บททั้งหมดของ 재벌가 막내며느리는 김밥집 딸: บทที่ 11 - บทที่ 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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옆구리 터진 김밥

기사에는 댓글이 천 개 넘게 달려 있었다. 보리가 스크롤을 내렸다. 태오가 노트북을 덮으려 하자 보리가 손으로 막았다.«재벌가 며느리가 김밥? 이미지 관리하는 거지.»«돈 많은 집 시집가서 왜 새벽에 일해? 설정 아님?»«해강 망했나 봄. 며느리가 김밥 말아서 생활비 보태나 봄.»«근데 김밥 맛있어 보인다. 우엉 들었네.»«순옥이네 가 봤어요. 진짜 맛있음. 사장님 딸이 손님 주문 다 외움.»«요즘도 이런 드라마가 있네.»보리는 끝까지 읽었다. 삼십 분 걸렸다. 태오는 옆에서 한 번도 말을 걸지 않았다. 다 읽고 나서 보리가 노트북을 덮었다."우엉 들었다는 사람, 눈이 좋네요.""……보리야.""괜찮아요. 김밥집에서 욕 한 번도 안 먹어 본 사람 없어요. 옆구리 터졌다고, 밥이 질다고, 단무지 빠졌다고. 그런 거에 비하면 이건 우엉 칭찬도 있잖아요."태오는 대답 대신 보리를 안았다. 보리는 태오 어깨에 이마를 댔다. 괜찮다고 했지만 이마가 뜨거웠다. 괜찮다는 말은 김밥으로 치면 겉에 바른 참기름이다. 반짝이지만, 속은 따로 있다.―월요일 아침 아홉 시. 해강그룹 본사 홍보실.홍보실장이 태블릿에 댓글 분석표를 띄웠다. 그래프가 빨갛고 파랬다."본부장님. 주말 사이 부정 반응이 육십 퍼센트입니다. 그룹 이미지에 좋지 않습니다. 사모님께서 당분간 가게 출근을 자제해 주시면…….""실장님."태오가 태블릿을 밀었다."그 육십 퍼센트 중에 우리 집사람 김밥 먹어 본 사람이 몇 명일까요. 나머지 사십 퍼센트엔 먹어 본 사람이 꽤 될 겁니다. 그 사람들이 뭐라고 했는지도 분석해 주세요. 그리고 제 아내 출근은 홍보실 소관이 아닙니다."홍보실장은 입을 다물었다. 이십 년 홍보 인생에서 김밥 먹어 본 사람 비율을 분석하라는 지시는 처음이었다.같은 시각, 송림동 본가 거실.보리는 큰어머님의 호출을 받고 앉아 있었다. 숙희도 와 있었다. 몽이가 숙희 무릎에서 보리를 보고 꼬리를 흔들었다. 앞치마 사건 이후로 몽이는 보리만 보면 꼬리가 바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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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대 골목에 파란 조끼

"몰랐어요."보리는 공문을 두 번 읽고 대답했다."정말 몰랐어요, 사장님."곽 사장이 보리 얼굴을 한참 봤다. 곽 사장 지론에 따르면, 거짓말하는 손님은 계산대 앞에서 눈을 두 번 깜빡인다. 삼십 년 장사로 얻은 지론이다.보리는 한 번도 깜빡이지 않았다."……그래. 니는 모를 수도 있제."곽 사장이 공문을 접었다. 손이 여전히 떨렸다."다음 주 목요일 저녁 일곱 시. 구민회관. 상인들 다 오란다.""저도 갈게요.""니는……. 그래. 온나. 순옥이네도 상인이니까."곽 사장이 돌아서 자기 가게로 걸어갔다. 반찬 통 들 때보다 걸음이 무거웠다.엄마가 조리대를 닦다 말고 말했다."보리야. 권 서방한테 전화해 봐라. 모르면 모른다고 해야 되고, 알면 안다고 해야 된다. 둘 다 오늘 안에."―가게 뒤 창고. 보리가 김 상자 사이에서 전화를 걸었다."큰아버지 프로젝트야. 부회장 직속. 해강건설이 시공하고 개발팀이 따로 있어. 유통 쪽은 빠져 있어서 자세히는 몰랐어. 솔내역 쪽 땅을 알아본다는 얘기는 들었는데, 시장 부지까지 들어가는 줄은…….""오빠. 알았으면 말해 줬을 거죠?""……반쯤 알았어. 반쯤 알았을 때 말했어야 했는데. 미안해."보리는 선반의 김 상자를 봤다. 곽 사장네 형님 도매에서 들어온 김이다. 시장이 없어지면 이 김은 어디로 가나."미안한 건 받을게요. 대신 오빠가 알게 되는 거 저한테 다 알려 줘요. 반쯤 알아도요. 그리고 저 이번엔 어느 편 들라고 하지 마요. 저도 아직 몰라요.""보리야. 나는 네 편이야. 네가 어느 편이 되든."이 남자는 대답이 늘 이런 식이다. 김밥으로 치면 속재료가 우엉 두 줄뿐인데도 맛있는 김밥이다.―다음 날 오전. 찬이가 배달 오토바이를 세우고 헬멧도 안 벗고 뛰어 들어왔다."누나. 시장 뒤쪽에 이상한 사람들 있어. 조끼 입고 줄자 들고 다녀. 떡집 뒤 담벼락이랑 순대 골목 끝까지 재고 있어. 조끼 등에 파란 글씨.""해강?""해강건설."찬이 오토바이는 점심 배달을 돌면서 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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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박은 두드려 봐야 안다

강당이 조용했다. 에어컨 도는 소리만 들렸다.보리가 천천히 일어났다. 엄마 손을 놓지 않은 채로. 엄마도 같이 일어났다. 순옥 여사는 딸이 혼자 서 있게 두는 법이 없다."사장님. 저는 순옥이네 편이에요."곽 사장 눈썹이 움직였다."순옥이네는 솔내시장 입구에서 세 번째 가게예요. 시장이 없어지면 입구도 없고, 세 번째도 없어요. 그럼 순옥이네도 없어요. 그러니까 저는 시장 편이에요."보리가 강당을 둘러봤다. 이백 개의 얼굴. 거의 다 아는 얼굴이었다. 참치 둘, 기본 셋에 단무지 따로, 햄 빼고."그리고 해강 며느리이기도 해요. 그건 제가 고른 거고, 안 물릴 거예요. 그래서 해강이 시장을 없애는 쪽이 아니라 시장이랑 같이 가는 쪽으로 가게 하고 싶어요. 그게 제가 여기 앉아 있는 이유예요."한쪽에서 누가 코웃음을 쳤다."말이야 쉽지. 재벌가 며느리가 그걸 어떻게 하노.""모르겠어요. 아직 몰라요. 근데 제가 모른다고 여기서 도망가면, 해강에서 이 얘기를 시장 편에서 할 사람이 아무도 없어요. 그건 알아요."곽 사장이 보리를 오래 봤다. 그리고 고개를 한 번 끄덕였다.보리가 통로를 걸어 단상 앞까지 갔다. 사람들이 길을 비켰다. 개발팀 직원들이 당황해서 서로를 봤다."아주버님. 질문 하나만 해도 돼요?"태민이 마이크를 쥔 채 고개를 끄덕였다."조감도에 김밥집 있어요?"강당에 작은 웃음이 번졌다. 태민이 뒤를 돌아 화면을 봤다. 유리 건물, 광장, 분수. 식당가는 3층. 영어 이름 가게들."……없어.""떡집은요?""없어.""그럼 다음 설명회 때는 있었으면 좋겠어요."보리가 강당 쪽으로 돌아섰다."오늘은 해강이 설명하는 날이었잖아요. 다음엔 해강이 듣는 날로 한 번 더 하면 어떨까요. 시장 사람들이 말하고 해강이 받아 적는 날이요."강당이 웅성거렸다. 개발팀장이 고개를 저었다. 그런 일정은 없다는 뜻이었다.태민이 보리를 봤다. 그리고 마이크에 대고 말했다. 처음으로 종이를 보지 않고."……하겠습니다. 한 번 더."개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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떡가루 묻은 몽이

보리는 앞치마를 두른 채 가게를 뛰쳐나갔다."엄마, 가게 좀!""어디 가냐!""어머님이 시장에 계세요!"엄마가 주걱을 든 채 굳었다. 계산대의 아빠가 동전을 떨어뜨렸다. 오백 원짜리가 조리대 밑으로 굴러 들어갔다. 그 동전은 사흘 뒤 청소할 때 발견된다.보리는 휴대폰을 귀에 댄 채 달렸다."어머님, 주변에 뭐가 보여요?""……모르겠다. 가게가 많아. 빨간 차양, 파란 차양."시장은 전부 빨간 차양, 파란 차양이다."냄새는요? 생선 냄새면 태식이네 쪽이고, 참기름 냄새면 저희 가게 쪽이고, 떡 찌는 냄새면……."숙희가 잠깐 말이 없었다."……떡 냄새가 난다."보리가 방향을 틀었다.떡집 앞 모퉁이에 숙희가 서 있었다. 모자를 깊이 눌러쓰고 선글라스를 끼고, 빈 목줄을 쥔 채로. 분홍 리본 달린 목줄 끝이 덜렁거렸다."어디서 없어졌어요?""여기서. 목줄이 풀렸는데 저쪽 골목으로……."숙희가 떡집 옆 골목을 가리켰다. 떡집 뒤편, 담벼락이 있는 쪽."어머님, 시장에는 왜……. 아니에요. 찾고 나서 여쭤볼게요."보리가 전화를 걸었다. 첫 번째는 곽 사장이었다.―오 분 뒤. 시장 골목 스피커가 지지직 울렸다. 평소엔 떨이 시간이나 주차 단속 안내에만 쓰던 상인회 방송이었다."아, 아. 상인회에서 알려 드립니다. 강아지를 찾습니다. 하얀 말티즈. 이름은 몽이. 분홍 리본. 사람을 쪼매 가립니다. 보신 분은 순옥이네 김밥으로 연락 주이소. 다시 한번 알려 드립니다……."곽 사장 목소리였다. 결혼식 축사 때보다 훨씬 또렷했다. 곽 사장은 이 방송을 세 번 했다. 세 번째엔 '사람을 쪼매 가립니다' 뒤에 '근데 착합니다'를 덧붙였다. 본 적도 없으면서.두 번째 전화는 태식이였다."보리야, 걱정 마. 내가 퍼뜨릴게."태식이는 생선가게 앞에서 고등어를 신문지에 싸고 있었다. 손님이 올 때마다 싸는 속도를 반으로 늦췄다. 싸는 동안 말하려고."어머니, 고등어 두 마리 나왔심더. 근데 혹시 하얀 강아지 못 보셨어요? 분홍 리본. 몽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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떡볶이와 찻사발

다음 날 오후 두 시 십 분. 셔터를 반쯤 내리자마자 시장 입구에 빨간 소형차가 섰다. 태희였다. 선글라스를 머리 위에 올리고 종이 가방 두 개를 들고 내렸다."형님, 여기 주차하시면 딱지 떼여요.""떼라 그래. 지금 딱지가 문제야?"태희가 종이 가방 하나를 보리에게 안겼다. 신문지 속에 찻사발 하나가 들어 있었다. 쪽빛이어야 할 유약이 거품처럼 끓어올라 얼룩덜룩한 보라색이 돼 있었다. 멍든 하늘 같았다."이게 스무 점 중 하나야. 가마 온도 조절기가 고장 나서 밤새 불이 너무 셌대. 스무 점이 전부 이 꼴이야. 새로 빚어서 말리고 굽자면 삼 주. 빌릴 수 있는 가마는 가을 물량으로 꽉 찼고. 솔직히 기대는 안 해. 근데 네가 폐백 접시 사진 보여 줬을 때 결이 좀 달랐어.""가요, 형님. 민 여사님은 두 시 반에 낮잠 주무세요. 그 전에 가야 돼요.""넌 그런 것까지 알아?""시장은 다 알아요."태희는 나중에 말했다. 그 순간 이 올케가 좀 무서웠다고. 시장 사람 낮잠 시간까지 아는 올케는 처음이었다고.―민그릇 입구는 좁고 안은 넓었다. 천장까지 닿는 선반에 그릇이 빽빽했다. 사발, 뚝배기, 종지, 김칫독. 오래된 흙 냄새, 묵은 신문지 냄새.민 여사가 돋보기를 코끝에 걸고 사발 굽을 닦다 고개를 들었다."보리 왔니. 옆에 그 아가씨는……. 아, 폐백 접시 빚은 사람이구나. 굽 둘레에 빗살 한 줄 넣은 거. 그거 잘했더라, 얘."태희 눈이 커졌다."……그걸 어떻게 아세요?""보리가 사진 보여 줬지. 굽에 빗살 넣을 생각을 요새 누가 해. 늙은이들이나 하지."민 여사가 얼룩진 사발을 손끝으로 톡톡 두드려 보고, 빛에 비춰 봤다."흙은 좋은데 불을 잘못 먹였네. 이건 못 살려."태희 어깨가 내려앉았다. 민 여사가 선반을 올려다보더니 사다리를 끌어왔다."여사님, 제가 올라갈게요.""네가 뭘 알아. 어디 뭐가 있는지는 나만 알아."칠순 할머니가 사다리를 올랐다. 보리가 다리를 붙잡았다. 태희는 멍하니 서 있었다. 선반 맨 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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녹두전은 기다려야 한다

식탁이 조용했다. 에어컨 바람에 커튼 끝이 흔들렸다.태오가 먼저 입을 열었다."큰어머니. 차례 음식은 매년 큰어머니랑 오 여사님이 두 달 전부터 준비하시잖아요. 그걸 결혼 석 달 된 사람한테…….""그러니까 배워야지, 태오야. 친척들까지 사십 명이에요. 차례상 두 벌, 손님상 여섯 개. 전 열두 가지, 나물 아홉 가지, 탕 세 가지, 떡 두 가지. 목록은 오 여사한테 있어요."혜란이 보리를 봤다."그리고 하나만 더. 새아기 친정 도움은 안 돼요. 이 집 며느리로서 하는 거니까."태희가 포크를 내려놨다. 소리가 컸다. 예나는 고개를 숙였다. 회장은 말이 없었다. 생각 중이다.보리는 빨간 머리끈을 풀었다가 다시 조였다. 식탁 위에서, 모두가 보는 앞에서. 이건 순옥이네 식 선전포고다. 물론 이 집 사람들은 그걸 모른다."네, 큰어머님. 할게요.""……보리야."태오가 보리 손목을 잡았다. 보리가 태오 손등을 두 번 두드렸다. 괜찮다는 뜻이다."하나만 여쭤볼게요, 큰어머님. 장은 시장에서 봐도 되죠? 돈 내고 사는 거니까요. 친정 도움이 아니라 장사잖아요."혜란이 멈칫했다. 그리고 웃었다."장이야 어디서 보든 새아기 마음이죠.""그리고 이 집 식구들이 돕겠다고 하면요?""……식구가 식구 돕는 거야 누가 말려요.""네. 감사합니다."태희가 식탁 밑으로 엄지를 들었다. 예나가 고개를 살짝 들었다. 회장이 고무줄을 튕겼다. 탁.혜란은 그 순간 알았다. 방금 자기가 문을 두 개나 열어 줬다는 걸. 시장 문과 식구 문. 하지만 이미 늦었다. 말은 김밥이랑 같아서, 한 번 말면 다시 펼 수가 없다.―다음 날 오후. 본가 부엌. 오 여사가 서랍 맨 밑 칸에서 믹스커피 대신 공책 세 권을 꺼냈다. 표지가 누렇게 바래 있었다."차례 장부예요. 삼십 년 치."해마다 날짜, 인원, 음식, 양, 장 본 곳, 값. 그리고 맨 아래 작은 글씨.«올해 동그랑땡 남음. 내년 스무 개 줄일 것.»«회장님 토란국 두 그릇. 간 딱 맞음.»«식혜 한 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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팥 말고 강낭콩

추석 전날 새벽 세 시 반. 보리가 떡집 뒷문을 두드렸다. 문틈으로 떡 찌는 김이 흘러나왔다."들어와. 문 열려 있어."배 할머니가 커다란 시루 앞에 서 있었다. 추석 대목이라 새벽 두 시부터 떡을 찌는 중이었다."수수부꾸미 배우러 왔지?""……어떻게 아셨어요?""어제 그 종이 들고 나갈 때 니 얼굴이 딱 그 얼굴이더라. 뭐든 배워야겄다는 얼굴."조리대 한쪽이 이미 비워져 있었다. 찰수수 가루 한 봉지와 작은 그릇 두 개. 할머니는 보리가 올 줄 알고 있었다."찰수수 가루. 뜨거운 물로 익반죽. 찬물로 하면 갈라져."할머니가 끓는 물을 부어 저었다. 그리고 손으로 치댔다. 뜨거울 텐데 손이 멈추지 않았다. 칠십 년 떡을 치댄 손바닥은 이미 반은 나무 주걱이다."영철이네 고향은 강원도 산골이여. 거기선 부꾸미에 팥을 안 넣어. 강낭콩을 넣지. 삶아서 으깨고, 소금 쪼끔, 설탕은 아주 쪼끔. 달면 안 돼.""강낭콩이요?""그려. 영철이가 열일곱 살에 고향서 수수 한 자루를 이고 왔었어. 우리 아부지한테 이걸로 부꾸미 좀 부쳐 달라더라구. 어머니가 해 주던 거라고. 아부지가 강낭콩 소를 넣어 부쳐 줬더니, 그 총각이 떡집 앞 흙바닥에 앉아서 울면서 먹었어."할머니가 반죽을 동그랗게 떼어 손바닥으로 눌렀다."그걸 아는 사람이 그 집에 아직 있다는 게 신기허다.""큰어머님이요."할머니 손이 멈췄다."어젯밤에 오 여사님 장부를 다시 봤어요. 첫 권 첫 장, 삼십 년 전 추석. 큰어머님 시집온 첫해에 돌아가신 할머님이 수수부꾸미를 시키셨대요. 큰어머님은 팥을 넣으셨대요. 할머님이 차례상 앞에서 역정을 내셨고요. 그리고 팩스 글씨요. 오 여사님이 보시더니 큰어머님 글씨래요."할머니가 한참 보리를 봤다."그래서, 따지러 갈 겨?""아니요. 큰어머님은 제가 삼십 년 전 큰어머님처럼 울 거라고 생각하시는 거잖아요. 그럼 안 울면 돼요. 부쳐 드리면 돼요. 강낭콩으로요."할머니가 크게 웃었다. 시루에서 김이 훅 올라왔다."옛날에 딱 너 같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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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혜는 한 통 더

김치냉장고 안에서 찬 기운 대신 미지근한 공기가 흘러나왔다. 식혜 통 위에 하얀 거품. 쉰 냄새.문 안쪽 화면. 온도 8도. 그 옆에 깜빡이는 글씨.«숙성»보리는 한참 그 글씨를 봤다. 가게 김치냉장고에도 있는 버튼이다. 엄마가 김장 김치 익힐 때만 누르는.누가 눌렀을까.보리는 뚜껑을 닫았다. 문도 닫았다. 모드는 건드리지 않았다. 건드리면 누가 눌렀는지 아무도 모르게 될 테니까. 대신 휴대폰으로 화면 사진을 찍었다.새벽 두 시 십 분. 차례는 아침 아홉 시. 식혜는 하룻밤을 삭혀야 한다. 지금 새로 하면 늦는다.검지가 허공에서 세 번, 네 번 돌았다. 그리고 멈췄다. 오 여사 장부의 한 줄이 떠올랐다.«식혜 한 통 더. 해마다 누가 쏟음.»―새벽 네 시. 오 여사가 약속대로 나타났다. 화면 사진을 보고 안경줄을 만졌다."숙성이네.""여사님. 장부에 식혜 한 통 더라고 쓰여 있던데요.""……그걸 봤어요?"오 여사가 소리 없이 웃었다."십오 년 전부터 해마다 한 통 더 해요. 큰어머님 레시피 그대로. 큰어머님은 몰라요. 내 방 냉장고에 있어요. 엿기름을 두 번 거르세요, 큰어머님은. 한 번 거르면 텁텁하다고. 설탕은 마지막에. 생강 한 쪽."오 여사가 방에서 커다란 유리병을 들고 왔다. 밥알이 동동 떠 있었다."이거 올리면 돼요. 큰어머님 식혜예요. 손만 내 손이지."삼십 년 부엌의 비밀 무기는 대개 이런 모양이다. 유리병 하나, 아무도 모르는 냉장고 하나.―새벽 다섯 시. 보리가 나물 아홉 가지를 무치기 시작했다. 시금치, 고사리, 도라지, 숙주, 무, 호박, 가지, 취나물, 토란대. 양념이 조금씩 달랐다. 오 여사 장부에 다 있었다.그다음 수수부꾸미. 수수 반죽을 떼어 손바닥으로 누르고, 팬에 올리고, 가장자리가 투명해지면 강낭콩 소를 한가운데. 반으로 접어 반달. 숟가락으로 꾹꾹.첫 번째는 소가 새어 나왔다. 두 번째는 반죽이 찢어졌다. 세 번째부터 모양이 났다. 떡집 할머니의 세 번 보여 준 한 번이 효과를 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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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송편 가운데 점

보리는 부엌 문간에서 그 송편을 봤다.떡집 배 할머니의 꽃송편과 꼭 닮았다. 꽃잎 다섯 장. 꽃잎 끝이 살짝 말려 올라간 것까지. 다른 건 딱 하나였다. 가운데 점. 할머니 송편은 점이 한가운데 있다. 숙희 송편은 점이 오른쪽으로 조금 비켜 있었다."손 씻고 와라. 사십 명이다. 혼자는 못 한다."숙희가 돌아보지 않고 말했다. 보리가 손을 씻고 옆에 섰다. 숙희가 반죽 한 덩이를 밀어 줬다.둘은 말없이 송편을 빚었다.숙희 손은 빨랐다. 떼고, 굴리고, 엄지로 파고, 깨 넣고, 오므리고, 찍고. 한 개에 십 초가 안 걸렸다. 김밥 한 줄 사십 초인 보리보다 빨랐다. 순옥이네 딸이 속도에서 진 건 엄마 말고는 처음이었다."어머님, 음식 해 본 적 없다고 하셨잖아요. 상견례 날 화장실에서요.""음식은 안 한다고 했지. 송편은 음식이 아니다.""그럼 뭐예요?"숙희 손이 잠깐 멈췄다."……버릇이다."그리고 다시 움직였다."누름틀 예뻐요. 어디서 나셨어요?""옛날에 누가 줬다.""누가요?""보리야. 송편 식는다."보리는 더 묻지 않았다. 하지만 머릿속에서 재료들이 한자리에 모이고 있었다. 떡집 담벼락의 열둘. 밥에 들기름 한 방울. 손수건에 싸 간 꽃송편. 폐백 대추 매듭에 떨리던 손. 몽이 입가 떡가루를 닦던 엄지. 그리고 이 누름틀.재료는 다 모였다. 아직 말지만 않았을 뿐.―손님상에 꽃송편이 올라갔다. 친척들이 감탄했다."숙희 형님, 해마다 형님 송편 먹으러 추석에 온다니까요."숙희는 엷게 웃었다.태오가 하나를 먹고 보리에게 목소리를 낮췄다."보리야. 지난번 너희 가게에서 먹은 떡집 송편이랑 맛이 똑같아. 깨 소에 소금 들어간 거까지."보리는 대답 대신 태오 손에 송편 하나를 더 쥐여 줬다. 입을 막는 데는 송편이 최고다.회장이 꽃송편 하나를 집었다. 매화 무늬를 오래 봤다. 그리고 숙희를 봤다. 숙희는 회장 눈을 피하지 않았다. 둘 사이에 뭔가가 오갔다. 아주 오래된 약속 같은 것이었다.회장은 송편을 먹고 아무 말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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떡집 앞 꽃송편 세 개

"쉿."보리가 찬이 입을 손바닥으로 막았다. 찬이가 눈을 동그랗게 떴다."찬아. 너 지금 본 거 아무한테도 말하지 마. 엄마한테도."찬이가 손바닥 밑에서 고개를 끄덕였다. 보리가 손을 뗐다."……누나, 무슨 일인데.""나도 아직 몰라."보리가 슬리퍼를 신은 채 계단을 내려갔다. 대문을 조용히 열었다. 뛰지 않았다. 뛰면 발소리가 난다.―숙희는 떡집 앞에 서 있었다. 셔터에 붙은 종이가 바람에 팔랑거렸다. «추석 연휴 휴무. 연휴 다음 날 새벽부터 떡 나옵니다.» 할머니 글씨. 삐뚤빼뚤한.숙희가 셔터를 손바닥으로 쓸었다. 녹슨 쇠. 무릎 높이쯤 오래된 페인트 자국. 떡집 이름이 쓰여 있던 자리. 지금은 반쯤 지워져 «배가»만 남아 있었다.숙희가 그 두 글자를 손끝으로 따라 그렸다.보리는 골목 모퉁이 전봇대 뒤에 섰다. 이 장면에 들어가면 안 된다는 걸 알았다. 썰 때를 알아야 한다.숙희가 떡집 옆 좁은 골목으로 들어갔다. 떡집 뒤편, 담벼락. 보리 자리에서 반쯤 보였다.숙희가 담벼락 앞에 쪼그려 앉았다. 칼로 그은 선들을 하나씩 짚어 올라갔다. 다섯. 여섯. 일곱. 열둘에서 멈췄다.분필 숫자가 아직 하얗게 남아 있었다. 숙희가 그걸 봤다.숙희의 어깨가 떨리기 시작했다. 소리는 나지 않았다. 한 손으로 입을 막고, 다른 손은 열둘에 댄 채로.보리는 전봇대를 붙잡았다. 다가가고 싶었다. 등을 쓸어 드리고 싶었다. 하지만 어머님은 지금 아무한테도 보이고 싶지 않을 거였다. 특히 며느리한테는.그때 떡집 뒷문 안쪽에서 빗장 여는 소리가 났다.숙희가 벌떡 일어났다. 얼굴을 손으로 훔쳤다. 그리고 반대쪽 골목으로 빠르게 걸어 나갔다. 사십일 년 만에 온 길을, 삼십 초 만에 도망쳤다.숙희가 앉았던 자리에 하얀 손수건 꾸러미 하나가 남아 있었다.―배 할머니가 쓰레기봉투를 들고 나왔다. 명절 뒤라 떡 상자가 가득했다.할머니가 담벼락 앞에서 멈췄다. 손수건을 봤다. 쓰레기봉투를 내려놓았다. 허리를 숙여 주웠다. 천천히 풀었다.꽃송편 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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