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ahat ng Kabanata ng 다른 이름으로 그를 다시 만났다: Kabanata 41 - Kabanata 50

79 Kabanata

41화_스무 해 전의 질문

"백 팀장님.""네.""어머니가 보육원을 운영하셨다는 거, 알고 있습니까."소은의 손이 멈췄다.한 박자.두 박자.서류의 활자가 눈앞에서 뭉개졌다."...네.""언제부터 알았습니까.""오래됐어요.""그 보육원 아이들도 알고 있습니까."조여들었다.가슴이."몰라요.""그럼 그것도 모릅니까.""뭐가요.""저 거기 출신인 거."소은의 입이 꾹 다물렸다."...그랬나요."태현은 더 파고들지 않았다.쳐다보기만 할 뿐.소은은 오히려 그게 더 불편했다.질문이 이어지면 막을 수 있는데.멈추면 막을 수가 없었다.그냥 모른다, 처음 듣는다, 한 마디면 됐다.그런데 입이 움직이지 않았다."서류 보시죠."소은이 먼저 화제를 돌렸다.태현이 고개를 끄덕이며 서류를 다시 폈다.계약 검토는 한 시간 가까이 이어졌다.조항을 짚어가다 보면 어느 순간 목소리 톤이 낮아져 있었다.소은이 짚으면 태현이 받고.태현이 던지면 소은이 되받고.자연스럽게."이 부분. 협의권 기간이 2년이면 짧아요. 4년은 봐야 해요.""기간이 길어지면 그쪽에도 제한이 생깁니다.""알아요. 그래도 4년이에요.""3년으로 하죠.""3년 반."태현이 소은을 잠깐 바라봤다가 시선을 내렸다."...좋습니다."소은이 메모를 달았다.서류를 모으는데, 태현이 다시 입을 열었다."백 팀장님."소은이 멈췄다."어머니를, 그 화재 이후로도 만나셨습니까."손이 굳었다."...무슨 말씀이세요.""그 보육원에서 불이 났습니다."태현이 잠시 침묵하다 말을 이었다."20년 전에.""......""아이들이 많이 죽었습니다."소은은 대답하지 않았다.심장이 미치도록 시끄럽게 뛰었다.태현의 눈이 자신을 보고 있었다.어떤 답을 원하는지 알 수 없는 눈빛으로.소은은 서류 끝을 손가락으로 꾹 눌렀다.그 압력만이 지금 자신을 붙잡아두는 것 같았다."못 만났어요. 연락 안 해요. 서류 다 봤으니 이만 가볼게요."소은은 빠르게 자리를 나왔다.복도로 나오는 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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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2화_가까이 오면 다쳐요

어두운 방.먼지 냄새.그리고 조그맣게 웅크린 아이.집중할 때 뺨을 찌르는 버릇이 있었다.이름을 부르면 못 들었다.불러도 불러도.그래서 손가락으로 반대쪽 뺨을 찌르면 그제야 고개를 들었다.눈이 동그래지면서.태현은 눈을 감았다.그리고 다시 떴다.말이 안 됐다.20년이었다.사람이 같을 수가 없었다.버릇 하나가 같다고.눈빛이 어딘가 닮았다고.그게 무슨 근거가 되나.얼굴도 식습관도, 세상에 비슷한 사람은 얼마든지 있었다.그리고 그 애는 죽었다.태현은 넥타이를 느슨하게 잡아당겼다.목이 조였다.숨이 막히는 것 같았다.창가로 걸어가 창유리에 이마를 살짝 기댔다가, 금방 떼어냈다.유리가 차가웠다.그게 오히려 다행이었다.한태풍이 노크 후 들어왔다."팀장님, 오후 미팅 준비—""어, 가."태현이 짧게 끊고 서류를 집어 들었다.복도로 나서면서, 태현은 한 번 더 생각했다.말이 안 된다.그렇게 결론을 내렸다.내려야 했다.그런데 엘리베이터 버튼을 누르면서도, 서류를 펼치면서도, 그 손가락이 자꾸만 눈앞에서 사라지지 않았다.***밤이었다.소은이 공방 계단을 내려가다 멈췄다.문 앞에 사람이 있었다.가로등 빛이 가까스로 닿는 자리.하얀 코트.느슨하게 늘어진 머리카락.기다리다 지친 사람처럼 기둥에 기대어 선 여자.여자가 고개를 들었다.두 사람의 눈이 마주쳤다."백가은 팀장님."처음 듣는 목소리였다."누구세요?""루루미예요. 이태현 오빠 아시죠?"소은이 그녀를 들여다봤다.새하얗고 창백한 피부.겁에 질린 것도, 당당한 것도 아닌.팽팽한 눈빛이었다.이 여자는 오래 기다린 것 같았다.추운 골목에서.그럼에도 흐트러지지 않으려 버티는 것 같았다."...여기 어떻게 알고 오셨어요?""알아내는게 뭐 어렵다고."빈말이 아니었다.나는 당신에 대해 알 수 있는 사람이라는, 선언 같은 말이었다."무슨 일로 오셨나요.""태현 오빠 어떻게 생각하세요?""무슨 뜻이죠?""정략 결혼 상대잖아요."루루미가 가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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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3화_신혼 준비

이룸 그룹 회장실.창밖으로 도심이 한눈에 내려다보였다.묵직한 원목 책상 위에는 서류가 가지런했다.하지만 이남국이라는 사람은 이 방 분위기와 영 어울리지 않았다.태현이 들어서자마자 이남국이 씩 웃었다."왔어?""부르셨습니까.""앉아."태현이 소파에 자리를 잡았다.이남국은 책상 서랍에서 무언가를 꺼내 느긋하게 걸어왔다.손에 들린 건 제법 두툼한 서류 봉투였다.그는 그것을 태현 앞 테이블에 툭 내려놓으며 맞은편에 앉았다.기다렸다는 듯 팔짱을 꼈다."뭡니까.""열어봐."태현은 봉투를 집어 들었다.안에는 인쇄된 사진들이 빼곡히 들어 있었다.한강이 내려다보이는 고층 아파트.단독 주택풍 고급 빌라.도심 한복판의 펜트하우스.각 매물마다 면적과 층수, 내부 컨디션이 깔끔하게 정리된 메모까지 붙어 있었다.누가 봐도 공을 들인 흔적이었다."이사하시게요?""내 집이 아닌데."이남국이 흡족한 표정으로 등을 기댔다.태현은 사진들을 한 장씩 넘기며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세 군데 정도 좁혔어. 다음 주 중으로 같이 돌아보면 되겠다.""아버지 집이 아니면 누구 집입니까?""너희 집.""전 이사 할 생각 없는데요."이남국이 피식 웃었다.기다렸다는 듯."결혼하면 해야하잖아. 지금 사는 곳을 신혼집으로 쓰려구?"태현의 손이 잠깐 멈췄다."저 결혼 안한다니까요.""야, 이태현."이남국이 상체를 앞으로 기울였다.그의 눈에 장난기가 가득했다."진짜 안할거야? 확실해? 100프로?""......"이남국 회장이 배까지 잡고 껄껄 웃었다."아버지, 진짜...""왜.""프로젝트 서류는 보고 계신 겁니까. 이런 쓸데없는 거 할 시간이 있으세요?"이남국이 피식 웃으며 커피잔을 들었다.천천히 한 모금 마시더니 잔을 내려놓고 다시 태현을 봤다.뭔가 더 하고 싶은 말이 있는 눈이었다."바쁜데 먼저 나가도 됩니까.""안 돼. 앉아 있어."이남국이 손을 들어 제지했다.그리고 자리에서 일어나더니 다시 서랍으로 향했다.이번엔 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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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4화_뜻밖의 목격

그는 눈가를 손등으로 훔치며 자리에서 일어났다."알겠어, 알겠어. 바쁜 사람 붙잡았네."태현도 따라 일어섰다.이남국이 신혼집 후보가 담긴 봉투를 건넸다."혹시 모르니 가지고 가. 언젠가 쓸데가 있겠지. 그리고 이태현."태현이 멈추며 돌아봤다.이남국의 표정이 처음으로 진지해졌다.장난기가 걷히고 나니, 그 눈빛이 생각보다 깊었다."놓치면 다음은 없어."짧은 말이었다.하지만 담긴 게 많은 말이었다.태현은 그 말을 받아내지 않았다.받아내기가 어려웠다.대답 대신 가볍게 고개를 숙이고 회장실을 나왔다.복도로 나서는 순간, 태현은 미간을 좁혔다.입술 안쪽을 한 번 깨물고는, 걸음을 뗐다.놓치면 다음은 없다.그 말이자꾸만 걸음 뒤를 따라왔다.***이룸 그룹 로비는 점심시간이 지난 직후라 한산했다.막 도착한 김동석이 안내 데스크 앞에 섰다.백제 그룹 측 디자인 자료를 전달하러 온 거였다.소은이 직접 오기엔 오늘 일정이 빠듯했고, 그 심부름이 자연스럽게 동석 몫으로 떨어졌다."백제 그룹에서 왔습니다. 디자인부서 이태현 팀장님 앞으로 자료 전달건이요.""잠시만요."안내 직원이 내선을 돌리는 사이, 동석은 멍하니 로비를 훑었다.넓고 깔끔한 공간이었다.백제 그룹 본사와 결이 달랐다.무게보다는 세련됨.억압보다는 여백.이쪽 공기가 훨씬 편하다는 생각이 드는 건, 기분 탓만은 아닐 것 같았다.별생각 없이 소파 쪽으로 시선을 흘렸다.그리고 멈췄다.로비 한쪽 소파 근처.이태현이 서류를 들고 서 있었다.한태풍이 옆에서 뭔가를 설명하는 중이었다.그건 뭐 그럴 수 있었다.이상할 게 없었다.문제는 그 옆이었다.한 여성이 태현의 팔에 제 팔을 꿰고 있었다.어깨가 태현의 어깨에 닿을 듯 말 듯.태현이 서류를 보는 동안 그녀는 옆에서 그의 얼굴을 올려다보고 있었다.마치 원래 자기 자리인 것처럼.한태풍조차 그 옆에서 서류를 넘기며 아무렇지 않았다.동석의 발이 저절로 멈췄다.언젠가 들었던 이름이 스쳤다.루루미.이태현의 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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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5화_엄마 딸의 기일

동석은 가볍게 목례를 했다.표정을 최대한 아무렇지 않게 유지하면서.태현이 루루미의 팔을 자연스럽게 거두었다.빠르지도, 느리지도 않게.그러나 분명하게.루루미가 눈을 깜빡이며 태현을 올려다봤다.태현은 그 시선을 받지 않고 곧바로 동석에게로 걸어간다.한태풍은 애매한 표정으로 클립보드를 가슴 앞으로 끌어안았다.루루미는 눈치를 챈 건지 아닌 건지 모를 얼굴로 소파에 천천히 앉았다.태현이 동석의 앞에 선다."...김 비서님.""네, 안녕하세요 이 팀장님."태현의 표정이 당황한 듯, 혹은 곤란한 듯 구겨졌다.동석이 태현에게 디자인 자료를 건낸다."백 팀장님이 전해달라고 하셔서요.""아, 네...""그럼 전 이만 가보겠습니다.""......"동석이 돌아서며 속으로 짧게 내뱉었다.김소은에게 말해야 하나, 말아야 하나.답은 이미 나와 있었다.소은이 알면 아무 내색도 하지 않을 거였다."그래서?"라는 얼굴로 넘길 거였다.그리고 그 밤에 혼자 그 뉴스를 반복 재생하겠지.소파에 엎드려서.동석은 천장을 짧게 올려다봤다.그리고 피식 웃었다.'저 인간, 당황했네.'그 냉철하다는 이태현 팀장의 당황한 표정을 본 것이 퍽 재미있었다.마치 소은에게 소식이 전해질까 두려운 사람처럼.***백제그룹 계열 병원.VIP 병동은 본관과 동선이 분리되어 있었다.전용 엘리베이터.별도의 안내 데스크.층마다 배치된 전담 간호 인력.소은은 이 복도를 수도 없이 걸었다.지겨울 만큼.그런데도 이 층에 발을 딛는 순간만큼은 늘 걸음이 무거워졌다.아무리 익숙해져도 익숙해지지 않는 것이 있었다.1인 병동.끝에서 두 번째 방.소은은 문 앞에 멈췄다.손잡이를 잡지 않은 채 문을 한동안 바라보았다.안에서 소리는 나지 않았다.항상 그랬다.이 방은 언제나 조용했다.기계음도, 발소리도, 말소리도 없었다.그 고요함이 오히려 더 무거웠다.소은이 천천히 문을 열었다.창가 쪽 침대.얇은 햇살이 흰 침구 위에 내려앉아 있었다.오후의 기운 없는 빛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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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6화_존재하지 않는 생존자

백제 그룹 본사 근처 카페.점심시간이 막 끝난 직후라 사람들이 많이 빠져나간 후였다.동석이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홀짝이며 테이블 위에 메모지를 펼쳤다.빼곡하게 적힌 메모였다.소은은 맞은편에서 스케치북을 들여다보는 척하며 연필을 굴리고 있었다.동석은 이 패턴을 잘 알았다.관심 없는 척하지만, 귀는 늘 열려 있었다."들을 거야, 말 거야.""말거야.""뻥치지 말고."소은이 연필을 내려놓으며 시선을 들었다.동석이 메모지를 집어 들었다."루루미. 27세. 이룸 그룹 호텔에서 생활하고 있고, 별다른 수입은 없는 거 같더라. 가끔 프리랜서 스타일리스트 일을 한다고는 하는데.""......"소은은 대꾸하지 않았다.동석은 아랑곳하지 않고 메모지를 계속 읽어 내려갔다."이태현이랑 연인 관계라는 소문은 도는데 확실한 건 모르겠어. 근데 가까운 사이인 건 맞아. 이태현이 전 약혼녀랑 파혼했을 때도 곁에 있었다고 하고.""그게 나랑 무슨 상관이야.""상관은 없지. 그냥 알고 있으라고. 모르는 것보다는 낫잖아."소은이 다시 스케치북으로 시선을 내렸다.동석은 잠깐 그 얼굴을 들여다봤다.보는 척하고 있지만 연필이 움직이지 않았다.듣고 있었다.집중해서."그리고."동석이 메모지를 한 번 접었다가 다시 폈다.목소리를 조금 낮췄다."루루미, 보육원 출신이래. 지금은 어딘가로 입양 되긴 했는데."소은의 연필이 멈췄다."...무슨 보육원?""푸른 보육원."정적이 짧게 내려앉았다.소은이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동석의 눈과 마주쳤다.두 사람 사이에 같은 생각이 흘렀다."무슨 소리야. 내가 푸른 보육원 애들을 몰라?""화재 사건 생존자라던데?"소은의 미간이 좁아졌다."장난쳐?""내가 이런걸로 뭐하러 장난을 치냐?""그럴 리가 없는데.""그러니까."동석이 아메리카노를 한 모금 마셨다.컵을 내려놓는 소리가 유난히 크게 들렸다."은아. 그 화재 생존자. 우리가 알기론 일곱 명이잖아.""응.""더 있었나?"소은이 입술을 천천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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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7화_일곱 명의 생존자

아이 스물둘.어른 셋.살아남은 사람은 아이 여섯, 어른 하나.그 일곱 명을 소은은 전부 알고 있었다.그 숫자는 지금까지 한 번도 흔들린 적이 없었다.루루미는 그 안에 없었다."​알아봐줄 수 있어?""이미 시작했어."동석이 메모지를 접어 주머니에 넣으며 일어섰다."루루미가 이태현 옆에 있는 이유가 단순한 게 아닐 수도 있어. 그냥 참고해."소은은 대답하지 않았다.동석이 나간 뒤에도 한동안 그 자리에 앉아 있었다.손 안에서 연필이 느리게 돌았다.푸른 보육원.화재.일곱 명.소은은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났다.스케치북을 가방에 넣으며 속으로 한 번 더 되뇌었다.김승아, 김수영, 김도휘, 김태수, 김동석, 김소은 그리고 윤세화.변하지 않았다.***백제 그룹 디자인팀.야근이 시작된 오후 여덟 시.복도는 조용했다.퇴근한 직원들이 비운 자리마다 모니터 불빛만 희미하게 남아 있었다.팀장실 불은 켜져 있었다.소은은 안에서 원단 샘플을 펼쳐두고 구조를 들여다보는 중이었다.그때, 노크 소리."네."문이 열렸다.소은이 고개를 들었다가 굳었다.이태현이었다.손에 편의점 봉투를 들고.정장 차림 그대로였다.넥타이를 조금 풀었을 뿐, 퇴근하다 들른 사람처럼 보이지 않았다.일부러 온 사람처럼 보였다."​여기 어떻게 오셨어요?""근처에 미팅이 있었습니다.""또요?""자주 있습니다."두 사람이 잠깐 서로를 봤다.태현의 표정은 평소와 같았다.소은은 그 평온함 아래 무엇이 숨겨져 있는지 짐작하면서도, 모른 척하기로 했다.태현이 봉투를 책상 한쪽에 내려놓았다.김이 새어 나오는 도시락 용기와 캔 음료.소은은 그것을 내려다봤다.그리고 태현을 봤다.그리고 다시 도시락을 봤다."제껀가요?""네."태현이 봉투를 내려놓고 방 안을 한 번 훑었다.원단 샘플들이 바닥까지 펼쳐져 있었다.마네킹에는 미완성 실루엣이 걸려 있었다.조명을 제외하면 이미 어두운 시간이었다."늦게까지 일하네요.""이룸 프로젝트 방향 좀 잡으려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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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8화_여덟 번째는 없었다

"이 팀장님.""네.""루루미 씨 말이에요."태현의 동선이 멈췄다."저한테 찾아왔던 거 알고 계세요?"잠깐의 침묵."​예?""저한테 이 팀장님과 아주 뜨거운 사이라고 경고하던데요.""그게 무슨ㅡ""뭐 관심 없어요. 이 팀장님이 애인 있다는 건 저랑 상관 없으니까."태현이 돌아봤다.소은은 밥을 한 술 뜨며 시선을 내렸다."저희는 그냥, 비즈니스 계약 관계니까.""​...루루미는 애인이 아닙니다.""몰라도 돼요, 저는. 제 일이 아니니까요."태현이 입을 다물었다.소은은 도시락을 먹었다.방 안에 숟가락 소리만 낮게 깔렸다.더 말하지 않겠다는 선이 소은 쪽에서 분명하게 그어졌다.그리고 소은은 그 선을 스스로도 넘지 않으려 했다.태현은 그 선을 넘지 않았다.소파에 앉았다.가지 않았다."맛있습니까.""​...네.""다행이네요."소은이 손을 멈추고 태현을 올려다봤다.태현은 창밖을 보고 있었다.도심의 불빛이 그의 눈에 반사됐다.이 늦은 시간에, 이 사무실에, 별다른 이유도 없이 앉아 있는 사람처럼 보였다.설명하지 않았다.해명하지도 않았다.그냥 거기 있었다.소은은 그 옆모습을 한 박자 보다가 다시 숟가락을 들었다.이 사람이 왜 왔는지 모르는 척하기로 했다.더 묻지 않기로 했다.두 사람 사이의 온도는, 아까보다 조금 낮았다.소은이 차갑게 잘라낸 탓이었다.하지만 소은이 도시락을 다 비울 때까지, 태현은 일어나지 않았다.그냥 앉아서 창밖을 보고 있었다.아무 말도 하지 않고.소은은 빈 용기를 봉투에 넣으면서 그 사실을 못 본 척했다.태현이 일어났다.봉투를 들고."다 먹었습니까.""​...네. 감사해요."짧은 대꾸였다.태현이 문 쪽으로 걸어갔다.손잡이를 잡는 순간, 소은이 시선을 들었다.태현의 뒤통수.반쯤 풀린 넥타이.일부러 여기까지 왔을 사람.소은은 입을 열지 않았다.태현도 돌아보지 않았다.문이 닫혔다.팀장실이 다시 조용해졌다.소은은 한동안 닫힌 문을 바라봤다.그리고 원단 샘플 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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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9화_깨진 유리 너머

이룸 그룹 계열 호텔.20층 스위트룸.쨍그랑ㅡ유리 깨지는 소리가 복도까지 울렸다.강우현은 문 앞에 서서 눈 하나 깜빡이지 않았다.안에서 무언가 굴러가는 소리, 바닥을 차는 소리, 낮게 짓눌린 울음이 섞여 들렸다.경호원 생활 4년.그중에서 이 방 앞을 지킨 지 1년 반.이 소리들은 이제 배경음처럼 익숙했다.또 시작됐구나.강우현은 팔짱을 끼고 벽에 등을 기댔다.들어가지 않았다.들어가봤자 소용없다는 걸 알았다.루루미는 누가 보는 앞에서 멈추는 사람이 아니었다.오히려 더 세졌다.자신이 보여지는 걸 의식하는 순간, 감정이 더 격해지는 타입이었다.그러니 그냥 기다리는 게 맞았다.기다리면 결국 멈췄다.항상.안에서 다시 쨍, 하는 소리.이번엔 더 컸다.강우현이 미간을 좁히며 문 쪽으로 반 걸음 다가섰다.무언가 날아와 문 안쪽을 때리는 소리가 들렸다.그리고 잠깐의 정적.강우현이 조심스럽게 문을 열었다.실내는 엉망이었다.화병이 쓰러져 있었다.물기가 카펫 위에 번져 있었고, 깨진 유리 조각들이 바닥 곳곳에 흩어져 있었다.꽃잎이 물에 젖은 채로 흩어져 있었다.루루미는 창가에 주저앉아 있었다.무릎을 끌어안은 채.얼굴을 파묻은 채.강우현은 조심스럽게 발을 옮겼다.유리 조각을 피해 한 걸음, 두 걸음.그 순간이었다.툭.작은 통증이 발을 찔렀다.강우현이 시선을 내렸다.발끝에 작은 핏줄기가 맺혀 있었다.깨진 유리 조각 하나가 신발 코 옆에 떨어져 있었다.강우현은 발을 잠깐 내려다봤다.그리고 조용히 뒤로 물러나 문을 닫았다.복도로 나와 신발을 벗어 확인했다.크지 않았다.깊지도 않았다.일회용 반창고 하나면 충분한 상처였다.별거 아니었다.이것보다 심한 날도 있었다.강우현은 짧게 한숨을 내쉬었다.감정이 실린 한숨이 아니었다.그냥 습관처럼 나오는 숨이었다.그리고 핸드폰을 꺼내 한태풍에게 전화를 걸었다.신호음이 한 번 울리고 바로 연결됐다."한 비서님. 저 강우현입니다. 루루미 씨 오늘 또 방에서 물건 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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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화_사라진 보육원의 자리

[혼자 두면 또 이런 일이 생길 수 있습니다.]"내가 알아서 할게."짧고 단호한 말이었다.한태풍이 더 묻지 않았다.[알겠습니다.]전화가 끊겼다.태현은 핸드폰을 무릎 위에 내려놓았다.눈을 감았다가 떴다.창밖으로 풍경이 흘렀다.도심을 벗어나 외곽으로 이어지는 길.공장 지대가 가까워지는 구간이었다.운전기사가 속도를 줄였다.신호였다.태현은 무심히 창밖을 바라봤다.그리고 천천히 눈썹이 좁혀졌다.도로 옆으로 넓은 공장 건물이 보였다.회색 외벽.정면에 박힌 로고.백제 그룹 협력 공장이었다.그 자체로는 이상할 게 없었다.외곽 지대에 공장이 있는 건 당연한 일이었다.그런데 태현의 시선이 그 건물에서 멈췄다.벗어나지 못했다.여기.어딘가 익숙한 지형이었다.도로의 굴곡.주변 지형의 낮은 언덕.가로수의 배치.태현은 기억을 더듬었다.옛날에, 아주 옛날에.이 근처를 걸었던 기억이 있었다.어린 시절.보육원에서 아이들이 가끔 이 근처까지 산책을 나왔다.하천 쪽으로 걷다가 돌아오던 길.그 길목 어딘가에.태현이 눈을 가늘게 떴다.푸른 보육원이 있었다.분명했다.착각이 아니었다.어릴 때 이 길을 걸었던 기억이 있었다.왼쪽으로 꺾이면 하천이 나오고, 그 전에 작은 슈퍼가 있었다.슈퍼 아주머니가 가끔 아이들한테 사탕을 줬다.그 기억이 또렷했다.그리고 그 길목에 낡은 담장이 있었고, 담장 너머가 보육원이었다.지금 그 자리에 백제 그룹 공장이 세워져 있었다.신호가 바뀌었다.차가 천천히 출발했다.공장 건물이 창밖으로 스쳐 지나갔다.태현은 그것이 완전히 사라질 때까지 시선을 거두지 않았다.건물이 사라지면 그 자리에 새 건물이 들어서는 건 당연한 일이었다.20년이었다.오래된 일이었다.이상할 게 없었다.도시는 계속 바뀌고, 낡은 것들은 사라지고, 새 것들이 채워졌다.그게 당연한 순서였다.그런데 왜인지, 발밑이 꺼지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단순한 감상이 아니었다.뭔가 걸리는 게 있었다.보육원이 불탄 자리 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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