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ll Chapters of 하룻밤이면 충분했다.: Chapter 11 - Chapter 20

47 Chapters

11화. 의심과 끌림, 그 사이 무언가

새벽 2시 17분.최도윤의 별장을 나온 뒤에도 두 사람은 한동안 차 안에 말이 없었다. 차창 밖으로 지나가는 가로등 불빛이 해린의 얼굴을 짧게 스쳤다.태준은 운전대를 잡은 채 앞만 보고 있었다. 그런데도 해린은 알 수 있었다. 그가 자신을 계속 의식하고 있다는 걸.“강태준 씨.”“네.”“아까 문자.”“봤습니다.”“정말 내가 당신을 죽이려고 접근했다고 생각해요?”태준의 손가락이 운전대 위에서 아주 미세하게 움직였다. 그리고 낮게 웃었다.“그렇게 보였다면 지금 여기 같이 안 있겠죠.”“그럼?”태준이 신호에 걸려 차를 세웠다. 그리고 해린을 바라봤다.“의심합니다.”“…….”“그런데 믿고 싶기도 하고.”해린이 눈을 가늘게 떴다.“둘 중 하나만 해야 하는 거 아닌가요?”“원래라면.”태준이 몸을 살짝 그녀 쪽으로 기울였다.“그런데 당신한테는 자꾸 원칙이 안 통하네요.”순간 차 안의 공기가 묘하게 달라졌다. 해린은 시선을 피하지 않았다.“그게 변호사로서 위험한 말이라는 건 알아요?”“압니다.”“그런데도 해요?”“네.”태준의 시선이 그녀의 눈에서 입술로 아주 잠깐 내려갔다. 짧은 순간이었다. 하지만 해린은 놓치지 않았다.“……강태준 씨.”“왜요.”“지금 나 의심하는 사람의 눈빛은 아닌데.”태준이 피식 웃었다.“당신도 마찬가지잖아요.”“뭐가요?”“나 의심한다면서.”그가 몸을 조금 더 가까이 가져갔다.“계속 내 입술 보고 있잖아.”해린의 표정이 순간 굳었다.“착각이 심하네요.”“그럼 확인해볼까요?”“뭘.”태준이 천천히 그녀에게 가까워졌다. 해린은 물러서지 않았다. 두 사람 사이의 거리가 순식간에 좁혀졌다. 숨이 닿을 듯한 거리. 태준의 목소리가 낮아졌다.“내가 착각하는 건지.”해린이 그의 눈을 똑바로 바라봤다.“확인하고 싶어요?”“당신이 허락한다면.”그 말에 해린의 눈빛이 흔들렸다. 태준은 더 이상 다가가지 않았다. 오히려 아주 조금 거리를 뒀다. 어쩐지 그게 더 위험했다. 해린은 잠시 그를 바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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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화. 야반 도주

복도 끝에서 발소리가 가까워졌다.하나.둘.셋.여러 명이었다. 해린이 낮게 말했다.“경찰?”태준은 고개를 저었다.“아니.”“그걸 어떻게 알아요?”“경찰이면 이렇게 조용하지 않아.”그가 녹음기를 주머니에 넣었다. 그리고 해린의 손목을 잡았다.“가요.”“어디로?”“일단 여기서 나가야 합니다.”“나 혼자 도망치면…”“혼자 안 둡니다.”태준의 목소리가 단호했다.“이번엔 내가 데리고 나가요.”문밖에서 누군가 손잡이를 잡았다. 철컥. 태준의 눈빛이 바뀌었다. 그는 해린의 허리를 감싸 자신의 뒤로 끌어당겼다.“잠깐.”문이 열렸다. 하지만 그 순간 태준은 이미 반대편 비상계단 문을 열고 있었다.“뛰어요.”둘은 계단을 내려갔다. 해린이 숨을 고르며 말했다.“강태준, 당신 진짜…”“칭찬은 나중에.”“누가 칭찬한다고..”“네, 알아요.”태준이 웃었다.“그래도 들을 준비는 되어 있습니다.”“정말 재수 없네.”“그 말 들으면 살아 있다는 느낌이 들어서.”해린이 피식 웃었다. 그때 위층에서 문이 열리는 소리가 났다.“찾았다!”태준이 해린의 손을 더 세게 잡았다.“빨리.”지하 주차장. 두 사람은 기둥 뒤에 몸을 숨겼다. 해린의 숨이 가빠졌다. 태준은 그녀 바로 앞에 서 있었다. 너무 가까웠다.“조용히.”“알아요.”“숨소리도 줄여요.”“그게 마음대로 돼요?”태준이 그녀를 바라봤다.“그러게요.”그의 손이 해린의 허리에 닿았다.“내 앞에서는 자꾸 마음대로 안 되네요.”해린이 눈을 들었다.“지금 이 상황에서 그런 말이 나와요?”“당신이 바로 앞에 있으니까.”잠깐. 두 사람의 눈이 마주쳤다. 태준의 손이 허리에서 천천히 내려가려다 멈췄다. 그는 스스로 거리를 조금 벌렸다.“……미안.”해린이 그를 바라봤다.“왜요?”“지금은 당신을 지켜야 하는 상황인데.”그가 낮게 말했다.“자꾸 다른 생각이 들어서.”해린의 표정이 미묘하게 변했다.“나도 그런데.”태준이 멈췄다.“뭐라고요?”해린이 그의 셔츠 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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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화. 진실

최도윤의 말이 끝난 뒤에도. 아무도 움직이지 않았다. 새벽의 묘지는 이상할 만큼 조용했다. 해린은 USB를 바라봤다. 그리고 태준을 봤다.“당신 아버지가…….”“알아.”태준의 대답은 짧았다.“나도 지금 처음 들었어.”최도윤이 피식 웃었다.“그럴 줄 알았지.”태준의 시선이 날카로워졌다.“헛소리하지 마.”“헛소리인지 아닌지는 영상을 보면 알겠지.”최도윤이 한 걸음 다가왔다.“다만 한 가지는 확실해.”“뭐가.”“당신 아버지는 윤상혁을 알고 있었어.”태준의 표정이 굳었다.“언제부터?”“그걸 알려면 영상을 봐야지.”“그럼 지금 틀어.”“여기서?”최도윤이 묘지 주변을 둘러봤다.“아직도 누군가 우릴 보고 있을 텐데?”해린이 바로 말했다.“그럼 안전한 곳으로 가죠.”태준이 그녀를 바라봤다.“당신은 빠져.”“뭐?”“이번 건 내 가족 문제야.”해린의 표정이 차갑게 변했다.“지금 나한테 빠지라고 했어요?”“위험해질 수 있으니까.”“야, 강태준.”해린이 한 걸음 다가갔다.“우리가 지금까지 뭘 했는데?”“…….”“당신이 위험하면 나도 위험하고, 내가 위험하면 당신도 위험해요.”그녀가 태준을 똑바로 바라봤다.“이제 와서 가족 문제니까 빠지라고?”태준이 말없이 그녀를 바라봤다. 해린이 낮게 덧붙였다.“싫어요.”태준의 입꼬리가 아주 조금 올라갔다.“역시.”“뭐가요?”“당신은 말을 안 들어.”“당신도 마찬가지잖아요.”“그래서 잘 맞는 겁니다.”해린이 어이없다는 듯 웃었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최도윤이 한숨을 쉬었다.“두 사람 정말 똑같군.”태준과 해린이 동시에 그를 바라봤다.“뭐가요?”최도윤이 씁쓸하게 말했다.“상대가 위험할수록 더 가까이 가잖아.”새벽 5시. 세 사람은 별장으로 돌아왔다. 태준이 노트북을 켰다. USB를 연결했다. 파일 하나. 이름은 단순했다. 2012_06_17. 해린의 손이 멈췄다.“……내 생일이야.”태준이 그녀를 바라봤다.“알아요.”“이 날짜에 내가 윤상혁을 만났다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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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화. 죽었어야 했어

[그 사람은 강태준입니다.]마지막 문자가 화면에 떠 있었다. 해린은 한동안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태준 역시 마찬가지였다. 최도윤만이 두 사람을 번갈아 바라봤다.“왜 하필 나죠?”태준이 물었다. 최도윤은 대답하지 않았다.“계속 말해.”태준의 목소리가 낮아졌다.“왜 내가 계획에 없었는데?”“그건 내가 말할 수 있는 게 아니야.”“그럼 누가 말할 수 있는데?”최도윤이 태준을 바라봤다. 그리고 말했다.“당신 아버지.”순간 태준의 표정이 굳었다.“아버지는 죽었어.”“알아.”“그런데?”“죽기 전에 나한테 한 말이 있어.”최도윤이 천천히 입을 열었다.“절대로 강태준에게 알려주지 말라고.”“뭘.”“차해린이 누구였는지.”해린의 눈빛이 흔들렸다.“……내가 누구였다는 거예요?”최도윤이 그녀를 바라봤다.“당신은 피해자가 아니었어.”해린의 얼굴이 굳었다.“그럼.”“처음부터 이 사건의 일부였지.”태준이 한 걸음 앞으로 나섰다.“말을 조심해.”“사실이야.”“증거 있어?”“있지.”최도윤이 해린을 향해 손을 내밀었다.“당신이 기억하지 못하는 2009년의 기록.”해린이 그의 손을 바라봤다.“어디에 있어요?”“당신이 직접 찾아야 해.”“왜?”최도윤이 대답했다.“누군가 당신 기억을 없앤 이유가 있으니까.”별장 안. 새벽 6시 03분. 해린은 소파에 앉아 있었다. 태준은 맞은편에 앉아 노트북을 보고 있었다. 둘 사이에는 이상한 침묵이 흘렀다. 평소라면 서로를 몰아붙였을 텐데. 이번에는 누구도 먼저 말을 꺼내지 않았다. 결국 해린이 입을 열었다.“당신은 나를 의심해요?”태준이 화면에서 눈을 떼지 않은 채 말했다.“네.”해린의 표정이 굳었다. 하지만 태준이 곧바로 덧붙였다.“나도 의심해요.”“……무슨 뜻이에요?”“내 아버지도.”그가 노트북을 닫았다.“그리고 나 자신도.”해린은 그를 바라봤다. 태준이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났다.“우리가 알고 있는 과거가 전부 거짓일 수도 있어요.”“그럼 우리도?”“뭐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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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화. 두 번째 밤

별장 뒷문으로 빠져나온 건 새벽 6시 21분이었다. 태준은 해린의 손을 놓지 않았다.“뛰어요.”“어디로 가는데요?”“일단 저 사람들 눈부터 피하고.”최도윤이 앞장섰다. 세 사람은 숲길을 지나 한참을 걸었다. 그리고 한참 뒤. 낡은 산장 하나가 나타났다. 최도윤이 열쇠를 꺼냈다.“여기서 하루만 버텨.”태준이 주변을 살폈다.“안전합니까?”“적어도 오늘 밤까지는.”최도윤은 해린을 바라봤다.“둘이 있어.”“당신은?”“나는 다른 데로 시선을 돌려놓을게.”그가 돌아서려는 순간 태준이 물었다.“왜 우리를 도와주는 거지?”최도윤이 잠시 멈췄다.“윤상혁에게 마지막으로 부탁받았으니까.”“뭐라고?”최도윤이 뒤돌아봤다.“둘 중 한 명이라도 살아남으면.”잠시 침묵.“반드시 진실을 알려주라고.”그리고 사라졌다.산장 안. 태준이 문을 잠갔다. 낡은 거실. 작은 주방. 그리고 침실 하나. 해린이 침실을 확인하고 멈췄다. 침대 하나.“……설마.”태준도 방 안을 바라봤다.“침대 하나네요.”“당신은 거실에서 자요.”“싫습니다.”“왜요?”“거실 소파 너무 작아 보여서.”“그럼 바닥에서 자요.”“그건 더 싫고.”해린이 어이없다는 듯 그를 바라봤다.“그럼 내가 바닥에서 잘까요?”태준의 표정이 바로 굳었다.“그건 안 됩니다.”“왜?”“당신이 바닥에서 자는 걸 내가 어떻게 봐요.”“그럼요?”태준이 침대를 가리켰다.“같이 자죠.”해린이 눈을 가늘게 떴다.“뻔뻔하네요.”“이미 한 번 같이 잤잖아요.”“그때랑 지금은 다르죠.”“왜요?”“지금은 내가 당신을 의심하고 있으니까.”태준이 웃었다.“그럼 더 가까이 있어야겠네요.”“무슨 논리예요?”“감시하기 좋잖아요.”해린이 결국 웃음을 터뜨렸다.“정말 말은 잘해.”밤. 산장 밖에는 빗소리가 내리고 있었다. 해린은 침대 한쪽에 누워 있었다. 태준은 반대편에 누워 천장을 바라보고 있었다. 둘 사이에는 베개 하나가 놓여 있었다. 해린이 말했다.“이거 너무 웃기지 않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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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화. 혼자가 아닌

아침이었다. 차해린이 눈을 떴을 때 가장 먼저 느낀 건 낯선 천장이었다. 그리고 두 번째는 허리를 감싸고 있는 강태준의 팔. 맨살에 닿아있는 타인의 살결이 낯설었다.잠깐 멈춰 있던 해린이 고개를 돌렸다. 태준은 아직 자고 있었다. 평소의 날카로운 얼굴과는 전혀 달랐다. 해린이 조심스럽게 몸을 움직이려 하자 팔에 힘이 들어왔다.“…어디 가요.”잠긴 목소리.“안 자는 거였어요?”“방금 깼습니다.”“거짓말.”“변호사한테 거짓말이라고 단정하면 곤란한데.”해린이 피식 웃었다.“놔줘요.”“싫은데.”“강태준 씨.”“어제는 제발 놓지 말라고 했잖아요.”순간 해린의 얼굴이 붉어졌다.“…그건 어제고.”“저는 오늘도 유효한 줄 알았는데.”태준이 웃으며 해린의 머리카락을 귀 뒤로 넘겼다. 손끝이 아주 느렸다.“잘 잤어요?”“네.”“저는 잘 잤습니다.”“왜요?”“당신이 옆에 있어서.”해린이 잠시 그를 바라봤다. 그 순간이었다. 휴대폰이 울렸다.한 번.두 번.세 번째 진동이 길게 이어졌다. 해린의 표정이 굳었다. 화면에 뜬 알림.[전자소송 알림]그리고 첨부된 문서. 고소장. 해린은 침대에서 바로 일어났다. 태준 역시 웃음을 거뒀다.“누구죠?”“…저를 고소했어요.”“혐의는?”해린이 문서를 빠르게 넘겼다. 잠시 후 눈빛이 달라졌다.“윤상혁 살해 사건과 관련된 증거인멸 및 살인교사.”태준의 눈이 가늘어졌다.“예상보다 빨리 움직이네요.”“아니.”해린이 고소장을 내려놓았다.“이건 고소장이 아니에요.”“…뭐라고요?”“미끼예요.”해린은 문서를 다시 펼쳤다.“고소인이 주장하는 사실관계가 너무 구체적이에요.”“그게 이상하다는 겁니까?”“네.”해린이 한 페이지를 가리켰다.“이 문장.”태준이 내려다봤다.“‘차해린은 2012년 6월 17일 윤상혁에게 봉투를 전달했다.’”“…….”“우리가 어제 USB에서 본 영상에만 있는 내용이에요.”태준의 표정이 굳었다. 해린은 차분하게 말했다.“그 영상을 본 사람은 우리 둘뿐이었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1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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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화. 파일

밤 11시 47분. 산장 거실에는 노트북 화면의 불빛만 희미하게 번지고 있었다. 차해린은 화면을 응시한 채 마우스를 움직였다.“서버가 단순한 회사 내부 서버가 아니에요.”강태준이 맞은편에 앉아 물었다.“뭐가 달라요?”“외부에서 접속할 수 있도록 별도의 보안망을 만들어놨어요.”“누가?”해린이 화면을 돌렸다.“당신 아버지 회사.”태준의 표정이 굳었다.“그리고 접속 기록이 이상해요.”“어떻게?”“10년 전부터 계속 유지되고 있어요.”태준이 눈을 가늘게 떴다.“10년?”“네.”해린은 접속 기록을 하나씩 넘겼다. 그리고“누군가 계속 사용하고 있었어요.”“그런데 사용자가 누구인지 안 나온다?”“이름은 지워져 있어요.”“아이디는?”해린이 잠시 멈췄다.“있어요.”화면에 하나의 아이디가 떠올랐다. JH-1703. 태준의 얼굴이 굳었다.“……1703.”해린이 그를 바라봤다.“우리 첫날 밤 방 번호.”“우연일까요?”“이제는 우연이라고 생각하기 힘들죠.”잠시 정적이 흘렀다. 태준이 의자에서 일어났다.“내 아버지가 이걸 만들었다고 생각해요?”해린은 대답하지 않았다.“해린.”“아직 몰라요.”“그런데?”“당신 아버지가 이 서버를 만들었을 가능성은 있어요.”태준의 턱에 힘이 들어갔다.“그리고 그 안에 당신과 관련된 자료가 있었고.”“네.”“나와 관련된 자료도.”“네.”태준이 창밖을 바라봤다. 한참 동안 아무 말이 없었다. 그러다 낮게 말했다.“나도 의심해야겠네요.”해린이 그를 바라봤다.“뭘요?”“내가 알고 있던 내 아버지를.”그때. 노트북에서 알림음이 울렸다. 두 사람의 시선이 동시에 화면으로 향했다.[NEW FILE] 파일 하나가 생성되어 있었다. 이름은 단순했다. HAERIN_2009. 해린의 손이 멈췄다.“열지 마요.”태준이 말했다.“왜요?”“함정일 수도 있어요.”“알아요.”“그런데 열 거죠?”해린이 태준을 바라봤다.“네.”태준이 짧게 웃었다.“역시.”파일이 열렸다. 영상이었다.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1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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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화. 기억 너머 진실

- 이번에는 강태준의 기억을 지워야 했다.문장을 읽은 순간. 해린의 손이 멈췄다.“…태준 씨.”대답이 없었다. 그녀가 옆을 바라봤다. 태준은 화면을 바라본 채 굳어 있었다.“태준 씨?”이번에는 그가 천천히 고개를 돌렸다.“왜요?”“괜찮아요?”태준은 대답하지 않았다. 대신 노트북 앞으로 다가갔다. 파일을 열었다. 영상이 재생됐다.2009년. 낯익은 병원 복도. 그리고 어린 강태준이 화면에 나타났다. 해린은 숨을 삼켰다.“……저게 당신이에요?”“네.”화면 속 어린 태준은 열세 살 정도였다. 복도 의자에 앉아 누군가를 기다리고 있었다. 잠시 후 강정호가 나타났다.“태준아.”어린 태준이 고개를 들었다.“아빠.”“여기서 뭘 하고 있어?”“친구 기다려.”“무슨 친구?”어린 태준이 복도 끝을 가리켰다.“저기 있는 애.”카메라가 천천히 돌아갔다. 해린의 얼굴이 굳었다. 복도 끝.어린 해린이 있었다. 태준이 중얼거렸다.“……차해린.”영상 속 어린 태준이 해린에게 다가갔다.“너 이름 뭐야?”어린 해린이 대답했다.“차해린.”“몇 살이야?”“열네 살.”“나도.”태준의 표정이 굳었다.“내가 당신을 알고 있었어.”해린은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영상 속 두 아이는 잠시 이야기를 나눴다. 그러다 어린 해린이 갑자기 물었다.“너 아저씨 아들이야?”태준이 고개를 끄덕였다.“응.”해린의 표정이 밝아졌다.“그럼 나랑 친구 할래?”영상이 멈췄다. 해린의 눈에 눈물이 맺혔다.“우리… 그날 처음 만난 게 아니었네요.”태준은 한참 동안 화면을 바라봤다.“그런데 왜 기억이 없지?”그때. 다음 영상이 자동으로 재생됐다. 이번에는 같은 날 밤이었다. 어린 태준이 병실 침대에 누워 있었다. 강정호가 옆에 앉아 있었다.“태준아.”“응.”“오늘 만난 아이 기억나?”“응.”“그 아이 이름은?”“차해린.”강정호의 얼굴이 굳었다.“앞으로 그 이름 기억하지 마.”어린 태준이 눈을 깜빡였다.“왜?”“위험한 아이야.”“해린이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1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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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화. 제가 변호할게요.

강정호의 옛 별장. 밤 10시 18분. 차가 멈추자 해린이 창밖을 바라봤다. 불이 하나도 켜져 있지 않았다.“너무 조용한데.”태준이 안전벨트를 풀었다.“그러니까 함정이겠죠.”“알면서 가는 거예요?”“당신도 같이 가잖아요.”해린이 그를 바라봤다.“나 때문에 가는 거예요?”“아니요.”태준이 차에서 내리며 말했다.“당신이 혼자 가는 걸 못 봐서.”해린이 피식 웃었다.“나 혼자였으면 이미 들어갔어요.”“알아요.”태준이 그녀를 바라봤다.“그래서 더 걱정되는 겁니다.”둘은 함께 별장 안으로 들어갔다. 문이 닫혔다. 철컥. 순간. 거실의 조명이 켜졌다. 소파 앞 테이블 위에 노트북 하나가 놓여 있었다. 그리고 화면에 문장이 떠 있었다.WELCOME, ATTORNEY CHA.해린이 화면을 바라보다가 웃었다.“귀엽네.”태준이 그녀를 바라봤다.“뭐가요?”“상대방이 내가 겁먹을 거라고 생각하는 것.”해린이 가방을 내려놓았다. 그리고 노트북 앞으로 걸어갔다.“그럼 기대에 맞춰줘야죠.”태준이 뒤에서 물었다.“뭘 하려고요?”해린이 노트북을 닫았다.“이 사람들이 원하는 건 내가 이성을 잃는 거예요.”“그래서?”“안 잃으면 되죠.”그녀가 휴대폰을 꺼냈다.“그리고 한 가지.”“네.”“이미 이 별장 들어오기 전에 위치 공유 걸어놨어요.”태준의 눈썹이 올라갔다.“언제?”“차 타기 전에.”“누구한테?”“검사한테.”태준이 웃었다.“역시.”해린이 그를 바라봤다.“왜요?”“당신은 협박을 받으면 도망가는 사람이 아니네요.”“전 변호사잖아요.”해린이 차갑게 웃었다.“협박받으면 증거부터 남겨요.”그때. 스피커에서 목소리가 흘러나왔다.“차해린 변호사.”낯선 남자의 목소리였다.“당신이 똑똑하다는 건 알고 있습니다.”해린은 태연하게 소파에 앉았다.“그런데 똑똑한 사람도 약점은 있죠.”“무슨 약점?”“강태준.”태준의 표정이 굳었다. 해린은 오히려 웃었다.“그게 약점이라고 생각해요?”“당신은 그를 지키려고 할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1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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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화. 마지막 이름

별장 안의 공기가 바뀌었다. 강정호의 영상이 끝난 뒤에도. 해린은 한동안 아무 말이 없었다. 그러다 테이블 위의 서류를 한 장씩 정리하기 시작했다.“일단 이 영상은 원본부터 확보해야 해요.”태준이 그녀를 바라봤다.“지금 그게 중요해요?”“중요하죠.”“방금 당신을 죽이려고 했다는 말이 나왔는데?”해린이 손을 멈췄다. 그리고 고개를 들었다.“그래서 더 침착해야죠.”태준이 낮게 웃었다.“정말 당신답네요.”“왜요?”“무서워하면서도 일을 먼저 하니까.”해린이 그를 바라봤다.“…무서워 하는 거 어떻게 알았어요?”“손.”태준이 그녀의 손끝을 바라봤다. 아주 미세하게 떨리고 있었다. 해린은 손을 숨기려 했다. 태준이 먼저 잡았다.“숨기지 마요.”“…….”“무서우면 무섭다고 해도 됩니다.”해린이 잠시 그를 바라봤다.“나 무서워요.”태준의 표정이 순간 굳었다.“많이?”“조금.”“거짓말.”“…조금보다 조금 더.”태준이 그녀의 손을 꽉 잡았다.“그럼 됐어요.”“뭐가요?”“내가 옆에 있으니까.”그 순간. 쨍그랑! 창문이 깨졌다. 해린이 놀라 뒤를 돌아봤다. 태준이 즉시 그녀를 끌어당겼다.“숙여요!”두 사람은 바닥으로 몸을 낮췄다. 깨진 유리 조각이 바닥에 쏟아졌다. 해린이 숨을 삼켰다.“태준 씨…”“괜찮아요?”“응.”태준은 해린의 얼굴과 팔을 빠르게 확인했다.“다친 데 없어요?”“없어요.”그제야 태준이 숨을 내쉬었다. 그리고 곧바로 창문 쪽을 바라봤다.“밖에 누가 있어.”해린이 몸을 일으키려 하자 태준이 그녀의 손목을 잡았다.“여기 있어요.”“나도 봐야—”“안 됩니다.”“태준아.”“이번에는 내 말 들어요.”그의 목소리가 처음으로 단호했다. 해린이 그를 바라봤다. 태준이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당신은 뒤에 있어요.”“같이 가요.”“싫습니다.”“왜?”태준이 그녀를 돌아봤다.“당신까지 위험해지는 건 싫어서.”그리고 문 쪽으로 걸어갔다. 그 순간. 복도 끝에서 발소리가 들렸다.하나.둘.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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