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ous les chapitres de : Chapitre 31 - Chapitre 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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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화. 곁에 두고 싶은 것

714호를 나온 건 여섯 시가 조금 넘어서였다.옥탑방으로 가는 버스를 타려다 나는 정류장 앞에서 멈췄다. 광고판 속 노인의 손이 나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당신의 마지막 1분을 설계합니다. 삼십만 명이 산 그 1분이 지금 어디에 붙어 있는지, 나는 한 번도 본 적이 없었다. 텔레비전과 전단지와 광고판에서만 보았다. 그 하늘이 실제로 누군가의 귀 뒤에 붙는 곳을 보고 싶었다.성진대학병원은 안식을 가장 먼저 들인 병원이었다. 석 달 전, 호스피스 병동에. 나는 반대 방향 버스를 탔다. 강을 건너는 동안 창밖이 완전히 어두워졌다.저녁 일곱 시, 본관 엘리베이터가 12층에서 열렸다.엘리베이터 옆 벽에 안내판이 서 있었다. 하얀 바탕, 노인의 손. 본 병동 환자 및 가족 대상 할인. 그 아래 상담 가능 시간과 전화번호. 나는 모자챙을 조금 더 내리고 복도로 들어섰다. 면회는 여덟 시까지였다.복도는 넓었고 조용했다. 병실 문 앞마다 작은 화분이 있었다. 어느 방에서 텔레비전 소리가 아주 작게 새어 나왔다. 간호사실의 불빛만 환했다. 나는 어디로 가야 할지 몰라서 복도 끝까지 걸었다. 걷다 보면 무언가 보일 것 같았다. 그 하얀 패치를 붙인 사람의 얼굴이라든가.복도 중간쯤, 문이 반쯤 열린 병실 앞에서 나는 걸음을 늦췄다. 침대에 아주 작은 할머니가 누워 있었다. 그 옆에 딸로 보이는 여자가 앉아 할머니의 손을 두 손으로 감싸고 있었다. 가슴에 흰 로고가 박힌 남색 조끼 차림의 여자가 침대 머리맡에 몸을 숙이고 있었다. 그녀의 손끝에 동전만 한 흰 것이 들려 있었다. 할머니의 머리카락을 귀 뒤로 조심스럽게 넘기고, 그 자리에 흰 것을 붙였다. 엄지로 한 번, 가만히 눌렀다."이제 됐어요, 어머님. 좋은 데 가실 거예요."딸이 고개를 숙였다. 어깨가 떨렸다. 할머니는 잠들어 있었다. 아무것도 모르는 얼굴이었다.나는 문 앞을 지나쳤다. 발이 저절로 빨라졌다. 저 동그라미 안에 무엇이 접혀 있는지 이 층에서 아는 사람은 없었다. 기운 전봇대, 바랜 간판, 불 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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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2화. 송신

그 상자는 1년 동안 거기 있었다.침대 머리맡, 뇌파 모니터를 올려 둔 철제 카트의 맨 아래 칸. 도시락통만 한 회색 플라스틱 상자였다. 앞면에 작은 초록 불이 하나 있었고, 뒤쪽에서 나온 선 두 개 중 하나는 모니터로, 하나는 벽의 네트워크 단자로 이어져 있었다. 나는 그것을 수백 번 보았다. 병원 장비겠거니 했다. 병원에는 이름을 모르는 기계가 많다. 모르는 기계는 풍경이 된다.다음 날 네 시, 나는 714호에 들어서자마자 카트 앞에 쪼그려 앉았다.초록 불은 깜박이고 있었다. 나는 휴대전화 초시계를 켜고 세어 보았다. 네 번 깜박이고, 한 번 길게 켜지고, 다시 네 번. 규칙적이었다. 쉬지 않았다. 모니터의 초록 선이 흐르는 것과 같은 박자는 아니었지만, 멈추지 않는다는 점에서는 같았다.상자 옆면에 흰 스티커가 붙어 있었다. 공동연구 장비. 임의 분리 금지. 문의는 연구 담당 부서로. 회사 이름은 어디에도 없었다. 스티커 아래 제품 번호가 작게 찍혀 있었다.나는 선을 손가락으로 따라가 보았다. 벽 단자에 꽂힌 쪽 플러그가 먼지 하나 없이 깨끗했다. 이 방의 다른 모든 콘센트에는 먼지가 앉아 있었다. 누군가 이것만 주기적으로 닦는다는 뜻이었다.1년 전의 나였다면 지금쯤 노트북을 꺼내 저 선에 뭐가 흐르는지 들여다보고 있었을 것이다. 그럴 수 있다는 걸 나는 안다. 내 손가락도 안다. 하지만 그렇게 해서 알아낸 것은 증거가 되지 못한다. 몰래 들여다본 것은 몰래 들여다본 사람을 먼저 무너뜨린다. 청문회장에서 그걸 배웠다. 의원 한 명이 물었었다. 증인은 그 자료를 어떻게 입수했습니까. 나는 대답했고, 다음 날 신문에는 내가 한 말보다 내가 어떻게 알았는지가 더 크게 실렸다.나는 상자에서 손을 뗐다."한결 씨. 이거 알았어요?"모니터의 선이 흘렀다. 초록 불이 네 번 깜박였다.간호조무사가 수액을 갈러 들어왔다. 나는 그녀가 줄을 정리하는 동안 기다렸다가 물었다."선생님, 이 밑에 회색 상자요. 이거 뭐예요?""아, 그거?" 그녀는 힐끗 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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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3화. 철웅의 어머니

나흘 뒤, 714호 앞 복도 의자에 박철웅이 앉아 있었다.엘리베이터에서 내리자마자 지팡이가 먼저 눈에 들어왔다. 의자 옆 벽에 기대 세워진 검은 지팡이. 그 옆에서 철웅은 두 손을 무릎 사이에 모으고, 714호 문을 보고 있었다. 문은 닫혀 있었다. 그는 얼마나 오래 거기 있었는지 모를 자세로 굳어 있었다."나는 못 간다면서요."그가 고개를 돌렸다. 놀라지 않았다."안 갔어. 여기 앉아만 있었어." 그는 문을 턱으로 가리켰다. "한 시간째."나는 그 옆에 앉았다. 복도 끝 텔레비전에서 오후 드라마가 흘렀다. 누군가가 누군가에게 뺨을 맞고 있었다."병원은 어떻게 알았어요?""7층이라며. 요양병원 7층에 강한결이라는 환자 있는 데. 전화 몇 군데 돌리면 나와." 그는 짧게 말했다. "옛날 버릇이야."우리는 한동안 말없이 앉아 있었다. 간호조무사가 지나가며 나에게 눈인사를 하고, 철웅을 힐끗 보고 갔다."들어갈래요?"철웅은 대답하지 않았다. 대신 지팡이를 쥐고 일어섰다. 일어나는 데 시간이 걸렸다. 그는 714호 문 앞까지 세 걸음을 걸어갔다. 탁, 탁, 탁. 그리고 손잡이를 잡지 않고, 문에 난 좁은 유리창으로 안을 들여다보았다.나는 그의 뒤에 서서 같이 보았다. 창가 침대, 반듯하게 누운 사람, 머리맡의 초록 선."살 좀 빠졌네."철웅이 말했다. 목소리가 이상하게 갈라져 있었다. 그는 유리창에서 얼굴을 떼고, 문을 등지고 섰다."됐어. 봤어.""들어가서 손이라도…""됐다니까." 그가 나를 보았다. 흉터 쪽 눈꺼풀이 떨리고 있었다. "나 너한테 부탁이 있어서 왔어.""뭔데요.""엄마가 너 보재."나는 무슨 말인지 몰라 그를 보았다."지난번에 농담했잖아. 엄마한테 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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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4화. 설명회

설명회는 토요일 오후 세 시, 여의도의 컨벤션센터 대강당에서 열렸다.전날 네 시, 나는 714호에서 한결 씨에게 그 얘기를 했다. 내일은 조금 늦을 거라고. 그 사람을 보러 간다고. 한결 씨의 하늘을 파는 사람을. 말하고 나서 귤을 까는데 손이 자꾸 미끄러졌다. 껍질이 잘게 찢어져 협탁 위에 흩어졌다. 나는 그것을 하나씩 주워 모으며 말했다. 싸우러 가는 건 아니에요. 물어보러 가는 거예요. 천천히 할게요. 모니터의 선이 흘렀고, 카트 아래 초록 불이 넷, 그리고 길게 하나 깜박였다. 그 불빛이 이제는 그 사람에게 내 말을 전하는 것 같아서, 나는 목소리를 낮췄다.나는 두 시 반에 도착했다. 입구에는 이미 줄이 길었다. 지팡이를 짚은 노인, 노인의 팔을 부축한 중년의 딸, 휠체어를 민 아들, 유모차를 끌고 온 젊은 부부. 호스피스 병원 로고가 찍힌 조끼를 입은 간호사들이 무리 지어 서 있었다. 방송사 카메라 세 대가 로비 한쪽에 삼각대를 세우고 있었다. 누구도 떠들지 않았다. 팔백 명이 줄을 서 있는데 로비가 이상하게 조용했다.입구에서 안식 직원들이 안내 책자를 나눠 주었다. 연회색 정장, 부드러운 목소리, 가벼운 목례. 책자 표지에는 들판 사진과 한 줄의 문장이 인쇄되어 있었다. 모두의 마지막 1분이 따뜻하기를.나는 모자를 눌러쓰고 뒤쪽 통로 옆자리에 앉았다. 대강당은 계단식이었고, 무대는 하얀 천으로 덮여 있었다. 무대 뒤 커다란 화면에는 아무것도 비치지 않았다. 그냥 하얬다. 나는 그 하얀 화면을 보지 않으려고 무릎 위의 책자를 펼쳤다.책자 셋째 장에 법안 이야기가 있었다. 임종기 환자 정서 지원 시술의 건강보험 적용에 관한 법률안. 국회 보건복지위원회에 상정 예정. 그 아래 굵은 글씨로 한 줄. 행복한 마지막은 더 이상 특권이 아닙니다.세 시 정각에 조명이 어두워졌다. 사회자가 짧게 인사를 했고, 곧 린세영이 무대에 올랐다.광고에서 본 것보다 말라
last updateDernière mise à jour : 2026-1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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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5화. 아버지

깨우지 마세요.그 말이 사흘 동안 나를 따라다녔다. 옥탑방에서 무전을 들을 때도, 714호에서 귤을 깔 때도, 버스 창에 이마를 대고 있을 때도. 린세영은 한결 씨를 깨우지 말라고 했다. 나는 깨울 방법도 몰랐다. 그런데도 그 말은 경고처럼 들리지 않았다. 부탁처럼 들렸다. 그게 더 견디기 어려웠다.그리고 또 하나의 말이 있었다. 후회로 가득한 사람에게, 남의 행복이라도 주는 게 죄입니까.그 질문을 되짚을 때마다 한 사람의 얼굴이 떠올랐다. 1년 넘게 찾아가지 않은 얼굴이었다.수요일 아침, 나는 남양주로 가는 버스를 탔다. 시외버스에서 마을버스로 갈아타고, 마을버스 종점에서 이십 분을 걸었다. 산자락을 따라 올라가는 좁은 길이었다. 길가 밭에는 배추를 거둔 자리에 마른 잎이 누렇게 누워 있었다. 12월이었다. 공기가 칼처럼 얇았다.솔밭요양원은 3층짜리 흰 건물이었다. 뒤편으로 소나무 숲이 있었고, 마당에 벤치 몇 개와 빈 화단이 있었다. 현관 옆 게시판에 프로그램 시간표와 식단표가 붙어 있었다. 그리고 그 아래, 새로 붙인 듯 모서리가 빳빳한 포스터 한 장. 하얀 바탕에 노인의 손. 안식 라스트 미닛, 요양 시설 단체 가입 안내. 입소자 가족 특별 할인.나는 그 포스터 앞에서 잠깐 멈췄다가 안으로 들어갔다.면회 신청서의 이름 칸에 나는 서지우라고 썼다. 1년 만에 처음으로 쓰는 이름이었다. 볼펜 끝이 종이 위에서 한 번 멈췄다. 관계 칸에는 딸."어머, 따님이세요?" 접수를 받은 요양보호사가 신청서를 보고 눈을 크게 떴다. 마흔 중반쯤, 분홍색 조끼를 입고 있었다. "어르신이 따님 얘기 많이 하세요. 어머님도요. 어머님은 목요일마다 오시거든요.""……네.""오늘 오셨으면 같이 뵐 수 있었을 텐데. 내일 오시는데." 그녀는 아쉬운 얼굴을 했다가, 내 표정을 보고 더 묻지 않았다. "어르신 지
last updateDernière mise à jour : 2026-1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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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6화. 행복 공책

마을버스는 정류장 앞에 섰다가, 아무도 타지 않자 문을 닫았다.기사가 창밖으로 나를 한 번 보았다. 나는 벤치에 앉은 채 손만 들었다. 괜찮다는 뜻인지, 가라는 뜻인지 나도 몰랐다. 버스가 짧게 경적을 울리고 떠났다. 산모퉁이를 돌아 불빛이 사라졌다.이어폰 속에서 무전은 계속되고 있었다. 이송 준비. 들것. 잡음. 산속이라 신호가 자꾸 끊겼다. 스물넷. 그 숫자만 머릿속에 남아 있었다. 어느 병원으로 가는지 들어야 했다. 나는 휴대전화를 귀 가까이 들었다. 지지직. 목소리의 반쯤만 들어왔다가 흩어졌다.정류장 기둥의 시간표를 보았다. 다음 버스는 사십 분 뒤였다.해는 이미 산 뒤로 넘어가 있었다. 주황색이던 하늘이 잿빛으로 식어 갔다. 정류장 지붕 밑 형광등이 깜박이다 켜졌다. 나는 무릎을 끌어안았다. 발끝이 시렸다. 벤치 끝에 누가 두고 간 목장갑 한 짝이 얼어서 뻣뻣하게 굳어 있었다. 손바닥 쪽 빨간 고무가 반쯤 닳아 있었다. 밭일을 하던 누군가가 버스를 타면서 떨어뜨렸을 것이다. 나는 그걸 한참 보았다. 다른 할 일이 없었다.십 분쯤 지났을 때 산길 위쪽에서 헤드라이트가 내려왔다. 흰 승합차였다. 옆구리에 초록 글씨로 솔밭요양원. 차가 정류장 앞에 서더니 운전석 창문이 내려갔다. 분홍 조끼가 보였다."따님! 아직 계셨네. 버스 놓쳤어요?"면회 신청서를 받던 요양보호사였다. 그녀는 비상등을 켜 두고 차에서 내렸다. 한 손에 종이컵 두 개를 포개 들고, 겨드랑이에 무언가를 끼고 있었다."병원 가는 어르신 모셔다 드리고 오는 길이라서요. 원장님 차 빌렸어요. 저녁 배식 전에 올라가야 돼서 오래는 못 있어요." 그녀가 내 옆에 앉아 종이컵 하나를 내밀었다. "자판기 거예요. 율무차."나는 컵을 받았다. 손바닥이 녹았다. 달고 고소한 냄새가 올라왔다."아까 어머님한테 전화드렸어요. 따님 오셨다고." 그녀가 자기 컵을 불
last updateDernière mise à jour : 2026-1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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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7화. 두 번째 소생자

이송 병원은 성진대학병원이었다.무전에서 그 이름을 듣자마자 나는 마을버스에 올랐다. 시외버스 터미널까지 사십 분, 서울까지 한 시간 반. 버스 안에서 나는 휴대전화를 두 손으로 쥐고 있었다. 이어폰 속 무전은 이미 다른 출동으로 넘어가 있었다. 창밖이 완전히 어두워졌다. 고속도로 가로등이 일정한 간격으로 지나갔다. 하나, 둘, 셋, 넷.안식의 남자는 패치가 작동하면 자동으로 연락이 간다고 했다. 새벽 두 시에도 머리를 빗고 봉투를 챙겨 올 수 있는 사람들이었다. 내가 도착할 때쯤이면 이미 패치는 지퍼 백에 들어가 있을 것이다. 비공개 동의서에는 서명이 되어 있을 것이다. 섬망입니다. 흔한 일입니다.나는 휴대전화를 열어 철웅에게 전화를 걸었다. 신호가 세 번 가고 그가 받았다."왜.""아저씨 지금 병원이에요?""어. 엄마 옆에.""성진대 응급실에 방금 소생자가 들어왔어요. 라스트 미닛. 스물네 살이래요. 오토바이."전화 너머가 조용했다. 병실의 기계 소리가 희미하게 들렸다."그래서.""제가 한 시간 반 뒤에 도착해요. 그 전에 안식 사람들이 먼저 올 거예요. 그 사람 어디로 옮겨지는지만이라도 알아봐 줄 수 있어요?"철웅은 한참 대답하지 않았다. 나는 그가 전화를 끊을 거라고 생각했다. 그의 어머니 귀 뒤에는 그 패치가 붙어 있었다. 그는 그 하늘이 자기 어머니의 하늘보다 낫다고 말한 사람이었다."구급 7이면 서교 쪽 애들이네." 그가 말했다. "알았어."전화가 끊겼다.아홉 시 반, 나는 성진대학병원 본관 로비에 도착했다. 철웅이 엘리베이터 앞 의자에 앉아 있었다. 회색 스웨터 위에 검은 점퍼를 걸치고 있었다. 지팡이가 무릎 사이에 세워져 있었다."구급 7 반장이 내 후배야." 그가 먼저 말했다. "애 이름은 오재민. 배달하다가 합정 사거리에서 혼
last updateDernière mise à jour : 2026-1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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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8화. 새 파형

다음 주 목요일 아침, 나는 은평 시장에서 귤을 샀다.트럭 것 말고 시장 것으로. 엄마가 그렇게 말했다. 과일 가게 확성기는 여전히 귤 한 바구니에 오천 원이라고 되풀이하고 있었다. 나는 한 바구니를 샀다. 두 개가 아니라 스무 개쯤 되는 귤이 검은 봉지 안에서 묵직하게 흔들렸다.생선 가게 앞을 지나다 멈췄다. 파란 천막 아래에서 문순자 할머니가 얼음을 깨고 있었다. 두꺼운 고무장갑, 목까지 올린 털 조끼, 머리에 두른 수건. 쇠꼬챙이로 얼음 덩어리를 내리칠 때마다 작은 조각이 튀어 할머니의 앞치마에 붙었다. 며느리가 옆에서 말리는 소리가 들렸다. 어머님, 병원에서 무리하지 말랬잖아요. 할머니는 들은 척도 하지 않았다."아가씨!" 할머니가 먼저 나를 보았다. 쇠꼬챙이를 든 채로 손을 흔들었다. "귤 거기서 샀어? 잘했네. 거기가 싸.""할머니, 얼음 깨셔도 돼요?""이거 안 깨면 내가 죽어." 할머니가 얼음을 한 번 더 내리쳤다. "병원에서 누워 있으니까 자꾸 그 하얀 게 생각나. 여기서 이거 깨고 있으면 안 나. 손이 시리고, 비린내 나고, 저 여편네가 잔소리하고. 그래야 여기가 내 데인 줄 알지."며느리가 한숨을 쉬었고, 할머니는 웃었다. 이 몇 개 빠진 입이었다."오늘은 어디 가?""아빠 보러요. 요양원."할머니가 쇠꼬챙이를 내려놓고 나를 오래 보았다."잘 생각했네. 가서 손 한번 잡아 드려. 늙으면 그게 제일 좋아."솔밭요양원 2층 거실에 들어섰을 때, 창가 끝 의자 옆에 엄마가 서 있었다.1년 사이에 엄마는 작아져 있었다. 머리가 반쯤 하얘졌고, 등이 조금 굽었다. 회색 누빔 점퍼를 입고, 손에는 보온병을 들고 있었다. 엄마는 나를 보고 한참 움직이지 않았다. 그러다 보온병을 창턱에 내려놓고 걸어와, 내 팔뚝을 손바닥으로 한 대 때렸다. 아프지 않게."살 빠졌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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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9화. 붐비는 영원

다음 날 아침 여덟 시, 주치의가 상담실 문을 열어 두고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그는 어제 입은 스웨터를 그대로 입고 있었다. 눈 밑이 거뭇했고, 원탁 위에는 식은 커피 두 잔과 종이 뭉치가 흩어져 있었다. 벽의 뇌 단면 그림 옆에 누군가 모니터 기록을 출력한 긴 종이를 테이프로 붙여 놓았다. 초록 선을 검은 잉크로 옮긴 띠가 벽을 가로질러 문 쪽까지 이어져 있었다."밤새 계셨어요?""집에 갔다가 다시 왔습니다. 잠이 안 와서요." 그가 의자를 가리켰다. "앉으세요. 두 가지를 말씀드려야 합니다."나는 앉았다. 그는 수첩을 펼쳤다. 어제 적은 시각들이 빽빽했다."첫째, 어제 그 새 파형이요. 밤 열한 시 이십 분쯤 마지막으로 나오고 멈췄습니다. 오늘 새벽엔 없었어요." 그는 수첩의 한 줄을 손가락으로 짚었다. "그런데 시각을 늘어놓고 보니까 좀 이상한 게 있습니다. 네 시 오십이 분부터 여덟 시까지, 그러니까 정하윤 씨가 병실에 계시던 동안에 제일 촘촘하게 나왔어요. 가시는 뒤로는 점점 드물어지고요.""제가 있어서요?""모릅니다. 우연일 수도 있어요. 하루치로는 아무것도 말할 수 없습니다." 그는 수첩을 덮었다. 그리고 한참 뜸을 들였다. "그런데 두 번째가 더 큽니다."그는 벽에 붙은 긴 종이 앞으로 갔다."어젯밤에 그 새 파형이 언제 처음 생겼는지 확실히 하려고, 1년 치 기록을 처음부터 다시 봤습니다. 이 모니터에 분석 기능이 있어요. 파형을 쪼개서 겹쳐 있는 성분을 따로 보여 주는 기능입니다. 평소에는 쓸 일이 없어서 한 번도 안 켰어요. 선 모양이 1년 동안 똑같았으니까."그가 종이의 왼쪽 끝을 가리켰다. 거기서는 선이 가늘었다."이게 작년 11월, 강한결 씨가 처음 오셨을 때입니다. 선 하나예요. 깨끗한 한 줄." 그는 손가락을 오른쪽으로 옮겼다. 선이 조금 굵어져 있었다. 눈으로 보면 여전
last updateDernière mise à jour : 2026-1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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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화. 명단에 없는 사람들

나흘 뒤 밤, 철웅에게서 전화가 왔다."나와."그 한마디였다. 어디냐고 묻자 성진대 후문 앞이라고 했다. 포장마차. 목소리가 이미 조금 풀려 있었다.밤 열 시 반, 후문 건너편 골목 입구에 주황색 비닐 천막이 하나 서 있었다. 천막 안에 백열등 두 개, 플라스틱 탁자 세 개. 어묵 냄비에서 김이 올라 비닐 벽에 물방울이 맺혀 있었다. 손님은 철웅 하나였다. 그는 구석 탁자에 앉아 지팡이를 탁자 모서리에 기대 놓고, 소주병 두 개를 앞에 두고 있었다. 하나는 비어 있었다."어머님은요?""자. 오늘 저녁에 한 번 숨이 이상해서 다들 뛰어왔는데, 돌아왔어. 의사가 오늘은 넘긴대." 그가 잔을 비웠다. "미경이가 옆에 있어. 나가서 바람 좀 쐬라고 쫓아냈어."나는 맞은편 플라스틱 의자에 앉았다. 의자가 기우뚱했다. 포장마차 주인 할머니가 종이컵에 어묵 국물을 떠서 내 앞에 놓았다. 나는 술은 안 마신다고 했고, 할머니는 알았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고 어묵 꼬치 두 개를 국물 옆에 얹었다."지팡이 양반이 매일 여기서 한 병씩 해." 할머니가 철웅을 턱으로 가리켰다. "오늘은 두 병째야. 아가씨가 좀 말려."철웅은 들은 척도 하지 않았다. 할머니는 냄비 앞으로 돌아가 어묵을 꼬치에 꿰기 시작했다."이만 명." 철웅이 잔을 채우며 말했다. "그 말이 머리에서 안 나가."나는 국물을 불었다. 나흘 전 가족실에서 그가 한 말이 떠올랐다. 이만 명이 서로 옆에 서서, 서로 모르고."아무도 모르잖아. 그 사람들이 거기 있는 거." 그가 소주를 반쯤 마시고 잔을 내려놓았다. "가족들은 편히 가셨다고 생각하고, 안식은 이만 명 돌파라고 광고하고. 근데 그 사람들은 그 골목에 서 있어. 아무도 모르는 데에. 아무도 안 찾는 데에.""……네.""나 그런 사람들 옮긴 적 있어.
last updateDernière mise à jour : 2026-1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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