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lle Kapitel von 다른 이름으로 그를 다시 만났다: Kapitel 91 – Kapitel 100

120 Kapitel

91화_밤새 놓지 않은 손

손이 잡혀 있었다.소은은 그 사실을 인식하는 데 한참 걸렸다.태현의 손이 소은의 손목을 감싸고 있었다.꽉 쥔 것도 아니었다.그냥 거기 있었다.소은은 그것을 느끼면서도 한동안 손을 빼지 못했다.아니, 손을 빼면 이 감각이 사라질 것 같아서 그러지 않은 건지도 몰랐다.소은은 소파 앞에 몸을 조금 웅크렸다.죽이나 사다 두고 가면 된다고 생각했다.그런데 문을 열어준 태현의 얼굴을 보는 순간 그냥 둔 채 가는 게 안 됐다.왜인지는 몰랐다.그냥 안 됐다.소은은 손목을 빼려 했다.빠져나오려 했는데.태현의 손에 힘이 남아 있었다.소은이 손을 살짝 당기자 손이 따라 움직이며 오히려 더 감겼다.태현의 얼굴을 봤다.소파에 등을 기댄 채 눈을 감고 있었다.그 얼굴이 낯설었다.평소에 보던 그 반듯하고 냉정한 얼굴이 아니었다.무언가를 내려놓은 얼굴.평소에 매듭지어 두었던 것들이 다 풀어진 자리.이 사람이 이런 얼굴을 하는 사람이었구나, 싶었다.소은은 다시 한 번 손목에 힘을 줬다.태현의 손이 또 따라 움직였다.소은이 낮게 숨을 내쉬었다.못 빼겠다.그 생각이 든 순간, 이상하게 어깨에서 힘이 빠져나갔다.머릿속에서 무언가 조그맣게 포기하는 소리가 났다.빼야 한다는 건 여전히 알았다.근데 그 알고 있음이 이 온기보다 무겁지 않았다.소은이 힘을 뺐다.태현의 손에 얹혀 그대로 뒀다.작게 웅크린 채 천장을 봤다.형광등이 꺼진 자리에 도심의 불빛이 창으로 흘러들어왔다.조용했다.태현의 숨소리가 낮게 들렸다.고르고, 낮고, 규칙적인.소은은 눈을 감았다.그냥 잠깐만.그 생각이 마지막이었다.몇 번쯤 깼던 것 같기도 했다.하지만 그때마다 태현의 숨소리가 먼저 들렸고, 소은은 다시 눈을 감았다.***완전히 눈을 떴을 땐 빛이 들어오고 있었다.소은이 눈을 깜빡였다.창밖에 아침이 와 있었다.머리가 무거웠다.어깨가 굳어 있었다.웅크린 채 잠들었으니 당연한 일이었다.그리고.손목에 온기가 있었다.소은이 천천히 고개를 내렸다
last updateZuletzt aktualisiert : 2026-10-16
Mehr lesen

92화_함께한 출근길

출근길은 조용했다.태현이 데려다주겠다고 했고 소은이 거절할 타이밍을 놓쳤다.거절하기에도 이상했다.도착 장소가 같았으니까.그냥 차에 탔다.차 안에서 두 사람은 말이 없었다.아무 말 없이 이룸 그룹에 도착했다.이룸 그룹 지하 주차장에서 엘리베이터를 기다리고 있었다.소은이 태현을 슬쩍 봤다.뭔가 자꾸 시선이 갔다.넥타이였다.제대로 매지 않은 건 아닌데, 살짝 틀어져 있었다.왼쪽으로 조금 기울어진 채.소은이 앞을 봤다.엘리베이터 버튼이 눌려 내려오는 중이었다.눈이 또 갔다.저게 계속 거슬릴 것 같았다.소은이 짧게 숨을 내쉬었다."잠깐만요."거슬린다고 생각한 순간, 손이 이미 태현의 넥타이에 닿아 있었다.살짝 당기며 매듭 위치를 잡아줬다.손가락이 익숙하게 움직였다.셔츠 깃을 고르고, 매듭을 중앙으로 맞추고.손을 떼려던 순간이었다.태현이 굳은 듯 움직이지 않았다.소은이 고개를 들었다.태현이 정면으로 소은을 보고 있었다.거리가 가까웠다.이렇게 가까이서 이 눈을 보는 것이 처음은 아닌데, 지금은 달랐다.시선을 거두지 않는 그 눈이.소은이 손을 내렸다.한 박자가 지나갔다."...열은 다 내렸어요?"소은의 목소리가 생각보다 자연스럽게 나왔다.태현이 "네"라고 짧게 대답했다.소은이 손을 들어 태현의 이마에 얹었다.체온을 확인하려는 행동이었다.이번에도, 생각보다 손이 먼저였다.뜨겁지 않았다.어젯밤보다 확실히 낮아져 있었다."많이 나아진 것 같네요."소은이 손을 거뒀다.딩ㅡ.엘리베이터 문이 열렸다.두 사람이 안으로 들어섰다.문이 닫혔다.거울에 비친 두 사람이 보였다.어제와 똑같은 옷.나란히 서 있는 것.하지만 평소와 다른 온도.소은이 시선을 바닥으로 내렸다.***이룸 그룹 로비.자동문 쪽에서 발소리가 들렸다.한태풍이 반사적으로 고개를 들었다.그리고 멈칫한다.이태현이었다.그 옆에 백 팀장이 있었다.나란히 걸어 들어오고 있었다.한태풍의 눈이 천천히 커졌다.그녀의 재킷.어제 오후
last updateZuletzt aktualisiert : 2026-10-16
Mehr lesen

93화_우산 아래 겹쳐진 손

몇 시간 뒤.이룸에서 오전 작업을 마쳤다.소은과 태현은 추가 작업을 위해 백제 그룹으로 향했다.백제 그룹 로비.김동석이 안내 데스크 앞을 지나쳐 계단 쪽으로 걷다가 멈췄다.소은이 막 들어서고 있었다.어제 입고 간 재킷 그대로였다.동석은 그것을 한 번 봤다가 눈을 깜빡였다.그리고 소은의 뒤편으로 시선을 옮겼다.소은의 뒤에 이태현이 있었다.두 사람이 같이 들어오는 것은 이상한 일이 아니었다.그런데 오늘따라 분위기가 이상했다.동석은 소은과 눈이 마주치자, 자신도 모르게 입을 열었다."어제... 집에는 들어가셨습니까?"태현과 소은이 동시에 멈칫한다.소은이 눈짓을 보냈다.'아무것도 묻지 마라.'동석이 입을 열려다가 닫았다.눈만 이리저리 굴렸다.소은이 태현을 향해 짧게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올라가요.""...네."태현과 소은이 엘리베이터 쪽으로 걸었다.동석이 그 옆에 딱 붙어 나란히 걸으며 눈을 흘겼다.동석이 다시 입을 열기 직전, 소은이 작게 경고했다."한마디만 더 해."동석이 입을 꾹 다물었다.그러나 귀까지 올라간 눈썹은 내리지 못했다.동석이 태현 쪽으로 시선을 돌렸다.태현이 눈을 피했다."...네, 팀장님."동석의 사무적인 대답이 엘리베이터 안으로 사라졌다.소은은 그 어조 안에 꾹꾹 눌린 것들이 뭔지 정확히 알고 있었다.나중에 어마어마하게 쏟아질 것이었다.***오후 늦게 작업이 끝날 즈음, 비가 왔다.예보에 없던 비였다.백제 그룹 출입구 앞, 소은이 핸드폰을 확인했다.택시가 잡히지 않았다.파일을 가방에 쑤셔 넣으면서 하늘을 봤다.제법 굵었다.빗방울이 출입구 처마 끝에서 주르르 흘러내렸다."우산 없어요?"뒤에서 태현의 목소리가 들렸다.소은이 돌아봤다.태현이 우산을 들고 있었다.코트를 팔에 걸친 채로."있어요.""어딨습니까.""......""또 허세."태현이 소은의 옆으로 와 우산을 폈다.소은이 태현을 봤다."주차장까지 같이 가죠. 데려다 줄게요.""괜찮아요, 뛰어가면
last updateZuletzt aktualisiert : 2026-10-16
Mehr lesen

94화_허락한 만큼만

짝ㅡ 하는 소리가 방 안을 가로질렀다.소은은 고개가 돌아간 채로 잠깐 그 자리에 서 있었다.귀가 울렸다.뺨이 달아올랐다.언제나 같은 상황이었다.지겨울 만큼 익숙했다.백동우가 소은의 앞에 서 있었다."어디서 잔 거야."목소리는 조용했다.이 차갑고 낮은 목소리가 나오면, 상황은 이미 완전히 그의 통제 안에 들어갔다는 뜻이었다.소은은 그 사실을 오래전에 배웠다."업무가 늦게 끝났습니다.""어디서 잔 거냐고.""회사 근처 호텔에서 잤어요."거짓말이 자연스럽게 나왔다.소은은 정면을 봤다.시선을 피하면 안 됐다.이 사람은 시선을 피하는 것을 취약함으로 읽었고, 취약함을 발견하면 반드시 그쪽을 파고들었다.백동우가 소은을 위아래로 훑었다."혼자?""네."백동우의 손이 다시 올라왔다.이번엔 뺨이 아니었다.소은의 턱을 잡아 들었다.손가락 사이로 뼈가 눌리는 압력이 느껴졌다.가만히 있었다.저항하면 더 오래 걸렸다."오늘 이태현과 같이 출근했다지."소은은 눈을 깜빡이지 않았다.흔들려서는 안 된다."이태현한테 붙어 있는 꼴 보기 싫다고 했지. 헛소문이라도 돌면, 네 상품 가치 떨어지는 건 한순간이라고.""그냥 프로젝트 파트너예요.""입 닫아."턱을 잡은 손에 힘이 더 들어갔다.소은의 시선이 흔들리지 않았다.흔들리면 지는 것이었다.이 싸움에서 소은이 할 수 있는 건 지지 않는 것뿐이었다.백동우가 손을 놓았다.소은이 내색 없이 턱을 바로 했다.백동우가 돌아서며 마지막으로 말했다."너는 내 딸이야.""......""그러니까 내가 허락한 만큼만 움직이는 거야. 그거 잊지 마."문이 닫혔다.소은은 그 자리에 잠시 서 있었다.뺨이 아직 달아 있었다.턱이 시큰거렸다.거울 앞으로 걸어가 자신의 얼굴을 봤다.광대 아래로 붉게 올라온 것이 보였다.시간이 지나면 부을 것이었다.이 얼굴로 이룸 그룹에 갈 수는 없었다.태현에게 보여선 안 되니까.소은이 핸드폰을 들었다.이태현에게 문자를 남겼다.[오늘 검수는 자
last updateZuletzt aktualisiert : 2026-10-16
Mehr lesen

95화_감추지 못한 흔적

태현의 미간이 아주 조금 좁아졌다."오늘 안 온다고 했다며.""연락받았습니다.""내가 그 아이 네 집에 보냈어. 잘했지?"태현이 아버지를 봤다."그제 너 아플 때.""......""잘했지?""또 무슨 장난치시는 겁니까."이남국이 짧게 웃었다."네가 좋아할 줄 알았는데?""...무슨 말씀이세요.""그 아이 좋아하잖아.""......"태현의 시선이 잠깐 흔들렸다.이남국이 작게 웃는다.잠깐 침묵했다가 말을 이었다."태현아.""네."이남국이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섰다.코트 단추를 잠그며 말했다.웃음기가 조금 가셨다."백동우 조심해라."그 말만 남기고 나갔다.태현이 이남국의 말을 곱씹다 핸드폰을 집어 들었다.소은에게서 온 문자를 다시 읽었다.[오늘 검수는 자료로 대신할게요. 죄송합니다.]짧고 건조했다.소은답지 않게 이유가 없었다.태현이 핸드폰을 내려놓았다가 다시 들었다.답장을 쓰다가 지웠다.쓰다가 지웠다.결국 아무것도 보내지 않았다.***밤이 깊었다.백제 그룹 디자인실에 불이 켜져 있었다.소은이 작업대 앞에 앉아 있었다.머리를 한쪽으로 틀어 올리고, 연필을 손가락 사이에 끼운 채로.화면 위로 선이 하나씩 더해졌다.뺨의 부기는 파운데이션으로 덮었다.각도를 잘 잡으면 티가 나지 않았다.오래 해온 일이었다.동석이 맞은편 의자를 당겨 앉으며 소은의 얼굴을 봤다.소은이 화면 쪽으로 시선을 돌렸다."뭘 봐.""야, 김소은.""듣고 있어.""뺨."소은이 침묵하다 입을 열었다."별거 아니야.""별거 아닌 게 몇 번째야."동석의 목소리가 낮게 깔렸다.동석이 숨을 내쉬었다.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그것으로 충분했다.창밖에 빗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어제에 이은 비였다.소은은 빗소리를 들으면서 작업했다.어젯밤이 떠올랐다.우산 아래서.젖어가는 어깨.그리고 손.잊어야 했다.그것을 소은은 알고 있었다.이 사람 곁에 있을수록 위험해지는 건 자신만이 아니었다.태현도 마찬가지였다.그건
last updateZuletzt aktualisiert : 2026-10-16
Mehr lesen

96화_우리 그냥, 결혼할까요

태현이 들어왔다.저녁을 포장한 봉지를 작업대 위에 내려놓았다.태현이 다가오자 동석이 자리에서 일어나며 말했다."앉으세요.""됐어.""앉으라고. 난 소파에 앉을 거야."동석이 툴툴거리며 소파로 향했다.두 사람 사이의 달라진 말투에 소은의 눈이 동그래졌다.태현이 아무 말 없이 소은의 옆자리에 앉았다.태현이 봉지에서 샌드위치를 꺼내 동석을 향해 던졌고, 동석이 가볍게 받았다.아무 말이 없었다.소은이 정면을 봤다.태현도 정면을 보고 있었다.화면 위의 미완성 스케치.방 안의 낮은 조명.창밖의 빗소리."뺨이."태현이 또 다른 샌드위치와 캔음료를 꺼내며 먼저 입을 열었다.소은이 멈췄다."많이 부었습니다.""넘어졌어요.""...참 자주 넘어지네요."소은이 태현을 봤다.태현은 소은을 보지 않고 있었다.캔 음료 탭을 따는 손이 필요 이상으로 천천히 움직였다.뭔가를 억누르고 있는 손이었다.소은은 그 손을 봤다.그리고 말하지 않기로 했다.태현도 더 묻지 않았다.태현의 머릿속에 백동우의 이름이 스쳤다.이남국이 남기고 간 말도 함께였다.조심해라.하지만 조심만으로는 막을 수 없는 것들이 있었다.그냥 샌드위치를 소은 앞으로 밀었다.소은이 그것을 받아들었다.그것뿐이었다.두 사람은 나란히 앉아 아무 말 없이 늦은 저녁을 먹었다.빗소리가 창을 두드렸다.이상하게 따뜻했다.소은은 그게 무서웠다.이런 것에 익숙해지면 안 됐다.이 온기에, 이 사람 옆에 있는 감각에.익숙해지면 내보낼 수 없었다.소은이 포장지를 내려놓으려는데."가은 씨."태현이 정면을 보면서 말했다.낮고 평평한 목소리였다.무게가 있었다.소은이 손을 멈췄다.태현이 잠깐 침묵했다.캔 음료를 한 모금 마시고, 작업대 위에 내려놓았다.그리고."우리 그냥, 결혼할까요."방 안이 조용해졌다.빗소리만 들렸다.소은이 태현을 봤다.태현 또한 소은을 바라봤다.농담하는 눈이 아니었다.그렇다고 간절한 눈도 아니었다.그냥, 말한 것이었다.오래 삼켜왔던
last updateZuletzt aktualisiert : 2026-10-16
Mehr lesen

97화_프로필에 없는 대답

동석이 경악했다."왜 프로포즈를 나 있는데서 해!!"태현은 들은 척도 하지 않은 채로 소은만을 응시했다."...말도 안 되는 소리 하지 마세요."소은이 포장지를 내려놓으며 말했다."왜 말이 안 됩니까.""저희 파혼한 지가 언젠데...""파혼했으면 다시 물어도 안 됩니까.""안 돼요."소은이 단호하게 말했다.태현이 잠깐 소은을 바라보더니 천천히 캔 음료를 들었다.소은은 그 여유로운 동작이 어딘가 얄미웠다.저 사람은 방금 결혼 얘기를 꺼낸 사람이 맞는 건가.이렇게 태평할 수가 있나."언제가 적당합니까.""뭐가요.""결혼식이요.""태현 씨!""할 수도 있잖아요."소은이 태현을 봤다.눈이 진지했다.농담하는 사람의 눈이 아니었다.그게 더 황당했다."갑자기 왜 이래요.""갑자기는 아닙니다.""갑자기가 아니면요?""꽤 생각했습니다.""얼마나요.""요 며칠."소은이 허탈하게 웃었다."며칠 생각하고 결혼 얘기를 꺼내세요?""오래 생각하면 달라집니까.""달라지죠.""어떻게요.""그냥—"소은이 말문이 막혔다.달라진다고 말하려 했는데 막상 뭐가 달라지는지 설명할 수가 없었다."며칠이면 충분합니다.""아니거든요.""더 오래 생각해봤자 마음이 바뀔 것 같지 않은데요."태현이 진지한 눈으로 소은을 보고 있었다.오래 생각한 사람의 눈이었다.소은이 시선을 피했다."우리가 그런 사이가 아닌데.""그럼 어떤 사이입니까."소은이 입을 다물었다.어떤 사이냐고.그게 명확하게 정의되는 사이였으면 이렇게 되지 않았겠지.소은이 다시 앞을 봤다.태현이 소은이 막힌 틈을 조용히 파고들었다."하긴, 당신은 처음부터 나랑 결혼하기 싫어했지."소은의 입이 앙 다물렸다.태현은 소은이 눈치 보는 것을 즐기는 듯 계속 말을 잇는다."심한 말을 얼마나 해대던지ㅡ""내가 싫다고 했는데 계속 결혼하자고 하니까...!""아무리 그래도. 난 프로필까지 다 외우고 갔는데.""......""보긴 봤습니까, 내 프로필."소은이
last updateZuletzt aktualisiert : 2026-10-16
Mehr lesen

98화_싫다는 말의 진심

"피아노."태현이 반응하지 않았다.소은이 눈치를 살피며 계속했다."복숭아 좋아하고...""......""비 오는 날도..."소은이 조용히 말했다.프로필에서 본 게 아니었다.소은도 그걸 알고 있었다.오래된 마당.처마 끝에서 빗소리를 듣던 아이들.비가 오면 유난히 눈이 밝아지던 한 아이.그리고 그 아이를 20년이 지나도 기억하고 있는 자신이.소은이 입을 다물었다.너무 많이 말했다.방 안이 잠깐 고요해졌다.태현이 소은을 봤다.소은은 정면을 보고 있었다.뺨의 부기가 조명 아래 살짝 보였다."잘 알고 있네요. 합격입니다.""합격은 무슨..."소은이 어이없다는 듯 그를 바라본다.입이 열렸다가 다시 닫혔다.태현이 소은을 봤다.그냥 보고 있었다.소은은 그 눈을 마주치지 못했다.태현이 먼저 시선을 거뒀다.자리에서 일어서며 코트를 집어 들었다.소은이 태현의 뒷모습을 봤다.뭔가를 더 말해야 할 것 같았는데 아무것도 나오지 않았다.동석이 두 사람을 번갈아 봤다.보기 흉한 걸 봤다는 듯 얼굴을 확 구기고는 느리게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태현이 동석을 보고는 눈을 흘긴다."뭘 봐."***차 안이 조용했다.소은은 창밖을 보고 있었다.빗속의 가로등이 번지며 지나갔다.태현은 운전하면서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아까 작업실에서 한 말 이후로.그냥 달렸다.소은이 먼저 입을 열었다."진심이에요?"태현이 앞을 보면서 대답했다."네.""주어는 말 안했는데.""결혼 해요."소은이 움찔 떤다.태현을 확 째려본다."왜 저랑요?"태현이 잠깐 침묵했다."이유가 있어야 합니까.""있어야죠.""무슨 이유가 있어야 받아주려나."소은이 시선을 피했다.태현이 여전히 앞을 보고 있었다.핸들을 쥔 손이 움직이지 않았다.소은은 그 옆모습에서 아무것도 읽을 수 없었다.읽히지 않는 사람이었다.처음 만났을 때부터 그랬다."제가 가은 씨 좋아하는 걸로는 안됩니까.""...네?"너무 짧았다.소은이 더 할 말을 찾았지만
last updateZuletzt aktualisiert : 2026-10-16
Mehr lesen

99화_서류에 없는 진실

왜 움직이지 않는 건지.소은은 그것을 생각하지 않으려 했다.생각하는 순간 자신이 무엇을 원하는지 들킬 것 같아서.자기 자신한테.그게 더 무서웠다.차가 소은의 집 앞에 섰다.태현이 먼저 내렸다.태현이 우산을 펴 문을 열어주었다.차에서 내리다 미끄러질 뻔한 걸 태현이 급히 잡아준다.두 사람의 눈이 마주친다.소은은 어쩐지 눈물이 날 것 같았다.입술이 잠깐 달싹였다."...조심히 가요."태현이 소은이 건물 안으로 들어가는 것을 봤다.문이 닫혔다.조명 아래 소은의 뒷모습이 보였다가 사라졌다.태현이 차에 올랐다.핸들 위에 두 손이 있었다.힘이 들어가 있었다.소은의 뺨.파운데이션으로 덮었지만 가까이서 보면 보였다.부어 있었다.그게 넘어져서 생긴 게 아니라는 것쯤은 알고 있었다.그런데 묻지 않았다.소은이 말하지 않는 것을 억지로 꺼내는 사람이 되고 싶지 않았다.아직은.하지만 오래 두지 않을 것이다.저 사람이 저 집에서 혼자 버티고 있는 것을.뺨에 파운데이션을 바르고 아무렇지 않은 척 출근하는 것을.태현이 핸드폰을 들었다."한 비서."한태풍의 목소리가 들렸다."네, 팀장님.""백제 그룹에 보낸 내 프로필 자료 있지.""네, 있습니다.""내일 가져와요.""예, 알겠습니다."전화를 끊었다.빗소리가 차 안을 채웠다.태현은 오래 앉아 있었다.소은의 목소리가 귓가에 맴돌았다.복숭아 좋아하고, 비 오는 날 좋아하고.태현의 기억 속, 자신의 프로필에 그런 항목은 없었다.***다음 날 오전, 태현은 외근 중이었다.협력사 미팅이 오전에 두 건 연달아 있었다.미팅 내내 머리는 다른 곳에 가 있었다.상대방이 말을 하면 고개를 끄덕였고 서류를 내밀면 확인했다.몸은 거기 있었는데 눈이 계속 다른 것을 봤다.어젯밤 그 여자.조심히 가요, 라고 말하던 목소리.차 문이 닫히던 소리.두 번째 미팅이 끝나고 건물 로비에서 태풍에게 전화를 걸었다.계약 조건 수정 건을 정리해야 했다."이영돈 본부장 오늘 오후 시간
last updateZuletzt aktualisiert : 2026-10-16
Mehr lesen

100화_구겨진 스케치 속 얼굴

연필이 멈추지 않았다.소은은 그것을 한참 뒤에야 알아챘다.아니, 정확히는 알면서 멈추지 않은 것이었다.손이 어디로 가고 있는지 이미 알고 있었다.화면 위에서 작업해야 할 것들이 있었다.마감이 사흘 남은 패턴 수정, 이룸 측에 넘겨야 할 샘플 컬러 조정.해야 할 게 눈앞에 있었는데 손이 엉뚱한 곳에 가 있었다.스케치북 위였다.화면 옆에 항상 펼쳐두는 것.작업 중에 아이디어가 떠오르면 빠르게 옮겨두는 용도였다.그런데 지금 거기 그려지고 있는 건 아이디어가 아니었다.선이 하나씩 더해지고 있었다.이마의 선.콧날.입매.눈.소은은 그것이 누구인지 이미 알았다.알면서 멈추지 않았다.연필 끝이 계속 움직였다.연필이 귀 옆 선을 마무리했다.소은이 천천히 스케치북을 내려다봤다.이태현이었다.소은이 눈을 감았다.잠깐 그 자리에 앉아 있었다.창밖으로 오후 햇살이 들어오고 있었다.실내가 조용했다.소은이 스케치북 페이지를 잡았다.구겼다.한 번, 두 번.손바닥 안에서 종이가 꽉 뭉쳐졌다.그걸 책상 서랍 안에 집어넣고 닫았다."그거 몇 번째냐."소은이 굳었다.천천히 고개를 들었다.김동석이 작업실 문 앞에 서 있었다.언제 들어온 건지 몰랐다.눈이 소은의 서랍 쪽을 보고 있었다.정확히 방금 닫힌 그 서랍을."...아이디어 스케치야.""태현이 형 얼굴이?"소은이 동석을 봤다.두 사람 사이에 잠깐 침묵이 흘렀다."그 사람 아니야.""그래.""아니라고."소은이 의자를 돌려 화면을 봤다.동석이 작업대로 걸어오며 서류를 내려놓았다."전에도 그렸지?""......""지난주에도. 그전에도.""야.""응.""서류 두고 나가.""뭘 그렇게 창피해하고 그래. 좋아하면 그릴 수도 있지."소은이 키보드를 두드렸다.화면에 아무 의미 없는 타이핑이 찍혔다가 지워졌다."좋아한다고 안 했어.""그럼 왜 그려.""......""그 서랍에만 세 장은 들어 있을 텐데."소은이 키보드에서 손을 뗐다."나가.""예, 나
last updateZuletzt aktualisiert : 2026-10-16
Mehr lesen
ZURÜCK
1
...
789101112
CODE SCANNEN, UM IN DER APP ZU LESEN
DMCA.com Protection Statu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