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핏빛 칠을 한 괴물의 아가리, 열녀문마침내 그 흉물스러운 것이 종택 대문 밖을 가로막고 섰다.눈이 멀 듯 쏟아지는 한낮의 뙤약볕 아래, 미리 세워두었던 거대한 나무 기둥에 붉은 단청이 칠해지고 푸른 기와지붕이 얹힌 정려각이 모습을 드러냈다. 그리고 오늘 아침, 그 처마 한가운데로 관아에서 당도한 나무 현판이 걸렸다. 매서운 칼끝으로 생살을 도려내듯 깊고 굵게 파인 해서체의 글귀가 또렷하게 새겨져 있었다.‘열녀 진사 김씨지처 정씨지문.’일찍이 진사시에 합격했으나 요절한 지아비의 이름 뒤에 매달려 숨통이 묶인 며느리의 성씨. 가문의 영광을 알리는 거룩한 표식이라 일컬어졌으나, 실상은 더운 피가 도는 젊은 여인의 이마에 찍어 내린 낙인이었다. 살아 있는 육신을 산 채로 삼키기 위해 아가리를 벌린 괴물의 형상과도 같았다.대문 앞에서 현판식이 거행되었다.관아에서 나온 지방 수령과 관속들이 점잔을 빼며 헛기침을 해댔고, 마을 어귀부터 지축을 흔드는 요란한 꽹과리 소리가 울려 퍼졌다. 붉은 나무 기둥 앞에 차려진 향상에서는 가문의 조상에게 이 영광을 고하는 고유제의 잿빛 향 연기가 피어올랐다. 가마솥에서 끓어오르는 떡 냄새, 동네 사람들이 흙바닥에 흘린 탁주의 시큼한 누룩 냄새, 그리고 눈과 코를 찌르는 매캐한 향불 냄새. 그 역겹게 뒤엉킨 냄새들이 바람을 타고 안채까지 스며들었다."아이고, 김 대감 댁 청상 며느리가 결국 큰일을 해냈구먼. 하늘이 내린 정절이야.""요절한 김 진사 나리 덕에 우리 동네에도 부역을 면해주는 은전이 떨어지려나. 잔치 떡이 참으로 달고 찰지구나."축하를 건네는 구경꾼들의 낯빛은 속내가 훤히 들여다보일 만큼 얄팍했다. 젊은 과부가 방 안에 갇혀 피를 말리며 시들어갈수록, 가문과 마을에 떨어지는 나라의 혜택과
Last Updated : 2026-10-26 Read mor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