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ll Chapters of 조폭아저씨, 저 좀 납치해주세요.: Chapter 21 - Chapter 30

48 Chapters

21화. 질투는 조용하게 시작됐다

아침부터 비가 내렸다.서아는 현관 앞에서 우산을 펼쳐 보다가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일기예보를 제대로 확인하지 않은 탓에 작은 우산 하나만 챙겨 나온 참이었다.“왜. 우산이 작아?”뒤에서 들려온 목소리에 서아가 돌아봤다. 강태준이었다. 한 손에는 검은색 우산을 들고 있었고, 다른 손에는 차 키가 들려 있었다.“아, 아니에요. 이 정도면 괜찮아요.”“뭘 괜찮아. 어깨 다 젖겠네.”태준은 서아의 손에 들린 우산을 내려다보더니 자신의 우산을 펼쳤다.“이리 와. 데려다줄게.”“괜찮아요. 버스 타면 돼요.”“버스 정류장까지 가는 동안 다 젖겠다.”“그래도 아저씨 출근하셔야 하잖아요.”“나도 출근해. 방향이 조금 다를 뿐이지.”태준은 더 설명하지 않고 우산을 서아 쪽으로 기울였다.“늦겠다. 가자.”서아는 잠시 망설이다가 그의 옆에 섰다. 우산 아래는 생각보다 좁았다. 태준은 서아가 비를 맞지 않도록 우산을 기울였고, 그 탓에 자신의 한쪽 어깨는 금세 젖어 들었다.서아는 그걸 보고 걸음을 멈췄다.“아저씨, 어깨 젖으세요.”“괜찮아.”“우산 좀 가운데로 쓰세요.”“너나 똑바로 써.”“저는 안 젖었어요.”“그래. 그럼 됐어.”태준은 끝내 우산을 가운데로 옮기지 않았다.서아는 입술을 삐죽였다. 그러면서도 그의 젖은 어깨에서 시선을 떼지 못했다.어쩌면 자신은 이런 사소한 순간들 때문에 자꾸만 이 사람을 의식하게 되는지도 몰랐다. 말은 무심하게 하면서도 행동은 늘 자신을 먼저 챙기는 사람. 가까이 다가가면 한 걸음 물러서면서도, 정작 비를 맞게 내버려 두지는 못하는 사람.서아는 그 마음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지 아직 알지 못했다.학교 정문 앞에 도착했을 때였다.“서아야!”익숙한 목소리가 들렸다. 한도윤이었다. 우산을 쓴 채 교문 옆에 서 있던 도윤은 서아를 발견하자마자 다가왔다.“왜 이렇게 늦었어? 비 많이 오길래 걱정했잖아.”“아저씨가 데려다주셨어.”서아의 말에 도윤의 시선이 자연스럽게 옆으로 향했다. 검은 우산을 든 남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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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화. 이미 늦었다

비가 그친 건 밤 아홉 시가 조금 넘어서였다. 강태준은 거실 소파에 앉아 휴대전화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TV는 켜져 있었지만 화면 속에서 무슨 이야기가 흘러나오는지는 전혀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서아에게서 온 마지막 메시지는 한 시간 전이었다.[아저씨, 저 조금 늦을 것 같아요. 도윤이랑 저녁 먹고 들어갈게요.]태준은 그 메시지를 다시 읽었다. 도윤이랑 저녁. 그 애와 함께 밥을 먹고, 이야기를 나누고, 웃다가 돌아오겠지. 어쩌면 집에 돌아가는 길에도 우산을 함께 쓰고 있을 것이다.그런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었다. 우스운 일이었다. 서아가 친구와 저녁을 먹는 게 뭐가 문제란 말인가. 한도윤은 서아와 나이가 같은 학생이었고, 서아를 좋아한다고 솔직하게 말할 용기도 있는 아이였다.자신과는 달랐다. 태준은 손바닥으로 얼굴을 쓸어내렸다. 서아가 자신에게 기대기만 하는 것이 걱정스러웠다. 그래서 일부러 거리를 두었고, 또래 친구들과 어울리는 모습을 보며 잘된 일이라고 생각하려 했다.그런데 막상 서아가 자신이 아닌 다른 사람에게 웃어 주는 모습을 상상하자, 가슴 한구석이 못 견디게 불편했다.그는 그 감정에 이름을 붙이지 않으려 했다. 이름을 붙이는 순간, 자신이 어디까지 잘못된 생각을 하고 있는지 인정해야 할 것 같았으니까.현관문이 열린 건 아홉 시 사십 분이었다.“다녀왔습니다.”서아의 목소리가 들렸다. 태준은 소파에서 일어났다.“왜 이렇게 늦었어?”말이 생각보다 날카롭게 나갔다. 신발을 벗던 서아가 고개를 들었다.“죄송해요. 생각보다 이야기가 길어져서요.”“연락은 했고?”“네. 메시지 보냈잖아요.”“그 뒤로는?”서아가 잠시 입을 다물었다. 태준은 그제야 자신의 말투를 깨달았다. 걱정했다고 말하면 될 일을, 마치 무언가를 추궁하듯 묻고 있었다.“…미안. 비도 오고 해서 걱정했어.”그는 한 걸음 물러섰다.“저녁은 먹었어?”“네. 먹었어요.”서아는 가방을 내려놓으며 태준의 얼굴을 살폈다. 평소와 달랐다. 태준은 화를 내는 사람이 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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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화. 닿기 직전

그날은 유난히 조용한 밤이었다.서아는 식탁에 앉아 대학 입시 자료를 정리하고 있었다. 책상에 앉아 공부하다가도 막히는 부분이 있으면 거실로 나와 자료를 펼쳐 놓곤 했다. 태준이 퇴근하는 시간이면 자연스럽게 마주칠 수 있다는 것도, 어쩌면 그 이유 중 하나였다.“아저씨, 이것 좀 봐 주실 수 있어요?”주방에서 물을 마시던 태준이 고개를 돌렸다.“뭔데?”“여기요. 대학마다 전형이 달라서 뭐가 저한테 유리한 건지 잘 모르겠어요.”태준은 컵을 내려놓고 서아의 옆으로 다가갔다.“어디 보자.”그가 의자를 끌어 서아 옆에 앉았다. 서아는 기다렸다는 듯 자료를 펼쳐 놓았다. 도윤이 정리해 준 표에 자신이 따로 표시한 내용까지 빼곡했다.“이건 네가 표시한 거야?”“네. 도윤이가 알려 준 건데, 제가 다시 정리해 봤어요.”또 그 이름이었다. 태준은 잠시 표를 바라보다가 이내 시선을 거뒀다. 이제는 그 이름이 나올 때마다 마음이 불편해지는 자신이 지긋지긋했다.“잘했네. 이렇게 정리해 놓으니까 보기 편하다.”“정말요?”서아의 얼굴이 환해졌다.“네. 저번보다 훨씬 잘 정리한 것 같아요.”“그럼. 네가 노력한 거잖아.”태준은 무심코 서아의 머리 위에 손을 올렸다. 가볍게 쓰다듬으려던 손길이었다. 그런데 서아가 그 손을 피하지 않았다. 오히려 기분이 좋은 듯 눈을 가늘게 접고 웃었다.“아저씨가 칭찬해 주시니까 더 열심히 해야겠어요.”그 순간 태준의 손이 멈췄다. 별것 아닌 말이었다.서아는 예전에도 칭찬을 들으면 저렇게 웃었다. 자신이 무언가를 해냈을 때, 자신이 잘하고 있다는 말을 들었을 때, 그 누구보다 환하게 웃었다.그런데 오늘은 그 웃음이 이상할 만큼 가까이 느껴졌다.“왜요?”서아가 고개를 기울였다.“아저씨?”태준은 그제야 정신을 차린 사람처럼 손을 내렸다.“아니. 아무것도 아니야.”“왜 갑자기 그러세요?”“그냥.”태준은 의자를 밀고 일어났다.“물 좀 더 마시려고.”서아는 어리둥절한 얼굴로 그를 바라봤다. 태준은 주방으로 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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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화. 나는 너를 싫어할 수 없어

다음 날 아침, 서아는 태준과 눈을 마주치지 않았다. 정확히는 마주칠 기회가 없었다. 태준이 평소보다 일찍 집을 나섰기 때문이었다.식탁 위에는 아침 식사가 차려져 있었다. 태준이 좋아하는 국과 반찬, 그리고 물컵 옆에 가지런히 놓인 약 상자까지.그 아래에는 작은 메모가 한 장 놓여 있었다.[손 다치셨으니까 약 꼭 바르세요. 밥도 챙겨 드세요.]태준은 메모를 읽은 채 한동안 움직이지 못했다. 어젯밤 자신에게 상처받았으면서도 서아는 결국 이렇게 해 두었다.화를 내지도 않았다. 따져 묻지도 않았다. 그저 평소처럼 자신을 챙겨 주었다. 차라리 서아가 화를 냈다면 나았을까. 자신을 싫어한다고, 왜 자꾸 밀어내느냐고 소리쳤다면 차라리 마음이 편했을까.태준은 메모를 천천히 접었다.그럴 리 없었다. 서아가 자신을 미워하는 건 견딜 수 없었다. 그렇다고 서아가 자신을 계속 좋아하고 의지하는 모습을 보는 것도 이제는 두려웠다.그 마음이 어디까지 자신을 흔들어 놓을지, 더는 자신할 수 없었으니까.“…미치겠네.”태준은 결국 아침을 먹지 못한 채 집을 나섰다.***서아는 학교에서도 집중하지 못했다. 문제집을 펼쳐 놓고도 같은 문장을 세 번이나 읽었다. 선생님의 설명이 귀에 들어오지 않았고, 친구가 말을 걸어도 대답이 한 박자씩 늦었다.머릿속에는 자꾸만 어젯밤의 태준이 떠올랐다. 자신도 모르게 가까워졌던 순간. 갑자기 고개를 돌리던 얼굴. 급하게 집을 나갔다 돌아온 뒤, 자신을 걱정하지 말라고 했던 목소리.서아는 그때마다 가슴이 조여 왔다. 자신이 무슨 잘못을 했는지 알고 싶었다. 그런데 태준은 말해 주지 않았다. 잘못한 게 없다고 하면서도 자꾸만 거리를 두었다. 그게 가장 속상했다.“서아야.”옆자리의 도윤이 책상 위에 손을 올렸다.“너 오늘 무슨 일 있어?”서아가 고개를 들었다.“아니.”“아닌 얼굴이 아닌데.”“그냥 잠을 좀 못 잤어.”도윤은 서아의 얼굴을 가만히 바라봤다. 평소 같았으면 장난을 치거나 억지로라도 웃게 만들었을 것이다. 하지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1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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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화. 당신이 오지 않을까 봐

하루종일 비가 내렸다. 처음에는 창문에 점을 찍듯 떨어지던 빗방울이 오후가 되자 거세졌다. 하교 시간이 가까워질수록 하늘은 어두워졌고, 운동장에는 빗물이 얕은 웅덩이를 만들었다.서아는 교실 창가에 서서 휴대전화를 확인했다. 강태준에게서 온 메시지는 없었다. 평소 같으면 별일 없어도 먼저 연락하지 않는 사람이었다. 그런데 요즘은 그 무심함마저 다르게 느껴졌다.정말 바빠서 연락하지 않는 건지. 아니면 자신과 거리를 두기 위해 일부러 그러는 건지. 생각이 꼬리를 물 때마다 서아는 휴대전화를 내려놓았다.‘괜히 기대하지 말자.’그렇게 마음먹은 지 몇 분도 지나지 않아 다시 화면을 켰다.그때 한도윤이 교실 문을 두드렸다.“서아야. 안 가?”“응. 가야지.”“오늘 비 많이 온대. 우산 있어?”서아가 가방에서 접이식 우산을 꺼내 보였다.“있어.”“그럼 같이 가자. 입시 설명회 자료도 너한테 줄 거 있어.”도윤은 아무렇지 않게 웃었다. 서아가 대답을 망설이지 않도록, 그에게 기대지 않아도 괜찮도록 배려하는 웃음이었다.서아는 그 웃음이 고마웠다. 그리고 조금 미안했다.자신은 아직 누구에게도 솔직한 대답을 해 주지 못하고 있었으니까.“도윤아.”“응?”“너는 내가 답답하지 않아?”도윤이 걸음을 멈췄다.“뭐가?”“네 마음 알면서도 아무 말 못 해 주는 거.”잠시 빗소리만 두 사람 사이를 채웠다. 도윤은 서아의 얼굴을 가만히 바라보다가 어깨를 으쓱했다.“답답하지. 솔직히.”서아의 표정이 어두워지자 도윤이 덧붙였다.“근데 네가 나 좋아한다고 거짓말해 주는 것보단 낫잖아.”“…미안해.”“사과하지 마. 대신 하나만 약속해.”“뭔데?”“네가 누구를 좋아하든, 누구 때문에 힘들든, 혼자 다 참지는 마.”서아는 대답 대신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혼자 다 참지 말라는 말. 그 말을 가장 듣고 싶었던 사람은 따로 있었다. 학교 정문을 나선 지 십 분쯤 지났을 때였다. 서아의 휴대전화가 울렸다. 모르는 번호였다.“여보세요?”“혹시 강태준 씨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1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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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화. 닿아 버린 순간

태준은 다음 날 아침부터 서아를 피하지 않기로 했다. 정확히는, 피하지 않으려고 노력하기로 했다. 그 차이가 얼마나 큰지 그는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서아가 자신을 걱정하는 건 잘못이 아니었다. 자신 역시 서아를 아끼는 마음을 숨긴답시고 그녀에게 상처를 주어서는 안 됐다.그러나 마음을 다잡는 일과 실제로 그녀를 마주하는 일은 전혀 달랐다.아침 일곱 시 십 분. 현관문을 열자마자 강태준은 계단 아래에 서 있는 서아와 마주쳤다.“…뭐야. 왜 벌써 나와 있어?”서아가 고개를 들었다.“아저씨 기다렸어요.”“학교 가려면 아직 시간 남았잖아.”“오늘은 같이 가고 싶어서요.”너무 담담한 대답이었다. 강태준은 순간 할 말을 잃었다. 어젯밤까지도 서아의 눈물을 떠올리며 무슨 말을 해야 할지 고민했는데, 정작 당사자는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자신을 기다리고 있었다. 물론 눈가가 조금 부어 있다는 사실은 놓치지 않았다.“잠은 제대로 잤어?”“네.”“거짓말.”“…조금밖에 못 잤어요.”“왜.”서아는 잠시 망설였다. 그러고는 그의 오른팔을 바라보았다.“아저씨 팔 아프실까 봐요.”강태준은 짧게 한숨을 내쉬었다.“그거 때문에 잠도 못 잤냐?”“아저씨는요?”“뭐가.”“아저씨도 잠 못 주무셨어요?”강태준이 대답하지 않자 서아가 작게 웃었다.“거봐요. 아저씨도 못 주무셨잖아요.”“…말대꾸는.”“죄송해요.”말은 그렇게 하면서도 서아의 입가에는 웃음이 남아 있었다.오랜만에 보는 얼굴이었다. 강태준은 그 웃음을 조금 더 보고 싶었다. 그런 생각을 했다는 사실을 깨달은 순간, 그는 먼저 계단을 내려갔다.“가자. 늦겠다.”“네, 아저씨!”서아가 그 뒤를 따라왔다. 이번에는 강태준도 일부러 걸음을 늦췄다. 서아가 자신의 옆에 나란히 설 수 있도록.그 사소한 변화만으로도 서아의 얼굴은 한결 밝아졌다. 그리고 강태준은 그 모습을 보며, 자신이 얼마나 오랫동안 그녀의 웃음을 그리워했는지 깨닫고 말았다.사건은 저녁에 일어났다. 학교를 마친 서아가 집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1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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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화. 제가 아저씨를 좋아하는 게 싫으세요?

서아는 요즘 이상한 버릇이 생겼다. 강태준과 눈이 마주치면 먼저 시선을 피하는 것. 그런데 그가 시선을 거두면, 다시 그를 바라보는 것. 그리고 그가 자신을 불러 주면 아무렇지 않은 척 대답하면서도, 돌아서서는 혼자 심장이 뛰는 이유를 고민하는 것.문제는 강태준 역시 평소와 조금 달라졌다는 데 있었다. 예전에는 서아가 말을 걸면 대충 대답하고 지나가던 사람이었다. 요즘은 달랐다. 밥은 먹었는지, 학교에서는 별일 없었는지, 공부는 잘되는지. 사소한 질문이 늘었다.늦게 들어오는 날이면 어디쯤인지 연락하라고 했고, 서아가 기침이라도 하면 약부터 챙겼다. 그렇다고 예전처럼 무조건 피하지 않는 것도 아니었다.가까워졌다 싶으면 어느 순간 한 발 물러났다. 마치 자신이 얼마나 다가갔는지 뒤늦게 깨닫기라도 한 사람처럼. 그럴 때마다 서아의 마음은 조금씩 엉망이 되어 갔다. 차라리 예전처럼 차갑게 굴면 좋을 텐데. 그러면 기대하지 않을 수 있을 텐데. 왜 자꾸 기대하게 만드는 걸까. 왜 자꾸… 좋아하게 만드는 걸까.금요일 저녁이었다. 서아는 주방에서 저녁을 준비하고 있었다. 오늘 메뉴는 강태준이 좋아하는 매콤한 제육볶음과 된장찌개였다. 반찬까지 모두 차려 놓고 마지막으로 국을 데우려던 순간, 뒤에서 목소리가 들렸다.“또 내 거 해 놨네.”서아가 돌아보았다.“아저씨도 드실 거잖아요.”“그렇긴 한데.”강태준은 식탁 위를 내려다보았다.“오늘은 네가 좋아하는 것도 있네.”“네. 계란말이요.”“내가 좋아하는 건 아니고?”“아저씨도 좋아하시잖아요.”서아가 웃었다. 강태준은 그 웃음을 바라보다가 무심한 얼굴로 물었다.“학교는 어땠어?”“좋았어요.”“도윤이는?”서아의 젓가락이 잠시 멈췄다.“도윤이는 왜요?”“그냥. 요즘 자주 같이 다니는 것 같아서.”너무 태연한 목소리였다. 하지만 서아는 그 말에 숨어 있는 미묘한 변화를 놓치지 않았다.“네. 입시 준비 때문에요.”“그래.”“…신경 쓰이세요?”강태준이 고개를 들었다.“뭐가?”“제가 도윤이랑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1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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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8화. 서로에게 닿기까지

윤서아는 사흘 동안 강태준과 눈을 마주치지 않았다. 정확히는, 마주치지 않으려고 애썼다. 태준이 거실에 있으면 방에서 나오지 않았고, 부엌에서 인기척이 들리면 물을 마시러 가려던 것도 포기했다. 아침 식사는 평소보다 일찍 준비해 식탁에 올려놓고, 태준이 일어나기 전에 집을 나섰다.저녁에는 한도윤과 도서관에서 공부했다. 집에 돌아오면 태준이 없는 시간만 골라 씻고, 방문을 잠그고, 잠든 척했다.그렇게 하면 괜찮아질 줄 알았다.그날 밤, 충동적으로 그의 뺨에 입을 맞췄던 순간도. 그 직후 자신이 얼마나 놀라 도망쳤는지도. 태준이 자신을 어떤 눈으로 바라봤을지 상상하는 일도. 시간이 지나면 조금씩 무뎌질 줄 알았다.하지만 이상하게도 피하면 피할수록 더 선명해졌다. 입술에 남은 감각은 이미 사라진 지 오래였는데, 그날 태준의 얼굴이 굳어 있던 순간만큼은 머릿속에서 지워지지 않았다.‘싫어하셨으면 어떡하지.’그 생각이 들 때마다 서아는 이불을 머리끝까지 끌어올렸다.그렇다고 먼저 사과할 용기가 생기는 것도 아니었다.태준은 처음 하루 동안은 기다렸다. 서아가 부끄러워서 그러는 거라고 생각했다. 둘째 날에는 말을 걸 타이밍을 찾았다. 아침에 마주치면 밥은 먹었는지 물어보려고 했고, 저녁에 돌아오면 공부는 잘됐는지 물어보려고 했다. 하지만 서아는 매번 한발 빨랐다.“아저씨, 저 학교 다녀올게요.”“…그래.”문이 닫히고 나서야 태준은 식탁 위에 놓인 도시락을 발견했다. 평소 같으면 직접 건네주고 갔을 도시락이었다. 셋째 날에는 참을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저녁이 되어도 서아가 돌아오지 않았다. 평소보다 늦는다는 연락도 없었다. 휴대전화를 들었다 놓기를 몇 번. 결국 태준은 짧은 메시지를 보냈다.[어디야?]답장은 십 분 뒤에 왔다.[도서관이에요. 조금 늦을 것 같아요.]태준은 화면을 바라봤다. 평소 같으면 ‘알았어. 조심히 와.’라고 답했을 것이다. 그런데 그날은 손가락이 움직이지 않았다.서아가 자신을 피하는 이유를 알고 있었다. 그날 밤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1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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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9화. 그러니까, 얼른 커라

입술이 떨어진 뒤에도 두 사람은 한동안 움직이지 못했다. 윤서아는 눈을 동그랗게 뜬 채 강태준을 바라봤다. 강태준 역시 마찬가지였다.조직에서 수많은 사람을 상대하면서도 눈 하나 깜짝하지 않던 남자였다. 험악한 협박에도 눈썹 하나 까딱하지 않았고, 칼을 든 상대 앞에서도 여유롭게 담배를 꺼내 물던 사람이었다.그런데 지금은 서아의 얼굴을 제대로 바라보지도 못했다. 방금 자신이 무슨 짓을 했는지, 이제야 실감이 나기 시작한 탓이었다.“…….”“…….”그저 정적이 흘렀다. 긴 정적 끝에 서아가 먼저 입을 열었다.“아저씨.”“어.”“저희 방금……”“알아.”대답이 너무 빨랐다. 서아가 눈을 깜빡였다. 태준은 헛기침을 하더니 괜히 소매를 걷어 올렸다. 이미 몇 번이나 걷어 올렸던 소매였다.“그, 그러니까….”“네.”“아까는 내가 좀….”“좀?”“…아니다.”태준은 끝내 입을 다물었다. 차라리 조직원 백 명을 앞에 두고 협상하는 게 나았다. 이건 도무지 어떻게 수습해야 할지 감이 잡히지 않았다.더 큰 문제는 서아가 자신을 빤히 바라보고 있다는 사실이었다. 눈을 피하면 따라왔다. 고개를 돌리면 몸까지 방향을 바꿨다.마치 오늘 밤 무슨 일이 있어도 자신에게서 답을 받아 내겠다는 얼굴이었다.“아저씨.”“왜.”“귀가 빨개요.”태준의 손이 멈췄다.“안 빨개.”“빨간데요?”“원래 이래.”“아저씨 귀가 원래 이렇게 빨갰어요?”“…윤서아.”“네.”“그만 놀려.”서아는 결국 웃음을 터뜨렸다. 조금 전까지 눈물을 흘리던 얼굴이었다. 그런데 지금은 입가를 가리면서도 웃음을 참지 못했다.태준은 그 모습을 보다가 저도 모르게 입꼬리를 올렸다. 그러다 서아와 눈이 마주치자마자 다시 표정을 굳혔다.너무 티가 났다. 자신이 얼마나 안도했는지. 서아가 여전히 웃어 준다는 사실에 얼마나 마음이 놓였는지. 그런데 서아는 놓아줄 생각이 없었다.“아저씨.”“또 왜.”“우리 이제 무슨 사이예요?”태준의 표정이 그대로 굳었다.“…뭐?”“우리요. 이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1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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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화. 아저씨는 어떤 여자가 좋아요?

첫 입맞춤 이후 사흘이 지났다.그리고 서아는 조금 억울했다. 분명 그날 밤, 태준은 먼저 자신을 붙잡았다. 떨리는 손으로 얼굴을 감싸고, 평소답지 않게 당황한 얼굴로 자신을 바라봤다. 심지어 귀까지 새빨개져서는 얼른 어른이 되라는 말까지 했다.그런데.“윤서아, 밥 먹어.”“네.”“학교 늦겠다. 빨리 먹어.”“네에.”“오늘 늦게 와?”“아마요.”“알았어. 조심히 다녀와.”…이게 끝이었다.입맞춤 전과 다를 게 없었다. 아니, 오히려 더했다. 태준은 그날 이후 서아를 대할 때마다 묘하게 조심스러워졌다. 예전처럼 자연스럽게 머리를 쓰다듬으려다가도 손을 거두었고, 어깨에 손을 얹으려다가도 괜히 물을 마셨다.그렇다고 다정하지 않은 건 아니었다. 서아가 좋아하는 간식은 여전히 냉장고에 채워져 있었고, 늦게 귀가하는 날이면 현관 불이 켜져 있었다. 아침에 날씨가 추우면 말없이 목도리를 건네기도 했다.문제는 그 모든 행동이 너무나 자연스럽다는 것이었다. 마치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나만 그날을 생각하는 건가?'서아는 식탁에 앉아 숟가락을 휘휘 저었다. 억울했다. 정말 억울했다. 자신은 그날 이후 태준의 얼굴만 봐도 심장이 뛰어서 큰일인데, 정작 당사자는 평소와 다를 바가 없었다.물론 아주 가끔은 달랐다.“윤서아.”“네?”“입가에 묻었어.”태준이 손을 뻗었다. 서아는 순간적으로 굳었다. 엄지손가락이 입가를 가볍게 훑었다. 태준은 묻은 밥풀을 떼어 내고는 아무렇지 않게 본인 입에 넣었다.“다 큰 애가 밥을 이렇게 흘리고 먹냐.”“…아저씨.”“왜.”“제가 애예요?”“그럼 어른이냐?”“저 곧 스무 살이거든요?”“몇 달 남았는데.”“아, 진짜!”서아가 발끈하자 태준은 낮게 웃었다. 그 웃음소리에 서아의 얼굴이 순식간에 달아올랐다.문제는 바로 이런 순간이었다. 아무렇지 않게 다정하다가, 아무렇지 않게 웃어 주다가, 아무렇지 않게 사람 심장을 뒤집어 놓는 것.강태준은 정말 나쁜 남자였다. 본인은 그 사실을 전혀 모르는 것 같았지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1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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