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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ll Chapters of 현실로 된 위장 이혼: Chapter 1 - Chapter 10

15 Chapters

제1화

심유하는 요즘 고태준이 밖에서 어떻게 지내는지 관심을 두지 않았다. 하지만 인터넷을 도배한 기사 탓에 하예린이라는 사람을 모를 수가 없었다.고태준의 회사가 새로 계약한 신인 배우, 20살을 갓 넘긴 한창 풋풋한 여자였다.가장 눈길을 끈 것은 고태준이 두 달 가까이 대놓고 쫓아다녔는데도 불구하고 하예린이 조금도 흔들리지 않았다는 점이었다.예전의 여자들은 한 달을 채 넘기기도 전에 고태준 쪽에서 먼저 흥미를 잃었다.그런데 하예린만은 달랐다. 고태준의 기록을 깨뜨린 것은 물론, 위장 이혼이라는 말까지 꺼내게 만들었으니 말이다.심유하는 이혼 서류를 받아 들고 입꼬리를 비틀었다.“이게 나한테 준비한 선물이야? 꽤 특별하네.”그 말에 고태준의 얼굴에 좀처럼 보기 힘든 얼떨떨한 기색이 떠올랐다. 그러다 오늘이 무슨 날인지 떠올렸는지 눈에 약간의 미안함도 스쳤다.“요새 촬영장에서 예린이 달래느라 오늘이 결혼기념일이자 네 생일인 걸 잊었어. 미안해. 선물은 이따가 비서한테 보내라고 할게.”‘새 사람이 생기니 난 정말로 그대로 잊혔구나.’심유하의 입가에 비웃음이 번졌다.“됐어. 어차피 이혼할 사이인데, 선물은 다른 사람한테 줘.”그러자 고태준은 미간을 찌푸리면서 못마땅한 기색으로 반박했다.“위장 이혼일 뿐이야. 서류에 사인해서 어린애 달래는 것뿐이지, 우리가 진짜 이혼하는 것도 아니잖아.”‘과연 그럴까?’하지만 심유하는 이미 가짜를 진짜로 만들기로, 고태준과 이혼하기로 마음을 굳힌 뒤였다.심유하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펜을 들어 한 획 한 획 자신의 이름을 적고, 3년이라는 결혼 생활에 마침표를 찍었다.사인이 끝나자 한숨을 돌린 고태준은 이혼 서류를 사진으로 찍더니 어디론가 전화를 걸었다.전화 너머에서 무슨 말을 들었는지, 고태준은 눈에 띄게 기분이 좋아지면서 부드러운 목소리로 달랬다.“나 이혼했어. 이제 떳떳하게 나랑 만날 수 있어. 촬영장에서 얌전히 기다려. 데리러 갈 테니까 우리 축하하자.”전화를 끊은 고태준은 곧바로 몸을 일으킨 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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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화

전화기 너머에서 와장창 소리가 나더니 조금 지나자 앨런의 들뜬 목소리가 들려왔다.[유하 씨, 드디어 승낙해 줬네요! 이 배역은 계속 유하 씨를 위해 비워 두고 있었어요!][난 확신해요. 유하 씨가 출연한다면 이 영화는 반드시 대박을 치고 영화제 상을 휩쓸 거예요!]고태준과 결혼하기 전, 시어머니인 윤정옥은 결혼 후 가정에만 전념하고 더 이상 연기를 하지 말라고 요구했다.3년 동안 가끔 고태준의 동반자로 꼭 필요한 행사에 참석한 것 말고는, 사실상 연예계를 떠나 있었다.3년 전 트로피를 손에 들었던 최연소 여우주연상 수상자가 어떤 모습이었는지조차 거의 잊고 있었다.다행히 한 달 뒤면 이혼 절차가 마무리되고, 자신이 사랑했던 연기의 길로 돌아갈 수 있게 된다.[유하 씨, 언제 영국으로 올 거예요? 저는 유하 씨가 오기만을 목 빠지게 기다릴게요!]심유하는 달력을 바라보다가 나직이 입을 열었다.“다음 달 6일이에요.”그날은 딱 한 달 뒤로, 바로 이혼 절차가 마무리되는 날이었다.이혼이 마무리되는 대로 영국으로 날아갈 참이었다.앨런과 앞으로 맡게 될 배역에 대해 더 이야기를 나눈 뒤에야 심유하는 전화를 끊었다.차에 올라 집으로 돌아가려고 하는데 휴대폰이 울렸다. 특별 알림으로 설정해 둔 소리였다.심유하가 휴대폰을 확인하자 고태준의 최신 SNS 게시물이 떴다.[너만 나와 함께해 준다면 나는 뭐든 할 수 있어]첨부된 사진에는 이혼 합의서와 함께 하예린과 고태준이 깍지 낀 손을 찍은 사진이 담겨 있었다.고태준의 SNS 계정은 7년 전에 만든 것이었고, 그동안 올린 게시물은 모두 3개뿐이었다.첫 번째는 심유하와 연애를 시작했다는 사실을 공개한 글이었다.두 번째는 심유하가 여우주연상을 받았을 때 축하를 전한 글이었다.세 번째는 결혼식 당일 올린 공개적인 사랑 고백이었다.하지만 지금은 그 세 게시물마저 모두 삭제된 상태였다. 남은 것은 가장 최근에 올라온 이 글 하나뿐이었다.댓글창에서는 하예린의 팬들이 저마다 축하를 보내고 있었다.[꺄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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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화

단어 하나하나가 칼날처럼 심유하의 가슴을 찔렀다.‘감옥이라니...’‘우리의 결혼 생활이 고태준에게는 이미 이렇게나 숨 막히는 것이었구나.’곁에 앉아 있던 양선주는 걱정스러운 얼굴로 심유하의 손을 잡았다. 눈빛에는 안쓰러움이 가득했다.심유하는 곧바로 고개를 저었다.그러다 고태준이 하예린의 치맛자락을 세심하게 들어주는 손에 시선이 닿자, 자조하듯 입꼬리를 살짝 끌어올렸다.사실 심유하도 다를 게 없었다.이미 그때의 사랑이 변해 버렸다는 걸 알면서도, 애써 모른 척하며 자신을 속였으니까.그래도 다행인 것은, 한 달 뒤면 두 사람 모두 이 감옥에서 벗어나 자유를 얻을 수 있다는 것이었다.곧 시상식이 시작됐다.최우수 여우주연상 발표 순서가 되자 심유하의 손바닥에 땀이 송골송골 맺혔다.‘미양’을 촬영할 당시 심유하는 그 작품이 자신의 평생 마지막 영화가 될 거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배역을 완성하기 위해서 많은 공을 들였다.오늘 밤 최우수 여우주연상을 받는다면, 자신의 국내 연기 인생에 완벽한 마침표를 찍는 셈이었다.사회자는 수상자 명단을 들고 모든 후보를 일부러 한 차례 둘러본 뒤에야 천천히 입을 열었다.“이번 청화영화상 최우수 여우주연상은...”“하예린 씨!”객석에서 우레 같은 박수가 터져 나왔다.하예린은 웃으면서 고태준의 뺨에 입을 맞춘 뒤 자리에서 일어나 무대로 올라갔다.심유하의 마음에 순간 실망감이 스쳤지만 곧 마음을 추슬렀다.그러나 양선주가 분을 참지 못하고 심유하의 귓가에 대고 속삭였다.“유하야, 내가 따로 사람을 통해 알아봤는데, 심사위원들은 네 영화에 대한 평가가 아주 좋았대. 최우수 여우주연상은 네가 받아야 했어.”“혹시 고 대표가 심사위원들을 매수한 건 아닐...”양선주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심유하가 반사적으로 부정했다.“아닐 거야.”고태준은 공과 사를 구분하지 못하고 뒤에서 수작을 부리는 사람이 아니었다.두 사람이 한창 사랑하던 시절에도 고태준은 심유하를 위해 뒤를 봐준 적이 한 번도 없었다. “이 판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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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화

고태준의 말은 마치 벼락처럼 아무런 예고도 없이 심유하의 귀에 꽂혔다.‘최우수 여우주연상이 원래 내 것이라고?’두 사람의 대화는 계속 이어지고 있었다.심유하의 시선이 고태준의 손에 들린 붉은 장미 다발에 닿았다.그저 너무나도 우스웠다.고태준은 공과 사를 구분하지 못하는 사람이 아니라고 그렇게 자신 있게 장담했건만, 현실은 본인의 뒤통수를 시원하게 후려쳤으니 말이다.자신을 바라보는 시선이 너무 뜨거웠던 모양인지 고태준이 이쪽을 바라보았다.눈이 마주친 순간, 고태준의 눈에 당황한 기색이 스쳤다가 이내 다시 평온해졌다.고태준은 장미를 안은 채 다가오더니 말투에는 난처하다는 기색이 묻어 있었다.“유하야, 이번 최우수 여우주연상은 예린이한테 양보해 줘. 이 비밀은 나 대신 지켜 주고, 응?”심유하는 어떻게 저렇게 뻔뻔하게 양보라는 말을 입에 올릴 수 있는지 도무지 이해할 수 없었다.“그 상은 원래 내 거잖아. 내가 왜 걔한테 양보해야 해?”고태준이 넥타이를 한 번 잡아당기더니 말투에는 약간의 짜증이 묻어났다.“너는 이제 연기 안 하잖아. 이런 헛된 명예가 무슨 소용이야?”“게다가 오늘 네가 올린 댓글 때문에 예린이가 화가 나지 않았다면, 나도 이렇게까지 해서 달랠 생각은 안 했어.”귀에 거슬리는 말에 심유하의 눈가가 순식간에 붉어졌다. 그리고 떨리는 목소리로 물었다.“그러니까 내 명예를 빼앗아 놓고 지금 나를 탓하는 거야?”고태준은 심유하가 이렇게 연약한 모습을 보이는 걸 좀처럼 본 적이 없었다. 이에 고태준은 심유하의 어깨를 감싸안으며 한층 부드러워진 목소리로 달랬다.“유하야, 그런 뜻이 아니야. 그냥 요즘은 예린이한테 한창 마음이 가 있으니까 당연히 달래 줘야 하잖아.”“언젠가 내가 예린이한테 흥미를 잃는 날이 오면, 그때 바로 최우수 여우주연상 트로피를 되찾아서 너한테 줄게.”“걱정하지 마. 누가 내 아내인지 나도 알아. 지금 예린이한테 하는 것도 그저 겉치레일 뿐이니까, 너는 신경 쓰지 않아도 돼.”이런 말은 지난 2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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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화

두피에서 극심한 통증이 느껴지면서, 이 사람들이 하예린의 팬이라는 것을 그제야 알아차렸다. 정확하게 따지자면 하예린은 내연녀였고 심유하는 법적인 아내였다.그런데도 저들의 눈에는 모든 게 심유하가 잘못했다고 느끼는 것이었다.게다가 오늘 쇼핑하면서 사용한 카드는 심유하 본인의 카드였기에 고태준과는 눈꼽만큼의 관계도 없었다.심유하는 힘겹게 입을 열어 설명하며 사람들을 진정시키려 했다.“저는 고태준 돈 한 푼도 안 썼어요. 그러니까 이거 어서 놓으세요. 이렇게 하는 거 범죄인 거 몰라요?”그러자 여자의 얼굴에 경멸 어린 웃음이 떠올랐다.“흥, 아직도 거짓말을 하네.”“얘들아, 다 같이 덤벼. 이년 좀 혼내 주고 예린이 화도 풀어주자!”말이 떨어지자 빙 둘러서 있던 여자들이 곧바로 달려들었다. 저마다 온 힘을 다해서 심유하를 주먹으로 때리고 발로 걷어찼다.심유하는 이렇게 많은 사람을 상대로는 전혀 저항할 수 없었기에, 그저 여자들의 폭행을 고스란히 견뎌 낼 수밖에 없었다.차를 세워 둔 곳은 비교적 외진 곳이라 주변에 지나가는 사람도 없었다.여자들은 갈수록 더 난폭하게 행동하면서 입에서는 계속 욕설이 쏟아졌다.“여우 같은 년이 감히 우리 예린이한테서 남자를 빼앗으려고 해? 이번에 참교육 좀 당해봐.”“여우주연상은 무슨. 내가 보기엔 다 몸으로 얻어낸 거겠지. 대표님이 예전에는 정말 눈이 멀었었네. 다행히 우리 예린이가 대표님을 구해줘서 망정이지.”...심유하는 머리카락이 한 움큼씩 뽑혀 나가는 것이 느껴졌다. 오장육부가 전부 뒤틀린 것처럼 온몸이 끊어질 듯 아팠다.“거기서 뭐 하는 거예요?”그제야 여자들의 주먹질이 멈췄고 심유하는 힘겹게 눈꺼풀을 들어 올렸다. 경비원들이 자신을 향해 달려오는 모습을 보면서, 심유하는 더는 버티지 못하고 정신을 잃었다.다시 눈을 떴을 때 심유하는 병원에 누워 있었다.보름 만에 모습을 드러낸 고태준이 침대 곁에 앉아서 심유하의 손을 잡고 있었다.심유하가 깨어난 걸 본 고태준이 걱정스러운 목소리로 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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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6화

머릿속에서 뚝하는 소리와 함께 이성이 끊어졌다. 심장이 덜컥 내려앉는 것만 같았다.원래부터 위태롭게 흔들리던 고태준과의 7년이 이제는 완전히 산산조각이 되어 버린 것이었다.손톱이 손바닥에 깊이 파고들고 나서야, 심유하는 소용돌이치는 감정을 억누르면서 겨우 평온한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당신 정말 예린 씨를 아끼는구나?”고태준의 안색이 어두워지더니 알아차리기 어려울 정도로 미간도 살짝 찌푸렸다.심유하는 개의치 않고 말을 이었다.“그렇다면 치료비로 1,400만 원 줘. 그럼 저 사람들의 책임은 더 이상 묻지 않을게.”하예린이 조금 의심스러운 듯 물었다.“1,400만 원만요?”심유하는 확실하게 고개를 끄덕였다.“그래요, 1,400만 원만요.”1,400만 원이면 됐다.고태준과 사랑에 빠진 순간부터 이혼에 이르기까지의 7년을 이 돈으로 끝내는 셈이었다.이 사랑과 이 결혼에도 이제 마침표를 찍을 때가 된 것이었다.고태준은 더 이상 묻지 않고 1,400만 원을 송금하고는 하예린의 손을 잡고 병실을 떠났다.병실 안은 다시 조용해졌다.심유하는 몸을 뒤척이더니 이불을 머리끝까지 끌어올렸다.상처가 당긴 탓인지 모르겠지만 베개 위로 눈물이 번져 나갔다.심유하는 10일 가까이 병원에 입원해 있었는데, 그동안 고태준은 혼자서 한 번 찾아왔다.하지만 심유하는 고태준을 보고 싶지 않았기에, 남자가 올 때마다 깊이 잠든 척하며 만나지 않았다.퇴원한 뒤에는 몇 안 되는 친구들과 식사를 함께하며, 곧 출국한다는 소식을 친구들에게 전했다.심유하가 다시 연예계로 돌아간다는 소식에, 친구들은 모두 자기 일처럼 기뻐해 주었다.출국을 앞둔 마지막 며칠 동안 심유하는 거의 날짜를 세며 하루하루를 보냈다.마지막 날, 가정법원이 문을 열자마자 심유하는 곧장 그곳으로 향했다.한 달간의 이혼 숙려기간이 끝났고, 심유하는 무사히 이혼했다는 증명서류를 손에 넣었다.가정법원을 막 나서던 그때 휴대폰이 울렸다.확인해 보니 하예린에게서 온 메시지였다. 한 프라이빗 회원제 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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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7화

문을 걷어차고 들어온 고태준이 떨리는 두 손으로 하예린을 안아 들었다.“예린아, 무서워하지 마. 내가 지금 당장 병원에 데려갈게.”심유하가 입을 달싹이면서 해명하려고 했다.그러나 고태준은 성큼성큼 품에 안은 하예린을 데리고 문밖으로 향했다. 심유하를 지나칠 때는 어깨로 강하게 부딪치기까지 했다.심유하는 중심을 잃고 비틀거리며 몇 걸음이나 뒤로 물러섰다.하지만 고태준은 아무것도 알아차리지 못한 듯 품에 안긴 하예린을 달래는 데만 정신이 팔려 있었다.분명 아무 말도 하지 않았는데도 심유하는 뼛속까지 파고드는 한기를 선명하게 느꼈다.심유하는 자신이 어떻게 병원에 도착했는지도 알 수 없었다.하예린이 들어간 수술실을 찾아갔을 때, 고태준은 수술실 밖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그리고 고태준은 티가 날 정도로 긴장한 표정이었고 정말로 하예린에게 정말 마음을 준 모양이었다.심유하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조용히 반대편 의자에 앉아 수술 결과를 기다렸다.복도에는 고요한 정적이 내려앉아 있었다.한때 누구보다 가까웠던 부부는 지금 마치 은하계 하나를 사이에 둔 것처럼 멀게 느껴졌다.두 사람 사이에 남은 것은 그저 침묵뿐이었다.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고태준이 충혈된 눈을 들더니 갈라진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유하야, 내가 아내 자리는 너뿐이고, 사랑하는 사람도 너뿐이라고 분명히 약속했잖아. 그런데 왜 예린이한테 손을 댔어?”7년을 함께한 심유하는 고태준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지금 고태준은 분노가 폭발하기 직전이었다.고태준이 마지막으로 이렇게까지 화를 냈던 것은 심유하가 촬영 중 실수로 다쳤을 때였다. 당시 고태준은 심유하가 다쳤다는 이유로 촬영팀 전체에 화풀이를 했다.그런데 지금은 고작 자신의 어린 연인을 위해 화를 내고 있었고, 그 분노를 받아 내는 사람은 심유하였다.정말 아이러니했다.심유하는 눈을 내리깔고 가슴 깊은 곳에서부터 아파오는 쓰라림을 애써 삼켰다.“나 예린 씨 밀지 않았어. 예린 씨가 일부러 나한테 누명을 씌운 거야.”고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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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8화

병실.고태준은 하예린의 병상 곁을 지키고 있었다.마취가 아직 완전히 풀리지 않아서 하예린은 여전히 의식이 없는 상태였다.지금이라면 크게 다친 하예린을 걱정하는 게 당연했지만, 어째서인지 심유하가 떠나던 뒷모습이 계속 머릿속에 맴돌며 좀처럼 사라지지 않았다.고태준의 기억 속에서 언제나 밝고 당당하며 눈부시게 빛나는 사람이었다.하지만 조금 전 심유하는 어딘가 침울한 기운에 휩싸여 있는 듯했다.고태준은 휴대폰을 꺼내서 심유하와의 대화창을 열었다. 그제서야 비로소 두 사람의 마지막 대화가 한 달 전이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예전에는 고태준이 밖에서 지내며 집에 돌아오지 않을 때도 심유하는 이따금 메시지를 보내왔다.그런데 이번에는 한 달 동안 아무런 연락도 없었다.고태준은 입술을 꾹 다문 채 병실을 나와서 비서에게 전화를 걸었다.“진수각에서 삼계탕 한 그릇 포장해서 유하한테 갖다줘요. 꼭 먹으라고 당부하고요.”그런 다음 다시 대화창으로 돌아가서 심유하에게 메시지를 보냈다.[유하야, 내가 비서 시켜서 진수각 삼계탕 보내라고 했어. 얌전히 먹고 누워서 푹 쉬어.]자신의 대화창이 상단에 고정되어 있다는 것을 고태준은 알고 있었다.고태준이 보내는 메시지라면 심유하는 늘 2분 안에 답장을 보냈다.1분, 2분, 3분...꼬박 30분이 지났지만, 대화창은 여전히 조용했고 아무런 답장도 없었다.이에 고태준은 미간을 찌푸렸다. 마음속의 이상한 느낌은 더욱 짙어졌고 은근히 불안함까지 피어올랐다.하지만 고태준은 스스로를 달랬다.‘아마 집에 돌아가서 쉬고 있는 모양이네.’그렇게 생각하니 고태준은 한결 마음이 놓였다.휴대폰을 넣은 뒤 병실 문을 열었다. 문이 열리자마자 하예린의 속눈썹이 파르르 떨리더니 이내 힘겹게 눈을 떴다.“오빠...”고태준은 곧바로 하예린의 손을 꽉 잡고 자기 뺨에 갖다 댔다. 안쓰러운 눈빛으로 여자의 창백한 얼굴을 살살 쓰다듬었다.“예린아, 지금 좀 어때? 어디 불편한 데 없어?”하예린의 눈시울이 순식간에 붉어졌고, 눈물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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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9화

고태준의 동공이 흔들리더니 곧바로 하예린의 손을 놓았다.“예린아, 일이 좀 생겼어. 처리하고 다시 올게.”말을 마친 고태준은 성큼성큼 병실을 떠났다.하예린은 가까이 있었던 만큼 전화기 너머로 비서가 무슨 말을 했는지 당연히 들었다.질투와 원망이 하예린의 마음속에서 미친 듯이 피어올랐다. 하예린은 죽을힘을 다해서 고태준의 이름을 부르며 돌아오라고 했지만, 남자는 듣지 못한 사람처럼 조금도 머뭇거리지 않고 떠났다.병원을 나온 고태준은 액셀을 끝까지 밟았다. 차는 마치 총알처럼 도로를 질주했다.집은 병원에서 꼬박 40분 거리였지만, 고태준은 불과 20분 만에 도착했다.비서는 아직 떠나지 않고 초조하게 문 앞에서 기다리고 있었다.고태준의 모습을 보자마자 비서가 황급히 앞으로 다가왔다.“대표님, 제가 초인종을 꼬박 30분이나 눌렀는데도 사모님이 문을 열지 않으세요.”고태준은 마음속에서 피어나는 불안감을 억누르며 현관문을 열었다.집 안으로 들어서자마자, 고태준은 집 안이 이전보다 부쩍 썰렁해졌다는 것을 알아차렸다.거실 한가운데 놓여 있던 커다란 웨딩 사진은 사라졌고, 식탁과 거실 탁자 위에 두 사람이 함께 골랐던 꽃병도 감쪽같이 사라져 있었다. 심지어 무심코 창밖을 바라보니, 수국이 가득 심겨 있던 정원마저 다시 휑한 모습으로 변해 있었다.고태준이 겨우 눌러 두었던 불안함이 다시 고개를 들면서, 심장이 점점 세차게 뛰기 시작했다.남자는 다른 생각을 떨쳐 내고 곧장 침실로 향했다.한 달 동안 집에 돌아오지 않았을 뿐인데, 원래 생기가 가득 차 있던 집이 왜 이렇게 달라졌는지 심유하에게 직접 물어볼 생각이었다.하지만 문을 열자마자, 침대에서 쉬고 있으리라고 생각했던 심유하는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이불은 주름 하나 없이 말끔하게 깔려 있었다. 고태준이 다가가 이불을 들춰 보았지만 손끝에 닿은 것은 차가운 냉기뿐이었다.불길한 예감이 피어나서 드레스룸 문을 열었다가, 눈앞에 보이는 광경에 그대로 굳어 버렸다.심유하의 옷이 전부 사라져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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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0화

순간 고태준은 숨이 턱 막혔다.‘이혼?’‘유하랑 언제 이혼 절차를 밟았지? 내가 어떻게 그 사실을 모를 수 있어?’‘아니, 그럴 리 없어. 분명 유하가 어디선가 소품을 구해서 날 속이는 거야.’‘그래, 분명히 그럴 거야.’고태준은 속으로 끊임없이 자신을 달래며 떨리는 손으로 서류를 펼쳤다.하지만 안에 적힌 내용을 똑똑히 확인하는 순간, 마지막 희망마저 뚝 하고 끊어졌다.서류의 이름란에는 고태준과 심유하의 이름이 또렷하게 적혀 있었고, 법원의 날인 역시 위조한 흔적이 전혀 없었다.이 서류는 가짜가 아닌 진짜였다.늘 냉정하던 고태준의 얼굴에 좀처럼 볼 수 없었던 멍한 표정이 떠올랐다.고태준은 도무지 기억해 낼 수가 없었다.‘우리가 대체 언제 이혼 절차를 밟았지?’곁에 있던 비서가 마른침을 삼키면서 조심스럽게 신발장 위에 놓인 쪽지를 건넸다.“대표님, 사모님이 대표님께 남긴 말씀이 있어요.”고태준은 다급하게 쪽지를 받아 들었다. 하지만 그 위에는 짧은 한 줄만 적혀 있었다.[우리 두 사람의 이야기는 오늘로 완전히 끝났어. 앞으로 다시는 만나지 말자.]‘다시는 만나지 말자고?’‘유하가 어떻게 이렇게 매정할 수 있지?’가슴속에서 걷잡을 수 없는 분노가 하늘을 찔렀다.두 사람은 7년이라는 시간을 함께했다. 그런데 심유하는 정말 아무렇지도 않게 그 모든 것을 내려놓았고, 심지어 몰래 이혼 절차까지 밟아 버린 것이었다.고태준의 손에 든 쪽지가 구겨지면서 온몸에서는 서늘한 냉기가 뿜어져 나왔다.곧 고태준은 휴대폰을 꺼내 심유하에게 연달아 십여 통의 메시지를 보냈다.[언제 나 몰래 이혼했어? 나는 동의한 적 없어. 이 이혼 확인서 인정 못 해!][어디 갔어? 설마 예린이 때문에 우리 7년의 감정을 포기할 셈이야?][정말 그렇게 싫다면, 내가 예린이를 깨끗이 정리할게.]...고태준은 어두운 얼굴로 휴대폰을 바라보았다.하지만 30분이 지나도록 답장은 오지 않았다. 고태준이 차가운 목소리로 비서에게 지시했다.“언제 이혼 절차를 밟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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