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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ahat ng Kabanata ng 열녀, 상복을 찢다: Kabanata 171 - Kabanata 180

216 Kabanata

제21부: 붉은 치마 4

4. 던져지는 육체, 대지에 꽂히는 힘모래판의 승부가 시작되었다. 돌쇠의 상대는 이웃 마을에서 산돼지도 맨손으로 잡는다는 덩치 큰 털보였다. 돌쇠는 거친 숨을 내뿜으며 상대의 샅바를 굳은살 박인 손아귀로 단단히 틀어쥐었다. 굵은 팔뚝 위로 핏줄이 불거져 올랐다. 땅 밑 깊이 뿌리를 박은 고목처럼, 그는 상대가 거칠게 밀어붙이는 힘에도 미동조차 하지 않고 버텨 섰다."헙!"배 밑바닥에서 터져 나온 짧은 기합과 함께, 돌쇠의 단단한 허리가 활처럼 팽팽하게 휘어졌다가 튕겨 올랐다. 그 반동에 거구의 상대가 허공으로 번쩍 들려 올랐다. 돌쇠는 허공에 뜬 상대를 한 바퀴 돌려, 넓은 등판이 모래 바닥에 꽂히도록 단숨에 메다꽂았다.쾅!땅바닥이 둔탁하게 울리며 누런 모래 먼지가 연기처럼 솟구쳤다. 군더더기 없는 완벽한 힘의 승리였다.돌쇠가 고개를 들어 거친 숨을 몰아쉬었다. 숨을 들이마실 때마다 땀에 젖은 가슴팍이 크게 부풀어 올랐고, 샅바에 단단히 묶인 두꺼운 허벅지와 묵직한 하체의 윤곽이 팽팽하게 도드라졌다. 대지의 기운을 고스란히 응축해 놓은 듯한 바위 같은 무게감이었다.정씨 부인은 부채 뒤에서 그 단단한 몸매를 눈에 담으며 달뜬 숨을 삼켰다. 봄밤마다 안방의 어둠 속에서, 그리고 지난겨울 물레방앗간에서 자신의 여린 속살을 빈틈없이 채우며 내려누르던 그 뻐근한 체중과 열기가 생생하게 되살아났다. 비어 있는 아랫배가 저절로 조여들며 찌릿한 경련이 일었다.그 순간, 모래판 한가운데 우뚝 선 돌쇠의 고개가 천천히 돌아가더니 차일 아래 앉은 정씨 부인을 정확히 향했다. 수백 명의 함성 따위는 귀에 들어오지 않는다는 듯, 오직 제 여인에게만 이 끓어오르는 힘을 바치겠다는 사내의 뜨거운 눈빛이 허공을 가로질러 날아와 꽂혔다.그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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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1부: 붉은 치마 5

5. 그네터: 허공을 가르는 아찔한 율동씨름판의 열기가 채 가시기도 전에, 언덕 너머 느티나무 아래 자리한 그네터가 시끌벅적하게 들썩이기 시작했다. 씨름이 대지를 딛고 서는 사내들의 힘겨루기라면, 그네는 땅의 굴레를 박차고 허공으로 솟구쳐 오르는 여인들의 해방구였다.고목의 굵은 가지에 매달린 동아줄이 길게 늘어져 있었고, 버선발을 디딜 나무 발판은 아슬아슬할 만큼 좁았다. 젊은 여인들이 차례로 발판에 올라 초여름의 더운 바람을 가르며 허공으로 솟구쳤다. 붉고 노란 치맛자락이 바람을 안고 꽃망울처럼 부풀어 오를 때마다, 평소 겹겹이 감춰두었던 흰 속바지 자락이 푸른 하늘 아래 언뜻언뜻 드러났다. 가장 높은 곳까지 치솟았다가 땅을 향해 떨어져 내릴 때 찾아오는 아찔한 현기증 속에서, 규방에 갇혀 지내던 여인들은 뺨을 붉히며 해방감에 젖어 들었다."김 대감 댁 마님께서도 잠시 시름을 내려놓으시고 저 그네에 한번 올라보시지요."곁에 앉아 있던 이 진사 댁 부인이 부채를 접으며 권했다."아닙니다. 상복을 입은 몸으로 어찌 경망스럽게 그네에 오르겠습니까..."정씨 부인은 입술을 다물며 정중히 사양했다. 하지만 그녀의 몸 안에서는 이미 뜨거운 갈증이 일렁이고 있었다. 그때, 모래판에서 물러난 돌쇠가 땀을 닦으며 그네터 쪽으로 걸어왔다. 양반가 부인들이 안전하게 그네에 오르내릴 수 있도록 옆에서 줄을 잡아주고 뒤에서 발판을 밀어주기 위해서였다.돌쇠가 땀에 젖은 구릿빛 상체 위로 얇은 삼베 적삼만 걸친 채 그네 줄 곁에 서자, 주변의 공기가 순식간에 달아올랐다. 정씨 부인은 무언가에 이끌린 사람처럼 자리에서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그녀의 발걸음은 돌쇠가 서 있는 그 느티나무 그늘을 향해 저절로 옮겨지고 있었다."그리 권하시니... 가문의 체통에 누가 되지 않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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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1부: 붉은 치마 6

6. 상승과 하강: 백색의 비상, 석류빛의 전복"밀어라."정씨 부인이 시선을 마주치지 않은 채 정면을 응시하며 나직이 명했다. 담담하게 내뱉으려 애썼으나 목소리 끝이 미세하게 떨리고 있었다.돌쇠가 그녀의 등 뒤에서 발판과 동아줄을 잡고 힘껏 밀어 올렸다. 그가 허리를 숙이며 거친 숨을 토해낼 때마다, 화로처럼 뜨거운 입김이 그녀의 얇은 적삼 등줄기 너머로 후끈하게 번졌다. 사내의 억센 팔힘이 그녀의 가녀린 몸을 단숨에 허공으로 밀어 올렸다.붕.동아줄이 팽팽하게 당겨지는 마찰음과 함께 그네가 허공을 갈랐다. 처음 몇 번은 돌쇠가 뒤에서 돌아오는 발판을 받쳐 힘차게 밀어 올렸고, 이내 탄력을 받은 그네가 느티나무 가지를 스칠 듯한 기세로 점점 더 높게 치솟아 올랐다.정씨 부인은 두 손으로 동아줄을 꽉 쥔 채 무릎을 굽혔다 펴며 바람을 탔다. 흰 소복 치마가 맞바람을 가득 머금고 부풀어 오르며 거세게 펄럭였다. 땅의 모든 법도를 발아래 두고 허공으로 몸을 내맡기자, 아찔한 현기증이 시야를 흔들며 세상이 아득하게 뒤집혔다.그네가 하늘의 가장 높은 정점에 닿았다가 땅을 향해 무섭게 떨어져 내리는 순간, 아랫배 깊은 단전이 찌릿하게 오그라들었다. 오장육부와 가장 깊은 속살이 한꺼번에 쿵, 하고 내려앉는 듯한 아찔한 쾌감이 등골을 훑고 지나갔다.초반에 돌쇠가 등 뒤에서 묵직하게 밀어 올리던 그 힘찬 반동은, 밤마다 안방의 어둠 속에서 그녀의 은밀한 틈새를 빈틈없이 채우며 밀고 들어오던 사내의 율동을 고스란히 떠올리게 했다. 힘차게 솟구쳐 올랐다가 아찔하게 내려앉기를 반복하는 그네의 호흡은, 두 사람만이 아는 밤의 장단과 숨 막히도록 닮아 있었다.그녀는 현기증 속에서 두 눈을 질끈 감았다. 초여름의 거센 바람이 펄럭이는 옷자락 속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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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1부: 붉은 치마 7

7. 차단된 시선, 살결에 새겨진 온기그네의 속도가 줄어들고 마침내 땅바닥에 발을 내디딘 정씨 부인은, 아직도 몸이 허공에 떠 있는 듯한 어지럼증에 사로잡혔다. 마치 비단 요 위에서 숨 막히는 밤을 보내고 난 직후처럼 온몸의 맥이 풀리며 두 다리가 후들거렸다. 그녀는 중심을 잡지 못하고 옆으로 비틀거렸다."마님, 다치십니다요. 조심하십시오."곁을 지키고 있던 돌쇠가 반사적으로 다가와, 무너져 내리는 그녀의 팔을 두 손으로 받쳐 부축했다. 아주 짧은 찰나의 접촉이었다. 주변 구경꾼들의 눈에 비치기에는, 그저 발을 헛디딘 안방마님을 충직한 머슴이 재빨리 부축해 올리는 지극히 자연스러운 주종의 모습이었다. 그러나 소복 소매 너머로 전해지는 사내의 손길은 결코 평범하지 않았다.돌쇠의 굳은살 박인 손가락이 얇은 삼베 소매 너머, 그녀의 팔 안쪽 연하고 부드러운 살결을 다치지 않게 감싸면서도 단단히 움켜쥐었다. 여린 살갗에 자국이 남을세라 조심하는 애틋함과, 방금 보았던 그 붉은 속치마의 주인을 기어이 내 품에 온전히 가두고야 말겠다는 사내의 뜨거운 갈망이 그 손아귀 안에 함께 응축되어 있었다.그 은밀하고도 묵직한 악력에 정씨 부인은 숨을 삼켰다. 팔뚝에 닿은 사내의 뜨거운 체열과 팽팽한 긴장감이 핏줄을 타고 빠르게 번져나가 그녀의 창백한 뺨을 화끈하게 달구었다.그녀는 떨리는 다리를 추슬러 다시 차일 아래의 상석으로 돌아와 앉았다. 갈비뼈 아래서 심장이 터질 듯이 세차게 방망이질을 치고 있었다. 그녀는 소복 치마폭 아래서 떨리는 두 허벅지를 남몰래 꽉 조였다. 누구의 눈에도 보이지 않는 진홍빛 명주 속치마는 이미 더운 땀과 달아오른 속살이 흘려낸 뜨거운 진액으로 흥건히 젖어, 허벅지 맨살에 축축하게 감겨들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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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1부: 붉은 치마 8

8. 독사의 속삭임: 무너진 우월감풍물패의 꽹과리와 북소리가 차일 주변의 모든 말소리를 집어삼킬 만큼 요란하게 울려 퍼지던 그때였다. 뛰는 가슴을 애써 진정시키며 찻잔을 들려던 정씨 부인의 곁으로, 누군가 소리 없이 다가와 앉았다.최 대감 댁 윤씨 부인이었다.그녀는 화려한 모란꽃이 그려진 큰 부채를 펼쳐 두 사람의 얼굴을 사람들의 시선으로부터 완벽하게 가린 채, 정씨 부인의 귓바퀴 가까이로 상체를 바싹 기울였다. 달콤한 분 냄새 너머로 서늘한 기운이 스며들었다."바람에 언뜻 비치던 그 붉은 명주 속치마가... 참으로 곱고 요염하더군."정씨 부인의 숨이 턱 막혔다. 머릿속의 피가 일순간 차갑게 식는 듯한 충격에 두 눈이 크게 흔들렸다. 그네가 가장 높이 솟구쳤을 때 아래에서 올려다보던 돌쇠에게만 스치듯 내보였던 그 찰나의 붉은빛을, 맞은편에 앉아 있던 이 여인이 고스란히 훔쳐본 것이다. 핏기가 가신 채 굳어버린 정씨 부인의 옆얼굴을 바라보며, 윤씨 부인의 눈꼬리가 가늘게 휘어졌다."그리 사색이 될 것 없네. 나는 자네의 그 붉고 뜨거운 속내를 이미 오래전부터 잘 알고 있었으니."윤씨 부인이 부채를 조금 더 바싹 당겨 가리며, 풍물 소리에 묻힐 만큼 낮고도 또렷한 목소리로 귓가에 속삭였다."지난겨울 그날 밤, 물레방아 도는 소리가 참으로 요란했지. 칠흑같이 어두운 방앗간 구석에서... 자네만 내 부끄러운 짓을 훔쳐본 줄 알았는가?"정씨 부인의 입술이 하얗게 질리며 파르르 떨렸다. 빠져나갈 구멍이 보이지 않는 파멸의 예감이 정수리를 덮쳤다."나 역시 틈이 벌어진 낡은 판자벽 너머로... 그 체구 큰 종놈의 품에 안겨 숨을 죽이며 자지러지던 자네의 모습을 똑똑히 보았다네."심장이 철렁 내려앉았다. 어둠 속에 숨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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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1부: 붉은 치마 9

9. 은밀한 협박: 푸른 수풀의 덫정씨 부인은 혀가 굳어버린 듯 단 한마디도 내뱉지 못했다. 정씨 부인보다 나이가 열 살은 더 많고, 사내의 맛을 훨씬 일찍부터 알아버린 윤씨 부인이 나른하고도 여유로운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처음 밖에서 기척이 났을 때는 가슴이 내려앉는 듯 놀라 박 생원을 밀치고 달아나려 했지. 허나, 그 뼈대 높은 김 대감 댁의 정숙한 청상과부가 한밤중에 웬 건장한 머슴과 물레방앗간을 찾은 연유가... 나와 다를 바 없으리라 생각하니 묘하게 안심이 되더군."윤씨 부인의 젖은 눈빛이 정씨 부인의 하얀 목덜미와 쇄골 언저리를 느릿하게 훑어 내렸다."오히려 판자벽 너머에서 자네와 그 사내가 숨을 죽인 채 우리를 지켜보고 있다 생각하니... 내 몸이 걷잡을 수 없이 더 달아올라 참을 수가 없었네."그것은 점잖은 사대부가 부인들이 나눌 법한 대화가 아니었다. 규방의 예법을 벗어던진 여인의 가장 노골적이고도 음란한 고백이었다."이는 나와 자네가 무덤에 들어갈 때까지 함께 안고 가야 할 비밀일세. 허나, 거래란 본디 공평해야 하지 않겠나?"윤씨 부인이 부채 아래에서 손을 뻗어 정씨 부인의 차가운 손목을 쥐었다."그날 밤 자네가 어둠 속에서 내 모습을 끝까지 지켜보았듯, 이번에는 나도 두 눈으로 똑똑히 보아야... 서로 똑같이 목줄을 쥐고 내 들끓는 속도 비로소 안식을 얻지 않겠는가."우아한 미소로 포장된 가장 치명적인 협박이었다."오늘 해 질 녘, 잔치가 파하고 돌아가는 길목에 사람 키만큼 무성하게 우거진 강가 푸른 수풀이 있네. 그곳에 먼저 가 숨어 기다리겠네. 처신을 잘 생각하시게."윤씨 부인이 정씨 부인의 귓가에 마지막 쐐기를 박아 넣었다."같은 반상의 홀아비와 정을 통한 나는 들켜도 기껏해야 집안의 매질이나 장형(杖刑)으로 끝날 허물이나... 천한 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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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1부: 붉은 치마 10

10. 두려움과 반격: 푸른 수풀을 향한 맹세윤씨 부인은 독초 같은 말만 남겨둔 채,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고상하게 치맛자락을 여미며 자기 자리로 돌아갔다. 정씨 부인은 화문석 위에 꼿꼿이 앉아 있었으나, 뱃속은 까마득한 낭떠러지로 무너져 내리는 듯했다. 윤씨 부인의 입을 막지 못한다면 자신과 돌쇠의 목숨은 물론, 가문 전체가 풍비박산 나는 참극이 당장 눈앞의 현실로 닥쳐올 터였다.정씨 부인은 떨리는 손으로 무릎 위의 치맛자락을 꽉 움켜쥐며 흔들리는 정신을 다잡았다. 두려움에 짓눌려 저 여인에게 목줄을 잡힌 채 끌려다닌다면 평생 노예처럼 휘둘리다 끝내 파멸하고 말 것이다. 이 숨 막히는 덫에서 살아남으려면, 윤씨 부인이 진정으로 굶주려 있는 것이 무엇인지 정확히 꿰뚫어 보고 역으로 그녀의 약점을 쥐어야만 했다.'내가 판자벽 너머에서 지켜보는 것이 오히려 제 몸을 더 달아오르게 했다 하였지.'지난겨울 이후 수개월 동안 입을 다물고 있던 윤씨 부인이, 하필 오늘에서야 그 속내를 드러낸 까닭은 분명했다. 방금 전 모래판 위에서 거친 땀을 쏟아내며 상대를 메다꽂던 돌쇠의 묵직한 체구와 사내다운 기백을 눈으로 보고, 억눌러왔던 그녀의 음심이 걷잡을 수 없이 타올랐기 때문이었다. 윤씨 부인이 들이민 협박의 본질이 도덕적 단죄가 아니라, 타인의 은밀한 교합을 훔쳐보며 제 갈증을 채우려는 비틀린 욕망이라는 사실을 깨닫자, 창백하게 질려 있던 정씨 부인의 입가에 서늘하고도 요염한 미소가 번졌다.'저 굶주린 여인의 눈앞에서, 사방이 막히지 않은 강가 푸른 수풀 한가운데 누워 보란 듯이 돌쇠를 품는다.'귓가를 울리는 심장 박동이 다시금 거세게 요동쳤다. 멸문지화의 공포가 쓸고 지나간 아랫배 깊은 곳으로, 누군가 숨어서 지켜보는 시선 아래 사내와 몸을 섞는다는 아찔한 배덕감이 불길처럼 치밀어 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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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2부: 수풀 속 밀회 1

1. 법도의 굴레를 벗어던진 귀가해는 서산 너머로 느릿하게 기울고 있었다. 단오장의 들뜬 꽹과리 소리와 모래판의 거친 함성이 등 뒤로 썰물처럼 아득하게 멀어졌다. 축제의 부산한 기운이 잦아들수록, 앞서거니 뒤서거니 걷는 두 사람 사이의 공기는 오히려 끊어질 듯 팽팽하게 당겨졌다.석양은 만동 땅을 검붉게 물들이며 산등성이 너머로 고개를 떨구었다. 저무는 하늘도 불탔고, 굽이치는 강물도 짙은 노을을 머금었으며, 정씨 부인의 흰 삼베 치마 아래 은밀하게 감춰진 명주 속치마 역시 뜨거운 열기로 달아올라 있었다. 눈에 닿는 세상의 모든 빛깔이 그녀의 억눌린 단전(丹田)처럼 더운 숨을 몰아쉬는 듯했다.인적이 끊긴 강가 갈림길에 이르렀을 때, 정씨 부인은 백혜(白鞋)를 신은 발걸음을 우뚝 멈췄다."삼월아."그녀가 차분한 목소리로 뒤따르던 몸종을 불렀다."너는 먼저 집으로 돌아가 안채 청소를 해두어라. 시어머니 약탕도 미리 불에 올려두고. 나는 한낮의 뙤약볕에 열이 올라 강바람에 머리를 좀 식히며 천천히 걷고 싶구나.""하오나 마님, 날이 이리 어둑하게 저물어 가는데...""낮에 모래판에서 장정들을 내던지던 돌쇠를 보지 않았느냐. 든든한 돌쇠가 뒤를 따르고 있으니 염려 말고 어서 가거라."명은 단호했다.사대부가 안방마님의 거역할 수 없는 위엄에 삼월이는 잠시 주저하다가 이내 고개를 숙이고 종종걸음으로 앞서 걸어갔다.몸종의 뒷모습이 굽어진 흙길 너머로 완전히 사라질 때까지, 정씨 부인은 그 자리에 서서 미동조차 하지 않았다. 세간의 번거로운 눈초리를 물리치고, 오직 더운 피를 나눌 사내만 곁에 남겨두려는 치밀한 수순이었다.어스름이 내려앉는 길 위에 남은 것은 두 사람뿐이었다. 흰 소복으로 제 몸을 겹겹이 감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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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2부: 수풀 속 밀회 2

2. 금지된 길: 푸른 수풀의 미로"이쪽이다."정씨 부인이 치맛자락을 여며 쥐며 발걸음의 방향을 틀었다.그녀가 거침없이 들어선 곳은 반듯하게 다져진 큰길이 아니었다. 강변을 따라 사람 키보다 훌쩍 높게 우거진 초여름의 푸른 수풀과 물억새 사이, 산짐승들이 몸을 비비며 만들어놓은 좁고 거친 오솔길이었다. 한번 그 짙은 녹음 속으로 발을 들이면, 바깥세상에서는 결코 안을 들여다볼 수 없는 두꺼운 풀잎의 장막이었다.사락, 사스락.무성하게 자라난 풀잎들이 저녁 강바람에 서로 몸을 부비며 스산한 소리를 냈다. 그 소리는 타인의 시선을 가로막는 푸른 벽이었고, 깨어난 본능에 몸을 맡기라고 등을 떠미는 대지의 속삭임이었다.돌쇠는 거친 숨을 억누르며 묵묵히 그녀의 등 뒤를 바짝 따랐다. 그는 본능적으로 알고 있었다. 마님이 어찌하여 걷기 편한 한길을 버려두고 이 습하고 으슥한 강가 수풀 속으로 제 발로 들어왔는지, 그녀의 타오르는 속내가 지금 무엇을 간절히 부르고 있는지를.앞서 걷는 그녀의 흰 겉치마 자락이 억센 풀잎에 스쳐 나부낄 때마다, 그 좁은 틈새로 진홍빛 비단 자락이 언뜻언뜻 모습을 드러냈다. 낮에 그네터 허공에서 사내의 눈을 멀게 했던 바로 그 붉은 명주 속치마였다. 사내의 발걸음을 깊은 곳으로 끌어들이는 무언의 부름이자, 어서 다가와 자신의 시린 몸에 더운 숨결을 불어넣어 달라고 손짓하는 붉은 불씨였다.돌쇠는 코끝으로 더운 김을 훅 토해냈다.대낮 모래판에서 진동하던 마른 흙먼지 냄새는 이미 씻겨 나갔고, 이제 축축한 강물의 물비린내와 짙은 풀내음, 그리고 앞서 걷는 여인의 옷깃에서 스며 나오는 은은하고도 농밀한 살내음이 그의 코끝을 가득 메웠다. 그 향기는 사내의 남은 이성을 태우고 등줄기를 찌릿하게 달구어, 아랫배 단전의 열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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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2부: 수풀 속 밀회 3

3. 도발과 확인앞서 걷던 정씨 부인이 걸음을 멈췄다. 그녀는 돌쇠를 향해 고개를 돌리며 나직한 목소리로 물었다."오늘 단오장에서 최 대감 댁 윤씨 부인의 그 번들거리던 눈초리를 보았느냐? 지난겨울 물레방앗간에서... 그 여인도 판자벽 너머로 우리의 기척을 알고 있었다 하더구나."돌쇠는 놀라는 기색 없이 눈 하나 깜빡이지 않았다. 깊고 어두운 두 눈은 오히려 차분하게 가라앉아 있었다. 그는 낮게 가라앉은 목소리로 대답했다."소인도 어렴풋이 짚어내고 있었습니다요. 그날 밤 박 생원 나리가 윤씨 마님의 치마폭 아래 얼굴을 묻고 숨을 몰아쉴 때, 판자벽 틈새 쪽으로 흘끔거리던 그 마님의 눈빛과 가빠지던 숨결이 심상치 않았습니다요."정씨 부인의 입술이 놀라움으로 살짝 벌어졌다."그리 알고 있었으면서 어찌 내게는 일찍 고하지 않았느냐?"돌쇠가 건장한 체구로 그녀의 앞에 한 발짝 다가서며 더운 숨을 내쉬었다."마님께서 아시면 괜한 속앓이로 밤잠을 설치실 터이고, 윤씨 마님 역시 제 몸에 묻은 허물이 있어 섣불리 입을 놀리지 못할 것이라 여겼기 때문입니다요. 지아비가 있는 반가의 부인이 야심한 밤에 외간 사내와 방앗간 흙바닥을 뒹굴었으니, 그 또한 입 밖에 꺼내지 못할 무거운 죄가 아니겠습니까요."정씨 부인의 눈동자에 야릇한 빛이 스쳤다."허면 이제 어찌해야 하겠느냐. 그 여인이 기어이 우리가 몸을 섞는 모습을 두 눈으로 똑똑히 보아야만 입을 다물겠다며, 지금 이 수풀 어딘가에 먼저 와 숨어 기다리고 있다 하였다."돌쇠가 정씨 부인의 흰 목덜미에 더운 입김이 닿을 만큼 바싹 다가가 속삭였다."단맛을 본 여우가 남의 살 섞는 광경을 훔쳐보며 제 갈증을 채우고 싶어 애를 태우는 겝니다요. 그러니 평생 잊지 못할 뜨거운 불길을 눈앞에 똑똑히 보여주어, 감히 다른 말을 꺼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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