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ous les chapitres de : Chapitre 91 - Chapitre 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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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고 싶지 않습니다

옆으로 옮겨진 등잔불이 얼굴을 가릴 데 없이 비추었고, 마루 끝에서 허운이 자리를 고쳐 앉는 소리가 났다가 잠잠해졌다.여울은 그 물음을 한참 들고 있었다.강진은 재촉하지 않았다.“……가고 싶지 않습니다.”강진의 어깨에서 무엇인가 내려갔다. 여울은 그것을 보았다.그래서 다음 말을 하기가 더 어려웠다.“그래도 보내 주셔야 합니다.”“방금 뭐라고 했느냐.”“가고 싶지 않다고 했습니다. 그것과 가야 하는 것은 다릅니다.”강진이 손을 뻗어 여울의 입을 막았다. 손바닥이 아니라 손가락 두 개였다. 입술 위에 가볍게 얹혀 있었다.“앞의 것만 듣겠다.”여울은 그 손가락 아래에서 숨을 쉬었다. 밀어내지 않았다. 강진이 손을 거두고 몸을 세웠다.“그 아이 이름은 기록에 안 오른다. 서별당 시중이 상궁에게서 받았다고만 적는다. 도승지에게 그리 이르겠다.”“……전하.”“대비전이 그 아이를 찾을 일도 없다. 자경전에서 나오지 못하는 상궁이 누굴 찾겠느냐.”여울은 이불을 쥐었다 놓았다. 조금 전 제 입으로 한 말이 그대로 돌아와 있었다. 오늘 아니면 내년에, 하던 말이.“그러니 절 얘기는 없다. 다시 꺼내면 그때는 절이 아니라 내가 정한 곳으로 간다.”“어디입니까.”강진은 대답하지 않고 웃었다. 소리가 없었고, 이번에는 눈도 조금 웃었다.“자라.”여울은 눕지 않았다. 강진이 이불을 걷어 여울의 다리를 펴 주고, 무릎의 베가 젖지 않았는지 손으로 짚었다. 그 손이 무릎에서 한참 떠나지 않았다.“어제 이 방에 있었을 때 네가 물을 찾았다. 물이 아니라 다른 것을 부르는 줄 알았다.”“……무엇을요.”“내가 아니었다.”강진은 그 말을 하고 손을 거뒀다.여울은 제가 무엇을 불렀는지 기억하지 못했다. 단이를 불렀을 것이다. 봉수 어른을 불렀을 수도 있었다.다만 그 소리를 강진이 곁에 앉아 다 듣고 있었다는 것은 알았다. 손이 떠난 무릎이 아직 따뜻했다.“죄송합니다.”“죄송할 것 없다. 다음에는 나를 불러라.”여울이 누웠다. 강진은 이불을 어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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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힌 것

방문은 닫혀 있었고, 마당 끝에서는 봉수가 성한 손으로 다친 팔을 감싼 채 서 있었고, 그 마루 위에 단이가 무릎을 꿇고 두 손을 모아 잡았다.손가락 끝이 하얬다.한겸은 마루 안쪽 상 앞에 앉아 붓을 들고 있었다. 도홍이 그 옆에 섰다.“이름은.”“단이라 합니다. 세답방에서 왔습니다.”“상궁에게 무엇을 받았느냐.”“종이에 싼 것입니다. 마른 것이 들어 있었습니다. 이름은 못 들었습니다.”한겸의 붓이 움직였다. 단이는 그 붓끝을 보다가 얼른 눈을 내렸다.제 말이 한 글자씩 종이에 남는 것이 무서웠다. 모은 손 안에서 손바닥이 축축해졌다.“받을 때 무슨 말을 들었느냐.”“대비마마께서 내리신 것이니 잘 먹이라고. 어의께 여쭙겠다고 하니 마마의 것에 어의를 부르느냐고.”“그래서 넣었느냐.”“……예. 죽에 넣었습니다.”붓이 멎었다. 한겸은 붓을 든 채로 단이를 보았다.“네 주인은 그때 무엇이라 했느냐.”단이의 어깨가 올라갔다. 물을 것이 있을 때 올라가는 어깨였다. 하지만 지금은 물을 수가 없었다.“저는 부엌에 있어 듣지 못했습니다. 뒤에 벽 너머로, 제가 받겠다고 상궁 마님께 말씀하셨다고 들었습니다.”“그 사람이 받겠다고 했다. 네게 넣으라고는.”“……안 하셨습니다. 제가 넣었습니다.”한겸은 그것을 적었다. 도홍이 상 위로 몸을 조금 기울였다가 도로 섰다.한겸이 붓을 놓았다.“이름은 적지 않는다. 왕명이다. 서별당 시중이라고만 적는다.”단이는 무슨 뜻인지 모르는 얼굴로 절을 했다. 마당 끝에서 봉수가 숨을 내쉬는 소리가 들렸다.—선정당에서 한겸은 적은 것을 강진 앞에 놓았다. 강진은 끝까지 읽고 종이를 상에 두었다.“이름을 빼면 대비전에 물을 근거가 약해집니다.”“근거는 최령의 입이다. 그 아이가 아니고.”“최령은 제가 여겼다고 합니다. 마마의 명이라 하지 않습니다.”“그러니 자경전에 가둬 둔다. 입을 열 때까지.”한겸은 소매 안에서 손을 멈췄다. 강진이 그것을 보았다.“할 말이 있으면 해라.”“전하. 시중 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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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길

담 밖으로 해시 순찰의 발소리가 모퉁이를 돌아오고 있었고, 손가락 셋만큼 들어 올린 들창 틈으로 어두운 마당이 보였다.들창 아래에 앉기까지 한참이 걸렸다.허운은 앉지 말라고 했고, 봉수는 뒷방에서 단이를 재우고 있었다. 여울은 벽을 짚고 무릎으로 기어 들창 턱에 손을 올렸다. 무릎의 베 밑이 욱신거렸다.박자가 맞는 걸음 뒤에 혼자 걷는 걸음이 하나 있었다. 여울은 그 걸음이 담 이쪽에 닿기를 기다렸다.“나리.”발소리가 멎었다. 순찰대는 멈추지 않고 갔다. 담 너머에서 옷 스치는 소리가 나고 목소리가 낮아졌다.“……일어나 앉았소?”“들창까지는 옵니다.”“허. 어의가 알면 큰일 나겠소.”여울은 그 말에 웃지 못했다. 서율도 웃음을 오래 끌지 않았다.“그 밤에 담 밖에 군사들이 내의원으로 뛰었소. 내 사람들이었소. 무슨 일인지는 아침에 들었고.”“예.”“살아서 다행이오.”여울은 들창 턱을 잡았다. 손에 힘이 들어갔다. 담 너머의 서율은 그것을 볼 수 없었다.“나리. 그때 하신 말씀이 있습니다.”담 너머가 조용해졌다.“궁 밖으로 나갈 길이 있다면, 하셨습니다.”“……있소.”서율은 그것을 어렵지 않게 말했다. 그러고 나서 한참 뒤에 어렵게 물었다.“왜 지금이오.”“여기 있으면 다음 것이 옵니다. 이번엔 죽이었고, 다음엔 무엇인지 모릅니다. 그것을 들고 오는 것이 단이가 아니라는 보장도 없습니다.”“전하께서 막으실 거요.”“전하께서 막으시는 동안 조회가 비고 대비전과 다투시고 도승지가 그것을 적습니다. 그 모든 것이 제가 이 방에 있어서입니다.”여울은 그 말을 어젯밤과 오늘, 두 번 하고 있었다. 한 번은 강진에게, 한 번은 지금.강진은 듣지 않았다. 서율은 듣고 있었다.“나리께 죄가 됩니다. 지난번에도 그 말씀을 드렸습니다.”“지난번엔 안 한다고 했소.”“예.”“이번엔.”“……합니다.”담 밖에서 서율이 등을 담에 기대는 소리가 났다.여울은 그가 무슨 얼굴을 하는지 알 수 없었다. 알고 싶지도 않았다. 알면 이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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흠

휘정전 편전의 문이 열리자 바깥 바람이 한 번 들이쳤고, 붉은 비단을 팔에 건 우문표가 웃으며 들어왔다.편전에는 상이 셋 놓였다. 강진의 것, 사신의 것, 그리고 좌상 이헌의 것.민해가 사신 옆에 서고 한겸이 강진 뒤에 섰다. 도홍은 문 안쪽에 물러나 있었다. 우문표는 앉기 전에 붉은 비단을 팔에서 풀어 통역에게 맡겼다. 앉아서는 통역을 뒤로 물렸다.“오늘은 내 입으로 하겠소.”강진은 그 말을 받지 않았다. 이헌이 상 위에 두 손을 놓고 눈을 내렸다.“서별당에 대비전 약이 갔다 들었소.”우문표가 찻잔을 들었다. 강진은 이헌을 보지 않았다.“누가 그 말을 사신관까지 들고 갔는지는 묻지 않겠소.”“하하. 궁이 작소. 담 하나 넘으면 다 들리오.”이헌의 손가락이 상 위에서 조금 벌어졌다. 우문표는 차를 한 모금 마시고 잔을 내려놓았다.“전하. 내가 처음 청할 때는 새 왕이 선왕의 물건 하나를 못 놓는다는 흠이었소. 지금은 새 왕이 그 물건 때문에 어미와 다툰다는 흠이오. 대비전 상궁을 가두고, 조회를 비우고. 이것을 황제께 아뢰어야 하는데, 나는 아뢰기 싫소.”“그러면 아뢰지 마시오.”“그래서 청하오. 그 흠을 내가 치워 드리겠소. 그자를 내가 데려가면, 대비전도 조정도 다툴 것이 없어지고, 나는 창경에 가서 휘의 새 왕이 사사로운 것에 매이지 않는다고 아뢰겠소. 고명은 그 자리에서 드리겠소. 이미 받아 왔소.”우문표가 통역을 돌아보았다. 통역이 함 하나를 상 곁에 놓았다. 노란 비단으로 싼 것이었다.민해의 숨이 그 함 앞에서 멎었다.이헌이 처음으로 입을 열었다.“전하. 사신의 뜻은 조정이 오래 청해 온 것입니다. 선왕의 남총을 궁 밖으로 내는 것은 처분의 하나입니다. 창으로 보내는 것도 내치는 것과 다르지 않습니다.”“다르오.”강진은 이헌을 보지 않고 그 말을 했다. 함을 보고 있었다.“내치면 휘 땅에서 죽소. 창으로 가면 창 땅에서 사오. 사신이 데려가려는 것은 내치려는 것이 아니라 가지려는 것이오. 좌상은 그것을 아는데 내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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때가 오면

도홍이 마루에서 왕명을 전하고 간 뒤 서별당 마당이 다시 조용해졌고, 단이는 문턱에서 절부터 했다.낮에는 방에 들어 시중을 들되 밤에는 뒷방으로 물러난다. 먹을 것은 선정당에서 내려온 것만 상에 올린다. 내일 밤에는 전하께서 오시지 않는다.왕명과 함께 옷 한 벌이 마루에 놓였다. 전하께서 내리신 것이라 했다.단이는 그 말을 다 듣고도 문턱을 못 넘고 있다가, 봉수가 등을 밀자 들어왔다.여울은 벽에 기대 앉아 있었다. 허운이 오늘부터는 앉아도 된다고 했다.“……오라버니.”“들어와.”단이가 무릎걸음으로 와서 여울의 손을 잡았다. 두 손으로 감싸 잡고 한 번 울고, 소매로 얼굴을 닦고 그만 울었다. 봉수가 문 앞에서 헛기침을 했다.“왜 다르냐고 물었지. 벽 너머에서.”단이가 고개를 들었다.“네가 넣은 것과 내가 먹은 것이. 넣을 때 너는 몰랐고, 먹을 때 나는 알았다. 모르고 한 것과 알고 한 것은 다르다. 그래서 네 탓이 아니다.”“……알고 드셨어요?”여울은 그 물음에 답하지 않았다. 단이는 더 묻지 않고 손만 놓지 않았다.봉수가 상을 들여 두 사람 사이에 놓았다. 선정당에서 내려온 죽이었다. 단이가 숟가락을 들어 한 술 떠서 먼저 제 입에 넣었다.“단이야.”“도홍 어른이 그러라고 하셨어요. 제가 먼저 먹고 드리라고.”여울은 그 죽을 받아먹었다. 목이 아직 아팠고 죽은 미지근했다.—봉수와 둘만 남은 것은 단이가 우물에 간 뒤였다. 여울은 산 쪽 벽 아래 이부자리를 손으로 짚었다.“어른. 이 밑에 있는 것 말입니다.”그릇을 집으려던 봉수의 손이 멎었다.“때가 오면 드리라 하셨습니다. 제가 못 드리게 되면 어른이 드려 주십시오.”“여울님이 직접 드리십시오.”“제가 못 드리게 되면요.”봉수는 대답하지 않았다. 소매 끝이 떨렸고, 그 손이 등 뒤로 갔다.여울은 그것을 보았다. 봉수가 거짓말을 할 때 하는 손이었다. 지금은 거짓말을 하기 전에 하고 있었다.“……에구. 무슨 말씀을 하시는지 모르겠습니다.”“그러면 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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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든 얼굴

방문이 열리며 밤바람에 등잔불이 한 번 눕혀졌다 일어섰고, 문을 닫고 들어선 강진은 검은 도포 차림이었다.강진은 등잔이 켜져 있는 것을 보더니 끄지 않고 앉았다.“앉아도 된다더군.”“예. 오늘부터.”“그러면 앉아 있어라.”강진이 앉은 곳은 이부자리 곁이 아니라 여울의 맞은편이었다. 상 하나 없는 사이가 멀었다. 여울은 그 거리를 보았다. 강진은 여울의 얼굴을 보았다.“모레 아침에 고명이 온다.”여울은 고개를 들었다.“사신은 모레 고명을 전하고 떠난다. 창경에 가서 무슨 말을 하든 고명은 이미 내 손에 있다. 그자가 네 얘기를 들고 가도 늦다.”“……그것이 되었습니까.”“됐다.”여울은 두 손을 무릎 위에 모았다. 창에 가겠다고 했던 날이 생각났다. 그 말을 했을 때 강진의 얼굴도.지금은 그런 얼굴이 아니었다. 피곤한데도, 무엇인가를 끝낸 얼굴이었다.“축하드립니다.”“그런 말은 대신들이 한다.”“그래도 드립니다.”강진이 웃었다. 소리가 없었다.여울은 그 웃음을 오래 보았다. 내일도 모레도 볼 수 없을 웃음이었다. 얼굴에는 아무것도 내지 않으려고, 여울은 무릎 위의 손끝에 힘을 주었다.“내일은 못 온다. 도홍이 전했겠지.”“예.”“모레 아침에 고명을 받는다. 그날 낮에 오겠다.”여울은 고개를 끄덕였다.모레 아침이면 저는 이 방에 없을 것이었다. 강진이 고명을 손에 들고 이 문을 열면, 빈 이부자리와 뒷방의 아이와 봉수 어른이 있을 것이었다.그다음은 생각하지 않기로 했다. 생각하면 오늘 밤을 못 넘길 것 같았다. 목 안이 막힌 듯 뻐근했다.“전하.”“말해라.”“오늘은 제가 잠들 때까지 계셔 주십시오.”강진이 여울을 보았다. 무엇인가 물으려는 얼굴이었다가, 묻지 않았다.“그러마.”강진이 이부자리 곁으로 옮겨 앉았다. 여울은 눕지 않고 앉은 채로 벽에 기댔다. 강진도 벽에 등을 댔다. 어깨가 닿을 만큼 가까웠고, 닿지는 않았다.말이 없었다. 등잔이 타는 소리와 벽 너머에서 아이가 뒤척이는 소리, 담 밖으로 순찰이 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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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 각

휘정전에서 연회가 열리는 달 없는 밤이었고, 인시 전 순찰의 발소리가 담을 따라 지나가 모퉁이를 돌았다.여울은 그 발소리가 모퉁이를 돌 때까지 세고 있다가 이부자리를 걷었다.삼베 꾸러미를 풀었다. 등잔은 이미 꺼 두었다. 어둠 속에서 저고리를 벗고 군졸의 짧은 저고리를 입었다. 소매가 손등을 덮었다. 바지는 허리를 두 번 접고 검은 띠로 묶었다. 짚신은 손에 들었다.벗은 옷을 개어 이불 밑에 넣었다. 강진이 준 새 옷이었다.마루가 삐걱이지 않게 산 쪽 벽 아래를 피해 걸었다. 그 밑에 있는 것은 그대로 두었다. 봉수 어른이 알고 있으니 됐다고, 그렇게만 여겼다.문을 손가락으로 밀었다. 마루가 찼다.마당에는 달이 없었다. 부엌이 검고 쪽문이 검고 담이 검었다. 담 서쪽 끝에 낮에도 눈여겨보지 않던 작은 문이 있었다. 여울은 짚신을 신지 않고 맨발로 마당을 건넜다.무릎이 세 걸음마다 꺾였다. 여울은 땅에 손을 짚고 숨을 골랐다.뒷방 쪽은 돌아보지 않았다. 돌아보면 거기서 끝날 것 같았다.협문 앞에 섰다. 안쪽에서 빗장이 걸려 있었다. 손으로 더듬어 빗장을 찾고, 소리가 나지 않게 천천히 뺐다. 문 밖에서 누가 그것을 기다리고 있었던 것처럼 문이 당겨졌다.서율이 서 있었다. 갑옷이 아니라 평복이었고, 검은 왼손에 들려 있었다.“……왔소.”여울은 대답할 숨이 없었다. 서율이 여울의 팔을 잡았다가, 팔로는 안 되겠다는 듯 등을 돌려 앉았다.“업히시오.”“걸을 수 있습니다.”“반 각이오.”여울은 서율의 등에 업혔다. 넓은 등이었다. 강진의 등과는 달랐다.그 생각을 하는 자신이 싫었다. 여울은 눈을 질끈 감았다.서율은 담을 따라 걸었다. 궁성 서쪽까지는 담 하나가 더 있었다. 그 담의 협문 앞에 군사 하나가 등을 돌리고 서 있었다. 서율이 지나가도 돌아보지 않았다. 문이 열렸고, 닫혔다.궁 밖이었다.여섯 살에 들어온 뒤 제 뜻으로 궁 밖에 나온 것은 처음이었다. 산릉에 갈 때는 가마 안이었고, 의금부는 끌려간 길이었다. 지금은 땅이 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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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이

마루 위로 밤바람이 지나갔고, 짚신 끈을 매던 단이가 고개를 들었을 때 봉수는 뒷방 문턱에 서 있었다.봉수는 성한 손으로 문설주를 잡고 있었다. 다친 팔이 옆구리에 붙어 있었다. 얼굴이 어두워서 보이지 않았다.“어른. 오라버니가…….”“안다.”단이의 손이 멎었다.“……아셨어요?”봉수는 대답하지 않았다. 마루로 내려서지도 않았다. 늘 문턱에서 멈추는 버릇이 있었고, 지금도 문턱에 있었다.“어른. 가서 알려야 해요. 밖은 밤이고, 오라버니는 무릎도 못 펴고, 죽 반 그릇 먹고 나흘밖에…….”“알리면 어찌 되는지 아느냐.”단이는 몰랐다. 잡혀 오는 것까지는 알았다. 그다음은 몰랐다.“안 알리면요.”봉수는 그것도 대답하지 못했다.단이는 봉수가 대답하지 못하는 것을 처음 보았다. 늘 아이고, 에구, 하고 무엇이든 받아 주던 사람이 문턱에 서서 아무 소리도 내지 못했다.명치 밑이 차갑게 내려앉았다.“어른은 여기 계셔요.”단이가 일어섰다. 마루에 놓아둔 여울의 옷을 다시 안았다. 왜 안는지는 몰랐다. 손이 비면 못 갈 것 같았다.“왕명이다. 밤에 나가면…….”“알아요.”단이는 쪽문으로 가서 빗장을 뺐다. 담 밖에 군사가 둘 서 있다가, 문이 열리자 돌아섰다.“서별당 시중입니다. 전하께 갑니다.”군사들이 서로 보았다. 단이는 기다리지 않고 걸었다. 군사 하나가 뒤따라오며 어디로 가느냐고 물었고, 단이는 휘정전이라고 답했다.그 말을 하고 나서야 제가 휘정전이 어느 쪽인지 모른다는 것을 깨달았다. 군사가 앞장섰다.—휘정전 뒤뜰에 불이 밝았다. 안에서 풍악이 흘러나왔다.단이는 뒤뜰 계단 아래 세워졌고 군사가 안으로 들어갔다. 한참 뒤 도홍이 나왔다. 도홍은 단이를 보고, 단이가 안은 옷을 보고, 얼굴에서 핏기가 빠졌다.“어디 갔느냐.”“모릅니다. 협문이 열려 있었습니다. 이부자리에 삼베 한 장이 펼쳐져 있었습니다.”“삼베.”“예. 새 옷은 이불 밑에 개어 있었습니다. 그것만 봤습니다.”도홍은 단이를 두고 안으로 들어갔다. 풍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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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망칠 곳

달 없는 하늘 아래 낮은 지붕들이 이어졌고, 어디선가 개가 짖었고, 담과 담 사이의 골목이 점점 좁아졌다.서율은 큰길을 피해 그 사이로 걸었다. 여울은 등에서 담들이 지나가는 것을 보았다. 빨래를 걷지 않은 줄, 낮은 처마. 궁 안에서는 본 적 없는 것들이었다.서율의 숨이 조금 거칠어졌지만 걸음은 흐트러지지 않았다.“조금만 더 가면 되오.”여울은 대답하려다 그만두었다. 앞쪽 지붕에서 기와 하나가 미끄러지는 소리가 났다.서율이 멈췄다.골목 끝에 사람이 서 있었다. 달이 없어 얼굴은 보이지 않았다. 키가 컸고, 곤룡포도 검은 도포도 아닌 옷이었다.서율의 왼손이 검으로 갔다가 멎었다. 검을 뽑을 상대가 아니라는 것을 손이 먼저 알았다.“……전하.”강진은 대답하지 않았다. 걸어왔다. 골목이 좁아서 세 걸음이었다.“내려놓아라.”서율은 내려놓지 않았다. 여울은 등에서 그 어깨가 굳는 것을 느꼈다.“전하. 이 사람은 궁에 있으면 죽습니다. 대비전이 한 번 보냈으면 두 번 보냅니다.”“그래서 네 등에 업었느냐.”“제가 아니면 누가 업습니까.”강진이 웃었다. 소리가 없었다. 여울은 그 웃음을 서율의 어깨 너머로 보았다. 서율은 보지 못했다.강진의 손이 올라와 서율의 어깨를 잡았다. 힘을 주지 않았다. 잡고만 있었다.“도총관. 네 목을 치면 이 밤이 조정에 알려진다. 그러면 저 사람은 도망친 죄인이 되고 너는 그것을 도운 역적이 된다. 그래서 못 친다. 그것을 알고 업었느냐.”서율은 대답하지 않았다.“내려놓아라. 두 번 말했다.”“나리.”여울이 말했다. 서율의 어깨가 흔들렸다.“내려 주십시오.”서율이 무릎을 굽혔다. 여울의 발이 땅에 닿았다. 흙이었다. 맨발이라 차가웠다.무릎이 꺾여서 담에 손을 짚었다. 강진은 받아 주지 않았다. 담에 기댄 여울을 보고만 있었다.“도망칠 곳이 어디 있다고.”여울은 고개를 들지 못했다.“……없습니다.”“알면서 나왔느냐.”“예.”“어디로 가려고.”“……모릅니다. 나리 아는 분 집에서 날이 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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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가진다

숨죽인 휘정전에서 노란 비단이 풀렸다.우문표가 함에서 고명을 꺼내 두 손으로 받쳤다. 대신들이 일제히 무릎을 꿇었다. 강진은 어좌에서 내려와 아홉 계단 아래에서 그것을 받았다.황제의 인장이 붉었다. 통역이 읽는 소리가 전각 안을 돌았다. 휘의 왕 강진을 책봉한다, 선왕의 뒤를 잇는다, 변방을 지키라.강진은 끝까지 듣고 고개를 숙였다. 그 이상 숙이지 않았다.우문표가 물러나며 웃었다. 이번 웃음은 짧았다.“가는 길에 정하겠소.”“정하시오.”사신이 나가고 문이 닫혔다. 대신들이 일어섰다. 강진은 어좌로 돌아가 앉지 않고 계단 위에 선 채로 말했다.“도총관 서율.”서율이 앞으로 나왔다. 밤을 새운 얼굴이었으나 시선을 피하지 않았다. 병조판서 서인이 아들의 등을 보다가 눈을 내렸다.“북도로 가라. 절도사 백웅에게 가서 변방 군비를 살피고 돌아와라. 기한은 정하지 않는다.”“……예, 전하.”서율이 절을 했다. 옷자락이 바닥을 쓸었다. 이헌이 그 등을 보고 강진을 보았다.“전하. 고명이 내렸으니 이제 미룰 것이 없습니다. 서별당의 죄인을 어찌하실지 오늘 정하셔야 합니다.”한겸이 붓을 든 채로 굳었다.강진은 배원을 불렀다. 상선이 함을 들고 나와 장부를 꺼냈다. 여울의 이름이 적힌 장이 펼쳐졌다. 처분 칸이 비어 있었다.“죽이지 않는다.”이헌의 입이 열렸다가 닫혔다.“내치지 않는다. 절에도 보내지 않는다.”“전하, 그러면 처분 칸에 무엇을…….”“비워 둔다.”전각 안이 조용해졌다. 한겸의 붓끝에서 먹이 한 방울 떨어졌다.“언제까지 비워 두십니까.”“내가 정할 때까지.”“그것은 처분이 아닙니다.”“처분이다. 의금부 죄인으로 서별당에 둔다. 심문은 내가 한다. 이 셋 중에 하나를 고르라고 조정이 내게 정해 준 적은 없다. 좌상.”이헌은 대답하지 않았다. 배원이 장부를 덮었다. 한겸은 떨어진 먹을 닦지 못했다.“내일 조회에 그 사람을 세운다. 죄인으로. 대신들이 얼굴을 보고 싶어 하니.”강진이 계단을 내려왔다. 대신들이 갈라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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