘은 더 누우라 한 사람이 성한 손으로 문설주를 잡고 섰다. 무릎의 베가 당겨 얼굴이 일그러졌다. 여울이 마루를 건너가 그 팔을 받쳤다.“누우십시오.”“마루까지만 나가겠습니다.”“허운 나리가.”“여울님 말만 듣는다고 하셨지요.”봉수가 웃었다. 웃고 나서 다시 앉았다. 여울이 받친 팔을 놓지 않아서였다.단이가 마당에서 빨래를 널다가 그 둘을 보고 저도 웃었다. 세 사람 다 소리는 내지 않았다.—저녁 죽이 식어 가고 마당에 그늘이 다 번졌을 때, 여울은 등잔 앞에 앉았다.심지를 돋우고 부싯돌을 쳐서 불을 붙였다.해시 순찰은 아직이었다. 오는 사람이 있을지 없을지도 아직이었다. 여울은 불을 켜 놓고 그 앞에 앉았다.단이가 상을 내가다가 멈췄다.“……오라버니, 오늘은 켜셨네요.”“어두워서.”“어제도 어두웠는데요.”여울은 대답하지 않았다. 단이는 더 묻지 않고 나갔다. 나가면서 쪽문을 잠그지 않았다. 잠그지 말라는 분부를 단이도 알았다.뒷방 문틈으로 불빛이 새어 들어갔을 것이었다. 봉수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쪽문 밖에 선 강진은 창호에 비친 불빛을 보았다.걸음이 멈췄다. 담 밖으로 해시 순찰이 멀어진 뒤였다.창호에 불이 비친 밤은 전에도 있었다. 바느질을 하던 밤, 죽을 먹던 밤. 할 일이 있는 불이었다. 지금은 할 일이 없는 시각이었다.요 며칠은 늘 어두운 방이었다. 들어가서 제가 켜던 등잔이었다.강진은 한참을 문밖에 서 있었다. 도홍이 뒤에서 기다리다가 물러갔다.문을 열었다.여울은 등잔 앞에 앉아 있었다. 일어서려다 무릎 때문에 손으로 마루를 짚었고, 짚은 채로 고개를 숙였다.“불을 켜 두었군.”“……기름이 남아서요.”강진은 문을 닫고 들어왔다. 도포 자락이 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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