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ahat ng Kabanata ng 다른 이름으로 그를 다시 만났다: Kabanata 11 - Kabanata 20

79 Kabanata

11화_잊혀진 약속

차가웠던 카페 조명.더 차가웠던 이태현의 목소리가 귓가에 되살아났다.'착각할까 봐 말하는데, 그쪽이 백제 그룹 후계자가 아니었다면, 나도 당신 필요 없어.'그 말은 칼날보다 날카롭게 소은의 심장을 꿰뚫었다.20년 전, 입양 가던 날 그 소년은 소은의 손을 꼭 잡고 울었었다.'나 성공해서 꼭 너 데리러 올게. 우리 결혼하자!'그 유치하고도 간절했던 약속을 가슴에 품고 버텨온 세월이 얼마였던가.하지만 그 남자의 눈에는 소은을 향한 그리움이 한 톨도 남아 있지 않았다.'당신이 누리고 있는 것들, 대가는 치러야 하지 않습니까? 백제 그룹 팀장님.'그 냉소적인 표정이 소은의 자존심을 갈기갈기 찢어발겼다.그에게 이 결혼은 사업 확장을 위한 도구일 뿐이었다.자신은 그 도구의 부품에 불과했다.'다신 보지 말죠, 우리.'카페를 나서며 그를 향해 뱉었던 마지막 말이 가슴을 쳤다.말은 그렇게 했지만, 뒤돌아 걷는 내내 다리가 후들거렸다.심장이 제멋대로 뛰고 있었다.화가 나서인지, 아니면 여전히 그를 향해 반응하는 스스로가 끔찍해서인지 알 수 없었다.20년 만에 만난 첫사랑은 자신을 '도구'로만 보고 있었고, 그녀는 정체를 숨긴 채 그 멸시를 견뎌야 했다.이 지독한 연극을 언제까지 계속할 수 있을까.태현의 펜트하우스.이른 아침이었다.블라인드 틈새를 비집고 들어온 햇살이 방 안을 파고들었다.침대 위에서 거칠게 뒤척이던 이태현이 신음과 함께 눈을 떴다.꿈속의 잔상이 온몸을 휘감고 있었다."하아."상체를 일으켜 이마를 짚었다.피식 웃음이 나왔다.꿈이었다.아주 오래전, 고아원 앞마당에서 울고 있던 자신에게 다가와 ‘남자가 왜 울어!’ 하며 이마에 딱밤을 놓던 그 조그만 소녀."...은이."그리운 이름이 흘러나왔다.꿈속의 소녀는 해맑게 웃고 있었다.하필이면 어제, 그 오만한 여자 '백가은'을 만나고 난 뒤에.태현은 불쾌함에 머리카락을 거칠게 쓸어 넘겼다."짜증 나는 여자."어제 카페에서 자신을 쏘아보던 백가은의 눈빛이 떠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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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화_슬픔이 서린 얼굴

차갑고 건조한 말이었다.루루미의 얼굴에서 미소가 순식간에 휘발됐다."...누구랑?""오해 살 행동은 그만해야지. 너도, 나도."태현은 지갑에서 카드를 꺼내 그녀의 손바닥 위에 올려뒀다.루루미는 손바닥 위에 놓인 플라스틱 조각을 모욕적으로 내려다봤다."나 두고 결혼한다고? 그럼 나는? 내가 그 날, 그 불길 속에서 어떻게ㅡ""루미야."태현의 목소리가 낮게 가라앉았다.경고였다."왜 이렇게 예민해. 요새도 화재 꿈 꾸는 거야? 약은 잘 먹고 있고?"루루미가 멈칫했다.입술을 파르르 떨며 태현의 팔을 붙잡으려 했지만, 태현은 한 걸음 뒤로 물러나 거리를 뒀다."그냥 비즈니스야.""비즈니스? 오빠 눈은 안 그래.""착각이야."태현은 미련 없이 뒤를 돌았다.단 한 번도 고개를 돌리지 않았다.루루미는 멀어지는 태현의 넓은 등을 노려보며 손톱을 신경질적으로 깨물었다.틱, 틱.손톱이 부러지는 소리가 났다.입안에서 비릿한 피 맛이 났다.'절대 못 해. 그 결혼, 내가 절대 하게 안 둬.'눈동자에 불안이 가득 서렸다.이룸 그룹 팀장실 안은 지독하게 고요했다.공기청정기가 돌아가는 낮은 기계음만이 정적을 채우고 있었다.태현은 가죽 의자에 몸을 던지듯 앉아 넥타이를 거칠게 풀어 헤쳤다.숨통을 조이던 매듭을 풀었음에도 답답함은 가시지 않았다.똑똑-."팀장님, 상견례 장소 확정되었습니다. 청담동에 있는ㅡ""아, 맞아. 그거 취소해."서류를 들고 들어온 한태풍이 당황한 듯 눈을 크게 떴다."네? 취소라니요? 회장님께서 직접...""그 여자, 나랑 결혼 안 한대."태현은 픽 웃으며 펜을 돌렸다."다신 보지 말자더라."입 밖으로 내뱉고 나니 상황이 더 황당하게 느껴졌다.백제 그룹의 외동딸이, 정략결혼의 말판에 불과한 여자가 자신을 찼다.그런데 이상했다.뇌리에는 그녀의 독설보다 마지막 순간의 표정이 더 선명하게 박혀 있었다.금방이라도 눈물이 터질 듯 그렁그렁하던 눈.상처받은 짐승처럼 파르르 떨리던 얇은 입술.마른 침을 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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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화_끝나지 않은 결혼

머릿속이 완전히 뒤죽박죽이었다.김소은은 마치 스스로를 학대하듯, 평소보다 두 배는 되는 스케줄을 억지로 구겨 넣었다.이태현.그 이름 석 자가 뇌리를 스칠 때마다 그녀는 보란 듯이 더 거칠게 원단을 가위질했고, 더 날카롭게 직원들을 몰아붙였다."팀장님, 제발 좀... 저 죽을 것 같아요."비서 김동석이 턱 끝까지 차오른 숨을 몰아쉬며 소은의 뒤를 쫓았다.서류 뭉치를 안고 헉헉거리는 그의 몰골은 영락없이 수명을 다해가는 기계 같았다.하지만 소은은 들은 체도 하지 않았다.그녀의 시선은 오직 마네킹에 걸린 미완성 드레스에 고정되어 있었다.서걱, 서걱-.날카로운 가위날이 공기를 가르는 소리만 가득한 작업실.소은은 마네킹의 허리선을 다듬으며 입술을 피가 나도록 깨물었다.굳게 닫힌 입매가 금방이라도 터질 듯 팽팽했다.옆에서 지켜보던 동석이 참다못해 그녀의 어깨를 남몰래 툭 쳤다."뭐야?"소은이 서늘한 눈빛을 쏘아 올렸다.동석은 움찔하면서도 할 말은 하겠다는 듯 고개를 저었다."힘 좀 빼고 일하라고. 어깨가 돌덩이처럼 굳어선, 금방이라도 누구 하나 잡아먹을 기세네.""...내가 뭘.""내가 널 하루 이틀 보냐? 너 지금 일하는 게 아니라 화풀이하는 거잖아. 무슨 생각 하는지 눈에 다 보여.""......"정곡을 찔린 소은의 손길이 멈칫했다.감춰두었던 속살을 들킨 것 같은 기분이 밀려왔다.그녀는 아무렇지 않은 척 가위를 내려놓고 돌아섰다.하지만 가늘게 떨리는 손끝까진 숨기지 못했다."이번 패션쇼 진행안이나 가져와. 스테이지는 잡았어?""이룸 아트홀로 결정된 거 아니었습니까? 회장님께서 직접 지시 내리셨다고..."공적인 질문에 동석의 말투가 바뀐다.그의 말에 소은의 걸음이 우뚝 멈췄다."이룸 아트홀로 진행하라고 지시 내려왔다는데요. 이룸 측에서도 긍정적으로 검토 끝냈다고 하고.""...아니야. 취소됐어, 그거.""예? 갑자기요?"소은은 고개를 돌려 의아해하는 동석을 차갑게 응시했다.심장 한구석이 찌릿하게 아려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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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화_아버지라는 이름의 괴물

"둘이 따로 만났다더니. 거기서 대판 싸우기라도 한 게냐?""제가 애입니까. 싸우게.""아직도 내 눈엔 처음 만난 그날처럼, 고집 센 꼬맹이로 보이는데.""아버지 처음 만났을 때도 꼬맹이는 아니었던 거 같은데.""9살은 꼬맹이지!"이남국의 핀잔에 태현의 입가에 찰나의 웃음기가 스쳤.딱딱하게 굳어 있던 아들의 얼굴이 풀리는 것을 본 이남국이 씨익 미소를 지으며 자리에서 일어났다."이상하네. 네가 분명 마음에 들어 할 줄 알았는데. 내가 사진 보고 얼마나 공들여 고른 새아가인데.""제가 그 여자를요? 말도 안 됩니다. 무례하고, 제멋대로에, 마음에 드는 구석이 하나도 없는데, 어디가 마음에 듭니까?"태현은 자신도 모르게 목소리를 높였다.마치 스스로에게 최면이라도 걸듯 백가은의 단점을 나열했지만, 머릿속엔 자꾸만 카페에서 보았던 그녀의 슬픈 눈망울이 떠올랐다."얼굴은 예쁘잖아?""아버지.""아하하, 농담이다 농담. 아무튼, 난 이 결혼 찬성이다. 왜 싫다는 건지 도무지 이해가 안 가네. 더 만나봐!""...저한테 다신 만나지 말자고 했습니다."태현의 자폭 섞인 대답에 이남국의 눈이 동그래졌다.잠시 정적이 흐르고, 이남국은 짧은 웃음을 터뜨리더니 이내 배를 잡고 크게 웃기 시작했다."하하하! 세상에, 우리 이태현 팀장이 차였다고? 그것도 백제 그룹 딸한테?""왜 웃으세요, 기분 나쁘게.""꼭 시련 당한 사춘기 소년 같아서 그런다, 이놈아.""무슨...!""내가 사람 하나는 잘 골랐구만. 널 키우는 20년 동안 한 번도 본 적 없던 표정을, 그 새아가를 만나고 오더니 다 보여주는구나.""누가 새아가예요, 아버지."태현의 항변은 들은 체도 하지 않은 채, 이남국은 덩실거리며 책상으로 향했다."아이고, 우리 예비 새아가를 만날 때 뭘 입어야 하나. 넥타이부터 새로 사야겠구만."난감한 듯 머리를 쓸어넘기던 태현은 창밖을 보며 자조적인 한숨을 내뱉었다.‘다신 보지 말죠, 우리.’독하게 뱉어내던 그녀의 목소리가 환청처럼 들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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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화_초라한 현실

지켜보던 가정부 중 하나가 비명을 삼키며 달려와 그의 앞을 가로막았다.덜덜 떨리는 몸으로 소은을 감싸 안은 그녀의 목소리가 애처롭게 울렸다."지, 진정하세요 회장님...! 곧 결혼식도 올려야 하고 웨딩드레스도 입어야 하는데, 몸에 흉이라도 남으면 이룸 쪽에서 의심할 겁니다. 곤란해지시잖아요...!"‘웨딩드레스’라는 단어에 백동우의 움직임이 멈췄다.들끓던 살기가 가라앉는 것은 아니었으나, 그는 탐욕스러운 사업가였다.상품 가치가 떨어지는 것은 원치 않는다는 듯, 그는 깊은 숨을 내뱉으며 소은의 가녀린 팔을 아프게 움켜쥐었다."가은아. 왜 자꾸 이 아비를 슬프게 하는 거냐."한순간에 돌변한 다정한 목소리.백동우는 소은의 헝클어진 머리카락을 조심스레 넘겨주며 미소 지었다.그 이질적인 다정함이 소은에게는 골프채보다 더 끔찍한 고통이었다."말을 잘 들어야 착한 딸이지, 응? 아비가 다 너 잘되라고 하는 소리잖니."소은은 두려움에 온몸을 파르르 떨었다.가은아, 가은아.그 이름이 불릴 때마다 심장 속에 날카로운 얼음 파편이 박히는 기분이었다.진짜 백가은이 아닌 자신을 진심으로 제 딸이라 믿으며 사육하는 저 남자의 광기.소은은 발끝부터 머리끝까지 저려오는 소름 끼치는 감각에 구역질이 올라왔다."오늘은 이만할 테니 들어가 반성하고. 내일은 더 나은 대답을 들려주려무나. 아비 말, 무슨 뜻인지 알겠지?"백동우는 소은의 팔을 거칠게 내던지듯 놓고는 미련 없이 방으로 들어갔다.문이 닫히는 소리가 천둥처럼 거실을 울렸다.긴장이 풀린 가정부들이 소은에게 달려들었다."아유, 아가씨! 왜 자꾸 반항을 하세요! 회장님 성미 잘 아시면서...!""얼굴 좀 봐, 피멍 들겠네! 어서 약 발라야겠어요. 방으로 가요, 어서.""...괜찮아요."소은은 갈라진 목소리로 대답하며 가정부들의 부축을 받아 겨우 몸을 일으켰다.소은의 모습은 처참했다.터진 입술 사이로 비릿한 피가 흘러나왔고, 왼쪽 뺨은 벌겋게 달아올라 금방이라도 터질 듯 부어 있었다.그녀는 흐트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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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화_코끝에 닿는 체취

대답이 없는 소은의 정수리 위로 차가운 침묵이 내려앉았다.태현은 짓씹듯 삼켰던 숨을 길게 내뱉으며 한 걸음 물러섰다.뺨을 감싸 쥐었던 뜨거운 온기가 떨어져 나가자, 소은은 기다렸다는 듯 다시 고개를 푹 숙였다.그녀는 고개를 들 수 없었다.가로등 아래 적나라하게 드러난 자신의 처참한 꼴을 더는 보여주고 싶지 않았다.들키는 순간, 지난 20년간 백가은이라는 이름 뒤에 쌓아온 모든 것이 모래성처럼 무너질 것만 같았다."...갑자기 잡아서 미안합니다. 아팠습니까."태현의 목소리가 낮게 잦아들었다."...아니에요. 괜찮아요.""병원 가죠. 꼴이 말이 아닙니다."태현이 커다란 손을 내밀었다.가로등 빛을 받아 지나치게 곧고 단단해 보이는 그 손은, 마치 벼랑 끝에 선 그녀에게 내밀어진 유일한 구원처럼 보였다.하지만 소은은 그 손을 잡는 대신 제 옷자락만 더욱 세게 움켜쥐었다."왜 여기 계신 거예요.""근처에서 미팅이 있었습니다. 우연히 지나가다 보이길래.""그럼 마저 가던 길 가세요.""이러고 있는데 어떻게 그냥 갑니까."날 선 목소리가 고요한 공원의 밤공기를 갈랐다.태현은 고집스럽게 바닥만 보고 있는 그녀를 내려다보다가 낮게 읊조렸다."무슨 상관인데요, 그게. 우리가 무슨 사이라고."비참했다.가장 보이고 싶지 않았던 괴물 같은 현실을, 하필이면 가장 경계해야 할 남자에게 들켜버렸다는 사실이 소은을 미치게 했다.백제 그룹의 완벽한 후계자, 차갑고 도도한 백가은.그 가면이 이 남자 앞에서만은 너무나도 쉽게 조각나버렸다."안고 가기 전에 빨리 잡아요. 내 인내심 테스트하지 말고."태현의 위협적인 경고에 소은이 그제야 고개를 팍 쳐들었다.가로등 불빛 아래 드러난 그녀의 얼굴은 그야말로 엉망진창이었다.붉게 부어오른 뺨과 대비되게 하얗게 질린 안색.당황함과 수치심이 역력한 눈동자가 파르르 떨리고 있었다."무, 무슨...!""하아, 진짜."짧은 탄식과 함께 태현의 몸이 낮아졌다.대답을 들을 생각 따윈 애초에 없었다는 듯, 그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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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화_나 애인 없습니다

응급실의 소란스러운 공기와 소독약 냄새가 두 사람을 갈라놓았다.태현은 의사에게 소은의 상태를 설명하며 진지하게 대화를 나누었다."더 아픈 곳은 없습니까? 솔직하게 말해요."검사를 마치고 침대에 걸터앉은 소은에게 태현이 다가와 물었다.소은은 애써 시선을 피하며 퉁명스럽게 대꾸했다."없어요.""정밀 검사 풀코스로 예약해 주기 전에 곱게 말하죠. 내 눈엔 그쪽 안색이 당장이라도 쓰러질 사람 같으니까."태현이 침대 가장자리에 걸터앉으며 그녀와의 거리를 좁혔다.소은은 제 코앞까지 다가온 남자의 향기와 압박감에 움찔하며 몸을 뒤로 뺐다."괜찮다고 했잖아요!""자존심 상해서 나한테 말 못 하겠으면 의사한테라도 다 털어놔요. 혼자 앓지 말고."태현은 차가운 조언을 남기고는, 의사에게 조용히 고개를 숙여 보인 뒤 응급실 밖으로 나갔다.홀로 남겨진 소은은 멀어지는 그의 뒷모습을 멍하니 바라보았다.묵직하고 거대한 등이 시야에서 사라지자, 그제야 참았던 한숨이 터져 나왔다.‘도대체 왜 저러는 거야, 나한테.’잠시 후, 처방받은 연고를 바르고 뺨에 커다란 밴드를 붙인 소은이 태현의 차 조수석에 올라탔다.차 안은 지독하게 고요했다.고급 세단 특유의 가죽 냄새와 태현의 향수 냄새가 뒤섞여 밀폐된 공간을 가득 채웠다."백 회장님이 걱정하시겠네요, 그 뺨."핸들을 꺾으며 태현이 툭 던졌다.비아냥이 아니라, 정말 걱정이 서린 목소리였다.하지만 소은에게는 그 소리가 날카로운 송곳처럼 들렸다."...""재계에 소문이 자자하던데. 외동딸이라 금이야 옥이야 끼고 사시는 분이라고.""누가 그래요?"소은의 목소리가 서늘하게 가라앉았다.금이야 옥이야?지극정성?그건 백동우가 대외적인 이미지를 위해 만들어낸 가증스러운 포장지일 뿐이었다."다들 그래요. 백제 그룹의 유일한 후계자인데, 귀하게 안 키웠을 리가 없지.""...네. 귀하게 컸죠, 나름."소은은 대답 대신 창밖으로 시선을 돌렸다.무릎 위에 놓인 주먹이 하얗게 질릴 정도로 힘이 들어갔다.오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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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화_가면 뒤의 진실

"거짓말 말아요.""누가 그럽니까? 당신이 직접 봤습니까?""다들 그래요. 이룸 그룹 후계자의 숨겨진 여자라고 소문이 파다하던데."소은이 아까 그가 했던 논리를 그대로 돌려주자, 태현이 허탈한 듯 실소를 터뜨렸다."아닙니다. 오해할 소지조차 없으니까 토 달지 말고 우리 집으로 가요. 내 집, 방 넘쳐납니다. 당신 하나 재워준다고 큰일 안 나요.""안 간다니까요! 당장 차 돌려요.""아니면, 본인이 나를 덮칠까 봐 무서운 겁니까?""이태현 씨!""걱정 말아요. 방문은 안에서 꼭 잠그고 잘 테니까. 당신이 들어오고 싶어도 못 들어오게."그의 농담 섞인 도발에 소은은 뒷목이 당기는 것을 느꼈다.이 남자와 말씨름을 해서 이길 수 없다는 것쯤은 이미 알고 있었다."집에 가야 돼요. 아버지가 외박하는 거 정말 싫어하시거든요."외박하는 것을 싫어하는 게 아니라, 감시망에서 벗어나는 것을 용납하지 못하는 것이겠지.소은은 차마 뒷말을 잇지 못하고 입술을 깨물었다.태현은 잠시 고민하는 듯 핸들을 손가락으로 가볍게 두드렸다."알겠습니다. 고집 하나는 알아줘야겠네요."태현은 방향지시등을 켜고 소은의 저택으로 차를 돌렸다.거대한 철문이 위압적으로 버티고 있는 백제 그룹의 본가.차가 멈춰 서자 소은은 서둘러 안전벨트를 풀었다."오늘 고마웠어요. 치료비는 나중에 영수증 청구하세요. 비서 통해서 입금해 드릴 테니까.""누가 그랬는지는 끝까지 말 안 해줄 겁니까?"태현의 질문에 소은의 손이 문손잡이 위에서 멈칫했다.대답 대신 차가운 금속의 감촉만이 손끝에 전해졌다."넘어졌어요. 계단에서.""장난합니까, 지금?""그냥 넘어가요."소은의 목소리가 미세하게 떨렸다.태현은 입술을 짓이기며 끓어오르는 감정을 갈무리했다.억지로 캐묻는 것이 그녀에게 또 다른 폭력이 될 것임을 알았다."알겠습니다. 말하고 싶지 않으면 말아요.""......"소은은 대답하지 않고 서둘러 차에서 내렸다.대문을 향해 걸어가는 그녀의 뒷모습은 위태롭기 짝이 없었다.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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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화_약혼 기사

어제의 폭풍 같은 시간은 거짓말처럼 지나갔다.백제 그룹의 아침은 평온했다.아니, 평온을 가장한 침묵이 복도를 짓누르고 있었다.소은은 터진 입술에 컨실러를 겹겹이 덧바르고, 부어오른 뺨을 차가운 마스크로 가린 채 평소와 다름없이 출근했다.자신의 자리에 앉아 서류 뭉치에 파묻히는 것만이 유일한 도피처였다.똑똑-.노크 소리와 함께 문이 열렸다.동석이 들어오며 태블릿 PC를 확인 한다."백 팀장님, 방금 기사가 났는데..."동석의 목소리가 뚝 끊겼다.그의 시선은 소은의 마스크 너머, 가려지지 않은 눈가의 미세한 멍 자국에 머물렀다."왜. 하던 말 마저 해."소은이 서류에서 시선을 떼지 않은 채 건조하게 내뱉었다.하지만 동석은 움직이지 않았다.그의 얼굴이 순식간에 험악하게 일그러졌다."너 얼굴이 또 왜 그래.""별거 아니야. 계단에서 좀 접질렸어.""그게 계단에서 넘어져서 생길 상처야?"동석이 다가와 소은의 책상을 짚었다."또 백 회장 짓이지? 그 영감탱이가 또 너한테 손댄 거냐고.""김동석. 여기 회사야. 입 조심해."소은이 차갑게 일침을 가했지만, 동석은 헛웃음을 터뜨렸다.이가 바득 갈리는 소리가 들릴 정도로 그의 주먹은 부르르 떨리고 있었다."이번엔 또 뭔데. 대체 뭐 때문에 이 사달을 낸 건데.""결혼 안 한다고 했거든.""......"동석의 주먹이 하얗게 질렸다.그럴 줄 알았다는 듯, 그러나 차마 믿고 싶지 않았다는 듯 그의 눈에 안쓰러움과 분노가 뒤섞였다."병원 가자. 당장.""갔다 왔어. 약도 처방받았고."동석의 눈이 가늘어졌다.의아함이 서린 목소리로 그가 되물었다."네가? 너 병원 가는 거라면 질색하잖아. 약 먹으면 정신 멍해진다고 고집부리던 김소은 어디 갔어? 웬일로 순순히 갔다 왔냐?"소은은 펜을 내려놓고 의자에 몸을 풀썩 기댔다.어제 공원에서의 그 비현실적인 순간들.자신을 안아 들던 단단한 팔과 차 안을 가득 채웠던 묘한 향기가 비집고 들어왔다."이 팀장님이 데려다줬어.""누구? 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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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화_사라진 흔적

백동우 회장.어제 그렇게 소은을 짓밟아놓고는, 뒤에서는 보란 듯이 그녀를 상품으로 내걸었다.소은은 머리를 쥐어뜯으며 태블릿을 밀쳐냈다.이제 도망갈 곳은 없었다.세상이 모두 이 결혼을 기정사실로 받아들이기 시작했다."돌아버리겠네, 진짜.""이렇게 되면... 결혼해야겠는데?""말도 안되는 소리.""그냥 해, 결혼. 너 또 맞는 거 난 못봐.""......""또 맞고 오면, 그땐 애들 찾아가서 다 불어버릴거니까.""지금 협박하냐?""저번에 애들 알았다가 어떻게 됐는지 기억하지? 걔들은 백회장이고 뭐고 그런거 몰라.""기억하지, 그 끔찍했던 날. 걔들은 겁도 없이 여길 찾아오고...""알면 몸 좀 아껴, 너."동석이 명심하라는 듯 손가락으로 경고를 주고 팀장실을 나간다.소은이 피식 웃었다.그리고 다시 기사 화면을 내려다봤다.작은 한숨이 새어 나왔다.***같은 시각, 이룸 그룹 디자인 팀장실.태현은 묘한 표정으로 모니터 속 기사를 응시하고 있었다.그의 곁에서 한태풍 비서가 낮은 목소리로 보고를 올렸다."백제 그룹 홍보팀에서 소스를 흘린 모양입니다. 이미 주요 포털 상단에 걸렸습니다.""이상하네. 백가은은 나한테 죽어도 이 결혼 안 하겠다고 했는데."태현이 의자에서 일어나 천천히 창가로 걸어갔다.통유리 너머로 보이는 서울의 빌딩 숲이 오늘따라 유난히 차갑게 보였다."딸이 죽기보다 싫다는 결혼을, 기사까지 내며 밀어붙인다고?"태현의 시선이 날카롭게 가라앉았다.그는 뒤를 돌아 한태풍을 바라봤다."내가 알아보라고 한 건 어떻게 됐어."한태풍이 품 안에서 두꺼운 서류 봉투를 건넸다."어제 오전 내내 백제 그룹 본사에 계시다 오후즈음 싱글라리테 작업실로 향하셨고, 약 5시간 정도 머물다 자택으로 귀가하셨습니다. 특이사항은 없었습니다."태현은 서류를 훑으며 입술을 짓씹었다.가는 길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도 더 알아보라고 덧붙였다."팀장님, 그리고 오늘 오전에 강 경호원님이 다녀가셨습니다."태현의 미간이 단번에 찌푸려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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