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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화

Author: 무명
고태준의 말은 마치 벼락처럼 아무런 예고도 없이 심유하의 귀에 꽂혔다.

‘최우수 여우주연상이 원래 내 것이라고?’

두 사람의 대화는 계속 이어지고 있었다.

심유하의 시선이 고태준의 손에 들린 붉은 장미 다발에 닿았다.

그저 너무나도 우스웠다.

고태준은 공과 사를 구분하지 못하는 사람이 아니라고 그렇게 자신 있게 장담했건만, 현실은 본인의 뒤통수를 시원하게 후려쳤으니 말이다.

자신을 바라보는 시선이 너무 뜨거웠던 모양인지 고태준이 이쪽을 바라보았다.

눈이 마주친 순간, 고태준의 눈에 당황한 기색이 스쳤다가 이내 다시 평온해졌다.

고태준은 장미를 안은 채 다가오더니 말투에는 난처하다는 기색이 묻어 있었다.

“유하야, 이번 최우수 여우주연상은 예린이한테 양보해 줘. 이 비밀은 나 대신 지켜 주고, 응?”

심유하는 어떻게 저렇게 뻔뻔하게 양보라는 말을 입에 올릴 수 있는지 도무지 이해할 수 없었다.

“그 상은 원래 내 거잖아. 내가 왜 걔한테 양보해야 해?”

고태준이 넥타이를 한 번 잡아당기더니 말투에는 약간의 짜증이 묻어났다.

“너는 이제 연기 안 하잖아. 이런 헛된 명예가 무슨 소용이야?”

“게다가 오늘 네가 올린 댓글 때문에 예린이가 화가 나지 않았다면, 나도 이렇게까지 해서 달랠 생각은 안 했어.”

귀에 거슬리는 말에 심유하의 눈가가 순식간에 붉어졌다.

그리고 떨리는 목소리로 물었다.

“그러니까 내 명예를 빼앗아 놓고 지금 나를 탓하는 거야?”

고태준은 심유하가 이렇게 연약한 모습을 보이는 걸 좀처럼 본 적이 없었다.

이에 고태준은 심유하의 어깨를 감싸안으며 한층 부드러워진 목소리로 달랬다.

“유하야, 그런 뜻이 아니야. 그냥 요즘은 예린이한테 한창 마음이 가 있으니까 당연히 달래 줘야 하잖아.”

“언젠가 내가 예린이한테 흥미를 잃는 날이 오면, 그때 바로 최우수 여우주연상 트로피를 되찾아서 너한테 줄게.”

“걱정하지 마. 누가 내 아내인지 나도 알아. 지금 예린이한테 하는 것도 그저 겉치레일 뿐이니까, 너는 신경 쓰지 않아도 돼.”

이런 말은 지난 2년 동안 심유하가 너무 많이 들어서 이제는 무감각해질 정도였다.

그저 자신과 잠깐 놀고 있는 것뿐이라는 말, 아내의 자리는 여전히 심유하의 것이라는 말, 전부 겉치레일 뿐이라는 말.

고태준이 보기에는 자신의 행동에 아무런 잘못도 없었다.

오히려 아내인 심유하가 이런 일로 투정을 부린다면, 그쪽이 속이 좁고 철이 없는 행동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이었다.

심유하는 고태준의 품에서 빠져나오며, 눈가에 차오르는 눈물과 단전에서부터 느껴지는 쓰라림을 애써 눌러 삼켰다.

“이제 그럴 필요 없어. 다른 사람이 더럽힌 트로피는 이제 다시는 받지 않을 거니까.”

그건 사람도 마찬가지였다.

말을 마친 심유하는 고태준의 표정이 어떤지 확인하지도 않은 채, 비틀거리는 걸음으로 시상식장을 빠져나와 집으로 돌아갔다.

다음 날 심유하는 아침 일찍 일어나서 집 안에 있는 자신의 물건들을 정리하기 시작했다.

영국으로 가져갈 꼭 필요한 생활용품을 제외하고는 나머지를 전부 상자에 싸서 내다 버렸다.

자신과 고태준 사이의 물건들도 하나도 남기지 않았다.

두 사람이 연애하던 시절부터 결혼한 뒤까지의 사진 앨범, 거금을 들여 촬영한 대형 웨딩 사진, 정원에 고태준이 직접 심어 준 심유하가 가장 좋아하는 수국까지...

연애 4년, 결혼 3년. 두 사람은 이 집에서 함께 7년을 살았고, 집 안 어디에서나 두 사람이 함께 남긴 추억을 볼 수 있었다.

심유하는 꼬박 보름을 들여서야 추억이 가득한 물건들을 하나씩 모두 치울 수 있었다.

마침내 한때 온기로 가득했던 이 집은 7년 전 처음 이사 왔을 때처럼 다시 차갑고 쓸쓸한 저택으로 돌아갔다.

그 보름 동안 고태준은 단 한 번도 집에 돌아오지 않았지만, 심유하는 고태준이 어디에 있는지 잘 알고 있었다.

고태준의 습관대로라면, 새로운 연인이 생기면 적어도 한 달 동안은 그 여자의 곁에 붙어 있었다.

게다가 하예린은 워낙 드러내놓는 걸 좋아하는 여자라, 거의 매일 SNS에 두 사람의 애정 행각을 자랑했다.

그저께는 고태준이 하예린을 데리고 바다로 나가 바다낚시를 즐겼고, 직접 요리까지 해 주었다.

어제는 고태준이 하예린의 촬영장을 찾아가서 다정하게 종아리를 주물러 주었다.

...

아마 집 안에 남아 있던 두 사람의 추억이 하나씩 치워지면서, 고태준을 향한 심유하의 감정도 마음속에서 조금씩 사라진 모양이었다.

이런 SNS 게시물을 보았을 때도 잠시 멈칫했을 뿐, 곧 아무렇지 않게 넘겨 버렸다.

집 안의 물건을 모두 정리한 뒤 심유하는 차를 몰고 쇼핑몰로 향했다.

영화 촬영 기간이 워낙 길어서 영국에 가면 적어도 2년 동안은 귀국하지 않을 예정이었다. 그만큼 많은 짐을 가져가야 했다.

오후 내내 쇼핑몰을 돌아다닌 끝에 차 트렁크는 어느새 쇼핑백으로 가득 찼다.

심유하는 트렁크를 닫은 뒤 떠나려고 차에 올라타려고 했다.

한쪽 발을 막 운전석에 막 댄 순간, 등 뒤에서 누군가가 갑자기 심유하를 거칠게 잡아당겼다.

심유하는 아무런 대비도 하지 못한 채 그대로 바닥에 세게 넘어졌다.

팔은 크게 까져 피부가 벗겨졌고 피가 팔을 타고 흘러내렸다.

심유하는 통증을 참으며 몸을 일으켰고, 그제야 자신에게 손을 댄 젊은 여자들 5, 6명을 똑똑히 보았다.

하지만 심유하는 이 여자들을 전혀 알지 못했다.

“당신들 누구예죠?”

말이 떨어지자마자 여자들의 얼굴에는 저마다 혐오스러운 표정이 떠올랐다.

그중 한 여자가 앞으로 한 걸음 다가오더니, 심유하의 머리채를 거칠게 움켜쥐고 화를 내면서 욕설을 퍼부었다.

“다 너 때문이야. 네가 대표님 아내 자리를 차지하고 있으니까, 우리 예린이가 대표님과 함께할 수 없었던 거잖아.”

“이혼한 주제에 아직도 대표님 돈을 쓰고 있다니. 정말 뻔뻔하기 짝이 없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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