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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화. 퇴근 후의 질문

Penulis: YuIm
last update Tanggal publikasi: 2026-10-05 07:55:31

월요일 오전의 도진에게는 팔이 저린 기색이 없었다. 회의실 정면에 앉은 그는 채이가 넘긴 제안서 두 번째 장을 보고 있었다. 채이는 조금 전까지 그 사람이 김을 세 번 접어 계란찜 위에 올려 먹는 모습을 떠올렸다는 사실을 지우려 애썼다.

“이 수치로 재신청을 예측한 근거가 뭡니까?”

“지난달 취소 고객의 문의 내용을 분류했습니다.”

“불만을 말했다고 다시 신청할 의사가 있는 건 아닙니다.”

채이의 손끝이 프레젠터 위에서 멈췄다. 예상한 질문이었지만 어쩐지 오늘은 어조가 더 차갑게 들렸다.

“가격 불만과 일정 불만을 나누면 개선 가능한 대상을 좁힐 수 있습니다.”

“대상을 좁히는 것과 수요가 생기는 것은 다르죠.”

도진은 페이지를 뒤로 넘겼다.

“수요 전망을 낮추더라도 이 개선을 해야 하는 이유를 써 주십시오. 비용 절감인지 고객 이탈 방지인지요. 두 가지 다라면 각각 확인할 지표가 필요합니다.”

회의실이 잠잠했다. 은정이 옆에서 메모했다. 채이는 화면에 올린 굵은 숫자를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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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대표님, 저는 맞선 대타일 뿐입니다   37화. 초안의 주인

    세리는 회의실 안쪽 자리에 앉아 있었다. 채이가 들어서자 핸드백을 옆 의자로 옮겼다. 초대받지 못한 사람에게 자리를 내주는 표정이었다.“이렇게까지 할 일인가 싶네요. 서로 아는 사이인데.”채이는 맞은편 의자를 당겼다.“정식으로 문제를 제기하셔서 왔습니다.”은정이 나란히 앉았다. 상석에는 준법지원팀장 문지현이, 그 옆에는 감사실장 박정우가 자리했다. 도진의 자리는 없었다. 채이는 빈자리들을 한 번 보고 노트북을 연결했다.“유성컴퍼니가 원본이라고 제출한 자료부터 확인하겠습니다.”지현이 화면에 두 문서를 띄웠다. 세리의 이름이 박힌 파일과 채이가 제출한 첫 초안이었다.“아이디어는 제가 먼저 냈어요. 파일을 늦게 정리했을 뿐이죠.”세리가 몸을 앞으로 기울였다.“가족끼리 대화하다 보니 채이가 참고했나 봐요. 처음엔 좋게 끝내려고 했는데, 자꾸 우리 회사를 의심하잖아요.”채이는 손에 들고 있던 펜을 내려놓았다.“어떤 대화에서 말씀하셨나요?”“그걸 언제 다 기억해? 아니, 기억하겠어요. 평소에 많이 얘기했는데.”“기획 내용 중 하나만 짚어 주세요. 설치비 안내를 첫 화면으로 옮기는 이유라든가요.”“고객 편의를 위해서죠.”세리는 대답한 뒤 지현 쪽을 봤다. 채이는 그녀를 몰아붙이는 대신 다음 화면을 열었다.“첫 초안부터 신청 전에 설치비를 알리자고 제안했습니다. 다만 그때는 추가 비용이 생길 수 있다는 문장만 있었고, 고객이 자기 조건을 확인할 방법은 빠져 있었습니다.”은정의 회신이 아래에 붙었다. ‘경고만

  • 대표님, 저는 맞선 대타일 뿐입니다   36화. 먼저 쓴 이름

    세리의 주장은 다음 날 오전 열 시, 회사 이름이 찍힌 공문이 됐다. 유성컴퍼니가 하루온 캠페인 기획의 무단 사용을 문제 삼고, 담당자 배제와 공식 사과를 요구한다는 내용이었다. 첨부된 초안 첫 장에는 윤채이 대신 윤세리의 이름이 들어가 있었다.채이는 마우스를 쥔 손에서 힘을 뺐다. 유나가 옆으로 의자를 당기려다 멈췄다.“야, 이거 네가…….”“응. 내가 쓴 거야.”목소리가 이상할 만큼 작았다. 남이 자기 가방을 들고 도망가는 장면을 보면서도, 저게 정말 내 가방인지 한 번 더 확인하는 기분이었다. 은정이 메일을 띄운 채 자리에서 일어났다.“윤 대리, 소회의실로 와요. 원본 들고.”유리문이 닫히자 채이가 먼저 입을 열었다.“세리 씨한테 전화하지 않겠습니다. 외부로 보낸 자료도 없고요. 제가 접근한 경로부터 확인받을게요.”은정은 테이블에 메모장을 놓았다.“응. 그리고 네가 사과부터 할 일도 아니야.”“친척 업체라서 팀까지…….”“그 얘기는 이미 보고했잖아. 지금 필요한 건 네가 미안한 사람이 되는 게 아니라, 누가 뭘 만들었는지 확인하는 거야.”채이는 가져온 노트북을 열었다. 초안 파일의 생성일만으로 끝낼 수 없다는 건 알았다. 파일명은 바꿀 수 있고, 세리의 첨부물처럼 작성자 칸도 고칠 수 있었다.“첫 검토 메일이 있어요. 입사하고 모아 둔 고객 문의로 방향을 잡았고, 결혼하기 전 봄에 팀장님께 처음 보냈습니다.”“내 답장도 찾을게. 혼자 전부 증명하려고 하지 마.”은정이 자리로 돌아간 뒤, 채이는 가장

  • 대표님, 저는 맞선 대타일 뿐입니다   35화. 지워지지 않은 문장

    세리가 보낸 문서의 표지는 새것이었다. 제목 아래에는 유성컴퍼니 홍보 기획, 담당 윤세리라는 이름이 적혀 있었다. 하지만 두 번째 장을 넘긴 채이는 손을 멈췄다.‘회수는 경험의 마침표다.’그 아래 괄호 안의 메모까지 낯익었다. 채이가 초봄에 쓰고 스스로 지우려 했던 문장이었다. 문 닫는 손잡이에 빗대면 어떨까 하고 남겼던 생각도 그대로 있었다.현재 최종본만으로는 확인할 수 없었다. 삭제한 문장은 예전 초안과 검토 과정에 남아 있을 터였다. 유나가 가방을 놓으며 화면을 보았다.“그 손잡이 아직 살아 있었어?”채이가 그녀를 돌아봤다.“기억나?”“내가 헷갈린다고 했잖아. 문 닫는 것도 손잡이고 여는 것도 손잡이라고. 근데 왜 유성컴퍼니 이름이 있어?”채이는 새로 도착한 메일을 보여줬다. 세리는 태주가 요청한 원자료 설명에 답하지 않았다. 대신 유성의 선행 기획을 마케팅1팀이 변경해 사용한 경위부터 확인해달라고 적었다.유나의 얼굴에서 웃음이 사라졌다.“잠깐. 우리가 이걸 가져갔다고?”“일단 그렇게 말하고 있어.”채이는 펜 뚜껑을 열었다 닫았다. 손이 떨리는 걸 멈추려는 동작이었다. 세리가 집과 가방을 자기 덕으로 돌릴 때는 밖으로 걸어 나오면 됐다. 이번에는 자기 책상 위의 일이었다.“팀장님 오시면 같이 말씀드리자. 지금 바로 전화해서 따지면 나 뭐라고 할지 모르겠어.”유나가 고개를 끄덕이고 옆에 앉았다.“그럼 내가 네 옆에 있을게. 커피부터 마시자.”채이는 차가운 컵을 쥐었다. 컵의 냉기가 손바닥에 전해지자 시선이 조금씩 돌아왔다.은정은 출근하자마자 두

  • 대표님, 저는 맞선 대타일 뿐입니다   34화. 삼천이라는 숫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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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대표님, 저는 맞선 대타일 뿐입니다   33화. 얼마가 아니라 얼마나

    “돈이 생기면 겁나는 것도 같이 없어질 줄 알았어요.”채이는 도진에게 잡힌 손을 내려다보았다. 세리 앞에서는 또박또박 말했는데, 집에 돌아오니 첫 문장부터 목이 잠겼다. 도진은 손에 힘을 조금 더해주었다.“그런데 오늘은 좋은 가방 들고 있는 게 들킨 일 같더라고요.”“네가 좋아하는 걸 쓴 건데.”“알아요. 그래서 더 화났어요. 나한테도.”채이는 웃으려다 그만뒀다. 도진이 물잔을 조금 가까이 옮겨줬다. 잠깐 마시고 나니 속도가 늦춰졌다.“엄마 수술할 때요. 병원비도 무서웠는데, 그다음 날이 더 무서웠어요. 회복하는 동안 밥은 어떻게 해드리지, 병원은 누가 같이 가지, 내가 휴가를 다 쓰면 어떡하지.”도진의 표정이 조용해졌다. 채이는 그가 듣고 있다는 걸 확인한 뒤 말을 이었다.“돈만 있으면 다 해결된다는 뜻은 아닌데, 돈이 없으면 해결할 방법부터 줄어들잖아요.”그녀는 엄지로 손가락 마디를 문질렀다. 예전에 버스 시간을 계산하던 습관이었다. 도진이 그 움직임을 보았지만 멈추게 하지는 않았다.“퇴근하고 병원에 가면 저녁 시간이 애매했어요. 엄마는 제가 먹고 왔다고 하면 믿는 척했어요. 나중에는 알더라고요. 제가 늘 같은 편의점 봉투를 들고 와서.”“식사할 돈을 아낀 거야?”“처음엔요. 나중에는 그냥 제대로 먹을 시간이 없었어요. 어디 앉으면 그때부터 일어나기 싫을 것 같아서.”도진은 아무 말 없이 그녀 곁으로 조금 가까이 앉았다. 채이는 그의 어깨에 기댔다가 다시 바로 앉았다. 오늘은 얼굴을 보고 말하고 싶었다.“숙부한테 부탁하러 가던 날, 문 앞에서 말을 세 번

  • 대표님, 저는 맞선 대타일 뿐입니다   32화. 양보한 적 없는 사람

    백화점 생활용품 매장에서 채이는 얇은 여름 이불 두 장을 번갈아 만졌다. 어머니는 에어컨 바람을 오래 쐬면 춥다며 자꾸 끄곤 했다. 가볍고 세탁하기 쉬운 쪽을 고른 뒤 계산대에 섰다.“윤채이.”익숙한 목소리에 돌아보니 세리가 서 있었다. 새로 산 듯한 선글라스가 머리 위에 얹혀 있었다. 손에 든 쇼핑백은 하나였지만, 시선은 채이의 가방과 신발 사이를 빠르게 움직였다.“세리 언니.”“여기서 다 보네. 이제 생활 수준이 맞아지니까 만나는 데도 바뀐다?”채이는 직원에게 포장을 부탁한 뒤 세리를 보았다.“엄마 이불 사러 왔어.”“큰엄마 것도 여기서 사? 많이 편해졌나 보네.”세리의 말투는 웃고 있었지만 채이는 그 웃음에 맞춰 웃지 않았다. 계산을 마치고 쇼핑백을 받자 세리가 옆 카페를 가리켰다.“잠깐 앉아. 할 말 있어.”“어떤 얘긴데?”“친척끼리 잠깐 차도 못 마셔?”채이는 시간을 확인했다. 어머니를 만나기로 한 시간까지 삼십 분 정도 남아 있었다.“십오 분만.”세리는 대답하지 않고 먼저 걸었다. 채이는 그 뒤에서 쇼핑백 손잡이를 고쳐 잡았다. 예전 같으면 어머니에게 늦는다고 전화부터 했을 것이다. 오늘은 알람을 맞췄다.카페에 앉자 세리가 메뉴판을 밀었다.“네가 사. 잘살잖아.”“내 차는 내가 살게.”그녀는 직원에게 각자 계산을 요청했다. 세리의 눈썹이 올라갔다. 하지만 주변에 사람이 많아서인지 금방 웃는 얼굴을 만들었다.“많이 컸네. 옛날에는 이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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