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ous les chapitres de : Chapitre 21 - Chapitre 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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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화. 가장 행복한 찰나

서버실의 불빛이 핏빛으로 점멸하며 마지막 경보음을 토해냈다. 육중한 기계 장치들이 톱니바퀴를 멈추는 소리가 마치 짐승의 단말마처럼 지하 4층의 공기를 짓눌렀다. 나는 바닥에 쓰러진 최진혁의 시신을 내려다보았다. 한때 완벽한 통제 국가를 꿈꾸며 인간의 존엄성을 데이터의 단위로 재단하던 거대한 괴물은, 이제 그저 차가운 육덩어리에 불과했다. 내 손목에 박힌 흉터 칩은 이미 서버의 코어와 하나가 되어 불타는 듯한 열기를 뿜어내고 있었다. 혈관을 타고 흐르는 전류가 신경을 갉아먹는 감각이 생생했다. 하지만 그 통증조차도 더는 두렵지 않았다. 70년이라는 영겁의 세월 동안 겪어온 지옥에 비하면, 이 정도의 물리적 고통은 그저 찰나의 바람에 지나지 않았기 때문이다. 나는 서둘러 흉터 칩과 연결된 단자를 비틀었다.주변의 데이터 파편들이 폭풍처럼 휘몰아치며 공간을 왜곡시켰다. 관리국이 수확했던 수만 명의 행복한 기억들이 눈부신 입자가 되어 허공을 수놓았다. 나는 그 찬란한 빛의 무리 속에서 길을 잃지 않으려 애썼다. 흉터 칩은 이미 내 몸의 일부였고, 동시에 시스템을 종식할 최후의 기폭제였다. 시스템이 붕괴하며 쏟아내는 역류하는 데이터들이 내 뇌를 직접 강타했다. 수만 명의 희생자들이 느꼈던 환희와 절망이 뒤섞인 기억들이 한꺼번에 밀려들어 왔다. 나는 비명을 지르고 싶었지만, 입술을 깨물며 억지로 삼켰다. 이 모든 데이터가 원래의 주인에게로 돌아가야만 비로소 이 긴 악몽이 끝날 수 있었기 때문이다. 나는 서버 코어의 중심부를 향해 손을 더 깊숙이 찔러 넣었다.칩이 뼈를 건드리는 감각과 함께 서버의 핵심 데이터베이스가 해체되기 시작했다. 시스템이 마지막 저항을 하듯, 내 손목의 흉터 칩을 통해 강렬한 고주파를 쏘아 올렸다. 그것은 단순한 통증이 아니었다. 뇌가 물리적으로 팽창하고 수축하는 듯한 뒤틀림이었다. 나는 거친 숨을 몰아쉬며 흉터 칩이 박힌 손목을 바닥에 내리찍었다. 차가운 금속 바닥에 피가 번져 나갔다. 그 피는 나의 것인가, 아니면 시스템의 것인가. 이제는 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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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화. 낙인의 진실

그 눈부신 황금빛은 환상이 아니었다. 아니, 정확히 말하자면 시스템이 만들어낸 데이터 조각이 현실의 틈을 비집고 들어와 물리 법칙을 왜곡한 현상이었다. 나는 손목을 내려다보았다. 흉터 칩이 박혀 있던, 그 흉측하게 일그러져 있던 자국 위로 푸른빛의 회로가 일렁이고 있었다. 놈들이 나에게 '실험체 001번'이라는 낙인을 찍으며 강제로 심어 넣었던 그 칩이, 이제는 제 주인을 향해 날카로운 이빨을 드러내고 있었다. 놈들은 이것이 나를 영원히 통제할 족쇄라고 믿었지만, 오산이었다. 고통의 데이터가 70년의 지옥을 견뎌내며 단련된 내 신경망은 이제 시스템의 노예가 아니라, 그 시스템을 집어삼킬 거대한 소용돌이의 중심점이 되어 있었다."강한결, 지금 뭐 하는 거지?"등 뒤에서 들려오는 목소리는 서늘했다. 고개를 돌리자, 언제 다가왔는지 최진혁이 서 있었다. 그는 늘 그렇듯 무표정한 얼굴로 나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그의 눈은 인간의 것이라기보다는 차가운 유리 렌즈에 가까웠다. 그는 주머니에서 작은 알약 하나를 꺼내 손바닥에 올렸다. 시스템 동기화 장치. 그가 관리국장으로서 권력을 유지하고, 시스템의 흐름을 통제하기 위해 매일같이 복용하던 그 독약이었다. 그는 태연하게 알약을 입에 넣고 삼켰다. 그의 목울대가 움직이는 모습을 보며 나는 비릿한 웃음을 흘렸다. 그는 자신이 시스템의 지배자라고 생각하겠지만, 사실은 시스템이라는 거대한 기계 장치의 톱니바퀴에 불과한 꼭두각시였다."국장님, 당신이 매일 삼키던 그 알약이 무엇인지 이제야 알겠군요. 당신은 시스템을 조종하는 게 아닙니다. 시스템의 데이터를 뇌로 직접 공급받으며, 그 흐름 속에 잠식당하고 있는 것이죠."나는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손목의 흉터가 불타는 듯한 통증을 일으켰지만, 그것은 고통이 아니라 일종의 '연결 신호'였다. 관리국 지하 4층의 서버실과 내 뇌가 흉터 칩을 매개로 강제로 동기화되고 있었다. 최진혁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그는 알약의 효과가 나타나기를 기다리며 내 움직임을 경계했지만, 이미 늦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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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화. 붕괴하는 탑

관리국 중앙 홀의 천장이 비명이라도 지르듯 거대한 소음을 내며 무너져 내렸다. 시스템의 핵심 코어가 박살 나며 발생한 파동은 건물 전체의 구조를 뒤흔들고 있었다. 강철 보가 휘어지고 전선들이 불꽃을 튀기며 끊어지는 소리는 마치 도살장에 끌려온 가축들의 단말마처럼 기괴하고 날카롭게 울려 퍼졌다. 나는 비틀거리며 중심을 잡으려 애썼지만, 내 신경망을 타고 흐르는 과부하된 데이터의 잔해들이 근육을 마비시키고 있었다. 흉터 칩이 박혀 있던 손목에서는 타는 듯한 열기가 느껴졌는데, 이제는 그 고통이 시스템을 파괴했다는 승전보처럼 내 몸 곳곳을 훑고 지나갔다. 관리국은 죽어가고 있었고, 나는 그 죽음의 한복판에 서서 마지막 숨을 몰아쉬었다. 놈들이 그토록 지키려 했던 영생의 요람이 지금 이렇게 잿더미로 변해가고 있었다.복도 끝에서부터 회색빛 먼지가 파도처럼 밀려왔다. 그 속에서 관리국 요원들이 갈팡질팡하며 튀어 나왔다. 박철웅을 포함한 그들은 지금껏 시스템의 부품으로 살며 타인의 기억을 수확하던 냉혈한들이었다. 하지만 지금 그들의 눈에는 영생에 대한 갈망 대신, 뇌가 물리적으로 파괴되는 통증에 대한 공포가 역력했다. 그들은 뒷덜미를 쥐어뜯으며 바닥을 굴렀다. 내가 심어둔 바이러스가 시스템과 동기화된 그들의 뇌를 직접 갉아먹고 있었던 것이다. 누군가는 비명을 지르다 그대로 굳어버렸고, 누군가는 자신의 기억이 어디로 갔는지 묻지도 못한 채 거품을 물고 쓰러졌다. 그 광경은 참혹했으나, 나의 죄책감은 그보다 훨씬 더 깊고 어두운 심연 속에 묻혀 있었다.나는 놈들을 지나쳐 중앙 통제실로 향했다. 그곳에는 최진혁이 홀로 앉아 있었다. 그는 시스템의 붕괴를 막으려는 기색조차 없었다. 오히려 그는 멍하니 허공을 응시하며 쉴 새 없이 알약을 입안으로 털어 넣고 있었다. 그가 매일 아침마다 복용하던 그 푸른 알약. 그것이 단순한 영양제가 아니라, 자신의 뇌를 시스템에 완벽히 종속시키기 위한 쐐기였다는 사실을 알게 된 건 얼마 되지 않았다. 그는 자신의 아내를 살리겠다는 명분으로 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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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화. 최후의 안식

폐허의 먼지가 가라앉은 자리에는 침묵만이 내려앉아 있었다. 나는 무너진 관리국의 잔해를 뒤로하고 걸음을 옮기려 했지만, 손목에 박혀 있던 흉터 칩이 갑자기 뜨겁게 달아오르며 신경을 찔러왔다. 분명 시스템은 셧다운 되었고, 연결은 끊겼을 텐데 왜 이런 감각이 남은 것일까. 나는 멈춰 서서 손목을 부여잡았다. 금속 조각은 여전히 피부 아래에 박혀 있었지만, 그것이 내 뇌와 연결되어 고통을 주입하던 통로로서의 기능은 멈춘 지 오래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느껴지는 이 기묘한 열감은, 아마도 70년이라는 시간을 강제로 주입했던 데이터의 잔재가 신경계에 새긴 마지막 낙인일지도 몰랐다. 나는 떨리는 손으로 흉터 주위를 꾹꾹 눌러보았다. 이 흉터는 단순한 사고의 상처가 아니었다. 관리국이 나를 실험체로 점찍고, 나의 영혼을 데이터의 감옥에 가두기 위해 만들어 놓은 설계도이자 열쇠였다. 그 흉터 속에서 타오르는 마지막 열기는, 마치 시스템이 죽어가는 와중에 마지막으로 나를 끌고 들어가려는 최후의 저항처럼 느껴졌다. 나는 거친 숨을 몰아쉬며 흉터에 남은 감각을 억눌렀다. 이제 더 이상 나를 지배하는 것은 없다.서지우가 불안한 눈빛으로 나를 바라보며 곁으로 다가왔다. 그녀의 손에는 부모님의 기억이 담긴 메모리 칩이 들려 있었다. 시스템의 중앙 서버가 붕괴하면서 흩어졌던 수천 명의 기억이 주인에게 돌아가고 있었지만, 그 과정에서 발생하는 데이터의 역류 현상은 생각보다 훨씬 더 격렬했다. 지우의 얼굴에는 안도감과 함께 깊은 피로가 서려 있었다. 그녀는 떨리는 목소리로 나에게 물었다. "한결 씨, 손목이 왜 그래요? 분명 모든 연결은 끊겼다고 하지 않았나요?" 나는 대답 대신 고개를 저으며 고통을 참아냈다. 사실 나조차 알 수 없었다. 시스템은 파괴되었지만, 내 몸은 70년 동안 지옥의 데이터를 받아냈던 유일한 그릇이었다. 내 뇌는 이미 평범한 인간의 그것과는 다른 상태가 되어 있었다. 시스템이 무너지며 그 방대한 데이터의 쓰레기들이 내 신경망을 타고 흘러나가는 과정에서, 어쩌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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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화. 영겁의 끝

지하 4층의 공기는 희박했다. 산소보다는 타버린 데이터의 탄내와, 정제되지 못한 비극의 파편들이 미세하게 흩날리고 있었다. 나는 차가운 바닥에 등을 기댄 채, 내 손목을 내려다보았다. 흉터 칩은 이미 죽어 있었다. 보랏빛 점멸을 반복하던 발광 다이오드는 꺼졌고, 이제 그것은 내 신경망과 아무런 연결도 하지 않는 무용지물의 금속 덩어리에 불과했다. 나는 웃었다. 아니, 웃으려 노력했다. 입가에 고인 핏물이 턱을 타고 흘러내렸지만, 그 고통조차 이제는 무감각했다. 70년이라는 영겁의 세월을 견뎌낸 뇌는, 이제 한계치를 아득히 넘어선 채 정지를 향해 달리고 있었다. 모든 기억이 데이터의 형태로 흩어지는 감각은 마치 수만 개의 유리 파편이 혈관을 타고 흐르는 것과 같았다. 하지만 그 고통조차도, 누군가의 기억이 되어 내 안을 떠돌던 과거의 지옥에 비하면 축복과도 같았다.최진혁은 내 바로 옆에서 경련하고 있었다. 그는 아직 자신의 세계가 무너졌음을 부정하려는 듯, 허공을 향해 손을 뻗었다. 입가에는 그가 그토록 신봉하던, 시스템과 자신을 동기화하기 위해 매일 삼켜왔던 동기화 알약의 잔해가 거품처럼 맺혀 있었다. 그 알약은 그에게 영생을 약속했으나, 결국 시스템의 붕괴와 함께 그의 뇌를 내부에서부터 조각내고 있었다. 그는 영생을 꿈꿨지만, 지금 그의 눈앞에 펼쳐진 것은 자신이 그토록 지독하게 부정해온 죽음의 실체였다. "이럴 리가... 내 시스템은... 완벽하게 설계됐단 말이다." 그의 목소리는 갈라져 있었다. 데이터의 과부하로 인해 그의 언어 중추는 이미 망가져 가고 있었다. 하지만 나는 그가 뱉는 단어 하나하나가 얼마나 공허한 울림인지 잘 알고 있었다.나는 억지로 몸을 일으키려 했다. 하지만 팔다리는 쇳덩이처럼 무거웠다. 지우가 저 멀리서 달려오고 있었다. 그녀의 얼굴은 눈물로 범벅되어 있었지만, 그 눈빛만은 살아 있었다. 그녀가 내게 건네준 메모리 칩은 이미 시스템의 코어와 공명하며 완전히 소멸해 버렸다. 그것은 이제 기록이 아니라, 지우의 부모님이 가졌던 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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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화. [2부 빌린 하늘] 1년

오후 네 시가 되면 7층 복도는 조용해진다.점심 식판을 거둔 카트가 한 번 지나가고, 저녁 투약까지는 두 시간이 남는다. 간병인들은 휴게실에서 믹스커피를 타고, 복도 끝 텔레비전은 보는 사람이 없어도 켜져 있다. 나는 그 시간에 맞춰 엘리베이터에서 내린다. 손에는 귤 두 개가 든 검은 봉지가 있다. 병원 정문 앞 트럭에서 파는 귤은 언제나 껍질이 두껍고, 까면 손끝이 오래 노랗다."아가씨는 맨날 두 개만 사 가네." 트럭 아저씨는 오늘도 그렇게 말했다. "한 봉지에 오천 원인데 두 개에 천 원이면 손해야.""두 개면 돼요.""누구 병문안인데 맨날 와?"나는 웃기만 하고 천 원짜리를 내밀었다. 아저씨는 두 개 중 하나를 빼고 더 큰 걸로 바꿔 넣어 주었다. 1년 동안 이 사람이 나에게 물어본 것은 그게 전부다. 누구 병문안이냐는 것. 나는 한 번도 대답하지 않았다.1층 안내 데스크 옆에는 방문자 명부가 있다. 볼펜이 끈에 묶여 있고, 끈은 손때가 묻어 까맣다. 나는 날짜와 시간과 호실을 적고, 이름 칸에 정하윤이라고 쓴다. 관계 칸에는 지인. 처음에는 그 세 글자를 쓸 때마다 손이 조금 떨렸다. 가짜 이름을 쓰는 게 무서워서가 아니라, 지인이라는 말이 너무 가벼워서였다.엘리베이터 안 거울에 내 얼굴이 비친다. 모자를 눌러쓰고, 머리는 어깨까지 길렀다. 1년 전 사진 속의 나는 턱선에서 자른 단발이었다. 사람들은 머리 모양이 바뀌면 생각보다 잘 못 알아본다.714호는 복도 맨 끝, 창가 쪽 1인실이다.간호사실 앞을 지날 때 간호조무사 한 명이 고개를 들었다. 한결 씨의 머리를 잘라 주고, 저녁마다 귤 반쪽을 치우는 사람이다. 쉰 살쯤 됐고, 말끝을 늘 조금 올린다."오늘도 네 시네? 시계 보고 와요?""그냥 그렇게 돼요.""714호는 좋겠다, 매일 누가 와서. 이 층에 한 달에 한 번도 아무도 안 오는 분들이 절반이야." 그녀는 차트를 넘기다 말고 목소리를 낮췄다. "근데 그 이모님은 한 번도 안 오시데. 1인실 비용이 만만치 않을 텐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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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화. 안식

그날 밤 나는 옥탑방 불을 켜지 않았다.노트북 화면 불빛만으로 방이 파랬다. 창밖 빨랫줄에 걸어 둔 수건이 바람에 흔들렸고, 방 한쪽 수신기에서는 무전이 낮게 흘렀다. 구급 3, 현장 도착. 환자 의식 명료. 나는 소리를 조금 줄이고 검색창에 이름을 쳤다.린세영.기사는 많았다. 대부분 최근 여덟 달 사이에 나온 것들이었다. 뇌과학 박사. 쉰둘. 해외 연구소에서 오래 일하다 귀국. 1년 전 타나토스 관리국 사건 때 참고인으로 조사를 받았고, 수사에 적극 협조했다는 이유로 기소유예 처분을 받았다. 관련 기사는 짧았다. 관리국 외부 자문 연구원으로 일했으나 시설의 실제 용도는 알지 못했다고 진술. 검찰은 그 진술을 받아들였다.알지 못했다고.나는 화면을 오래 보았다. 1년 전 지하 4층 천장에서 울리던 목소리가 귓가에 다시 들렸다. 틈의 내부가 현실로 넘쳐 들어오고 있다고, 당장 연결을 끊으라고 소리치던 목소리. 그 목소리는 알고 있었다. 무엇이 어디에 연결되어 있는지, 끊으면 어떻게 되는지. 모르는 사람은 그렇게 소리치지 않는다.하지만 그건 내 귀가 기억하는 것일 뿐이었다. 스피커는 부서졌고, 녹음은 없고, 관리국 서버는 그날 밤 대부분 사라졌다. 나는 청문회에서 그 목소리 얘기를 했다. 의원 한 명이 받아 적었고, 그걸로 끝이었다. 목소리는 증거가 되지 못한다. 특히 가림막 뒤에서 변조된 목소리로 말하는 사람이 기억하는 목소리는.기사를 계속 넘겼다.안식. 여덟 달 전 설립. 서비스 이름은 라스트 미닛. 가입자는 귀 뒤에 동전만 한 흰 패치를 붙인다. 패치는 평소에는 아무 일도 하지 않는다. 심장이 멎는 순간, 뇌에 짧은 신호를 보낸다. 사람은 죽기 직전 마지막 1분을 아주 길게 겪는다는 것, 그 1분이 어떤 이에게는 수십 년처럼 늘어난다는 것은 이제 많은 사람이 알고 있었다. 관리국 사건이 알려 준 몇 안 되는 진실이었다. 안식은 그 1분에 행복한 순간의 파형을 맞춰 준다고 했다. 무섭고 후회스러운 기억 대신, 따뜻하고 환한 1분으로 틈을 채워 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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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8화. 소생

수신기의 볼륨을 끝까지 올렸다.지직거리는 잡음 너머로 숫자를 세는 소리가 들렸다. 하나, 둘, 셋, 넷. 대원 한 명이 가슴을 누르며 세는 소리였다. 규칙적이었고, 빨랐고, 숨이 섞여 있었다. 그 뒤로 다른 목소리가 기계 소리를 읽었다. 패드 부착, 분석 중, 떨어지세요. 짧은 정적. 다시 숫자.나는 이불 위에 무릎을 세우고 앉아 그것을 들었다. 방은 추웠다. 보일러를 아끼느라 밤에는 꺼 두는데, 그걸 켤 생각을 하지 못했다. 발가락 끝이 차가웠다.한결 씨도 저렇게 셌을 것이다. 수천 번, 수만 번. 무릎을 꿇고, 팔을 곧게 펴고, 체중을 실어서. 하나, 둘, 셋, 넷. 그 숫자가 사람을 붙잡아 두는 동안, 그 사람의 머릿속에서는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었을까. 한결 씨는 그걸 몰랐다. 아무도 몰랐다. 자기가 직접 그 1분 안에 들어가 보기 전까지는."맥박 확인. 맥 있습니다."목소리가 갑자기 높아졌다. 상황실이 되물었다."자발순환 회복 확인. 시간 영시 이십칠 분. 심정지 인지 후 약 1분 10초."1분 10초. 나는 그 숫자를 입속으로 따라 했다."환자 눈 뜹니다. 의식 돌아오는 중. 할머니, 들리세요? 할머니."잠시 잡음이 이어졌다. 그리고 대원의 목소리가 다시 들렸는데, 이번에는 무전을 잡은 채로 누군가에게 되묻는 소리가 섞여 있었다. 네? 뭐라고요? 할머니, 다시 한 번만요."상황실, 환자분이 뭐라고 계속 말씀하시는데요.""내용 전달 바랍니다.""그게… 여기 하늘이 내 하늘이 아니라고 하십니다."상황실 쪽에서 몇 초 동안 아무 말이 없었다."다시 전달 바랍니다.""여기 하늘이, 내 하늘이 아니다. 계속 반복하십니다. 이송 병원 지정 부탁드립니다."서북중앙병원 응급실. 상황실이 병원 이름을 불렀고, 구급차가 출발한다는 보고가 이어졌다. 사이렌 소리가 무전 너머에서 한 번 크게 울렸다가 잘렸다.나는 이미 일어나 있었다. 청바지를 입고, 후드를 뒤집어쓰고, 모자를 눌러썼다. 옥탑 계단을 내려가며 휴대전화로 택시를 불렀다. 새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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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9화. 남의 하늘

문순자 할머니는 닷새 만에 퇴원했다.나는 그 사실을 은평 시장 생선 가게 앞에서 알았다. 오전 열 시였다. 시장 골목은 이미 사람으로 붐볐고, 바닥은 물에 젖어 번들거렸다. 과일 가게 확성기에서 귤 한 바구니에 오천 원이라는 녹음된 목소리가 되풀이되었다. 떡집에서는 김이 올라왔고, 그 옆 반찬 가게 아주머니는 비닐장갑을 낀 손으로 멸치볶음을 퍼 담고 있었다.생선 가게는 골목 중간쯤, 기름집과 신발 가게 사이에 있었다. 간판은 따로 없었다. 파란 천막 아래 스티로폼 상자들이 비스듬히 놓여 있고, 그 위에 잘게 부순 얼음이 깔려 있었다. 얼음 위에 고등어, 갈치, 동태, 오징어. 상자마다 골판지 조각이 꽂혀 있었다. 고등어 두 손 만원. 갈치 한 마리 만이천. 검은 매직으로 꾹꾹 눌러 쓴 글씨였다. 글씨가 삐뚤빼뚤한데 이상하게 읽기 쉬웠다.비린내가 났다. 차갑고 짠, 오래된 냄새였다.좌판 뒤에서 고무장갑을 낀 여자가 동태 배를 가르고 있었다. 응급실 대기실에서 핸드백을 꼭 쥐고 있던 그 며느리였다. 그녀는 나를 보고 칼을 멈췄다. 기억하는 얼굴이었다."아, 그때 그 아가씨.""안녕하세요. 할머님은 괜찮으세요?""그저께 나오셨어요. 위에 계세요." 그녀는 칼끝으로 가게 뒤쪽을 가리켰다. 가게 옆으로 좁은 계단이 2층으로 나 있었다. "할아버지는 좀 어떠세요?"나는 잠깐 머뭇거렸다. 병원에서 한 거짓말이 나를 따라와 있었다."그냥 그래요."그녀는 고개를 끄덕이고 다시 동태를 갈랐다. 탁, 탁. 도마 위에서 칼이 뼈에 닿는 소리가 났다. 그녀가 칼질을 하며 말했다."올라가 보실래요? 어머님이 요새 누구든 붙잡고 그 얘기를 하세요. 병원에서 온 간호사한테도, 옆집 기름집 사장님한테도. 저희는…" 그녀가 손을 멈췄다. "저희는 이제 못 듣겠어요. 들을 때마다 그이가 봉투 받은 게 생각나서."계단은 가파르고 좁았다. 벽에 붙은 전단지들이 겹겹이 바래 있었다. 2층 문 앞에 할머니의 장화 한 켤레가 놓여 있었다. 뒤꿈치가 닳아서 하얗게 일어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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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화. 그 하늘

버스를 두 번 갈아탔다.달력 뒷장은 네 번 접혀 가방 안쪽 주머니에 들어 있었다. 나는 버스가 흔들릴 때마다 가방을 무릎 위로 끌어당겼다. 창밖으로 은평의 시장 골목이 멀어지고, 고가도로와 아파트 단지와 공사장 가림막이 지나갔다. 두 번째 버스에서 내린 곳은 마포의 오래된 주택가였다. 1년 만이었다.한결 씨가 일하던 119안전센터는 큰길에서 한 블록 들어간 곳에 있었다. 3층짜리 건물, 1층의 커다란 차고 셔터, 셔터 위의 빨간 글씨. 셔터 하나가 올라가 있었고, 안쪽에 펌프차가 서 있었다. 대원 한 명이 호스를 말고 있었다. 나는 건물 앞을 지나치지 않고 옆길로 돌았다. 안전센터 뒷문 쪽으로 좁은 골목이 하나 나 있었다.골목 입구에 구급차가 서 있었다.예비차였다. 출동이 몰릴 때만 나가는 오래된 구급차. 한결 씨가 말해 준 적이 있다. 차고에 자리가 모자라서 예비차는 늘 뒷골목에 세워 둔다고. 입구를 반쯤 막고, 뒷문을 골목 안쪽으로 향하게 해서. 그래야 급할 때 뒷문으로 장비를 바로 싣는다고. 흰 차체에 빨간 줄, 옆구리에 오래된 긁힌 자국. 불은 꺼져 있었고, 아무도 타고 있지 않았다.나는 구급차 옆을 지나 골목 안으로 들어갔다.왼쪽은 빨간 벽돌 담이었다. 오래된 연립주택의 담으로, 벽돌 사이 시멘트가 군데군데 떨어져 나가 있었다. 담 위로 누군가 키우는 화분의 마른 줄기가 넘어와 있었다. 골목 중간쯤에 전봇대가 하나 서 있었다. 오른쪽으로 기울어 있었다. 몇 년 전 트럭이 받았다고 한결 씨가 그랬다. 구청에 몇 번 말했는데 안 고쳐 준다고. 전봇대 꼭대기에서 전깃줄이 여러 가닥 늘어져 있었다. 그리고 전봇대 왼쪽, 담 반대편 건물 1층에 간판이 붙어 있었다.파란 바탕에 흰 글씨. 백조세탁. 그런데 '조' 자의 절반이 바래서 떨어져 나가 있었다. 멀리서 보면 그냥 흰 얼룩이었다. 읽히지 않는 간판.나는 가방에서 달력 뒷장을 꺼내 펼쳤다. 손이 조금 떨려서 종이 모서리가 바람에 파닥였다. 두 번 덧그린 비스듬한 막대. 그 왼쪽 빗금 친 네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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