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장지에서의 밤은 이상하게 길었다. 낯선 도시, 낯선 언어, 낯선 사람들. 하루 종일 이어진 미팅을 끝내고 호텔 바에 내려온 해린은 바에 기대어 천천히 잔을 돌렸다. 평소라면 쉽게 하지 않을 행동이었다.하지만 오늘만큼은 괜찮았다. 내일이면 다시 돌아갈 테니까. 그때였다.“혼자예요?”낮고 느긋한 목소리가 들렸다. 해린은 고개를 돌리지 않은 채 대답했다.“그렇게 보이나요?”“네.”그제야 그녀가 옆을 바라봤다. 남자가 있었다. 깔끔하게 걷어 올린 셔츠 소매, 느슨하게 풀린 넥타이, 무심한 표정.잘생겼다는 말로는 조금 부족했다. 사람을 오래 바라보게 만드는 얼굴이었다. 그런데 해린은 눈을 마주친 순간에도 별다른 표정을 보이지 않았다.“그럼 맞나 보네요.”남자의 입꼬리가 아주 조금 올라갔다.“보통은 이름부터 물어보던데.”“제가요?”“네.”“왜요?”“궁금하니까.”해림은 잔을 천천히 내려놓았다.“궁금하면 직접 물어보세요.”남자가 잠시 그녀를 바라봤다. 그러더니 낮게 웃었다.“재미있네요.”“뭐가요?”“이런 식으로 대답하는 사람.”“그쪽도 처음부터 질문이 별로였고요.”이번에는 남자가 웃음을 참지 못했다.“그럼 다시 할게요.”그가 몸을 조금 돌려 그녀를 제대로 마주 봤다.“이름이 어떻게 돼요?”해린은 잠시 그를 바라보다가 대답했다.“그건 비밀.”“비밀이 많은가 봅니다.”“처음 보는 사람한테 이름까지 알려줄 만큼 한가하지 않아서요.”“그럼 저는 이름 알려드릴까요?”“안 궁금한데.”짧은 정적. 남자는 오히려 재미있다는 듯 그녀를 바라봤다. 처음이었다. 자신에게 이런 식으로 관심 없는 척하는 여자는.아니. 정확히는 관심이 없는 게 아니었다. 관심이 있으면서도 절대 내보이지 않는 눈이었다. 남자는 그녀가 자신을 의식하고 있다는 걸 알고 있었다. 해린 역시 그가 자신을 보고 있다는 걸 알고 있었다. 그래서 더 이상했다. 누가 먼저 시선을 피하느냐를 두고 싸우는 것 같았다. 결국 먼저 잔을 들어 올린 건 해린이었다.“그럼 좋
Huling Na-update : 2026-10-12 Magbasa p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