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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7화

Author: 무명
문을 걷어차고 들어온 고태준이 떨리는 두 손으로 하예린을 안아 들었다.

“예린아, 무서워하지 마. 내가 지금 당장 병원에 데려갈게.”

심유하가 입을 달싹이면서 해명하려고 했다.

그러나 고태준은 성큼성큼 품에 안은 하예린을 데리고 문밖으로 향했다. 심유하를 지나칠 때는 어깨로 강하게 부딪치기까지 했다.

심유하는 중심을 잃고 비틀거리며 몇 걸음이나 뒤로 물러섰다.

하지만 고태준은 아무것도 알아차리지 못한 듯 품에 안긴 하예린을 달래는 데만 정신이 팔려 있었다.

분명 아무 말도 하지 않았는데도 심유하는 뼛속까지 파고드는 한기를 선명하게 느꼈다.

심유하는 자신이 어떻게 병원에 도착했는지도 알 수 없었다.

하예린이 들어간 수술실을 찾아갔을 때, 고태준은 수술실 밖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그리고 고태준은 티가 날 정도로 긴장한 표정이었고 정말로 하예린에게 정말 마음을 준 모양이었다.

심유하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조용히 반대편 의자에 앉아 수술 결과를 기다렸다.

복도에는 고요한 정적이 내려앉아 있었다.

한때 누구보다 가까웠던 부부는 지금 마치 은하계 하나를 사이에 둔 것처럼 멀게 느껴졌다.

두 사람 사이에 남은 것은 그저 침묵뿐이었다.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고태준이 충혈된 눈을 들더니 갈라진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유하야, 내가 아내 자리는 너뿐이고, 사랑하는 사람도 너뿐이라고 분명히 약속했잖아. 그런데 왜 예린이한테 손을 댔어?”

7년을 함께한 심유하는 고태준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지금 고태준은 분노가 폭발하기 직전이었다.

고태준이 마지막으로 이렇게까지 화를 냈던 것은 심유하가 촬영 중 실수로 다쳤을 때였다.

당시 고태준은 심유하가 다쳤다는 이유로 촬영팀 전체에 화풀이를 했다.

그런데 지금은 고작 자신의 어린 연인을 위해 화를 내고 있었고, 그 분노를 받아 내는 사람은 심유하였다.

정말 아이러니했다.

심유하는 눈을 내리깔고 가슴 깊은 곳에서부터 아파오는 쓰라림을 애써 삼켰다.

“나 예린 씨 밀지 않았어. 예린 씨가 일부러 나한테 누명을 씌운 거야.”

고태준은 코웃음을 쳤다. 말투에는 명백한 불신이 담겨 있었다.

“유하야, 너도 언제부터 사랑받으려고 안간힘을 쓰는 그딴 수법을 배운 거야? 내가 너한테 해 준 게 부족해?”

“아내 자리도, 내 사랑도 전부 네 거잖아. 나는 예린이랑 그냥 잠깐 즐기는 것뿐인데, 너는 그렇게까지 그 사람을 받아들이지 못하겠어?”

그냥 잠깐 즐기는 것뿐이고, 사랑하는 사람은 너뿐이라는 말을 들은 심유하는 가볍게 웃었다.

웃음은 쉬이 끊기지 않았고 웃을수록 눈꼬리는 더더욱 붉어졌다.

“거짓말도 너무 많이 하면 가짜가 진짜라고 믿게 되는 모양이네. 당신 심장에 손을 얹고 스스로에게 물어봐. 지금도 정말 나를 사랑해?”

‘사랑한다면서 어떻게 끊임없이 밖에서 다른 연인을 만들 수 있을까?’

‘사랑한다면서 어떻게 다른 여자를 임신시킬 수 있을까?’

‘사랑한다면서 어떻게 자신을 조금도 믿어 주지 않을 수 있을까?’

심유하의 눈에 깃든 쓸쓸함과 죽은 듯한 고요함을 본 고태준은 순간 멈칫하더니, 마음속의 분노도 조금 가라앉았다.

그저 심유하가 자신을 너무 사랑한 나머지 질투하는 것뿐이라고 생각했다.

지난 한 달 동안 고태준은 하예린과 함께 있는 데만 정신이 팔려서 심유하의 감정을 소홀히 한 것도 사실이었다.

이윽고 자리에서 일어난 고태준은 심유하를 품에 끌어안았다.

“유하야, 조금만 더 기다려. 언젠가 밖의 여자들에게 흥미를 잃으면 자연스럽게 돌아갈게. 그때는 네가 하고 싶은 일이 뭐든 나도 함께해 줄게.”

돌고 돌아 결국 똑같은, 영원히 이루어지지 않을 빈말이었다.

심유하는 고태준을 밀어내고 더없이 담담한 목소리로 말했다.

“됐어.”

두 사람은 이미 정식으로 이혼했으니 더 이상 기다릴 필요도 없었다.

앞으로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은 혼자서도 해낼 수 있었다.

고태준은 심유하가 아직도 화가 나서 그러는 줄로만 알았다.

“이번 예린이 일은 더 이상 문제 삼지 않게 할게. 대신 예린이가 깨어나면 네가 사과해야 해.”

사과라는 말에 심유하는 자기 귀를 의심했다.

‘고태준이 나더러 사과하라고 한 거야? 대체 무슨 자격으로?’

심유하는 아무 잘못도 하지 않았다.

막 입을 열어서 반박하려던 순간, 수술실 문이 열리더니 간호사 한 명이 황급히 뛰어나왔다.

“보호자 분, 환자분이 대량 출혈이 나셔서 A형 혈액이 급히 필요해요.”

고태준은 곧바로 휴대폰을 꺼내서 비서에게 전화했다.

본인의 모든 인맥을 동원해 시내에 A형 혈액을 모두 병원으로 보내라고 지시했다.

고태준이 다급하게 움직이는 모습을 보자, 심유하는 문득 와이어 액션 사고가 났던 그때로 돌아간 듯한 착각마저 들었다.

당시 고태준은 몸으로 추락하는 심유하를 받아내서 구했고, 여자가 무사한 것을 확인하고서야 안도하면서 정신을 잃었다.

심유하는 소매를 걷어 올리고 간호사에게 팔을 내밀었다.

“저 A형이에요. 제 피부터 쓰세요.”

그 말에 고태준의 눈빛이 복잡하게 흔들렸다.

입술을 달싹이며 뭔가 말하려고 하다가, 결국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심유하는 고태준의 반응에 개의치 않고 간호사를 따라 채혈실로 향했다.

800밀리리터를 뽑고 나서야 채혈을 멈췄다.

심유하의 얼굴은 창백하게 질려 있었고 입술에는 핏기 하나 없는 모습이었다. 상처를 누른 채, 심유하는 한 걸음 한 걸음 고태준에게 다가갔다.

그리고 입가에 홀가분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이제, 아무것도 빚진 게 없어.”

7년 전 고태준이 목숨을 구해 준 은혜를 이제야 갚은 것이었다.

하지만 고태준은 심유하가 하예린을 밀었다는 죄책감 때문에 속죄하려는 거라고 생각했다.

창백한 심유하의 얼굴을 바라보던 고태준의 마음 한구석에 안쓰러움이 피어올랐다.

“유하야, 먼저 집에 가서 쉬어. 예린이 괜찮아지면 내가 다시 보러 갈게.”

심유하는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고 그저 기운 빠진 몸을 이끌고 몸을 돌려 떠났다.

고태준은 멀어지는 심유하의 뒷모습을 바라보면서, 이상하게도 알 수 없는 불안감이 밀려왔다.

입을 열어 심유하를 불러 세우려던 그때 수술실의 불이 꺼졌다.

고태준은 어쩔 수 없이 먼저 의사에게 하예린의 상태를 물었다.

다시 고개를 들었을 때는 이미 심유하의 모습은 이미 보이지 않았다.

집에 도착한 심유하는 미리 싸 둔 캐리어를 끌고 현관으로 가져갔다.

그리고 가방에서 이혼을 증명하는 서류를 꺼내 신발장 위에 올려놓은 뒤, 종이 한 장을 꺼내서 고태준에게 남기는 마지막 말을 적었다.

[우리 두 사람의 이야기는 오늘로 완전히 끝났어. 앞으로 다시는 만나지 말자.]

심유하는 쪽지를 서류 밑에 끼워 넣고, 7년 동안 살아온 이 집을 마지막으로 한 번 바라보았다.

7년 동안 이어진 모든 애증이 오늘로써 막을 내렸다.

이제 심유하는 자신의 인생이라는 책을 쓰러 떠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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