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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화. 동팔이 계몽 프로젝트

Author: STARGIL
last update publish date: 2026-09-20 13:19:18

“여보세요?”

김동팔.

고등학교 친구.

그리고 지금은 아직 간호학과 학생이다.

“야, 동팔아.”

“왜 전화했어?”

……그래.

이 말투였다.

“어. 그냥 해봤지.”

“그럼 끊는다.”

“야!”

“왜?”

“왜 바로 끊어?”

“할 말 없잖아.”

맞다.

이게 김동팔이었다.

“야, 뭐 하냐?”

“그냥.”

“오늘 뭐 할 건데?”

“몰라.”

“밥은?”

“먹겠지.”

대화가 안 된다.

‘몰라.’

‘피곤해.’

‘바빠.’

‘내가 알아서 뭐 하게.’

‘너랑 상관없어.’

사람과 일정한 거리를 두고 사는 인간.

지금 생각하면 그게 단순히 성격 때문만은 아니었을지도 모른다.

동팔이는 학창 시절 오랫동안 괴롭힘을 당했다.

사람을 믿었다가 상처받고, 친구라고 생각했던 사람들이 어느 순간 적이 되는 경험을 반복했다.

가까워지지 않으면 배신당할 일도 없다.

그때의 나는 그런 걸 이해하지 못했다.

그저 답답하다고만 생각했다.

“야. 오늘 시간 되냐?”

“왜?”

“한번 보자.”

“귀찮아.”

“밥 사줄게.”

“다음에 보자.”

김동팔의 ‘다음에 보자’는 약속이 아니다.

번역하면 ‘당분간 볼 생각 없음’이다.

나는 바로 승부수를 던졌다.

“뷔페 사준다.”

잠깐 조용해졌다.

“……무슨 뷔페?”

‘걸렸다.’

“고기뷔페.”

“어디?”

나는 웃었다.

“너 진짜 변한 게 하나도 없구나.”

“뭐가.”

“아니다.”

잠시 고민하던 동팔이가 말했다.

“그럼…… 갈게.”

역시 사람을 움직이려면 정확한 보상이 있어야 한다.

특히 김동팔은.

***

저녁.

고기뷔페.

내 앞의 스물여섯 살 김동팔은 기억 속 모습 그대로였다.

조금 통통했다.

아니, 많이 통통했다.

나는 녀석의 배를 슬쩍 봤다.

“야. 너 살 좀 빼라.”

“내가 왜?”

“건강해야지.”

“건강한데.”

“여자친구는 안 만들 거야?”

“귀찮아.”

“결혼은?”

“몰라.”

“돈은?”

“없어.”

“주식은?”

“관심 없어.”

“부동산은?”

“그걸 내가 왜 알아야 돼?”

나는 젓가락을 내려놓았다.

“너 인생에 관심이 있긴 하냐?”

동팔이는 고기를 먹으며 말했다.

“살아지겠지.”

참 명언이다.

“동팔아. 넌 나중에 간호사 될 거지?”

“아마.”

“아마가 아니라 될 거야.”

“어떻게 알아?”

“그냥 느낌이 그래.”

사실 알고 있다.

동팔이는 서른두 살쯤 결국 간호사가 된다.

늦었지만 꽤 성실하게 자기 자리를 잡는다.

문제는 그 전까지다.

재테크도, 사람 만나는 것도, 연애도 모두 귀찮아했다.

아무리 말해도 바뀌지 않았다.

동팔이는 설명으로 바뀌는 인간이 아니었다.

직접 보고 느끼고 본인이 납득해야 움직였다.

‘그래서 여행이었지.’

우리가 가까워진 계기도 여행이었다.

낯선 곳에 가면 조금씩 말하기 시작했다.

“야. 여행 가자.”

동팔이가 미간을 찌푸렸다.

“갑자기?”

“강릉.”

“왜?”

“바다 보고. 고기 먹고. 놀고.”

“공부해야 돼.”

“2박 3일.”

“귀찮아.”

“차는 내가 렌트한다.”

동팔이는 대답하지 않았다.

“너는 몸만 와.”

“돈은?”

“내가 낸다.”

“숙소도?”

“내가.”

“밥도?”

“내가.”

동팔이가 잠시 생각했다.

“음…….”

“‘생각해볼게’ 하지 마라. 네가 생각해본다고 하면 백날 첫날이다.”

“뭔 소리야.”

“그냥 가.”

나는 조금 진지하게 말했다.

“공부 힘든 거 안다. 사람 만나는 것도 귀찮고 밖에 나가는 것도 싫고. 근데 계속 방 안에만 있으면 아무것도 안 바뀐다.”

동팔이가 나를 바라봤다.

“왜 갑자기 나한테 잘해줘?”

그 질문에 잠깐 말이 막혔다.

13년 뒤 우리는 꽤 친해진다.

여행도 많이 다니고 맛있는 것도 먹으러 다닌다.

그 시간을 나는 이미 알고 있다.

동팔이는 모른다.

“친구니까.”

“…….”

“내가 직장인인데 학생한테 밥도 좀 사주고 그러는 거지.”

동팔이는 대답하지 않았다.

“그럼…… 강릉은 생각해볼게.”

나는 웃었다.

‘반은 넘어왔다.’

***

집으로 돌아가는 길.

오래된 기억 하나가 떠올랐다.

동팔이의 여동생 김동희.

그리고 내가 동희에게 소개해준 친구 이재희.

순간 기분이 싸늘해졌다.

“이 새끼…….”

내 인생에서 정말 미안했던 일이었다.

당시에는 이재희가 그렇게까지 이상한 사람인지 몰랐다.

겉으로는 멀쩡했다.

그래서 별 생각 없이 동희에게 소개해줬다.

하지만 나중에는 다단계에 빠졌고 거짓말도 늘었고, 결국 동희에게 큰 상처를 남겼다.

‘내가 소개하지만 않았어도.’

이번에는 다르다.

아직 아무 일도 벌어지지 않았다.

“절대. 이번에는 절대 소개 안 한다.”

기회가 된다면 아예 이재희가 동희 주변에 접근하지 못하게 해야 한다.

처음 회귀했을 때만 해도 나는 내 인생만 생각했다.

진급, 돈, 여자, 장성호에게 복수하는 것.

그런데 하나씩 기억이 돌아올수록 바꾸고 싶은 일이 늘어났다.

엄마.

조 파트장.

미연.

동팔이.

동희.

내가 모든 걸 바꿀 수 있을까?

모르겠다.

하지만 알면서 가만히 있는 건 더 싫었다.

***

며칠이 흘렀다.

회사에서는 별다른 사고 없이 적응해갔다.

사수에게는 적당히 모르는 척했다.

누가 알려주면 처음 듣는 것처럼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실수는 하지 않았다.

박팀장의 반응도 나쁘지 않았다.

“김기리.”

“네, 팀장님.”

“자네 생각보다 눈치가 빠르네.”

“감사합니다.”

속으로만 웃었다.

‘13년 했으니까요.’

미연과도 연락을 이어갔다.

처음에는 문자 몇 개, 그다음에는 짧은 통화.

좋으면 좋다고 표현했다.

미연도 싫어하지 않았다.

결국 다음 주말 우리는 밥을 먹기로 했다.

“이것도 3년 단축.”

회사생활 순항.

미연 순항.

그리고 마지막 하나.

김동팔.

***

주말 아침.

렌터카 회사 앞.

잠시 후 저 멀리서 동팔이가 걸어왔다.

백팩 하나, 트레이닝복, 그리고 여행을 가는 사람이라고는 믿을 수 없을 정도로 무표정한 얼굴.

“야!”

“피곤하다.”

“시작부터?”

“어제 늦게 잤어.”

“왜?”

“유튜브 봤어.”

“공부한다며.”

“어제는 안 했어.”

나는 녀석의 어깨를 툭 쳤다.

“좋아.”

“뭐가?”

“김동팔 계몽 프로젝트.”

“뭔 소리야?”

“앞으로 알게 될 거다.”

“이상한 짓 하지 마.”

“타.”

내비게이션 목적지는 강릉.

동팔이가 창밖을 보며 물었다.

“근데 갑자기 왜 강릉이야?”

나는 씩 웃었다.

“친구야.”

“왜.”

“오늘부터 네 인생 좀 바꿔보자.”

동팔이가 바로 대답했다.

“싫어.”

“아직 시작도 안 했거든?”

“귀찮아.”

“야!”

차가 출발했다.

그리고 나는 몰랐다.

아니, 정확히는 잊고 있었다.

이 여행에서 김동팔의 인생뿐 아니라 내 두 번째 인생에도 영향을 줄 한 사건이 벌어진다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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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월요일.주말을 통째로 갈아 넣어 만든 보고는 무사히 끝났다.다행히 임원 보고까지 별다른 문제 없이 넘어갔다.박정태 팀장은 아침 회의를 마치며 말했다.“주말에 다들 고생했어. 특히 김사원. 입사한 지 얼마 안 됐는데 고생 많았고.”주변 사람들의 시선이 잠깐 나에게 쏠렸다.“아닙니다, 팀장님.”별것 아닌 한마디.하지만 이 회사에서는 이런 한마디가 생각보다 크다.박정태.이 팀에서 가장 영향력이 큰 사람.그 사람이 공개적으로 신입사원을 칭찬했다.13년 전의 나는 몰랐다.그저 ‘열심히 하면 알아주겠지’라고 생각했다.천만의 말씀.회사에서는 일을 잘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누가 내가 일을 잘한다고 알고 있느냐도 중요하다.‘시작은 좋네.’그런데 문제가 하나 있었다.돈.***통장 잔액을 확인한 나는 한동안 화면만 바라봤다.“……하.”적다.너무 적다.사회초년생.월급도 지금 기준으로 보면 귀엽다.자취방 월세, 관리비, 통신비, 식비, 보험, 각종 생활비.다 빼면 얼마 남지 않는다.그리고 이 시절의 나는 돈을 받으면 받는 대로 썼다.친구 만나면 내가 사고, 술 먹으면 내가 계산했다.대기업 들어갔다고 괜히 어깨에 힘이 들어갔다.‘야, 내가 살게.’그 말을 얼마나 많이 했던가.나보다 집안 좋은 녀석도 있었고 부모님 집에서 살며 월세도 안 내는 친구도 있었는데, 자취하던 내가 밥을 샀다.왜?대기업 다니니까.“가스라이팅 제대로 당했네.”누가 강제로 시킨 것도 아니다.내가 스스로 했다.이번에는 안 한다.친구가 중요하지 않다는 게 아니다.하지만 내 미래를 깎아가면서까지 사람들에게 잘 보일 필요는 없다.13년을 살아보니 안다.밥을 백 번 산다고 남는 친구가 있고, 한 번도 사지 않아도 끝까지 남는 친구가 있다.반대로 내가 계속 베풀 때만 옆에 있는 사람도 있다.이번에는 구분한다.쓸 곳에는 쓰고, 모을 돈은 모은다.“일단 종잣돈부터.”큰 투자 기회를 알아도 돈이 없으면 아무 소용 없다.나는 메모장을 열었다.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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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3년 전 회사로 돌아왔습니다.   3화. 신입사원이 회식을 너무 잘한다

    금요일 저녁.SG그룹 인근의 한 삼겹살집.문을 열자 긴 테이블 두 개와 스무 명 가까운 팀원들이 보였다.“기리야! 여기 앉아!”이 과장이 손을 흔들었다.“네, 과장님!”나는 막내 자리로 자연스럽게 들어갔다.13년 전의 나는 이 자리에서 엄청나게 긴장했다.누가 술잔을 주면 무조건 받아야 하는 줄 알았고, 삼겹살을 구우라고 하면 새까맣게 태웠고, 소주도 맥주도 주는 대로 마셨다.그 결과.화장실.변기.기절.그리고 다음 날부터 한동안 ‘첫 회식에서 뻗은 놈’이었다.하지만 지금의 나는 다르다.나는 집게를 들었다.삼겹살을 올리고 핏기가 올라오기를 기다린 뒤 정확한 타이밍에 뒤집었다.마늘은 가장자리, 김치는 기름 흐르는 방향, 버섯은 타지 않게 옆쪽.이 과장이 감탄했다.“야, 기리야. 너 고기 좀 구워봤냐?”“아버지 따라 고깃집을 좀 다녔습니다.”거짓말이다.회사 따라 다녔다.13년 동안.“이야. 신입이 센스가 있네.”‘1점.’회사생활은 일만 잘한다고 끝이 아니었다.특히 이 시절에는 회식, 인사, 눈치, 술자리, 리액션이 생각보다 컸다.잠시 후 박정태 팀장이 술잔을 들었다.“자. 오늘 신입도 들어왔고, 새해도 시작됐고. 다들 고생 많았습니다.”“네, 팀장님!”“올해도 우리 팀 사고 없이 잘해봅시다.”그러다 갑자기 내 쪽을 바라봤다.“기리.”“네!”“신입 들어왔으니까 건배사 한번 해봐.”모든 시선이 나에게 꽂혔다.13년 전에는 머릿속이 하얗게 변해서 ‘열심히 하겠습니다! 위하여!’라고 끝냈다.하지만 이번에는 수많은 회식과 인터넷에서 쌓인 건배사 데이터베이스가 있다.나는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났다.“제가 입사한 지 얼마 안 돼서 아직 회사에 대해서는 잘 모릅니다. 하지만 오늘 한 가지는 확실하게 느꼈습니다.”사람들이 나를 바라봤다.“좋은 회사는 건물이 만드는 것도 아니고, 이름이 만드는 것도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결국 함께 일하는 사람들이 만드는 것 같습니다.”몇몇 선배들이 고개를 끄덕였다.“그래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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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화. 두 번째 첫 출근2013년 1월 16일.SG그룹 입사 첫날.나는 침대 위에 앉은 채 한동안 휴대전화 화면만 바라봤다.2013년 1월 16일.화면을 껐다.다시 켰다.여전히 2013년이었다.“……말도 안 되는데.”고개를 들어 벽에 붙은 달력을 확인했다.2013년 1월.책상 위에는 낯익은 서류봉투가 놓여 있었다.SG그룹 신입사원 입사 안내.나는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났다.혹시 몰라 볼을 세게 꼬집었다.“아악!”아프다.확실히 아팠다.꿈에서 느끼는 어설픈 통증이 아니었다.“꿈은 아닌 것 같고…….”나는 거울 앞으로 다가갔다.그리고 그대로 굳었다.“미친.”거울 속 남자는 서른아홉 살의 내가 아니었다.1눈 밑에 달라붙어 있던 피로가 사라졌다.잔주름도 없다.술과 야근에 찌든 얼굴도 아니었다.스물여섯.처음 SG그룹에 입사했을 때의 김기리였다.나는 무심코 머리카락을 쓸어 넘겼다.손가락 사이로 빽빽한 머리카락이 느껴졌다.“와…….”감탄이 절로 나왔다.“이때는 머리도 많았네.”잠깐 감동했다.그러다 곧 정신을 차렸다.“아니지. 지금 그게 중요한 게 아니잖아.”나는 급히 휴대전화를 집어 들었다.그리고 가장 먼저 익숙한 번호를 눌렀다.뚜르르르.몇 번의 신호음 뒤, 목소리가 들렸다.“여보세요?”나는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목소리가 젊었다.기억 속보다 훨씬 힘이 있었다.“……엄마?”“왜? 출근 준비 안 하고 뭐 하니?”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엄마였다.2정말로.13년 전의 엄마.“엄마.”“왜 그래?”“그냥…….”목이 이상하게 잠겼다.사고가 나기 전날 밤.엄마에게 전화가 왔었다.나는 받지 않았다.진급도 못 했다.결혼도 못 했다.주식은 몇 년째 처박혀 있었다.괜히 내 인생이 초라하게 느껴져서 가족들 전화조차 피했다.그런데 지금.그 목소리를 다시 듣고 있었다.“그냥 전화해봤어.”엄마가 웃었다.“얘가 오늘 이상하네. 첫 출근이라 긴장돼?”“응.”나도 웃었다.“조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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