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odos los capítulos de 키스만 하기로 했잖아 유부녀씨: Capítulo 11 - Capítulo 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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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화. 숨기지 마

도현의 발소리가 가까워지자 윤서하는 차이준부터 노려봤다.“숨어요.”“싫은데.”“지금 장난칠 때예요?”“왜 숨어. 나 죄지었어?”방금 키스한 주제에 저렇게 뻔뻔한 얼굴을 하고 있으니 사람을 미치게 만드는 재주 하나는 확실했다. 서하는 청소 카트를 힐끗 봤다. 이준 한 명쯤은 억지로 숨길 수도 있었지만, 그 순간 더 기분이 나빠졌다.왜 숨겨야 하지.숨기는 순간 진짜 더 수상해지는 것 같아서.“됐어요. 그냥 지나가요.”“오.”“오긴 뭘 와요. 입 다물고 가.”“유부녀 씨가 날 공개하네.”“공개 아니고 방치.”차량 잠금 해제음이 한 번 더 울렸고, 곧 기둥 너머로 도현이 나타났다. 서하는 심장이 목까지 올라왔는데 이준은 세상 태평하게 두 손을 주머니에 넣었다.“차이준 씨?”도현이 먼저 알아봤다.“아, 기사님.”“아직 안 가셨어요?”“사진 정리하다가 이제 가는 길이에요.”너무 자연스러워서 서하는 괜히 더 열받았다. 저 인간은 조금 전까지 자기 셔츠깃을 잡혀 키스당한 사람이 맞나 싶을 정도로 멀쩡했다.도현이 서하를 봤다.“당신은 왜 여기 있어?”“청소 카트 가지러.”“주차장에서?”“엘리베이터 쪽까지 밀어놓으려고.”거짓말이 입에서 너무 쉽게 나왔다.그 사실에 서하는 잠깐 숨이 막혔고, 이준은 그 표정을 본 것 같았지만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같이 올라갈까?”도현이 카트 손잡이를 잡으려 하자 서하는 급하게 막았다.“됐어. 당신 근무 중이잖아.”“이거 하나 밀어주는 게 뭐 어렵다고.”“내 일이야.”“그래도.”“진짜 괜찮다니까.”목소리가 괜히 빨라졌다.차 문 쪽으로 향하던 도현이 갑자기 돌아서자 서하 심장이 또 한 번 덜컥했다.“아, 맞다. 여보.”“왜.”“오늘 손 시리다며.”도현이 자기 외투 주머니를 뒤적이는 동안 이준이 서하 쪽으로 아주 잠깐 시선을 돌렸다. 그 눈이 입술에 닿았다가 떨어지는 걸 서하는 똑똑히 봤고, 괜히 입을 꾹 다물었다.이준은 아무 일도 없었다는 얼굴로 물었다.“두 분 같이 퇴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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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화. 돈 받고 밤새는 건 괜찮아?

“차이준.”윤서하는 검은 키카드를 손에 쥔 채 이를 한번 악물었다.남의 주머니에 출입카드를 넣어두고 모르는 척 사라지는 인간은 처음이었다. 더 웃긴 건 이게 그 인간 짓인지 확신도 못 하겠다는 거였다.“진짜 미치겠네.”서하는 카드 앞뒤를 다시 확인했다. 동관 기록실, 지하 보존고, 직원 통로. 평소 청소팀이 못 들어가는 구역까지 전부 찍혀 있었다.돌려줘야 했다.그냥 경비 데스크에 맡겨도 됐지만, 이상하게 직접 얼굴 보고 따지고 싶었다.왜 이걸 내 주머니에 넣었냐고.정말 네가 넣은 거 맞냐고.그 이유까지 묻고 싶다는 게 제일 마음에 안 들었다.서하는 결국 동관 기록실 앞까지 갔고, 안쪽에서 종이 넘기는 소리가 들리자 문부터 열었다.“차이준 씨.”이준이 고개를 들었다.“오늘은 이름부터 부르네.”“이거.”서하는 키카드를 책상 위로 던졌다.딱.“왜 제 주머니에 있었어요?”이준이 카드를 집어 들고 한 번 뒤집어 보더니 태연하게 말했다.“내 거네.”이준이 목에 걸린 카드줄을 한번 내려다봤다. 끝은 비어 있었다.“어제부터 없어진 줄도 몰랐어요?”“찾긴 했지.”“그럼 왜 신고 안 했어요?”“어디 있는지 대충 알 것 같아서.”서하가 바로 쏘아봤다.“역시 당신이 넣었네.”“내가 넣었다고는 안 했는데.”“그럼 왜 내 주머니에 있을 줄 알았어요?”“어제 스친 사람이 너밖에 없으니까.”“카드나 잘 챙겨요. 다음엔 수수료 받을 거니까.”“그럼 일부러 또 잃어버려도 돼?”“사람을 잃어버리게 해드려요?”“그건 나도 알아요.”“근데 왜 네 주머니에 있었지?”“그걸 당신한테 묻는 거잖아요.”“내가 넣었다고 생각해?”“아니면 카드가 날 좋아해서 따라왔겠어요?”“가능성 있네. 나보다 먼저 반했을 수도 있고.”“진짜 대화가 안 된다.”서하는 돌아서려 했는데 이준이 카드 모서리로 책상을 톡톡 두드렸다.“잠깐.”“또 뭐요.”“왔으니까 하나만 보여줄래?”“뭘.”“직원용 비밀 통로.”서하가 미간을 찌푸렸다.“그걸 왜 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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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화. 아무도 우리를 찍지 않았다

“재밌잖아.”차이준이 웃으며 그 말을 던진 다음 날, 윤서하는 그 인간과 함께 벽 속으로 들어갔다.정확히는 직원들만 아는 서비스 통로였다.“여기 맞아?”“목소리 줄여요.”“왜. 귀신 깰까 봐?”“당신부터 깨울까 봐요. 머리 한 대 치면 정신은 들겠지.”서하는 지하 세탁실 끝 벽장을 밀어 열었다. 안쪽 선반을 비우고 손잡이처럼 튀어나온 나무 조각을 당기자, 벽 한쪽이 아주 조금 벌어졌다.이준이 바로 몸을 숙였다. 그가 안으로 들어오자 서하는 괜히 한 걸음 먼저 물러섰고, 좁은 입구 탓에 어깨가 닿을 뻔하자 손바닥으로 그의 가슴부터 밀었다.“붙지 마요.”“아직 안 붙었는데.”“붙기 직전이었잖아.”“그걸 어떻게 알아. 기다렸어?”“입구가 좁다고.”“난 그것보다 유부녀 씨가 더 예민한 것 같은데.”“한 번 더 놀리면 여기 두고 문 잠가요.”이준이 바로 몸을 숙였다.“와. 이런 데가 진짜 있었네.”“좋아하지 마요. 당신 놀이터 아니니까.”“유부녀 씨랑 단둘이 들어가는 비밀 통로인데 어떻게 안 좋아해.”“돈 받고 안내하는 거예요.”“응. 그래서 더 야하네.”서하가 그대로 문을 닫으려 하자 이준이 재빨리 손을 끼웠다.“장난.”“손 잘리고 싶으면 계속해요.”“오늘도 서비스 세네.”“당신한테만 특별 서비스예요.”그 말에 이준이 웃었고, 서하는 괜히 자기가 더 이상한 말을 한 것 같아 먼저 통로 안으로 들어갔다.안은 생각보다 좁았다. 사람 하나가 겨우 지나갈 폭이라 어깨를 조금만 돌려도 벽에 닿았고, 오래 묵은 먼지가 신발 아래서 부서졌다. 천장 조명은 끊긴 지 오래인지 아무 반응이 없어서 이준이 손전등을 켰는데, 빛은 벽이 아니라 서하 발밑만 따라왔다.“앞 좀 비춰요.”“넘어질까 봐.”“내가 애예요?”“애는 아닌데 잘 넘어질 얼굴.”“그게 무슨 얼굴인데.”“잡아주면 화낼 얼굴.”“정답.”“그래서 발만 비추잖아. 나 되게 배려 중인데.”“그 입만 빼면요.”“입은 왜. 지난번엔 잘 쓰더니.”서하 발이 딱 멈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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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화. 좋은 뜻이 제일 위험해

“우리는 여기 있었는데 아무도 우리를 찍지 않았다.”벽에 남은 문장을 읽은 뒤에도 한동안 아무도 입을 열지 않았다.윤서하는 손전등을 벽 쪽에 둔 채 사진들을 다시 훑었고, 차이준은 카메라를 들었다가 결국 내렸다. 조금 전까지만 해도 뭐든 남기겠다는 얼굴이었는데, 이번엔 셔터를 누르지 않았다.“왜 안 찍어요?”“찍지 말라며.”“제가 언제요?”“얼굴은 그러고 있는데.”서하는 바로 받아쳤다.“사람 얼굴 읽는 척하지 마요. 하나도 안 맞으니까.”“그럼 찍어도 돼?”“아니요.”“봐. 맞잖아.”“재수 없네.”이준이 카메라 끈을 손목에 감으며 벽 가까이 다가갔다. 사진마다 이름이 없었고, 몇 장은 가장자리가 찢겨 있었다.“이 사람들 기록도 남기고 싶어.”“누가요?”“여기서 일했던 사람들.”“본인들한테 물어봤어요?”“찾아서 물어보려고.”“찾으면 다 좋아할 거라 생각해요?”이준이 서하를 돌아봤다.“좋은 뜻이잖아.”“그 말이 제일 위험한데.”“뭐가.”“좋은 뜻이라는 말.”서하는 벽에 붙은 사진 한 장을 조심스럽게 가리켰다.“이 사람들은 여기서 일했다는 걸 남기고 싶었을 수도 있고, 반대로 아무도 모르게 살고 싶었을 수도 있어요. 가족한테 말 안 한 사정도 있을 테고.”“그래서 확인하겠다고.”“확인하기 전에 전시부터 생각했잖아요.”“내가 언제.”“얼굴에 써 있었어요.”이준이 웃었다.“내 얼굴 잘 보네.”“말 돌리지 마요.”“네가 자꾸 보니까.”“차이준 씨.”“응.”“진지한 얘기 30초를 못 버텨요?”“버틸 수 있는데.”이번엔 웃음이 사라졌다.“네 말 맞아.”서하가 잠깐 멈췄다.“뭐가요.”“내가 먼저 남기고 싶다는 생각부터 했어. 당사자가 싫을 수도 있는데.”“의외로 인정 빠르네.”“유부녀 씨한테 혼나면 빨라져.”“그 호칭 붙이면 칭찬 취소.”“그럼 뭐라고 불러.”“윤서하.”“알고 있었네?”“명찰 봤겠죠.”“아니. 처음부터.”서하가 그를 봤다.“뭐요?”“처음 본 날부터 이름은 알았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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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화. 조용히 시키는 방법

“키스할 때만 센 줄 알았어요?”윤서하가 그렇게 받아친 다음 날, 차이준은 진짜로 입을 닫았다.정확히는 11분 동안.지하 식품창고에서 재고를 확인하던 서하는 혼자 중얼거렸다.“조용해서 살 것 같네.”“계속 조용히 있어줄까?”등 뒤에서 바로 대답이 날아왔다.서하는 눈을 감았다가 천천히 돌아봤다. 이준은 문틀에 기대 있었고, 어제처럼 카메라를 들고 있었으나 찍을 생각은 없어 보였다.“11분.”“뭐가.”“당신 조용했던 시간.”“재봤어?”“너무 평화로워서.”“나 없으면 심심하잖아.”“없는 날이 더 좋아요.”“근데 왜 웃어.”서하는 입가를 바로 굳혔다.“안 웃었거든.”“방금 웃었는데.”“헛것 봤어요.”“유부녀 씨가 나 보면 자꾸 헛것이 생기네.”“그 입부터 창고에 보관할까요?”“오늘은 안 건드릴 건데.”서하 손이 멈췄다.이준은 아무렇지 않게 선반에 기대며 말을 이었다.“진짜로. 오늘은 안 건드려.”“누가 해달랬어요?”“어제부터 계속 센 척하길래 미리 알려주는 거야.”“센 척?”“키스할 때만 센 줄 알았냐며.”서하는 들고 있던 통조림 상자를 그대로 그의 배에 밀어붙였다.“그 얘기 또 꺼내면 이걸로 찍어요.”“사진?”“머리.”“무섭네.”“알면 가요.”“가기 전에 하나만.”“또 뭐요.”“남편 지금 아래층에 있지?”서하 표정이 바로 굳었다.“그걸 왜 확인해.”“기사팀 무전 들었어. 지하 2층.”“그래서요?”“아무것도.”“아무것도 아닌 얼굴이 아닌데.”이준이 웃었다.서하는 선반을 정리하는 척 돌아섰는데, 손이 자꾸 결혼반지로 갔다. 이준은 이번엔 놀리지 않고 시선을 돌렸다.“왜 안 봐요?”“뭘.”“아니, 평소엔 반지만 보면 한마디씩 하잖아요.”“보지 말라며.”“그렇긴 한데.”“유부녀 씨 진짜 까다롭네. 보면 뭐라 하고, 안 보면 또 왜 안 보냐고 하고.”“누가 왜 안 보냐고 했어요?”“방금.”“말 꼬투리 잡지 마요.”“그럼 뭐 잡아.”서하가 곧장 손을 들어 그의 입을 가리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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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화. 왜 아직 안 자?

“서하야, 어디야?”무전기에서 도현 목소리가 두 번째로 울리자 윤서하는 차이준 입부터 손으로 막을 뻔했다.정확히는 손이 올라갔다가 중간에서 멈췄다.방금 전까지 키스하던 입을 또 만지면 진짜 끝장일 것 같아서.“식품창고.”서하는 최대한 아무렇지 않게 대답했으나, 바로 옆 이준이 입술을 꾹 누르며 웃는 바람에 심장이 더 뛰었다.“거기 왜?”“재고 정리 중이야.”“혼자?”그 한마디에 서하 목이 잠깐 막혔다.이준이 고개를 숙여 서하 귀 가까이 입을 가져왔다.“혼자라고 해.”서하가 팔꿈치로 그의 배를 툭 밀었다.“차이준 씨도 있어.”“같이?”“사진 때문에 왔대.”무전기 너머가 잠깐 조용해졌고, 서하는 괜히 결혼반지를 돌렸다. 이준은 그 손을 보다가 이번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알았어. 나 10분 뒤에 올라가.”“응.”연결이 끊기자 서하는 그대로 이준을 노려봤다.“왜 혼자라고 하래요?”“그게 더 편하잖아.”“누가요?”“너.”“나 거짓말시키지 마.”“방금도 했으면서.”서하 표정이 굳었다.“뭘.”“재고 정리 중이라며.”“정리했잖아요.”“나는 네 입술 정리한 줄 알았는데.”“차이준 씨.”“응.”“오늘 진짜 죽고 싶어요?”“키스한 사람한테 그렇게 매정하게?”“키스한 걸 자랑처럼 말하지 마요.”“네가 먼저 했잖아.”“그걸 왜 자꾸 확인해.”“좋아서.”대답이 너무 빨라 서하는 잠깐 말을 잃었다.이준은 웃지도 않았다.그게 더 위험했다.서하는 먼저 고개를 돌리고 상자 하나를 괜히 안쪽으로 밀었다.“이제 끝.”“뭐가.”“이런 거.”“어떤 거.”“모르는 척하지 마요.”“키스?”“말 좀 예쁘게 못 해요?”“키스가 왜 안 예뻐.”“당신 입에서 나오면 더러워져요.”“그럼 네 입으로 해.”서하가 바로 돌아봤다.이준은 그제야 웃었다.“말을.”“미쳤네.”“방금 상상했지?”“나가요.”서하가 문을 가리키자 이준은 생각보다 순순히 돌아섰다. 문을 열기 직전 그가 한번 뒤돌아봤으나, 서하는 일부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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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화. 이번엔 직원 건드리지 마

[왜 아직 안 자?]새벽 4시 17분, 차이준이 보낸 두 번째 문자를 본 윤서하는 답장을 쓰지 않았다.정확히는 23번쯤 썼다가 지웠다.[당신 때문에.][미쳤어요?][안 자는 게 당신이랑 무슨 상관인데.][다신 문자하지 마.]마지막 문장까지 적고도 보내지 못했고, 결국 휴대폰을 뒤집어 베개 밑에 처박았다.“진짜 안 해.”누구한테 하는 말인지 자기도 몰랐다.그런데 다음 날부터 차이준이 진짜로 안 나타났다.하루.이틀.사흘.문제는 그 침묵이 자꾸 사람 약 올리는 방식으로 느껴졌다는 거였다. 먼저 오지 말라고 한 적도 없는데 정말 안 오니까, 서하는 괜히 자기가 버림받은 사람처럼 기분이 더러워졌다.다섯 번쯤 휴대폰을 확인하다가 스스로 한심해서 화면을 껐고, 10분 뒤 다시 켰다. 새 메시지는 없었다.“와. 사람 미치게 하는 데는 재주 있네.”동관 서재에도 없었고, 서비스 복도에서도 안 보였으며 유리문에는 손자국 하나 남지 않았다. 청소 카트 손잡이에 커피도, 이상한 메모도, 쓸데없는 시비도 없었다.처음엔 살 것 같았다.둘째 날엔 조용해서 좋다고 생각했고, 셋째 날쯤 되자 윤서하는 멀쩡한 유리문을 괜히 두 번 닦았다.“뭐 찾는 거 있어요?”김미자가 뒤에서 묻자 서하는 바로 손을 멈췄다.“먼지요.”“거기 이미 닦았잖아.”“또 생겼어요.”“5분 만에?”“이 집 먼지가 성격이 급한가 보죠.”김미자가 이상하다는 듯 쳐다봤으나 서하는 더 세게 유리를 문질렀다.차이준이 안 보이면 좋은 거였다.이래야 맞았다.키스도 끝, 장난도 끝, 새벽 문자도 끝.그런데 왜 자꾸 복도 끝을 보게 되는지 그게 제일 열받았다.넷째 날, 선우재 분위기가 갑자기 뒤집혔다.주차장에는 낯선 차들이 줄줄이 들어왔고, 현관에는 꽃과 상자가 쌓였으며 직원들은 평소보다 두 배 빠르게 움직였다. 박물관 개관 프로젝트 회의 때문에 가족들이 한꺼번에 모인다는 말을 듣고서야 서하는 고개를 끄덕였다.“오늘 회장님 가족들 거의 다 와요.”옆에서 직원 하나가 속삭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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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화. 우리 집사람 일 뺏지 마세요

“차이준, 이번엔 직원 건드리지 마.”그 말이 떨어진 순간, 윤서하는 들고 있던 쟁반을 조금 세게 움켜쥐었다.직원.건드리지 마.둘 사이에 무슨 전적이라도 있다는 말처럼 들려서 기분이 더러웠고, 더 웃긴 건 자신이 왜 기분 나빠하는지 너무 잘 안다는 거였다.질투.“미쳤네.”작게 중얼거리며 돌아서는데 뒤에서 여자 목소리가 바로 따라왔다.“저기요.”서하는 못 들은 척하려다 멈췄다. 돌아보니 조금 전 차이준과 웃고 떠들던 여자가 와인잔을 든 채 서 있었고, 가까이에서 보니 생각보다 훨씬 또렷한 인상이었다.“윤서하 씨 맞죠?”서하 눈썹이 움직였다.“제 이름을 알아요?”“한유라예요. 박물관 홍보 맡고 있어요.”“그래서 제 이름까지 외워요?”유라가 웃었다.“직원 명단 봤으니까요. 사람 이름 모르고 일 시키는 거 싫어해서.”그 대답이 의외로 멀쩡해 서하는 괜히 경계심을 조금 내렸다.“아까 들으셨죠?”“뭘요.”“차이준한테 직원 건드리지 말라고 한 거.”“안 들었는데요.”“표정은 다 들었는데.”“요즘 왜 다들 제 얼굴을 읽어요?”“잘 써 있어서?”서하가 대꾸하려던 순간 뒤에서 사람이 지나갔고, 유라가 피하려다 들고 있던 잔을 기울였다.붉은 와인이 서하 작업복 앞자락으로 그대로 쏟아졌다.“아.”유라 얼굴이 바로 굳었다.“미안해요. 진짜 일부러 그런 거 아니에요.”서하는 젖은 작업복을 내려다봤다.드라마였으면 여기서 재벌가 여자가 청소부 옷에 와인을 붓고 비웃을 차례였다.그런데 유라는 잔부터 내려놓더니 냅킨을 한 움큼 집었다.“잠깐만요. 제가 닦을게요.”“괜찮아요.”“안 괜찮아 보이는데.”“이건 세탁하면 돼요.”“제가 쏟았잖아요.”유라가 허리를 숙이려는 순간, 누군가 더 빨랐다.차이준이었다.그가 냅킨을 낚아채더니 서하 발밑에 번진 와인부터 닦기 시작했다.주변이 잠깐 조용해졌다.서하도 굳었다.“뭐 해요?”이준은 바닥을 닦으면서 태연하게 대꾸했다.“청소.”“그건 제 일이거든요.”“알아.”“알면 일어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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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화. 그건 좀 더 가까이 와서 해

“우리 집사람 일 뺏지 마세요.”도현이 웃으며 던진 말에 윤서하는 입술부터 꾹 눌렀다.차이준은 눈치가 있으면 한 발 물러나야 했고, 평범한 인간이면 적당히 웃고 끝냈어야 했다.그런데 역시 차이준이었다.“그러게요. 제가 자꾸 윤서하 씨 일에 끼네요.”굳이 이름까지 불렀다.서하는 바로 이준을 쏘아봤고, 도현은 아무것도 모른 채 젖은 작업복만 살폈다.“많이 젖었어?”“별거 아니야.”“갈아입을 옷 있어?”“직원실에.”“그럼 빨리 갈아입어. 감기 걸려.”도현이 소매 끝에 묻은 와인을 털어주려 손을 뻗자 서하는 본능처럼 한 걸음 물러났다. 아주 짧은 움직임이었는데 자신이 먼저 놀랐고, 도현도 손을 멈췄다.“왜?”“와인 묻을까 봐.”거짓말은 또 너무 빨리 나왔다.그 순간 이준의 시선이 서하 얼굴에 닿았다가 사라졌다.보고 있었네.다 봤네.그게 괜히 화가 났다.“저 갈아입고 올게.”서하는 더 버티지 못하고 직원실 쪽으로 돌아섰다. 등 뒤에서 유라가 다시 미안하다고 했고 도현은 괜찮다며 웃었지만, 이준은 끝까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그 침묵 때문에 더 열받았다.직원실에서 새 작업복으로 갈아입는 동안에도 장면이 머리에서 안 빠졌다. 이준이 바닥에 무릎을 댄 것, 자기 손을 내민 것, 도현이 ‘우리 집사람’이라고 말했을 때 아무렇지 않은 척 서 있던 얼굴까지.서하는 젖은 작업복을 봉투에 쑤셔 넣다가 괜히 더 세게 눌렀다.“왜 내가 신경 써.”상대는 차이준이었다. 원래 아무 여자한테나 저렇게 능글거리는 인간일 수도 있고, 한유라와는 오래 알고 지낸 사이일지도 몰랐는데 그 생각을 하는 순간 기분이 더 나빠졌다.“아무 여자?”자기 입으로 중얼거리고도 어이가 없었다.서하는 봉투를 묶다가 손을 멈췄다.질투해서 가는 게 아니었다.저 인간 버릇을 고쳐놓으려고.적어도 서하는 그렇게 믿기로 했다.30분 뒤.서하는 일부러 동관까지 올라갔다.차이준에게 할 말이 있어서였다.정확히는 죽일 말이.서재 문을 열자 이준은 바닥에 앉아 사진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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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화. 반지 빼지 마

“그건 좀 더 가까이 와서 해.”차이준이 그렇게 받아치자 윤서하는 셔츠깃을 다시 잡을 뻔했다.“미친놈.”“아까도 들었어.”“이번엔 진심이에요.”“나도 진심인데.”“뭐가.”“가까이 오라는 거.”서하는 기가 막혀 웃었고, 이준은 그 틈을 놓치지 않았다.“봐. 또 웃잖아.”“당신이 너무 유치해서.”“유치한데 계속 찾아오는 건 누군데.”“죽이러 왔다니까요.”“죽이기 전에 키스부터 할 얼굴인데.”서하 손이 멈췄다.딱 그 순간 복도 끝에서 카트 바퀴 소리가 들렸고, 서하는 재빨리 한 걸음 물러났다. 이준은 따라오지 않았는데도 방금 가까웠던 거리가 괜히 남아 있는 것 같아 손끝까지 신경 쓰였다.“내가 미쳤지.”“이제 알았어?”“당신 말고 나요.”“그건 나도 동의.”“진짜 재수 없어.”서하는 서재를 빠져나왔고, 이번엔 이준도 붙잡지 않았다.다음 날 저녁, 서하는 린넨실에서 세탁된 시트를 정리하고 있었다. 천장 가까이까지 쌓인 흰 천들이 벽처럼 둘러싸고 있었고, 바깥 복도에서는 직원들 발소리가 간간이 지나갔다.“유부녀 씨.”뒤에서 익숙한 목소리가 들리기 전까지는.서하는 시트를 접던 손을 멈췄다.“또 왜요.”“인사.”“인사를 왜 맨날 숨어서 해.”“숨어 있던 거 아닌데.”“린넨실 안쪽에서?”“찾아온 거.”“누굴.”“너.”대답이 너무 빨라 서하는 괜히 시트를 더 반듯하게 접었다.“찾지 마요.”“왜.”“찾아오면 자꾸 이상해지니까.”이준 얼굴에서 장난기가 조금 빠졌다.“뭐가 이상해져.”서하는 손가락으로 왼손의 반지를 툭 건드렸다.“이거 보이죠.”“응.”“나 결혼했어요.”“알아.”“남편도 여기 있고.”“그것도 알아.”“그럼 정신 좀 차려요.”“너도.”서하가 바로 고개를 들었다.“뭐라고요?”“나 혼자 정신 놓은 것처럼 말하지 말라고.”이준은 한 발도 다가오지 않은 채 그 자리에서 서하를 보고 있었다.“먼저 키스한 사람도 너고, 찾아온 사람도 너고, 질투한 사람도 너잖아.”“질투 아니라고 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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