덕배는 차에서 내린 뒤에도 한동안 말이 없었다.새벽 다섯 시의 거리는 아직 어두웠고, 문을 연 가게라고는 편의점 몇 곳이 전부였다. 그 한가운데 불을 환하게 밝힌 J&J 앞에는 꽃집 하나를 통째로 옮기기라도 할 것처럼 짐이 쌓여 있었다.접이식 테이블 두 개에 의자, 꽃이 든 양동이 여러 개, 길쭉한 상자와 포장재까지.덕배의 시선이 천천히 여름에게 돌아왔다.여름은 청바지에 운동화, 품이 넉넉한 후드티 차림이었다. 긴 머리까지 하나로 질끈 묶고 있으니 평소보다 더 어려 보였다.“설명해.”여름이 방긋 웃었다.“일단 좋은 아침이에요.”“지금 이 꼴을 보고 좋은 아침이 나오냐?”“저는 네 시부터 일어났는데요.”“나는 네 전화 때문에 네 시에 일어났어.”덕배는 잠이 덜 깬 얼굴을 거칠게 쓸어내렸다. 새벽 다섯 시에 꽃집 앞으로 부른 이유를 끝까지 말하지 않더니, 설마 저걸 전부 자기한테 들라는 건가 싶었다.불길한 예상은 틀리지 않았다.여름이 꽃집 앞에 쌓인 짐을 가리켰다.“이것 좀 실어주세요.”덕배의 얼굴이 그대로 굳었다.“뭐?”“무거워요.”“……그래서?”“아저씨 힘세잖아요.”새벽 공기 속으로 짧은 정적이 떨어졌다.덕배는 제 몸을 한번 내려다본 뒤 여름을 봤다. 185센티미터에 90킬로그램. 싸움과 현장에서 만들어진 두꺼운 몸을 이런 식으로 써먹겠다는 인간은 처음이었다.“야, 서여름.”“네.”“너 나 짐꾼으로 불렀냐?”여름이 잠시 생각하더니 고개를 끄덕였다.“네.”덕배의 입이 벌어졌다.조금의 죄책감도 없는 얼굴이었다.어젯밤 전화를 받았을 때 순간적으로 떠올렸던 생각까지 겹치자 기가 막혔다.애도 결국 똑같은 줄 알았다.호텔에서 마주쳤던 여자들처럼 자신에게 관심이라도 생겨 먼저 만나자고 하는 줄 알았더니, 이 여자애에게 필요했던 건 남자 배덕배가 아니라 힘 좋은 인간 하나였다.“씨발, 내가 뭔 생각을 한 거냐.”“네?”“아무것도 아니다.”덕배가 짜증스럽게 머리를 쓸어 넘겼다.“그래서 저걸 어디까지 처나르는데.
Last Updated : 2026-09-25 Read mor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