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ll Chapters of 아기를 품고 도망친 그녀: Chapter 71 - Chapter 80

134 Chapters

#72. [내 마음 속으로 습격]

혹시나 했지만 역시나였다. 이 남자는, 처음부터 이런 사람이었다.분명 과거의 자신은 너무나 대단해진 이 남자의 존재가 부담스러워 멀리하려 했겠지만, 현재의 태하는 경신 역시 그에 못지않게 눈부신 사람이라는 사실을 필사적으로 각인시키려 하고 있었다.“이 죄 많은 몸, 아니 이 여자는 정말 대단하네요.”태하는 나직하게 저음의 웃음을 흘리며 경신을 다정히 내리깔린 시선으로 바라보았다.“그래, 매력적인 여인이었지.”기억 저편의 자신에게 경의를 표하듯, 경신은 두 손을 배 위에 살포시 얹었다.“그래도, 감히 그런 생각을······. 현재의 저는 이런 사람이 아니에요.”“Arriesgó su vida para salvarme(목숨을 걸고 날 살렸잖아). 지금의 너도 똑같아.”사실 경신은 자기 자신이 꼭 미지의 세계에 머무는 아득한 존재 같아 모든 게 신기하기만 했다.기억을 잃은 아이러니한 상황 속에서도, 태하는 과거의 경신도 그리고 눈앞에 서 있는 현재의 그녀도 오롯이 마주해 주고 있었다. 경신의 심장이 다시금 불규칙한 박동으로 요동치기 시작했다.“태하 씨, 그럼 혹시 나중에 저랑 같이 그 보육원에 가줄 수 있나요?”태하의 짙은 눈동자가 일순 어둡게 넘실거렸다. 그녀가 스스로 자신의 과거 속으로 걸어 들어오려 하자 상상도 못 한 듯 놀란 눈치였다.이 남자, 혹시 이 모든 과거의 진실을 덤덤히 털어놓은 진짜 이유가 그 기억들을 핑계 삼아 현재의 자신에게 대놓고 다가가기 위함이었을까.“물론이야. 더 한 것도 해줄 수 있어.”결국, 이 모든 눈부신 서사는 서로의 관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1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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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3. [그 남자, 마치 승리자처럼]

Rrr Rrr Rrr-거듭해서 현관을 울리는 초인종 소리가 야속할 만큼 다급했다.하지만 정작 태하는 천연덕스러울 정도로 나른한 표정을 지은 채, 불안에 떨며 입술을 깨무는 경신의 모습만 느긋하게 감상하고 있었다.“손님들 들어오면, 네 정체에 대해 확실히 해두는 게 좋을 거야.”“정체요?”연예계와 어두운 과거로부터 벗어나려 애썼건만, 정신을 차려보니 이미 깊숙한 곳까지 자신이 얽혀 있었다.태하가 일궈놓은 거대한 사재 환원 사업의 실체를 목도했고, 무엇보다 홀몸이 아닌 처지에 배 속의 아이들을 윤택하게 키우기 위해서는 당장의 돈과 확실한 수입원이 절실했다.인터폰 모니터 화면 속에는 혈기 왕성한 남자들이 집주인이 문을 열어주기만을 목이 빠지게 기다리고 있었지만, 태하는 이 아슬아슬한 상황 자체가 흥미로운 게임이라도 되는 듯 지독히도 여유로웠다. 공동 작곡가 'T.K'인 태하와 밀접하게 지내고 있다면, 이 밤중에 경신이 이 은밀한 펜트하우스에 몸을 맡기고 있는 것도 어느 정도 납득할 만한 모양새가 되긴 할 터였다. “그냥, 작곡가라고 말하는 게 낫겠죠?”경신은 떨리는 두 손을 아랫배 위에 포개어 얹으며 속으로 가쁜 숨을 삼켰다.“그래. ¿Participará en la actividad económica(경제 활동 할 거잖아)?”태하는 마치 금단의 열매를 건네며 헐벗은 피부를 간지럽히는 유혹자처럼, 은밀하고 낮은 훔치는 목소리로 경신을 구슬렸다. 월세를 내고, 누구의 눈치도 보지 않은 채 아기들을 번듯하게 키워내기 위해서라면 그 어떤 악마와의 계약도 못 할 것이 없었다. 지금이야말로 자의든 타의든, 세상을 향해 다시 발을 내디뎌야 할 순간이었다.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1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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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4. [정체 모를 펜트하우스의 밤]

여기서 뭘 더 가까워진다는 건지.경신의 온몸에 솜털이 쭈뼛하던 그때.“그래, 한참 더 친밀해져야 해·····. 원수처럼 지내면 안 돼······.”마호가 술에 취해 횡설수설하듯 설명해줬지만, 태하는 뻔뻔하게 아무 일 없었다는 듯 음식을 준비한 고용인을 맞이했다.  그는 여전히 승리자의 표정으로 강아지들과 이불이 펼쳐진 곳 근처에 커다란 상을 펼쳐 놓았다. 말 그대로 상다리가 부러질 듯한 잔칫상을 차려 주었다.  젊은 남자들이 좋아할 법한 고기 안주는 물론 디저트와 과일, 샐러드 같은 경신이 좋아할 만한 음식들도 올려져 있었다.  술도 등장했고, 주스와 탄산수까지  음료도 준비되었다. 이 와중에 정신줄이 안드로메다 저편으로 날아가 버린 경신은 멍하니 자리를 잡게 되었다. 잠시 뒤, 호들갑스럽게 정체 모를 파티는 시작되었다.  ***  즐거운 시간을 그리 보낸 뒤 새벽이 다 되어서야 잠들 준비를 하였다.경신도 자신의 방이 엄연히 있어 그곳에서 잠잘 준비를 서둘렀고, 거실에서 마호와 태하가 강아지들 육아를 이어갔다.거실은 난장판이었지만, 사람 사는 곳이 맞구나 할 정도로 정겨웠다. 모두가 자야 할 시각, 여전히 한 마리가 개집에서 탈출을 감행하고 있었다. 태하가 익숙하게 젖병 온도를 체크하였고, 경신은 방으로 들어가려다 다시 나와 강아지를 안고 우유를 먹였다. 그 모습을 보던 에스트렐라가 멀리서 지켜보며 수군거리기 바빴다. “세용아, 우리가 알던 그 태하 님 맞지?”  “글쎄, 다른 사람 같다. 도국아 이상하지?”  “그래. 어떻게 저리도 다정하시냐?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1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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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5. [나라는 여자 무시하지 마]

그 시각 아주 깊은 밤, JJ 엔터테인먼트 세미나실의 불은 꺼질 줄을 몰랐다. 서정우는 긴 테이블 상석에 앉아 최훈 실장과 서정민, 그리고 오늘도 현수는 배제되어 도윤하고만 마주하는 중이었다.“이번에 도윤이하고 현수 듀엣곡으로, 정민이 네가 예전에 썼던 ‘탐닉’이라는 곡으로 가야겠으니 그리 알아 둬.”그 말에 서정민은 슬그머니 입을 삐죽이면서도 속으로는 쾌재를 불렀다. ‘음원 보증수표’라 불리는 도윤이 일단 건드렸다 하면 당연히 대박이 나게 되니 이 기회를 마다할 리가 없었다.그러나 정작 곡의 주인이 될 도윤의 표정은 차갑게 식어 있었다. “이 곡은 별로인데, 다른 신곡 하나 주세요, 네?”도윤의 노골적인 불만에 정민은 절로 미간이 좁혀들었다. 어쨌든 서정우는 바꿀 마음이 없는지, 깊은 한숨을 내쉬며 나지막이 타일렀다.“네가 부르면 아무 노래나 히트치잖아. 편곡 완벽하게 뽑아 줄 테니까 군말 말고 해.”상황이 기묘하게 흘러가자, 서정민은 못 이기는 척 슬그머니 차려진 밥상에 숟가락을 얹었다.“내가 고음 파트는 정성껏 코러스까지 잘 배치해 둘게.”“현수 씨만 또 지옥의 고음 음역대로 내지르게 만들 생각은 하지 마.”세미나실에 냉류가 흐르자, 가만히 상황을 지켜보고 있던 최훈 실장이 자연스럽게 중간에 끼어들었다.“대신 뮤직비디오는 환상적으로 뽑아보죠. 천사와 악마, 그리고 아주 섹시하고 아슬아슬한 콘셉트로 가보는 건 어떨까요?”서정우는 최훈의 말에 미간을 찌푸리며 짚고 있던 책상을 밀치듯 일어섰다. 더 이상 이 피곤한 설전에 장단을 맞춰 줄 생각이 없다는 표정이었다.“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1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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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6. [벼린 칼날 뒤에 숨겨진 떨림]

 경신은 이제 학교에 나서기 전 밥 대신 샌드위치를 먹었고, 마지막으로 꼬물이들 우유를 먹인 다음 자리에서 일어났다.  태하는 경신을 기숙사로 데려다주겠다며 위해 집을 함께 나섰다. 엘리베이터를 타고 주차장을 향해가는 도중에도 둘은 거울 속 상대를 바라보며 즐거운 대화를 이어 나갔다. “제가 드린 문학책 읽고 문제도 꼭 풀어놓으세요. 다음 주부터는 진짜 제대로 과외 돌입이에요.” “알았어.” 사실 어제 에스트렐라가 방문한 바람에 또 국어 공부를 찔끔찔끔하다가 그만둔 꼴이 되었다. 어떻게 봐도 과외 1회 차 분량이 되지 않아 이것도 시범 수업이 되어 버렸다.  “과외 이러다 평생 못하게 되면 어쩌나 두렵기까지 하네요.” “하산은 멀었어.” 이젠 농담도 능숙해진 그였다.  경신은 태하의 손에 이끌려 주차장에 도착해 차에 갈 때까지도 웃으며 말을 주고받았다.  익숙하게 그에게 손목을 잡히는 것도 아무렇지 않았고 그와 함께 있는 시간도 즐겁기만 했다.   ***  기숙사로 돌아온 경신은 자신을 반겨주는 화야를 기대했지만, 그녀 역시 시험공부를 하기 위해 도서관에 갔는지 자리에 없었다.   경신은 몸은 천근만근 피곤함에 절어 있었다. 밤에 잠도 제대로 못 자 무리한 듯싶어 축축 늘어진 것만 같았다.  본격적으로 한 주가 시작되면 얼마나 바쁠까나. 기분 탓인지 배도 사르르 느낌이 좋지 않게 아픈 것 같고 철분제를 다 먹어서 그런지 머리도 더 어지럽게 느껴졌다.&nbs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1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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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7. [밤에 피는 장미 같은 임산부]

“보살님!”호통 소리에 겨우 눈을 뜬 경신은 다시 눈을 감으려 했다. 경신은 꿈속에서 늘 힘겨웠다. 몸을 동그랗게 말고 절박하게 웅크린 채 중얼거리는 말들은 대부분 '두렵다', '무섭다', '힘들다' 같은 부정적인 단어뿐이었다.“···끙, 화야.”화야는 의식이 돌아온 경신에게 팔짱을 끼고, 그녀의 잠을 확실히 쫓아내려 하는지, 까칠한 말투를 던졌다.“팜므파탈 보살님, 대화가 좀 필요해 보이는군요. 밤에 피는 장미인지, 불나방인지··· 마성의 룸메이트님, 이제는 외박을 아주 밥 먹듯 하시네요?”“읏, 아, 맞다! 나 기범이랑 이야기해야 하는데···.”화야의 직구에 경신은 이불을 걷어내고 부스스한 모습으로 일어나 앉았다.“보살님, 언제부터 잔 거예요? 지금 밤이에요. 그리고 또 다른 남자를 만나려고 하는 건가요?”“친구야, 기범이. 참, 몇 시지?”“밤 9시요.”경신은 깜짝 놀라 눈을 휘둥그레 뜨더니, 핸드폰 시계를 확인하자마자 벌떡 일어났다.“기범이랑 10시에 약속했는데. 아이고···.”얼른 창문을 열고 밖을 두리번거리는 경신의 모습은 안절부절못해 보였다.“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거예요? 건물주님하고 만리장성이라도 쌓으신 거예요?”그 말에 경신은 화들짝 놀라 헛기침을 해대며 다시 침대에 털썩 걸터앉았다.“아··· 뭐, 만리장성까지는 아니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1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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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8. [봐도 봐도 또 보고 싶게]

태하는 경신의 드레스룸도 한번 바라보았다.  그녀는 자신의 이름으로 된 서류도 챙겨 가지 않았다.  이건 다시 오겠다는 뜻인가, 미련 없다는 건가. 이 방은 그대로인데 느껴지는 분위기는 더 쓸쓸하게 변한 건 이유를 알 수 없었다. 경신이 입었던 옷도 잘 개어져 침대 옆쪽에 올려져 있었다. 태하는 그 옷을 집어 들었다. 잘 빨아 놓고 싶어 세탁실로 향했다.  거실로 돌아오니 다 안다는 눈빛으로 마호는 태하를 향해 맥주캔 하나를 건넸다. 아주 제 집처럼 뭘 잘도 쑥쑥 빼먹고 있는 마호였다.  “참, 태하야. 너 스페인에서 부모님 한번 안 오시냐?” “글쎄.” “나는 왜 이리 불안하냐?” “뭐가?” “그분들이 너를 너무 아끼시니까 다시 스페인으로 데려가실까 봐.” 사실 태하는 운이 좋았다. 진심으로 자신을 아껴주는 양부모를 만났으니까. 그런데 너무 사랑하고 너무 애지중지 한다는 게 문제였다.  “나 성인이야.” “네가 너무 똑똑해서 회사 너 물려주고 싶으실 것 같아 난 걱정이야.” “그럴 일 없어.” 태하는 다시 시원한 맥주캔을 가지고 강아지들 근처로 갔다. 맥주캔을 딸까 말까 고민하고 있었다.  “그래도 난 너무 행복하다. 경신 양이 이곳에 다시 온다고 하니까. 마음이 놓인다.” 그 말에 태하는 제대로 대답하지 못했다. 그녀가 다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1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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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9. [큐피트의 화살은 도대체 어디로]

 경신은 기범이의 행동에 두 손을 모아 쥐고 탄성을 뱉었다.  “와! 기범이 멋지다! 영국 신사 같아!”  기범은 놀랐는지 눈을 크게 화들짝 떴다. 예전 경신이라면 부담스럽다고 한소리 했을 텐데··· 라고 홀로 중얼거리며 머리를 쓸어 넘겼다.  주머니에서 손수건을 꺼내 벤치에 깔아 경신을 앉게 해준 건 고마운 일인데 그는 민망해했다. “그런데 옛날 사람처럼 영국 신사가 뭐냐?” 경신은 크게 웃으며 고개를 주억거렸다. 자신의 알맹이는 수십 년을 몇 번이나 산 옛날 사람이라 촌스러울 수밖에 없었다.  에스트렐라가 대단하게 인쇄된 쇼핑백에서 잘 포장된 쿠키를 하나 꺼낸 경신은 톡톡 작게 잘라 입에 넣었다.  “내가 좀 세련된 것 하고 거리가 멀어서 그래. 이거 안 달고 고소하니 맛있다.” “많이 먹어. 또 줄게.” 허기가 져서 그런지 견과류가 많아서 씹는 재미도 있고 맛도 괜찮아 경신은 다시 한 조각 더 먹었다.  음식 이야기나 하자고 만난 것은 아닐 텐데. 지금은 자신의 이야기보다 기범의 이야기를 먼저 듣고 싶어 그를 바라보았다.  “기범아, 본론으로.” “급한 성격은 여전하네.” 기범은 목이 탔는지 탄산수를 열었다.  치이익 하고 경쾌한 기포 소리가 울려 퍼졌다. 그는 한 모금 마신 다음 잠시 후- 하고 심호흡을 하더니 경신을 조심스럽게 바라보았다.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1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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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0. [아슬아슬 위험한 거리]

경신의 심장이 제멋대로 요동치기 시작했다. 거칠게 날뛰는 맥박이 서늘한 밤공기를 타고 고스란히 전해지는 것만 같았다.자신이 태하를 좋아한다는 사실.긍정도 부정도 할 수 없는 진실이 목을 옥죄어 오자 경신은 기어이 입을 다물어버렸다. 침묵은 곧 시인이나 다름없었다.그 지독한 고요를 읽어낸 기범의 눈동자가 처연하게 가라앉았다. 밀어닥친 절망 끝에, 기범은 품고 있던 날카로운 칼을 끝내 꺼내 들었다.“너 태하 님, 포기해.”“······무슨 말이야, 그게?”기범의 눈빛에는 서슬 퍼런 결의가 서려 있었다. 그의 전생에는 정말로 태하가 존재했던 걸까.인간이란 참 얄궂은 생물이었다. 잘해 보라 등 떠밀면 달아나고 싶으면서도, 절대 안 되니 포기하라는 경고를 들으면 도리어 질척하게 매달리고 싶어지니까.아기를 품은 지금의 나 역시 전생의 굴레를 반복하지 않기 위해 그 어떤 남자와도 얽히지 않으려 처절하게 자제하는 중이었다. 게다가 배 속의 쌍둥이 아빠가 누구인지도 모르는 마당에 연애는 무슨. 함부로 누군가의 곁을 탐낼 처지가 아니었다.가만히 두면 알아서 사그라들 불씨였는데, 기범의 간절한 고백과 뜻 모를 경고가 묘하게 경신의 청개구리 본능을 자극하고 있었다.“······기범아. 앞으로 내게 이런 말 하지 마.”“신아, 날 제대로 봐줘.”잔인하게도 이번 생의 원래 경신 역시 기범을 밀어내기에 급급했던 모양이다. 하물며 임산부라는 비밀을 숨긴 자신이 이 눈부신 청년에게 언감생심 딴마음을 품을 수 있을 리 없었다.“미안, 기범아. 이제 너랑 가까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1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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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1. [심장에 해로운 남자]

약 한 시간 전.마호의 끈질긴 권유에도 태하는 맥주캔을 냉장고 깊숙이 밀어 넣었다.그의 주방은 작은 바를 연상시켰다. 와인 랙에는 붉은빛의 액체들이 줄지어 서 있고, 보드카와 위스키 병도 형형하게 빛을 반사하며 종류별로 자리했다.하지만 오늘은 그 모든 것이 무색하게도, 그는 술 대신 쇼핑백을 채워 나갔다.요즘은 경신과 거리가 가까워진 이후로 늘 비상 대기하는 사람처럼 술을 입에 대지 않은 나날이 늘어갔다.결국 태하는 차 키를 들고 마호에게 강아지들을 맡긴 채 집을 나서게 되었다.이유는 몰랐다. 그저 심장이 그리 원했다. 테헤란로를 벗어나 남부순환로를 거쳐 가면서도 그는 무의식이 이끄는 대로 운전을 했다.태하는 이 도로를 얼마나 다녔던지. 말 그대로 눈 감아도 그는 제 집에서 S대까지 갈 수 있는 사람이었다.심지어 공부에 취미가 별로 없음에도 불구하고 음악학 전공으로 S대 대학원에 등록까지 했다. 최근 정세에 맞게 뮤직 프로덕션과 사운드 엔지니어링, 음향 공학, 영상 음악 등 새로운 분야를 포괄하는 교육과정이 생겨난 덕분에 태하도 숟가락을 얹었다. 태하는 낙성대역이 보이자 저절로 입매가 풀려 호선을 그렸다. 그의 표정만큼이나 차도 부드럽게 S대 기숙사로 향했다.그런데, 기숙사 진입로의 가로등이 경신과 기범의 실루엣을 비추는 순간, 태하의 핸들이 무의식적으로 떨렸다. “저런.”브레이크를 밟는 그의 발에 힘이 들어갔다.꼭 연인들끼리 싸우고 남자가 여자를 달래주는 것 같은 느낌이라 태하는 순간 이성이 뇌에서 탈출해 버렸다.클랙슨 소리가 밤의 정적을 가르며 울렸고, 상향등 빛이 경신의 얼굴을 직격하자 그녀의 눈썹이 파르르 떨렸다.그리고 차에서 내려 경신을 기범으로부터 떼어 놓았다.&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1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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