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ahat ng Kabanata ng 다른 이름으로 그를 다시 만났다: Kabanata 51 - Kabanata 60

79 Kabanata

51화_낯선 모습의 그녀

이태현이었다.소은의 얼굴이 굳었다.양복 차림이었다.외근에서 돌아오는 길인지 넥타이를 매고 있었다.서류 파일을 한 손에 들고 공장 쪽으로 걸어오던 중이었던 것 같았다.그리고 지금 그 걸음이 멈춰 있었다.소은을 보면서.두 사람이 굳어 있었다.소은의 머릿속이 빠르게 돌아갔다.공장.토요일.이 시간.왜 여기에.외근이 이쪽 방면인가.아니, 그보다 지금 이 차림이 문제였다.후드티.집게핀.컨버스.팔 가득 천.백가은이 절대 보여서는 안 되는 모습이었다."​백 팀장님."태현의 목소리가 평소보다 반 박자 높게 나왔다.소은은 그것을 인지하면서 속으로 욕을 삼켰다."안녕하세요.""​...네."태현은 먼저 인사를 건넸지만 시선이 소은에게서 떠나지 않았다.소은의 얼굴부터 팔 안의 천 뭉치까지 천천히 훑어내렸다.집게핀이 한쪽으로 삐딱하게 꽂힌 머리.후드티 소매에 묻은 원단 먼지.신발 코가 닳은 컨버스.소은은 태현의 그 시선을 정면으로 받으면서 최대한 아무렇지 않은 표정을 유지하려 했다.잘 되지 않았다.귀가 달아오르는 게 느껴졌다."여기서 뭐 하고 있습니까.""​...공장에 들를 일이 있었어요.""토요일에.""​...네."소은이 천 뭉치를 다시 고쳐 안으며 자세를 바로잡으려 했다.그런데 묶인 줄 알았던 원단 하나가 스르르 미끄러졌다.소은이 빠르게 무릎을 굽혀 발로 받쳐냈다.그 바람에 집게핀이 완전히 빠지면서 머리카락이 한꺼번에 흘러내렸다."아—"조용히 탄식이 새어나왔다.이 상황이 너무 싫었다.하필 이 사람 앞에서.소은이 천을 놓치지 않으려 버둥거리는 사이, 태현이 다가왔다.미끄러지는 원단을 한 손으로 받쳐 들었다.두 사람이 아주 가깝게 섰다.소은이 고개를 들었다.태현이 내려다보고 있었다.거리가 가까웠다.소은의 부시시한 머리카락이 풀려내려 있었다.그 상태로 눈이 마주쳤다.태현은 웃지 않았다.표정이 바뀌지 않았다.하지만 눈빛이 달랐다.뭔가를 꾹 눌러두고 있는 사람의 눈이었다.보는 사람이 모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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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2화_뜻밖의 재회

원래 가려던 식당은 문이 닫혀 있었다.문에 붙은 종이에는 '사정으로 인해 휴업'이라고만 적혀 있었다.태현은 조금 당황한 듯 그 앞에서 잠깐 서 있다가 몸을 돌렸다."다른 데 찾죠.""여기 아는 데 많으세요?""어릴 때 근처를 자주 걸었습니다. 더 걸어보죠, 뭐."소은은 그 말을 가만히 받았다.더 묻지 않았다.태현이 앞서 걷기 시작했다.소은이 그 옆을 따라 걸음을 맞췄다.두 사람이 나란히 골목을 걸었다.저녁이 깔리기 시작한 거리였다.가게 간판들이 하나둘씩 불을 밝히고, 퇴근하는 사람들이 인도를 채웠다.태현은 걸으면서 가끔 멈추었다.골목 어귀에서, 갈림길 앞에서.잠깐 주변을 살피다가 다시 걸었다.소은은 그 동선이 길을 찾는 게 아니라는 걸 느꼈다.기억을 더듬는 사람의 걸음이었다.태현의 시선이 가로수를 향했다가, 낮은 담장 쪽으로 향했다가, 다시 앞으로 돌아왔다.소은은 자신도 모르게 그 시선의 방향을 따라가고 있었다.그러다 태현의 발이 멈췄다.소은도 함께 멈췄다.골목 안쪽, 낡은 간판 하나가 보였다.'분식'이라고만 적힌 세로 간판.빛이 바래 글자 일부가 흐릿했다.보육원이 없어진 후에도 계속 왔던 곳이라, 소은에게는 여전히 익숙한 곳이었다.유리창 안에 불빛이 켜져 있었다.안에 사람들이 있었다.태현이 그걸 바라보고 있었다.표정이 바뀌었다.크게 바뀐 게 아니었다.그런데 소은은 알아봤다.무언가에 가로막힌 사람의 얼굴.앞으로 가야 하는데 발이 안 떼어지는.소은이 태현 쪽을 보았다."여기 가고 싶으세요?"태현이 소은을 내려다봤다.소은은 간판 쪽으로 고개를 살짝 기울이며 다시 물었다."여기요. 들어갈까요?"짧은 침묵."​...들어가죠."태현이 먼저 문을 밀었다.문이 열리는 순간, 소은의 발이 굳었다.긴 테이블 앞에 네 명이 옹기종기 앉아 있었다.소은이 지금 제일 만나서는 안되는 얼굴들이었다.김동석.그리고 그 옆으로 승아, 수영, 도휘.동석이 우동을 집어 올리다가 문 쪽을 보았다.소은과 눈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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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3화_변하지 않은 그 맛

그 찰나였다.도휘가 소은을 발견하고 아무것도 모른 채 손을 번쩍 들었다."어, 김소ㅡ"퍽ㅡ!동석의 손이 도휘의 뒤통수를 정확하게 때렸다."아악! 왜 때려!""조용히 해.""갑자기 왜ㅡ""조. 용. 히."동석이 이를 악물고 눈을 부릅떴다.도휘가 자기 뒤통수를 감싸 쥐며 억울하다는 표정으로 동석을 노려봤다.수영이 소은의 옆에 서 있는 남자를 보고 상황 파악을 한 건지 눈을 도르륵 굴리다 그냥 우동을 먹기 시작했다.승아만이 소은과 눈을 마주치며 손을 흔들었다.태현이 소은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김 비서님이시네요. 다들 아는 사이인가요?""​네, 친구들...""김 비서님과 친구였구나."태현이 잠깐 동석 쪽을 바라보았다.동석은 냅킨으로 테이블을 닦으며 최대한 태연한 척하고 있었다.그 옆에서 도휘가 계속 뭐라고 투덜거렸다.태현은 어딘가 익숙하게 느껴지는 얼굴들을 잠깐 빤히 바라봤다.동석이 그 시선을 느끼고 친구들에게 아주 작게 속삭였다."눈 깔아.""뭐?""눈 깔라고, 빨리.""얘가 뭘 잘못 먹었나, 악!"동석이 모두의 머리를 잡고 아래로 눌렀다.태현이 움찔하더니 시선을 피했다."...자리 잡겠습니다."태현이 동석 테이블에서 멀찍이 떨어진 안쪽 자리로 걸어갔다.소은이 따라가면서 동석 테이블 옆을 지나쳤다.동석이 소은의 옷자락을 슬쩍 잡아당겼다."야, 이게 무슨 상황이야."입술만 움직이는 소리였다.소은이 그 손을 가만히 떼어놓으며 앞으로 걸었다.설명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다.메뉴판을 받아 든 순간, 태현의 눈이 한 줄에서 멈췄다.어묵 우동.3,500원."​가격이 많이 오르지 않았네요.""...옛날 가격을 기억해요?"태현이 당연하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소은이 메뉴판을 내려놓으며 식당 안을 한 번 훑었다.낮은 천장.오래된 플라스틱 의자.메뉴가 적힌 벽면 종이가 군데군데 누렇게 변색되어 있었다.할머니가 주문을 받으러 왔다."뭐 줄까?""백 팀장님, 어묵 우동 괜찮습니까."소은이 고개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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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4화_소중한 사람

창가 쪽에서 수영이 낮게 웃는 소리가 들렸다.동석이 또 무언가를 조용히 주문하는 소리가 들렸다.이상하게 편한 저녁이었다.***식당을 나온 건 한 시간쯤 지난 뒤였다.동석은 화장실을 들리는 척 지나치면서 소은의 옷자락을 다시 한번 잡아당겼다.'내일 얘기해'였다.소은은 그냥 뿌리쳤다.밖은 어둑해져 있었다.가로등이 하나씩 켜지고 있었다.두 사람이 나란히 걸었다.방향은 정해져 있지 않았다.태현이 먼저 걷기 시작해서, 소은이 그 옆을 따라갔다.태현의 걸음이 느렸다.아까보다 더 느려졌다.소은은 그 속도에 맞춰 걸으면서 주변을 살폈다.낮은 담장들.오래된 벽면.가로수.그리고 한 곳에서 태현이 멈췄다.백제 공장 뒤편.넓지 않은 공터 앞이었다.잡초가 드문드문 난 땅.그 너머로 새로 지어진 건물들이 이어졌다.공터만 비어 있었다.태현이 그걸 바라보았다."여기."낮은 목소리였다."보육원이 있었습니다."소은의 발이 멈췄다.태현이 공터 쪽으로 시선을 고정한 채 말을 이었다."거기서 자랐습니다. 아홉 살까지."소은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태현도 말을 잇지 않았다.두 사람이 나란히 서서 그 빈 공터를 바라봤다.바람이 지나갔다.잡초들이 흔들렸다.태현의 눈이 저 공터 안에 있는 게 아니라는 걸 소은은 알았다.20년 전 어딘가에 가 있었다.소은이 천천히 입을 열었다."​저 쪽으로 조금 더 가면."태현이 소은을 내려다봤다."담벼락이 아직 남아 있는 데가 있어요."태현의 눈이 흔들렸다.소은이 애써 시선을 피하며 말했다."...공장 관계자한테 들었어요. 이전부터 있던 담벼락이라고."소은이 먼저 걸었다.공터 옆 골목으로.태현이 그 뒤를 따랐다.길 끝에 낡은 담벼락이 남아 있었다.무너지다 만 듯.시멘트 위로 세월이 얼룩처럼 내려앉아 있었다.태현이 담벼락 앞에서 멈췄다.손을 들었다.손바닥으로 담벼락 표면을 짚었다.거칠고 차가운 면이었다.손가락이 천천히 움직였다.무언가를 확인하듯.오래 그러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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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5화_푸른 보육원

분식집 문이 열렸다.찬 공기가 한꺼번에 밀려들었다.동석이 제일 먼저 나오고, 그 뒤로 수영, 도휘, 승아가 줄줄이 따라 나왔다.태현과 소은은 아직 안에 있을 때였다.동석이 외투 지퍼를 올리며 먼저 걸었다.나머지 셋이 그 뒤를 따랐다.푸른 보육원까지는 차로 이십 분 거리였다.새로 지은 건물이었다.예전 자리에서 조금 떨어진 곳.몇 년 전, 수영이 자신의 이름을 걸고 다시 문을 연 곳이었다.지금 살고 있는 아이들은 달랐지만, 간판 이름은 그대로였다.밤바람이 제법 찼다."야, 근데 진짜로 태현이 형이야?"도휘가 먼저 터뜨렸다.동석이 눈을 감았다가 떴다."조용히 해.""확실히 변하긴 했는데 눈매는 똑같더라.""......""끝까지 말 안 할 거야?""뭘 말해, 멍청아."동석이 낮게 쏘아붙였다."소은이에 대해서도 다 말하게?"도휘가 입을 다물었다.그제야 전체 상황이 연결된 모양이었다.도휘가 자기 뒤통수를 다시 한번 감쌌다."그래서 나 때린 거야?""응.""미리 말해주지.""말할 시간이 어딨어."도휘가 억울하다는 표정을 지었지만 더 따지지 않았다.네 사람이 한동안 말없이 걸었다.가로등이 하나씩 켜지고, 골목이 넓은 길로 이어졌다.수영이 먼저 입을 열었다."확실히 20년이 짧진 않구나. 길에서 만났으면 못 알아봤겠어."아무도 반박하지 않았다."잘 생겼던데? 은이, 좋겠네~."수영이 말했다.동석이 피식 웃었다."파혼 했다니까.""응? 근데 소은이는 어떻게 저 사람이랑 같이 밥을 먹고 있어? 파혼한 사이인데."동석은 대답하지 않았다.걸음을 좀 더 빠르게 뗐다.어느새 차를 세워둔 곳에 도착했고, 네 사람은 하나둘 차에 올랐다.도휘가 슬쩍 동석 옆으로 붙었다."야, 동석아.""왜.""태현이 형, 우리 알아본 것 같지 않아?"동석의 시선이 한 박자 흔들렸다."아니야.""표정이 좀 이상하지 않았어? 우리 보는데."수영이 하품을 하며 대꾸했다."이상한 사람들인가 싶어서 봤겠지. 옆에서 우동 뱉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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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6화_선을 넘는 질문

이룸 그룹 본사 회의실.오전 11시.백제 그룹과의 협업 프로젝트 중간 점검 회의였다.이룸 측 참석자는 태현과 한태풍, 그리고 이영돈 본부장이었다.백제 측은 소은이 단독으로 왔다.소은이 자료를 펼치는 사이, 이영돈이 맞은편 자리에 앉았다.그는 오자마자 소은을 한 번 훑어봤다.빠르고 조용하게.그러나 테이블 건너편에 앉은 태현에게는 보였다.태현은 펜을 손가락 사이에서 천천히 돌렸다.회의가 시작됐다.소은이 진행 현황을 설명했다.자료 구성이 깔끔했다.설명도 군더더기 없었다.이영돈이 중간에 몇 번 끼어들었다.처음엔 업무적인 질문이었다."디자인 방향성이 S의 기존 스타일과 다소 차이가 있는 것 같은데, 이 부분은 어떻게 조율하실 생각입니까.""S의 스타일을 베이스로 하되, 이번 프로젝트 콘셉트에 맞게 일부 조정하는 방향으로 협의 중입니다. 다음 주 안에 수정안 나올 예정입니다.""S와 직접 소통이 가능한 겁니까. 중간에 다른 단계가 있는 건지.""직접 소통합니다."이영돈이 고개를 끄덕이며 소은을 봤다.그 눈빛이 아까보다 좀 더 오래 머물렀다."백 팀장님이 S와 상당히 가까운 사이인 것 같은데."소은이 자료에서 시선을 들었다.이영돈과 눈이 마주쳤다.소은은 표정을 바꾸지 않았다."네."이영돈이 피식 웃으며 팔을 테이블 위에 올렸다."신기하네요. S가 그렇게 오랫동안 익명을 고집하는 사람인데, 백 팀장님하고만 직접 소통이 된다는 게. 보통 인연은 아닌 것 같은데.""......""그럼 백 팀장님 개인적으로는 어떤 분입니까. S가."소은이 한 박자 두고 대답했다."프로젝트랑 관련 없는 질문 아닌가요.""그냥 궁금해서요. 어떻게 그런 인연을 만드셨나 싶어서. 나이도 어리신데. 인맥 관리를 잘하시네요."그때 태현이 펜을 내려놓았다.소리가 작았다.그런데 이상하게 회의실 안에서 또렷하게 들렸다.이영돈과 태현이 잠깐 시선을 교환했다."이 팀장과 결혼이 무산되었다지? 이룸에 다른 사람은 어때요? 예를 들면ㅡ""본부장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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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7화_진짜 생존자

회의는 한 시간 더 이어졌다.이영돈은 이후로 업무적인 말만 했다.그런데 가끔 소은 쪽으로 향하는 시선이 있었다.태현은 그걸 볼 때마다 자료를 넘기거나 끼어들었다.자연스럽게.그러나 분명하게.회의가 끝나고 이영돈이 먼저 자리를 떴다.한태풍도 자료를 챙겨 나갔다.회의실에 태현과 소은 둘만 남았다.소은이 파일을 정리하며 먼저 입을 열었다."원단 샘플 일정, 제가 담당자한테 직접 확인하고 연락드릴게요.""네.""다음 회의는 다음 주 화요일로 잡으면 될까요.""그렇게 하죠."소은이 자리에서 일어섰다.가방을 들었다.태현은 아직 앉아 있었다."백 팀장님."소은이 멈췄다."이 본부장이 또 접촉하면."태현이 말을 잠깐 멈췄다."저한테 말해요."소은이 태현을 내려다봤다.태현은 자료를 보고 있었다.소은 쪽을 보지 않았다."업무상 불필요한 접촉이면 제가 차단하는 게 맞습니다."소은은 잠깐 그 옆얼굴을 바라봤다."...알겠습니다."그리고 회의실을 나왔다.복도로 나서는 순간, 소은이 짧게 숨을 내쉬었다.이영돈의 시선은 불쾌했다.그런데 태현이 끼어들 때마다 그것이 차단되는 느낌이 들었던 것도 사실이었다.소은은 그 감각을 빠르게 지웠다.불필요한 것에 마음을 쓰면 안 됐다.***도심 변두리, 공방 골목.밤 9시.동석이 공방 쪽으로 걸어오다가 골목 입구에서 멈췄다.누군가 있었다.공방 건물 맞은편 담벼락 쪽에 여자가 서 있었다.하얀 코트.움직이지 않고 그냥 서서 공방 쪽을 바라보고 있었다.동석의 눈이 가늘어졌다.루루미였다.동석은 그 자리에서 잠깐 서서 상황을 살폈다.루루미는 공방 건물을 바라보고 있었다.안이 보이는지 확인하려는 건지, 아니면 그냥 서 있는 건지 알 수 없었다.안에 불이 켜져 있었다.소은이 있다는 뜻이었다.동석이 걸음을 뗐다.루루미가 소리를 듣고 고개를 돌렸다.동석과 눈이 마주쳤다.그녀는 놀란 기색 없이 동석을 바라봤다.오히려 담담했다.들켰다는 당혹감도 없었다.동석이 루루미 앞에 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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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8화_사라진 세 장의 스케치

다음날, 공방 문을 열자마자 소은의 발이 멈췄다.이상했다.딱히 뭐가 달라진 건 아니었다.조명도 그대로였고, 작업대도 그대로였다.마네킹도 제자리에 서 있었다.그런데 이상했다.뭔가 건드려진 공기 같았다.누군가의 손이 지나간 자리에만 남는, 그 미세한 감각.소은이 천천히 안으로 들어섰다.작업대부터 훑었다.연필, 자, 지우개.스케치북.다 있었다.소은이 스케치북을 집어 들었다.펼쳤다.페이지를 한 장씩 넘겼다.손이 멈췄다.없었다.분명히 있었던 것들이었다.드레스 구조 스케치 두 장과, 원단 배치 완성 도면 한 장.태현에게 전달하지 않은 것들.S의 필선이 담긴 것들.소은이 스케치북을 덮었다.작업대 서랍을 열었다.파일함을 뒤졌다.없었다.마네킹 아래 박스를 확인했다.없었다.벽 쪽 선반을 훑었다.없었다.없었다.소은이 작업대 의자에 천천히 앉았다.스케치북을 다시 집어 들었다.빈 페이지들이 이어졌다.있어야 할 자리가 텅 비어 있었다.루루미.그 이름이 가장 먼저 떠올랐다.동석이 경고했다.공방 들키면 S인 거 다 들킨다고.소은은 그때 알겠다고 했지만, 설마 했다.설마 안에까지 들어왔을 거라고는.소은이 핸드폰을 꺼냈다.동석에게 전화를 걸었다.신호음이 세 번 울렸다.[어, 왜.]"공방에 누가 들어왔어."짧은 침묵.[뭐가 없어졌어?]"스케치 세 장. 완성 도면도 없어."[...S 거?]"응."전화기 너머로 동석이 숨을 내쉬는 소리가 들렸다.[언제 없어진 건지 알아?]"몰라. 엊그제까지는 있었는데."소은이 작업대 위를 손가락 끝으로 짚었다.누군가 건드리고 간 자리였다."동석아."[응.]"루루미가 그걸 가져갔으면,"[S인 거 알겠지. 백가은이 S 라는 거.]소은이 눈을 감았다.스케치에는 S 사인이 있었다.소은이 오래전부터 써온 방식이었다.작게, 드레이프 라인 끝에.알아보는 사람만 알아보는 자리에.그것만 있어도 충분했다.백가은이 S 라는 것.이룸에 가져온 스케치와 공방의 스케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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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9화_그래선 안 됐는데

소은이 연필을 집어 들었다.그리고 빈 페이지 위에 선을 그었다.멈추지 않기 위해서.무너지지 않기 위해서.사각사각.연필 소리만 공방 안을 채웠다.그런데 선이 자꾸만 미세하게 흔들렸다.***이룸 그룹 계열 호텔.20층 스위트룸.새벽 2시.처음엔 조용했다.강우현은 복도 의자에 앉아 핸드폰을 보고 있었다.오늘은 조용한 밤이었다.루루미가 저녁을 먹고 방으로 들어간 뒤로 아무 소리가 없었다.이런 날이 드물었다.강우현은 그 조용함이 오히려 더 신경 쓰였다.그때였다.낮은 소리가 들렸다.벽 너머로.목소리였다.강우현이 핸드폰을 내려놓으며 귀를 기울였다."아니야."루루미의 목소리였다.낮고 떨렸다."내가 안 그랬어."강우현이 자리에서 일어났다.문 앞으로 다가섰다."난 잘못한 거 없어. 없다고."혼잣말이었다.누군가에게 하는 말이 아니었다.설득하는 건지, 부정하는 건지 알 수 없는 말들이 반복됐다.같은 말이 조금씩 달라지면서."내가 한 게 아니야. 나는... 난 거기 없었어."강우현이 문에 귀를 댔다."있었는데. 있었는데 나는."목소리가 끊겼다.짧은 침묵."아니야. 아니야, 아니야."강우현이 손잡이에 손을 얹었다.들어가야 하나.이건 평소와 달랐다.물건을 깨는 소리도, 발을 구르는 소리도 없었다.그냥 혼자 중얼거리는 목소리.그게 오히려 더 이상했다."난 잘못한 거 없어. 그러니까. 그러니까 괜찮아."스스로를 다독이는 목소리였다.믿으려는데 믿어지지 않는 사람의 목소리.강우현이 손잡이에서 손을 뗐다.들어가지 않았다.이건 진입해도 해결이 안 되는 종류였다.루루미가 지금 싸우고 있는 건 방 안에 없었다.강우현은 원래 자리로 돌아와 앉았다.핸드폰 화면을 켰다가 껐다.안에서 목소리가 계속됐다."괜찮아. 나는 괜찮아."그 말이 반복될수록 강우현은 점점 더 확신했다.괜찮지 않았다.루루미는 무언가를 알고 있었다.그리고 그것이 지금 저 사람을 저렇게 만들고 있었다.강우현은 핸드폰을 다시 집어 들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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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0화_소매 안쪽의 흉터

27층에서 문이 열렸다.복도를 걸어 비서실로 향했다.한태풍이 자리에 있었다."백제 그룹 김동석입니다. 서류 전달 건이요.""네, 감사합니다."한태풍이 서류를 받으며 도장을 찍었다.동석이 수령증을 돌려받으며 몸을 돌렸다.그때였다."김 비서님."뒤에서 목소리가 들렸다.동석이 멈췄다.돌아봤다.이태현이었다.팀장실에서 나오는 중이었다.서류를 들고.걸음이 멈춰져 있었다.동석 쪽을 보고 있었다."안녕하세요, 이 팀장님.""네, 안녕하세요. 백 팀장님께 전달 드릴게 있었는데ㅡ"태현이 동석에게 가까이 왔다.한 걸음, 두 걸음.그리고 멈췄다.그의 시선이 내려갔다.살짝 풀린 동석의 소매였다.태현이 서류를 든 손을 천천히 내렸다.동석이 그 시선을 느끼는 순간, 심장이 한 박자 늦게 뛰었다."잠깐."태현이 말했다.낮고 조용한 목소리였다.그런데 그 안에 뭔가가 있었다.동석이 알아들을 수 있는 무게.억지로 차분하게 유지하려는 사람의 목소리.태현의 손이 뻗었다.동석의 팔목을 잡았다.서류를 쥔 것과 다른 손으로.부드럽지 않았다.그렇다고 거칠지도 않았다.그냥 놓치지 않겠다는 힘이었다.동석은 빠져나가지 않았다.빠져나가면 안 된다는 걸 알았다.지금 이 남자가 무엇을 보고 있는지.무엇을 확인하려는지.그리고 그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도.태현이 동석의 팔을 내려다봤다.오래.아무 말 없이.소매가 걷혀 있는 것도 아니었는데, 안쪽까지 전부 드러난 기분이었다.그의 시선은 흉터의 모양을 읽는 눈이었다.화재.불길.그 안에서 살아남은 사람에게만 남는 것들."...이 팀장님."동석이 먼저 입을 열었다.태현이 고개를 들었다.동석과 눈이 마주쳤다.태현의 눈빛이 달랐다.냉소도, 계산도 없었다.지금까지 동석이 한 번도 본 적 없는 눈이었다.무언가를 겨우 붙잡고 있는 사람의 눈.손가락 사이로 빠져나가는 것을 막으려 하는데 이미 반쯤 놓쳐버린 것 같은."이 흉터."태현이 말했다.목소리가 낮았다.거의 속삭임에 가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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