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유

11화

작가: 주임
last update 게시일: 2026-09-16 21:04:58

“바리, 물을 마시겠니?”

그때, 아르텐시아의 눈앞에 물병이 나타났다.

올리브나무의 잎사귀가 띄워져 있는 물병이었다.

라리아는 뒤를 돌아보느라 젖혀진 아르텐시아의 후드를 다시 잘 씌워주었다.

아르텐시아는 천천히 숨을 내쉬며 그 물을 받아 마셨다.

그리고 그들은 다시 걸었다.

집을 떠나, 정돈되지 않은 길을 걷고 숲을 향해 걸으며 두 여인은 딱히 대화하지 않았다.

그저 가끔 라리아가 아르텐시아에게 물을 건네면 그것을 마시고 한 번씩 쉴 뿐이었다.

숲의 초입에 도착하자 태양이 머리 위에 안착한 시간이었다.

두 여인은 무리 없이 숲 안쪽으로 들어갔다.

아르텐시아는 그제야 후드를 벗었다.

숲은 시원함을 넘어서 차갑고 서늘했다.

태양 빛이 나뭇잎 사이로 부대끼며 숲을 침투했지만 가느다란 숨결로는 그것을 이겨낼 수 없었다.

그녀는 라리아의 뒷모습을 보다가 그녀 몰래 손을 들어 올렸다.

끝이 새카맣게 바래져 있는 손가락은 연약해 보였지만, 그 끝에서 노니는 푸른 불꽃은 아주 위험해 보였다.

불꽃은 아르텐시아의 손가락을 모두 휘감고 손바닥 위에서 밝은 빛을 뿜어냈다.

금방이라도 그녀의 손에서 튀어나가 라리아를 집어삼킬 수 있을 정도였다.

에테르가 남겨준 힘과 라리아가 준 올리브잎의 물을 마신 덕분이었다.

‘저 정도면 시시의 숲 근방까지 바로 이동할 수도 있겠어.’

아르텐시아는 라리아가 가진 물을 보고 그리 생각했다.

굳이 저 인간을 따라가지 않아도 자신은 단번에 시시의 숲에 도달할 수 있을 것이라고.

‘내가 사라져도 놀라지 않겠지.’

분명 라리아는 그럴 것이었다.

그녀는 아르텐시아가 언제든 떠날 것을 아는 것처럼 행동했으니까.

아르텐시아는 남은 물을 모두 마시고 난 후를 기약했다.

하지만 그녀는 그 물을 마실 수 없었다.

“자, 도착했다.”

라리아는 마지막 남은 물을 그녀에게 줄 생각이 없었다.

울창한 숲속.

유일하게 태양 빛이 일직선으로 들어오는 장소.

여기저기 부서지고 낡아 본래의 모습에서 많이 벗어나 있었지만 분명 엄숙하고 신성한 분위기가 존재했다.

아르텐시아의 살아 있는 심장이 요동치기 시작했다.

“여긴….”

분명, 신전의 잔재였다.

무의식적으로 에테르를 세게 쥔 아르텐시아의 시야에 라리아의 뒷모습이 비췄다.

그녀는 거침없이 걸어가 버려진 제대 앞으로 향하는 라리아를 멍하니 바라봤다.

제대뿐이었다.

찬란했을 신전 터에서 온전한 모습을 갖추고 있는 것은 그것뿐이었다.

라리아는 그 앞에 바구니를 내려놓고 조심스럽게 무릎을 꿇었다.

그리고는 두 손을 단정히 모으며 고개를 조아렸다.

이 모든 것에서 아르텐시아는 눈을 뗄 수가 없었다.

정확히 제대를 비추는 태양 빛이 눈이 부셔서가 아니었다.

제대, 제대에 새겨져 있는 조각 때문이었다.

풍성한 가지에 튼튼한 기둥을 가진 나무가 금방이라도 살아 움직일 것 같은 그것은 에테르를 형상화한 것 같았다.

“오늘은 친구가 함께 왔어요. 저이의 몫까지 함께 가져왔습니다.”

라리아는 어느새 기도를 끝내고 일어나 제대 위에 빵과 물을 늘어놓고 있었다.

“신전 주변에 심었던 꽃이 예쁘게 피었어요. 꽃도 보아주세요.”

아.

아르텐시아는 고개를 숙였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고개를 숙이지 않으면 다시는 흘리지 않을 것이라 다짐했던 눈물이 얼굴을 휩쓸어 버릴 것 같았다.

라리아가 제대 뒤편에서 가져온 꽃은 은방울꽃이었다.

“아르텐시아여. 오늘 바치는 이 제사가 틀림없이 당신께 도움이 되기를 바랍니다.”

은방울꽃은 여신이 이 세계가 확립되며 기쁨의 눈물을 흘렸을 때 피어났다 전해져왔다.

라리아는 그것을 음식과 함께 나란히 제대에 올렸다.

고요한 숲의 어딘가.

터만 남아있는 신전의 가운데에 버려진 에테르의 형상을 한 제대가 있는 곳.

알아보지 못할 리가 없었다.

아르텐시아, 자신의 신전이었으니까.

그녀는 가슴의 이 울렁거림이 빼앗긴 기쁨과 환희에서 오는 것임을 알았다.

이제야 아르텐시아는 확신했다.

조금이나마 힘의 발현을 당길 수 있었던 이유를.

“바리, 길을 떠나기 전에 여신께 축복을 부탁하자.”

아르텐시아는 손을 뻗는 라리아에게 차마 다가가지 못했다.

라리아는 개의치 않고 말했다.

“곧 떠날 이 친구의 앞길이 항상 순탄하기만을 부탁드립니다.”

여신에게 기도하는 여인의 목소리를 들으며 여신은 결국, 두 손에 얼굴을 묻었다.

눈을 숨긴 여신의 귓가에 신자의 목소리가 성언처럼 맴돌았다.

“또, 돌아갈 곳을 찾는 자에게 돌아갈 곳을 만들어 주었다고 하셨지요. 간혹 어려움이 생기면 다시 이곳으로 돌아올 것을 허락해 주세요.”

아르텐시아는, 자신은 분명히 그렇게 말했었다.

300년 이전, 이 세계를 확립했을 때.

주신은 저런 건방지고 오만한 말을 하는 여신을 내버려 두었다.

오히려 저 계시와 함께 축복을 내렸었다.

아르텐시아는 이제야 알았다.

라리아는 자신이 내렸던 계시를 지금까지도 지키며 살고 있었다는 것을.

집, 올리브 잎을 넣은 물과 빵, 은방울꽃이 산재한 이곳 신전 터까지.

모두가 신비와 신앙이 아르텐시아를 위해 유지되고 있다는 것을.

그것은 힘이었다.

잊혔던 여신의 이름을 부르고 아직 살아 있음을 믿는, 그 믿음.

신의 존재의 가치.

순수하면서도 맹렬한 이 믿음은 어디에서 오는 것일까.

아르텐시아는 고개를 들어 라리아를 바라봤다.

인간과 이 세계, 그녀에게 제를 올리기 위한 이 신전까지.

여신의 눈에는 보였다.

자신이 하사한 모든 것들이.

세계를 만들어 에테르라고 명명했다.

인간을 탄생시켜 에테르를 지탱했다.

생명의 숨결에 벅차 그들이 ‘틀림없이 행복해지기’를 바랐다.

모든 것을 주었다.

그녀는 제대 앞으로 다가갔다.

그리고 라리아를 지나쳐 제대에 손을 올렸다.

대리석의 단단함 속에 아주 약하게 나마 태양 빛과 같이 따스함이 느껴졌다.

이 작품을 무료로 읽으실 수 있습니다
QR 코드를 스캔하여 앱을 다운로드하세요

최신 챕터

  • 나의 여신은 복수를 원한다   103화

    하지만 불행은 둘이 신전을 감쌌던 메데이아의 줄기를 넘어갈 때, 다시 발밑에 모습을 드러냈다.“이게 무슨 일인가!”시작은 신전에 들어가 잊었던 병사들로부터였다.아비규환인 그곳에서 그들은 꽤나 일사분란하게 움직였다.“당장 몸이 성한 자는 부상자를 데리고 숲을 나가라!”“저 검은 구슬에 몸이 닿아서는 안됩니다!”이 모든 움직임과 소리를 들은 아이작이 아르텐시아의 잡은 손을 잡아당겼다.“조심하십시오. 천천히 내려오세요.”그는 말과 다르게 더욱 서둘렀다.“아이작, 우리는 숲을 빠져 나갈테니 걱정하지 말거라.”조급함을 눈치챈 아르텐시아는 부드러운 손길을 받으면서도.“네. 그럼요 아르텐시아.”서쪽으로 향하는 숲의 입구는 지척에 있었다.아이작은 긴장을 늦추지 않으면서도 조금은 마음이 놓였다.등 뒤로 들렸던 부산함이 조금씩 잦아들고 있던 탓이었다.그는 안심이 불러온 과장된 평온이 허상에 빠지게 할 줄 몰랐다.‘이 숲을 나가면, 잠시만 쉬자고 해야겠다. 아르텐시아도 피곤할거야.’그는 라리아의 집에서 피를 토했던 그녀를 기억했다.

  • 나의 여신은 복수를 원한다   102화

    와아아아! 와아아아!엄청난 함성이었다. 꽤 많은 병사가 아이작과 입씨름을 한 병사에게 동조하고 있었다.“더 들을 것도 없다. 아이작.”그때, 진정한 악신이 서슬 퍼런 눈을 하고 그들을 바라봤다.그녀의 어깨 위에는 크기는 크지 않았으나 본능적인 위험을 느끼게 할 악의 구가 살벌하게 떠 있었다.“뚫린 입이라고 한낱 벌레보다 못한 대거리를 하는구나.”“뭐, 뭐라?!”“너희 인간들은 곱게 만들어준 입으로 시궁창을 헤매니 화를 자초하는 것이다.”“아르텐시아….”아르텐시아는 애틋한 눈빛을 보내는 아이작에게 작게 웃어 보이고는 작고 마른 손을 유려하게 움직여 악의 구에서 여러 알갱이를 만들어 냈다.그것은 저잣거리에서 아이들이 가지고 노는 구슬과 비슷해 보였다.악의 구에서 나온 알갱이들은 아이작과 아르텐시아의 주변에 머물며 스산한 빛을 내뿜었다.병사들의 눈동자에 그것은 어떠한 공포심을 유발하기에 부족함이 없었다.“한가지는 바로 해야겠구나.”그녀는 선연하게 드러나는 분노를 지우지 않은 채 웃어 보였다.그때,

  • 나의 여신은 복수를 원한다   101화

    불온한 기운이 내려앉는 메데이아의 줄기 위를 넘어 신전 앞마당으로 침투하려 하고 있었다.기어코 메데이아의 줄기가 움직임을 멈추었다.아이작은 아르텐시아의 손에서 얼굴을 떼지 않은 채 눈동자를 굴려 그 너머를 살폈다.“아르텐시아.”새카만 어둠은 닮은 인간의 눈동자가 달빛을 받아 희게 빛났다.신전의 앞마당 뒤, 메데이아의 줄기가 얼기설기 얽혀있는 지척에 마침내 그의 시선이 닿았다.긴 생각이 필요 없었다. 그녀와 함께 있었던 지금까지의 시간과 순간이 마치 주마등과 같았다면 어서 깨어나야 했다.“…못해도 수백, 수천이군.”아르텐시아는 그의 나지막한 목소리에 어깨에 한기가 느껴지는 것을 막을 수 없었다.그녀는 뒤로 돌아 아이작의 시선을 따라갔다.지나가는 구름 사이로 달빛이 어지러이 흘러 내렸다.그 아래, 르완의 병사들이 아직 죽지 않은 숲을 밟고 서 있었다.“…….”아이작은 동요하듯 크기를 키워가는 악의 구를 보며 아르텐시아에게 속삭였다.“이토록 많은 병사를 보낸 것을 보면, 완전한 죽음 또는 생포가 목적일 겁니다.”“…어느 쪽이라 생각하지?”“둘 다이겠지요.”아르텐시아는 무언가에 홀린 듯 아이작의 팔을 잡고 그와 눈을 마주했다.그들은 동시에 말했다.“나를 죽이고 당신은 생포할 목적일 겁니다.”“너를 죽이고 나를 데려갈 생각이구나.”“아미노의 명령이겠죠.”“아미노에게 데려가기 위해서.”결국은 다시 아미노였다. 아르텐시아는 이가 갈렸다.교묘하고 약삭빠르기가 마귀와 다를 데가 없었다.아이작의 현자의 눈을 통해 이곳을 살피지 못하니 그가 가진 정보력을 의심해 이런 다음 수를 준비한 것이 틀림없었다.“더이상은 참지 못하겠구나, 아이작.”“생각보다 수가 많은데 괜찮으시겠습니까?”“감히, 너의 숨을 빼앗으러 온 것들이다. 난 이들의 숨을 갈취하는데 망설이지 않아.”아마도 병사의 수는 이 신전을 감싸고 마을에까지 닿아 있을지도 몰랐다.아르텐시아와 아이작이 짐승들을 처리하는데 시선을 빼앗겨 있을 때 이미 지척에 와있던 자들이다.분

  • 나의 여신은 복수를 원한다   100화

    아르텐시아를 가리고 선 그는 오래된 고목과도 같았고 단단한 요새와도 같았다.그리고 그의 손안에서 에테르의 창은 어느 때 보다 밝게 빛났다.“…그래, 아이작.”아르텐시아는 그제야 마음이 놓였는지 짧게 숨을 들이마시고 내쉬었다.긴 세월 동안 이어진 신뢰는 이깟 불안에 무너질 것이 아니었다.그녀의 눈동자가 다시 굳건해졌다.그 시선의 끝은 아이작의 어깨 너머에 있었다.아르텐시아는 신전 주변을 제외하고 꽤 많은 면적의 숲의 생명력을 빼앗아 악의 구를 더욱 키우기 시작했다.이제 메데이아의 뿌리는 피를 갈구하며 신전 위의 하늘을 덮어버렸다.완연한 어둠. 심연과도 같은 그것이 그들의 눈앞에 펼쳐졌다.소리마저 차단된 공간 속에서 그 누구도 움직이지 못하고 있었다.짐승은 울음을 삼키고 메데이아는 활기를 멈춘 그때.두 사람에게 신호는 필요 없었다. 촤악!숨소리조차 내지 않던 아이작이 움직이기 시작했다.“크아아아!”“깨갱!”아르텐시아는 어둠 속에서도 희미하지만 빛을 잃지 않은 그 푸름을 쫓았다.그 푸른 빛은 옅은 잔

  • 나의 여신은 복수를 원한다   99화

    ***“이, 이게 무슨! 누구냐! 내 신전을 이토록 엉망으로 만든 것이!”아르텐시아의 고통이 담긴 목소리가 신전에 닿았다.그녀는 신전 문 앞에 다다라서 털썩 주저앉았다.발에 채며 나부꼈던 메데이아를 살펴보기 위함이었다.이어서 아이작이 그녀의 뒤를 따라 곁에 앉았다.“이런! 아르텐시아!”“…아이작. 보아라 나의 아이들이 이토록 고통을 받았구나.”“당신을 괴롭게 만들다니, 누구의 소행인지 알아내야겠습니다!”“아니다, 그럼 안돼. 너까지 다치면 어떻게 하란 말이냐….”“아르텐시아…….”그는 결국 손에 얼굴을 묻으며 눈물을 삼키는 아르텐시아가 안타깝다는 듯 신음했다.아르텐시아는 아이작의 위로를 받으며 겨우 고개를 들었다.참담함이 서린 눈동자는 형태가 남아 있는 메데이아 꽃에 닿아 있었다.“내 힘이 온전치 못해 신전과 숲과 메데이아를 지키지 못했구나….”“아닙니다, 아니에요. 아르텐시아.” 부스럭, 부스럭.아르텐시아와 아이작의 눈동자가 시선의 끝에서 아슬아슬하게 마주쳤다.생명력이 사라지는 숲의 마지막 움직임이 타인에 의해 들려왔다.그들이 움직이기 시작한 모양이었다.

  • 나의 여신은 복수를 원한다   98화

    “아이작, 저 병사 중에 아는 얼굴이 있느냐?”“없습니다.”“다 죽었으니까?”“네, 다 죽었습니다. 그 자리에서. 모두.”아르텐시아는 고개를 끄덕였다.놀랄 일도 아니었다.처음 이상함을 느낀 것은 신전의 조사를 텐죠우의 자식들이 했다는 것이었다.짐승은 말을 하지 못 한다.하지만 인간들은 생각과 말을 할 줄 알았다.그러니 텐죠우의 자식들이 휩쓸고 간 자리에서 르완의 병사들이 숨어있던 고위 신관이나 제물들을 찾도록 내버려 둔 거다.“명분 자체를 없앤 거야.”병사들은 지루한 임무에서 신이 나 있었을 것이다.물러나 사라진 줄 알았던 짐승들이 수를 부풀려 지켜보고 있는 줄도 모르고.“병사들이 취한 것들은 모두 텐죠우의 자식들이 도로 가져갔습니다. 아미노에게 갔죠.”수법이란 이런 것이었다.아미노로서는 매우 쉬운 일이었을 터였다.명분, 경계. 그것들로부터 오는 반발심? 모두 죽이면 그만이었으니까.“그러나 오늘은 다 죽이지 못할 것이다.”아르텐시아의 검푸른 눈동자가 푸르게 빛났다.“너와 내가 있으니까.”“아르텐시아….”“우리는 아미노의 수를 죽이는 거다.”말을 끝낸 그녀의 어깨 위로 조금 전보다 더욱 위험한 악의 기운이

더보기
좋은 소설을 무료로 찾아 읽어보세요
GoodNovel 앱에서 수많은 인기 소설을 무료로 즐기세요! 마음에 드는 작품을 다운로드하고, 언제 어디서나 편하게 읽을 수 있습니다
앱에서 작품을 무료로 읽어보세요
앱에서 읽으려면 QR 코드를 스캔하세요.
DMCA.com Protection Statu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