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ll Chapters of 조폭아저씨, 저 좀 납치해주세요.: Chapter 11 - Chapter 20

48 Chapters

11화. 기다리는 사람

다음 날. 윤서아는 평소보다 조금 일찍 학교에 도착했다. 어제 강태준이 했던 말이 머릿속에서 완전히 지워지지 않았다.'네가 나한테서 도망치려고 그놈 뒤에 숨는 거라면. 그건 용납 못 해.'이상한 말이었다. 한도윤에게 공부 도움을 받는 건 자신이 결정한 일이었다. 강태준에게 허락받을 이유도 없었다. 그런데도 그 말은 이상할 만큼 오래 남았다.서아는 책을 펼쳤다. 그리고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공부를 시작했다.“윤서아.”쉬는 시간. 고개를 들자 한도윤이 서 있었다.“어제 정리한 거 가져왔어.”그가 두꺼운 노트를 내밀었다.“수학이랑 영어. 네가 헷갈린다고 한 부분만 따로 정리했어.”서아가 노트를 받아 들었다.“고마워.”“오늘도 방과 후에 공부 할 거지?”“응.”“그럼 도서관에서 기다릴게.”도윤이 웃으며 돌아갔다. 서아는 노트를 내려다봤다. 깔끔하게 정리된 풀이와 설명. 확실히 도움이 됐다. 그래서 더 이상 생각하지 않기로 했다.그날 방과 후. 도서관. 서아는 문제를 풀고 있었다. 맞은편에 앉은 도윤이 그녀의 풀이를 확인했다.“여기.”도윤이 손가락으로 문제 하나를 가리켰다.“이건 공식 외우는 것보다 원리를 이해하면 쉬워.”“어떻게?”“봐.”도윤이 종이를 끌어당겼다. 그리고 차근차근 설명하기 시작했다. 서아는 집중해서 들었다. 그때였다. 도서관 입구 쪽이 조금 소란스러워졌다. 서아가 고개를 들었다. 그리고 그대로 굳었다. 검은 셔츠. 차가운 얼굴. 사람들이 무의식적으로 길을 비켜주는 압도적인 분위기. 강태준이었다.서아와 눈이 마주쳤다. 태준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저 그녀를 바라봤다. 그리고 옆에 앉아 있는 한도윤을 봤다. 도윤도 태준을 바라봤다.“…아저씨?”서아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태준은 천천히 다가왔다.“끝났어?”“아직요.”“가자.”짧은 말이었다. 서아가 시계를 봤다.“조금만 더 하고 가면 안 돼요?”태준의 시선이 도윤에게 향했다.“얼마나?”도윤이 대신 대답했다.“한 시간 정도면 될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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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화. 내가 네 보호자니까.

윤서아는 평소와 다름없이 학교에 있었다. 수업이 끝나자 한도윤이 다가왔다.“오늘도 도서관 갈 거지?”“응.”“어제 하던 문제, 내가 다른 풀이도 찾아봤어.”도윤이 노트를 내밀었다. 서아는 고개를 끄덕였다.“고마워.”“별거 아니야.”두 사람이 함께 교실을 나섰다. 복도 끝. 서아의 시선이 창밖으로 향했다. 학교 정문 앞에 익숙한 검은 차가 서 있었다. 그리고 그 옆에 서 있는 남자. 강태준이었다.서아의 걸음이 아주 잠깐 멈췄다. 도윤도 그녀의 시선을 따라갔다.“저 사람은 매일 데리러 오는 거야?”“요즘은.”도윤은 잠시 태준을 바라봤다. 그리고 조심스럽게 물었다.“혹시… 가족?”“아니.”서아의 대답은 짧았다.“그럼 무슨 사이야?”서아가 대답하려는 순간. 정문 쪽에 있던 태준이 이쪽을 바라봤다. 멀리서도 시선이 느껴졌다. 도윤이 다시 입을 열었다.“오늘은 나랑 공부하고 가는 거 말해도 돼?”“응.”“그럼 내가…”“윤서아.”낮은 목소리가 들렸다. 두 사람의 대화가 끊겼다. 태준이 천천히 다가오고 있었다. 학생들 사이를 지나오는 것뿐인데도 주변의 공기가 묘하게 조용해졌다. 태준은 서아 앞에 멈춰 섰다.“오늘은 안 가?”“도서관 가려고요.”“그래.”태준의 시선이 도윤에게 향했다.“한도윤.”도윤의 표정이 굳었다.“네.”“공부 잘한다며.”“…네.”“그럼 오늘도 잘 가르쳐.”말투는 평범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도윤은 쉽게 대답하지 못했다. 태준이 서아를 바라봤다.“끝나면 연락해.”“아저씨는 안 가요?”“갈 거야.”태준은 잠시 그녀를 바라보다가 돌아섰다. 그런데 몇 걸음 가지 않아 멈췄다.“윤서아.”“네?”“늦으면 데리러 간다.”“…알겠어요.”태준은 이번에도 더 말하지 않았다. 검은 차가 학교 앞을 떠났다. 도윤이 조용히 그 모습을 바라봤다.“저 사람 너한테 엄청 신경 쓰는 것 같은데.”서아는 대답하지 않았다.“혹시 너한테 무슨 일 있는 거야?”“없어.”“정말?”“응.”서아는 그대로 도서관으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1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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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화. 왜 기대고 싶게 만들어요.

다음 날 아침.“윤서아.”문밖에서 강태준의 목소리가 들렸다. 서아는 가방을 챙겨 방을 나왔다. 현관 앞에는 태준이 서 있었다. 검은 셔츠에 코트까지 걸친 모습이었다.“가요.”“응.”서아가 신발을 신었다. 평소라면 혼자 버스를 타고 학교에 갔겠지만, 오늘은 태준이 직접 데려다주겠다고 했다. 차에 올라탄 뒤에도 둘 사이에는 별다른 대화가 없었다.서아는 창밖을 바라봤다. 그러다 문득 말했다.“아저씨.”“왜.”“오늘 꼭 데려다줘야 해요?”“어제 내가 뭐라고 했는데.”“내일은 내가 데려다준다고.”“그래.”“그래서요?”태준이 운전하면서 말했다.“말했으면 지켜야지.”서아는 잠시 그를 바라봤다. 별것 아닌 말인데. 이상하게 마음에 남았다. 학교가 가까워질수록 차 안은 다시 조용해졌다. 정문 앞에 도착하자 서아가 안전벨트를 풀었다.“다녀올게요.”“윤서아.”“네?”“오늘도 늦어?”“도서관 갈 수도 있어요.”태준의 시선이 그녀에게 향했다.“끝나면 연락해.”“알겠어요.”서아가 차에서 내렸다. 몇 걸음 걷다가 뒤를 돌아봤다. 태준은 여전히 차 안에 있었다. 눈이 마주치자. 그가 짧게 턱을 까딱였다.“가.”서아도 작게 고개를 끄덕이고 학교 안으로 들어갔다. 태준은 그녀의 모습이 완전히 사라진 뒤에야 차를 출발시켰다.1교시 시작 전. 서아가 교실에 앉아 책을 펼치고 있는데 담임 선생님이 들어왔다. 그리고 그 뒤에 낯선 여자가 따라 들어왔다.“윤서아 학생.”서아가 고개를 들었다.“네.”“잠깐 나와줄래?”서아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복도로 나오자 여자가 서아를 가만히 바라봤다.“한도윤 학생과 친하죠?”“같이 공부하고 있어요.”“도윤이가 너한테 자료를 많이 줬던데.”서아의 표정이 굳었다.“자료요?”여자가 가방에서 두꺼운 파일을 꺼냈다.“이런 것들.”서아가 파일을 바라봤다. 익숙한 문제지였다. 도윤이 전에 건네줬던 자료들이었다.“네.”“이거 어디서 받은 건지 알아?”“도윤이한테요.”“그렇지.”여자가 한숨을 내쉬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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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화. 도움받는 것도 배워

“제가 왜… 기대고 싶게 만들어요.”서아의 목소리가 작게 떨렸다. 태준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저 그녀를 바라봤다. 울음을 참으려고 입술을 깨무는 모습. 고개를 숙인 채 눈물을 닦아내는 손. 평소 같았으면 어떻게든 감췄을 감정이었다. 그런데 오늘은 숨길 힘조차 남아 있지 않은 모양이었다. 태준은 한참 동안 서아를 바라보다가 낮게 말했다.“윤서아.”“…네.”“울어.”서아의 손이 멈췄다.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 태준은 여전히 담담한 얼굴이었다.“참지 말고.”“…”“울어도 돼.”서아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태준은 한 걸음 다가갔다. 하지만 손을 뻗지는 않았다. 그저 서아가 부담스럽지 않을 만큼의 거리를 남겨두고 멈춰 섰다.“울었다고 약해지는 거 아니야.”서아는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눈물이 다시 차올랐다. 태준은 그녀를 바라보며 천천히 말을 이었다.“그리고 나한테 기대는 것도.”잠시 말을 멈췄다.“네가 정해.”서아의 눈가가 젖었다.“내가 괜찮다고 해도 기대고 싶으면 기대고.”“…”“싫으면 안 기대면 돼.”태준의 목소리는 여전히 차분했다.“그건 네가 결정하는 거야.”서아는 고개를 숙였다. 손끝이 작게 떨렸다.“대신 이것만 알아둬.”“…뭔데요.”“내가 너 도와주는 거.”태준의 시선이 서아에게 닿았다.“네가 아무것도 못 해서 그러는 거 아니야.”서아가 천천히 그를 바라봤다.“너 혼자서도 잘하는 거 알아.”“….”“지금까지 모든 걸 혼자 해왔던 것도 알고.”그 말에 서아의 입술이 작게 떨렸다. 태준은 잠시 그녀를 바라보다가 낮게 덧붙였다.“그렇다고 앞으로도 계속 혼자 해야 하는 건 아니잖아.”서아의 눈에서 결국 눈물이 떨어졌다. 이번에는 닦지 않았다. 태준도 재촉하지 않았다. 한참 뒤, 주머니에서 손수건을 꺼내 그녀에게 내밀었다.“닦아.”서아는 한동안 손수건을 바라보다가 조심스럽게 받아 들었다.“…고마워요.”“그리고.”태준의 목소리가 조금 낮아졌다.“미안하다는 말 하지 마.”서아가 눈을 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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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화. 익숙함과 서운함

차가 집 앞에 멈췄다. 태준은 시동을 끄고 조수석을 바라봤다.“…….”윤서아는 잠들어 있었다. 고개를 창 쪽으로 기댄 채, 눈을 꼭 감고 있었다. 생각보다 깊이 잠든 모양이었다.태준은 손목시계를 확인했다. 일곱시가 조금 넘었다. 깨울까. 잠시 생각하다가. 그만뒀다.“…잘도 자네.”태준은 차에서 내리지 않았다. 그저 운전석에 앉은 채 기다렸다.십 분. 이십 분. 시간이 꽤 흘렀다. 서아는 한 번도 깨지 않았다. 태준은 휴대폰을 확인하다가 다시 그녀를 바라봤다.평소 학교에서는 늘 무표정한 얼굴이었다. 누가 말을 걸어도 짧게 대답하고. 혼자 있는 게 익숙한 사람처럼 행동했다. 그런데 잠들어 있을 때만큼은 달랐다. 열아홉 살. 그제야 나이에 맞는 얼굴이 보였다.태준은 시선을 거뒀다. 그러다 서아가 작게 몸을 움직였다. 머리가 창문에 부딪힐 뻔하자 태준이 손을 뻗어 막았다.툭.머리가 그의 손등에 살짝 닿았다. 태준은 그대로 손을 거두지 않았다. 잠시 뒤 서아가 다시 편안하게 잠들었다. 태준은 낮게 한숨을 내쉬었다.“…이러니까 깨우기도 애매하잖아.”그렇게 또 시간이 흘렀다. 결국 한참 뒤. 서아가 천천히 눈을 떴다.“…어?”태준과 눈이 마주쳤다.“일어났어?”서아는 멍한 얼굴로 주변을 둘러봤다.“도착했어요?”“한참 전에.”“…왜 안 깨웠어요?”“잘 자길래.”서아가 시계를 확인했다.“얼마나 잤어요?”“삼십 분쯤.”“왜 기다렸어요?”태준은 별일 아니라는 듯 대답했다.“깨우기 싫어서.”서아가 잠시 그를 바라봤다. 태준이 먼저 차 문을 열었다.“배고프다며.”“제가요?”“아까.”서아가 잠시 생각하다가 고개를 끄덕였다.“…배고파요.”태준이 차에서 내렸다.“가자.”서아도 따라 내렸다. 현관문을 열고 들어간 뒤. 태준이 물었다.“뭐 먹을래.”“아저씨 먹고 싶은 거요.”“나는 아무거나 상관 없으니까, 네가 골라.”서아는 잠시 고민했다.“고기.”“아까 내가 말한 거잖아.”“그러니까요.”태준이 피식 웃었다.“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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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화. 기다리는 사람

그날 이후, 서아는 자꾸 현관 쪽을 돌아보았다.처음에는 소리가 들릴 때마다 고개를 들었다. 도어락이 울리면 혹시나 싶었고, 복도에서 발소리가 들리면 괜히 귀를 기울였다.물론 그럴 때마다 돌아오는 건 기대와 다른 사람이거나, 아무도 없는 복도뿐이었다.우스운 일이었다. 애초에 이 집에 들어온 건 서아 쪽이었다.정확히는 제 발로 찾아가 납치해 달라고 부탁했다. 제 인생에 끼어든 골칫거리들을 피하고 싶었고, 당장은 미성년자기에 기댈 곳이 필요했다. 그래서 눈앞의 남자가 어떤 사람인지 제대로 알기도 전에 덜컥 손을 내밀었다.그런데 이제 와서 기다리는 사람이 생겼다. 그것도 하필이면 조폭 아저씨를.“…언제 오시지.”서아는 소파에 엎드린 채 중얼거렸다. 말을 내뱉고 나서야 입을 꾹 다물었다. 누가 들은 것도 아닌데 괜히 민망했다.기다리는 게 아니라, 그냥 궁금한 것뿐이었다.오늘은 몇 시에 오는지.저녁은 먹고 오는지.어제처럼 늦어지는 건 아닌지.그 정도는 함께 사는 사람에게 할 수 있는 평범한 걱정이었다. 적어도 서아는 그렇게 생각하기로 했다.휴대전화를 집어 들었다가 내려놓기를 몇 번이나 반복했다. 먼저 연락할까 싶다가도,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라 그만두었다.[아저씨, 언제 와요?]너무 기다린 사람 같았다.[아저씨, 오늘 늦어요?]이건 더했다.결국 서아는 휴대전화를 뒤집어 놓았다.그때였다. 현관에서 도어락이 울렸다. 서아의 고개가 번쩍 들렸다.철컥.문이 열리고 강태준이 들어섰다. 검은 재킷을 벗으며 거실을 살핀 그는 소파 위에 얌전히 앉아 있는 서아를 발견했다.“안 잤네.”“…네.”“뭐 했어?”“그냥 있었어요.”태준의 시선이 서아의 손에 머물렀다. 휴대전화가 꼭 쥐어져 있었다.“전화 기다렸어?”“아니거든요.”대답이 너무 빨랐다. 태준은 피식 웃었다.“내가 전화한다고 했나?”“그런 뜻 아니거든요.”“그래. 알았어.”그는 더 묻지 않고 안쪽으로 향했다. 서아는 어이가 없다는 듯 그의 뒷모습을 바라보았다.저렇게 그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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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화. 당연한 자리

오후 다섯 시 반.서아는 밥솥 뚜껑을 열어 밥을 확인했다. 김이 모락모락 올라왔다. 국은 약한 불에 끓고 있었고, 프라이팬 위에서는 마지막 반찬이 익어 가는 중이었다. 평소와 다를 것 없는 저녁 준비였다.이 집에 들어온 뒤로 식사를 차리는 건 자연스럽게 서아의 몫이 되었다. 태준은 밖에서 해결하고 들어오는 날도 있었지만, 집에서 먹는 날이면 대개 서아가 밥상을 준비했다.처음부터 대단한 이유가 있었던 건 아니었다. 어차피 자신도 먹어야 했고, 한 사람 몫을 더 준비하는 건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태준이 식사했는지 묻는 것도, 늦게 들어오는 날이면 국을 덮어 두는 것도 어느새 습관이 됐다.그런데 요즘은 그 습관이 조금 달라졌다.‘오늘은 몇 시에 오려나.’서아는 국자로 국을 한 번 저으며 시계를 확인했다.다섯 시 삼십이 분.어제 태준은 일찍 들어오겠다고 했다. 정확히 몇 시라고 정한 건 아니었지만, 서아는 괜히 평소보다 조금 일찍 저녁을 준비했다.혹시 일찍 돌아오면 따뜻할 때 같이 먹을 수 있으니까. 그 정도는 별것 아닌 일이었다. 적어도 서아는 그렇게 생각했다.휴대전화를 집어 들었다가 내려놓았다.먼저 연락할까.[아저씨, 언제 와요?]너무 기다리는 것 같았다.[저녁 먹고 와요?]이건 평소에도 자주 하던 질문이니 괜찮을 것 같았다. 서아는 메시지 창을 열었다가 결국 닫았다. 괜히 연락하지 않아도 곧 오겠지.그렇게 생각하면서도 현관 쪽으로 시선이 향하는 건 어쩔 수 없었다.***강태준은 오후 여섯 시가 조금 지나서야 사무실을 나섰다.예정했던 일은 이미 끝났지만, 처리해야 할 문제가 하나 더 생겼다. 부하 직원은 내일 아침까지 시간을 달라고 했고, 태준은 잠시 고민하다가 서류를 덮었다.“내일 해.”“괜찮으시겠습니까?”“오늘 할 만큼 했잖아.”직원이 조심스럽게 물었다.“저녁 약속 있으십니까?”태준은 대답 대신 시계를 확인했다.“집에 가야 해.”말을 마치고 나서야 자신이 꽤 자연스럽게 대답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집에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1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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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화. 손잡아도 돼요?

서아는 현관 앞에서 한참이나 신발을 고르고 있었다.평소라면 아무거나 신고 나갔을 텐데, 오늘은 이상하게 그러고 싶지 않았다. 흰 운동화를 꺼냈다가 넣고, 검은 단화를 신어 보았다가 다시 벗었다. 거울 앞에 서서 머리카락도 두 번이나 정리했다.그 모습을 지켜보던 강태준이 팔짱을 낀 채 물었다.“누구 만나러 가냐?”“네?”“신발만 십 분째 고르잖아.”“아니거든요.”서아가 황급히 운동화를 집어 들었다.“그냥 오랜만에 나가는 거니까요.”“누가 보면 데이트라도 하는 줄 알겠네.”태준은 별생각 없이 던진 말처럼 웃었지만, 서아는 손에 들고 있던 신발을 떨어뜨릴 뻔했다.데이트. 그 단어가 왜 이렇게 낯설게 들리는지 몰랐다.“아저씨랑 나가는 거잖아요.”말을 내뱉고 나서야 서아는 입을 다물었다. 태준의 웃음이 아주 조금 멎었다.“…그래. 나랑 나가는 거지.”그가 먼저 고개를 돌렸다. 서아는 그 짧은 침묵이 이상하게 마음에 걸렸다. 방금 자신이 무슨 말을 한 건지 뒤늦게 생각할수록 얼굴이 뜨거워졌다.태준은 아무렇지 않은 얼굴로 현관문을 열었다.“안 나와?”“가요!”서아는 서둘러 그의 뒤를 따라나섰다. 문이 닫히는 소리가 났다. 그날따라 그 소리가 꼭 둘만의 비밀이 시작되는 소리처럼 들렸다.오랜만의 외출은 생각보다 평범했다. 태준은 서아가 필요한 물건을 사는 데 함께 가 주기로 했다. 집에서 쓰는 세제며 샴푸 같은 생활용품이 떨어졌다는 이야기를 들은 탓이었다.그런데 막상 마트에 도착하자 서아는 물건을 고르기보다 자꾸 태준의 위치부터 확인했다. 조금 앞서 걸어가다가도 그가 따라오는지 돌아봤고, 진열대 앞에 멈춰 섰다가도 그가 옆에 없으면 괜히 주변을 살폈다.태준은 그 시선을 모를 리 없었다.“왜 자꾸 확인해?”“뭘요?”“내가 도망갈까 봐?”“아저씨가 무슨 애예요? 어디 가면 간다고 말도 안 하고.”“그러니까 신경 쓰인다는 거네.”“그런 뜻 아니거든요.”서아는 세제 통을 집어 들었다. 라벨을 읽는 척했지만 글자가 눈에 들어오지 않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1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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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화. 넘지 말아야 할 선

강태준은 그날 밤, 서아가 잠든 뒤에도 한참 동안 거실에 앉아 있었다. 불은 꺼져 있었고, 창밖으로는 늦은 밤의 불빛만 희미하게 번졌다.그는 손바닥을 내려다봤다. 조금 전까지 서아의 손이 닿아 있던 자리였다. 사람이 많아서 놓치면 곤란하다던 목소리. 손을 잡아도 되느냐고 묻는 듯 조심스럽게 내밀던 손끝. 그리고 손을 잡은 뒤에는 오히려 자신이 더 당황해 버렸던 얼굴까지.하나하나가 머릿속에서 좀처럼 사라지지 않았다.“미치겠네.”태준은 손으로 얼굴을 쓸어내렸다.고작 손을 한 번 잡았을 뿐이었다. 그런데 그 짧은 순간이 하루 종일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다. 서아가 먼저 손을 내밀었다는 사실이 기뻤고, 앞으로도 잡아도 된다고 말해 버린 자신이 우스웠다.다음에도. 그 말을 왜 했을까. 정말 다음에도 그러기를 바랐기 때문이다. 그 사실을 인정하는 순간, 태준의 표정이 굳었다.서아는 아직 미성년자였다. 그리고 자신은 서아를 돌봐 주기로 한 사람이었다. 처음부터 그랬다. 서아가 자신을 찾아와 납치해 달라고 했을 때도, 갈 곳이 마땅치 않은 서아를 집에 머물게 했을 때도, 태준이 해야 할 일은 명확했다.안전하게 지켜 주는 것. 밥을 챙기고, 필요한 것을 마련하고, 무슨 일이 생기면 자신이 책임지는 것. 그게 전부였다.그런데 언제부터인가 태준은 서아가 자신을 기다리는지 궁금해했고, 자신이 없는 동안 무엇을 했는지 알고 싶어 했다.오늘은 모르는 남자가 서아에게 말을 걸었다는 이유만으로 기분이 가라앉았다.서아가 자신의 손을 잡았을 때는, 그 손을 놓고 싶지 않았다.보호자가 가져서는 안 될 마음이라고 단정할 수는 없었다. 하지만 적어도 지금 자신의 감정을 서아에게 돌려주는 건 옳지 않았다.서아는 자신을 믿고 있었다.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 어떤 마음으로 자신을 바라보는지 의심하지 않고 있었다. 그 믿음만큼은 망치고 싶지 않았다.태준은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서아의 방 앞까지 갔다가 멈췄다. 문 너머에서는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잘 자고 있겠지. 그는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1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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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화. 한 걸음 더 가까이

아침 7시 32분.서아가 현관문을 열자 차가운 아침 공기가 뺨을 스쳤다. 아직 잠이 덜 깬 얼굴로 계단을 내려가던 서아는 건물 입구에 서 있는 사람을 발견하고 걸음을 멈췄다.“…한도윤?”도윤은 휴대전화를 확인하다가 고개를 들었다.“왔네?”“네가 왜 여기 있어?”“너 기다리려고.”너무 당연하다는 듯한 대답이었다. 서아는 어리둥절한 얼굴로 그를 바라봤다. 도윤은 그런 서아를 위아래로 훑어보더니 가방을 가리켰다.“그거 무겁지 않아?”“괜찮은데?”“줘 봐.”“아니, 괜찮다니까.”“알아. 그래도 내가 들어 주고 싶어서.”도윤은 억지로 가방을 빼앗지 않았다. 그저 손을 내민 채 서아의 대답을 기다렸다. 결국 서아가 가방을 건네자 도윤은 만족스럽게 웃었다.“잘했어.”“뭘 잘해?”“나한테 맡긴 거.”“…너 원래 이렇게 능글맞았어?”“너한테만 그런가 보지.”서아는 순간 할 말을 잃었다. 도윤은 아무렇지 않게 앞장서 걸었다. 마치 방금 한 말이 별다른 의미도 없는 것처럼.하지만 서아는 알고 있었다. 한도윤은 원래 이런 식으로 말하는 사람이 아니었다. 친절하기는 했지만, 상대가 오해할 만한 말은 되도록 피했다. 특히 한동안 자신과 관련된 소문으로 곤란을 겪은 뒤에는 더 조심스러웠다.그런 도윤이 요즘은 조금씩 달라지고 있었다. 서아가 알아차릴 수밖에 없을 만큼.“같이 가!”서아가 뒤늦게 걸음을 재촉하자 도윤은 속도를 늦췄다.“천천히 와. 안 뛰어도 돼.”“네가 먼저 가 놓고 뭘 천천히 와래.”“그럼 옆에 붙어 있어.”도윤이 웃으며 말했다.“내가 네 속도에 맞출게.”서아는 대꾸하지 못했다. 학교에 도착했을 때는 등교하는 학생들로 교문 앞이 붐비고 있었다. 도윤은 서아의 가방을 돌려주면서도 곧바로 자리를 뜨지 않았다.“오늘 공부 몇 시에 끝나?”“왜?”“같이 가려고.”“너 학원 있잖아.”“오늘은 조금 늦게 가도 돼.”“나 기다릴 필요 없어. 나 혼자 가면 되는데.”도윤이 서아를 바라보았다.“혼자 갈 수 있는 거 아는데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1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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