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 폭발의 전조: 밥그릇 밑의 한 글자다시 피를 말리는 며칠이 흘렀다.정씨 부인은 문갑 위에 놓인 놋거울에 비친 자신의 얼굴을 들여다보았다.볼이 패도록 수척해졌고 눈 밑에는 어두운 그늘이 내려앉았으나, 깊고 검은 두 눈동자만은 기이한 열기를 머금은 채 불꽃처럼 형형하게 타오르고 있었다.'이대로 산 송장처럼 방 안에 갇혀 말라 죽을 수는 없다. 가문의 열녀문을 받들고 평생 차가운 돌비석으로 사느니, 차라리 오늘 밤 그 사내의 뜨거운 불길 속에 몸을 던져 한 줌의 재로 타버리는 편이 백번 낫다.'그녀는 입술을 깨물며 마침내 결단을 내렸다.더 이상 방구석에 웅크린 채 사내가 담을 넘어오기만을 기다리지 않기로 했다.시어머니의 감시도, 발각되는 날 두 사람 모두 관아로 끌려가 능지처참을 당하고 가문이 멸문지화를 입을 것이라는 서슬 퍼런 강상(綱常)의 법도조차도, 지금 당장 목이 타들어 가 숨이 끊어질 것 같은 그녀의 갈증을 막아설 수는 없었다.그녀는 문갑의 가장 깊숙한 서랍을 열었다.그 안에는 며칠 전 사랑채에서 시어머니에게 발각되어 끌려 나올 때, 소복 치맛자락 속에 몰래 감추어 가져왔던 작은 붓 한 자루가 숨겨져 있었다.사랑채에서 돌쇠의 거친 손을 잡고 획을 그으며 살을 섞던 날, 사내의 땀과 두 사람의 숨결이 배어들어 굳어버린 바로 그 붓이었다.그녀는 작은 벼루에 물을 부어 먹을 진하게 갈고, 손바닥만 한 창호지 조각 위에 굵고 선명한 글자 하나를 온 기운을 실어 꾹꾹 눌러썼다.열 개(開).시어머니가 걸어 잠근 방문의 족쇄를 풀고 길을 열어두겠다는 결의이자, 굳게 닫힌 내 몸을 활짝 열어 그대를 받아들이겠다는 여인의 애타는 부름이었다.비록 돌쇠가 글을 모르는 까막눈이나, 지난번 사랑채에서 글자의 획을 사물의 생김새에 빗대어 일러주었듯, 양옆으로 마주 선 두
Huling Na-update : 2026-10-17 Magbasa p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