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odos los capítulos de 선왕의 남총을 처분하는 법: Capítulo 81 - Capítulo 9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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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1화. 풀어 봐라

쪽문이 열리는 소리에 여울은 바느질 상자를 닫다 말고 고개를 들었다. 눈이 먼저 허리께로 갔다.검은 도포의 허리끈에 먹빛 비단이 매달려 있었다. 낮에 곤룡포 안쪽에 찼던 것을 옷을 갈아입으면서 그대로 옮겨 단 것이었다. 매듭은 낮에 여울이 맨 대로 한쪽으로 쏠려 있었다.강진이 이부자리 앞에 앉았다. 도포 자락에서 향이 났다. 선정당의 향이라 여울이 아는 냄새였는데, 강진의 몸에서 나니 다른 냄새였다.여울의 손이 쏠린 매듭으로 갔다. 손끝이 비단에 닿기 전에 강진이 손목을 잡았다."풀어 봐라.""고쳐 매려던 것입니다.""풀어라."손목이 놓였다. 여울은 매듭을 봤다. 낮에 도홍의 손도 못 대게 했던 것이었다. 손가락이 끈을 당기자 매듭이 풀리고 향낭이 손바닥에 떨어졌다. 그 아래 허리끈이 남았다."그것도."여울이 올려다봤다. 갈색 눈이 기다리고 있었다. 검은 띠가 풀리고 도포 앞이 벌어졌다. 안의 저고리 고름까지 여울의 손이 갔다. 손이 떨려 고름이 잘 풀리지 않았다. 강진은 도와주지 않았다."……전하.""계속해라."고름이 풀렸다. 여울의 손이 저고리를 어깨에서 밀어 내렸다. 등잔불 아래 넓은 가슴이 드러났다. 여울의 손이 거기서 멎었다.강진이 여울의 손바닥에서 향낭을 집어 갔다. 끈을 여울의 목에 걸었다. 먹빛 비단이 흰 옷깃 위, 쇄골 사이에 놓였다."걸고 있어라."여울의 옷이 벗겨졌다. 향낭만 목에 남았다. 강진이 여울을 눕히고, 무릎이 당기지 않을 만큼만 다리를 벌렸다. 침을 바른 손가락이 들어왔다가 나갔다. 강진이 밀어 넣었다."하, 아……!"강진의 얼굴이 여울의 쇄골로 내려왔다. 향낭에 코를 대고 들이켰다. 그 옆의 살에 코를 대고 다시 들이켰다."네 냄새가 낫다."여울의 안이 조여들었다. 강진이 그것을 알고 소리 없이 웃었다. 웃고 나서 허리가 깊어졌다. 밀어 올릴 때마다 향낭이 쇄골에서 미끄러졌다가 돌아왔다."흐읏, 응, 하아……."여울의 손이 강진의 등으로 갔다. 소매를 그러쥐지도 손톱을 세우지도 않고, 손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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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2화. 약속한 것

단이는 비어 있는 제 두 손을 내려다보았다.“지금 가져가면 됩니까.”“아직 안 왔다. 준비되면 부르마.”최령은 아이가 물동이를 들기 편하게 돌려놓았다. 단이는 감사하다는 말을 하고 돌아섰다. 여울이 잘 먹지 못한다는 걱정을 높은 상궁도 해 준다는 것이 반가웠다.—최령이 서별당을 찾았을 때 단이는 저녁상을 준비하고 있었다. 낮에 다녀간 허운의 당부대로 죽 그릇을 따뜻하게 해 두고, 식기 전에 들여갈 채비를 했다. 봉수는 치료를 받으러 내의원에 가 있었다.최령이 쪽문을 열자 단이가 부엌 문턱에서 앞치마를 내렸다. 어제 길에서 들은 약속이 생각나 먼저 손을 내밀었다가 얼른 거두었다.“여기 있다.”약재를 싼 작은 꾸러미가 손에 놓였다. 무슨 약인지 적은 글은 없었다. 단이가 종이의 빈 면을 살피자 최령이 입을 열었다.“기운을 돕는 것이라 한다. 내의원에서 내린 약은 아니다. 마마께서 따로 챙기셨다.”단이가 꾸러미를 가슴 가까이 받쳤다.“어의께 먼저 여쭤야 하지 않겠습니까.”최령의 손이 물러났다. 아이가 고개를 들자 부드럽던 얼굴이 달라져 있었다.“마마께서 주신 것을 네가 돌려보내겠느냐.”“그런 말씀은 아닙니다.”“잘 먹였다고만 고하면 된다. 허락을 구하러 다시 들고 오지 말고.”단이는 종이 끝을 움켜쥐었다. 손에 바를 기름을 받던 때처럼 고맙다는 말이 쉽게 나오지 않았다. 최령은 부엌 안에 놓인 그릇을 살피고 마루로 몸을 돌렸다.여울은 문을 열어 둔 채 앉아 있었다. 최령이 마당을 건너오자 다리를 모으려다 문틀을 짚었다.최령이 다가오다 손을 들었다.“일어나지 마십시오.”여울은 무릎 위에 손을 포개고 마주했다.“단이에게 무엇을 주셨습니까.”“기운을 돕는 약재입니다.”“어의께서 다녀가셨습니다. 따로 이른 것이 없으셨습니다.”“대비마마께서 내리셨습니다.”부엌에서 물이 끓는 소리가 났다. 단이가 허둥지둥 안으로 들어가는 것을 여울이 곁눈으로 좇았다. 최령은 그 얼굴을 놓치지 않았다.“전하께서 허락한 것만 들이라 하셨습니다.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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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3화. 식기 전에

“제 것은 부엌에 있어요.”단이가 그릇을 당겨 주려 하자 여울은 손으로 막았다. 죽 위로 오르던 김이 조금 잦아들었다.“여기 든 것은 너나 어른이 먹으면 안 된다.”“그럼요. 마마께서 오라버니께 내리신 건데요.”단이는 거기까지 말하고 입을 다물었다. 여울은 아이가 잘못 알아들은 것을 바로잡지 못했다. 최령이 문턱 앞에서 대답을 피하던 얼굴이 떠올랐다. 기운을 돕는 약이라고 믿을 수 없었다. 단이를 앞세워 보낸 까닭까지 모른 체하기는 더 어려웠다.단이가 꾸러미를 도로 안고 자경전으로 가는 모습이 떠올랐다. 최령이 굳은 얼굴로 다시 아이를 몰아세울까 겁이 났다. 받겠다고 한 말이 벌써 목을 조였다.“상궁이 주셨다니 네가 거절하기 어려웠겠지.”단이의 눈이 커졌다. 여울은 더 설명하지 않고 숟가락을 들었다. 삼키기 전에 망설였으나, 입에 댄 것을 끝내 넘겼다.따뜻한 그릇을 받친 손이 떨렸다. 아이에게 티를 내지 않으려 상에 내려놓았다. 단이는 물을 더 가져오겠다며 일어섰다.“너도 저녁을 먹어라.”문턱을 넘던 단이가 돌아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여울은 숟가락을 내려놓았다. 다음 입은 뜨지 못했다. 열어 둔 문으로 바람이 들어와 뺨에 닿았다.봉수에게 말을 해야 했다. 돌아오면 그릇을 보이고, 단이가 모르고 받았다고 먼저 말해야 했다. 그런데 부엌 쪽으로 소리를 내는 것부터 목에 걸렸다. 여울은 마루를 짚고 몸을 일으키려다 다시 앉았다.명치 아래가 아팠다.여울은 그릇에서 손을 떼고 문틀을 붙잡았다. 죽이 잘못 넘어간 것이라 넘기려 했으나, 배 안쪽을 움켜쥐는 통증이 가라앉지 않았다. 숨을 고르는 사이 이마에 땀이 맺혔다.“단이야.”부엌에서 예, 하는 대답이 왔다. 여울은 목에 걸리는 숨을 삼키고 다시 불렀다. 이번에는 소리가 나오지 않아 문틀을 손바닥으로 두드렸다.단이가 물그릇을 든 채 달려왔다. 여울의 옷깃이 젖어 있는 것을 보고 문턱에 그릇부터 놓았다.“오라버니, 왜 그래요?”여울은 내민 팔을 붙잡았다. 몸을 옆으로 돌리는 동안 단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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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4화. 비켜라

“봉수에게 기대 있습니다. 피를 토했습니다.”강진의 귀에는 피라는 말만 남았다. 강진이 상을 돌아 나왔다.문을 열자 도홍이 비켜섰다. 뒤뜰 어둠 속에서 현의 고르지 않은 숨소리가 났다. 서별당에서 달려온 숨이었다. 강진은 뒤따르려는 한겸에게 돌아보지도 않고 말했다.“허운을 보내라.”도홍이 문밖에서 신을 돌려 놓았다. 강진은 그것을 신고 뒤뜰로 내려섰다. 도홍이 문을 닫았고, 어둠 속에서 현이 뒤를 따랐다.“최 상궁이 다녀갔습니다. 약재를 주었다 합니다. 단이가 어의를 찾으러 나와 그렇게 말했습니다.”강진의 걸음이 멈추지 않았다. 현이 붙인 말만 담을 넘기 직전 낮게 떨어졌다.“꾸러미 안까지 살피지 못했습니다.”강진은 대답하지 않고 몸을 올렸다. 도홍은 비어 버린 뒤뜰에서 방향을 바꿔 회랑으로 달렸다.—어두워진 서별당 방에는 등잔 하나가 켜져 있었고 부엌 쪽에서는 끓다 만 물 냄새가 마루까지 번져 있었는데, 쪽문이 열리자 봉수가 고개를 들었다.여울은 이부자리에 옆으로 누웠고, 입가를 닦은 천이 곁에 놓여 있었다. 단이가 돌아와 문 앞에서 손을 떨었다. 담 밖 군사가 내의원으로 달려갔다고 봉수가 급히 아뢰었다.강진은 신을 벗어 마루 아래로 밀어 놓고 문턱에 손을 짚었다. 단이가 안쪽을 막고 서 있자 짧게 말했다.“비켜라.”방에 들어선 강진이 여울 곁에 무릎을 댔다. 허리춤의 향낭이 이불 위로 떨어져 늘어졌다.여울의 눈이 반쯤 열렸다가 닫혔다.“눈을 떠라.”고개를 돌리는 데도 힘이 들었다. 여울은 입가를 닦으려 손을 들었다. 강진이 깨끗한 천을 받아 대신 닦았다. 다시 기침이 나자 어깨를 받쳐 옆을 향하게 했다.“전…….”“말하지 마라.”강진은 천을 내려놓고 여울의 얼굴 가까이 손을 폈다. 뺨에 대려던 손이 잠시 멎었다가 젖은 머리칼을 걷었다.차가운 이마가 손바닥 안에 닿았다.바깥에서 발소리가 들리자 강진이 돌아보았다. 물을 가져온 내관이었다. 허운은 아직 보이지 않았다.조바심에 문밖을 살피던 강진이 여울에게로 다시 몸을 낮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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붙든 손

허운은 약함을 내려놓고 여울의 손목을 받았다. 강진이 자리를 벌려 주지 않자 허운이 이불 옆에 손을 댔다.“전하께서 조금 물러나 주셔야 합니다.”강진은 한쪽 무릎만 뒤로 옮겼다. 여울에게 닿은 손은 그대로였다.허운이 얼굴과 호흡을 살핀 뒤 도홍에게 남은 죽과 약재 꾸러미를 가져오라 했다.“무엇이냐.”“해로운 것을 먹은 것으로 보입니다. 무엇이 들었는지는 더 살펴야 합니다.”“살릴 수 있느냐.”허운이 고개를 들었다. 강진의 얼굴은 가까웠고 목소리는 낮았다. 허운은 답을 서두르지 않고 여울의 손목을 내려놓았다.“지금 치료하겠습니다. 모두 밖에서 기다리게 해 주십시오.”강진이 문 쪽으로 손짓했다. 봉수가 다가오려다 도홍에게 붙들려 물러났다. 필요한 물건을 들고 오갈 내관만 남았다.허운이 시키는 대로 강진이 여울의 어깨를 받쳤다. 여울은 몸을 조금 옮기는 동안에도 눈을 뜨지 못했다.힘없이 늘어지는 고개를 손안에 받아 눕힌 뒤, 강진은 그 자리에 앉아 있었다.허운의 손이 바삐 움직였다. 깨끗한 천이 들어오고, 내관이 더운 물을 바꿨다. 강진은 물러나 달라는 말이 있을 때만 자리를 비켰다.손을 놓으면 여울의 어깨가 내려앉았다. 다시 받칠 때마다 강진은 손바닥을 더 깊이 넣었다.얼마나 먹었는지 묻는 소리에 단이가 문밖에서 답했다. 제가 방을 나가 보지 못했다고 했다. 목소리가 가늘어지자 허운은 더 묻지 않고 남은 그릇만 다시 들여다보았다.밤이 깊어져서야 여울의 호흡이 조금 고르게 돌아왔다. 허운은 다시 맥을 짚은 뒤 허리를 폈다.“급한 고비는 넘겼습니다. 아직 깨우지 마십시오. 곁에서 살피겠습니다.”강진은 여울의 손을 이불 위에 놓고 제 손을 폈다. 오래 힘을 준 탓에 손가락이 뻣뻣했다.천천히 굽혔다 펴고 나서, 여울의 손 아래에 다시 받쳤다.—깊은 밤의 찬 기운이 마루 끝까지 올라와 있었고, 닫힌 문 너머에서는 물그릇 바꾸는 소리가 작게 새어 나왔다.문밖에 엎드려 있던 단이는 강진이 나오자 몸을 더 낮췄다. 도홍이 꾸러미와 그릇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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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댄 것

창호지가 희붐하게 밝아 오고 머리맡에서 허운이 물그릇을 내려놓는 소리가 작게 울릴 때, 여울은 내려온 팔을 붙들었다.아직 힘이 없어 손가락이 옷 위에 얹히기만 했다. 강진은 손이 미끄러지지 않게 팔을 이부자리에 붙여 놓았다.“물…….”허운이 곁으로 와 입을 적셔 주었다. 여울은 눈을 감았다가 다시 떴다. 흰 창호지 앞에 앉은 강진의 어깨가 검게 보였다.간밤에 무슨 말을 들었는지, 제가 누구를 불렀는지 잘 기억나지 않았다.“단이는 어디에 있습니까.”강진의 입가가 굳었다. 허운이 그릇을 들고 물러나자 여울은 팔 위에 얹은 손을 조금 움직였다.“제가 받겠다고 했습니다. 상궁 마님께.”“뒷방에 있다. 다시 부를 때까지 거기 두라 했다.”여울은 더 말하려다 숨이 차 입을 다물었다. 강진이 어깨 밑으로 밀려난 베개를 바로 놓아 주었다.“최령이 너한테 뭐라 했는지는 나중에 묻겠다. 지금은 말하지 말고 쉬어라.”검은 소매가 이불에 닿았다. 여울은 그 소매 끝을 놓고 강진의 손등을 살폈다.피가 말라붙어 있었다. 제 입가를 닦다가 묻힌 것 같았다. 그것을 보자 목 안이 다시 쓰렸다.“피가 묻었습니다.”강진은 그 손으로 여울의 손등을 덮었다. 여울이 무얼 말하려 했는지 알면서도 씻으러 가지 않았다.문밖에서 도홍이 기다리다 조용히 강진을 불렀다. 강진은 허운에게 자리를 맡기고 일어났다.허리춤에서 향낭이 떨어져 흔들렸다. 소나무가 놓인 앞면에 피가 조금 묻어 있었다.여울은 그것을 따라 눈을 움직였다. 강진이 향낭을 옷자락 안으로 넣고 문을 나갔다.—아침 볕이 자경전 회랑 기둥 사이로 비스듬히 들고 안쪽에서 그릇 부딪는 소리가 달그락거릴 때, 아침상을 물리던 궁녀가 회랑 아래로 급히 비켰다.강진은 옷을 갈아입지 않은 채 걸어왔다. 뒤따르던 도홍에게 최령을 부르라 명하고, 안에서 답하기 전에 문을 열었다.대비는 앉은 자리에서 아들의 옷을 훑었다. 검은 소매에 마른 얼룩이 남아 있었다.“이 아침에 무슨 일이냐.”강진은 절을 마치고 고개를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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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 그릇

대비의 손이 찻잔으로 갔다. 잔을 들었다가 다시 놓는데 소리가 나지 않았다.최령의 무릎이 그 자리에서 조금 더 낮아졌다. 강진은 어머니의 손에서 눈을 떼지 않았다.“해쳤다.”대비가 그 말을 입안에서 굴렸다.“먹으라고 보낸 것을 먹고 탈이 났으면 그 몸이 약한 것이다. 네 아비도 그 방에 여덟 해 동안 죽을 들여보냈다. 나는 한 번 보냈다.”“그 한 번에 피를 토했습니다.”“그래서 네가 밤새 그 방에 있었느냐. 그 옷으로.”강진은 제 소매를 내려다보지 않았다. 대비의 눈은 검게 마른 얼룩을 지나 아들의 얼굴로 올라와 오래 머물렀다.“서별당에 드는 것은 이제 제 손을 거칩니다. 어마마마께서 내리시는 것도.”“내가 보내는 것을 네가 막겠다고.”“예.”대비가 찻잔을 들었다. 마시지 않고 들고만 있었다.강진은 절을 하지 않고 돌아섰다. 문턱을 넘을 때 뒤에서 치맛단 소리가 두 박자로 따라왔다. 최령이 일어선 것이었다.“최령은 선정당으로.”도홍이 답하기 전에 대비의 목소리가 방 안에서 나왔다.“내 사람이다.”강진은 걸음을 멈추지 않았다.—선정당 마당에는 아침 볕이 고르게 깔렸고, 처마 밑에서는 새 한 마리가 짧게 울었다.마루 아래 최령이 무릎을 꿇었다. 도홍이 꾸러미를 상에 놓고 물러섰다. 한겸은 문 안쪽에 서서 강진의 소매를 한 번 보고 눈을 내렸다.“어디서 났느냐.”“자경전 약방에서 소인이 골랐습니다.”“무엇이냐.”“기력을 보하는 것입니다. 오래 앓는 이에게 씁니다.”“오래 앓는 이에게 쓰는 것을 왜 어의가 보면 안 되느냐.”최령은 고개를 들지 않았다. 강진은 기다렸다. 마당의 새가 한 번 더 울고 갔다.“서별당에 어의가 자주 들면 말이 납니다. 마마의 하사품에 어의를 부르는 것도 마마께 누가 된다 여겼습니다.”“네가 여겼느냐.”“소인이 여겼습니다.”강진이 꾸러미를 손에 들었다. 종이 안에서 마른 것들이 서로 부딪는 소리가 났다.향낭이 있는 허리께는 그대로 두고, 꾸러미만 도홍에게 건넸다.“허운에게 보여라. 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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벽 너머

한낮의 볕이 들창 창호지를 하얗게 데우고 처마 끝에서 참새 소리가 잦게 들려올 때, 봉수가 성한 팔로 그릇을 받쳤다.다른 팔은 어깨에 매인 채 옆구리에 붙어 있었다. 여울이 숟가락을 잡으려 하자 봉수가 먼저 들었다.“에구, 가만 계십시오. 흘리면 제가 닦아야 합니다.”미음이 미지근했다. 여울은 세 술을 넘기고 고개를 저었다.목 안이 아직 쓸려 있어 삼킬 때마다 어제 토한 자리가 아팠다. 봉수가 그릇을 상에 놓았다.“단이는요.”“뒷방에 있습니다. 왕명이라 제가 데리고 나올 수는 없습니다.”“밥은 먹었습니까.”“제가 들여다 줬습니다. 반은 남기고.”여울은 벽 쪽으로 눈을 돌렸다. 뒷방과 이 방 사이는 흙벽 하나였다.그 너머에서 아무 소리도 나지 않았다. 아이가 울면 들릴 벽이었다. 그 조용함이 우는 소리보다 더 가슴을 눌렀다.허운이 들어와 맥을 짚었다. 얼굴이 움직이지 않았다.“오늘은 앉지 마십시오. 밤에는 문밖에 있겠습니다.”“어의 어른.”허운이 손을 거두다 멈췄다.“단이를 잠깐만 보게 해 주실 수 없습니까. 그 아이는 제가 왜 먹었는지 모릅니다.”“왕명은 제가 풀 수 없습니다. 흠. 저 벽은 제가 막은 것이 아닙니다.”허운은 그 말만 하고 나갔다. 봉수가 문을 닫고 돌아와 앉았다.여울은 벽에 대고 말했다. 크지 않은 소리였다.“단이야.”한참 뒤에 벽 너머에서 뭔가가 벽에 닿는 소리가 났다. 손바닥 같았다.“……오라버니.”“먹었느냐.”“먹었어요. 봉수 어른이 안 나가고 서 계셔서.”목소리가 갈라졌다. 여울은 벽에 손을 댔다. 흙이 차가웠다.“제가 드렸잖아요. 제가 죽에 넣어서.”“네가 넣은 게 아니라 내가 먹은 거다. 내가 받겠다고 했다. 상궁 마님 앞에서.”“그게 왜 달라요.”여울은 답을 찾지 못했다.벽 너머에서 아이가 우는 소리가 났다. 봉수가 여울의 손을 벽에서 떼어 이불 위로 내려놓았다.—마당에 그늘이 반쯤 찼을 때 도홍이 왔다.마루에서 봉수와 이야기하는 소리가 들렸고, 여울은 눈을 뜨고 그 말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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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고 먹었느냐

등잔 심지가 낮게 타들어 가고 벽 너머 뒷방에서는 아무 기척도 넘어오지 않는 가운데, 여울은 처음부터 말했다.단이가 길목에서 상궁을 만나 먹는 데 보탤 것이 있다는 말을 들었다고 한 것. 그 뒤 저녁에 상궁이 직접 꾸러미를 들고 쪽문으로 들어온 것.단이가 어의께 여쭙고 쓰겠다고 하자 상궁이 대비마마의 하사품에 어의를 부르느냐고 꾸짖은 것. 여울이 그 자리에서 왕께서 허락하신 것만 이 방에 들이라 하셨다고 말하자, 상궁이 마마의 것을 돌려보낼 것이냐고 되물은 것.“그래서 제가 받겠다고 했습니다. 단이를 더 몰아세우지 마시라고.”강진은 듣는 동안 한 번도 말을 자르지 않았다. 등잔 심지가 한 번 튀었다.“왕의 허락을 물었다.”“예.”“없다는 것을 알았다.”“……예.”“어의도 못 부르게 했다.”“예.”“그러고도 먹었다.”여울은 이불 위의 제 손을 보았다. 손톱 밑에 어제의 피가 조금 남아 있었다.“이상하다고 여겼습니다. 그래도 물리면 단이가 다시 불려갔을 것입니다. 상궁은 그 아이 손을 잡고 말합니다. 아이는 그 손을 뿌리치지 못합니다.”“반은 왜 남겼느냐.”“더 넘어가지 않았습니다. 남은 것은 어른께 보이려고 두고, 아무도 먹지 말라고 했습니다.”강진이 일어섰다. 방이 좁아서 두 걸음이면 벽이었다.강진은 그 두 걸음을 걷고 돌아서지 않았다. 등을 보인 채 서 있었다.“네가 죽으면 그 아이가 산다고 생각했느냐.”“그렇게까지는…….”“그릇 하나면 죽는다고 허운이 말했다. 네가 반을 먹었다.”여울은 그 등을 보았다. 어깨가 넓어서 등잔불이 벽까지 가지 못했다.“내게 고했으면 됐다. 도홍을 부르면 됐다. 담 밖에 군사가 있었다.”“전하는 그날 안 오신다 하셨습니다.”강진의 어깨가 멎었다.“조회가 길다고. 못 온다고.”강진이 돌아섰다. 화가 난 얼굴이 아니었다. 그것보다 나빴다.여울이 아는 얼굴 중에 가장 먼 얼굴이었다. 여울은 저도 모르게 이불 속에서 발끝을 오므렸다.“그래서 나 대신 독을 골랐다.”“그런 것이 아닙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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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분

강진은 움직이지 않았다.등잔 심지가 타는 소리만 방 안에 남았고, 들창 밖의 밤은 바람 한 점 없이 검게 가라앉아 있었다.여울은 고개를 들지 못했다. 이불 위에 놓인 강진의 손이 보였다. 손가락이 하나씩 접혔다가, 다 접히기 전에 멎었다.“절.”“예.”“처분을 네 입으로 청하느냐.”“죽이거나 내치거나 절로 보내거나. 장부에 그리 적혀 있다고 들었습니다. 셋 중에 살려 두시는 것이 절입니다.”“누가 그걸 네게 읽어 줬느냐.”“상선 어른이. 국상 중에.”강진의 손이 이불에서 떨어졌다. 여울은 그 손이 어디로 가는지 보지 않으려고 눈을 내렸다.손은 허리께에 갔다가 아무것도 만지지 않고 무릎 위로 돌아왔다.“창에 보내 달라더니 이제 절이냐.”“그때는 책봉에…….”“그때는 책봉, 이번에는 아이. 매번 남을 위해서. 네가 가겠다는 곳만 늘 먼저 찾는군.”“그런 것이 아닙니다.”“그러면 왜 늘 가는 쪽이냐.”여울은 고개를 들었다. 강진은 웃고 있었다. 소리가 없는 웃음이었고, 눈은 웃지 않았다.“전하께서 저를 두고 대비마마와 다투셨습니다. 상궁을 가두셨고 조회를 비우셨습니다. 도승지가 적을 것이고 대신들이 알 것입니다. 그 모든 것이 제가 이 방에 있어서입니다.”“내가 한 일이다.”“제가 없으면 하실 일이 아니었습니다.”강진이 여울의 턱을 잡았다. 세지 않았다. 얼굴을 등잔 쪽으로 돌려 놓고 오래 보았다.“의금부 담을 넘어 너를 안고 나왔다. 사신 앞에서 너를 안 내줬다. 어젯밤은 네 손을 잡고 앉아서 날을 새웠다. 그런 나한테 절에 보내 달라고.”여울의 눈시울이 뜨거워졌다.그 말들을 세어 주는 손이 언제 제 목을 잡을지는 여전히 몰랐다. 턱에 닿은 손끝이 따뜻해서 더 무서웠다.“……그래서 청하는 것입니다. 전하께서 하신 일이 헛되지 않게.”강진의 손이 턱에서 떨어졌다. 대신 여울의 뒷머리를 그러쥐고 얼굴을 제 얼굴 아래로 끌어왔다. 이마가 거의 닿았다.“네 처분은 내가 정한다. 내가. 장부도 상선도 대비도 아니고, 너도 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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