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둠이 걷힌 자리에는 피비린내와 타는 전기 회로의 악취만이 비릿하게 고여 있었다. 흩날리는 데이터의 잔해들이 마치 잿가루처럼 내 눈앞을 부유했다. 사람들이 쏟아져 나가는 웅성거림은 먼 파도 소리처럼 아득하게 들려왔지만, 내 의식은 서서히 차가운 바닥으로 가라앉고 있었다. 죽음이라는 안식이 비로소 손끝에 닿으려는 찰나, 누군가 내 어깨를 거칠게 낚아채 흔들었다. 눈꺼풀이 천근만근 무거웠지만, 억지로 시야를 확보하자 서지우의 창백한 얼굴이 보였다. 그녀의 손은 키보드를 두드리던 굳은살이 박인 그대로였고, 그 안에는 데이터 패드가 아닌 권총이 들려 있었다. 하지만 총구는 나를 향하지 않았다. 그녀는 내 귓가에 입을 바짝 갖다 대고 무언가를 절박하게 읊조리고 있었다. 그녀의 눈동자 속에는 우리가 부순 시스템의 파편보다 더 짙은 공포와 연민이 소용돌이치고 있었다. 지금까지 나를 도왔던 이유가 단지 부모님의 기억을 되찾기 위해서만이 아니었음을, 그녀의 떨리는 목소리가 증명하고 있었다."강한결, 눈 감지 마. 아직 끝나지 않았어. 최진혁이 도망쳤어. 아니, 그는 도망친 게 아니야. 자신의 본거지인 섹터 제로의 가장 깊은 곳, 그곳으로 스스로 걸어 들어간 거야. 우리가 이 모든 시스템을 붕괴시켰다고 생각하지만, 최진혁은 처음부터 이 붕괴를 예견하고 있었어. 아니, 오히려 이 파괴를 기다리고 있었던 건지도 몰라. 놈은 시스템의 데이터가 완전히 휘발되기 전에, 자신의 가장 은밀한 사유 재산으로 숨어들었어. 그곳은 일반적인 네트워크와는 연결이 끊긴, 오직 놈의 뇌파와만 동기화되는 별도의 벙커야. 놈을 지금 잡지 못하면, 이 모든 희생은 그저 데이터의 이동 경로를 청소해 준 꼴이 되고 말아. 한결아, 네가 가진 마스터 키, 그 흉터 칩의 잔류 에너지가 아직 필요해. 놈의 심장 속에 박힌 동기화 알약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알잖아. 놈은 지금 시스템의 파멸을 자신의 영생으로 치환하려 하고 있어."서지우의 말은 내 의식을 강제로 현실의 고통 속으로 끌어당겼다. 흉터 칩이 박힌 손목이
최신 업데이트 : 2026-10-18 더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