بيت / 도시 / 저승에서 온 레지던트 / Chapter 11 -الفصل 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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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 환자가 괜찮다고 하는 말 다 믿으면 의사 못 해요

“사고가 있었습니다.”민영은 그의 표정을 살폈다.“그 뒤는요?”“잘 모르겠습니다.”거짓말은 아니었다.인간의 시간으로 정리하자면 정말 잘 모르는 부분이 많았다.민영은 차트에 짧게 기록했다. 태겸은 한숨을 내쉬며 머리를 쓸어올렸다.“그래. 기억장애면 차라리 낫다. 말투 이상한 것도 그걸로 설명해보자.”민영은 그를 흘겨봤다.“태겸아.”“왜. 나 지금 현실적으로 보려고 애쓰는 중이야.”“그럼 조용히 애써.”도진은 둘의 대화를 조용히 듣고 있었다.반말.짧은 타박.그 안에 숨은 익숙함.아까 응급실에서도 느꼈지만, 태겸과 민영 사이에는 오래 버틴 사람들만의 결이 있었다. 그 결은 도진이 아무리 기억을 뒤져도 바로 흉내 낼 수 없는 것이었다. 도화준도 그 안에 있었겠지만, 지금의 도진은 그 바깥에서 보고 있었다.민영이 그를 다시 보며 말했다.“오늘은 더 말하지 말고 쉬어요. 진짜로요.”“쉬면 됩니까.”“네. 그게 지금 화준 선생님이 제일 잘할 수 있는 일이에요.”“잘할 수 있는 일.”도진은 그 말을 낮게 되뇌었다.민영은 그의 말투가 또 낯설다고 느꼈다. 그럼에도 환자가 된 동료를 보고 있으니, 짜증보다 걱정이 먼저 올라왔다.“잠깐이라도 눈 붙여요.”도진은 그녀를 보았다.“민영 선생님은 쉬지 않습니까.”민영의 손이 잠깐 멈췄다.태겸이 옆에서 바로 말했다.“쟤는 말 안 들어.”민영이 그를 봤다.“너도 똑같거든.”“나는 최소한 환자복 입고 응급실 돌아다니지는 않았어.”도진은 조용히 말했다.“그건 죄송합니다.”태겸은 또 미묘하게 굳었다.“야, 너한테 그런 말 들으니까 진짜 이상하다.”민영은 그 말을 듣고도 웃지 못했다.도화준이 미안하다고 말하는 건 낯선 일이 아니다. 오히려 자주 했다. 그런데 지금의 미안하다는 말은 느낌이 달랐다. 감정이 없어서가 아니라, 감정을 어디에 놓아야 할지 모르는 사람의 말처럼 들렸다.도진은 눈을 감았다.쉬라는 명령을 따르기로 했다.하지만 눈을 감은 뒤에도, 지하에서 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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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 말하면 안 되는 이유

말보다 몸을 본다.민영은 그런 사람이다.태겸은 두 사람을 보며 낮게 중얼거렸다.“진짜 기억상실도 이렇게 이상하진 않을 텐데.”민영은 못 들은 척했다.“통증은요?”“있습니다.”이번에는 바로 대답했다.민영은 아주 조금 놀란 듯 그를 봤다.“어느 정도요?”도진은 잠시 생각했다.“몸을 움직이면 깊게 찢어지는 느낌입니다.”태겸이 어이없다는 듯 말했다.“그걸 그렇게 침착하게 말하냐.”민영은 차트를 보며 진통제 조절을 지시했다.“참지 말고 바로 말해요. 통증 심하면 호흡 얕아지고 회복 늦어져요.”“알겠습니다.”“또 움직이고 싶어져도 말하고요.”도진은 잠시 그녀를 보았다.민영은 그 시선을 피하지 않았다. 이번에는 먼저 물러서면 안 될 것 같았다. 환자에게 지시하는 의사로서가 아니라, 도화준이 아닌 것 같은 도화준을 상대하는 사람으로서.“움직이기 전에 민영 선생님에게 말하겠습니다.”그 말은 이상하게 정확했다.민영은 잠시 굳었다.태겸이 옆에서 헛기침을 했다.“나도 있는데?”도진은 태겸을 보았다.“태겸이에게도 말하겠다.”“태겸이?”태겸의 얼굴이 묘하게 일그러졌다.“야, 너 나 그렇게 불렀던 적 있냐?”도진은 또 멈췄다.민영은 그 짧은 정적에서 확신했다.도화준은 지금 관계를 배우고 있다.‘아니, 다시 배우고 있다.’그녀는 더 깊게 묻고 싶었다. 그러나 그때 응급실 쪽에서 다시 호출이 들어왔다.“민영 선생님, 처치실로 와주세요. 음주 환자 난동입니다!”민영은 곧바로 몸을 돌렸다.태겸도 반사적으로 따라가려다 도진을 봤다.“너 진짜 가만히 있어.”도진은 고개를 끄덕였다.“알았다.”“이번엔 믿어도 되냐?”“노력하겠다.”“아, 불안하다.”태겸은 한숨을 쉬고 민영을 따라 나갔다.도진은 닫힌 커튼을 바라보았다.응급실 쪽에서 고함소리가 들려왔다. 물건이 떨어지는 소리, 간호사가 진정시키는 목소리, 태겸이 낮게 욕을 삼키는 소리. 살아 있는 사람들의 소음이 다시 병원을 채우고 있었다.그런데 그 아래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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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 죽은 사람에게 있어야 할 것이 없다

저승의 일은 산 자에게 가볍게 꺼내는 것이 아니다. 그러나 완전히 숨기면 이들은 더 의심할 것이다.그는 가장 인간적인 이유를 골랐다.“확인할 것이 있습니다.”“무슨 확인이요?”“사망한 환자.”민영의 얼굴이 굳었다.“화준 선생님, 지금 본인 몸 상태 알아요? 수술한 지 하루도 안 됐어요. 영안실에 갈 상태가 아니에요.”“알고 있습니다.”“알면 왜요?”“가야 합니다.”말이 다시 이상하게 단단해졌다.민영은 그 눈빛을 보고 말문이 막혔다. 환자가 고집을 부리는 눈이 아니다. 무언가 반드시 해야 할 일을 두고 있는 사람의 눈이었다.태겸은 더 참지 못하고 말했다.“내가 대신 가볼게. 뭘 확인하면 되는데.”도진은 태겸을 보았다.태겸은 현실적인 사람이다. 보이지 않는 것을 보지 못한다. 그가 내려가도 아무것도 알 수 없다.“제가 가야 합니다.”“그러니까 왜 너여야 하냐고.”도진은 대답하지 못했다.민영은 그 침묵을 보며 손끝에 힘이 들어갔다.또 말하지 않는다.또 뭔가를 숨긴다.그런데 이상하게도, 거짓말을 하는 것 같지는 않다.민영은 숨을 길게 내쉬었다.“좋아요.”태겸이 바로 돌아봤다.“민영아.”“대신 조건 있어요.”도진은 그녀를 보았다.“말씀하십시오.”“침대에서 내려가기 전에 휠체어 타요. 혼자 걷는 거 금지. 제가 같이 가요. 태겸이도 같이 가고요. 그리고 조금이라도 어지럽거나 통증 심해지면 바로 돌아와요.”“민영아, 너 진짜”“그냥 두면 혼자 갈 거야.”태겸은 입을 다물었다.그 말은 맞았다.도진은 민영을 바라봤다.“민영 선생님도 같이 갑니까.”“네.”“가지 않는 편이 좋습니다.”“그럼 안 보내요.”도진은 잠시 침묵했다.민영은 물러서지 않았다.그 눈을 보며 도진은 다시 생각했다. 이 사람은 멈추게 하려면 더 가까이 온다. 밀어내면 확인하려 들고, 숨기면 파고든다. 그래서 위험하다.그러나 지금은 그녀를 막을 방법이 없었다.“알겠습니다.”민영은 간호사에게 휠체어를 부탁했다.태겸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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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 응급실

열린 냉장고 문 안쪽은 비어 있었다.민영과 태겸에게는 그저 문 하나가 저절로 열린 이상한 상황으로 보였다. 오래된 장비가 흔들렸거나, 문이 제대로 닫히지 않았거나, 누군가 조금 전에 사용하고 덜 닫아둔 것일 수도 있었다. 병원에서 그런 사소한 오류는 얼마든지 생긴다. 피곤한 새벽이라면 더더욱.그러나 도진은 그 빈 칸을 오래 보았다.검은 손자국은 아주 옅었다. 살아 있는 사람의 손으로 남긴 흔적이 아니었다. 물기나 먼지, 피가 묻은 자국도 아니었다. 무언가가 이곳에 왔다가, 있어야 할 것을 끌고 간 뒤 남은 흔적. 영안실의 낮은 냉기 속에서도 그 자국만은 이상하게 더 차갑게 가라앉아 있었다.망자가 없다.도진은 다시 시신 쪽으로 시선을 돌렸다.육체는 남아 있는데, 떠나야 할 혼의 결이 없다. 죽음 뒤에 남아 있어야 할 미세한 온기와 흔들림마저 깨끗하게 사라져 있었다. 원래대로라면 망자는 자신의 죽음 근처에 잠시 머문다. 길을 잃거나, 가족을 기다리거나, 마지막으로 놓지 못한 것을 보려 한다. 그런데 이 시신 곁에는 아무것도 없었다.너무 깔끔한 죽음.그게 오히려 기이했다.“화준 선생님.”민영이 낮게 불렀다.도진은 그녀를 보았다.민영은 겁먹은 얼굴은 아니었다. 대신 깊게 의심하고 있었다. 환자 상태를 읽듯, 그의 표정과 호흡, 시선의 방향을 조용히 살피고 있었다. 그녀는 보지 못한다. 하지만 이상함을 지나치지도 않는다.“지금 뭘 본 거예요?”도진은 잠시 침묵했다.‘말하면 안 된다.’저승의 언어는 산 자의 귀에 닿는 순간 의미가 변한다. 망자, 혼, 사라진 길. 그런 단어를 지금 이곳에서 꺼내면 민영은 더 가까이 들어오려 할 것이다. 이 여자는 고통을 보면 확인하려 들고, 설명되지 않는 것을 보면 끝까지 원인을 찾으려 든다.그건 의사로서는 좋은 성질이지만, 지금은 위험한 성질이었다.“이상한 점이 있습니다.”그가 말했다.태겸이 바로 반응했다.“뭔데.”“설명하기 어렵습니다.”“그 말이 제일 짜증 나는 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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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 3분 안에 심정지가 옵니다

“왜요?”도진은 대답하지 않았다.이번에는 아래가 아니었다.위쪽.응급실 방향.살아 있는 사람들이 모인 곳에서, 아주 거칠고 불안정한 죽음의 냄새가 갑자기 번졌다. 조금 전 영안실의 비어 있는 냉기와 달랐다. 이건 막 쓰러지려는 심장, 끊어지기 직전의 숨, 아직 몸을 떠나지 못한 생명의 요동이었다.엘리베이터 문이 열렸다.동시에 태겸의 호출기가 울렸다.삐삐삐.태겸은 화면을 확인하고 얼굴을 굳혔다.“응급실 난리 났다. 음주 난동 환자랑 심정지 의심 환자 동시에 들어왔대.”민영은 바로 몸을 돌렸다.“올라가자.”태겸은 도진을 봤다.“너는 회복실.”도진은 낮게 말했다.“나도 응급실로 가야 한다.”태겸이 이를 악물었다.“또 시작이네.”민영은 휠체어 손잡이를 잡은 채 도진을 내려다봤다.“화준 선생님, 이번에는 진짜 안 돼요.”“곧 멈춥니다.”“뭐가요?”도진은 잠시 말을 멈췄다.‘심장.’그렇게 말하면 안 된다.아직 아무도 모른다. 하지만 그는 느낄 수 있었다. 응급실 쪽에서 뛰고 있는 심장 하나가 너무 불규칙하게 흔들리고 있었다. 오래 버티지 못할 리듬이었다.“환자입니다.”민영의 표정이 달라졌다.“어떤 환자요?”“아직 도착하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곧…”태겸이 낮게 끊었다.“너 지금 또 이상한 소리 하는 거야?”도진은 태겸을 보았다.“3분.”엘리베이터 안이 조용해졌다.“3분 안에 심정지가 옵니다.”민영의 등줄기가 차갑게 굳었다.그 말은 의사가 할 수 있는 예측이 아니었다. 환자를 보지도 않고, 기록도 없이 단지 응급실 방향을 보고 하는 말이었다. 말도 안 된다. 그런데 도진의 눈빛은 흔들리지 않았다.태겸은 욕을 삼키며 엘리베이터 버튼을 눌렀다.“좋아. 응급실로 가. 대신 네가 틀리면 바로 회복실에 묶어놓을 거야.”민영이 그를 봤다.“태겸아.”“민영아, 어차피 저 자식 안 들을 거잖아. 우리가 붙잡고 가는 게 낫지.”민영은 이를 악물고 고개를 끄덕였다.엘리베이터 문이 닫혔다.숫자가 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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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 정확히 3분 뒤에 멈춘 심장

셋.그 순간 환자의 눈이 위로 돌아갔다.모니터 알람이 터졌다.삐삐삐삐삐—간호사가 외쳤다.“리듬 떨어져요!”태겸이 바로 환자 목동맥을 짚었다.“맥박 안 잡혀!”민영의 목소리가 응급실을 가르며 울렸다.“심폐소생술 시작해요!”압박이 시작됐다.음주 난동 환자 쪽에서 잠시 고함이 끊겼다. 보호자들이 놀라 뒤로 물러섰고, 응급실 안의 시선들이 한순간 그 침대에 몰렸다.태겸은 압박을 이어가며 이를 악물었다.“진짜 3분이네.”민영은 대답하지 않았다.그녀도 알았다.도화준이 말했다.‘3분 안에 심정지가 온다고.’그리고 정확히 3분 뒤, 환자의 심장이 멈췄다.“리듬 확인.”압박이 멈췄다.심실세동.“제세동기. 충전 200.”“충전 완료.”“다들 떨어져요.”전기 충격이 환자의 몸을 흔들었다.민영은 곧바로 다시 압박을 지시했다. 태겸은 움직이면서도 계속 도진 쪽을 의식했다. 말이 안 된다. 우연이라고 하기엔 너무 정확했다.민영도 마찬가지였다.하지만 지금은 질문할 시간이 아니었다.“약물 들어갔어요?”“네.”“한 번 더 리듬 봐요.”압박이 멈췄다.여전히 심실세동.민영은 숨을 짧게 들이마셨다.“다시 충전.”도진은 휠체어에서 천천히 손잡이를 잡았다.움직이면 안 된다.민영이 말했고, 태겸도 경고했다. 그는 알고 있었다. 하지만 환자의 몸 위에 흔들리는 선이 점점 얇아지고 있었다. 지금 놓치면 영영 돌아오지 못한다.도진은 낮게 말했다.“한 번 더.”태겸이 그 소리를 들었다.민영도 들었다.“이번에 돌아옵니다.”도진의 목소리는 크지 않았지만, 이상하게 응급실 소음 사이를 뚫고 들어왔다.민영은 그를 보지 않았다.그 대신 제세동 패드를 확인했다.“다들 떨어져요.”세 번째 충격.환자의 몸이 크게 들렸다 내려앉았다.짧은 정적. 모니터 파형이 거칠게 흔들렸다.그리고. 삐. 삐. 삐.느리지만 규칙적인 박동이 돌아왔다.간호사가 목동맥을 확인했다.“맥박 잡혀요!”민영은 곧장 다음 지시를 내렸다.“혈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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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 죽음의 냄새

도진의 말이 떨어진 순간, 응급실의 소음이 한 박자 늦게 멎는 듯했다.‘저 사람도 곧 멈춥니다.’그 말은 너무 조용했는데, 이상하게 주변을 가르는 힘이 있었다. 방금 전 심근경색 환자의 심정지를 정확히 맞힌 직후라 더 그랬다. 민영은 반사적으로 도진의 시선을 따라갔다.‘음주 난동 환자.’조금 전까지 보안 직원 둘에게 붙잡힌 채 욕을 퍼붓던 남자였다. 얼굴은 붉게 달아올라 있었고, 팔에는 억지로 잡은 정맥 라인이 덜렁거렸다. 코끝에는 술 냄새가 진하게 묻어 있었고, 입술 주변에는 토사물이 조금 말라 있었다. 처음에는 단순 만취와 난동으로 보였다. 응급실에서는 흔한 풍경이었다.그러나 지금은 달랐다.남자의 고함이 끊겼다.호흡이 이상했다.시끄럽던 사람이 갑자기 조용해지는 순간은, 응급실에서 결코 좋은 신호가 아니다.민영은 바로 움직였다.“저 환자 다시 봐요.”간호사가 놀라 돌아봤다.“아까 활력징후는 괜찮았는데요.”“지금 다시요. 산소포화도랑 혈압 확인해요.”태겸도 바로 남자 쪽으로 다가갔다. 그는 보안 직원에게 한 걸음 물러서라고 손짓했다.“잡고는 있되, 목이나 가슴 누르지 마세요. 환자 상태 봐야 합니다.”남자는 멍한 눈으로 천장을 보고 있었다. 술에 취한 눈이라고 넘기기엔 초점이 너무 흐렸다. 민영은 환자의 턱을 살짝 들어 기도를 확인했다. 혀가 뒤로 말려들어가려는 느낌이 있었다. 입안에서는 술 냄새와 섞인 신 냄새가 났다.“흡인 준비해요. 산소 마스크.”간호사가 움직이는 사이, 남자의 몸이 짧게 떨렸다.태겸이 미간을 찌푸렸다.“발작?”“가능성 있어. 혈당도 확인해.”혈당기는 곧바로 도착했다.“혈당 낮아요. 43입니다.”민영의 눈빛이 바뀌었다.“저혈당이네. 포도당 준비해요. 술만 마시고 안 먹었을 가능성 있어요. 의식 더 떨어지기 전에 바로 들어갑니다.”보안 직원들이 난동 환자였다는 이유로 아직 긴장하고 있었지만, 민영의 목소리가 낮게 정리되자 다들 움직임을 바꿨다. 방금 전까지 욕하고 밀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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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 3분간 지워진 영상 뒤의 진실

혈색. 호흡. 의식 변화.인간의 의학은 죽음이 가까워지는 몸의 징후를 읽는다. 도진이 느끼는 것은 그보다 먼저 오는 냄새였지만, 완전히 다른 것도 아니었다. 죽음은 몸을 통해 온다. 심장이 멈추고, 피가 식고, 숨이 무너지며, 눈빛이 희미해진다.“호흡이 달랐습니다.”도진이 말했다.민영의 눈이 아주 조금 좁아졌다.“호흡?”“소리가 얕고, 끊겼습니다.”태겸은 환자 쪽을 한 번 봤다.“그건 맞는데… 너 그 거리에서 들었다고?”도진은 대답하지 않았다.민영은 잠시 도진을 보다가 말했다.“그럼 처음 심근경색 환자는요?”“심장이…”도진은 말을 멈췄다.민영과 태겸이 동시에 그를 봤다.“심장이요?”도진은 아주 낮게 말했다.“불규칙했습니다.”태겸은 헛웃음을 흘렸다.“모니터 붙이기 전이었잖아.”도진은 다시 침묵했다.그 침묵이 더 많은 것을 말하고 있었다.민영은 그를 몰아붙이지 않았다. 지금 도화준은 환자다. 수술 직후고, 기억도 흔들리고, 말투도 이상하다. 그런데 환자라고 넘기기에는 너무 정확한 일들이 계속 일어난다.그녀는 시선을 그의 환자복 쪽으로 내렸다.“상처 확인해야 해요. 지금 또 피 배어 나와요.”도진은 자신의 가슴 쪽을 내려다봤다.정말로 드레싱 아래가 조금 젖어 있었다. 통증이 있었지만, 방금 환자들을 보느라 뒤늦게 인식했다.“처치실로 가요.”민영은 더 묻지 않고 휠체어 손잡이를 잡았다.태겸은 옆에서 말했다.“나도 갈게. 이번엔 내가 직접 감시한다.”“감시라는 표현은 이상합니다.”도진의 대답에 태겸이 눈을 가늘게 떴다.“너 진짜 이제 나랑 말 섞는 법 연습하냐?”“그런 것 같습니다.”“와, 인정하니까 더 이상하네.”민영은 그 대화를 들으며 휠체어를 밀었다. 그런데 어쩐지 그 어색한 말들이 조금 덜 불편하게 느껴졌다. 처음엔 섬뜩했는데, 이제는 이상한 환자가 낯선 언어를 배우는 것처럼 보이기도 했다.그 생각이 들자 민영은 스스로에게 놀랐다.낯선 사람.그녀는 이미 도화준을 그렇게 보고 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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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 거짓말 대신 흘리는 이상한 진실

“그럼 화준 선생님은요?”도진은 대답하지 못했다.“화준 선생님도 무서워요?”‘무섭다.’그 단어를 그는 몸 안에서 찾아보았다. 죽음은 익숙했고, 어둠도 익숙했다. 영혼이 사라진 시신은 위험한 신호였지만, 두려움이라고 부르기에는 아직 낯설었다. 그러나 방금 민영이 다쳤다는 것을 봤을 때, 그녀의 손등에 붙은 작은 밴드를 보았을 때 느낀 불편함은 무엇이었을까.도진은 낮게 말했다.“아직 잘 모르겠습니다.”민영의 표정이 조금 바뀌었다.그 대답은 이상했지만, 거짓말 같지는 않았다.“모르면 일단 쉬어요.”그녀는 다시 상처를 정리했다.“무서운지 아닌지도 몸이 버텨야 생각할 수 있어요.”도진은 그녀의 손끝을 보았다.소독약이 닿을 때마다 통증이 올라왔다. 그러나 그는 이번엔 참지 않고 말했다.“아픕니다.”민영의 손끝이 아주 미세하게 부드러워졌다.“알았어요. 조금 천천히 할게요.”도진은 그 변화를 느꼈다. 말하면 달라진다.그녀가 했던 말이 또 맞았다.태겸은 두 사람을 번갈아 보다가 괜히 목소리를 낮췄다.“야, 너 진짜 어디 애처럼 배워가냐.”도진은 태겸을 보았다.“배우는 중입니다.”태겸은 할 말을 잃었다.민영은 이번엔 정말 아주 작게 웃었다.금방 사라진 웃음이었다.하지만 도진은 그걸 보았다.응급실의 피 냄새와 소독약 냄새, 죽음의 냄새 사이에서 그 웃음은 이상하게 선명했다. 가슴 안쪽이 한 번 낯설게 뛰었다. 통증과는 다른 박동이었다.도진은 눈을 내리깔았다.살아 있는 몸은 정말 시끄럽다.아침 인계 시간이 다가오면서 응급실은 다시 다른 종류의 혼란에 들어갔다.밤새 들어온 환자들의 검사 결과가 밀려왔고, 입원 병상 배정이 늦어지면서 보호자들의 질문이 쏟아졌다. 심근경색 환자는 심장혈관 조영술을 위해 시술실로 올라갔고, 저혈당으로 의식이 떨어졌던 음주 환자는 서서히 정신을 차리기 시작했다.민영은 태겸과 함께 밤새 처치한 환자들을 정리했다.“심근경색 환자 보호자 설명은 내가 할게.”태겸이 말했다.민영은 고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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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 살려달라는 말 앞에서 느끼는 무게

간호사가 바로 움직였고, 민영도 반사적으로 고개를 돌렸다.환자가 의식을 되찾고 있었다.민영은 도진에게서 시선을 떼고 환자에게 향했다. 질문은 공중에 남았다. 도진은 그 질문이 사라지지 않았다는 것을 알았다. 단지 뒤로 밀렸을 뿐이었다.태겸은 도진을 보며 낮게 말했다.“방금 질문, 나도 궁금하다.”도진은 대답하지 않았다.태겸은 더 묻지 않았다. 대신 아주 낮은 목소리로 덧붙였다.“근데 지금 당장 대답하지 마. 민영이 더 흔들리니까.”그 말에 도진은 처음으로 태겸을 제대로 보았다.태겸은 단순히 의심하는 사람이 아니었다. 그는 민영을 지키려는 사람이었다. 방식은 거칠고 말은 가볍지만, 시선은 늘 민영 쪽으로 돌아갔다.도진은 그 사실을 조용히 받아들였다.“알았다.”태겸은 그 반응에 또 미간을 좁혔다.“진짜 이상하네. 왜 말은 잘 듣는데 더 불안하지.”오전이 되자 도화준의 어머니가 다시 병원에 도착했다.밤새 연락을 받고 달려와 울다 지쳐 잠깐 집에 다녀온 뒤였다. 얼굴은 붓고 창백했지만, 손에는 보온병과 작은 죽통이 들려 있었다. 환자가 먹을 수 없는 상태라는 건 알면서도, 어머니는 무엇이든 들고 와야 할 것 같았던 모양이었다.민영은 보호자 대기실 앞에서 그녀를 맞았다.“어머님, 아직 금식 상태라 드실 수는 없지만… 상태는 밤보다 조금 안정됐어요.”어머니의 눈에 다시 눈물이 고였다.“우리 화준이… 깼다고요?”“잠깐 의식 반응이 있었어요. 아직 많이 지켜봐야 합니다.”“말은요? 말도 했어요?”민영은 잠시 멈췄다.‘이승인가.’‘살아 있는 몸은 이렇게 시끄럽나.’그런 말을 보호자에게 할 수는 없었다.“짧게 반응은 했어요. 사고 후 혼란이 있을 수 있어서, 너무 놀라지 않으셔도 됩니다.”어머니는 고개를 끄덕였지만, 이미 울고 있었다.“선생님… 우리 애 좀 살려주세요.”민영은 그 말 앞에서 늘 같은 무게를 느낀다.‘살려주세요.’의사에게 가장 많이 건네지는 말이면서, 가장 쉽게 받을 수 없는 말. 사람을 살리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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