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ll Chapters of 나의 여신은 복수를 원한다: Chapter 11 - Chapter 20

25 Chapters

11화

“바리, 물을 마시겠니?”그때, 아르텐시아의 눈앞에 물병이 나타났다.올리브나무의 잎사귀가 띄워져 있는 물병이었다.라리아는 뒤를 돌아보느라 젖혀진 아르텐시아의 후드를 다시 잘 씌워주었다.아르텐시아는 천천히 숨을 내쉬며 그 물을 받아 마셨다.그리고 그들은 다시 걸었다.집을 떠나, 정돈되지 않은 길을 걷고 숲을 향해 걸으며 두 여인은 딱히 대화하지 않았다.그저 가끔 라리아가 아르텐시아에게 물을 건네면 그것을 마시고 한 번씩 쉴 뿐이었다.숲의 초입에 도착하자 태양이 머리 위에 안착한 시간이었다.두 여인은 무리 없이 숲 안쪽으로 들어갔다.아르텐시아는 그제야 후드를 벗었다.숲은 시원함을 넘어서 차갑고 서늘했다.태양 빛이 나뭇잎 사이로 부대끼며 숲을 침투했지만 가느다란 숨결로는 그것을 이겨낼 수 없었다.그녀는 라리아의 뒷모습을 보다가 그녀 몰래 손을 들어 올렸다.끝이 새카맣게 바래져 있는 손가락은 연약해 보였지만, 그 끝에서 노니는 푸른 불꽃은 아주 위험해 보였다.불꽃은 아르텐시아의 손가락을 모두 휘감고 손바닥 위에서 밝은 빛을 뿜어냈다.금방이라도 그녀의 손에서 튀어나가 라리아를 집어삼킬 수 있을 정도였다.에테르가 남겨준 힘과 라리아가 준 올리브잎의 물을 마신 덕분이었다.‘저 정도면 시시의 숲 근방까지 바로 이동할 수도 있겠어.’아르텐시아는 라리아가 가진 물을 보고 그리 생각했다.굳이 저 인간을 따라가지 않아도 자신은 단번에 시시의 숲에 도달할 수 있을 것이라고.‘내가 사라져도 놀라지 않겠지.’분명 라리아는 그럴 것이었다.그녀는 아르텐시아가 언제든 떠날 것을 아는 것처럼 행동했으니까.아르텐시아는 남은 물을 모두 마시고 난 후를 기약했다.하지만 그녀는 그 물을 마실 수 없었다.“자, 도착했다.”라리아는 마지막 남은 물을 그녀에게 줄 생각이 없었다.울창한 숲속.유일하게 태양 빛이 일직선으로 들어오는 장소.여기저기 부서지고 낡아 본래의 모습에서 많이 벗어나 있었지만 분명 엄숙하고 신성한 분위기가 존재했다.아르텐시아의 살아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09-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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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화

“라라라-. 라라-.”라리아는 아르텐시아가 기도를 한다고 생각했는지 조심스럽게 일어나 자리를 비켜주었다.“라리라-.”대신 주변에 힘겹게 피어난 은방울꽃으로 향하며 노래를 흥얼거리기 시작했다.“머나먼 작은 동산에….”아르텐시아를 위해 불렀던 자장가였다.“신목의 잎사귀가 춤을 추고.”아르텐시아는 올리브나무 잎의 물을 마시지 않아도 까맣게 변한 손끝이 저릿해지며 푸른 불꽃이 피어나는 것을 목격했다.한 여인의 묵직하고 미련한 신뢰가 가슴 깊은 곳에서부터 음울을 이끌고 목 아래까지 밀려 올라왔다.“바람의 요정이 기쁨의 노래를 부르네.”라리아. 라리아.행복해야 했을 라리아.“온 누리에….”“여신이 꿈속에 찾아올 때까지….”남몰래 여신을 기다렸을 라리아.아르텐시아는 라리아의 사라진 목소리를 이어서 노래를 불렀다.“라라라…, 라리라….”이제야 기억이 났다.강림 전, 분명 천상에서 들었다.인간들이 자신을 찬양하며 불렀던 이 노래를.“아르텐시아….”“아르텐시아.”어젯밤. 끝내 다 듣지 못한 채 잠들어 듣지 못한 자신의 이름을.아주 오랜만이었다.인간이 연호하는 자신의 이름을 듣는 것은.마치 잃어버린 것을 되찾은 기분이었다.아르텐시아는 그렇게 잠시 무언가를 생각하는 듯하더니 제대에서 손을 뗐다.***맑은 날이었다.구름 한 점 없이 태양 빛만으로 세상이 환해 보이는 것은 실로 오랜만이었다.아이작은 긴 어둠을 몰아내며 떠오른 태양이 가장 처음 비추는 곳에 도착해 그렇게 생각했다.분명 그것은 평이 그 차체였다.그랬는데….“신황 성하. 현자 아이작께서 오셨습니다.”시가지를 지나다가 신관에게 붙들렸다.아미노의 요청으로 내려온 그는 아이작을 두려워하면서도 무서워하는 기색 없이 함께 갈 것을 요청했다.그래서 그는 지금 아미노의 침실 문 앞이었다.“날 데리고 오라고 하던가?”“네, 시가지에 계실 터이니 모셔오라 하셨습니다.”신관은 아이작의 눈을 마주치지 못했다.그럼에도 그는 신관의 말에 거짓이 없을 것을 알았다.어차피 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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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화

그는 아미노를 마주하고 있는 이 시간과 공간 자체가 몹시 불편했다.성스럽지 않은 신전에서 그를 이 세상에 남은 신앙으로 여기는 이곳에서 사라지고 싶었다.“하하. 세상을 떠도는 친우가 근처에 있는데 얼굴 한번 보자는 것이지.”이유가 필요한가?아이작은 자신을 돌아보는 아미노의 푸른 눈을 직시했다.“많이 피로할 테니 쉬어 갔으면 하는 바람도 있었다네.”[이곳을 집이라고 생각해.]그는 끝내 아미노에게서 고개를 돌렸다.간사한 자의 혀 놀음에 빠져 잃고야 말았던 과거가 떠올랐다.세상을 보는 회색빛 눈동자가 비탄에 빠지려 했다.아미노는 그것을 알았는지 아주 깊게 웃더니 긴 머리칼을 한번 쓸어 넘기며 말했다.“친우끼리 그간 못한 말도 할 겸.”본론이었다.“에테르는 어떠하던가?”첫 번째, 아미노가 몸을 적시며 물었다.“여전하다.”아이작이 대답했다.“호오.?”성수가 삿된 기운을 정화 시키듯 신황의 몸을 타고 흘러내렸다.“그의 심장은?”두 번째, 아미노가 몸을 적시며 물었다.“여전하다.”아이작이 대답했다.아미노의 입가에 미소가 띠었다.세 번째. 아미노가 마지막으로 물었다.“아르텐시아는?”아이작의 눈동자에 회색빛이 거둬지고 인간의 눈동자가 드리웠다.그는 고개를 들어 항아리를 든 여신상의 아래 한낱 인간에 불과한 선악의 현신을 바라봤다.성스러워 보일 법한 광경이었다.여신의 강력한 신관이자 신황의 모습이었으니까.하지만 그래서 더욱 눈을 돌리고 싶었다.분명 과거에는 깨끗하고 맑았을지 모르나 지금은 이단과 마찬가지일 그의 영혼에게서.‘아르텐시아여, 도대체 아미노에게서 무엇을 보셨기에 그에게 영광을 주셨습니까. 그는 그 영광으로 당신을 죽였습니다.’끝내 아이작은 해서는 안 되는 원망을 자신의 여신을 향해서 했다.자격이 없음을 알면서도.그는 결국 세 번째 적신 몸으로 자신의 대답을 기다리는 아미노에게 의복을 건네며 말했다.“여전하다.”아이작도 알았다.아미노가 하는 세 개의 질문 모두가 아이작에게서 원하는 대답이 있다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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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화

“성하.”대신 그는 아미노의 정신을 스스로가 만든 천상에서 이 대리석 바닥으로 되돌렸다.아미노가 억지로 만들어낸 아르텐시아와 똑 닮은 머리칼이 새카만 어둠의 색, 인간의 색으로 돌아오기 전에.“곧 신도들을 마주할 시간입니다.”그는 저물어가는 이 세상에 아직 필요한 ‘신황’이므로.신관은 그저 할 일을 할 뿐이었다.아미노는 그 말끝에 감았던 눈을 뜨고 신관의 뒷머리를 바라봤다.참으로 똑똑하지 않은가.확실히 그의 곁을 떠난 현자들과는 달랐다.아미노의 곁을 지키는 신관은 감히 선을 넘지 않으면서도 물러서는 법이 없었으니까.아미노는 아이작을 만나며 좋지 않았던 기분이 조금은 해소되는 기분이 들었다.그도 그럴 것이 아이작은 항상 한입 베어 먹고 버려진 흙바닥의 사과와 같이 그를 봤다.자신의 눈동자에 무슨 감정이 스미는지도 모르는 주제에.병신같이.“킥….”아미노는 깊게 숨을 들이키며 침을 한번 삼켰다.그러자 아르텐시아를 상상하며 생겨난 명치 끝에 걸린 아지랑이와도 같은 것이 그의 하복부 밑으로 사라졌다.그 질척거림으로 그는 신도들을 만날 준비를 했다.신황은 고개를 주억거리며 대답했다.“아아-. 그렇지.‘그의 대답이 들리자 신관은 눈치 있게 뒤를 돌았다.신관은 숨을 고르게 쉬는 그에게 다가가 흐트러진 옷매무새를 만지고 모자를 정돈하더니 떨어졌다.그리고 길을 열며 고개를 조아렸다.아미노는 그것을 돌아보지 않고 앞을 향해 걸었다.복도의 끝과 이 모퉁이.우매한 인간들을 만날 시간이었다.“열어라.”곧 휘장이 걷히고 커다랗고 웅장한 홀에 모인 신도와 신관들이 자리에서 일어나는 모습이 보였다.“신황 성하!”“성하!”신황은 아르텐시아를 닮은 푸른 눈동자를 빛내며 눈꼬리를 내려 웃어 보였다.어리석고 무지한 인간들을 향해.“좋은 아침입니다.”환희에 찬 목소리와 인자한 입꼬리는 그의 미모를 더욱 빛나게 했다.“오늘도 에테르를 위해 기도합시다.”그는 알았다.“아아-. 아미노시여.”“신황 성하…!”이 치들은 영원히 자신의 시커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09-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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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화

그러나 더이상 추궁할 수 없었다. 이 집에서는 그 무엇도 느껴지지 않았다. 작은 텃밭에 있는 올리브나무를 제외하고. 그는 문득 자꾸 시야에 걸리는 어두운 방문 너머가 신경 쓰였다. ‘확인하고자 하면 할 수는 있겠으나….’ 어둡다. 그 넘어가 예상되지 않는 어둠이었다. 직감이 어둠을 살펴볼 때가 아니라고 말하는 기분이 들었다. 아이작은 이쯤에서 돌아가기로 했다. 한곳에 오래 머무르기엔 그를 살피는 눈이 근처에 있을지도 모르니까. 그는 자신을 올려다보는 라리아와 눈을 마주했다. 아이작의 눈동자는 어느새 인간의 것으로 변해있었다. 그림자처럼 어둡던 눈동자는 빛과 어둠을 동시에 받아 짙은 갈색빛이 돌았다. “올리브나무를 키우는 것을 묵과하겠다.” 올리브나무는 평범한 인간이 키울 수 없었다. 오로지 신성력을 발휘할 수 있는 자의 손에서만 크는 성스러움의 상징이었다. 그는 라리아가 결코 적지 않은 신성력을 숨긴 것을 용서했다. 이는 동시에 아미노의 신전에 머무는 신관이 아닌 것도 모르는 척 하겠다는 의미였다. “감사합니다….” 이어서 고개를 숙여 인사를 하는 라리아를 보고 말했다. “그대가 내게 답을 주었으니 지혜를 나누어 주겠다.” 아이작은 올리브나무의 작고 얇은 가지를 떠올렸다. 그것은 그에게 그리운 여인의 마지막 모습을 상기시키기에 충분했다. 그래서일까, 그냥 내버려 둘 수 없었다. 아르텐시아의 마지막 신관을. 그녀의 올리브 나무를. *** 아르텐시아는 무릎을 끌어안고 구석에 앉아있었다. 몸이 떨리고 가슴이 쿵쾅거려 온몸을 끌어안지 않으면 그것이 입 밖으로 튀어 나갈 것만 같았다. 떨리는 어깨를 지금은 들킬 수 없었기에 그녀는 눈을 감고 숨을 죽였다. 문밖 너머의 남자, 아이작에게 자신을 숨기기 위해서. ‘아직은 아이작을 마주하면 안 된다.’ 목소리를 듣자마자 알았다. 에테르의 눈이 되었던 작고 여려, 아기 양과 같았던 아이작을. 기억과 기록하는 자. 아이작. 자신이 살아 돌아왔다는 것을 그에게 들키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09-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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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화

*** “뭘…한 거니?” 아르텐시아는 결국 방문을 열고 들어온 라리아를 돌아봤다. “세상에, 바리!” “호들갑 떨지 마.” 그녀는 가까이 다가오는 라리아에게서 시선을 뗐다. “이게 무슨!” 아르텐시아는 라리아가 있음에도 오른손에 쥔 에테르를 숨기지 않았다. 그것을 움켜쥐느라 생긴 상처와 핏자국도 숨기지 않았다. 그리고 모두 잘라내어 바닥에 아무렇게나 버려진 자신의 머리카락도, 숨기지 않았다. 그녀는 라리아가 주저앉아 흐트러진 머리카락을 주워 담는 것을 그저 바라봤다. “어째서, 머리카락을…!” 라리아는 정말 안타깝다는 목소리로 말했다. 양손에 아르텐시아가 잘라낸 그녀의 머리카락을 움켜쥔 채로. 아르텐시아는 최대한 짧게 잘라낸 머리카락을 한번 털어냈다. 이제는 희게만 보이는 먼지 같은 짧은 머리카락이 귓등에도 닿지 못한 채, 몇 가닥 그녀의 어깨로 떨어져 내렸다. “눈에 띄니까.” 라리아가 순간 멈칫했다. 아르텐시아는 어느새 자신의 머리카락을 움켜쥔 라리아를 바라보고 있었다. 라리아는 손을 내려놓고 아르텐시아의 얼굴을 올려봤다. 빛을 받아 희게 빛나는 얼굴이 엉망이었다. 상처 난 손으로 눈물을 닦았는지 군데군데 묻어난 핏자국이 나무에 생긴 곰팡이처럼 끼어 있었다. 라리아는 무릎을 털고 일어섰다. “…머리카락이 엉망이니 다듬어 줄게. 기다리렴.” 그녀는 이번에도 침묵을 지켰다. 아무것도 묻지 않았다. 아르텐시아는 라리아가 방을 나가는 것을 보고 그제야 고개를 돌렸다. 그녀는 처음으로 라리아에게 고마움과 미안한 감정을 느꼈다. “…….” 아르텐시아는 결국 입 밖으로 꺼내지 못할 말을 뒤로하고 훤히 드러난 목덜미를 맨손으로 매만졌다. 짧은 머리카락이 살결에 떨어져 간지러웠다. 아르텐시아는 에테르를 쥐지 않은 손으로 푸른 불꽃을 만들어냈다. 그녀도 이제 알았다. 이것이 아이작이 말한 신앙으로 하여금 발현된 신력이었다. ‘분명 이것은 라리아에게서 비롯된 것이겠지.’ 하지만 아르텐시아는 그것을 신력이라는 거창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09-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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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화

*** 정확하게 그녀는 숲에 있는 신전 터가 목적이었다. 밤새도록 생각한 이 결과의 끝이 어떻게 될지 알 수 없었으나, 아르텐시아는 지푸라기라도 잡아야 했다. 그녀는 태양 빛이 한창 후드를 뜨겁게 달굴 때가 돼서야 숲의 입구에 도착했다. 여전히 그 안쪽은 어둡고 차가웠다. 망설임 없이 들어서서 아예 후드를 벗고 열을 식히자 금방 머리와 몸의 열기가 사라졌다. 아르텐시아는 마치 신전으로 인도하는 듯 가느다랗게 떨어져 내리는 태양 빛을 따라 걸었다. 걸음을 옮길 때마다 라리아가 준 낡은 가죽 신발에 나뭇잎과 떨어진 열매들이 부딪혀 나뒹굴었다. 으르릉. 그때, 발아래에서 생겨난 소음에 이질적인 숨소리가 섞여들었다. 멀리서 들리던 새 소리와는 분명 달랐다. “하!” 혼자여서일까. 분명 라리아와 함께 왔을 때는 들리지 않던 짐승의 소리였다. 그것은 근처를 배회하다가 사라지고 다시 나타나기를 반복했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일 뿐. “꺼져라.” 아르텐시아가 신전 터에 다다라 번개같이 위협적인 기운을 퍼트리자 모든 것들이 완전히 사라졌다. 새소리도. 알 수 없는 짐승의 울림도. 그것은 빠르게 사라졌음에도 숨을 막히게 하는 위협이었다. 이제 그녀는 자신을 방해하는 모든 것들을 자비롭게 다스릴 생각이 없었다. 그 결심은 신전 터를 다시 마주하고 완전히 굳혀졌다. 모두 부서지고 남은 작은 성역. 여전히 태양 빛 한줄기가 훤히 드러난 제대를 비추고 있었다. 그녀는 잠시 걸음을 멈추고 그 광활한 외로움을 마주했다. 전날에는 차마 다 담지 못했던 것들이었다. 분명 아름다웠을 테지. 분명 찬란했을 터였다. 성역으로서 신성하고 환희에 가득 차 모든 것이 부유했을 것이다. 여신 아르텐시아의 신전은. 아르텐시아는 터를 크게 한 바퀴 돌며 대리석 조각 하나하나를 직접 손으로 매만졌다. 스러져 사라지고 핍박받았을, 여신을 위해 마련했을 모든 것들을. 여신으로서 지키지 못했던 것들을 위로하고 싶었다. 그녀는 그대로 걸음을 옮겨 제대에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09-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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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화

“날 모르십니까?” “모릅니다.” 아르텐시아는 한 발 뒤로 물러섰다. 그녀의 허리께에 제대가 닿았다. “아이작입니다, 아이작이에요!” 처절한 음성이었다. “혹, 현자 아이작이십니까.” “맞아요, 접니다. 아이작!” 아이작은 거의 비명을 질렀다. 하지만 그녀는 어깨를 펴고 한 손을 가슴께에 올렸다. 그리고 전날의 라리아처럼 고개를 숙이며 용서를 구했다. 후드에 가려진 아르텐시아의 얼굴에 그늘이 졌다. “제가 미천하여 현자를 몰라뵀습니다. 무례를 용서하여 주세요.” 결국, 아이작의 목에서 탄식이 터져 나왔다. 아르텐시아는 아이작에게서 원하는 반응을 얻지 못하자 그의 앞에 엎드렸다. 머리 위에서 허둥대는 목소리가 들렸으나 그녀는 요지부동이었다. “고개를 드십시오. 왜 용서를 비십니까!” “현자를 알아보지 못한 죄를 저질렀습니다.” 아르텐시아는 거의 바닥에 얼굴을 묻은 채로 말했다. 정말이지 쓸데없는 시간 낭비였다. 아이작과의 공방은. 그러니 그냥 사라져라. 이곳에서, 다 부서진 나의 성역에서. 비겁하고 더러운 발을 치워다오. 그녀는 자신의 인내심이 바닥나기 전에 그가 사라지길 바랐다. “제발, 고개를 드십시오!” 하지만 그는 사라지지 않았다. “제게 하대를 하셔야 합니다.” “아르텐시아!” 오히려 부추겼다. 여신의 말라비틀어진 자비를. 아르텐시아는 엎드린 채 고개를 번쩍 들어 새파란 시선으로 그를 노려봤다. “내 이름은 바리입니다.” 그녀는 아주 조금 남아 있던 그 시절 아이작에 대한 연민이 사라짐을 느꼈다. “현자께서는 나를 무시하는 겁니까?” 감히. 천상으로 돌아가지 못하고 땅으로 꺼졌다 한들 신의 이름이다. 비록 이전과 같은 권능과 영광은 없을지라도. 한낱 인간 따위가 마구 불러댈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현자라면, 여신의 이름을 함부로 불러도 되는 겁니까.” 아르텐시아는 아이작의 의도가 어떠하든 관심 없었다. 그저 이것으로 그들이 자신을 무시하고 배제하려 했던 그 감정의 크기를 가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09-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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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화

아르텐시아를 그것을 마치 창에서 뽑아낸 칼날처럼 손에 쥐었다. “이해와 자비를 베풀 여신이 없으니 용서를 구할 수 없습니다.” 그러니 같잖은 짓은 그만두어라. “그저, 기다리세요.” 아이작. “여신이 그대들의 목을 취하기 위해 몰고 올 죽음을.” 이 세계와 함께 저물기를 기다려라. “지금 죽이지 못하는 이 한이 심연과 함께 찾아올 테니.” 그때, 나 또한 에테르를 끌어안고 심연의 바다에 같이 뛰어들리라. 아르텐시아는 하늘이 울리고 땅이 갈라지며 생명의 샘이 마를 때까지 고통의 공포에 절여지는 형벌을 내릴 날을 고대했다. 그러니 지금 자신의 이 혼란은 그것을 이루기 위한 고난일 뿐이다. 그녀는 그리 쉽게도 생각했다. 그때, 땅에 떨어져 마구 밟힌 꽃잎처럼 늘어져 있던 아이작이 고개를 들었다. 그의 얼굴엔 이미 심연이 다가와 있었으나 그녀를 올려 보는 눈동자까지는 그렇지 않았다. “현자를, 인간을 다 죽일 생각이십니까.” 에테르가 부재인 지금, 현자마저 사라진다면 세상은 망조의 길에 들어서게 된다. 그리하면 혼란과 절망이 땅 위로 솟아나 인간들은 원망과 절망 속에서 멸망을 맞이하게 될 것이 틀림없었다. 아이작의 눈동자가 애처롭게 떨리며 대답 없는 아르텐시아를 올려다봤다. “혹여… 시시에게 가시는 길입니까.” 그녀는 여전히 대답하지 않았다. 하지만 신전 터를 옮아 매던 스산한 바람이 순식간에 태양 빛과 함께 어우러져 사라졌다. 다시 제대에는 태양 빛이 내려앉았다. 아르텐시아가 휘두를 수 있는 힘의 끝이었다. “시시에게 내리셨던 힘을 거두러 가시는군요….” 이곳은 동쪽으로 향하는 길의 입구나 마찬가지인 곳이었다. 그리고 동쪽에는 시시의 숲이 있었다. 역시 아이작이 유추하지 못할 리 없었다. 현자의 눈 아이작. 그래서 그는 아르텐시아가 마주하기 부담스러운 자였다. 이전에는 영민하고 총명하여 에테르와 여신의 선택을 받았으나 그것으로 인해 그녀는 난감한 상황을 마주할 수도 있었으니까. 아르텐시아는 끝내 그 무엇에도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09-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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