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odos los capítulos de 아기를 품고 도망친 그녀: Capítulo 81 - Capítulo 9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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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2. [내게 키스하지 마세요, 제발]

나지막이 긁히는 중저음의 음성이 고요한 교정의 공기를 잔인하게 뒤흔들었다.어둠 속에서 희미한 별빛마저 삼켜버린 칠흑 같은 밤. 창백한 가로등 불빛만이 위태롭게 흔들리는 교정에서, 경신의 앞에 선 태하의 모습은 달빛을 온몸에 뒤집어쓴 것처럼 현실감이 없을 만큼 눈부셨다.키스를 한다니.거부할 수 없었다. 아니, 뇌보다 먼저 움직인 본능이 그를 거부하길 거부하고 있었다. 이유야 대라면 백 가지도 넘었지만, 지금 이 순간만큼은 그 어떤 핑계도 이 지독하게 빛나는 남자를 밀어낼 구실이 되지 못했다.경신은 대답 대신 느리게 눈꺼풀을 감았다 떴다. 머릿속이 하얗게 점멸하며 도망칠 의지조차 깨끗이 증발해 버렸다.태하의 손이 경신의 뺨을 넓게 감싸 안았다. 차가운 밤공기와 선명하게 대비되는 그의 뜨거운 손바닥 온기가 서서히 얼굴을 데워왔다.경신은 숨을 죽인 채 온 감각을 곤두세웠다. 그의 굳은살 박인 손가락이 뺨을 타고 내려와 턱끝을 진득하게 거머쥘 때마다 가슴 밑바닥이 간지럽게 조여들었다.마지막 한 걸음의 틈새마저 사라졌을 때, 짙고 고급스러운 머스크 향이 그녀의 호흡을 집요하게 침범해 들어왔다.살며시 포개진 그의 입술은 생각보다 훨씬 말캉했고, 숨 막히게 달콤했다.맞닿은 은밀한 피부 사이로 전해지는 묘한 자극에 감질이 났다. 저도 모르게 그의 아랫입술을 제 혀끝으로 쓸어내리며 맛보고 싶다는 지독한 갈증이 일었다. 온몸의 세포가 짜릿하게 반응하며 낯선 욕구가 본능의 바닥에서부터 붉게 꿈틀거렸다.세상에서 가장 탐스러운 과일을 탐닉하듯, 경신은 홀린 것처럼 감질나게 입술을 열었다. 기다렸다는 듯 그의 뜨거운 혀가 깊숙이 밀고 들어오자, 경신은 거친 숨을 삼키며 그의 목을 단단히 감싸 안았다.벼려진 칼날처럼 예민해진 감각 탓에, 질척하게 얽히는 혀끝의 감촉마다 척추를 타고 전율 같은 열기가 터져 나왔다.
last updateÚltima actualización : 2026-1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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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3. [늑대가 여우같이 굴잖아]

과외를 오지 않겠다니.방금 전까지만 해도 제 품에 절박하게 매달려 숨을 나누던 여자였다. 이제 겨우 곁을 내어주나 싶었는데, 날카로운 거절의 칼날이 가슴을 베고 들어왔다. 이대로 끝내자는 잔인한 선전포고인가 싶어 태하의 온몸이 차갑게 굳어 들어갔다.“왜?”나직하게 가라앉은 태하의 음성에는 억누르지 못한 소유욕과 미세한 불안이 섞여 있었다. 그러나 정작 경신은 순진무구한 눈을 깜빡이며 어깨를 가볍게 으쓱였다. 별일 아니라는 듯 툭 던지는 어조였다.“시험 기간이거든요.”아, 일시적인 도망이었나.긴장으로 빳빳하게 서 있던 태하의 어깨가 그제야 미세하게 이완됐다. 하지만 당장 일주일 동안 이 매끄러운 살결을 만지지도, 얼굴을 보지도 못한다는 사실에 다시 미간이 사정없이 좁혀졌다.“아, 시험?”시험이 정확히 언제더라. 이번 주? 다음 주? 그렇다면 최소 2주는 이 감질나는 거리감을 유지해야 한다는 뜻인가.“그동안 너무 공부를 안 해서 걱정돼 죽겠어요. 무조건 졸업해야 하는데, 만에 하나 펑크라도 나면 어휴, 상상하기도 싫네. 가을 학기를 더 다녀야 한다거나, 최악의 경우 휴학이라도 하게 되면 휴, 그럼 대체···.”경신의 하소연을 듣는 태하의 가슴 한구석이 거칠게 일렁였다.“한국말 너무 어려운데.”“혼잣말이에요. 태하 씨는 이해 못 해도 상관없어요.”경신의 시름이 깊은지 입술을 삐죽이며 중얼거리는 모양새가 제법 조급해 보였다.태하는 매사 너무 성실해서 탈인 그녀를 가만히 응시했다. 기억을 잃기 전의 경신도 늘 그랬다. 시험 기간만 지나면 귀신같이 얼굴이 핼쑥해져
last updateÚltima actualización : 2026-1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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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4. [그 남자 품이 너무 좋은데, 힘드네]

4월의 셋째 주 목요일.관악 학생생활관의 아침은 어김없이 지독하도록 익숙한 풍경으로 문을 열었다. 너무 자주 반복되어 이제는 기상 알람 수준으로 자리 잡은 한 여대생의 처절하고 절망적인 곡소리가 사방으로 퍼져 나갔다.“보살님, 자자, 제발 이불에서 나오세요. 샌드위치 한 조각이라도 씹고 학교 가셔야죠.”“······윽, 망할 세뇨리타.”꿈틀거리는 이불 덩어리를 향해 한심하다는 듯 눈총을 쏜 화야가 창문을 활짝 열어젖혔다. 다행히 먼지가 파닥거리진 않았으나, 화야는 친구의 정신 건강을 위해 한마디 따끔하게 쏘아붙였다.“오늘은 정말 못 참겠네요. 이 지구상 어딘가에서 평화롭게 살고 있을 무고한 ‘세뇨리타’에게 사과부터 하세요.”“윽, 사과? 쳇, 싫은데.”“보살님, 태교 포기하셨어요?”‘태교’라는 단어는 치트키처럼 즉각 효력을 발휘했다. 경신은 끙 소리를 내며 느릿하게 이불을 걷어차고 인형처럼 주저앉았다.“자, 지구촌 여러분. 스페인의 미지의 세뇨리타 씨, 제가 사적으로 속이 좀 뒤틀려서 심술을 부렸네요. 일단 사과드립니다.”경신은 제 기분이 왜 이토록 밑바닥을 치는지 아주 잘 알고 있었다. 인정하기 싫을 만큼 유치하고 옹졸한 이유였다.“내가 가질 수도 없으면서, 그렇다고 남 주기는 또 죽어도 아까운 거 있지. 내가 딱 그 얄궂은 상태야.”“보살님, 뭔지는 몰라도 아주 정확하게 요약이 되네요. 놀부 심보요!”화야의 팩트 폭행은 늘 뼈가 아팠다. 배 속의 아가들이 철없는 엄마를 보며 얼마나 어이가 없을까.
last updateÚltima actualización : 2026-1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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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5. [위험하게 구는 빌런들]

현수는 스테파니가 나가고도 거울 앞에서 쉬지 않고 동작을 반복했다. 사방을 둘러싼 거울 너머로 가쁜 호흡이 가득 차오르고 온몸이 땀으로 젖어 드는 와중에도, 노력하면 조금이라도 나아질 거라는 맹목적인 믿음 하나에 의존하고 있었다.“어이, 자기야. 작작해. 진짜 허리 나가.”생수를 마시던 도윤은 문이 닫히고 모두가 빠져나간 것을 확인하자마자 현수의 등 뒤로 다가왔다. 차가운 물병을 현수의 달아오른 목덜미에 슬쩍 대며 그가 낮게 속삭였다. 끈적하게 달라붙는 그의 체온이 닿자 현수의 어깨가 움찔하고 굳어졌다.“도윤 씨, 연습 쉬는 거 하나도 안 고맙거든?”“쳇, 우리 자기 요즘 살도 너무 빠지고 스트레스받는 것 같아서 그렇지.”“나 도윤 씨 자기 아니야.”현수가 어깨를 비틀어 벗어나려 했지만 도윤이 한 발 더 빨랐다. 긴 팔로 현수의 가느다란 허리를 억세게 낚아채 제 단단한 품으로 끌어당겼다. 땀에 젖은 서로의 티셔츠가 빈틈없이 맞물리며 은밀한 마찰열과 뜨거운 열기가 훅 겹쳐 들었다.“통통 튀기니까 더 귀엽기는.”장난기 어린 목소리와 달리 턱을 돌려세우는 손길은 포악할 만큼 강압적이었다. 도윤의 뜨거운 입술이 현수의 벌어진 숨결 사이로 유연하고 맹렬하게 밀고 들어왔다.거칠게 입안을 가르며 들어찬 혀가 여린 살천장을 눅진하게 핥아 올렸다. 도윤이 현수의 호흡을 모조리 집어삼키는 동안, 그의 커다란 손이 땀으로 미끄러운 현수의 티셔츠 밑단 속으로 서슴없이 쑥 들어왔다.“어머! 도윤 씨······ 여기 CCTV 있어!”잘게 떨리는 신음이 도윤의 입안으로 아득하게 흩어졌다.
last updateÚltima actualización : 2026-1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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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6. [비밀이 많은 임신한 그녀]

4월도 3주째에 접어들자 한낮의 공기는 제법 여름을 흉내 내듯 텁텁하게 밀려들었다.평일인 목요일임에도 불구하고 산부인과 대기실은 남편과 함께 병원을 찾은 임산부들로 가득했다. 웃음꽃을 피우며 만삭의 배를 다정하게 매만지는 무리가 있는가 하면, 질병이나 불임 때문인지 서늘하게 가라앉은 표정으로 진료를 기다리는 여성들도 간간이 눈에 띄었다.하지만 그들 곁에는 대부분 다정한 배우자나 든든한 보호자가 온기를 나누고 있었다. 경신을 제외한 대기실의 그 누구도 적어도 홀로 고립되어 보이지는 않았다.결국 자신은 이 모든 과정을 온전히 혼자 버텨내야 한다는 사실에, 앞으로 정말 보호자가 필요한 순간이 오면 어떻게 해야 할지 덜컥 막막함이 피어올랐다. 생각이 꼬리를 물수록 마음이 자꾸만 처량하게 가라앉았다. 문득 주위를 둘러보니, 저 멀리 한 여자 역시 경신처럼 홀로 벤치 끝에 앉아 있었다.‘다들 애 아빠가 있어 좋겠다.’엄마가 이 모양이라 아가들이 속절없이 고생하는 것만 같았다. 지독한 입덧이 가라앉지 않는 데다 가끔 아랫배까지 뻐근하게 뭉치는 느낌이 들어 걱정이 차올랐다.지난 2월 28일, 임신이라는 청천벽력 같은 사실을 안 이후로 온갖 우여곡절을 겪으며 학교생활까지 병행하느라 몸은 이미 지칠 대로 지쳐 있었다.그래도 아가들의 안부를 확인하러 온 기쁜 날에 잡생각으로 얼굴을 어둡게 물들이면 안 된다는 생각이 들자 경신은 이내 마음을 다잡았다.“경신 님, 3 진료실로 들어오십시오.”간호사의 맑은 목소리에 경신은 얼른 자리에서 일어나 매만졌던 표정을 환하게 폈다. 쿵쾅쿵쾅 심장이 세차게 뛰기 시작했다. 아가들의 건강을 확인하는 엄숙한 순간에 엄마가 죽상을 하고 있을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경신은 미간을 시원하게 펴고 씩씩하게 발걸음을 옮겼다.***
last updateÚltima actualización : 2026-1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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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7. [매운맛 현실인데! 이 남자는 달콤해]

태하는 오늘 자신이 정기 검진을 받게 되자, 경신 역시 비슷한 시기에 이곳을 찾지 않을까 예감하고 있었다. 보호자 자격으로 병원 측에 확인을 거쳤을 때, 아니나 다를까 경신이 진료가 있다고 전해 왔기에, 생각보다 몸이 먼저 움직이게 되었다.산부인과 대기실의 공기는 태하의 신경을 긁어댔다. 다들 아내의 어깨를 감싸 안고 배를 부드럽게 매만지는 남자들과 뱃속 아이의 작은 움직임에도 요란스레 웃음꽃을 피우는 부부들의 풍경이 사방에 그득했다.그 유난스러운 다정함들을 바라보는 태하의 눈빛이 차갑게 가라앉았다. 저 풍경 속에서, 경신만이 홀로 쓸쓸하게 진료를 기다렸을 모습을 떠올리자 가슴 밑바닥에서부터 저릿한 불쾌함이 치밀어 올랐다.‘시험 준비로 몸도 마음도 피곤할 텐데.’경신은 대체 언제쯤 제 입으로 임신 사실을 털어놓을 생각일까. 차라리 자신이 먼저 지난 1월 28일 밤을 보냈다고 말할까 하다 다시 마음을 다잡았다.때때로 자신을 향해 미세하게 그어두는 경신의 경계선과 거리감을 태하가 눈치채지 못할 리 없었다. 최근 본능을 참지 못하고 그녀의 입술을 집어삼키며 제 무자비한 세계로 강제로 끌어당기려 했던 것도, 템포를 조율해야 하는 순간이었다.하지만 조금만 방심해도 그 작은 몸을 통째로 집어삼키고 제 안에 가두고 싶다는 욕구가 솟구쳐 감당이 되지 않았다.‘이번에는 결코 실패할 수 없어.’언젠가 그녀의 전생이나 과거 기억이 완벽히 돌아온다 하더라도, 경신의 몸과 마음을 온전히 제 소유로 길들여놓아야 했다.태하는 진료실 문밖, 다정한 부부들 사이에서 굳건하고 위압적인 존재감을 드러내며 대기실 의자에 무겁게 몸을 기댔다. 문 하나를 사이에 두고 서늘하게 번져가는 경신을 향한 욕망이 차갑게 들끓고 있었다.
last updateÚltima actualización : 2026-1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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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8. [그대가 보호해 주면 좋겠지만]

태하가 나직하게 피식 웃으며 경신의 옆자리로 자연스럽게 미끄러지듯 와서 앉았다. 지독하게 밀도 높은 남자의 향취가 훅 끼쳐왔다. 그는 길고 곧은 손가락 끝으로 예전 사고 당시 상처가 났던 제 관자놀이 부근을 톡톡, 가볍게 두드려 보였다.경신은 그제야 뒤늦게 머리를 스치는 기억에 아랫입술을 살짝 물었다. 그도 큰 사고를 당한 지 이제 겨우 한 달 남짓 되었으니, 정기적인 정밀 검사를 받으러 병원에 온 게 분명했다.그런데 아무리 생각해도 이상했다. 뇌 신경외과나 종합 검진 센터도 아니고, 하필이면 이곳은 예비 엄마들로 가득한 산부인과 병동이 아닌가. 이 남자가 대체 왜 여기 서성이고 있는 걸까?순간 경신의 몸이 바짝 긴장으로 굳어 들어갔다.삭막하고 하얗기만 하던 산부인과 대기실에 화보를 찢고 나온 듯한 압도적인 남자가 등장하자, 주변의 시선이 일제히 한곳으로 꽂히기 시작했다. 여기저기서 숨을 삼키는 소리와 태하가 잘생겼다는 말소리가 들려왔다.남녀노소를 불문하고 단숨에 시선을 노예처럼 붙잡아매는 이 마성의 남자는, 오늘도 눈부시게 생글생글 웃으며 별안간 경신의 세계로 불쑥 침범해 들어왔다.“정기 검진 받은 건가?”태하는 여전히 장난기가 어린 손길로 제 머리칼을 쓸어 넘겼지만, 경신은 그 수려한 얼굴을 향해 눈을 얇게 흘길 수밖에 없었다. 아무리 병원이 넓고 정기 검진 날이라 해도, 하필이면 이 수많은 진료과 중 산부인과 대기실 의자에서 마주치다니.경신은 가슴 앞에 팔짱을 단단히 낀 채 태하를 빤히 노려보았다. 의심의 눈초리가 잔뜩 서려 있었다.“네, 그런 셈이죠. 그런데 태하 씨. 이건 아주 가벼운 농담인데요. 혹시 스토커 같은 그런 건 아니시죠? 제 마음의 평화를 위해 예의상 한번 여쭤보고 싶네요.”경신의 맑은 눈동자에서 레이저가 절로 쏘아졌
last updateÚltima actualización : 2026-1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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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9. [폭탄 선언, 왜?]

경신은 수려한 얼굴에 마음씨까지 태평양처럼 넓은 태하를 바라보며 입술을 달싹였다.“저, 태하 씨. 자꾸 이렇게 신세 지는 것도 그렇고··· 제가 이렇게 붙어 있으면 부모님도 안 좋게 보실 거예요.”보호자라는 말은 특히 태하 같은 사람에게는 함부로 쓰면 안 될 것 같았다.머지않아 스페인에서 대단한 여자가 오고 있다고 기범이 그랬는데. 자신으로 인해 태하의 앞길이 막히면 안 되니, 이제는 현실적으로 선을 그을 필요가 있었다.“잠깐, 그 이야기는 나중에. 강아지들만 집에 있어.”“네?”“도와줘.”잠깐, 지금 그 핏덩이 같은 것들이 그 넓은 펜트하우스 거실에서 꼬물거리고 있다는 소리인가?“네? 마호 사장님은요?”“급한 일이 생겨 나갔어.”꼬물이들이 배가 고파서 울고 있으면 어쩌나, 울타리를 탈출해서 어디 부딪히기라도 하면 어쩌나 하는 걱정에 경신의 머릿속이 온통 새하얗게 타들어 갔다.“이럴 때가 아니네요. 어서 강아지 좀 보러 가도 될까요?”경신의 눈에는 지금 보이는 게 없었다. 오직 홀로 남겨진 강아지들이 무사한지 확인해야 한다는 일념 하나로 태하의 손을 잡고 세차게 병원 복도를 앞장섰다. 태하는 경신이 쥐여 온 가냘픈 손을 놓치지 않겠다는 듯 매혹적인 미소를 지으며 유순하게 따라 걸었다.***그 시각 JJ엔터테인먼트 세미나실.유리창 너머로 쏟아지는 나른한 햇살조차 현수의 찌푸린 미간을 녹이지는 못했다.맞은편에 앉아 기다란 손가락으로 펜을 굴리고 있는 서정민을 마주하는 일은, 매 순간 혀 밑에 쓴 약을 품고
last updateÚltima actualización : 2026-1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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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0. [내가 좀 욕망에 충실하거든]

유리창을 따라 뽀얗게 서린 김 사이로 은은하게 퍼지는 아로마 향, 수평선처럼 탁 트인 라운지 형태의 넓고 쾌적한 JJ 프라이빗 숙소 욕실.대리석 바닥에는 지열이 기분 좋게 올라오고 있었고, 두 사람이 다리를 마음껏 뻗고도 남을 거대한 자쿠지 욕조는 고급스러운 조명 아래 스파처럼 빛나고 있었다.현수는 욕조 턱에 기대어 고개를 뒤로 젖힌 채, 제 온몸을 감싸는 찬란한 부유감을 느꼈다.갑자기 머릿속을 스치고 지나는 건, 자신의 낡은 오피스텔 구석에 붙어 있던 가련한 화장실이었다.세면대 수도꼭지에 겨우 샤워기 하나 달랑 연결되어 있어 샤워 한번 하려면 차가운 벽에 몸이 닿을까 조심해야 했던 좁고 눅눅한 공간.타일 사이에 거뭇하게 낀 물때를 마주할 때마다 느껴야 했던 그 자괴감이, 이 화려한 대리석 감촉 아래 깨끗하게 씻겨 내려가는 기분이었다.‘성공해야 해. 올해는 꼭 그곳을 탈출할 거야.’자신이 부를 곡의 편곡도 환상적으로 뽑혔고, 서정민 그 마녀가 제 발로 ‘에스텔라 정기범’이라는 최고의 카드까지 판에 던져주었다.방금 전에 유명 뮤직비디오 감독도 섭외되었다는 소식을 듣자 날개를 달고 어디라도 올라갈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그저 몸과 마음에 쾌감이 전신을 휘감던 바로 그 순간이었다.‘윽!’아랫배 깊은 곳에서부터 은근하고 묵직하게 배가 사르르 꼬여 내려가는 통증이 밀려왔다.기분 나쁘게 쥐어짜듯 뭉쳐오는 아랫배의 감각에 현수는 눈살을 찌푸리며 살짝 헛숨을 삼켰다.순간 덜컥 겁이 솟구쳤지만, 현수는 매섭게 아랫입술을 깨물며 제 손끝으로 아랫배를 살살 문질렀다.‘아직은 초기라 몇 달 동안은 티도 안 날 거야.’자신을 끌어올려 줄 도윤을 완전한 제 편으로 묶어둘 가장 완벽한
last updateÚltima actualización : 2026-1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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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1. [악녀, 뒤통수 날릴 준비를 하다]

도윤과 현수는 욕실에서 나와서도 소파 위에서 다시 엉킨 채 서로를 마주 보게 되었다.“오늘 현수 씨, 예뻐 죽겠네.”도윤은 오는 여자 안 막고 가는 여자 안 잡는 자유분방한 주의였지만, 요즘은 완전히 현수에게 푹 빠져 있었다. 이토록 뜨겁게 매달리다가도 어느 순간 차갑게 벽을 치는 그녀의 온도가 재미있기까지 했다.더구나 연예계에 발을 들인 후 도윤이 겪은 여자 중, 현수만 유일하게 남자 경험이 없다는 사실도 신기했다. JJ 출신이 메이저 데뷔를 하는 순간 사방에서 유혹이 쏟아지기 마련인데도 말이다.처음에 도윤은 현수를 그저 가볍게만 대했다. 어차피 소속사에는 수많은 여자들이 있었고, 자신이 손만 뻗으면 다가올 여자들은 발에 채이듯 많았다. 하지만 지독하게 도도했던 현수가 갑자기 몸만 즐기자고 다가오니 신기했다. 다들 자신의 마음을 바라고, 미래를 함께하거나 스캔들이나 한번 나서 유명세를 치르고 싶어하는 속물 뿐이었는데, 이 여자는 남자 경험도 없으면서 몸만 즐기자니 묘한 호기심이 돋게 되었다.“도윤 씨, 저번에 너무 세게 물어서 아직 자국 남았단 말이야.”“······엄청 힘 뺀 거야. 이리 날 달궈 버리는 몸인데, 어떻게 얌전히 만져?”현수가 낮게 칭얼거릴수록 도윤의 아랫배는 묵직하게 가라앉았고, 이성을 마비시키는 가학 심리가 들끓었다. 맘껏 거칠게 휘몰아쳐 이 고운 몸에 제 소유권을 낙인찍고 싶었지만, 그랬다간 현수만 곤란해질 게 뻔해 짐승 같은 본능을 간신히 억누르는 중이었다.그럼에도 옷을 입었을 때보다 벗었을 때 훨씬 더 자극적인 몸을 마주하고 있으면, 터질 듯 팽창하는 욕망을 주체하기가 힘들었다.도윤은 짓눌린 신음을 흘리는 그 말간 입술을 제 입술로 틀어막았다.
last updateÚltima actualización : 2026-1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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