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세트테이프는 그 한마디를 끝으로 멈췄다. 2009년 그날 밤, 해린을 살린 사람은 강정호가 아니었으니까. 이후 정적. 해린은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태준 역시 마찬가지였다.한참 후. 해린이 먼저 입을 열었다.“다시 틀어봐요.”태준이 카세트를 되감았다. 지직거리는 소리. 같은 부분. 같은 목소리. 하지만 이번에는 끝부분에서 미세한 소리가 들렸다. 남자의 숨소리. 그리고 아주 작게.“……태준아.”해린의 얼굴이 굳었다.“방금.”“네.”태준이 재생을 멈췄다.“내 이름을 불렀어요.”해린이 카세트를 바라봤다.“당신을 알고 있었던 사람이에요.”“그런데 왜 나한테 말하지 않았을까요?”해린이 잠시 생각했다. 그리고 말했다.“당신이 기억을 잃었다는 걸 알고 있었으니까.”태준의 표정이 변했다.“……기억을 잃은 게 아니라.”“지워진 거죠.”“그렇다면.”태준이 해린을 바라봤다.“당신은 왜 기억하고 있어요?”해린이 멈칫했다.“……나도 모르겠어요.”“정말?”“네.”태준이 그녀를 오래 바라봤다. 그러다 문득. 해린의 눈빛이 흔들렸다.“잠깐.”“왜요?”“나도 희미하지만 이상한 기억이 하나 있어요.”“뭔데요?”해린이 눈을 감았다.“어릴 때.”희미한 장면 하나. 하얀 복도. 비 냄새. 그리고 누군가 자신의 손을 잡고 있었다.“누군가가 나를 데리고 뛰었어요.”태준이 숨을 멈췄다.“누구였어요?”“얼굴은 안 보여요.”해린이 미간을 좁혔다.“그런데 손이…….”잠시 침묵.“따뜻했어요.”태준의 손가락이 미세하게 굳었다.“해린.”“응?”“왼손이었어요?”해린이 그를 바라봤다.“……네.”태준이 자신의 왼손을 내려다봤다. 그리고 손목 안쪽에 있는 작은 흉터를 보여줬다.“나도 어릴 때부터 이 흉터가 있어요.”해린의 표정이 굳었다.“그게 왜?”“기억은 없는데.”태준이 손목을 만졌다.“항상 이 흉터만 보면 누군가를 잡고 뛰었던 느낌이 들어요.”해린이 숨을 삼켰다. 두 사람은 동시에 깨달았다. 2009년의 만남이 처음
Last Updated : 2026-10-13 Read mor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