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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6화

Author: 무명
머릿속에서 뚝하는 소리와 함께 이성이 끊어졌다. 심장이 덜컥 내려앉는 것만 같았다.

원래부터 위태롭게 흔들리던 고태준과의 7년이 이제는 완전히 산산조각이 되어 버린 것이었다.

손톱이 손바닥에 깊이 파고들고 나서야, 심유하는 소용돌이치는 감정을 억누르면서 겨우 평온한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당신 정말 예린 씨를 아끼는구나?”

고태준의 안색이 어두워지더니 알아차리기 어려울 정도로 미간도 살짝 찌푸렸다.

심유하는 개의치 않고 말을 이었다.

“그렇다면 치료비로 1,400만 원 줘. 그럼 저 사람들의 책임은 더 이상 묻지 않을게.”

하예린이 조금 의심스러운 듯 물었다.

“1,400만 원만요?”

심유하는 확실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요, 1,400만 원만요.”

1,400만 원이면 됐다.

고태준과 사랑에 빠진 순간부터 이혼에 이르기까지의 7년을 이 돈으로 끝내는 셈이었다.

이 사랑과 이 결혼에도 이제 마침표를 찍을 때가 된 것이었다.

고태준은 더 이상 묻지 않고 1,400만 원을 송금하고는 하예린의 손을 잡고 병실을 떠났다.

병실 안은 다시 조용해졌다.

심유하는 몸을 뒤척이더니 이불을 머리끝까지 끌어올렸다.

상처가 당긴 탓인지 모르겠지만 베개 위로 눈물이 번져 나갔다.

심유하는 10일 가까이 병원에 입원해 있었는데, 그동안 고태준은 혼자서 한 번 찾아왔다.

하지만 심유하는 고태준을 보고 싶지 않았기에, 남자가 올 때마다 깊이 잠든 척하며 만나지 않았다.

퇴원한 뒤에는 몇 안 되는 친구들과 식사를 함께하며, 곧 출국한다는 소식을 친구들에게 전했다.

심유하가 다시 연예계로 돌아간다는 소식에, 친구들은 모두 자기 일처럼 기뻐해 주었다.

출국을 앞둔 마지막 며칠 동안 심유하는 거의 날짜를 세며 하루하루를 보냈다.

마지막 날, 가정법원이 문을 열자마자 심유하는 곧장 그곳으로 향했다.

한 달간의 이혼 숙려기간이 끝났고, 심유하는 무사히 이혼했다는 증명서류를 손에 넣었다.

가정법원을 막 나서던 그때 휴대폰이 울렸다.

확인해 보니 하예린에게서 온 메시지였다. 한 프라이빗 회원제 라운지에서 만나자는 내용이었다.

심유하는 손에 들린 서류에 시선이 닿았다가 결국 약속 장소로 향했다.

심유하가 룸에 도착했을 때 하예린은 이미 와 있었다.

하예린은 옆에 놓인 우유를 들어서 한 모금 마신 뒤 웃으며 심유하를 바라보았다.

“선배님, 이번에 만나자고 한 건 다른 뜻은 없어요. 그냥 저랑 오빠를 놓아주신 게 고마워서요.”

“원래는 두 분이 이혼하신 뒤에 기회를 봐서 감사 인사를 드리려고 했어요.”

“그런데 지난 한 달 동안 태준 오빠가 어찌나 저한테 붙어 다니는지, 저랑 몇 시간만 떨어져 있어도 안 된다고 하더라고요.”

“계속 제 곁에 붙어 있어야 했어요. 촬영할 때도 촬영장까지 따라와서 저를 지켜보고, 심지어는 체면도 내려놓고 제 매니저 역할까지 자처했어요.”

“그래서 오늘도 겨우 시간을 내서 나온 거예요.”

심유하는 물컵을 쥔 손에 저도 모르게 힘을 주었다.

고태준은 연애할 때 심유하에게도 똑같이 붙어 있었다.

다만 지금은 고태준에게 있어서 심유하는 이미 아무런 의미도 없게 됐을 뿐이었다.

하예린은 심유하의 변화를 날카롭게 알아차렸는지 입가의 웃음도 더욱 짙어졌다.

“선배님은 아직도 태준 오빠를 잊지 못하셨나 봐요? 안타깝게도 두 분은 이미 이혼하셨는데 말이죠.”

“오빠가 저를 쫓아다닐 때 제가 분명히 말했어요. 절대 내연녀가 되고 싶지 않다고요.”

“그랬더니 저를 위해 바로 이혼하겠다고 하더라고요. 역시 오빠 마음속에서는 제가 더 중요한가 봐요. 선배님은 이미 지나간 사람이니까요.”

심유하는 하예린이 영리하고 야망이 큰 여자임을 알 수 있었다.

그렇지 않았다면 고태준을 3달이나 빠져들게 만들지도, 고태준이 먼저 이혼 얘기를 꺼내게 만들지도 못했을 것이었다.

심유하는 평온하게 입을 열었다.

“나를 부른 게 단순히 자랑하려는 건 아닐 텐데?”

하예린이 가볍게 웃었다.

“선배님은 역시 똑똑하시네요.”

하예린은 가방에서 종이 한 장을 꺼내 심유하에게 내밀자, 여자는 미간을 살짝 찌푸렸다.

도무지 하예린이 무슨 속셈으로 이러는지 알 수 없었다.

종이를 받아 든 순간, 초음파 검사라는 다섯 글자가 제일 먼저 눈에 들어왔다.

심유하의 머릿속이 하얗게 변했다. 온몸의 피가 빠져나가면서 뼛속이 마디마디 얼어붙는 것만 같았다.

‘하예린이 임신했다고?’

하예린은 심유하의 반응에 아주 만족한 듯 도도하게 턱을 치켜들었다.

한 손은 아랫배에 올린 채, 조금도 감추지 않은 득의양양한 표정을 지었다.

“선배님, 저랑 오빠는 만난 지 1달 만에 아이를 가졌어요. 그런데 두 분은 결혼한 지 3년이나 됐는데도 아이 하나 없었네요. 정말 실패한 결혼이네요.”

심유하의 손에 힘이 들어가면서 들고 있던 검사지가 구겨졌다.

심유하와 고태준 사이에도 한때 아이가 있었다.

결혼 2년 차, 임신한 지 1달이라는 사실을 막 확인했을 때였다.

이 기쁜 소식을 고태준에게 전하려던 순간, 심유하는 남자의 옷깃에 묻은 립스틱 자국을 발견했다.

그것이 고태준의 첫 외도였다.

그날 밤 심유하는 밤새 눈물을 흘렸고, 다음 날 지나친 슬픔으로 유산했다.

고태준은 심유하의 병상 앞에 무릎을 꿇고 다시는 외도하지 않겠다고 맹세했다. 하지만 그 뒤로도 고태준은 밖에서 연인을 하나둘씩 계속 만들었다.

다만 어떤 경우에도 여자들과 아이를 만들진 않았다.

세상을 떠난 그 작은 생명은 두 사람 사이에서 금기와도 같은 존재였다.

하지만 고태준은 이제 그것마저 분명 잊은 모양이었다.

그래도 두 사람은 이미 이혼했으니 그나마 다행이었다.

고태준이 누구와 만나든, 누구를 임신시키든 이제 심유하는 신경 쓰지 않을 것이다.

심유하는 속에서 치밀어 오르는 감정을 꾹 눌러 삼키고 검사지를 하예린에게 돌려주었다.

“축하해요. 두 사람에게 곧 좋은 일이 생기겠네요.”

하예린 얼굴에 떠 있던 득의양양한 표정이 곧바로 굳어졌다.

심유하가 이렇게 아무렇지 않게 이 소식을 받아들일 줄은 몰랐던 모양이었다.

자리에서 일어난 하예린이 심유하의 손목을 붙잡더니, 입꼬리에는 조롱 섞인 웃음이 걸려 있었다.

“선배님, 입으로는 축하한다고 하면서 속으로는 저를 죽도록 미워하고 계시겠죠?”

“공교롭게도 저도 오빠 곁에 선배님 같은 전처가 있는 게 싫어요. 선배님을 오빠의 인생에서 완전히 사라지게 만들 거예요!”

심유하는 하예린의 말이 무슨 뜻인지 생각할 겨를도 없었다.

하예린이 손목을 놓는 순간, 그대로 바닥에 세게 쓰러졌기 때문이다.

곧바로 허벅지를 타고 피가 흘러내렸고, 하예린은 창백해진 얼굴로 아랫배를 감싸 쥐었다.

심유하는 가슴이 철렁 내려앉으면서 반사적으로 휴대폰을 꺼내서 119에 신고했다.

그때, 쾅 하는 소리와 함께 문이 열리며 남자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예린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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