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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화. 두 번째 첫 출근

Autor: STARGIL
last update Fecha de publicación: 2026-09-18 23:38:50

2화. 두 번째 첫 출근

2013년 1월 16일.

SG그룹 입사 첫날.

나는 침대 위에 앉은 채 한동안 휴대전화 화면만 바라봤다.

2013년 1월 16일.

화면을 껐다.

다시 켰다.

여전히 2013년이었다.

“……말도 안 되는데.”

고개를 들어 벽에 붙은 달력을 확인했다.

2013년 1월.

책상 위에는 낯익은 서류봉투가 놓여 있었다.

SG그룹 신입사원 입사 안내.

나는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혹시 몰라 볼을 세게 꼬집었다.

“아악!”

아프다.

확실히 아팠다.

꿈에서 느끼는 어설픈 통증이 아니었다.

“꿈은 아닌 것 같고…….”

나는 거울 앞으로 다가갔다.

그리고 그대로 굳었다.

“미친.”

거울 속 남자는 서른아홉 살의 내가 아니었다.

1눈 밑에 달라붙어 있던 피로가 사라졌다.

잔주름도 없다.

술과 야근에 찌든 얼굴도 아니었다.

스물여섯.

처음 SG그룹에 입사했을 때의 김기리였다.

나는 무심코 머리카락을 쓸어 넘겼다.

손가락 사이로 빽빽한 머리카락이 느껴졌다.

“와…….”

감탄이 절로 나왔다.

“이때는 머리도 많았네.”

잠깐 감동했다.

그러다 곧 정신을 차렸다.

“아니지. 지금 그게 중요한 게 아니잖아.”

나는 급히 휴대전화를 집어 들었다.

그리고 가장 먼저 익숙한 번호를 눌렀다.

뚜르르르.

몇 번의 신호음 뒤, 목소리가 들렸다.

“여보세요?”

나는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목소리가 젊었다.

기억 속보다 훨씬 힘이 있었다.

“……엄마?”

“왜? 출근 준비 안 하고 뭐 하니?”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엄마였다.

2정말로.

13년 전의 엄마.

“엄마.”

“왜 그래?”

“그냥…….”

목이 이상하게 잠겼다.

사고가 나기 전날 밤.

엄마에게 전화가 왔었다.

나는 받지 않았다.

진급도 못 했다.

결혼도 못 했다.

주식은 몇 년째 처박혀 있었다.

괜히 내 인생이 초라하게 느껴져서 가족들 전화조차 피했다.

그런데 지금.

그 목소리를 다시 듣고 있었다.

“그냥 전화해봤어.”

엄마가 웃었다.

“얘가 오늘 이상하네. 첫 출근이라 긴장돼?”

“응.”

나도 웃었다.

“조금.”

“긴장하지 말고. 회사 가면 인사 잘하고, 모르는 거 있으면 잘 물어보고.”

“응.”

“그리고 밥 잘 챙겨 먹어. 회사 들어갔다고 너무 무리하지 말고.”

그 말을 듣는 순간 웃음이 나왔다.

3무리하지 말라니.

앞으로의 나는 휴가 중에도 전화를 받게 된다.

주말에도 출근한다.

새벽까지 일을 하고.

심지어 자다가 회사 전화가 울리는 꿈을 꾸게 된다.

엄마는 그걸 아직 모른다.

“엄마.”

“응?”

“건강해야 돼.”

전화기 너머가 잠시 조용해졌다.

“갑자기 무슨 소리야?”

“아니. 그냥.”

“싱겁긴. 얼른 준비해. 첫날부터 늦으면 큰일이다.”

“알겠어.”

전화를 끊고도 한동안 휴대전화를 내려놓지 못했다.

이유는 모르겠다.

왜 돌아왔는지.

어떻게 돌아왔는지.

사고가 정말 있었던 건지.

혹시 내가 죽은 건 아닌지.

아무것도 알 수 없었다.

하지만 딱 하나는 확실했다.

나는 지금 살아 있었다.

그것도 13년 전의 몸으로.

“영화에서나 나오는 건 줄 알았는데.”

4헛웃음이 나왔다.

회귀.

시간을 거슬러 과거로 돌아간다.

드라마나 소설에서 보면 주인공들이 꼭 며칠씩 혼란스러워한다.

그런데 막상 내가 겪어보니 의외였다.

생각보다 빨리 받아들여졌다.

어차피 답을 찾을 수 없다면 고민해봤자 소용없었다.

꿈이면 꿈인 대로.

환상이면 환상인 대로.

다시 주어진 삶이라면.

이번에는 제대로 살아보자.

나는 거울 속의 스물여섯 살 김기리를 바라봤다.

“좋아.”

그리고 천천히 말했다.

“다시 해보자.”

그 순간.

한 사람의 얼굴이 떠올랐다.

장성호.

13년 뒤.

나를 회식 자리에서 공개적으로 깎아내리던 그 팀장.

내 회사생활을 끊임없이 꼬이게 만든 남자.

“장성호…….”

나는 기억을 더듬었다.

2013년이면 장성호는 아직 팀장이 아니었다.

아마 과장이었을 것이다.

5그리고 나와 크게 부딪친 것도 아직 한참 뒤였다.

“대충 3년 뒤였나.”

이 시절의 장성호는 오히려 평판이 나쁘지 않았다.

능글맞았다.

농담도 잘했다.

후배들 어깨를 툭툭 치면서 말을 잘 걸어주는 선배였다.

술자리 분위기도 잘 띄웠다.

나도 처음에는 그를 좋아했다.

장성호는 종종 내게 말했다.

‘기리야. 회사생활 너무 어렵게 생각하지 마.’

그때는 그 말이 꽤 멋있게 들렸다.

나중에야 알았다.

그 인간이 얼마나 영악한지.

자기 일은 밑으로 떠넘겼다.

문제가 생기면 담당자가 책임졌다.

성과가 나오면 본인이 가져갔다.

임원들이 있는 자리에서는 누구보다 부지런했다.

부하직원 앞에서는 완전히 다른 사람이 됐다.

아랫사람의 작은 실수는 끝까지 기억했다.

반면 자기 실수는 신기할 정도로 다른 사람 책임이 됐다.

무엇보다 사내정치에 능했다.

누가 어느 임원 라인인지.

누가 누구와 술을 마시는지.

누가 다음 인사에서 올라갈지.

그런 냄새를 기가 막히게 맡았다.

6회사 사람들도 알고 있었다.

“장성호?”

누군가는 고개를 끄덕였고.

누군가는 질색했다.

실력 있는 사람이라고 말하는 이도 있었다.

정치꾼이라고 욕하는 이도 있었다.

그때의 나는 생각했다.

회사는 친목회가 아니니까.

결국 성과를 내는 사람이 인정받는 게 맞는 거 아닐까.

그런데 지금의 나는 안다.

성과를 내는 것과.

남의 성과를 빼앗는 건 전혀 다른 일이라는 걸.

나는 거울을 바라보며 피식 웃었다.

“아직 과장이구나.”

급할 건 없었다.

우리 사이가 틀어진 사건은 3년 뒤다.

지금부터 장성호를 공격할 필요도 없다.

오히려 더 좋은 기회였다.

이번에는 지켜볼 수 있으니까.

장성호가 어떻게 사람을 이용하는지.

어떤 라인을 타는지.

누구에게 붙고.

누구를 버리는지.

13년 전의 나는 아무것도 몰랐다.

하지만 지금은 아니다.

7나는 이미 결과를 알고 있다.

그에 비해 장성호는 아무것도 모른다.

자기 앞에 다시 나타날 신입사원이.

13년 뒤의 자신을 너무 잘 알고 있다는 사실을.

“재밌겠네.”

나도 모르게 입꼬리가 올라갔다.

그러자 자연스럽게 다른 사람들이 떠올랐다.

내 첫 사수.

여자 선배였다.

사람은 정말 좋았다.

문제는 내가 입사하고 한 달쯤 뒤 결혼 때문에 퇴사했다는 것이다.

그리고 인수인계는…….

“정말 아무것도 안 가르쳐주고 가셨지.”

웃음이 나왔다.

당시의 나는 죽는 줄 알았다.

전표 하나 처리하는 법도 몰랐다.

시스템 입력 하나에도 진땀을 뺐다.

무슨 문제가 생기면 누구에게 물어봐야 하는지도 몰랐다.

그런데 지금은?

13년을 굴렀다.

그 시절 업무 따위는 눈 감고도 한다.

“오히려 너무 잘하면 문제겠네.”

신입사원이 업무 시스템을 능숙하게 다룬다?

그건 그것대로 수상하다.

적당히 헤매야 한다.

8모르는 척도 해야 한다.

딱 이 정도면 좋다.

‘신입인데 눈치가 빠르네.’

‘얘는 좀 센스가 있네.’

그 정도.

그때였다.

문득 또 다른 얼굴이 떠올랐다.

미연.

나는 입술을 달싹였다.

“아…….”

전 여자친구.

지금 생각하면 좋은 여자였다.

착했고.

순수했고.

무엇보다 힘들 때 내 편을 들어줬다.

그런데 스물여섯 살의 김기리는 그걸 몰랐다.

대기업에 들어갔겠다.

나이도 젊었겠다.

괜히 자신감이 넘쳤다.

이 여자도 한번 만나보고 싶고.

저 여자도 궁금했다.

괜히 미연과 다른 여자들을 비교했다.

간도 봤다.

결국 헤어졌다.

그 뒤에도 몇 번 연애를 했다.

9하지만 서른아홉이 되어서 돌이켜보니.

“미연이만 한 여자도 별로 없었는데.”

조금 아쉬웠다.

아니.

많이 아쉬웠다.

나는 잠시 감상에 젖었다.

그러다 거울 속 내 얼굴을 다시 봤다.

스물여섯.

젊다.

아주 젊다.

“……그래도.”

나는 턱을 만졌다.

“이번엔 다른 여자들도 좀 만나봐야 하지 않나?”

결국 피식 웃음이 터졌다.

“사람 성격 어디 안 가네.”

회귀했다고 갑자기 성인이 되는 건 아닌 모양이다.

미연은 나중에 생각하자.

대신 한 가지는 확실하게 다짐했다.

이번 생은 다르게 산다.

돈.

연애.

회사생활.

전부 잡는다.

나는 손가락을 하나씩 접었다.

“일단 돈.”

102013년.

돈 벌 기회가 얼마나 많았던가.

그런데 바로 현실적인 문제가 떠올랐다.

“아.”

나는 머리를 감싸 쥐었다.

“로또 번호라도 외워놓을걸.”

회귀물 주인공들은 대체 로또 번호를 어떻게 기억하는 거지?

나는 지난주 번호도 모른다.

비트코인?

오른다는 건 기억난다.

그런데 정확히 언제 사고 언제 팔아야 하는지는 희미하다.

주식?

13년 동안 그렇게 주식을 했는데.

기억나는 종목은 아이러니하게도 내가 처참하게 물렸던 종목뿐이다.

“진짜 쓸모없는 기억력이네.”

그래도 괜찮았다.

큰 흐름은 알고 있다.

어떤 산업이 성장했는지.

어떤 회사가 뜨는지.

부동산이 언제 크게 움직이는지.

그리고 무엇보다.

SG그룹에서 앞으로 벌어질 일은 상당히 많이 기억한다.

그걸로 충분했다.

나는 정장을 꺼내 입었다.

넥타이를 맸다.

11거울 앞에서 머리를 정리했다.

그리고 다시 나를 바라봤다.

“김기리.”

거울 속 스물여섯 살의 내가 나를 바라본다.

“두 번째 회사생활이다.”

그러다 한 사람이 더 떠올랐다.

“아.”

내 얼굴이 굳었다.

현재 팀장.

박정태.

“하필 이때 팀장이 그 인간이었지.”

장성호보다 훨씬 무서웠던 사람.

직원들 사이 별명은 하나였다.

호랑이 박팀장.

겉으로만 보면 점잖았다.

말투도 차분했다.

가끔 웃으면 인상도 나쁘지 않았다.

그런데 업무만 시작되면 사람이 달라졌다.

철저한 군대식 문화.

출근은 상사보다 빨라야 한다.

밥은 빨리 먹어야 한다.

보고서는 간결해야 한다.

오타 하나도 용납하지 않는다.

그리고 상사가 남아 있는데 부하가 먼저 퇴근하는 것도 싫어했다.

무엇보다 회식을 좋아했다.

12정말 지독하게 좋아했다.

예전의 나는 박팀장만 보면 얼어붙었다.

그 앞에서 보고하려고 하면 말이 꼬였다.

질문 하나만 들어와도 머리가 하얘졌다.

하지만 지금 생각해보면.

“공략법이 너무 단순하잖아.”

나는 웃었다.

인사 크게.

출근 빠르게.

보고 정확하게.

일 깔끔하게.

회식 참석.

밥 빨리 먹기.

술잔 비면 채우기.

싫다고 티 내지 않기.

군대식 인간에게는 군대식으로 맞춰주면 된다.

그리고 중요한 사실이 하나 있었다.

장성호가 유독 잘 따르던 선배.

바로 박정태 팀장이었다.

“그래.”

퍼즐이 조금씩 맞아가는 느낌이었다.

어쩌면 내 회사생활은 장성호와 크게 싸운 3년 뒤부터 꼬인 게 아닐지도 모른다.

이미 이때부터.

아주 조금씩.

뭔가 어긋나기 시작했던 걸지도 모른다.

13그렇다면 이번에는.

시작부터 바꾸면 된다.

SG그룹 정문 앞.

나는 한참 건물을 올려다봤다.

이상한 기분이었다.

13년 동안 거의 매일 드나들었던 곳.

지긋지긋했던 곳.

꿈에서까지 나왔던 곳.

그런데 다시 보니 묘하게 반가웠다.

“진짜 돌아왔네.”

사원증을 단말기에 댔다.

삑.

출입문이 열렸다.

나는 천천히 안으로 들어갔다.

로비.

복도.

구내식당으로 이어지는 통로.

벽에 붙어 있던 옛 회사 슬로건.

하나하나가 기억 속 그대로였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그 시절에는 그렇게 싫었던 것들이 지금은 조금 그리워 보였다.

사무실 문을 열었다.

“안녕하십니까!”

누군가 나를 바라봤다.

14“어? 기리 씨 왔어요?”

내 사수였다.

젊었다.

정말 젊었다.

나는 순간 멍하니 그녀를 바라봤다.

13년 뒤에는 연락 한 번 하지 않는 사이가 됐던 사람.

그런데 지금은 눈앞에서 웃고 있었다.

“네. 안녕하십니까!”

사수가 웃었다.

“아침부터 목소리 좋네요.”

나는 주변을 둘러봤다.

이 과장.

조 파트장.

잊고 있었던 얼굴들이 하나씩 눈에 들어왔다.

‘이 과장님.’

그땐 잔소리가 그렇게 싫었는데.

지금 보니 반갑다.

그리고 조현석 파트장.

내 시선이 잠시 멈췄다.

‘조 파트장님…….’

몇 년 뒤.

조 파트장은 암 진단을 받는다.

오랫동안 치료를 받았고.

회사에서도 한동안 모습을 보이지 않았다.

당시에는 크게 생각하지 않았다.

15그저 회사 선배였다.

잔소리하는 파트장.

일을 시키는 상사.

그 정도였다.

그런데 지금.

건강한 얼굴로 책상 앞에 앉아 있는 모습을 보니 묘한 감정이 올라왔다.

‘이때는 이렇게 건강했었구나.’

사람들은 회사 안에서 서로를 미워한다.

누가 평가를 잘 받았는지.

누가 승진했는지.

누가 누구 라인을 탔는지.

그런 걸로 질투하고.

싸우고.

상처받는다.

나 역시 그랬다.

그런데 13년의 시간을 한 번 살아보고 돌아오니.

조금은 다르게 보였다.

사람은 결국 늙는다.

아프기도 한다.

떠나기도 한다.

그런데 우리는 왜 그렇게 회사에 목숨을 걸었을까.

“기리 씨?”

사수의 목소리에 정신을 차렸다.

“아, 네!”

바로 그때.

16사무실 안쪽에서 묵직한 목소리가 들렸다.

“김기리.”

몸이 먼저 반응했다.

고개를 돌렸다.

박정태 팀장이 나를 보고 있었다.

예전의 나라면 저 얼굴만 보고도 긴장했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의 나는 다르다.

나는 13년 동안 팀장도 상대했다.

임원도 상대했다.

고객사도.

협력사도.

화난 사람도.

말도 안 통하는 사람도.

수없이 상대했다.

박팀장 정도면?

‘할 만하지.’

나는 허리를 숙였다.

그리고 배에 힘을 줬다.

“반갑습니다, 팀장님!”

목소리가 사무실 전체에 울렸다.

주변 사람들이 슬쩍 나를 쳐다봤다.

박팀장의 눈이 조금 커졌다.

잠시 후 그가 만족스럽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어. 기리 왔는가.”

“네, 팀장님!”

17박팀장이 피식 웃었다.

“목소리 하나는 좋네.”

‘좋아.’

나는 속으로 웃었다.

첫 점수.

회귀 2회차.

이 정도는 쉽다.

박팀장이 손짓했다.

“이따가 시간 되면 차 한잔하지.”

“네. 알겠습니다.”

그 말을 듣자 오래된 기억이 떠올랐다.

‘아.’

박팀장은 차를 무척 좋아했다.

녹차.

보이차.

둥굴레차.

이름도 모르는 차까지.

뭔 차를 그렇게 많이 마셨는지.

그때는 팀장이 불러서 차를 마시자고 하면 괜히 긴장부터 했다.

하지만 지금은 안다.

박팀장에게 차 한잔은 단순히 차를 마시는 시간이 아니다.

사람을 관찰하는 시간이다.

말투.

태도.

성격.

18신입사원이 어떤 인간인지 슬쩍 떠보는 자리.

‘좋아.’

나는 속으로 중얼거렸다.

‘이번에는 제대로 맞춰주지.’

그리고 또 하나의 기억이 떠올랐다.

회식.

아마 오늘이었나.

아니면 며칠 뒤였나.

이 시절에는 회식이 너무 많아서 날짜가 정확히 기억나지 않는다.

하지만 첫 회식만큼은 기억난다.

왜냐하면.

“……나 그때 뻗었었지.”

정확히는 처참하게 뻗었다.

신입사원의 패기를 보여주겠답시고 선배들이 주는 술을 전부 받아 마셨다.

소주.

맥주.

폭탄주.

또 소주.

그 결과.

첫 회식에서 화장실을 붙잡고 인생을 반성했다.

다음 날에는 사무실의 웃음거리가 됐다.

하지만 이번은 다르다.

나는 양손을 내려다봤다.

13년.

그동안 얼마나 많은 회식장을 누볐던가.

19소주.

맥주.

폭탄주.

삼겹살.

소고기.

회.

닭갈비.

족발.

수많은 고기와 술을 거치며 내 몸에는 회사원의 기술이 새겨졌다.

고기 굽기.

상사 잔 확인하기.

적절한 타이밍에 물 마시기.

술 센 척하지 않기.

술 취한 척하면서 속도 조절하기.

상사가 했던 이야기를 처음 듣는 것처럼 웃어주기.

완벽하다.

나는 피식 웃었다.

‘박팀장.’

이번에는 예전의 신입사원 김기리가 아니다.

13년 동안 회식장을 버틴 남자다.

주량 만렙.

고기 굽기 만렙.

눈치 만렙.

그 모든 경험치를 가진 신입사원이.

지금 SG그룹에 다시 입사했다.

20“이번 회사생활…….”

나는 자리로 걸어가며 조용히 웃었다.

“생각보다 재밌겠는데?”

2화 끝

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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Último capítulo

  • 13년 전 회사로 돌아왔습니다.   74화. 등산복의 호랑이

    2019년 2월 2일.토요일 오전 아홉 시 오십 분.온천천 공원.박정태는 먼저 와 있었다.등산복.운동화.종이컵 커피 두 개.회사 밖의 호랑이는 공원 벤치에 앉은 아저씨였다.머리가 많이 셌다.2014년 회사를 떠날 때보다 훨씬.그가 종이컵 하나를 내밀었다.“설탕 넣었다. 너 예전에 믹스 마셨잖아.”나는 받았다.지금은 믹스를 안 마신다.첫 번째 삶의 서른 중반부터 끊었다.두 번째 삶에서는 다시 마신 적이 없다.그런데 이 사람은.2013년의 신입이 믹스를 마시던 걸 기억했다.“감사합니다.”한 모금 마셨다.달았다.* * *“본사에서 전화 왔다.”박정태가 먼저 말했다.“장구미라는 사람이 작년에 진술서를 냈다더라. 본사가 그걸 보다가 네 신입 때 일까지 거슬러 올라갔대. 거기 내 이름이 나온다고. 당시 팀장으로.”“네.”“너 신입 때. 대표 보고자료 양식 바뀐 거 모르고 깨진 날 있었지.”“네.”“그다음 날 내가 널 깼지. 양식도 모르냐고.”박정태가 커피를 내려다봤다.“기억 안 났는데. 전화 받고 나서 기억났다.”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그리고 감사 건.”박정태가 종이컵을 벤치 위에 내려놓았다.“본사에서 물어보더라. 2013년 긴급 변경. 당시 진술 기억하냐고. 정정할 의향 있냐고.”박정태가 나를 봤다.“네가 신청했냐?”“아닙니다. 저는 작년 5월에 팀장님께 문자 드린 게 전부입니다. 본사에는 장 과장님 진술과 섞지 말아달라고 했습니다. 그건 팀장님이 직접 하셔야 하는 거라고.”박정태가 고개를 끄덕였다.“그래서 본사가 나한테 직접 물은 거구나.”* * *한참 말이 없었다.조깅하는 사람들이 지나갔다.유모차.개를 데리고 걷는 노부부.박정태가 말했다.“그때.”그리고 멈췄다.“긴급 변경 건을 구두로 진행하라고 했지.”“네.”“고객사가 급하다고 해서. 서류는 나중에 하라고.”“네.”“그런데 감사에서는 네가 절차를 충분히 확인하지 않았다고 말했다.”바람이 불었다.“왜 그러셨습니까

  • 13년 전 회사로 돌아왔습니다.   73화. 조건 없는 화해는 없다

    장구미의 마지막 출근일.오후 다섯 시.장구미가 박스를 들고 사무실을 나갔다.몇 명이 고개만 까딱했다.장성호는 자리에 없었다.본부장 보고라고 했다.나는 엘리베이터 앞까지 따라갔다.* * *엘리베이터를 기다리며 장구미가 말했다.“기리야.”“네.”“우리 이제 괜찮은 거지?”나는 장구미를 봤다.“뭐가요.”“나 진술서도 썼고. 정정 신청도 했고. 사과도 했고.”장구미가 박스를 고쳐 들었다.“창원 가면 주말에 낚시 다닐 거야. 거기 저수지 좋대. 너도 한번 와. 밥 한번 먹자. 편하게.”편하게.엘리베이터 숫자가 내려오고 있었다.7.6.5.나는 생각했다.장구미는 오늘 많은 걸 했다.3년 전의 장구미라면 절대 못 했을 것들.진술서.본인이 한 일부터.정정 신청.자기 이름으로.단서.확인 안 된 건 확인 안 됐다고.그리고 사과.이유를 붙여서.그런데.그걸로 우리가 괜찮아지는 건가.* * *첫 번째 삶에서 나는 장구미를 13년 동안 미워했다.정확히는.미워하는지도 모르고 미워했다.두 번째 삶에서 나는 장구미를 5년 동안 기록했다.날짜.시각.무엇을 뺐는지.그 기록이.오늘 장구미의 진술서로 돌아왔다.그리고 장구미는.이제 괜찮은 거냐고 묻는다.4.3.“선배님.”“응.”“진술서 쓰신 거. 정정 신청하신 거. 그건 제가 고맙다고 안 하겠다고 했습니다.”“그랬지.”“그건 원래 하셨어야 하는 거라서요.”“…….”“그런데 낚시는요.”장구미가 나를 봤다.“낚시는 아직입니다.”* * *2.1.엘리베이터 문이 열렸다.장구미가 타지 않았다.“아직?”“네. 아직.”장구미의 얼굴이 조금 굳었다.“기리야. 나 할 만큼 했잖아.”“네. 하셨습니다.”“그럼.”“선배님이 할 만큼 하신 거랑. 제가 괜찮은 거랑은 다른 것 같습니다.”엘리베이터 문이 닫히려 했다.장구미가 버튼을 눌렀다.다시 열렸다.“5년이었습니다. 두 번째 입사부터.”나는 조심스럽게 말했다.두 번째 입사.그 말이 이상

  • 13년 전 회사로 돌아왔습니다.   72화. 송별회 없는 퇴사

    11월 마지막 주.장구미의 마지막 주였다.송별회는 없었다.사무실에서 아무도 제안하지 않았다.장성호는 당연히.다른 사람들은 장성호 눈치를 봤다.장 과장이 팀장 찌르고 나간다.그게 공식적인 이야기가 됐다.* * *2016년 철호 형의 송별회에는 네 명이 왔다.장구미의 송별회는.열리지 않았다.나는 그게 옳은지 모르겠었다.장구미는 철호 형과 달랐다.철호 형은 회사가 투명하게 만든 사람이었다.장구미는 다른 사람을 투명하게 만든 사람이었다.나를.민수를.정비 기사 한 명을.그런데 마지막에.자기 이름으로 그걸 고쳤다.그 사람의 마지막 주에.아무도 밥을 먹자고 하지 않았다.* * *수요일.전진주가 내 자리로 왔다.“기리야.”“네.”“장 과장 금요일 마지막이지.”“네.”전진주가 목소리를 낮췄다.“점심 한번 하자. 셋이.”나는 전진주를 봤다.2016년 철호 형의 송별회에 온 사람.팀장 안 오는 자리에 왜 왔냐는 질문에 대답하지 않은 사람.“선배님이 먼저 말씀하시는 거 처음입니다.”“나도 처음이다.”전진주가 입가를 만졌다.“장 과장 진술서. 3-2번에 팀장 지시 메일 첨부했잖아. 2017년 해외설비 확정 기재 건.”“네.”“그 메일 참조에 나도 있었어. 나도 알았어. 그때.”전진주가 웃었다.“근데 나는 아무것도 안 했지.”* * *금요일 점심.공장 밖 국밥집.2016년 민수와 앉았던 그 집.장구미.전진주.나.그리고 민수가 뒤늦게 왔다.“저도 가도 됩니까.”장구미가 민수를 봤다.“너는 왜.”“선배님 진술서 2-2번에 제 이름도 있었습니다. 2017년 발표에서 추적 검사 주관자를 빼셨다고.”민수가 자리에 앉았다.“그거 쓰신 거 감사해서요.”장구미가 멈췄다.“감사할 일이 아니야.”“네. 기리 선배님도 그렇게 말씀하셨을 것 같았습니다. 그래서 감사하다고는 안 하고. 밥만 먹으려고 왔습니다.”전진주가 웃었다.장구미도 웃었다.* * *국밥이 나왔다.넷이 먹었다.별 얘기는 없었

  • 13년 전 회사로 돌아왔습니다.   71화. 먼저 고친 사람

    장구미의 진술서는 화요일에 제출됐다.인사팀.감사팀.그리고 본인이 요청해서 참조로 강태원 본부장.사무실에 소문이 퍼지는 데 반나절이 걸렸다.“장 과장이 팀장 찔렀대.”“나가면서 판 엎고 가는 거지.”“본사 오 대리까지 들어갔다며.”사람들은 3번만 이야기했다.2번은.아무도 이야기하지 않았다.* * *장성호는 그날 오후 회의실에 틀어박혔다.본부장실에 두 번 불려갔다.돌아와서 나를 봤다.그 눈을 나는 알았다.첫 번째 삶에서.2020년 어느 날.회식 자리에서 나를 공개적으로 망신 준 날.그 전에 저 눈을 봤다.“김 주임.”“네.”“잠깐.”회의실.장성호가 문을 닫았다.“너지.”“뭐가요.”“장구미 그거. 네가 시킨 거지.”나는 장성호를 봤다.“아닙니다.”“장구미가 혼자 그런 걸 쓸 애야? 2번, 3번, 4번. 그거 네 방식이잖아. 네가 쓰는 메일이랑 똑같아.”맞았다.형식은 내 방식이었다.그런데.“검토는 했습니다. 장 과장님이 요청하셔서. 내용은 장 과장님이 쓰셨습니다. 본인이 한 일부터요.”“그게 네가 시킨 거지.”“팀장님.”나는 목소리를 높이지 않았다.“장 과장님 진술서 2번에 제 이름이 두 번 나옵니다. 피해자로요. 제가 시켰으면 왜 거기에 제 이름을 넣었겠습니까. 3번만 쓰게 했겠죠.”장성호가 멈췄다.* * *“김 주임.”장성호가 의자에 앉았다.처음으로.나보다 낮은 눈높이.“너 이게 무슨 뜻인지 알아?”“압니다.”“나 징계 들어갈 수도 있어.”“압니다.”“2월 회의록 수정. 그거 나 혼자 한 거 아니야.”나는 장성호를 봤다.“본사에서 톤 맞추라고 했어. 영찬이가. 3월 설명회 있다고. 나는 전달한 거야.”“장 과장님 진술서 4번에 그렇게 돼 있습니다. 오 대리의 메신저가 직접 지시인지는 확인 못 했다고.”“그러니까.”“팀장님이 확인하시면 됩니다. 오 대리가 뭐라고 했는지. 팀장님 이름으로요.”장성호가 웃었다.“너 진짜 무섭다.”“팀장님.”나는 한 걸음 물러섰다.

  • 13년 전 회사로 돌아왔습니다.   70화. 본인 진술

    장구미는 일주일 동안 나와 말하지 않았다.업무 메일만 오갔다.품질기획 취합 자료.회의록.그리고 월요일 아침.사내 메일 하나.수신 : 김기리.제목 : 검토 요청.첨부 : 진술서_장구미_초안.docx* * *열었다.제목.부산공장 품질·미국법인 일정 관련 사실 진술서.진술인 : 장구미.진술 목적.본인은 2016년부터 2018년까지 부산공장에서 수행한 보고 업무와 관련하여, 본인이 직접 경험하고 기록을 보유한 사실을 진술함. 본인의 퇴사와 무관하게 사실관계를 남기기 위함.본인이 한 일.나는 멈췄다.2번 항목이 ‘본인이 한 일’이었다.2-1. 2016년 3월, 2호라인 양산 개시 보고서 작성 시 검증 담당자(김기리)의 조건(초도 출하 잠정 승인, 추적 검사)을 삭제하고 작성자 칸에서 검증 담당자 이름을 제외함. 삭제는 팀장 지시였으나, 작성자 칸 제외는 본인 판단임.2-2. 2017년 3월, 2호라인 개선 성과 발표 시 원인분석·고객 대응 주관자(김기리)를 ‘실무 지원’으로 기재함. 본인 판단임.2-3. 2018년 2월, 설비 제작사 주간 회의록 리스크 2항(승인 일정 영향)을 삭제한 수정본을 작성함.본인이 지시받은 일.3-1. 2018년 2월 회의록 수정은 장성호 팀장의 구두 지시(2월 22일 오후 회의실)와 메신저 확인(첨부 1)에 따름. 동일 주, 본사 전략기획 오영찬 대리로부터 ‘공장 리스크 보고는 본사와 사전 조율’하라는 메신저(첨부 2)를 받음.3-2. 2017년 3월 해외설비 승인 일정 ‘확정’ 기재는 장성호 팀장 지시(메일, 첨부 3).본인이 확인하지 못한 것.4-1. 오영찬 대리의 메신저가 회의록 수정을 직접 지시한 것인지, 일반적인 협의 요청인지는 본인이 판단할 수 없음. 첨부 원문 그대로 제출함.4-2. 장성호 팀장의 지시가 상부 지시에 따른 것인지 여부는 알지 못함.* * *나는 문서를 끝까지 읽었다.그리고 처음으로 돌아가 다시 읽었다.2번이 3번보다 앞에 있었다.본인이 한 일.본인이 지

  • 13년 전 회사로 돌아왔습니다.   69화. 자료만 두고 가겠다

    10월.장구미에게 인사 조치가 내려왔다.미국법인 기술지원 담당에서 해제.부산공장 품질기획 지원으로 전보.과장 직급은 유지.사실상 좌천이었다.사무실에서는 말이 많았다.“과장 달자마자.”“이사회 보고에 이름 올라갔다며.”“본인이 수정했다고 인정했대.”인정했대.사람들은 그 부분만 기억했다.* * *장구미의 새 자리는 우리 파트 옆이었다.품질기획 지원.엑셀 취합.회의록 정리.과장이 할 일이 아니었다.장구미는 아무렇지 않은 얼굴로 일했다.그리고 점심을 혼자 먹었다.2013년.내가 신입일 때.장구미는 늘 사람들에 둘러싸여 밥을 먹었다.일 잘하는 선배.정치 잘하는 선배.지금은 식당 구석에서 혼자.서연이 배식대에서 나에게 작게 말했다.“저분. 요즘 매일 혼자 드셔.”“알아.”“반 남기셔.”나는 장구미 쪽을 봤다.반 남긴 식판.치사한 짓 한 날은 반 남기고.진 날은 다 먹는 거야.장구미는 둘 중 뭘까.* * *10월 셋째 주 금요일.퇴근 시간.장구미가 내 자리로 왔다.손에 작은 봉투.“기리야. 이거.”나는 봉투를 봤다.USB 하나.“뭡니까.”“네가 쓸 데 있을 거야.”장구미가 봉투를 책상 위에 놓았다.“2016년부터 올해까지. 팀장이 나한테 보낸 메일. 메신저 캡처. 2월 회의록 원본이랑 수정 지시 받은 메신저. 영찬이랑 주고받은 거.”나는 USB를 봤다.2월 수정 지시.누가 수정하라고 했는지.경위서에 쓰지 않은 이름.그게 이 안에 있었다.“선배님.”“응.”“이걸 왜 저한테 주십니까.”“나 다음 달에 나가.”장구미가 웃었다.“이직 확정됐어. 중견 부품사. 과장으로. 이사회 보고 건은 거기서 아직 몰라.”아직.“그래서 이건 너한테 주고 가려고. 너는 이 회사 오래 있을 거잖아. 쓸 데가 있을 거야.”* * *나는 USB를 들지 않았다.“선배님은요?”“나?”“이걸 제가 쓰면. 선배님은 어디 계십니까.”장구미가 멈췄다.“나는 없지. 나갔으니까.”“그러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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