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ll Chapters of 13년 전 회사로 돌아왔습니다.: Chapter 1 - Chapter 10

74 Chapters

13년차 주임

1화. 13년차 주임내 이름은 김기리.오늘도 출근한다.그리고 나는—대기업 SG그룹에 다니는 13년 차 직장인이다.여기까지만 들으면 꽤 괜찮은 인생처럼 보일지도 모른다.대기업.13년 근속.나름대로 안정적인 직장.그런데 하나만 더 붙여보자.13년 차 주임.…….그래.주임이다.“13년인데 아직도 주임이냐고?”나도 안다.그러니까 제발 묻지 마라.나도 그게 제일 궁금하니까.오전 7시 18분.현관문을 열자 차가운 아침 공기가 얼굴을 때렸다.“하…….”자동으로 한숨이 나온다.정말.1진짜.정말로.출근하기 싫다.그래도 한 가지 다행인 점이 있다면 자취방과 회사가 가깝다는 것.차를 탈 필요도 없다.걸어서 10분.물론 출근하기 싫은 사람에게 회사가 가깝다는 게 정말 장점인지는 모르겠다.멀면 핑계라도 댈 텐데.나는 가방을 어깨에 걸치고 회사까지 터벅터벅 걸었다.저 멀리 SG그룹 건물이 보였다.13년 전 처음 저 건물을 봤을 때는 가슴이 두근거렸다.전문대를 졸업하고 운 좋게 들어온 대기업.부모님도 좋아하셨다.친구들도 부러워했다.나 역시 그랬다.‘열심히 해야지.’‘여기서 인정받고 올라가야지.’그때는 정말 그렇게 생각했다.그러나 13년이 지난 지금.내 머릿속에 드는 생각은 단 하나였다.‘집에 가고 싶다.’출근도 안 했는데 벌써 퇴근하고 싶었다.“안녕하십니까.”사무실에 들어가자마자 습관적으로 허리를 숙였다.2“팀장님, 안녕하십니까.”장성호 팀장이 안경 너머로 나를 힐끗 바라봤다.“어, 김주임.”그리고 출근한 지 정확히 3분 만에 내 하루가 시작됐다.“어제 그 업무 규정하고 관련 자료 다 들고 와봐.”“네?”“그리고 어제 보고한 개선안 말이야.”장 팀장이 서류를 책상에 탁 내려놓았다.“해결방안이 이것밖에 안 돼?”“아, 그 부분은 관련 부서하고 협의해서—”“협의?”장 팀장의 목소리가 올라갔다.아.왔다.“협의해서 언제 할 건데?”“오늘 오전 중으로 다시—”“홍파트장!”사무실이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09-18
Read more

2화. 두 번째 첫 출근

2화. 두 번째 첫 출근2013년 1월 16일.SG그룹 입사 첫날.나는 침대 위에 앉은 채 한동안 휴대전화 화면만 바라봤다.2013년 1월 16일.화면을 껐다.다시 켰다.여전히 2013년이었다.“……말도 안 되는데.”고개를 들어 벽에 붙은 달력을 확인했다.2013년 1월.책상 위에는 낯익은 서류봉투가 놓여 있었다.SG그룹 신입사원 입사 안내.나는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났다.혹시 몰라 볼을 세게 꼬집었다.“아악!”아프다.확실히 아팠다.꿈에서 느끼는 어설픈 통증이 아니었다.“꿈은 아닌 것 같고…….”나는 거울 앞으로 다가갔다.그리고 그대로 굳었다.“미친.”거울 속 남자는 서른아홉 살의 내가 아니었다.1눈 밑에 달라붙어 있던 피로가 사라졌다.잔주름도 없다.술과 야근에 찌든 얼굴도 아니었다.스물여섯.처음 SG그룹에 입사했을 때의 김기리였다.나는 무심코 머리카락을 쓸어 넘겼다.손가락 사이로 빽빽한 머리카락이 느껴졌다.“와…….”감탄이 절로 나왔다.“이때는 머리도 많았네.”잠깐 감동했다.그러다 곧 정신을 차렸다.“아니지. 지금 그게 중요한 게 아니잖아.”나는 급히 휴대전화를 집어 들었다.그리고 가장 먼저 익숙한 번호를 눌렀다.뚜르르르.몇 번의 신호음 뒤, 목소리가 들렸다.“여보세요?”나는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목소리가 젊었다.기억 속보다 훨씬 힘이 있었다.“……엄마?”“왜? 출근 준비 안 하고 뭐 하니?”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엄마였다.2정말로.13년 전의 엄마.“엄마.”“왜 그래?”“그냥…….”목이 이상하게 잠겼다.사고가 나기 전날 밤.엄마에게 전화가 왔었다.나는 받지 않았다.진급도 못 했다.결혼도 못 했다.주식은 몇 년째 처박혀 있었다.괜히 내 인생이 초라하게 느껴져서 가족들 전화조차 피했다.그런데 지금.그 목소리를 다시 듣고 있었다.“그냥 전화해봤어.”엄마가 웃었다.“얘가 오늘 이상하네. 첫 출근이라 긴장돼?”“응.”나도 웃었다.“조금.”“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09-18
Read more

3화. 신입사원이 회식을 너무 잘한다

금요일 저녁.SG그룹 인근의 한 삼겹살집.문을 열자 긴 테이블 두 개와 스무 명 가까운 팀원들이 보였다.“기리야! 여기 앉아!”이 과장이 손을 흔들었다.“네, 과장님!”나는 막내 자리로 자연스럽게 들어갔다.13년 전의 나는 이 자리에서 엄청나게 긴장했다.누가 술잔을 주면 무조건 받아야 하는 줄 알았고, 삼겹살을 구우라고 하면 새까맣게 태웠고, 소주도 맥주도 주는 대로 마셨다.그 결과.화장실.변기.기절.그리고 다음 날부터 한동안 ‘첫 회식에서 뻗은 놈’이었다.하지만 지금의 나는 다르다.나는 집게를 들었다.삼겹살을 올리고 핏기가 올라오기를 기다린 뒤 정확한 타이밍에 뒤집었다.마늘은 가장자리, 김치는 기름 흐르는 방향, 버섯은 타지 않게 옆쪽.이 과장이 감탄했다.“야, 기리야. 너 고기 좀 구워봤냐?”“아버지 따라 고깃집을 좀 다녔습니다.”거짓말이다.회사 따라 다녔다.13년 동안.“이야. 신입이 센스가 있네.”‘1점.’회사생활은 일만 잘한다고 끝이 아니었다.특히 이 시절에는 회식, 인사, 눈치, 술자리, 리액션이 생각보다 컸다.잠시 후 박정태 팀장이 술잔을 들었다.“자. 오늘 신입도 들어왔고, 새해도 시작됐고. 다들 고생 많았습니다.”“네, 팀장님!”“올해도 우리 팀 사고 없이 잘해봅시다.”그러다 갑자기 내 쪽을 바라봤다.“기리.”“네!”“신입 들어왔으니까 건배사 한번 해봐.”모든 시선이 나에게 꽂혔다.13년 전에는 머릿속이 하얗게 변해서 ‘열심히 하겠습니다! 위하여!’라고 끝냈다.하지만 이번에는 수많은 회식과 인터넷에서 쌓인 건배사 데이터베이스가 있다.나는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났다.“제가 입사한 지 얼마 안 돼서 아직 회사에 대해서는 잘 모릅니다. 하지만 오늘 한 가지는 확실하게 느꼈습니다.”사람들이 나를 바라봤다.“좋은 회사는 건물이 만드는 것도 아니고, 이름이 만드는 것도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결국 함께 일하는 사람들이 만드는 것 같습니다.”몇몇 선배들이 고개를 끄덕였다.“그래서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09-20
Read more

4화. 동팔이 계몽 프로젝트

“여보세요?”김동팔.고등학교 친구.그리고 지금은 아직 간호학과 학생이다.“야, 동팔아.”“왜 전화했어?”……그래.이 말투였다.“어. 그냥 해봤지.”“그럼 끊는다.”“야!”“왜?”“왜 바로 끊어?”“할 말 없잖아.”맞다.이게 김동팔이었다.“야, 뭐 하냐?”“그냥.”“오늘 뭐 할 건데?”“몰라.”“밥은?”“먹겠지.”대화가 안 된다.‘몰라.’‘피곤해.’‘바빠.’‘내가 알아서 뭐 하게.’‘너랑 상관없어.’사람과 일정한 거리를 두고 사는 인간.지금 생각하면 그게 단순히 성격 때문만은 아니었을지도 모른다.동팔이는 학창 시절 오랫동안 괴롭힘을 당했다.사람을 믿었다가 상처받고, 친구라고 생각했던 사람들이 어느 순간 적이 되는 경험을 반복했다.가까워지지 않으면 배신당할 일도 없다.그때의 나는 그런 걸 이해하지 못했다.그저 답답하다고만 생각했다.“야. 오늘 시간 되냐?”“왜?”“한번 보자.”“귀찮아.”“밥 사줄게.”“다음에 보자.”김동팔의 ‘다음에 보자’는 약속이 아니다.번역하면 ‘당분간 볼 생각 없음’이다.나는 바로 승부수를 던졌다.“뷔페 사준다.”잠깐 조용해졌다.“……무슨 뷔페?”‘걸렸다.’“고기뷔페.”“어디?”나는 웃었다.“너 진짜 변한 게 하나도 없구나.”“뭐가.”“아니다.”잠시 고민하던 동팔이가 말했다.“그럼…… 갈게.”역시 사람을 움직이려면 정확한 보상이 있어야 한다.특히 김동팔은.***저녁.고기뷔페.내 앞의 스물여섯 살 김동팔은 기억 속 모습 그대로였다.조금 통통했다.아니, 많이 통통했다.나는 녀석의 배를 슬쩍 봤다.“야. 너 살 좀 빼라.”“내가 왜?”“건강해야지.”“건강한데.”“여자친구는 안 만들 거야?”“귀찮아.”“결혼은?”“몰라.”“돈은?”“없어.”“주식은?”“관심 없어.”“부동산은?”“그걸 내가 왜 알아야 돼?”나는 젓가락을 내려놓았다.“너 인생에 관심이 있긴 하냐?”동팔이는 고기를 먹으며 말했다.“살아지겠지.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09-20
Read more

5화. 과거를 바꾸는 여행

강릉으로 향하는 고속도로.차창 밖으로 겨울 풍경이 빠르게 흘러갔다.조수석에 앉은 동팔이는 출발한 지 한 시간이 지났는데도 별말이 없었다.휴대전화를 보고, 잠깐 자고, 창밖을 보고, 또 휴대전화를 본다.나는 운전대를 잡은 채 슬쩍 녀석을 쳐다봤다.‘그래. 이때는 진짜 이랬지.’서른 중후반이 되어서는 같이 해외여행도 다녔다.호텔에서 밤새 술을 마시기도 했고, 별 의미 없는 이야기를 몇 시간씩 떠들기도 했다.그런데 지금의 동팔이는 달랐다.사람과 사람 사이에 벽 하나를 세워놓고 사는 것 같았다.나는 결국 입을 열었다.“야, 동팔아.”“왜?”“너 나 친구로 생각은 하냐?”동팔이가 나를 쳐다봤다.“뭐…… 그렇지?”“뭐 그렇지는 뭐 그렇지야.”“그럼 뭐라고 해.”“근데 넌 친구한테 왜 이렇게 벽을 치냐?”동팔이의 표정이 미묘하게 굳었다.“내가 뭘.”“전화하면 왜 전화했냐고 하고, 그냥 전화했다고 하면 끊는다고 하고.”“할 말 없잖아.”“친구끼리는 할 말 없어도 전화하는 거야.”“왜?”“…….”나는 할 말을 잃었다.“야. 친구끼리 밥도 먹고, 여행도 가고, 쓸데없는 얘기도 하고 그러는 거야.”동팔이가 잠시 침묵했다.그러더니 툭 내뱉었다.“너도 예전에 장난쳤잖아.”“뭐?”“여자 소개.”순간 기억 한 조각이 튀어나왔다.아.그 사건.예전에 내가 아는 사람을 통해 동팔이에게 여자 한 명을 소개해준 적이 있었다.정확히는 지인의 지인.나도 제대로 알지 못하던 사람이었다.문제는 나중에 알게 됐다.그 여자는 이미 결혼한 사람이었다.심지어 동팔이에게 돈까지 빌려달라고 했었다.나는 황당해서 동팔이에게 말했다.‘야, 나도 몰랐어.’그걸로 끝난 줄 알았다.그런데 동팔이는 몇 년 동안 내가 일부러 그런 여자를 소개했다고 생각하고 있었다.“설마 너 아직도 내가 일부러 그런 여자 소개해준 거라고 생각하냐?”동팔이는 대답하지 않았다.그 침묵이 답이었다.“야. 진짜 그렇게 생각했어?”“그때 네가 웃었잖아.”“웃었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09-20
Read more

6화. 신입사원의 보고서

휴대전화 화면에 떠 있는 이름.박정태 팀장.나는 잠깐 미연의 메시지를 바라봤다가 곧바로 통화 버튼을 눌렀다.“네, 팀장님. 김기리입니다.”“김사원, 지금 어디야?”“강릉에 와 있습니다.”“강릉?”“친구와 여행을 왔습니다. 그런데 회사에 문제가 있다고 전달받았습니다. 바로 내려가겠습니다.”박팀장은 의외로 화를 내지 않았다.“제품 결함이 하나 발생했어. 월요일 아침에 바로 보고가 들어가야 할 것 같아. 현황하고 원인 추정, 재고 상황, 대응계획까지 정리해야 돼.”예전의 김기리였다면 머리가 하얘졌을 것이다.하지만 지금의 나는 13년 동안 불량, 고객 클레임, 협력사 문제, 재고 격리, 원인 분석, 대책서, 임원 보고를 수도 없이 겪었다.‘고작 이거?’나는 차분하게 대답했다.“팀장님. 현재 확보된 자료부터 먼저 확인해서 보고 양식을 만들어놓겠습니다. 현황하고 발생수량, 재고, 원인추정, 임시조치, 향후계획까지 틀을 잡아놓고 내려가서 현물만 확인하면 바로 업데이트할 수 있게 해놓겠습니다.”전화기 너머가 잠시 조용했다.“할 수 있겠어?”“해보겠습니다. 일요일 오전까지는 자료 공유드리겠습니다.”“그래. 내려올 때 안전운전하고.”“네, 팀장님.”전화를 끊었다.지금까지는 회식, 인사, 눈치로 점수를 땄다면 이번에는 진짜 업무다.그런데 문득 생각이 스쳤다.“13년 뒤라면 AI로 만들 텐데.”하지만 지금은 2013년.그런 건 없다.‘AI는 없어도 나는 있잖아.’13년 동안 이런 보고서를 수백 번은 만든 내가.어떤 문구를 박팀장이 좋아하는지, 어떤 순서로 자료를 배치해야 질문이 덜 나오는지, 어느 부분을 강조해야 하는지 알고 있다.미래기술보다 지금 더 쓸모 있는 건 13년짜리 경험이었다.그 전에 할 일이 하나 더 있었다.나는 코트를 집어 들고 미연을 만나러 나갔다.***겨울 바닷가.미연은 해변 근처 벤치에 앉아 있었다.“기리 씨.”“오래 기다리셨어요?”“아뇨. 저도 방금 나왔어요.”잠시 사소한 이야기를 나눴다.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09-20
Read more

7화. 이번에는 사람에게 휘둘리지 않는다

월요일.주말을 통째로 갈아 넣어 만든 보고는 무사히 끝났다.다행히 임원 보고까지 별다른 문제 없이 넘어갔다.박정태 팀장은 아침 회의를 마치며 말했다.“주말에 다들 고생했어. 특히 김사원. 입사한 지 얼마 안 됐는데 고생 많았고.”주변 사람들의 시선이 잠깐 나에게 쏠렸다.“아닙니다, 팀장님.”별것 아닌 한마디.하지만 이 회사에서는 이런 한마디가 생각보다 크다.박정태.이 팀에서 가장 영향력이 큰 사람.그 사람이 공개적으로 신입사원을 칭찬했다.13년 전의 나는 몰랐다.그저 ‘열심히 하면 알아주겠지’라고 생각했다.천만의 말씀.회사에서는 일을 잘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누가 내가 일을 잘한다고 알고 있느냐도 중요하다.‘시작은 좋네.’그런데 문제가 하나 있었다.돈.***통장 잔액을 확인한 나는 한동안 화면만 바라봤다.“……하.”적다.너무 적다.사회초년생.월급도 지금 기준으로 보면 귀엽다.자취방 월세, 관리비, 통신비, 식비, 보험, 각종 생활비.다 빼면 얼마 남지 않는다.그리고 이 시절의 나는 돈을 받으면 받는 대로 썼다.친구 만나면 내가 사고, 술 먹으면 내가 계산했다.대기업 들어갔다고 괜히 어깨에 힘이 들어갔다.‘야, 내가 살게.’그 말을 얼마나 많이 했던가.나보다 집안 좋은 녀석도 있었고 부모님 집에서 살며 월세도 안 내는 친구도 있었는데, 자취하던 내가 밥을 샀다.왜?대기업 다니니까.“가스라이팅 제대로 당했네.”누가 강제로 시킨 것도 아니다.내가 스스로 했다.이번에는 안 한다.친구가 중요하지 않다는 게 아니다.하지만 내 미래를 깎아가면서까지 사람들에게 잘 보일 필요는 없다.13년을 살아보니 안다.밥을 백 번 산다고 남는 친구가 있고, 한 번도 사지 않아도 끝까지 남는 친구가 있다.반대로 내가 계속 베풀 때만 옆에 있는 사람도 있다.이번에는 구분한다.쓸 곳에는 쓰고, 모을 돈은 모은다.“일단 종잣돈부터.”큰 투자 기회를 알아도 돈이 없으면 아무 소용 없다.나는 메모장을 열었다.월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09-20
Read more

8화. 장성호 과장

“김기리.”뒤에서 익숙한 목소리가 들렸다.고개를 돌렸다.장성호 과장이 서 있었다.젊다.당연하지만 젊었다.13년 뒤의 장성호와 비교하면 얼굴에 살도 덜 붙었고 머리도 훨씬 풍성했다.무엇보다 지금은 아직 팀장이 아니다.“요즘 우리 신입사원 잘나가던데?”“제가요?”“박팀장님이 칭찬을 다 하시더라고. 박팀장님 입에서 ‘괜찮다’는 말 나오는 거 쉽지 않은데.”나는 웃었다.“운이 좋았습니다.”“운? 회사에서 운도 실력이야.”그 말.기억난다.장성호는 툭툭 농담을 던지고 적당히 칭찬하고 상대가 기분 나쁘지 않을 정도로 장난치는 사람이었다.처음에는 참 좋은 선배라고 생각했다.하지만 지금 나는 이 인간의 성격을 너무 잘 안다.장성호는 권위적이다.상대가 자기 말에 토를 다는 걸 싫어한다.자기 논리가 틀렸다고 지적하는 건 더 싫어한다.말투, 인사, 보고 자세, 술자리에서 잔을 받는 방식까지 사소한 걸 다 본다.한번 마음속에 사람을 분류하면 오래 간다.‘쟤는 예의가 없다.’‘쟤는 나를 무시한다.’그 순간부터 끝이다.문제는 부하직원만 그러는 것도 아니라는 것이다.윗사람과도 싸운다.자기보다 직급이 높다고 무조건 숙이는 사람도 아니다.‘레벨이 높아.’박팀장은 공략법이 단순했다.성실, 책임감, 깔끔한 보고.장성호는 다르다.13년을 같이 일한 나조차 끝까지 비위 맞추기 어려웠던 사람이다.하지만 지금 나는 신입이다.아직 경쟁자가 아니다.나는 살짝 웃었다.“과장님한테 많이 배우겠습니다.”장성호가 나를 바라봤다.“나한테?”“네. 선배님들이 과장님 일 잘하신다고 많이 이야기하시던데요.”사실이다.싫어하는 사람들도 장성호의 능력 자체를 무시하지는 못했다.장성호 입꼬리가 올라갔다.“누가 그래?”“여기저기서 들었습니다. 그리고 과장님은 외모도 좋으셔서.”장성호가 빵 터졌다.“야, 야. 신입이 사회생활을 어디서 배웠냐?”주변에 있던 사람들이 웃었다.나도 같이 웃었다.“진짜입니다.”“됐어, 인마.”장성호가 기분 좋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09-22
Read more

9화. 이제 돈이다

9화. 이제 돈이다==================================================주말 정오.나는 약속 장소 앞에 서서 휴대전화를 몇 번이나 확인했다.12시 03분.저 멀리 익숙한 얼굴이 보였다.미연이었다.“기리 씨!”미연이 웃으며 손을 흔들었다.“오셨어요?”“많이 기다렸어요?”“아뇨. 저도 방금 왔어요.”거짓말이다.20분 전에 왔다.첫 번째 삶에서도 그랬다.미연을 만나는 날이면 괜히 일찍 나왔다.“오늘 뭐 먹어요?”“믿고 따라오세요.”“뭔데요?”“가보시면 압니다.”그럴 수밖에.이미 한 번 검증이 끝난 맛집이니까.***식당에 들어선 미연의 눈이 동그래졌다.“멸치쌈밥?”“네. 혹시 싫어하세요?”“아뇨! 저 이거 진짜 좋아해요.”알고 있다.첫 번째 삶에서도 같이 왔었다.잠시 후 음식이 나왔다.미연은 쌈 하나를 싸서 먹더니 눈을 크게 떴다.“와. 진짜 맛있어요!”“왜요?”“기리 씨. 제가 이런 거 좋아하는 건 어떻게 알았어요?”움찔.회귀자의 최대 난관.미래를 너무 많이 알고 있다는 것.“제가 사람 보는 눈이 좀 있습니다.”“거짓말. 무슨 얼굴만 보고 멸치쌈밥 좋아하는지 알아요?”“한식 좋아하게 생기셨잖아요.”“그게 어떻게 생긴 건데요?”“음…… 참하게?”“뭐예요!”미연이 웃었다.나도 따라 웃었다.***식사를 마치고 밖으로 나오자 미연이 물었다.“이제 뭐 해요?”“카페 가죠. 신상 카페 하나 찾아놨습니다.”미연의 눈이 바로 반짝였다.역시.미연은 예쁜 카페를 좋아했다.특히 새로 생긴 곳, 사진 찍기 좋은 곳, 창가 자리.“소금빵도 맛있다고 하더라고요.”미연이 걸음을 멈췄다.“저 소금빵 좋아하는데.”안다.아주 잘 안다.“그래요?”나는 능청스럽게 되물었다.미연이 이상한 사람 보듯 바라봤다.“기리 씨. 진짜 저 예전에 알았어요?”“왜요?”“이상해요. 한식 좋아하는 것도 맞히고, 멸치쌈밥도, 카페도, 소금빵까지.”나는 잠시 입을 다물었다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09-22
Read more

10화. 내가 몰랐던 사람

10화. 내가 몰랐던 사람==================================================인생 2회차.생각보다 잘 풀리고 있었다.미연과의 연애도 순조로웠고, 돈도 예전처럼 흥청망청 쓰지 않았다.월급이 들어오면 먼저 저축하고 조금씩 투자했다.회사생활 역시 나쁘지 않았다.박정태 팀장에게는 신뢰를 얻었다.전진주와도 친해졌고, 장구미와도 먼저 관계를 만들어 놓았다.장성호 과장에게도 적당히 비위를 맞추며 찍히지 않고 있었다.그리고 무엇보다 장성호가 그 사고를 치기까지 아직 약 2년.‘2년만 버티면 된다.’그 사건이 터지는 순간 이번에는 그냥 넘어가지 않는다.그날이 오기 전까지는 모든 게 순항하는 줄 알았다.***“오늘 회장님 오신다.”아침부터 사무실 분위기가 달랐다.SG그룹 회장이 직접 우리 공장을 방문하는 날이었다.최근 투자한 신규 설비와 주요 생산라인을 둘러보고 현장 투자 진행상황까지 확인한다고 했다.이런 날은 평소 회사와는 완전히 달라진다.청소, 정리, 복장, 문서, 심지어 책상 위 볼펜 방향까지 신경 쓴다.그때 문득 오래된 기억 하나가 떠올랐다.‘아.’오늘 자재팀인지 구매팀인지 박 차장이 잘렸었지.전 직원이 청소하던 중 어디 구석진 곳에 짱박혀 쉬다가 잠들었고, 하필 높은 사람이 그 모습을 봤다.말해줄까?잠시 고민했다.‘굳이?’그 사람과 별다른 인연도 없었다.평소에도 근무태도 문제로 이야기가 많았다.모든 미래를 고치는 게 내 역할은 아니다.나는 지나쳤다.***오전 9시가 조금 넘었을 무렵.박정태 팀장이 회의실에서 사람들을 불렀다.“회장님 현장 투어 끝나고 대표님께 주요 업무 보고 들어간다. 파트별로 보고자료 준비해.”“장 과장. 설비 투자 현황.”“네.”“이 과장. 기존 설비 운영현황하고 문제점.”“알겠습니다.”“장구미. 공정 개선 관련.”“네, 팀장님.”그리고 마지막으로 나를 바라봤다.“김기리.”“네!”“자네도 이번에 하나 만들어봐. 최근 품질 대응하고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09-22
Read more
PREV
123456
...
8
SCAN CODE TO READ ON APP
DMCA.com Protection Statu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