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깍. 104동 302호의 작은 아이 방 문이 부드럽게 닫혔다. 천장에는 형광 별 스티커들이 은은하게 야광 빛을 발하고 있었고, 방 안 가득 베이비파우더 향기와 따스한 온기가 감돌고 있었다.침대 머리맡, 네 살배기 윤하람은 잠옷 차림으로 이불을 턱 끝까지 덮은 채 누워 있었다. 그리고 침대 옆 카펫 바닥에는 태혁이 두 손을 모으고 무릎을 꿇고 앉아 있었다. 무보수 육아 기사 계약서 특약 제6조.[외압 방어 완수 시, 1일 1회 하람이 야간 목욕 및 취침 동화 구연권 부여.] 조금 전, 태혁은 덜덜 떨리는 손으로 하람이의 머리를 감기고 뽀송뽀송하게 물기를 닦아주었다. 작은 발가락 하나, 통통한 배를 타월로 감싸 안을 때마다 가슴이 터질 듯 벅차올랐다. 그리고 지금, 마침내 그의 손에는 두툼한 양장본 서책 한 권이 들려 있었다.《어린이를 위한 백악기 공룡 대탐험》. 태혁은 헛기침을 한 번 하더니, 안경을 고쳐 쓰며 책장을 조심스럽게 넘겼다. 월가 투자자들을 상대로 수천억 원짜리 프레젠테이션을 펼치던 명석한 두뇌가 오직 네 살짜리 청중 한 명을 위해 풀가동되기 시작했다."옛날 옛적, 울창한 숲속에 용감하고 힘센 티라노사우루스가 살고 있었단다.""삼촌, 목소리가 너무 신사 같아서 재미없어! 티라노는 훨씬 무서운 소리를 낸단 말이야!"하람이가 이불 속에서 고개만 빼꼼 내밀며 주문을 넣었다. 태혁은 마른침을 꿀꺽 삼켰다. 체면 따위는 개나 준 지 오래였다.태혁은 두 손을 갈고리처럼 구부려 얼굴 옆에 올리더니 포효했다."크아아아앙—! 내가 바로 백악기의 제왕, 티라노사우루스 렉스다! 내 앞을 가로막는 자는 강력한 꼬리치기로 날려버리겠다!""꺄르르르!"태혁의 리얼한 성대모사에 하람이가 배를 잡고 뒹굴며 까르르 웃음을 터뜨렸다. 태혁은 신이 나서 트리케라톱스의 뿔 들이받기, 하늘을 나는 익룡의 날갯짓까지 온몸으로 열연을 펼쳤다. 이마에 땀방울이 송골송골 맺혔지만, 아이의 웃음소리를 들을 수만 있다면 밤새도록 쥐라기 공원을 통째로 흉내 낼 수 있을 것 같았다
Última atualização : 2026-09-30 Ler mai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