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odos los capítulos de 선왕의 남총을 처분하는 법: Capítulo 61 - Capítulo 7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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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1화. 찬합

무릎을 감은 베가 걸음을 한 번씩 늦추었다.여울은 내관을 따라 선정당 문턱을 넘었다. 강진 앞에는 신하 세 사람이 먼저 와 있었다. 서율은 오른쪽, 한겸은 문 가까이, 이헌은 강진의 왼편이었다.이헌은 눈꺼풀도 움직이지 않았고, 한겸은 여울의 무릎을 향했던 눈을 곧 거두었다. 서율만 끝까지 피하지 않았다.무릎을 꿇자 감아 둔 천 아래가 뜨거워졌다. 여울은 두 손을 바닥에 대고 이마를 숙였다.“색적자 하여울, 부르심을 받고 왔습니다.”“고개 들어라.”강진은 상 뒤에 앉아 있었다. 창으로 든 낮빛에 곤룡포의 붉은색이 바랜 듯 옅었고, 가슴의 금실 용만 또렷했다. 익선관 아래 얼굴은 그보다 더 위에 있었다. 여울에게 내리던 눈이 서율 쪽으로 옮아갔다가 돌아왔다.상 위는 비어 있었다. 여울은 두 손을 가지런히 겹쳐 무릎 앞에 놓았다.“도총관이 서별당에 찬합을 보냈다는 말이 있다. 받았느냐.”여울은 서율을 향해 얼굴을 들었다.서율의 입가에는 웃음이 없었다. 왼손 손가락이 칼을 풀어 둔 허리춤을 누르고 있었다. 찬합을 보낸 것은 저 사람이고, 돌려준 것은 봉수였다.봉수는 다친 팔을 아직 들지 못했다. 허운이 받쳐 준 천이 어깨를 누르자 아침에도 얼굴을 찌푸렸다. 여울은 그 모습을 떠올리다 서율의 관복에 눈을 멈췄다. 산릉에서 묻혀 온 흙이 아랫단에 희게 말라 있었다.“제가 돌려보냈습니다.”서율의 손가락이 멎었다.“죄인이 받을 것이 아니었습니다.”여울의 목소리는 흔들리지 않았다. 서율은 칼을 풀어 둔 허리춤을 더욱 세게 눌렀다. 여울의 입으로 거절을 들으니 가슴이 미어졌다. 강진 앞에서 대체 왜 돌려보냈느냐고 다시 물을 수도 없었다.서율은 잠깐 눈을 감았다가 입술을 다문 채 강진을 향해 돌아앉았다.강진이 서율을 향해 물었다.“들었느냐.”“들었사옵니다.”서율은 여울을 마주한 채 답했다. 짧은 말 끝이 평소보다 거칠었다.이헌의 시선이 두 사람 사이를 지나 강진에게 닿았다. 한겸은 무릎 앞에 모은 손을 풀지 않았다.“가라.”여울은 다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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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화. 시중

봉수가 소반을 문턱에 걸쳤다. 성한 팔로 들어 올리려는데 그릇이 한쪽으로 밀렸다. 마당을 쓸던 단이가 빗자루를 던지고 달려왔다.“제가 들겠다고 했잖아요. 어른은 놓으셔요.”“그릇만 잡아라. 기울어진다.”여울이 이부자리에서 몸을 일으켰다. 단이는 소반을 내려놓자마자 돌아서서 두 손을 내밀었다.“오라버니도 일어나지 마셔요. 제가 갈게요.”맨발이 마루에 닿기 전에 여울이 멈추었다. 단이는 떨어진 신을 발치로 밀어 주고, 등 뒤에 접은 이불을 받쳤다. 밤새 펴고 잔 다리는 조금만 움직여도 무릎 안쪽이 당겼다.“어른도 앉으십시오.”봉수가 다친 팔을 받친 천을 고쳐 맸다. 매듭이 목 뒤로 돌아가 있어 한 손으로는 닿지 않았다. 여울이 손짓하자 못 이기는 척 등을 보였다.천이 살에 파고든 자리가 붉었다. 여울은 매듭을 풀고 접힌 천을 넓게 펴 주었다. 손끝에 힘이 잘 들어가지 않아 매듭을 두 번 놓쳤다.“제가 할게요.”단이가 옆에 앉았다. 여울은 천 끝을 잡고, 단이는 그 위로 매듭을 지었다. 봉수가 한숨을 내쉬었다.“이 늙은이 팔 하나에 두 분이 붙으십니다.”“어른이 가만 계시면 금방 끝납니다.”여울이 천 밑에 손가락을 넣어 조이지 않는지 살폈다. 봉수의 등이 조금 펴졌다.죽은 아직 따뜻했다. 여울이 숟가락을 들자 봉수가 그릇을 가까이 밀었다. 숟가락 끝이 잘게 흔들렸지만 오늘은 이를 건드리지 않았다. 여울은 입안의 죽을 삼킨 뒤에야 다음 술을 떴다.단이가 아까 던진 빗자루를 주우러 갔다. 흰 치마 끝에 마른 흙이 묻어 있었다. 여울은 마루 밖으로 나가려는 아이를 불렀다.“너는 먹었느냐.”“이것만 쓸고 먹으려고요.”“안 먹었다는 말이구나.”단이는 빗자루를 등 뒤로 감췄다. 여울이 빈자리를 턱으로 가리키자 봉수가 먼저 아궁이 쪽을 향했다.“어른도 앉아 계셔요. 제가 가져올게요.”단이가 봉수의 앞을 막고 섰다. 마루에서는 여울이 웃음을 참다가 숟가락을 내려놓았다.“단이가 오늘 우리 시중을 다 드는구나.”“그런데 두 분 다 왜 자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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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3화. 물음

허운이 서별당에서 나오자 도홍이 쪽문 밖에 기다리고 있었다.“전하께서 찾으십니다.”약함을 내려놓을 틈도 없었다. 허운은 도홍을 따라 선정당으로 갔다. 문 앞에서 옷에 묻은 물기를 닦고 들어서자 강진이 손에 든 장계를 내려놓았다.“무릎은.”“새로 덧나지는 않았습니다. 다만 어제 꿇으신 탓에 베에 피가 조금 묻었습니다. 당분간은 앉아서 다리를 펴 두게 하셔야 합니다.”강진은 잠시 말이 없었다. 어제 여울을 불러 무릎 꿇린 곳은 이 방이었다. 허운이 엎드린 자리에서 조금 더 안쪽이었다.“손은 왜 떠느냐.”“기운이 쇠한 데다 놀란 것이 아직 가라앉지 않았습니다. 음식을 드시고 쉬게 해야 합니다.”“봉수는.”“뼈가 어긋나지는 않았으나 무거운 것을 들면 낫는 데 오래 걸립니다. 그릇도 혼자 옮기지 말라 일렀습니다.”강진이 도홍에게 물을 들이라 했다. 허운은 물을 마시는 동안에도 약함을 무릎 곁에 두었다. 돌아가 약을 더 지어 보낼 일이 남아 있었다.도홍이 빈 그릇을 받고 물러나자 강진이 문밖의 내관들까지 물렸다. 닫힌 문 너머로 발소리가 멀어졌다.“선왕께서 살아 계실 때도 네가 곁방을 맡았지.”허운의 손이 약함 손잡이에서 떨어졌다.“예, 전하.”“아버지와 여울이 어떻게 지냈는지 말하라. 네가 직접 보고 들은 것만.”허운은 고개를 숙인 채 있었다. 약함 안에서 기울어져 있던 작은 단지가 옆면에 닿았다.“전하께서 물으시는 것은 진료에 관한 일이 아닌 줄 압니다.”“알면 답해라.”“선왕께서는 곁방에서 보고 들은 일을 누구에게도 옮기지 말라 명하셨습니다. 소신은 그 명을 받들어 왔습니다.”강진의 얼굴에서 표정이 사라졌다.그 방에는 여덟 해를 가지 않았다. 여울이 무엇을 먹고 누구와 말하며 지내는지도 알려 하지 않았다. 그런데 이제 와서는 여울이 첫날 밤 끝내 하지 못한 말이며 낯설어하던 얼굴이 자꾸 마음에 걸렸다. 자기가 믿어 온 것과 맞지 않는 대목을 밀어내려 해도 밀려나지 않았다.허운이라면 제 짐작이 맞는지 틀리는지 답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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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4화. 행렬

“승하한 경위는 내의원에서 이미 올렸다.”“시중든 이의 말도 듣고 싶다 합니다. 발인에 동행시키면 산릉에서 잠깐 만나겠다고…….”민해의 말이 낮아졌다. 강진은 명부를 다시 펼치지 않았다.“사신을 들라.”접견을 기다리던 우문표가 들어왔다. 뒤따르던 역관을 손짓으로 문밖에 세우고는, 민해가 엎드린 자리 옆에 앉았다.“상례 준비가 바쁘겠소.”“하여울은 무슨 일로 찾으시오.”우문표가 웃으며 민해를 돌아보았다. 민해는 얼굴을 들지 못했다.“선왕을 오래 모셨다기에 한번 보자는 것이오. 황제 폐하께 선왕의 마지막을 소상히 아뢰어야 하지 않겠소.”“병세는 어의에게 들으시오. 내관의 시중이 궁금하면 상선을 부르겠소.”“가장 가까이 있던 사람을 두고 돌아서 물을 까닭이 있소?”우문표가 말을 마친 뒤에야 차를 들었다. 강진은 잔이 다시 놓일 때까지 기다렸다.“그자는 심문을 받고 있소. 사신이 따로 부를 수 있는 사람이 아니오.”“무슨 죄로 심문하시오.”“아직 죄가 정해지지 않았소.”“그러니 물어보려는 것이오. 선왕께서 남긴 말씀이 있는지.”강진은 우문표의 눈을 정면으로 받았다. 어의가 아니라 여울을 찾는 까닭이 이제는 분명했다. 좌상이 사신관에 가서 전한 것도 이 얘기일 터였다.“그 말도 내가 물을 것이오. 사신이 따로 불러 묻는 일은 허락하지 않소.”우문표는 잔을 밀어놓았다.“새 왕을 돕겠다는 뜻이오. 고명을 청하러 돌아갔을 때 궁의 사정을 모르겠다고 답할 수는 없으니.”민해가 무릎 앞의 손을 모아 쥐었다. 강진의 목소리는 달라지지 않았다.“황제께 올릴 글은 예조에서 드리겠소. 거기에 빠진 것이 있으면 내게 물으시오.”우문표는 한동안 앉아 있다가 일어났다. 민해도 급히 몸을 일으켜 뒤를 따르려 했다.“예판은 남아라.”사신의 발소리가 회랑에서 멀어지고 나서 강진이 도홍을 불렀다.“도총관을 들라.”서율은 산릉의 호위를 보고하러 와 있던 참이었다. 문턱을 넘자마자 상 위에 따로 놓인 여울의 이름을 읽었다. 강진은 그가 절을 마치기를 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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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5화. 굽히지 마라

허운이 감아 둔 흰 베는 자기 전에 한 번 더 살피라고 했다. 여울은 등잔을 당겨 무릎을 들여다봤다. 피는 배지 않았다. 다리를 펴고 자야 해서 이부자리 위에 반듯이 누웠다.쪽문이 열렸다.의금부에서 안겨 돌아온 밤 뒤로 문 안까지 들어온 발소리는 처음이었다. 찬합 일이 있던 밤에는 지붕에서 소리만 났다. 여울은 일어나려다 무릎이 당겨 이부자리를 짚었고, 그 손 위에 강진의 손이 얹혔다."움직이지 마라."강진이 등잔을 무릎 쪽으로 옮겼다. 흰 베를 오래 내려다보고, 베 위에 손끝만 댔다가 뗐다."허운이 뭐라 했느냐.""굽히지 말라 했습니다. 산길은 가마로 가라 하셨습니다."강진은 대답 없이 여울의 옷고름에 손을 댔다. 여울이 그 손목을 잡았다. 잡고 나서 제가 무슨 짓을 했는지 알고 손을 놓으려 했으나 강진이 놓지 못하게 손을 눌렀다."무릎이 이런데도 오십니까."여울의 목소리가 떨렸다. 서러운 것이 반이고 무서운 것이 반이었다."무릎은 안 건드린다."강진은 그렇게 말하고 옷고름을 풀었다. 저고리를 벗기고, 바지는 무릎의 베가 걸리지 않게 천천히 내렸다. 여울을 옆으로 눕혔다. 다친 다리를 위에 두고 아래 다리를 폈다. 무릎이 굽지 않는 자세였다.풀어 낸 옷고름을 강진이 손에 감았다. 여울의 두 손목을 앞으로 모아 그 끈으로 묶었다."……전하.""이불을 쥐면 무릎에 힘이 들어간다."묶인 손이 가슴 앞에 놓였다. 여울은 손을 쓸 수 없었다. 등 뒤에서 강진의 옷이 벗겨지는 소리가 났고, 젖은 손가락이 뒤로 들어왔다. 옆으로 누운 자세라 벌어지지 않는 만큼 손가락이 더 깊이 왔다."흐…….""굽히지 마라."여울이 저도 모르게 다리를 오므리려던 것을 강진의 손이 허벅지를 눌러 막았다. 무릎이 아니라 허벅지였다. 강진의 손은 베에서 손가락 하나 떨어진 자리까지만 왔다.뒤에서 강진이 들어왔다. 옆으로 누운 몸에 밀려 들어오는 것은 정면보다 좁았고, 그래서 여울은 강진의 것이 얼마나 굵은지 처음부터 끝까지 다 느꼈다. 묶인 손이 저 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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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6화. 문밖

상처에 붙었던 베가 오늘은 물을 조금만 적셔도 떨어졌다.허운은 여울의 무릎에 새 천을 감았다. 살이 벗겨진 가장자리가 전보다 좁아졌지만, 다리를 굽히자 여울의 손이 이부자리를 움켜쥐었다.“평지에서 잠깐 걷는 것은 괜찮습니다. 산길은 가마로 가셔야 합니다. 절은 하지 마십시오.”“산릉에서도 말입니까.”“전하께서 내리신 명입니다. 도총관께도 전했습니다.”여울이 다리를 도로 폈다. 허운은 천이 접히는 곳을 한 번 더 살피고 밖으로 나갔다. 궁 깊은 곳에서 곡소리가 들려왔다. 선왕의 관을 옮길 때가 가까웠다.단이가 문밖에 서 있다가 옷을 안고 들어왔다. 밤새 말린 흰옷에서 화로 냄새가 났다. 국상이라고 내준 짧은 옷을 빨아 둔 것이었다. 색적자에게 정식 상복은 허락되지 않았다.“목 뒤를 조금 꿰맸어요. 실이 자꾸 풀리더라고요.”여울이 옷을 받아 들었다. 깃 안쪽에 손톱만 한 천이 덧대어져 있었다. 거친 솔기가 살을 긁지 말라고 붙인 천이었다.“네 옷은 언제 꿰매느냐.”단이가 제 팔꿈치를 감췄다. 닳아서 해진 자리에 손바닥이 딱 맞았다.“제 옷은 아직 괜찮아요. 조금 해진 것뿐인데요.”“돌아오면 벗어 놓아라. 내가 꿰매마.”“오라버니가 꿰매시면 팔이 안 들어가잖아요.”옷을 펴던 여울이 고개를 들었다. 단이는 웃음이 새려는 입을 소매로 눌렀다.“그때는 네가 잡아당겨서 그랬다.”“에이, 넣어 보라 하신 건 오라버니잖아요.”문밖에서 봉수가 헛기침했다. 가마가 왔다는 말 뒤로 단이의 웃음이 잦아들었다. 여울도 펼쳐 든 옷을 내려놓았다.“너는 어른과 있어라.”“정말 해 지기 전에 오셔요?”“도총관께서 돌아오는 행렬에 붙여 주신다 하셨다.”정해진 귀환 시각은 듣지 못했다. 여울은 해가 지기 전이라고 약속하는 대신 아이의 풀린 옷고름을 가리켰다. 단이가 고름을 매고 문밖으로 물러났다.봉수가 들어와 갈아입는 일을 도왔다. 여울이 팔을 들어 소매를 찾을 때는 성한 손으로 옷자락만 받쳤다. 다친 어깨에는 힘을 주지 않았다.“어른은 아무도 들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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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7화. 조문

산길에서 멎은 가마가 땅에 내려앉았다. 여울은 물그릇을 옆에 놓고 문이 열리기를 기다렸다.서율이 발을 걷어 주었다. 비탈 아래로 흰옷을 입은 사람들이 길게 늘어서 있었다. 앞서 올라간 선왕의 관은 보이지 않았고, 높은 곳에서 곡을 받아 우는 소리가 내려왔다.“여기서 쉬시오. 전하께서 머무실 막 옆이오.”서율이 가리킨 작은 막 안에 자리가 깔려 있었다. 여울은 가마 문틀을 짚고 발을 내렸다. 산흙이 신 밑에서 밀리자 서율이 팔을 내밀었으나, 여울은 곧 발을 고쳐 디뎠다.“괜찮습니다.”서율은 손을 거두고 군사에게 가마를 비탈 쪽에서 물리라 명했다. 여울이 걷는 속도에 맞춰 막 앞까지 함께 갔다.“길이 험했소. 어지럽지는 않소.”“중간에 쉬게 해 주셔서 괜찮았습니다.”여울이 서율의 얼굴을 마주하며 답했다. 선정당에서 찬합을 돌려보냈다고 하던 얼굴과는 달랐다. 서율은 늦게라도 다친 무릎의 안부를 묻고 싶었지만, 여울을 붙잡아 두지 않고 막 안의 자리를 비워 주었다.“물을 더 가져오리다.”“감사합니다.”그때 위쪽 길에서 강진이 내려왔다. 흰 상복 자락에 산흙이 붙어 있었다. 여울은 들어가려던 몸을 돌렸다. 강진을 알아본 얼굴이 먼저 들리고, 곧 눈이 내려갔다.“물을 마셨느냐.”“예?”강진은 다시 묻지 않고 여울이 대답하기를 기다렸다. 서율이 군사에게 받아 든 물그릇에서는 김이 조금 났다.“아직…… 마시지 않았습니다.”여울의 귀 끝에 붉은 기가 돌았다. 가마에서 마실 수도 있었는데 그러지 못했다는 말을 덧붙이려다 입을 다물었다. 강진은 물그릇을 가리켰다.“마셔라.”서율이 그릇을 건넸다. 방금 자신에게는 막힘없이 대답하던 사람이었다. 강진에게 돌아서자 평범한 물음에도 말이 늦어졌다. 서율은 여울의 손이 그릇을 잡을 때까지 받쳐 주고 물러났다.여울은 물을 조금 마셨다. 얼굴에 오른 열이 가라앉지 않았다. 무얼 잘못했다고 꾸짖은 것도 아닌데 괜히 변명을 늘어놓을 뻔했다.바람이 불어 여울이 그릇을 든 채 눈을 감았다. 머리칼 한 올이 입가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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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8화. 심문권

강진은 우문표가 길을 비키기를 기다렸다. 사신의 팔에 걸린 붉은 비단 끝이 바람에 펄럭여 상복 자락을 건드렸다.“그자는 내 명으로 심문 중이오. 어디로도 보내지 않소.”“궁에 남겨 둔 탓에 대신들 입이 시끄럽다 들었소. 내가 데려가면 처분을 두고 다툴 일도 없어지지 않겠소.”“사신이 그자의 처분까지 걱정하는 줄은 몰랐소.”우문표가 목소리를 낮추며 웃었다.“걱정만 해서 꺼내는 말이겠소. 저리 고운 사람을 내 곁에 두고 싶은 마음도 있지.”강진은 웃지 않았다. 우문표는 막 안에서 그릇 내려놓는 소리가 나자 하던 말까지 멈췄다. 조금 전 마주한 얼굴이 떠올랐다. 눈매가 맑고 입술이 유난히 붉었다. 다시 말을 걸면 어떤 목소리로 답할지 궁금했다.우문표는 강진의 어깨 너머로 작은 막을 살폈다. 입구를 덮은 천이 들썩였으나 안에 앉은 사람은 드러나지 않았다. 강진이 한 발 옮겨 그 앞을 막았다.“죄인을 넘겨받을 권한은 누구에게 받았소.”민해가 두 사람 사이로 급히 고개를 숙였다.“전하, 사신께서는 조정의 근심을 덜어 드리려는 뜻으로…….”“사신에게 물었다.”우문표의 웃음이 조금 얕아졌다. 비단을 고쳐 쥔 손에 흙먼지가 묻어 있었다. 그는 그것을 털고 나서야 답했다.“황제께 고명을 청하려면 새 왕의 사정을 아뢰어야 하오. 선왕의 남총 하나도 놓지 못한다는 소리를 가져가서야 내가 무슨 말을 보태겠소.”“내가 죄인을 사사로이 내주었다고 아뢰는 편이 낫다는 말이오?”산 위에서 예조 관원이 다시 사신을 불렀다. 이번에는 대답을 기다리는 사람들의 기침 소리까지 들렸다. 우문표는 고개를 돌렸다가 강진에게 돌아왔다.“그 뜻도 함께 아뢰리다.”“그러시오.”강진이 비키지 않자 사신이 먼저 옆으로 물러났다. 민해가 붉은 비단 끝을 받쳐 들며 산 위로 안내했다. 좁은 길을 오르는 동안 우문표의 어깨가 한 번 돌아왔지만 강진은 이미 서율을 부르고 있었다.“조문이 끝나도 여울을 따로 만나게 하지 마라. 돌아갈 가마는 내 행렬에 붙여라.”“명 받들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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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9화. 돌아온 옷

서율이 막을 걷자 여울은 식은 물그릇을 내려놓았다. 바깥에서는 가마꾼들이 멜 채를 고쳐 잡고 있었다. 산 위에서 내려온 강진의 상복 무릎께가 흙으로 얼룩져 있었다.“돌아간다.”여울은 자리에서 일어나 허리를 숙였다. 다리를 펴고 오래 앉아 있었는데도 발을 디디자 무릎 안쪽이 당겼다. 강진의 손이 팔꿈치 가까이 왔다가, 여울이 문틀을 짚는 바람에 그 앞에서 멎었다.“천천히 타시오.”서율이 발 디딜 자리를 가리켰다. 여울은 가마에 앉고 나서 강진 쪽으로 고개를 들었다. 강진은 이미 도홍과 함께 앞의 행렬로 걸어가고 있었다.“소매에 흙이 묻었습니다.”말이 작아 강진에게는 닿지 않았다. 서율이 제 소매를 털자 여울이 당황하여 손을 내저었다.“나리 말고, 전하께서…….”서율은 손을 내렸다. 제게 먼저 말을 건넨 줄 알고 잠깐 반가웠다. 착각이었다는 생각에 가슴 한쪽이 쓰렸다. 여울은 강진이 돌아서는 것을 보고 급히 가마 안으로 고개를 들였다. 서율에게 사과할 때는 멀쩡하던 얼굴이 붉었다.강진은 도홍을 먼저 보내고 잠시 가마 쪽을 살폈다. 서율이 문을 잡고 여울에게 몸을 숙이자 부르는 대신 길 한쪽에 서서 기다렸다.옷자락을 안으로 거두는데 서율이 가마 문을 잡은 채 말을 낮췄다.“궁에 돌아가면 사신이 부르더라도 혼자 나서지 마시오. 사람을 보내 전하께 먼저 고해야 하오.”“저를 또 찾으신답니까.”“창으로 데려가겠다는 청을 했소. 내가 그 자리에 있었소. 전하께서는 내주지 않겠다 하셨고.”여울의 손이 무릎 위에서 멎었다. 낮춘 말소리는 막 안까지 닿지 않았다. 사신이 저를 두고 무슨 말을 했는지는 지금 처음 알았다.“왜 저를 데려가려 합니까.”“대신들이 처분하라 하니 자기가 데려가겠다는 것이오. 곁에 두고 싶다고도 했소.”아까 얼굴을 훑던 사신의 눈이 떠올랐다. 여울은 가마 안쪽으로 몸을 붙였다.“전하께서는 무엇이라 하셨습니까.”“직접 심문할 죄인이라 하셨소. 누구도 따로 만나게 하지 말라는 명도 내리셨소.”여울은 옷깃을 여미고 고개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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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0화. 고명

민해의 상복 밑단에 산흙이 말라붙어 있었다. 선정당에 들어오며 털었지만, 무릎을 꿇자 마루에 작은 흙덩이가 떨어졌다.“사신이 같은 말을 다시 했습니다.”강진은 좌상과 우상을 앞에 두고 앉아 있었다. 민해가 사신관에서 돌아오기를 기다리던 자리였다.“하여울을 창으로 보내시면 궁 안의 분란을 거두셨다고 황제께 아뢰겠다 합니다. 고명을 내리는 데에도 도움이 될 것이라…….”“황제가 내린 명이냐.”“사신의 뜻입니다.”민해는 거기서 입을 다물었다. 강진이 이헌을 향했다.“좌상도 그 뜻인가.”“처분할 자를 밖으로 내보내는 것입니다. 사신이 데려간다면 궁 밖에 버리는 것보다 뒤탈이 적습니다.”“지난번에는 내 명 없이 의금부로 데려갔지.”이헌이 소매를 무릎 위에 가지런히 놓았다. 한겸은 올려 둔 문서의 귀퉁이를 눌러 펴고 있었다. 여울을 내주자는 말에는 끼어들지 않았다.“전하께서 명하시면 이번에는 그르칠 일이 없습니다.”“내가 거절했더니 사신까지 앞세워 재촉하는군.”마루 끝에 앉은 서리가 붓을 멈췄다. 이헌은 얼굴을 들었다가 강진의 눈이 그대로인 것을 보고 다시 낮췄다.“휘의 죄인은 내가 심문한다. 그 답은 산릉에서 사신에게도 주었다.”민해가 엎드린 손을 앞으로 옮겼다.“전하, 우문표가 돌아가 무슨 말을 하느냐에 따라 고명이 늦어질 수 있습니다. 내주지 않으신다면 적어도 조정이 어지럽지 않다는 것을 보이셔야 합니다.”“무엇으로.”“중궁을 세우고 후사를 이으실 뜻을 보이시는 것입니다. 책봉을 받은 뒤에야 혼사를 논하더라도 예조에서 준비할 일은 미리 살필 수 있습니다.”강진은 무릎 옆에 둔 물잔을 들었다. 물은 식어 있었다. 한 모금을 넘기는 동안에도 민해는 고개를 들지 않았다.“오늘 아버지를 산릉에 모셨다. 돌아온 날부터 혼사 이야기를 꺼내야겠느냐.”“지금 혼례를 치르자는 말씀은 아닙니다.”윤척이 민해의 말을 받았다.“대비마마께서도 내전을 홀로 맡아 오셨습니다. 전하를 모실 중궁이 정해지면 궁의 법도도 바로 설 것입니다. 왕비뿐 아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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