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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1 Chapter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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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심을 완전히 벗어나자 도로 위 차량이 눈에 띄게 줄었다.아직 해가 제대로 뜨지 않은 시각이라 차창 밖으로 낮은 안개가 깔려 있었고, 간간이 지나치는 화물차 불빛만 길게 번졌다. 덕배는 한 손으로 운전대를 잡은 채 남은 커피를 마셨다.새벽 네 시부터 일어나 움직인 탓에 몸이 피곤하다기보다 속이 허했다.조수석의 여름은 한동안 양로원 명단과 준비물을 확인하더니 휴대전화를 내려놓았다.내비게이션을 본 얼굴이 조금 미안해졌다.“멀죠?”덕배가 흘끗 봤다.“이제 묻냐?”“생각보다 오래 걸리네요.”“너 목적지 알고 탄 거 아니냐?”“저는 차로 가본 적이 없어서요. 사장님이랑 갈 때는 다른 분 차 얻어 타고 갔거든요.”덕배가 헛웃음을 흘렸다.“사람을 새벽 다섯 시에 불러놓고 거리도 몰라.”“죄송해요.”이번에는 장난기가 없는 대답이었다.여름은 덕배의 옆얼굴을 잠깐 살피더니 전방 표지판을 발견했다.“휴게소 잠시 들릴까요?”“왜.”“아저씨 배 안 고파요?”덕배는 대답하지 않았지만 여름의 시선이 자연스럽게 그의 배 쪽으로 내려갔다.“뭘 봐.”“배고파 보이나 해서요.”“배에서 얼굴도 나오냐?”여름이 작게 웃었다.“저도 배고파요.”그 말에는 덕배도 이견이 없었다.잠시 뒤 차가 휴게소로 들어갔다.이른 시간이었지만 식당 안에는 밤새 운전한 화물기사와 여행객 몇 명이 앉아 있었다. 덕배가 빈자리를 찾는 사이 여름은 메뉴판 앞에서 한참 고민했다.“뭐 먹을래요?”“아무거나.”“그게 제일 어려운데.”“네가 먹고 싶은 거 시켜.”여름은 메뉴판을 훑다가 국밥 사진에서 멈췄다.“뜨끈한 거 먹을래요?”“그래.”덕배가 지갑을 꺼내려 하자 여름이 손으로 막았다.“제가 살게요.”“됐어.”“제가 부른 거잖아요.”“밥값이 얼마나 한다고.”여름의 눈이 가늘어졌다.“아저씨.”덕배가 지갑을 든 채 내려다봤다.여름은 아주 진지하게 말했다.“오늘 일당입니다.”덕배의 표정이 멈췄다.“뭐?”“짐 들어주셨잖아요.”여름은 국밥 두 그릇을 주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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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로원에 도착했을 때는 아침 여덟 시가 조금 넘었다.차가 주차장으로 들어서며 속도를 줄이자 조수석에서 자고 있던 여름이 눈을 떴다. 몇 번 눈을 깜빡인 뒤 창밖의 익숙한 건물을 발견하고는 몸을 벌떡 일으켰다.“다 왔어요?”“어.”“왜 안 깨웠어요?”“잘 처자는데 왜 깨워.”여름은 흐트러진 머리를 손으로 대충 정리하다 등받이가 뒤로 넘어가 있는 걸 알아챘다.“어?”덕배는 이미 안전벨트를 풀고 있었다.“내려.”“이거 아저씨가 해줬어요?”“뭘.”“의자.”덕배가 차 문을 열었다.“자꾸 창문에 머리 처박길래.”여름은 잠시 그를 보다가 작게 웃었다.“고마워요.”“됐고. 짐이나 어디로 옮길지 알려줘.”차에서 내린 덕배가 트렁크를 열자 여름도 금세 잠기운을 털어냈다.양로원은 도심에서 조금 떨어진 곳에 자리한 작은 건물이었다. 넓은 마당 한쪽에는 평상이 놓여 있었고, 아침 햇살을 받으러 나온 노인 몇 명이 앉아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여름이 보이자 가장 먼저 할머니 한 명이 손을 번쩍 들었다.“어머! 꽃 아가씨 왔네!”여름의 얼굴이 바로 환해졌다.“할머니!”그녀는 덕배가 짐을 내리는 것도 잊고 먼저 마당으로 달려갔다.“잘 지내셨어요?”“왜 이렇게 오랜만에 와.”“한 달 만인데요?”“한 달이면 오래지!”할머니가 여름의 손을 잡아 양손으로 감쌌다. 옆에 있던 할아버지도 반갑게 웃었다.“이번에는 사장님 안 왔어?”“네. 오늘 일이 있으셔서 저 혼자 왔어요.”“혼자?”할머니의 시선이 여름 뒤로 향했다.그때 덕배가 양손에 커다란 상자를 하나씩 들고 걸어오고 있었다. 검은 셔츠 소매를 걷어붙인 채 꽃 상자를 옮기는 큰 체격은 멀리서도 눈에 띄었다.할머니의 눈이 반짝였다.“혼자가 아닌데?”여름이 뒤를 돌아봤다.“아.”덕배는 벌써 가까이 와 있었다.“이거 어디다 둬.”“프로그램실이요. 제가 안내할게요.”여름이 움직이려는데 손을 잡고 있던 할머니가 놓아주지 않았다.“누구야?”“저 아저씨요?”덕배의 눈썹이 멀리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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덕배는 삶은 달걀을 두 입 만에 먹고 재킷을 챙겼다.현장까지는 넉넉잡아 삼십 분이면 도착했다. 아홉 시까지 가기로 했으니 지금 출발하면 오히려 시간이 남았다.“간다.”여름은 꽃을 정리하느라 고개도 들지 못했다.“네. 오늘 진짜 고마웠어요.”“일당은 받았고.”“국밥에 커피에 달걀까지 드셨잖아요.”덕배가 피식 웃었다.“존나 후하네.”“다음에는 더 센 분 부를게요.”덕배의 걸음이 멈췄다.“뭐?”그제야 여름이 고개를 들었다.“일당 마음에 안 드신다면서요.”“나보다 센 놈을 어디서 구하게.”“짐 잘 드는 사람이면 되죠.”“힘만 세면 된다는 거네.”“네.”망설임도 없었다.덕배는 잠깐 여름을 바라보다 헛웃음을 흘렸다.“그래. 잘 구해봐.”그는 그대로 프로그램실을 나왔다.마당을 가로질러 주차장으로 향하는데 양로원 안쪽에서 할머니들의 웃음소리가 들렸다. 조금 전까지 평상에 있던 노인들이 하나둘 프로그램실로 들어가고 있었다.덕배는 차 키를 꺼냈다.그러다 걸음을 멈췄다.딱히 이유는 없었다.여기까지 새벽부터 끌려와 짐을 날랐으니 대체 뭘 하려고 그 많은 꽃을 가져왔는지 한번쯤 볼 수도 있었다.덕배는 방향을 틀었다.프로그램실 문은 열려 있었다.안으로 들어가지는 않고 복도 벽에 등을 기대섰다.“할머니, 그거 너무 짧게 자르면 안 돼요.”여름의 목소리가 들렸다.덕배가 안을 봤다.테이블마다 꽃과 작은 바구니가 놓여 있었고, 노인들은 여름을 따라 서툰 손으로 꽃을 다듬고 있었다.여름은 한자리에 앉아 있지 않았다.이 테이블에 갔다가 저쪽으로 움직이고, 가위 잡기가 어려운 할머니 손을 도와주다가도 누가 부르면 금세 달려갔다.“여름아, 이건 어디다 꽂아?”“할머니 마음에 드는 데요.”“네가 선생인데 네가 알려줘야지.”“오늘은 할머니 꽃인데 왜 제가 정해요?”여름은 할머니 앞에 쪼그려 앉아 꽃바구니를 함께 들여다봤다.“여기 한번 대볼까요?”“이쪽?”“응. 예쁜데요?”“진짜?”“네. 할머니가 저보다 잘하시는데?”할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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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덕배는 프로그램실 안으로 끌려 들어갔다.정확히는 여름이 끈 게 아니었다. 아까부터 신랑 총각이라고 부르던 할머니가 빈 의자를 두드리며 앉으라고 했고, 옆자리 할아버지까지 가세했다.“젊은 사람이 왔으면 같이 해야지.”“저 젊은 사람 아닙니다.”덕배가 대꾸하자 맞은편 할머니가 손을 내저었다.“나한테는 애야.”그 말에는 반박할 방법이 없었다.덕배는 어이없는 얼굴로 여름을 찾았다. 도와달라는 뜻이었지만 여름은 웃음을 참으며 작은 바구니 하나를 그의 앞에 내려놓았다.“잘해보세요.”“야.”“선생님한테 야가 뭐예요.”덕배의 눈썹이 꿈틀했다.여름은 모르는 척 가위와 꽃을 가지런히 놓아줬다.“줄기는 여기 정도에서 자르고요. 처음부터 너무 짧게 자르면 다시 못 길게 하니까 조금씩 잘라보세요.”덕배는 분홍색 꽃 한 송이를 집어 들었다.손안에서 지나치게 작아 보였다.현장에서 철근이며 자재를 잡던 손으로 꽃 줄기를 쥐고 있으니 스스로도 우스웠다.“이걸 그냥 처꽂으면 되는 거 아니냐?”주변이 조용해졌다.여름이 눈을 가늘게 떴다.덕배는 그제야 할머니들을 한번 둘러봤다.“……꽂으면 되는 거 아닙니까?”존댓말로 고쳐 말하자 여기저기서 웃음이 터졌다.“총각이 생긴 거랑 다르게 순하네.”덕배의 얼굴이 묘해졌다.순하다는 말을 언제 마지막으로 들어봤는지 기억도 나지 않았다.여름은 등을 돌리고 웃고 있었다.“너 웃냐?”“아니요.”“어깨가 움직이잖아.”“수업에 집중하세요.”덕배가 혀를 차며 꽃 줄기를 잘랐다.싹둑.여름의 눈이 커졌다.“너무 많이 잘랐잖아요!”“조금씩 자르라며.”“그게 아저씨한테 조금이에요?”덕배가 손에 남은 짧은 줄기를 내려다봤다.“이 정도면 됐지.”“꽃이 거의 단두대 갔다 왔는데.”옆자리 할머니가 꽃을 보고 깔깔 웃었다.“괜찮아. 앞에 꽂아.”덕배가 여름을 향해 턱을 들었다.“들었지? 괜찮다잖아.”“할머니가 더 잘하시니까 할머니한테 배우세요.”“그래.”덕배는 정말 몸을 옆으로 돌렸다.“할머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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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꽂이 수업이 중반을 넘기자 프로그램실 분위기는 처음보다 훨씬 떠들썩해졌다.덕배는 현장에 가야 한다는 사실도 잠시 잊은 채 할머니들 사이에 앉아 있었다. 자기가 만든 꽃바구니를 누가 가져갈지를 두고 실랑이가 벌어진 탓이었다.“내가 가르쳐줬으니까 내 거야.”“내가 먼저 달라고 했어.”“꽃은 총각이 만들었는데 왜 둘이 정해.”덕배는 팔짱을 낀 채 세 사람을 번갈아봤다.“하나 더 만들면 되잖습니까.”그 말에 여름이 멀리서 바로 끼어들었다.“아저씨가요?”“왜.”“현장 가야 된다면서요.”덕배가 시계를 확인했다.아홉 시가 가까웠다.일정을 미뤄놓긴 했지만 여기서 정말 하나를 더 만들다가는 열 시도 빠듯했다.“그럼 이거 세 분이 가위바위보 하십시오.”“싫어.”“왜요?”“총각이 하나씩 만들어줘.”덕배의 얼굴이 구겨졌다.“제가 꽃집 직원도 아니고…….”“우리 여름이 신랑이면 꽃집 식구지.”주변에서 웃음이 터졌다.여름은 다른 테이블에서 꽃을 정리하다 고개를 들었다.“할머니, 아니라니까요!”“뭐가 아니야. 잘 어울려.”“저 아직 스무 살이에요.”여름은 이제 익숙하다는 듯 웃으며 넘겼다.덕배도 굳이 정정하지 않았다. 여기서 아니라고 한마디 보태면 할머니들이 오히려 더 신나서 붙잡는다는 걸 지난 한 시간 동안 충분히 배웠다.그때 창가 쪽에 앉아 있던 할머니 한 분이 덕배를 한참 바라봤다.아까부터 조용히 꽃을 만지던 사람이었다. 기억이 오락가락하는 날이 있어 직원이 곁에서 자주 살피는 할머니였다.할머니의 시선이 덕배의 넓은 어깨와 팔로 내려갔다가 이번에는 여름에게 향했다.그러더니 아무렇지도 않게 말했다.“밤일도 잘하겠다.”프로그램실이 순간 조용해졌다.덕배의 손에 들려 있던 가위가 멈췄다.여름은 자기가 잘못 들은 줄 알고 눈을 깜빡였다.할머니는 주변의 정적을 전혀 느끼지 못한 얼굴로 말을 이었다.“저렇게 이쁜 아내도 있는데 애만 있음 되겠네.”“…….”여름의 얼굴이 순식간에 빨개졌다.목부터 귀까지 열이 확 올라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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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로원을 빠져나온 덕배는 주차장에 세워둔 차까지 빠르게 걸었다.예정보다 한 시간 넘게 늦었다. 자신이 직접 현장 시간을 미뤘으니 누가 뭐라고 할 사람은 없었지만, 업무 때문에 늦은 게 아니라 꽃꽂이 구경하다 시간을 보냈다는 사실은 스스로 생각해도 어이가 없었다.차 문을 열던 손이 잠깐 멈췄다.밤일도 잘하겠다.저렇게 이쁜 아내도 있는데.느닷없이 할머니 목소리가 떠올랐다.뒤이어 목부터 귀까지 새빨개져서는 제 신랑 아니라고 더듬거리던 여름의 얼굴까지 붙었다.덕배가 미간을 찌푸렸다.“별소리를 다 들어보네.”차에 올라탄 그는 곧바로 시동을 걸었다. 그걸로 생각은 끝이었다.현장에 도착하자 분위기는 완전히 달라졌다.안전모를 받아 쓴 덕배는 곧장 지하 자재창고부터 내려갔다. 업체 관계자와 본사 담당자가 이미 기다리고 있었고, 며칠 동안 맞춰놓은 납품서와 실제 수량도 테이블 위에 정리돼 있었다.덕배는 인사도 길게 하지 않았다.“설명해보세요.”업체 관계자가 준비한 자료를 펼쳤다.“저희 쪽에서는 납품 수량대로 출고된 걸로 확인됐습니다.”“그럼 현장에서 증발했습니까?”“그 말씀은 아니고…….”덕배가 원본 납품서 한 장을 앞으로 밀었다.“여기 서명한 사람 누구예요.”상대의 말이 잠깐 막혔다.덕배는 표정 하나 바꾸지 않고 다음 자료를 붙였다. 출고 시간과 현장 반입 시간이 맞지 않았고, 차량번호도 일부 달랐다.“나 바쁜 사람입니다.”목소리가 낮아졌다.“숫자 가지고 장난친 거 다 잡아놨으니까 변명 들으려고 온 거 아닙니다. 누가 시작했는지만 말해요.”조금 전까지 할머니들 사이에서 꽃을 자르던 남자의 흔적은 어디에도 없었다.한 시간도 지나지 않아 내부 담당자의 이름이 나왔다.덕배는 필요한 조치를 정리하고 현장을 빠져나왔다.점심시간은 이미 한참 지났다.차에 올라타자 정민에게 전화가 왔다.“왜.”- 끝났냐?“어. 하나 잡았어.”- 본사 직원?“맞아. 자료 정리해서 보낼게.”업무 이야기가 끝나자 정민이 잠시 조용했다.덕배는 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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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은 휴대전화 화면을 한동안 내려다봤다.거기 있어.무슨 뜻인지는 굳이 물어볼 필요도 없었다. 아침에 자기를 데려다준 사람이 남은 짐까지 가지러 오겠다는 뜻이었다.여름은 곧바로 답장을 쳤다.[서여름: 저 혼자 갈 수 있어요.]잠시 뒤 답이 왔다.[배덕배: 그걸 들고?]여름은 프로그램실 한쪽에 모아둔 짐을 돌아봤다.접이식 테이블 두 개에 빈 양동이와 도구 상자, 남은 꽃과 포장재까지 있었다. 올 때보다는 줄었지만 혼자 대중교통으로 가져갈 양은 아니었다.[서여름: 택시 부르면 돼요.]이번에는 답장이 없었다.여름은 휴대전화를 내려놓았다.“알아서 가라는 건가?”그게 당연했다.덕배는 이미 새벽부터 자신 때문에 한참을 움직였고 현장까지 늦게 갔다. 여기서 다시 오라는 건 아무리 여름이라도 염치없는 일이었다.그녀는 양로원 직원과 남은 짐을 현관 쪽으로 옮겼다.한 시간쯤 지나자 밖에서 자동차 소리가 들렸다.여름은 별생각 없이 고개를 들었다가 그대로 멈췄다.익숙한 검은 차가 주차장으로 들어오고 있었다.운전석 문이 열렸다.덕배가 내렸다.아침의 편한 차림과 달리 짙은 정장에 셔츠 소매만 걷어 올린 상태였다. 현장에서 곧장 온 듯 구두와 바지 끝에는 옅은 먼지가 묻어 있었다.여름이 현관 밖으로 나왔다.“진짜 왔어요?”덕배가 차 문을 닫으며 눈썹을 들었다.“오라며.”“제가 언제요?”“짐 들어달라고 새벽부터 사람 처불러놓고 돌아갈 때는 알아서 가라고?”“아침만 부탁한 건데요.”“내가 언제 아침만이라고 들었냐.”여름이 입을 다물었다.생각해보니 정확히 말한 적은 없었다.덕배는 그녀를 지나쳐 현관 안에 쌓인 짐부터 확인했다.“이게 다야?”“네. 올 때보다 많이 줄었어요.”“테이블부터 실어.”“제가 들게요.”덕배가 돌아봤다.“너 오늘 하루 종일 일했잖아.”“아저씨도 일했잖아요.”“나는 원래 이런 거 드는 놈이고.”“저도 들 수 있어요.”“알아.”덕배는 접이식 테이블 두 개를 한꺼번에 집어 들었다.“근데 내가 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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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깃집 안은 저녁 손님들로 북적였다.덕배는 익숙하게 안쪽 자리를 잡았고, 여름은 맞은편에 앉자마자 메뉴판부터 펼쳤다. 가격을 훑던 눈이 잠깐 커졌다가 아무렇지도 않은 척 다시 내려갔다.그걸 놓칠 덕배가 아니었다.“왜.”“뭐가요?”“비싸냐?”“아니요.”“방금 눈 커졌잖아.”여름은 메뉴판으로 얼굴을 조금 가렸다.“원래 눈 커요.”덕배가 헛웃음을 터뜨렸다.“얼마 있는지 보고 시켜.”“저 돈 있어요.”“알아.”“근데 왜 자꾸 없다고 해요?”“없는 게 아니라 네 월급으로 나 먹이려면 힘들다고.”여름이 메뉴판을 내렸다.“아저씨 얼마나 먹는데요?”“너보단 많이.”“그건 누구나 그렇잖아요.”덕배의 눈썹이 올라갔다.“야.”여름이 입꼬리를 슬쩍 올렸다.“농담이에요.”결국 덕배가 메뉴판을 가져갔다.“내가 시켜.”“제가 사는 건데요.”“그러니까 네 지갑 안 털리게 내가 적당히 시킨다고.”“많이 드셔도 돼요.”“나 진짜 많이 먹어.”여름은 잠깐 고민하다 카드가 든 지갑을 한번 만졌다.덕배가 그걸 보고 웃었다.“벌써 쫄았네.”“안 쫄았어요.”“그럼 소고기 시킨다?”“돼지고기로 합의해요.”덕배가 소리 내 웃었다.잠시 뒤 불판 위에 고기가 올라갔다.덕배는 고기를 굽는 손도 빨랐다. 두꺼운 고기를 한 번에 뒤집고 익은 것부터 잘라 여름 쪽으로 밀어놓았다.여름은 처음에는 잘 먹었다.아침 국밥 이후 제대로 된 식사를 하지 못했으니 배가 고팠다. 하지만 원래 먹는 양이 많지 않은 탓에 얼마 지나지 않아 젓가락이 느려졌다.덕배는 고기를 한 점 더 올려놓다 그걸 알아챘다.“왜 안 먹어.”“먹고 있어요.”“아까부터 상추만 처만지고 있잖아.”여름은 손에 들고 있던 상추를 내려다봤다.“배불러요.”덕배의 시선이 여름의 밥그릇으로 향했다.밥은 절반도 먹지 않았고 고기도 생각보다 얼마 손대지 않았다.“양 작은 거 같은데 더 드세요.”옆에서 반찬을 채워주던 직원이 여름의 그릇을 보고 말했다.여름은 바로 웃으며 고개를 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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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가 고깃집 골목을 빠져나왔을 때 여름은 벌써 하품을 참느라 입술을 꾹 다물고 있었다.새벽 네 시에 일어나 꽃집으로 나왔고, 한 시간이 넘는 거리를 이동해 양로원에서 종일 서 있었다. 돌아오는 길에 잠깐 잤다고 해도 피로가 풀릴 리 없었다.덕배는 신호에 걸릴 때마다 조수석을 한번씩 봤다.“졸리면 자.”여름이 고개를 저었다.“괜찮아요.”“눈이 반쯤 감겼는데 뭘 괜찮아.”“아저씨 혼자 운전하면 심심하잖아요.”덕배가 코웃음을 쳤다.“내가 애냐? 옆에서 말동무 없으면 운전 못 하게.”“그래도 한 시간 넘게 가야 되는데.”“자라니까.”여름은 잠시 버티다가 결국 등받이에 몸을 기댔다.“그럼 조금만 잘게요.”“허락받지 말고 자.”“도착하면 깨워주세요.”“안 깨우고 버릴 거야.”여름은 눈을 감은 채 중얼거렸다.“그럼 아저씨 차에서 잘 건데요.”덕배의 입꼬리가 올라갔다.“그게 더 골치 아파. 자.”몇 분 지나지 않아 조수석이 조용해졌다.덕배가 옆을 보니 여름은 정말 잠들어 있었다. 조금 전까지 말이 끊이지 않던 애가 눈을 감자 차 안의 분위기가 이상할 만큼 달라졌다.도로의 가로등 불빛이 일정한 간격으로 작은 얼굴 위를 스쳤다.덕배는 시선을 오래 두지 않고 다시 전방을 봤다.한참을 달리던 중 휴대전화가 울렸다.차량 화면에 안채아의 이름이 떴다.덕배는 그대로 통화 버튼을 눌렀다.“왜.”- 오빠, 뭐 해?“운전.”- 어디 가는데?“서울.”- 지방 갔었어?“어.”- 일 때문에?덕배는 잠깐 입을 다물었다.“비슷해.”- 비슷한 건 뭐야?“뭘 그렇게 캐.”채아가 웃었다.- 오늘 볼래?덕배는 시간을 확인했다. 여름을 데려다주고 나면 늦지 않은 시간이었다.“보고 연락할게.”- 또 보고.“지금 운전 중이야.”- 알았어. 연락해.통화가 끝났다.조수석에서는 아무 움직임도 없었다.덕배는 여름이 깼나 싶어 한번 봤지만 여전히 자고 있었다.차가 서울에 들어섰을 때는 밤이 깊어져 있었다.내비게이션이 J&J 근처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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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의 집은 J&J에서 차로 십 분도 걸리지 않았다.덕배는 내비게이션에 찍힌 길을 따라 주택가 안쪽으로 들어갔다. 늦은 시간이라 골목은 조용했고, 낮부터 이어진 긴 일정 탓인지 여름도 아까처럼 말이 많지 않았다.조수석 컵홀더에는 양로원에서 받은 노란 꽃 한 송이가 꽂혀 있었다.덕배가 운전하며 흘끗 봤다.“저거 얼마나 가.”여름도 꽃을 봤다.“물 잘 주면 며칠은 가요.”“한 송이도?”“한 송이라고 생명이 짧아져요?”“또 꽃 편드네.”“꽃은 말 못 하잖아요.”덕배가 피식 웃었다.“너까지 말 많아서 됐어.”“제가 얼마나 조용한데요.”“누가.”“저요.”“양심 어디다 처버렸냐?”여름이 웃음을 터뜨렸다.잠시 뒤 내비게이션이 목적지에 도착했다는 안내를 내보냈다.덕배가 건물 앞에 차를 세웠다.“여기?”“네.”여름은 안전벨트를 풀고 가방을 챙겼다. 차 문을 열려다 다시 몸을 돌렸다.“오늘 진짜 고마웠어요.”“아까도 했어.”“그래도요. 아침부터 데려다주고, 짐 들어주고, 수업도 도와주고, 다시 와서 데려다주고.”덕배가 한쪽 눈썹을 들었다.“그러니까 다음 일당 비싸게 줘.”여름의 입꼬리가 올라갔다.“다음에도 올 거예요?”“또 시작이네.”“아저씨가 다음 일당이라면서요.”“말꼬리 존나 잘 잡는다.”여름은 웃으며 문손잡이를 잡았다.그러다 컵홀더에 꽂힌 꽃을 발견하고 손을 뻗었다.“잠깐만요.”“왜.”“꽃 이대로 두면 쓰러져요.”여름이 몸을 기울여 꽃을 잡으려는 순간 덕배도 같은 쪽으로 손을 뻗었다.“내가 할게.”두 사람의 움직임이 겹쳤다.그 순간 여름의 가방이 기어박스 옆에 걸렸다.“어?”몸이 앞으로 쏠렸다.덕배는 반사적으로 여름의 어깨를 잡았다.여름도 넘어지지 않으려고 그의 셔츠를 움켜쥐었다.그리고 아주 짧게.입술이 닿았다.둘 다 그대로 굳었다.정말 스친 정도였다.입술이 맞닿았다가 숨 한번 들이마시기도 전에 떨어졌다.여름의 눈이 동그래졌다.덕배 역시 아무 말이 없었다.차 안이 순식간에 조용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09-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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