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ll Chapters of 조폭아저씨, 저 좀 납치해주세요.: Chapter 31 - Chapter 40

48 Chapters

31화. 질투 하세요?

서아는 아침부터 고민에 빠져 있었다. 정확히 말하면, 한도윤에게서 온 메시지 때문이었다.[오늘 학원 끝나고 시간 돼?][왜?][너랑 가고 싶은 곳이 있어.][어딘데?][가 보면 알아. 싫으면 안 가도 되고.]서아는 화면을 한참 들여다보다가 짧게 답장을 보냈다.[알겠어. 끝나고 보자.]약속을 잡고 나니 이상하게 마음이 불편했다. 도윤과 함께 시간을 보내는 게 싫은 건 아니었다. 오히려 편하고 즐거웠다. 자신을 좋아한다고 솔직하게 말해 주는 것도 고마웠다.그런데도 자꾸 다른 사람의 얼굴이 떠올랐다. 강태준. 그 사람은 지금 뭘 하고 있을까. 아침에 출근하면서 봤을 때는 평소와 다를 게 없었다. 식탁에 앉아 밥을 먹고, 서아가 건넨 물을 마시고, 현관 앞에서 짧게 당부했다.“늦으면 연락해.”“네, 아저씨.”“모르는 사람이랑 따라다니지 말고.”“저 애 아니거든요?”“내 눈엔 아직 애야.”그 말에 서아는 괜히 입술을 삐죽였다. 이럴 때 보면 정말 아무 일도 없었던 사람 같았다. 분명 입을 맞췄는데. 분명 서로의 마음을 의식하게 되었는데. 왜 아저씨는 여전히 자신을 어린애 취급하는 걸까.‘…내가 먼저 물어볼까?’서아는 고개를 세차게 저었다. 아니었다. 먼저 물어보면 또 얼버무릴 게 뻔했다. 그렇다면 조금 다른 방법을 써 보는 건 어떨까.아저씨가 자신을 어떻게 생각하는지, 아주 조금이라도 알아낼 수 있는 방법. 서아의 눈이 가늘어졌다.“오늘은 일찍 들어오겠네.”저녁 식사를 준비하던 태준이 식탁 위에 놓인 시계를 보며 말했다. 평소라면 이 시간에 서아가 집에 돌아와 있었을 터였다. 그런데 오늘은 학원이 끝나도 한참 늦을 예정이었다.“네. 친구랑 약속이 있어요.”“친구?”태준의 손이 잠깐 멈췄다.“한도윤?”서아는 놀란 눈으로 그를 바라봤다.“어떻게 아셨어요?”“네가 만나는 친구가 걔밖에 더 있냐.”태준은 별일 아니라는 듯 다시 도마 위의 채소를 썰었다. 그러나 칼끝이 도마에 닿는 소리가 평소보다 조금 거칠었다. 서아는 그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1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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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2화. 특별한 사람

서아는 다음 날 아침부터 강태준을 의식했다. 정확히는, 어젯밤 그가 했던 말을 자꾸 떠올렸다. ‘네가 다른 남자를 좋아한다고 생각하면… 기분이 좋지는 않아.’그 말이 얼마나 사람을 들뜨게 하는지, 태준은 아마 모를 것이다. 아니, 어쩌면 알면서도 모르는 척하는 걸지도 몰랐다.“아저씨.”“왜.”“어제 잘 주무셨어요?”“그럭저럭.”“저는 잘 잤어요.”“그래.”“꿈도 꿨어요.”태준이 밥을 먹다 말고 서아를 바라봤다.“무슨 꿈.”서아는 기다렸다는 듯 웃었다.“아저씨 꿈이요.”태준의 젓가락이 허공에서 멈췄다.“…헛소리 그만하고 밥이나 먹어.”“왜요? 궁금하지 않으세요?”“하나도.”“거짓말.”“윤서아.”“네, 강태준 아저씨.”서아는 얌전히 밥을 한 숟가락 떠먹었다. 그러면서도 입가에 걸린 웃음은 감추지 못했다. 태준은 그런 서아를 한참 바라보다가 고개를 돌렸다.요즘 들어 이 집에서 가장 위험한 건 밖에서 찾아오는 적도, 자신을 노리는 조직도 아니었다. 아침마다 식탁에 앉아 아무렇지도 않게 사람을 흔들어 놓는 이 여자애였다.“오늘은 학원 끝나고 바로 와?”“아니요. 도윤이랑 약속 있어요.”태준의 표정이 미묘하게 굳었다. 서아는 일부러 모르는 척 물었다.“왜요?”“아무 말도 안 했다.”“표정이 별로 안 좋으신데요?”“원래 이 얼굴이야.”“아저씨, 거울 좀 보세요. 지금 완전 질투하는 사람 같아요.”“밥 먹어.”“네.”서아는 웃음을 참으며 고개를 숙였다. 그러다 문득 생각난 듯 덧붙였다.“그런데 아저씨.”“또 왜.”“오늘은 제가 조금 늦어도 데리러 오지 마세요.”태준이 고개를 들었다.“왜?”“도윤이가 집 앞까지 데려다준대요.”이번에는 태준이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서아는 그 침묵이 조금 신경 쓰였다. 장난으로 꺼낸 말이었지만, 태준의 얼굴에서 웃음기가 완전히 사라진 것을 보자 괜히 마음이 조급해졌다.“…아저씨?”“네가 편한 대로 해.”태준은 자리에서 일어나 그릇을 싱크대에 가져다 놓았다.“대신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1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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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3화. 강태준의 약점

강태준에게 약점이 생겼다. 처음 그 소문을 들었을 때, 상대 조직의 우두머리인 장기석은 코웃음을 쳤다.강태준. 업계에서 그 이름을 모르는 사람은 드물었다. 한 번 물면 끝까지 놓지 않는 집요함, 적에게는 자비가 없으면서도 자기 사람에게는 유난히 책임을 지는 성격. 그 두 가지가 지금의 태준을 만들었다. 그런 남자가 약점이라니.“확실해?”기석이 담배를 재떨이에 비벼 껐다. 맞은편에 앉은 부하가 고개를 끄덕였다.“예. 최근에 한 여자애를 데리고 삽니다. 학교도 직접 알아봤고, 귀가 시간까지 챙긴답니다.”“여자?”“나이는 열아홉이라고 합니다. 윤서아. 부모 쪽 사정이 복잡한 모양인데, 자세한 건 더 확인 중입니다.”기석의 입가에 서늘한 미소가 번졌다.“강태준이 직접 챙긴다?”“예. 평소에는 부하들한테 맡기는 일도 그 애 일만큼은 본인이 움직인다고 합니다.”기석은 잠시 생각에 잠겼다. 태준은 빈틈을 잘 보이지 않는 인간이었다. 돈으로도, 협박으로도, 사람을 이용한 수로도 쉽게 무너지지 않았다. 그런데 사람은 누구나 지키고 싶은 것이 생기는 순간 달라진다.상대가 칼을 들이대도 눈 하나 깜빡하지 않던 인간이, 지켜야 할 사람이 생기면 칼날 앞에 몸을 던지기도 하는 법이었다.“재밌네.”기석이 자리에서 일어났다.“그년 데려와.”부하가 잠시 망설였다.“직접 건드리면 강태준이 가만있지 않을 겁니다.”“그러라고 하는 거야.”기석이 웃었다.“그놈이 얼마나 대단한 인간인지, 그년 앞에서도 한번 보자고.”그는 창밖을 바라보며 덧붙였다.“강태준이 자기 목숨보다 아끼는 게 생겼다면, 이제부터 싸움은 훨씬 쉬워지겠네.”***하교 시간이 가까워지자 서아는 휴대전화를 확인했다. 평소라면 이 시간쯤 태준에게서 메시지가 왔을 것이다.수업 끝났냐.오늘은 바로 와.늦으면 연락해.그런데 오늘은 아무런 연락도 없었다. 서아는 책상 위에 펼쳐 둔 문제집을 정리하며 메시지를 보냈다.[아저씨, 오늘 저 데리러 오세요?]답장은 오지 않았다. 서아는 잠깐 입술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1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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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4화. 눈 좀 떠 봐

“내가 반드시 데리고 나갈 테니까.”강태준의 말이 끝나자 창고 안에 기묘한 정적이 내려앉았다. 장기석은 그를 바라보다가 천천히 웃었다.“감동적인 말은 여기까지 하자고.”기석이 손을 들어 올렸다.“저놈 무릎 꿇려.”동시에 사방에서 남자들이 달려들었다. 가장 먼저 움직인 것은 태준이었다. 앞에서 달려드는 남자의 주먹을 고개를 틀어 피한 태준이 팔을 잡아 균형을 무너뜨렸다. 둔탁한 소리와 함께 남자가 바닥에 쓰러졌다. 곧바로 옆에서 다른 남자가 달려들었지만, 태준은 한 걸음 물러서며 공격을 흘려보낸 뒤 상대를 밀어냈다. 망설임이 없었다. 불필요한 동작도 없었다. 수많은 싸움을 겪어 온 사람 특유의 냉정함이 몸짓 하나하나에 배어 있었다.“저놈 잡아!”고함이 터졌다. 세 명이 동시에 달려들었다. 태준은 뒤로 물러나지 않았다. 그는 가장 가까이 있는 남자의 공격을 피하고, 이어지는 움직임으로 두 번째 남자를 밀어냈다. 세 번째 남자가 빈틈을 노렸지만 태준은 몸을 돌려 그를 제압했다. 순식간이었다.서아는 눈앞에서 벌어지는 광경을 제대로 이해할 수 없었다.아저씨가 싸우는 모습은 처음이었다. 평소에도 태준이 얼마나 위험한 세계에서 살아왔는지 어렴풋이 알고 있었다. 하지만 지금처럼 수십 명에게 둘러싸인 채 홀로 맞서는 모습을 본 적은 없었다.무서웠다. 태준이 무서운 것이 아니었다. 그가 다칠까 봐. 자신을 지키려고 저렇게 싸우고 있다는 사실이 무서웠다.“아저씨……!”서아가 울먹이며 외쳤다. 태준은 잠깐 그녀를 바라봤다. 그리고 눈짓 하나를 보냈다. 괜찮다는 듯. 걱정하지 말라는 듯. 그 짧은 눈짓에 서아는 입술을 깨물었다.하지만 태준의 얼굴에는 웃음기가 없었다. 그는 다시 달려드는 남자들을 향해 몸을 돌렸다.한 명이 쓰러지고, 또 한 명이 물러났다. 태준은 상대가 수적으로 우세하다는 사실을 알고도 밀리지 않았다. 오히려 시간이 흐를수록 창고 안의 분위기가 바뀌기 시작했다.처음에는 여유롭던 남자들의 얼굴에 당혹감이 번졌다. 한 사람을 제압하기 위해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1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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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5화. 제발 살려 주세요

품 안으로 무너져 내린 윤서아의 몸은 믿을 수 없을 만큼 가벼웠다. 조금 전까지만 해도 자신을 향해 달려오던 아이가, 자신을 지키겠다고 칼날 앞에 몸을 던진 아이가, 이제는 눈을 감은 채 움직이지 않았다.태준은 떨리는 손으로 서아의 뺨을 감쌌다.“야. 윤서아. 눈 떠.”대답이 없었다. 손바닥에 묻어나는 피가 너무 뜨거웠다. 태준은 자신이 무슨 말을 하고 있는지도 모른 채 서아를 끌어안았다. 조금 전까지 수십 명의 사내를 상대하면서도 눈 하나 깜빡하지 않았던 남자였다. 칼을 든 상대 앞에서도 한 치의 망설임이 없었던 남자였다.그런 그가 지금은 서아의 이름만 반복해서 부르고 있었다.태준은 서아의 상처를 누르면서 고개를 숙였다. 피가 손가락 사이로 번져 나왔다. 어떻게 해야 하는지 알고 싶었지만, 머릿속이 새하얗게 비어 버렸다.‘안 돼.’그 생각만이 머릿속을 가득 채웠다.서아가 자신을 바라보며 웃던 얼굴이 떠올랐다. 밥을 차려 놓고 자신이 먹을 때까지 기다리던 모습. 아무렇지도 않은 척 말을 걸다가도 자신이 차갑게 대하면 금세 시무룩해지던 표정. 그리고 얼마 전, 자신의 뺨에 입을 맞추고 놀라 도망치던 작은 뒷모습까지. 그 모든 순간이 한꺼번에 밀려왔다.“제발….”태준은 처음으로 자신이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사람이라는 사실을 깨달았다.돈도, 권력도, 사람도 있었다. 자신을 위해서라면 목숨까지 내놓을 부하들도 있었다. 그런데 정작 지키고 싶은 단 한 사람 앞에서, 그는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아저씨가 잘못했어.”서아의 이마에 제 이마를 댄 태준이 무너지는 목소리로 속삭였다.“그러니까 일어나. 내가 다 잘못했으니까…… 제발.”구급차가 도착하기까지의 시간은 지독하게 길었다. 사이렌 소리가 들리고 의료진이 들것을 펼쳤을 때도 태준은 서아의 손을 놓지 못했다. 의료진이 상처를 확인하고 응급 처치를 시작하는 동안에도 그의 손은 서아의 손가락을 단단히 감싸고 있었다.“보호자분, 잠시 손을 놓아 주십시오. 환자를 옮겨야 합니다.”“같이 가.”“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1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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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6화. 제 목숨을 걸고 지키겠습니다

서아가 눈을 뜬 뒤로 태준은 단 한순간도 그녀의 곁을 떠나지 않았다. 잠깐 물을 마시러 갈 때조차 부하에게 병실 앞을 지키게 했고, 간호사가 서아의 상태를 확인할 때면 침대 옆에서 한 걸음 물러나 초조하게 기다렸다. 서아가 눈을 감고 잠들면 혹시나 다시 깨어나지 않을까 숨소리를 확인했고, 그녀가 몸을 조금만 움직여도 곧바로 고개를 들었다.그렇게 며칠이 흘렀다.“아저씨.”“응?”“저 물 좀 마시고 싶은데요.”“잠깐만.”태준은 곧바로 컵을 들었다. 빨대를 꽂아 서아의 입가에 가져다주고, 그녀가 물을 마시는 동안에도 혹시 불편하지 않은지 세심하게 살폈다. 서아는 물을 다 마신 뒤 그를 빤히 바라봤다.“아저씨.”“왜.”“저 이제 괜찮다니까요.”“알아.”“그런데 왜 자꾸 그렇게 봐요?”태준은 대답하지 않았다. 괜찮다는 말을 믿고 싶었다. 서아가 다시 웃고, 투정을 부리고, 자신을 아저씨라고 부르는 평범한 일상이 돌아왔다는 사실에 안도하고 싶었다.하지만 눈을 감은 채 피투성이가 되어 자신의 품에 쓰러졌던 서아의 모습이 머릿속에서 지워지지 않았다.조금만 늦었더라면. 칼날이 조금만 더 깊이 들어갔더라면. 그녀는 지금 이곳에 없었을지도 모른다. 태준은 서아의 이불을 끌어 올려 주었다.“그냥 보고 싶어서.”“…네?”“보면 안 되냐?”서아의 얼굴이 조금 붉어졌다.“아니, 그건 아닌데…….”“그럼 됐어.”태준은 아무렇지 않은 척 의자에 앉았다. 그러나 서아는 보았다. 그가 자신을 바라볼 때마다 아주 잠깐씩 흔들리는 눈빛을.마치 눈앞에 있는 자신이 언제라도 사라질 수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처럼. 서아는 조심스럽게 손을 뻗어 태준의 소매를 잡았다.“아저씨.”“응.”“저 이제 안 사라져요.”태준의 손이 멈췄다.“…….”“그러니까 너무 걱정하지 마세요.”서아는 애써 웃었다.“앞으로는 아저씨 대신 제가 다치지도 않을게요. 약속할게요.”그 말을 들은 태준은 한동안 아무런 대답도 하지 못했다. 대신 그녀의 머리 위에 손을 얹었다가, 이내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1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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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7화. 나의 아저씨

병실로 돌아왔을 때 서아는 잠들어 있었다.태준은 문 앞에서 한동안 움직이지 못했다. 창가로 기울어진 햇빛이 침대 위에 내려앉아 있었다. 서아는 이불을 턱 밑까지 끌어 올린 채 조용히 숨을 쉬고 있었다.태준은 천천히 다가가 의자에 앉았다. 잠든 얼굴을 바라보자, 애써 다잡았던 마음이 다시 흔들렸다.“……미안하다.”잠든 서아에게는 들리지 않을 작은 목소리였다.“조금만 더 일찍 만났더라면 좋았을 텐데.”그랬다면 자신은 다른 삶을 살았을까. 조직에 발을 들이지 않았다면. 누군가를 해치고, 누군가에게 쫓기고, 언제든 목숨을 잃을 수 있는 세계에 몸을 담지 않았다면.서아를 처음 만났을 때부터 지금까지, 그는 자신이 가진 것 중 무엇을 주어야 그녀를 행복하게 만들 수 있을지 고민했다.그런데 이제야 알 것 같았다. 서아에게 필요한 것은 돈도, 보호도, 거창한 약속도 아니었다.그저 평범한 하루였다. 아침에 눈을 뜨면 집에 있는 자신. 저녁이면 함께 밥을 먹을 수 있는 자신. 무슨 일이 생겨도 돌아갈 수 있는 집에 있는 자신.그런데 자신은 그 평범한 하루조차 제대로 지켜 주지 못했다. 태준은 손을 뻗어 서아의 머리카락을 조심스럽게 정리했다.“집에 가자, 서아야.”그가 낮게 속삭였다.“집에 가서…… 푹 쉬자.”***그날 이후 태준은 서아에게 평소보다 더 다정해졌다. 아침이면 먼저 일어나 물을 준비했고, 서아가 눈을 뜨면 가장 먼저 곁에 다가갔다. 식사 시간에는 그녀가 먹는 모습을 지켜보다가 자신도 숟가락을 들었다.서아가 심심하다고 하면 휴대전화를 건네주었고, 몸이 불편하다고 하면 간호사를 불렀다. 밤에는 그녀가 잠들 때까지 옆에 앉아 있었다.서아는 처음에는 그저 태준이 자신을 걱정한다고 생각했다.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이상한 기분이 들었다.태준은 자꾸만 자신을 바라봤다. 마치 오래도록 눈에 담아 두려는 사람처럼.“아저씨.”“응.”“왜 그렇게 봐요?”“예뻐서.”서아는 눈을 크게 떴다.“……네?”태준 역시 잠시 멈칫했다. 평소라면 농담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1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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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8화. 5년만의 재회

5년이라는 시간은 생각보다 잔인했다. 잊기에는 너무 길었고, 잊지 않기에는 더없이 충분한 시간이었다.윤서아는 그 잔혹한 시간을 견뎌 냈다. 강태준이 사라진 날부터 지금까지, 단 하루도 그를 완전히 잊은 적은 없었다.그렇다고 매일 울기만 한 것도 아니었다. 처음 몇 달은 휴대전화가 울릴 때마다 심장이 내려앉았고, 모르는 번호로 전화가 걸려 오면 혹시나 하는 마음에 황급히 받았다. 집 앞에서 낯익은 발소리가 들리면 현관문을 열어 확인하기도 했다.하지만 돌아오는 것은 언제나 실망뿐이었다. 그렇게 한 달이 지나고, 반년이 지나고, 일 년이 흘렀다.태준은 돌아오지 않았다.그가 남긴 전화번호는 여전히 없는 번호였고, 조직의 부하들은 더 이상 서아에게 그에 관한 이야기를 해 주지 않았다. 몇 번이고 물어봤지만 돌아오는 대답은 같았다.모른다는 말. 혹은, 조금만 더 기다려 달라는 말.그래서 서아는 기다렸다. 태준이 금방 돌아오겠다고 했으니까. 그 말을 믿고 싶었으니까.하지만 5년이 흐른 지금까지도 강태준은 나타나지 않았다. 그리고 오늘. 윤서아는 그가 없는 집을 떠나기로 했다.“…다 챙겼나.”서아는 텅 빈 방을 둘러보았다. 캐리어 하나, 커다란 상자 두 개, 그리고 오래된 가방 하나. 그게 전부였다.대학에 입학하고 졸업하기까지, 그리고 취업을 준비하는 동안에도 이 집은 늘 서아의 집이었다. 처음에는 태준이 돌아올 때까지 잠시 머무는 곳이라고 생각했다.그런데 어느새 5년이 흘렀다. 한국대학교에 입학했고, 밤을 새워 공부했고, 수석으로 졸업장을 받았다. 남들처럼 취업 준비를 하고 면접을 보았다. 몇 번의 탈락 끝에 이름만 대면 누구나 알 만한 대기업에 합격했다.그 모든 과정에서 서아는 혼자였다.물론 곁에 아무도 없었던 것은 아니다. 대학에서 친구들을 사귀었고, 취업 준비를 함께한 동기들도 있었다. 힘든 날이면 함께 술 대신 커피를 마시며 밤새 이야기를 나누기도 했다.그런데 이상하게도 중요한 순간마다 가장 먼저 떠오르는 얼굴은 늘 같았다.합격 통지를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1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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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9화. 모르는 사람처럼

회의실 안은 조용했다.프로젝트 담당자들의 인사가 이어지고, 노트북 화면에는 협업 일정과 사업 계획서가 차례로 띄워졌다. 누군가는 시장 분석 자료를 설명했고, 누군가는 향후 일정에 관해 질문했다.평범한 업무 회의였다. 적어도 다른 사람들에게는 그랬다.“윤서아 씨.”제 이름이 불리자 서아는 고개를 들었다.“네, 대표님.”태준은 잠시 말을 멈췄다. 5년 전이었다면, 서아가 이렇게 자신을 바라보는 일은 상상조차 할 수 없었다. 졸린 눈을 비비며 아침밥을 먹던 아이. 별것 아닌 일에도 웃으며 그의 뒤를 졸졸 따라다니던 아이. 다쳤다는 소식에 세상이 무너진 것처럼 달려갔던 아이. 그 아이가 지금은 정돈된 셔츠에 재킷을 걸치고, 흐트러짐 없는 목소리로 그를 바라보고 있었다.그리고 자신을 대표님이라고 불렀다.“이번 프로젝트의 실무 담당자가 윤서아 씨라고 들었습니다.”“네. 일정 관리와 양사 간 실무 조율을 맡게 됐습니다.”“그럼 앞으로 자주 뵙겠네요.”“업무상 필요한 만큼 뵙게 될 것 같습니다.”조금도 망설이지 않는 대답이었다. 태준의 손가락이 테이블 아래에서 천천히 말려 들어갔다. 필요한 만큼이라.“잘 부탁드립니다.”태준은 억지로 입꼬리를 올렸다.“저도 잘 부탁드립니다.”서아는 예의 바르게 고개를 숙인 뒤 시선을 돌렸다. 그걸로 끝이었다.마치 두 사람이 오늘 처음 만난 사이인 것처럼. 마치 그사이의 5년이 아무런 의미도 없었던 것처럼. 회의는 한 시간 넘게 이어졌다. 서아는 놀라울 만큼 침착했다. 필요한 자료를 정확하게 짚어 설명했고, 상대 회사의 요청 사항을 꼼꼼하게 정리했다. 예상치 못한 질문에도 당황하지 않았다.태준은 몇 번이나 서아를 바라봤다. 그럴 때마다 그녀는 어김없이 업무 자료를 보고 있었다. 자신을 보지 않았다. 아니, 정확히는 애써 보지 않으려는 것 같았다.“이상으로 오늘 회의는 마치겠습니다. 세부 일정은 회의록으로 공유하겠습니다.”서아가 노트북을 닫으며 말했다. 사람들이 하나둘 자리에서 일어났다.“윤서아 씨.”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1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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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화. 당신이 없는 동안

다음 날 아침.강태준은 출근하자마자 비서에게 한 가지를 물었다.“어제 협업 건 담당자 명단 다시 가져와.”“네, 대표님.”“윤서아 관련해서는….”말을 꺼내던 태준이 멈췄다. 비서는 조심스럽게 그를 바라봤다.“어떤 내용을 확인해 드릴까요?”“……아니다. 됐어.”태준은 손을 내저었다. 무슨 자격으로 묻는단 말인가. 그녀가 어디에 사는지, 누구와 지내는지, 퇴근 후에는 무엇을 하는지.5년 동안 아무것도 묻지 않았던 사람이 이제 와서 궁금해한다고 달라지는 건 없었다.무엇보다 서아가 자신의 사생활을 알고 싶어 하지 않는다면, 자신 역시 그래야 했다.태준은 서류를 펼쳤다. 글자가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어젯밤 엘리베이터 앞에서 들었던 목소리가 자꾸만 귓가를 맴돌았다.‘저는 5년 동안 대표님을 기다렸어요.’그 말 한마디가 밤새 그를 붙잡았다. 서아가 자신을 기다렸다는 사실이 기뻐야 하는 건지, 그 긴 시간을 혼자 견디게 했다는 사실에 절망해야 하는 건지조차 알 수 없었다.아니. 사실은 알고 있었다. 기뻐할 자격 따위는 없었다. 그는 서아가 자신을 기다리는 동안 어디에도 없었으니까.“윤서아 씨, 오늘 오후에 협력사 대표님과 추가 미팅 있는 거 알죠?”“네. 자료 정리해서 공유해 두었습니다.”“역시 꼼꼼하네. 그럼 다녀와요.”서아는 고개를 끄덕이며 회의 자료를 챙겼다. 오늘도 업무는 평소와 다르지 않았다. 적어도 겉으로는 그랬다.강태준을 다시 만난 뒤로 잠이 조금 줄었지만, 서아는 그 사실을 인정하고 싶지 않았다. 이미 오래전에 끝난 일이라고 생각했다.끝났다고 믿고 살아왔다. 그런데 사람이 정말로 끝난 일을 마주하면 이렇게 되는 걸까. 아무렇지 않은 척할수록 오히려 더 선명해지는 것.“서아 씨?”“네?”“괜찮아요? 표정이 안 좋아 보여서.”“아, 괜찮아요. 어제 잠을 조금 설쳐서요.”서아는 가볍게 웃었다.“오늘만 잘 버티면 되죠.”그녀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 말이 얼마나 익숙한 말인지, 서아 자신도 알고 있었다. 예전에도 그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1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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