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odos os capítulos de 내 아이의 유치원 앞을 서성이는 전남편: Capítulo 11 - Capítulo 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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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1화: 아이를 맡기기 전에

서진은 거침없는 손놀림으로 A4 용지 상단에 굵직한 글씨를 적어 내려갔다.[무보수 전속 육아 기사 및 긴급 돌봄 약속서]제목을 확인한 태혁의 눈썹이 꿈틀거렸으나, 서진의 차가운 눈빛과 마주치자마자 꿀 먹은 벙어리처럼 입을 다물었다. 서진은 볼펜을 굴리며 조항들을 낭독하듯 써 내려갔다."제1조(갑을 관계). 본 계약의 '갑'은 윤서진 및 윤하람으로 하며, '을'은 차태혁으로 지정한다.""……을, 차태혁. 확인.""제2조(근무 조건 및 보수). 을의 모든 노동—하원 픽업, 놀이터 보초, 가방 운반 등 일체—에 대한 보수는 0원으로 하며, 을은 어떠한 금전적 대가나 식사 제공도 요구할 수 없다.""당연하지. 무보수가 아니라 내가 돈을 내고서라도 일할 판인데.""제3조. 하람이에게 아빠라고 설명하는 일은 두 사람이 먼저 의논해요. 아이가 납득할 수 있게 내가 함께 있는 자리에서 말하고요. 그때까지는 아이가 부르는 대로 삼촌이에요."태혁은 펜 끝을 내려다봤다. 방금 만난 어른이 제 아빠라니, 하람이에게도 설명을 들을 시간이 필요했다. 자신이 사과할 시간을 벌자고 아이에게 또 기다리라고 할 수는 없었다.태혁은 주먹을 꽉 쥐며 고개를 끄덕였다."알겠어. 명심할게.""미루기만 하지는 말자. 하람이가 먼저 물으면 거짓말은 하지 않을게."서진은 잠깐 펜을 멈췄다."그때는 나한테도 바로 알려줘요. 아이한테 우리 감정 정리까지 시키고 싶지 않아요.""제4조(오만 금지). 을은 5년 전처럼 '생각할 시간을 갖자' 따위의 헛소리를 지껄이거나, 고개를 빳빳이 들고 갑의 의사에 반하는 거만한 태도를 취할 수 없다."태혁은 계약서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제가 했던 말이 조항으로 돌아와 있었다."제5조. 약속을 어기면 돌봄을 중단할 수 있어요. 허락 없이 집에 들어오거나 아이를 데려가면 신고할 거고요. 하람이에게 잘했다고 나한테 뭘 요구하지도 마요."회사에서 쓰는 계약서라면 수정 표시가 여러 개 붙었을 것이다. 이 종이는 서진이 어디까지 맡길 수 있는지 적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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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2화: 첫 하원과 핑크색 공룡

"어……? 모래 도둑 아저씨가 왜 또 여기 서 있어?!"오후 4시 정각, 신도시 햇살반 유치원의 샛노란 정문 앞. 하원 시간에 맞춰 쏟아져 나오던 아이들과 학부모들 사이로, 하람이의 카랑카랑한 외침이 내리꽂혔다. 동시에 하람이 손을 잡고 나오던 담임교사의 표정이 순식간에 경계심으로 하얗게 질려버렸다.주변에 서 있던 엄마들의 웅성거림이 삽시간에 번져나갔다."잠깐만요! 도둑 아닙니다! 저 수상한 사람 아니에요!"태혁은 반사적으로 양손을 번쩍 들며 식은땀을 뻘뻘 흘렸다. 수천만 원짜리 맞춤 수트의 매무새 따위는 이미 안중에도 없었다. 태혁은 덜덜 떨리는 손으로 품속에서 스마트폰을 꺼내 계약서 사진을 띄웠다.이어 서진이 담임교사에게 보낸 '긴급 하원 대리인 위임 확인 문자'가 떠 있었다."여기 윤서진 씨와 작성한 계약서 사진이랑 문자 확인 부탁드립니다. 제가 오늘 하람이의 합법적인 무보수 전속 기사입니다!"담임교사는 스마트폰과 계약서, 그리고 태혁의 눈물겨운 얼굴을 번갈아 살폈다. 서진과의 통화까지 거친 뒤에야, 마침내 안도의 한숨과 함께 하람이의 작은 손을 건네주었다."하람이 어머님과 통화됐습니다. 하람아, 오늘 하루는 이 삼촌 말씀 잘 듣고 집에 가야 해, 알겠지?"선생님이 손을 놓으려 하자 하람이가 잠깐 버텼다. 조금 전까지 큰소리치던 아이의 입이 다물렸다. 태혁은 재촉하지 않고 그 앞에 앉았다."엄마한테 한 번 더 전화할까?"수화기에서 엄마 목소리가 들린 뒤에야 작은 손이 풀렸다. 아이는 먼저 집에 가면 수아 이모가 있느냐고 확인했다. 태혁은 통화가 끝날 때까지 기다린 다음 휴대폰을 넣었다. 하람이가 내민 것은 손 대신 가방 끈이었다."네, 선생님! 안녕히 계세요!"교문 밖으로 발을 내딛자마자, 하람이는 어깨에 메고 있던 커다란 핫핑크색 공룡 가방을 훌러덩 벗었다. 그러고는 태혁의 허벅지에 가방을 툭 내던지며 턱을 빳빳하게 치켜들었다."자, 모래 도둑 아저씨. 엄마가 쓴 종이에 삼촌이 내 가방 셔틀이라고 적혀 있었다면서? 얼른 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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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3화: 편의점 마이쮸 대협상

"하나…… 둘……."편의점 바닥에 주저앉은 네 살배기 윤하람의 입술에서 가차 없는 카운트다운이 흘러나왔다. 아이는 눈가를 찡긋거리며 태혁을 맹수처럼 쏘아보았다. 계산대의 20대 아르바이트생과 손님들의 시선이 일제히 태혁을 향해 꽂혔다.'저 멀쩡하게 생긴 수트남은 애한테 뭘 하길래 애가 저러나' 하는 서슬 퍼런 눈총이었다. 태혁의 이마에서 식은땀이 비 오듯 쏟아져 내렸다. 머릿속에는 서진이 건넨 돌봄 수칙과 계약서 제5조가 붉은 경고등처럼 번쩍였다.'편의점에서 드러누워도 절대 사주지 말 것. 마이쮸는 비상용 한 알만. 위반 시 즉시 계약 파기 및 형사 고소.' 서진과의 계약이 파기되면 아빠로서 속죄하며 곁을 지킬 기회가 영영 사라지는 셈이었다.하지만 아이가 '납치범'이라고 소리치면 또다시 112 순찰차가 출동해 신도시 지구대로 끌려갈 판이었다. 절체절명의 위기 속에서 태혁은 엄숙한 표정으로 무릎을 굽혔다. 아이와 정확히 눈높이를 맞춘 태혁이 나직하고 진중한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하람아, 이 거래에 대해 논리적으로 재고해 보자꾸나.""……뭐라고?""저 공룡 로봇은 제조 단가 대비 플라스틱 사출 마감이 조악해 감가상각이 극심해. 게다가 마이쮸 대용량 한 박스는 네 간식 허용량을 한참 초과해. 엄마가 주신 지침과도 정면으로 충돌하고."하람이의 앙증맞은 눈동자가 가늘어졌다. 아이는 기가 막힌다는 듯 한숨을 푹 내쉬며 알바생에게 태혁을 가리킨 뒤 제 관자놀이 옆에서 손가락을 빙 돌렸다."형아, 저 아저씨 외계인이야? 한국말 몰라? 회사에서 사기 치다 도망친 사람 같아.""손님…… 애기 상대로 뭘 그렇게 어렵게 말씀하세요. 그냥 하나 사주시지……."알바생의 한심하다는 눈빛에 태혁의 뒷목이 뻐근해졌다. 하람이는 다시 태혁을 똑바로 쏘아보며 턱을 치켜들었다."어려운 척 폼 잡지 마, 삼촌. 입술 부들부들 떠는 거 보니까 쫄았네? 셋 세기 전에 카드 긁어. 셋……!""잠깐! 타임!"태혁이 황급히 허공에 티 자를 그렸다. 네 살짜리에게 경제학은 통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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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4화: 비 내리는 귀갓길의 수트 우산

쏴아아아아—!하늘에 구멍이라도 뚫린 것 같았다. 갑작스럽게 쏟아져 내리는 거센 빗줄기에 신도시 상가 거리의 행인들이 비명을 지르며 건물 처마 밑으로 허겁지겁 몸을 숨겼다. 아스팔트 바닥에 굵은 빗방울이 사정없이 튀어 올랐다."으앙! 비 온다! 내 씽씽카 젖어!"하람이가 깜짝 놀라 킥보드 핸들을 쥔 채 동동거리는 순간, 태혁의 몸이 본능적으로 번개처럼 움직였다. 생각보다 몸이 먼저 튀어 나간 완벽한 조건반사였다. 스위스 명품 시계나 수천억 원대 투자 포트폴리오를 지킬 때도 발동하지 않던 초인적인 순발력이었다.태혁은 1초의 망설임도 없이 어깨에 걸치고 있던 이탈리아 최고급 캐시미어 수트 재킷을 훌러덩 벗어 펼쳤다. 한 벌에 수천만 원을 호가하는 영국 새빌 로 맞춤 명품 정장이었지만, 지금 태혁의 눈에는 그저 빗물을 막아줄 커다란 방수 천막에 불과했다."하람아, 이리 와!"태혁은 재킷을 활짝 펼쳐 하람이의 머리 위를 완벽하게 감싸 안았다. 그리고 긴 팔로 하람이의 작은 몸통을 번쩍 안아 올려 자신의 단단한 가슴팍에 단단히 밀착시켰다. 남은 한 손으로는 길바닥에 놓인 하람이의 킥보드를 낚아채 옆구리에 끼웠다."삼촌 목 꽉 잡아! 절대 손 놓으면 안 된다!""응! 꽉 잡았어!"태혁은 물웅덩이를 가로질러 빗속을 전력 질주하기 시작했다. 세찬 빗줄기가 태혁의 단정한 머리칼과 이마, 목덜미를 사정없이 사납게 후려쳤다. 순백의 맞춤 드레스 셔츠는 10초도 지나지 않아 온몸에 쩍쩍 달라붙었고, 최고급 실크 넥타이는 진흙 빗물에 젖어 무겁게 늘어졌다.구두 안으로 물이 들어왔다. 태혁은 아이 얼굴 쪽으로 재킷을 여미고 비를 피할 수 있는 처마 아래로 먼저 갔다. 하람이의 소매는 조금 젖어 있었다. 그는 더 젖지 않게 아이를 고쳐 안고 서진에게 도착할 곳을 알렸다.아이는 태혁의 목덜미를 꼭 끌어안고 있다가, 문득 태혁의 왼쪽 가슴팍에 귀를 바짝 갖다 대었다. 쿵쾅! 쿵쾅!쿵쾅! 귓전을 사납게 때리는 거칠고 뜨거운 심장 소리. 태혁이 빗속을 미친 듯이 질주하느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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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5화: 302호 문앞의 젖은 대형견

"……뭐라고, 하람아?"태혁의 두 눈이 지진이라도 난 듯 격렬하게 흔들렸다. 숨이 턱 끝까지 차올라 있던 가슴이 이번에는 전혀 다른 종류의 충격으로 거세게 요동쳤다. 엄마가 바꾼 집 비밀번호가…… 생일이라고?혹시 자신의 생일일까. 자신을 그토록 매몰차게 밀어내고 경멸하던 서진이었다. '우리 인생에 당신 자리는 1mm도 없다'며 서슬 퍼런 칼날을 들이대던 그녀였다.그런데 그녀가 매일 열고 닫는 집 현관문 도어락에, 여전히 자신의 생일을 새겨두고 있었단 말인가? '서진아…… 넌 아직도 날…….' 감당할 수 없는 벅찬 감격과 회한이 뒤엉켜 태혁의 눈시울이 시뻘겋게 달아올랐다.태혁은 물에 젖은 채 덜덜 떨리는 손으로 가슴을 쥐어뜯으며, 울먹이는 목소리로 조심스럽게 물었다."하람아…… 혹시 그 번호가…… 1128이니? 11월 28일…… 맞지?"하람이가 태혁을 벌레 보듯 빤히 올려다보더니, 기가 찬다는 듯 콧방귀를 팽 뀌었다."1128은 무슨 얼어 죽을 번호야? 삼촌 생일 11월 28일이야?""……어? 아니야?""우리 집 비밀번호 0301이거든? 3월 1일!"하람이의 앙증맞은 손가락이 능숙하게 네 자리 숫자를 꾹꾹 누르자, 도어락에서 경쾌한 잠금 해제 멜로디가 울려 퍼졌다. 태혁이 문이 열리고도 움직이지 않자, 하람이는 답답하다는 듯 올려다보았다."엄마 생일이 3월 1일이잖아! 엄마가 자기 생일로 바꿨다고 했는데 삼촌 혼자 뭔 김칫국을 사발로 드링킹해? 삼촌 삼일절에 태어났어? 왜 혼자 눈물 글썽거리면서 생쇼를 해?""…….""삼촌 진짜 구제불능 도둑 아저씨 맞네. 머릿속에 도둑 심보만 가득 찼어."철저하게 박살 난 기대감 앞에서 태혁은 허탈한 헛웃음을 삼키며 차가운 벽을 짚었다. 그럼 그렇지. 5년 만에 나타난 파렴치한 전남편의 생일을 서진이 도어락에 걸어둘 리가 만무했다.태혁은 쥐구멍이라도 찾고 싶은 굴욕감에 붉어진 얼굴을 쓸어내렸다. 철컥, 문이 열리며 아늑하고 따뜻한 집 안의 공기가 복도로 흘러나왔다."하람아, 손부터 씻자. 저녁 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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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6화: 새벽 1시, 복도의 대형견

띵—!새벽 1시 20분. 고요한 아파트 복도의 침묵을 가르고 3층 엘리베이터 문이 스르륵 열렸다. 파주 인쇄 공장의 지독한 화학 잉크 냄새와 기계 굉음 속에서 사투를 벌이고 돌아온 윤서진이었다.별색 잉크의 미세한 채도 오차까지 집요하게 잡아내며 늦은 밤까지 작업을 진두지휘한 끝에, 마침내 클라이언트 본부장으로부터 완벽하다는 최종 OK 사인을 받아냈다. 일생일대의 대형 프로젝트를 성공적으로 방어해 낸 순간이었다. 온몸의 긴장이 풀리자 시린 피로가 밀려왔다.서진은 흙먼지가 묻은 코트 자락을 여미며 비틀거리는 걸음으로 복도 코너를 돌았다. 머릿속에는 수아에게 맡겨 둔 하람이가 맴돌았다. 차태혁 그 인간이 설마 애를 울리거나 허튼짓을 하진 않았을지, 불안감이 가슴을 짓누르고 있었다.하지만 302호 현관문 앞에 다다른 서진의 발걸음이 그 자리에 못 박힌 듯 뚝 멈춰 섰다. 서진의 두 눈이 믿을 수 없다는 듯 커다랗게 치켜떠졌다."……차태혁 씨?"현관문 옆 차가운 타일 바닥. 태혁이 두 다리를 접고 차가운 벽 모퉁이에 머리를 기댄 채 새우처럼 웅크리고 곤히 잠들어 있었다. 그의 곁 바닥에는 흠뻑 젖은 수트에서 흘러내린 빗물이 고여 작은 웅덩이를 이루고 있었다.입고 있는 명품 셔츠는 진흙과 빗물로 얼룩덜룩했고, 이마 위로 쏟아진 머리칼은 땀과 비에 젖어 헝클어져 있었다. 그 모습은 흡사 비 오는 날 길거리에 버려져 주인을 기다리다 지쳐 잠든 커다란 대형견과 다를 바 없었다. 서진은 기가 막혀 헛숨을 들이켰다.비가 쏟아졌으면 지하 주차장 제 차로 피했어야 할 텐데, 미련하게 젖은 옷도 못 갈아입고 찬 바닥에서 버텼단 말인가? 서진은 뾰족한 구두 끝으로 태혁의 젖은 바짓가랑이를 툭툭 찼다."차태혁 씨. 일어나요. 여기서 뭐 하는 짓이에요?"툭 치는 충격에 태혁이 용수철처럼 번쩍 눈을 떴다. 초점 없는 눈동자가 서진의 얼굴을 포착하는 순간, 태혁은 벼락이라도 맞은 듯 튕겨 일어나며 차렷 자세를 취했다. 너무 급하게 일어난 탓에 비틀거리며 벽에 어깨를 쾅 부딪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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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7화: 302호의 첫 문턱과 꽃무늬 바지

"……들어와요."서진의 서늘한 한마디에 태혁은 귀를 의심했다. 새벽 1시 20분, 빗물에 젖은 채 차가운 복도 바닥에 웅크려 있던 태혁의 시야로 활짝 열린 현관문이 들어왔다. 센서등의 주황빛이 어둠을 가르고 복도를 비추었다.5년 만이었다. 그녀가 떠난 뒤 태혁이 수천 번도 더 꿈꾸었던 순간이었다. 하지만 지금 그의 꼴은 억만장자 투자사 대표의 위엄 따위는 전혀 없는 처참한 몰골이었다.수천만 원짜리 명품 수트는 진흙에 절어 늘어졌고, 온몸은 지독한 오한과 고열로 떨렸다."차태혁 씨, 안 들어올 거면 문 닫습니다.""드, 들어갈게! 들어갑니다!"태혁은 문이 닫힐세라 서 있던 자리에서 허겁지겁 발을 옮겼다. 그러나 현관 매트 위에 발을 올리려는 순간, 그의 동작이 딱 굳었다. 구두와 바지 밑단에서 떨어지는 빗방울이 서진의 깨끗한 현관 바닥을 더럽히고 있었기 때문이었다."자, 잠깐만…… 물 떨어져. 네 집 바닥 버려."태혁은 기겁하며 발을 빼더니 젖은 양복 밑단을 손으로 쥐어짜며 쩔쩔맸다. 자신이 얼어 죽는 것보다 서진의 집이 더럽혀질까 봐 쩔쩔매는 거구의 모습에 서진은 한숨을 내쉬었다. 오만하기 짝이 없던 5년 전의 차태혁이라면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저자세였다."현관에 서서 수건으로 닦아요. 바닥은 닦으면 되니까 호들갑 떨지 말고."그 사이 수아가 가방을 들고 현관으로 나왔다. 저녁과 잠든 시간을 적은 메모를 서진에게 건네고는 태혁을 흘겨봤다."애는 잘 잤어. 밖에 있는 어른이 말을 안 들어서 그렇지."서진은 늦게까지 고맙다며 친구의 손을 잡았다. 수아가 엘리베이터에 타는 것까지 확인하고 문을 닫자, 식탁에 놓인 작은 그릇이 눈에 들어왔다. 하람이가 먹고 남긴 밥이었다. 태혁은 젖은 손을 털며 시선을 내렸다. 오늘 자신이 한 일은 그 긴 하루의 일부였다.서진은 마른 수건 두 장을 가져와 태혁의 젖은 머리통 위로 툭 덮어씌웠다. 보송보송한 비누 향기가 태혁의 코끝을 찔렀다. 서진의 체취와 온기가 덮쳐오는 순간, 태혁의 눈시울이 붉어졌다.수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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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8화: 꽃무늬 수트남의 아침 기상 소동

"엄마……! 으아앙! 엄마 빨리 나와 봐!"아침 7시 정각, 302호 거실의 고요한 적막을 찢고 하람이의 카랑카랑한 비명이 터져 나왔다. 네 살배기 아들의 다급한 외침에, 안방에서 쪽잠을 자던 서진이 헝클어진 머리를 쓸어 넘기며 문을 박차고 뛰쳐나왔다."하람아! 왜 그래, 무슨 일이야?!""엄마! 우리 집 거실 소파에 거대한 왕문어 괴물이 자고 있어! 아니, 분홍색 꽃 귀신이야!"하람이는 플라스틱 장난감을 몽둥이처럼 치켜든 채 소파를 가리키며 바들바들 떨고 있었다. 서진의 시선이 소파 쪽으로 향하는 순간, 그녀의 입술 사이로 어이없는 헛바람이 새어 나왔다.쿵!비명 소리에 화들짝 놀란 태혁이 용수철처럼 튀어 오르다 소파 앞 유리 티테이블 모서리에 정강이를 사정없이 찧었다."커억……! 아, 안녕하십니까! 충성!"눈물 콧물을 찔끔 흘리며 허리를 꼿꼿이 세운 태혁은 다짜고짜 거실 한복판에서 칼 같은 차렷 자세를 취했다. 정강이까지 깡충 올라간 진분홍 꽃무늬 일바지, 어깨 솔기가 터질 듯 꽉 끼는 노란색 티셔츠, 그리고 까치집을 지은 덥수룩한 머리칼. 월가를 주름잡던 42층 대표이사의 형용할 수 없는 파격적인 비주얼에 하람이의 턱이 바닥으로 툭 떨어졌다."어……? 모래 도둑 아저씨?!""도, 도둑이 아니라 기사 삼촌이란다, 하람아. 좋은 아침이구나.""삼촌 옷이 왜 그래? 우리 유치원 버스 할머니도 그런 옷은 절대로 안 입어! 분홍색 꽃이 막 폭발했어!"태혁은 바지에 핀 꽃들을 내려다보았다. 아이 앞에서 가릴 곳도 없었다. 태혁은 엉거주춤 꽃무늬 바지단을 손으로 잡아당겨 내리려 애썼으나, 고무줄이 너무 팽팽해 정강이 알에 딱 들러붙어 꼼짝도 하지 않았다."어제 비를 너무 맞아서 엄마가 자고 가라고 했어. 옷은 외할아버지 거고."서진은 하람이의 손을 잡고 부엌으로 갔다. 태혁은 따라가려다 티테이블에 부딪친 자리를 문질렀다. 뒤돌아본 서진의 눈길에 얼른 손을 내렸다. 밤새 신세를 지고 아침부터 걱정거리까지 더 만들고 싶지는 않았다."차태혁 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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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9화: 목걸이의 비밀과 유치원 등원 2차전

서진의 서늘한 시선이 태혁의 목덜미로 비수처럼 내리꽂혔다. 태혁은 입에 문 토스트도 삼키지 못한 채, 식탁 건너편의 서진과 눈이 마주쳤다. 태혁의 심장은 갈비뼈를 부수고 튀어나올 듯 거세게 방망이질 쳤다."하, 하람아! 이건 그냥 흔한 열쇠고리야! 반지 아니야!"태혁은 사색이 되어 티셔츠 목둘레를 틀어쥐며 반지를 가슴속 깊숙이 쑤셔 넣었다. 식은땀이 이마를 타고 비 오듯 흘러내렸다. 서진의 화장대 서랍에 자신의 반지가 아직 남아 있다는 말에 심장이 터질 듯 요동쳤지만, 지금 들통나면 당장 쫓겨날 판이었다."거짓말. 삼촌 거짓말할 때 콧구멍 벌렁거리잖아."하람이가 포크 끝으로 태혁의 코를 가리켰다. 태혁이 황급히 코를 틀어막으며 쩔쩔매자, 서진이 차갑게 시선을 거두며 찻잔을 내려놓았다."윤하람, 식사 시간에 딴청 피우지 말고 토스트 다 먹어. 늦으면 유치원 지각이야."서진의 서슬 퍼런 일갈에 하람이가 입술을 삐죽 내밀며 얌전히 오렌지 주스를 마셨다. 태혁은 속으로 십년감수하며 바짝 타들어 간 목을 축였다. 하지만 안도의 순간도 잠시, 서진이 벽걸이 시계를 턱 끝으로 가리켰다."8시 40분까지 유치원 앞에 도착해야 해요. 슬슬 출발하세요.""저기, 서진아…… 내 양복 수트가 아직 베란다에서 다 안 말랐는데……."태혁이 기어들어 가는 목소리로 읍소했다. 어젯밤 흠뻑 젖은 최고급 수트는 아직 축축한 물기를 머금고 있었다. 그 말은 즉, 지금 입고 있는 진분홍 모란꽃 일바지와 늘어난 노란 티셔츠 차림으로 신도시 대낮 거리를 활보해야 한다는 뜻이었다."어쩌라고요? 하원 픽업 맡았으니 오늘 등원도 부탁해요. 1분이라도 늦으면 즉시 계약 파기입니다."서진은 티끌만큼의 자비도 없이 현관문을 열어젖혔다. 대신 서진은 현관 구석에 걸려 있던 자신의 넉넉한 베이지색 롱 카디건 하나를 태혁에게 툭 던져주었다."그 흉물스러운 티셔츠나 가려요. 동네 사람들 안구 테러하지 말고."태혁은 감지덕지 카디건을 꿰어 입었다. 여성용 롱 카디건의 단추는 잠기지도 않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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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0화: 내 여자의 프로젝트를 건드린 놈들

"뭐라고……? 표절 투서?!"태혁의 귓가에 마른하늘의 날벼락이 사납게 내리꽂히는 것 같았다. 유치원 앞 벤치에서 들려오던 아이들의 해맑은 웃음소리가 일순간 아득하게 멀어졌다. 수화기 너머로 서진의 거칠고 위태로운 숨소리가 귓전을 때렸다.— 어제 파주에서 밤늦게까지 매달려 찍어낸 패키지예요. 내 모든 피땀이 들어간 오리지널 원본이라고요. 그런데 대형 디자인 에이전시 놈들이 자기들 시안을 도용했다며 거래처 총괄 본부에 악성 투서를 넣었대요.지금 당장 본사 대회의실로 오라는데…… 가보면 이미 답이 정해져 있을 거예요. 서진의 목소리가 바들바들 떨렸다. 대기업 클라이언트가 힘없는 프리랜서의 말을 얼마나 들어줄지, 서진은 자신할 수 없었다.대형 에이전시의 자본력과 법무팀의 으름장 앞에서 일방적으로 계약을 해지당하고 업계에서 매장당하는 일은 비일비재했다. 서진이 지난 수개월 동안 하람이를 재워놓고 새벽마다 코피를 쏟으며 일궈낸 소중한 모든 것이 한순간에 물거품이 될 위기였다."서진아, 지금 어디야?"— 택시 잡으려고 큰길로 나가는 중이에요. 신경 쓰지 마요. 내 일은 내가 알아서 해결할 테니까……!"거기 꼼짝 말고 서 있어!"태혁의 포효가 유치원 앞 골목길을 사납게 뒤흔들었다. 그 찰나, 태혁의 눈빛이 180도 표변했다. 조금 전까지 꽃무늬 일바지를 입고 쩔쩔매던 굴욕적인 기사 삼촌의 얼굴은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수조 원의 펀드를 주무르며 월가와 여의도의 기업 사냥꾼들을 단숨에 굴복시키던 냉혹한 승부사, 태원인베스트먼트 대표이사 차태혁의 서슬 퍼런 살기가 전신을 감쌌다. 태혁은 신도시 아파트 단지 주차장으로 전력 질주했다. 어제 서진의 집 앞에 세워두었던 자신의 벤틀리 블랙 세단.차 문을 열고 시동을 건 태혁은 블루투스 핸즈프리를 켜며 비서실장에게 전화를 걸었다."대표님! 어디 계십니까? 아침부터 임원 회의에서 난리가 났습니다!""회의고 뭐고 닥치고 내 말 똑바로 받아 적어."태혁의 얼음장 같은 목소리에 비서실장의 숨이 턱 멎었다."오늘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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