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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재희, 네가 유진이를 다치게 했어?”
강태윤의 목소리가 서재에 울려 퍼졌다.
재희는 자신을 바라보는 남편의 눈빛을 이해할 수 없었다. 불과 몇 분 전까지만 해도 다른 여자를 무릎에 앉혀놓고 애정을 나누던 남자가 이제는 그 여자의 손목을 조심스럽게 받쳐 든 채 아내를 추궁하고 있었다.
서유진의 하얀 손목에는 가느다란 상처가 나 있었고, 그 위로 배어 나온 피가 손가락을 따라 흘러내리고 있었다. 태윤은 자신의 손수건을 꺼내 상처를 감싸주었으며, 유진은 아픈 기색을 감추려는 듯 입술을 깨물면서도 그의 품에서 떨어지지 않았다.
“제가 그런 거 아니에요. 유진 씨한테 손도 안 댔어요.”
재희가 결백을 주장했지만 태윤은 들으려 하지 않았다. 그는 유진의 손목에 감긴 손수건을 고쳐 매주더니 이미 모든 사실을 확인했다는 듯 아내를 차갑게 노려보았다.
“네가 아니라면 유진이가 왜 다쳤겠어? 설마 혼자 자기 손목을 그었다는 거야?”
재희는 책상 위에 놓인 은색 편지칼을 바라보았다. 조금 전 유진이 그 칼을 집어 들어 자신의 손목을 긁는 모습을 분명히 보았기에, 그녀는 억울함을 호소하는 대신 천장 모서리에 설치된 보안 카메라를 가리켰다.
“태윤 씨, 저기 카메라 있잖아요. 영상만 확인하면 제가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는 걸 알 수 있어요.”
태윤은 재희가 가리킨 곳을 잠시 바라보았다. 그러나 보안실에 연락할 생각은 없는지 곧바로 시선을 거두었고, 오히려 유진의 어깨를 감싸 안으며 아내에게 사과하라고 요구했다.
“지금 중요한 건 유진이가 다쳤다는 사실이야. 네가 먼저 사과하면 여기서 끝낼 수 있어.”
재희는 그 말을 듣고 한동안 남편을 바라보았다. 진실을 확인할 방법이 눈앞에 있는데도 태윤은 그것을 외면하고 있었다. 그에게 중요한 것은 누가 거짓말을 했는지가 아니라 누구의 편에 서고 싶은지인 것 같았다.
불과 몇 시간 전까지만 해도 재희는 오늘 밤이 이렇게 끝나리라고는 상상하지 못했다.
***
태강그룹 후계자 취임식을 하루 앞둔 저녁이었다.
저택의 주방에는 갓 조리한 음식 냄새가 은은하게 퍼져 있었고, 재희는 남편이 좋아하는 갈비찜을 작은 그릇에 덜어 간을 확인하고 있었다.
집에는 요리사가 따로 있었지만, 중요한 날을 앞둔 남편에게 직접 저녁을 차려주고 싶었다. 요즘 태윤이 회사 일로 예민해져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에 적어도 집에 돌아와서는 편안하게 식사할 수 있도록 해주고 싶었다.
재희는 식탁 위에 조개탕과 반찬을 정갈하게 올려놓은 뒤 벽시계를 바라보았다. 태윤이 평소 퇴근하던 시간보다 한 시간이 넘게 지나 있었지만 현관 쪽에서는 아무런 인기척도 들리지 않았다.
휴대전화가 울린 것은 그때였다.
오늘 늦어. 기다리지 마.
태윤이 보낸 짧은 문자였다.
재희는 한동안 화면을 바라보다가 조심스럽게 답장을 보냈다.
내일 취임식이잖아요. 선물도 준비했는데, 잠깐이라도 얼굴 볼 수 없어요?
답장은 돌아오지 않았다.
그녀는 식탁을 치우려다가 손을 멈췄다. 남편이 늦게라도 돌아오면 따뜻한 음식을 먹을 수 있도록 국만 다시 데우기로 하고, 작은 검은색 상자를 손에 들었다.
그 안에는 몇 주 전부터 준비한 은빛 넥타이핀이 들어 있었다. 태윤이 즐겨 입는 짙은 남색 정장에 어울리도록 디자인을 고르고, 이름의 첫 글자를 작게 새겨 넣은 선물이었다.
결혼 첫해에도 비슷한 일이 있었다.
그때 재희는 남편에게 넥타이를 선물했는데, 태윤은 거울 앞에서 그것을 매어보더니 색이 마음에 든다고 말했다. 별다른 애정 표현이 없던 남편이 자신이 고른 물건을 마음에 들어 한다는 사실만으로도 재희는 며칠 동안 행복했다.
그날 저녁에는 태윤이 평소보다 일찍 귀가해 그녀가 직접 끓인 된장찌개를 먹었다. 재희가 뜨거운 냄비를 옮기다 손끝을 데자, 그는 무심한 표정으로 손을 살피며 다음부터는 요리사에게 맡기라고 말했다.
당시에는 그 말조차 자신을 걱정하는 다정함으로 느껴졌다.
마지막으로 기억하는 문 잠금 소리와 구조되기 전까지 겪었던 일도 가능한 한 자세히 적었다.손가락이 아파 글씨가 삐뚤어졌지만 멈추지 않았다.삼 년의 결혼생활 동안 재희가 가장 많이 했던 일은 참는 것이었다.남편이 자신을 무시해도 참았고, 시어머니가 모욕해도 참았다. 다른 여자가 자신의 자리를 넘보는 모습을 보고도 가정을 지키기 위해 참으려 했다.태윤과 처음 결혼했을 때는 모든 것이 달라질 거라고 믿었다.그가 바쁜 사람이라는 것도, 마음을 표현하는 데 서툴다는 것도 이해하려고 했다. 늦은 밤 돌아온 남편을 위해 음식을 데우고, 아침마다 넥타이를 골라주면서 언젠가는 자신을 바라보는 그의 눈빛도 달라질 거라고 기대했다.그러나 그가 달라지기를 기다리는 동안 재희 자신은 점점 작아지고 있었다.무언가를 부탁할 때마다 남편의 기분부터 살폈고, 억울한 일을 당해도 먼저 사과하는 데 익숙해졌다. 자신이 얼마나 외로운지조차 제대로 말하지 못했다.어젯밤 폭우 속에서 버림받았을 때도, 오늘 차가운 창고에 갇혔을 때도, 그녀를 살린 것은 남편이 아니었다.저택 직원들이 쓰러진 자신을 발견했고, 경호원이 창고 문을 열어주었으며, 병원 사람들이 치료해 주었다.정작 평생 함께하겠다고 약속했던 남자는 끝내 오지 않았다.재희는 펜을 내려놓았다.그리고 처음으로 자신에게 물었다.*내가 왜 그 집으로 돌아가야 하지?*대답은 쉽게 나오지 않았다.삼 년의 결혼생활을 단번에 지워버릴 수는 없었다. 아직 남편의 얼굴을 떠올리면 가슴이 아팠고, 그가 자신을 한 번쯤 붙잡아주기를 바라는 마음도 완전히 사라지지 않았다.하지만 그 마음 때문에 자신의 목숨까지 내놓을 수는 없었다.재희는 적어놓은 종이를 접어 소지품 봉투 안쪽에 넣었다.그리고 남편에게 짧은 문자를 보냈다.*태윤 씨, 저는 이제 그 집으로 돌아가지 않겠어요.*메시지를 보내고 나서도 한동안 화면을 바라보았다.곧 읽음 표시가 사라졌다.그러나 답장은 오지 않았다.재희는 휴대전화를 뒤집어 놓았다.이번에는 기다리지 않
태윤은 잠시 침묵했다가 짜증스러운 목소리로 대답했다.“병원에서 치료받고 있다며. 내가 가면 뭐가 달라지는데?”재희는 숨을 들이마셨다.“당신은 제가 얼마나 오래 거기 갇혀 있었는지 알아요? 문을 열어달라고 계속 소리쳤어요. 손이 이렇게 될 때까지 두드렸고, 너무 추워서 숨도 제대로 쉴 수 없었어요.”그녀는 붕대를 감은 손을 내려다보았다. 손톱이 깨지고 손가락 마디마다 상처가 남아 있었다.“그런데 당신은 제가 거기 있다는 걸 알고 있었잖아요.”태윤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직원이 위험하다고 설명까지 했다면서요. 그런데 왜 바로 꺼내주라고 하지 않았어요?”그제야 태윤의 목소리가 차갑게 변했다.“누가 그런 말을 했어?”재희는 대답하지 않았다.“내가 묻잖아. 누가 당신한테 그런 이야기를 했냐고.”“그게 지금 중요해요?”“중요하지. 집안 직원들이 당신한테 무슨 말을 하고 다니는지 알아야 할 거 아니야.”재희는 휴대전화를 쥔 손에 힘을 주었다.남편은 자신이 얼마나 고통스러웠는지보다 그 사실을 알려준 사람이 누구인지 먼저 알고 싶어 했다.그녀는 천천히 입을 열었다.“태윤 씨, 당신은 제가 정말 죽을 수도 있었다는 생각은 안 해봤어요?”태윤은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결국 살아 있잖아.”그 말에 재희는 숨이 멎는 듯했다.태윤은 그녀의 침묵을 아랑곳하지 않고 말을 이었다.“병원에서 치료도 받고 있고, 내가 비용도 전부 처리했어. 그런데 대체 언제까지 이 일을 붙잡고 있을 생각이야?”재희는 입술을 벌렸지만 아무런 말도 나오지 않았다.그는 자신의 말이 통했다고 생각했는지 목소리를 조금 누그러뜨렸다.“이제 그만해. 몸 괜찮아지면 집에 들어와서 어머니께 사과드리고.”재희는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제가 사과해야 한다고요?”“당신 때문에 어머니 생신이 엉망이 됐잖아. 유진이도 반지를 잃어버려서 많이 속상해하고 있고.”재희는 창밖을 바라보았다.햇빛이 병실 바닥에 길게 드리워져 있었다.자신은 죽을 뻔했다.그런데 남편이 걱정하는 것은
그때 간호사가 들어와 체온과 혈압을 확인했다.“많이 놀라셨죠? 저체온 상태로 오셨고 탈수도 있었어요. 지금은 안정되고 있지만 조금 더 지켜봐야 합니다.”재희는 마른 입술을 적셨다.“제가 얼마나 오래 갇혀 있었는지 아세요?”간호사는 잠시 망설였다.“정확한 시간은 모르지만 발견 당시 상태가 좋지 않으셨다고 들었어요.”재희는 고개를 끄덕였다.간호사는 침대 옆 탁자에 놓인 작은 소지품 봉투를 가리켰다.“저택에서 보내온 물건들이에요. 휴대전화와 지갑도 확인해 보세요.”재희는 봉투를 열었다. 응접실에 남겨두었던 가방에서 꺼낸 휴대전화와 지갑, 손수건이 들어 있었다. 그녀는 휴대전화를 켜고 한동안 화면을 바라보았다.태윤에게서 온 연락은 없었다.대신 비서가 보낸 문자가 있었다.*사모님, 대표님 지시로 병원비는 모두 처리했습니다.*재희는 그 문장을 오래 바라보았다.남편이 자신을 위해 한 일은 병원비를 처리하라고 지시한 것뿐이었다.그녀는 간호사에게 조심스럽게 물었다.“혹시 제 남편이 다녀갔나요?”간호사는 안타까운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아직 보호자분은 방문하지 않으셨어요.”재희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창고에서 정신을 잃기 직전까지도 남편이 자신을 구하러 와줄지 모른다고 생각했다. 문이 열리는 순간 가장 먼저 태윤의 얼굴을 보게 될지도 모른다고 믿었다.그런데 그는 자신이 병원에 있다는 사실을 알고도 오지 않았다.재희는 휴대전화를 내려놓았다.눈물이 흘렀지만 닦지 않았다.***오전이 되자 병원 행정 직원이 서류를 들고 찾아왔다.“보호자 측에서 사고 경위에 관한 확인서를 전달하셨습니다. 내용이 맞는지 확인해 주시겠어요?”재희는 서류를 받아 들었다.그곳에는 자신이 연회 도중 몸이 좋지 않아 휴식을 취하다가 쓰러졌다는 내용이 적혀 있었다. 저온창고에 갇혔다는 사실도, 누군가 문을 잠갔다는 내용도 빠져 있었다.재희는 서류를 내려다보다가 물었다.“이건 누가 작성한 거예요?”“보호자 측에서 전달한 내용입니다.”재희는 천천히 고개를 들
태윤은 불쾌한 생각을 밀어내며 짧게 명령했다.“열어서 확인해.”“알겠습니다. 바로 조치하겠습니다.”“대신 손님들한테 알려지지 않도록 해. 재희가 밖으로 나오더라도 연회장에는 들이지 말고.”경호팀장은 잠시 머뭇거리다가 대답했다.“대표님, 사모님 상태가 좋지 않으시면 바로 병원으로 이송하겠습니다.”“상태부터 확인하라고 했잖아.”태윤은 짜증스럽게 전화를 끊었다.그때 유진이 다가와 그의 팔을 붙잡았다.“오빠, 나 손목이 너무 아파.”태윤은 곧바로 그녀를 돌아보았다.“많이 아파?”“아까부터 계속 욱신거려. 오늘 너무 무리했나 봐.”유진은 붕대를 감은 손목을 가슴 가까이 끌어안았다.태윤은 그녀의 손목을 조심스럽게 받쳐 들었다. 붕대 위로 손끝을 가져가던 그는 유진이 작게 얼굴을 찡그리자 곧바로 손을 거두었다.“병원에 가자.”유진은 망설이는 듯 고개를 저었다.“괜찮아. 형수님도 안 보이시는데 오빠까지 나가면 사람들이 이상하게 생각할 거야.”태윤은 그녀의 얼굴을 바라보다가 단호하게 말했다.“네가 아픈 게 더 중요해.”그는 비서에게 차를 준비하라고 지시했다.재희가 갇혀 있는 창고에서는 경호원들이 잠금장치를 풀기 위해 움직이고 있었다. 그러나 태윤은 아내가 어떤 상태인지 확인할 생각조차 하지 않았다.그는 유진의 어깨에 자신의 재킷을 걸쳐주고 함께 저택을 나섰다.***병원으로 향하던 차 안에서 태윤의 휴대전화가 다시 울렸다.경호팀장이었다.“대표님, 사모님을 발견했습니다.”태윤은 창밖을 바라본 채 물었다.“상태는?”“의식이 없으십니다. 현재 구급차를 요청했고, 현장에서 응급처치를 하고 있습니다.”그제야 태윤의 시선이 창밖에서 떨어졌다.“의식이 없다고?”“예. 체온이 상당히 떨어진 것으로 보이고, 손가락에도 상처가 심합니다. 창고 안쪽 문에는 계속 탈출을 시도한 흔적이 남아 있습니다.”태윤은 입술을 굳게 다물었다.손가락에 상처가 생길 정도로 문을 두드렸다는 말이 머릿속에 걸렸다. 자신이 구조를 미루라고 지시했던 순간도 떠
“가지 마세요!”재희는 손바닥으로 문을 내리쳤다.“저 좀 살려주세요!”목소리가 갈라졌다.몇 번 더 문을 두드리던 그녀는 결국 힘없이 주저앉았다. 눈앞이 어지러웠고, 어젯밤 폭우 속에서 남편의 차가 자신을 지나가던 순간이 떠올랐다.그때도 그녀는 도와달라고 했다.오늘도 마찬가지였다.재희는 문에 이마를 기댔다.차가운 철판이 피부에 닿자 몸이 저절로 움츠러들었다. 그녀는 마지막 힘을 모아 손잡이 주변을 긁었다.손톱이 금속에 부딪히는 소리가 희미하게 들렸다.문을 열고 싶었다.그저 이 차가운 곳에서 나가고 싶었다.그러나 손끝에서 힘이 빠져나갔다.재희는 문 옆으로 천천히 쓰러졌다.***재희가 저온창고에 갇힌 지 한참이 지났을 무렵, 태윤의 휴대전화가 울렸다.발신자는 시설관리실 직원이었다.“대표님, 죄송합니다. 뒤쪽 저온창고에서 계속 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들린다는 보고가 들어왔습니다.”태윤은 손에 들고 있던 와인잔을 내려놓았다.“그래서?”“확인해 보니 사모님께서 안에 계신 것 같습니다.”“알아.”너무도 태연한 대답에 직원은 잠시 말을 잇지 못했다.“이미 알고 계셨습니까?”“소민이가 잠깐 데려다 놓았다고 들었어.”직원은 목소리를 낮추었다.“대표님, 그곳은 일반 창고가 아닙니다. 지금도 냉각기가 작동하고 있어서 안에 오래 계시면 위험할 수 있습니다.”태윤은 미간을 찌푸렸다.“그럼 문을 열어주면 되잖아.”직원은 안도한 듯 즉시 대답했다.“네, 바로 열겠습니다.”그러나 태윤은 그가 움직이기도 전에 다시 입을 열었다.“잠깐.”직원은 발걸음을 멈췄다.“재희가 지금도 소리를 지르고 있어?”“예. 문을 계속 두드리고 계신다고 합니다.”태윤은 불쾌한 듯 입술을 비틀었다.“그럼 아직 기운이 남아 있다는 소리네.”직원은 자신의 귀를 의심했다.“대표님, 그래도 혹시 모르니…….”“연회장에 손님들이 많아. 지금 꺼내줬다가 사람들 앞에서 또 난리를 치면 누가 책임질 건데?”태윤의 목소리가 차갑게 가라앉았다.“조금 더 진정할
강태윤은 거래처 대표와 악수를 나누며 여유로운 미소를 지었다. 그의 곁에 선 유진은 드레스 자락을 정리하다가 자연스럽게 태윤의 팔에 손을 얹었고, 태윤은 그녀가 귓가에 무언가 속삭이자 고개를 숙여 이야기에 귀를 기울였다.가까워진 거리만큼 은은한 향수 냄새가 짙어졌다. 태윤의 시선은 유진의 웃는 입술에 잠시 머물렀고, 그녀는 그 시선을 알아차린 듯 더욱 환하게 웃었다.그때 소민이 다가왔다.“오빠, 잠깐 이야기 좀 해요.”태윤은 손님에게 양해를 구한 뒤 소민을 따라 연회장 가장자리로 물러섰다.소민은 주변에 듣는 사람이 없는지 살피더니, 마치 우스운 이야기를 전하려는 사람처럼 입꼬리를 올렸다.“재희 언니 때문에 아주 골치 아파 죽겠어요. 아직도 자기가 억울하다면서 난리예요.”태윤의 표정이 곧바로 굳어졌다.“아직도 그 반지 이야기야?”“네. 그래서 제가 조용한 곳으로 데려갔는데, 지금은 문을 두드리면서 오빠를 불러달라고 하네요.”태윤은 귀찮다는 듯 와인잔을 내려놓았다.“어디에 있는데?”“뒤쪽 식자재 창고요. 잠깐 머리 좀 식히라고 들여보냈어요.”태윤은 그제야 소민을 똑바로 바라보았다.“창고에 가뒀다고?”“언니가 도무지 말을 듣지 않잖아요. 조금만 혼자 있으면 진정할 것 같아서요.”소민은 대수롭지 않게 웃었지만, 태윤은 그곳이 어떤 장소인지 알고 있었다. 연회 음식과 식자재를 보관하는 저온창고로, 일반 창고보다 훨씬 낮은 온도가 유지되는 곳이었다.그런데도 태윤이 먼저 확인한 것은 아내의 상태가 아니었다.“손님들한테 소리가 들리지는 않겠지?”“복도 끝이라 괜찮아요. 문도 두꺼워서 안에서 소리를 질러도 밖에서는 잘 안 들려요.”태윤은 손목시계를 내려다보았다. 연회가 끝나려면 아직 한 시간 이상 남아 있었고, 중요한 손님들도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그럼 조용히 있게 해. 오늘 어머니 생신인데 끝까지 소란을 피울 생각인가 보군.”소민은 안심한 듯 고개를 끄덕였다.“역시 오빠는 이해해 줄 줄 알았어요.”그녀가 돌아서려 하자 태윤이 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