جميع فصول : الفصل -الفصل 20

37 فصول

11화. 제 이름으로 갈게요

가족 소개 날 아침, 채이는 원피스를 입고 바닥에 앉을 뻔했다. 떨어진 귀고리 뒷마개를 찾으려다가 거울에 비친 자신을 보고 멈췄다. 세 시간 예쁘려면 삼십 분 뒤부터 힘들면 안 된다고 했던 사람이, 나가기 전에 무릎부터 구기고 있었다.노크 소리가 났다.“아직 준비 중이십니까?”“네. 아주 작은 문제가 생겼어요.”“들어가도 됩니까?”“네.”문이 열렸다. 도진은 한쪽 귀만 빛나는 채이를 보고 상황을 알아차렸다. 그는 물어보지 않고 낮게 몸을 숙여 화장대 아래를 살폈다.“빠진 게 이겁니까?”손바닥 위에 작은 금속 조각이 놓여 있었다.“맞아요. 감사합니다.”채이는 받아서 귀 뒤로 손을 돌렸다. 긴장한 손가락이 자꾸 헛돌았다. 도진이 손을 들다 멈췄다.“도와드릴까요?”채이는 거울 속 그를 봤다. 대답을 기다리고 있는 눈길이 보였다.“네. 조심해주세요.”그가 옆으로 다가왔다. 귀고리가 움직이지 않도록 채이가 앞쪽을 잡았다. 도진은 뒤쪽에 마개를 끼웠다. 손끝이 귓바퀴에 잠깐 닿았다. 예상보다 차분하게 끝났는데, 채이의 숨만 조금 얕아졌다.“됐습니다.”채이가 고개를 돌리자 진주가 작게 흔들렸다.“회사에서 이러면 큰일 나겠죠?”“회사에서 귀고리 수선을 부탁할 계획입니까?”긴장하던 얼굴이 무너졌다. 채이는 웃으며 가방을 들었다. 도진은 문밖으로 나가기 전에 거울 앞에 선 그녀를 다시 봤다.“잘 어울립니다.”“지난번에도 하신 말이에요.”“오늘도 그렇습니다.”채이는 대답 대신 화장대 조명을 껐다. 어두워진 거울에 비친 자기 입가가 웃고 있었다.거실 탁자에는 오정환이 확인해준 일정표가 놓여 있었다. 참석자는 가족과 오래 알고 지낸 몇몇 지인이었다. 언론 초청도 회사 일반 직원 초대도 없었다. 사진을 찍더라도 외부에 올리기 전에는 당사자와 확인하기로 안내했다.채이는 명단을 끝까지 읽다가 윤경수 이름에서 손을 멈췄다. 배우자와 딸이 동행한다고 적혀 있었다.“알고 있었습니다.”도진이 말했다.“초대에서 빼달라고 할까 생각했는데, 먼저 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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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화. 제 아내를 소개하겠습니다

제일 먼저 든 생각은, 이름을 도둑맞은 사람이 저런 표정을 짓는구나, 하는 것이었다. 세리는 채이를 똑바로 보고 있었다. 타인의 이름을 들고 호텔에 들어가라고 시켰던 사람이, 이제는 그 이름의 주인으로 구경꾼을 모았다.채이는 가방 손잡이에 들어간 힘을 풀었다. 손가락 끝이 하얘져 있었다.“제 이름으로 인사드리려고 기다리는 중이었어요.”그녀가 말하자 세리가 고개를 저었다.“지금 와서 이름만 바꾸면 끝이니?”주변 사람들은 아직 상황을 이해하지 못한 얼굴이었다. 한 친척이 세리와 채이를 번갈아 보고 물었다.“두 사람이 아는 사이인가?”“사촌이에요. 제 동생인데, 저 대신 맞선에 나간 거예요.”세리의 목소리는 또렷했다. 충분히 놀란 척하면서도 문장 끝은 정확히 닫혔다.“원래 서 대표님하고 만나기로 한 윤세리는 저예요.”그제야 몇몇 사람이 서로를 보았다. 처음 혼담을 넣을 때 들었던 이름을 기억하는 듯했다. 채이는 사람들의 얼굴을 차례로 보며 시선을 피하지 않았다.도진이 대화를 끝내고 다가왔다. 그는 세리와 채이 사이를 가로막지 않고 채이 옆에 섰다.“괜찮습니까?”그가 낮게 물었다.채이는 고개를 끄덕였다. 괜찮다는 말이 모든 것이 편하다는 뜻은 아니었다. 자신의 입으로 말할 수 있다는 뜻이었다.“제가 먼저 얘기할게요.”도진은 더 나서지 않았다. 세리는 그 짧은 대화를 다른 뜻으로 받아들인 모양이었다. 도진을 향해 몸을 돌리며 목소리를 낮췄다.“대표님도 당황스러우시죠. 제가 진작 말씀드렸어야 했는데, 얘가 무슨 말을 하고 다녔는지 몰라서요.”“언니.”채이가 불렀다.세리가 그녀를 봤다. 평소라면 그 한 번의 눈길에 채이가 뒷말을 삼켰을 것이다. 어른들 앞이고, 여기까지 왔고, 괜히 사소한 것을 따져서 분위기를 망치면 안 된다는 이유로.“그날 대신 가달라고 한 사람은 언니야.”세리의 입술이 잠깐 굳었다.“나는 네가 이렇게까지 할 줄 몰랐지.”“이렇게까지가 뭔데?”채이는 목소리를 높이지 않고 답을 기다렸다. 고객 문의를 확인할 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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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화. 결혼한 사람의 이름

“윤채이입니다. 내가 결혼한 사람은.”도진의 목소리는 높지 않았다. 가까운 원탁에서 찻잔이 내려앉는 소리가 났고, 누군가 반쯤 들었던 휴대전화를 다시 무릎 위에 놓았다. 채이는 자신의 손을 감싼 그의 손을 내려다보았다. 도진은 손가락에 힘을 주지 않았다. 빠져나가고 싶다면 빠져나갈 수 있을 만큼의 간격이었다.채이가 먼저 손을 고쳐 잡았다.“처음 뵙겠습니다. 윤채이예요.”세리의 입술이 벌어졌다.“아니, 대표님. 그게 아니라 얘가 제 이름을 쓰고 나갔다니까요? 그날 입은 옷도 제가 골라 줬고요.”“그래서 첫날 확인했습니다. 윤세리 씨가 아니라는 걸.”“알면서도…….”말끝이 꺾였다. 도진은 더 설명하지 않았다. 이제껏 세리가 채이에게 되풀이했던 말들은 상대가 아무것도 모른다는 가정 위에 서 있었다. 그 가정이 사라지자 붙일 말도 없어 보였다.“그럼 회장님께는 뭐라고 하셨어요?”세리가 급히 몸을 돌렸다.“저는 어른들께서 모르시면 안 될 것 같아서 말씀드리는 거예요. 가족이 되는 일인데 시작부터 거짓말을 하면…….”“내가 뭘 몰랐다는 겁니까.”상석에 앉아 있던 태석이 냅킨을 내려놓았다. 지팡이는 의자 옆에 얌전히 기대어 있었다.“채이가 첫 인사 오기 전에 들었다. 선 자리에 다른 사람을 보냈다더구나. 도진이가 그 사람과 이야기해 보고 결혼했다고.”“그런 중요한 일을 그냥 받아들이셨어요?”“그래서 직접 만나 봤지. 자네 대신 왔다는 사람 말고, 내 손자가 결혼했다는 사람을.”채이는 천천히 숨을 들이켰다. 아까까지만 해도 이 방에 있는 모든 시선이 세리의 말 한마디에 돌아갈 것 같았다. 지금 태석이 보는 사람은 세리가 아닌 자신이었다.“채이야. 아까 못 마친 인사 마저 해라.”채이는 비어 있던 자기 자리를 보았다. 원탁 위 명패에는 처음부터 윤채이라고 적혀 있었다. 세리도 보았을 텐데, 보지 않은 셈 치고 싶었던 모양이었다.“초대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익숙하지 않은 자리라 부족한 점이 있을 거예요. 대신 모르는 건 여쭤보겠습니다.”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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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화. 선을 넘은 쪽

“불편하시면 제가 말씀드리겠습니다.”도진은 열린 차 문 옆에서 채이에게만 들리게 말했다. 태석은 잠시 집 안으로 들어가 약 봉투를 챙기는 중이었다.채이는 휴대전화 화면으로 내일 아침 일정부터 확인했다. 늦게 출근할 수는 없었다. 그렇다고 하룻밤 손님을 모시자고 회사에 사정을 밝힐 마음도 없었다.“아침은 일곱 시 전에 드셔야 해요. 제가 그 뒤엔 나가야 해서요.”“전달하겠습니다.”“제 방을 쓰시면 될 것 같아요. 침구는 여분 있고요.”도진의 눈썹이 조금 올라갔다.“채이 씨는요?”그 질문에서야 결정하지 않은 한 부분이 남아 있다는 걸 깨달았다. 내일 먹을 메뉴 대신 도진의 침실 문이 머릿속에 떠올랐다.“그건 가서 정해요.”차로 오는 태석 앞에서는 꽤 침착하게 웃었지만, 도진이 차 문을 닫아 줄 때 손가락 끝에 힘이 들어갔다.***태석은 한남동 집 현관에 들어서자마자 코트를 벗었다.“나는 따뜻한 물만 한 잔 다오. 오늘 사람을 너무 많이 봤다.”사람을 많이 본 것은 채이도 마찬가지였다. 그런데 손님이 된 태석은 성북동의 상석에 앉아 있을 때보다 훨씬 작고 피곤해 보였다. 채이는 주전자에 물을 올리고 자신이 쓰던 방의 협탁에서 충전기를 뺐다.작은 파우치와 읽다 만 책, 노트북만 옮기면 될 줄 알았다. 막상 들여다보니 머리끈이 두 개, 손크림이 하나, 침대 발치에 양말 한 짝이 있었다. 부끄러울 것 없는 물건들이 갑자기 수상한 증거처럼 보였다.문가에 도진이 섰다.“들어가도 됩니까?”“네. 그 양말만 먼저 못 본 척해 주세요.”도진이 바닥에서 양말을 집어 빨래 바구니에 넣었다.“어떤 양말 말씀입니까.”채이는 입술 안쪽을 물었다. 그가 웃기려고 마음먹으면 생각보다 버티기 어려웠다.문에 붙인 쪽지는 마지막에 뗐다. 접착력이 약해져 모서리가 말려 있었다. 채이가 쓰레기통으로 손을 가져가자 도진이 종이를 받아 들었다.“다시 붙이셔야죠.”“좀 너덜너덜해졌는데요.”“내용은 유효하니까요.”그는 책 위에 쪽지를 올려놓고 함께 들었다. 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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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화. 퇴근 후의 질문

월요일 오전의 도진에게는 팔이 저린 기색이 없었다. 회의실 정면에 앉은 그는 채이가 넘긴 제안서 두 번째 장을 보고 있었다. 채이는 조금 전까지 그 사람이 김을 세 번 접어 계란찜 위에 올려 먹는 모습을 떠올렸다는 사실을 지우려 애썼다.“이 수치로 재신청을 예측한 근거가 뭡니까?”“지난달 취소 고객의 문의 내용을 분류했습니다.”“불만을 말했다고 다시 신청할 의사가 있는 건 아닙니다.”채이의 손끝이 프레젠터 위에서 멈췄다. 예상한 질문이었지만 어쩐지 오늘은 어조가 더 차갑게 들렸다.“가격 불만과 일정 불만을 나누면 개선 가능한 대상을 좁힐 수 있습니다.”“대상을 좁히는 것과 수요가 생기는 것은 다르죠.”도진은 페이지를 뒤로 넘겼다.“수요 전망을 낮추더라도 이 개선을 해야 하는 이유를 써 주십시오. 비용 절감인지 고객 이탈 방지인지요. 두 가지 다라면 각각 확인할 지표가 필요합니다.”회의실이 잠잠했다. 은정이 옆에서 메모했다. 채이는 화면에 올린 굵은 숫자를 보았다. 어젯밤 잠결에 팔을 빌렸다고 해서 오늘 보고서까지 기대도 되는 것은 아니었다. 그 정도는 알았다. 아는데 얼굴이 조금 뜨거웠다.“예측 부분을 분리하겠습니다. 확인된 불편과 개선 가설부터 제시할게요.”“좋습니다. 목요일에 다시 보겠습니다.”좋다는 한마디가 달린 채로 회의가 끝났다. 도진은 다른 임원과 다음 안건을 이야기했고, 채이는 노트북 선을 천천히 감았다. 유나가 옆으로 와서 속삭였다.“오늘도 냉장고네. 사람 들어가면 신선해지겠어.”채이는 하마터면 아침 냉장고에 넣어 둔 계란찜 이야기를 할 뻔했다.“우리가 숫자를 너무 크게 썼어.”“반성까지 신속하다. 윤 대리.”복도로 나온 채이는 물을 마셨다. 은정이 종이컵을 하나 더 뽑으며 물었다.“기분 상했어?”“아니요.”“그럼 페이지 번호부터 고정하자. 매번 바뀌면 검토하기 불편해. 그리고 오늘 지적받은 건 맞는 말이야.”“알아요. 말만 맞아서 좀 얄미운 거죠.”은정이 작게 웃었다.“그건 회사 다니는 사람의 정상 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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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화. 작게 고칠 수 있는 일

고객의 목소리는 스피커를 켜지 않아도 옆자리까지 들렸다.“설치비 없는 줄 알고 신청했다니까요. 무료 체험이라고 써 있잖아요.”채이는 상담 담당자가 전달한 통화에 이어폰을 끼웠다. 고객은 소형 식기세척기를 돌려보내기로 한 상태였다. 이미 기사 방문을 기다리느라 반차를 두 번 썼고, 회수 날짜는 아직 확정되지 않았다.“안내를 충분히 못 드려 죄송합니다. 신청하실 때 어떤 화면을 보셨는지 확인하고 싶어요.”“지금 나한테 잘못 읽었다고 하려는 거예요?”채이는 메모하던 손을 멈췄다.“아니요. 제대로 읽기 어려운 곳에 적혀 있었는지 확인하려는 거예요. 저희 화면을 고쳐야 해서요.”잠시 침묵이 왔다. 고객은 그제야 처음 눌렀던 광고를 설명했다. 마지막 버튼 위에는 커다란 무료 체험 문구가 있었고, 추가 비용 안내는 아래쪽 접힌 영역 안에 있었다. 그 영역을 열지 않아도 신청을 마칠 수 있었다.채이는 자신의 휴대전화로 같은 순서를 따라갔다. 딱 세 번 누르니 완료 화면이었다.“찾으셨어요?”“네. 말씀하신 대로 신청할 때 비용 안내를 거치지 않아도 됩니다.”“내 말이 그 말이에요.”목소리가 조금 낮아졌다. 채이는 회수 담당 부서에 확인한 연락 시한을 알려 주었다. 당장 회수 날짜를 약속할 수는 없었다. 대신 오늘 오후까지 담당자가 날짜 협의를 위해 연락하도록 접수 번호를 남겼다.전화를 끊자 유나가 채이 모니터를 들여다봤다.“이렇게 만들면 나도 공짜인 줄 알겠는데.”“내가 보고도 그랬어.”지난주 보고서에서는 이 고객을 설치비 불만으로 인한 취소 한 건으로 분류했다. 화면을 직접 눌러 보니 그 한 줄에 빠진 것이 너무 많았다.채이는 문의 기록을 은정에게 가져갔다. 은정은 통화 메모를 읽고 팀원들을 작은 회의실로 불렀다.“내일부터 예산을 늘리자는 광고안은 보류할게. 먼저 이거부터 고쳐야겠어.”현수가 팔짱을 풀었다.“매체 집행은 이미 예약한 게 있습니다. 다 멈추면 취소 비용 나요.”“그러니까 유지할 것과 바꿀 걸 나눠 봐요. 지금 화면 그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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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화. 누가 만든 문장인가

“이게 왜 언니 성과야?”점심시간이 끝나기 전, 채이는 회사 건물 밖 벤치에서 세리에게 전화를 걸었다. 모니터에 열린 제안서를 먼저 은정에게 공유하고, 이번 제안의 작성 경위만 직접 확인해 달라는 요청을 받은 뒤였다. 자료 제출과 수정 협의는 계속 은정이 맡기로 했다. 세리는 두 번째 신호에 받았다.“무슨 소리야. 우리 쪽에서 체험단 운영했잖아. 당연히 우리 성과지.”“기존 운영 실적 말고. 고객 안내를 개선했다는 페이지.”“그건 지금도 계속 하는 거고. 너희가 뭘 좀 바꿨다며? 같이 일하는데 매번 선을 그어야 돼?”채이는 벤치 아래로 굴러온 작은 돌을 구두 끝으로 밀었다.“언니 제안서에는 지난달부터 개선을 적용했다고 쓰여 있어. 우리는 아직 적용 전이야.”“표현 하나 가지고 예민하게 굴지 마. 어차피 앞으로 할 거잖아.”“안 한 일을 했다고 적는 건 표현이 아니야.”전화 너머에서 종이를 넘기는 소리가 들렸다. 세리의 목소리가 낮아졌다.“너 이제 그 집에 들어갔다고 나한테 가르치려는 거야?”“회사 자료 확인하는 거야. 수정해서 팀장님께 보내 줘.”“대표님한테 말할까 봐 겁주니?”“팀장님께 보내 달라고 했어.”채이는 말을 더 늘이지 않았다. 통화를 끝내고 잠깐 하늘을 보았다. 봄 햇빛이 생각보다 뜨거웠다. 방금 손에 쥔 전화기는 더욱 뜨거웠다.자리로 돌아오자 은정이 제안서에 표시한 부분을 내밀었다.“확인됐어?”“앞으로 적용할 내용이라는 답만 받았습니다. 원래부터 한 일이라는 표현은 아직 고치지 않겠대요.”“그럼 회의 때 나눠 확인해. 네가 사촌이어서 뭐라고 하는 모양이 되지 않게.”은정은 세리와의 관계를 이미 업무상 이해관계로 보고받은 상태였다. 채이는 가족 업체가 포함된 자료에서 자신이 확인할 수 있는 범위만 점검하고, 최종 판단은 팀장이 맡도록 했다.“성과 작성 주체와 실제 진행 여부를 각각 보여 드리면 될까요?”“응. 불편한 감정은 이해하지만 자료에는 붙이지 마. 상대가 틀렸다는 말보다 우리가 뭘 했는지가 먼저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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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화. 이름이 남는 결과

세리는 회의가 시작되기 직전 들어왔다. 노트북을 든 유성컴퍼니 실무자가 뒤따랐다. 그녀는 채이 옆 빈자리를 지나 상품운영 담당자 맞은편에 앉았다.“자료는 보셨죠? 저희가 그동안 고객 반응을 많이 모았거든요.”은정은 회의 시작 시각을 확인했다.“오늘은 새 안내안과 기존 운영 보고를 나누겠습니다. 완료한 일인지 제안하는 일인지부터 맞추죠.”세리는 화면에 제안서를 띄웠다. 화사한 표지 다음 장에 채이가 어제 표시했던 문장이 그대로 나왔다. 사전 안내 고도화로 고객 불편을 줄였다는 설명이었다.“앞으로 체험 확대에 도움이 될 성과고요. 제가 방향을 직접 잡아서…….”“적용 화면을 볼 수 있을까요?”채이가 물었다. 세리는 프레젠터를 쥔 채 웃었다.“세부적인 건 우리 실무자가.”옆의 직원이 파일을 열었다. 지난달 광고 화면이었다. 신청 버튼 아래에는 작은 글씨가 접혀 있었다. 채이는 자신이 준비한 휴대전화를 연결했다. 같은 광고에서 출발해 버튼 세 번을 눌렀다. 비용 안내를 거치지 않고 신청 접수 화면이 떴다.“지금 운영 중인 화면입니다. 사전 안내 개선은 아직 적용되지 않았습니다.”“그건 일부 화면이고, 전체적으로는…….”“다른 화면이 있으면 지금 확인하겠습니다.”채이는 기다렸다. 클릭 소리가 몇 번 났다. 실무자가 세리에게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배너는 다 이 주소로 연결돼 있습니다.”세리의 웃음이 옅어졌다.“저희가 제안한 방향을 말씀드린 거예요. 이미 성과가 있었다는 표현은 넓게 이해하시면 되죠.”은정이 펜을 놓았다.“그러면 해당 문구는 성과에서 제안으로 수정해 주세요. 적용하지 않은 일은 완료 보고에 넣을 수 없습니다.”채이는 어깨에 들어간 힘을 조금 풀었다. 세리가 자신을 노려보았지만 화면에서 눈을 떼지 않았다.이번에는 채이 차례였다. 화려한 도형 대신 처음에는 고객 한 명이 남긴 문장을 띄웠다.“고객이 추가 비용을 처음 안 시점은 설치 기사가 방문한 뒤였습니다. 신청 페이지에는 안내가 있었지만, 신청을 마치는 데 읽을 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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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화. 반찬 추가 가능한 저녁

도진은 식당 앞에서 메뉴판을 읽고 있었다. 작은 나무 문 위 전구가 막 켜진 때였다. 정장을 입은 그가 벽에 붙은 손글씨 메뉴에 몸을 조금 기울이자, 지나가던 사람이 길을 비켜 주는 줄 알고 고개를 숙였다.채이는 웃음을 참으며 다가갔다.“예약 안 되는 집이에요. 많이 기다리셨어요?”“조금요. 메뉴를 미리 검토했습니다.”“뭐 드실 건데요?”“잘 모르겠습니다.”그 솔직한 대답에 채이는 결국 웃었다. 낮의 대표는 이해하지 못한 제안서를 그렇게 한마디로 넘기는 사람이 아니었다.둘은 창가에서 두 번째 테이블에 앉았다. 테이블 모서리가 조금 벗겨져 있었고 물병은 손님이 직접 가져와야 했다. 채이가 일어나려 하자 도진이 먼저 물병과 컵 두 개를 가져왔다. 그는 익숙하지 않은 좁은 통로에서 다른 손님의 의자를 건드릴 뻔해 조용히 사과했다.“여긴 자주 왔습니까?”“가끔요. 혼자 와도 솥밥을 먹을 수 있어서.”“혼자 식사하는 걸 좋아하십니까?”“기다릴 사람이 없으니까 빨리 먹는 날이 많았어요. 여기는 뚜껑을 바로 못 열게 하거든요. 뜸 들여야 된다고요.”채이는 테이블에 놓인 작은 모래시계를 가리켰다.“기다릴 핑계가 생겨서 좋았어요.”도진은 모래시계를 한 번 뒤집어 봤다가 다시 세웠다. 직원이 주문을 받으러 오자 두 사람은 생선 솥밥과 고기 솥밥을 하나씩 골랐다. 채이가 달걀말이를 추가하려다 그를 보았다.“달걀말이 하나면 되겠죠?”“제 몫을 남겨 주신다면요.”“저 혼자 하나 다 먹을 수도 있어요.”“그럼 두 개 시키죠.”“너무 빨리 양보하시면 못 놀리는데.”채이는 물을 마시며 웃었다. 아주 짧은 말장난인데 낮의 회의를 떠올려도 더는 속이 따갑지 않았다. 그가 기다리고, 자기가 골랐다는 저녁의 순서 때문인지도 몰랐다.음식이 나오자 채이는 오늘 회의를 설명했다. 세리의 말보다 먼저 유나가 질문지를 고친 일, 민재가 자신의 실수를 감추지 않고 변경 기록을 내놓은 일부터 이야기했다.“과장님은 광고 일정 미뤄진 거 자기가 설명하겠대요. 처음에는 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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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화. 친절한 사람의 걱정

명훈은 엘리베이터 문을 잡아 주었다.“윤 대리, 올라가십니까?”채이는 종이컵을 한쪽 손으로 모아 쥐고 고개를 숙였다. 한 컵은 팀장 것, 다른 하나는 잠을 못 잤다는 유나 것이었다. 명훈은 컵이 기울지 않게 버튼을 대신 눌렀다.“회의 잘 마쳤다면서요. 김 팀장이 칭찬하던데.”“팀에서 많이 도와주셨습니다.”“그런 대답도 좋지만 자기 몫은 챙기세요. 회사에서 겸손하면 아예 모르는 사람도 있습니다.”그는 듣기 좋은 말을 힘주어 하지 않았다. 채이는 웃으며 감사하다고 했다. 층수가 하나씩 올라갔다. 문이 열리기 직전 명훈이 덧붙였다.“점심 뒤에 잠깐 시간 될까요? 업무 지시할 건 아니고요.”채이는 뜻밖이라는 표정을 숨기지 못했다. 명훈은 자기 사무실 대신 층 중간의 작은 접견실을 가리켰다.“도진이 형으로서 드릴 말씀이 있어서.”채이는 성북동 가족 행사에서 이 사람이 부부 소개를 직접 들었다는 사실을 떠올렸다.***점심시간이 끝난 뒤 접견실에는 아무도 없었다. 명훈이 문을 닫자 복도의 발소리가 멀어졌다. 명훈은 탁자에 휴대전화를 엎어 놓고 채이 맞은편에 앉았다.“먼저 불편한 일은 아니라는 말씀부터 드릴게요.”불편하지 않은 일에는 그런 설명이 자주 붙지 않았다. 채이는 무릎 위에 손을 올렸다.명훈이 휴대전화를 돌렸다. 사진 한 장이었다. 작은 솥밥집 앞에서 메뉴판을 보는 도진과 그쪽으로 다가가는 채이의 옆모습. 채이는 자신의 카디건부터 알아봤다. 식당 간판 아래 다른 손님의 머리도 걸려 있었다.“제 지인이 그 근처에 사는데, 도진이를 알아보고 보내왔어요. 같이 있는 분이 누구냐고요.”채이는 화면에서 눈을 떼지 않았다. 몰래 만났다고 생각한 적은 없었다. 그래도 남의 휴대전화에 있는 두 사람의 모습은 낯설었다.“그분께 뭐라고 하셨어요?”“사적인 자리니 궁금해하지 말라고 했습니다. 두 분은 제가 알지만 굳이 설명할 필요가 없죠.”명훈은 사진에 표시된 날짜를 짚었다.“실무 책임자 정해진 날이더군요. 저야 축하 자리겠거니 하지만, 모르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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