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odos los capítulos de 7년 짝사랑을 폐업했더니 길 건너 약사가 단골이 됐다: Capítulo 11 - Capítulo 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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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화. 단골 손님 수칙

해담은 셔터를 끝까지 내리고 문을 잠갔다. 작업대에 남은 쇳가루를 털어 통에 넣고, 벽의 열쇠 블랭크 판을 살폈다. 삐뚤어진 열쇠는 없었다. 그래도 손이 한쪽으로 갔다가 멈췄다.「그만 좀 봐.」계산대 장부를 덮고 2층으로 올라갔다. 계단을 오르는 동안 허리의 열쇠 꾸러미가 짤랑거렸다. 내일도 8시 20분에 올까.해담은 계단참에서 걸음을 멈췄다가 다시 올라갔다.월요일 아침, 가게 문을 연 뒤에도 그 생각이 따라붙었다. 해담은 작업대에 앉아 열쇠 복사 주문을 받았다. 손님은 열쇠를 받아 들고 손잡이와 날을 번갈아 살폈다.“잘 맞을 거예요. 안 맞으면 가져오세요.”“사장님이 하셨는데 안 맞을 리가 있나.”손님은 값을 내고 나갔다. 해담은 돈을 계산대 서랍에 넣은 다음 장부에 날짜와 작업 내용을 적었다. 글씨가 한 줄 비뚤어졌다. 다시 쓰려고 했지만 지우개를 찾지 않았다.오전 손님이 뜸해지자 해담은 종이를 꺼냈다. 작업대 옆에 있던 볼펜으로 글씨를 눌러 썼다.『단골 손님 수칙』1. 8시 20분~8시 30분만.2. 복사 말고 다른 말 금지.3. 개업 소리 금지.해담은 종이를 작업대 앞 유리문 안쪽에 붙였다. 눈높이에 맞춰 모서리를 눌렀다. 한쪽이 들떠 다시 눌렀다.봉숙자가 미용실 문을 열다가 종이를 읽었다.“단골 손님 수칙?”“손님들이 가끔 헷갈려 해서요.”“누구 손님이 헷갈렸는데?”“아직 아무도요.”“그럼 예방 차원이네.”해담은 종이에서 눈을 떼지 않았다.“원장님도 읽으셨으니 이제 헷갈리지 마세요.”봉숙자는 가위집을 허리에 달며 웃었다.“난 단골 아니니까 괜찮지?”“원장님은 이웃이잖아요.”“이웃이 더 조심해야 하는 거 아니야?”해담은 대꾸하지 않고 종이 끝을 한 번 더 눌렀다. 봉숙자는 미용실 안으로 들어가면서도 유리문 쪽을 돌아봤다.“글씨는 잘 썼네.”“손님 오세요.”“아직 안 왔어.”해담은 종이를 등지고 작업대로 돌아왔다. 글씨를 다시 확인하지 않으려고 장부를 폈다. 거래 날짜를 적고, 지난주에 받아 둔 열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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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화. 수칙 개정

해담은 유리문에 붙은 종이를 바라봤다. 2번 규칙이 눈에 들어왔다.『복사 말고 다른 말 금지.』서후는 문손잡이에서 손을 놓고 기다리고 있었다. 해담은 작업대 위에 있던 볼펜을 집었다. 종이를 떼어 내지 않고, 2번 문장 위에 선을 그었다. 글씨가 한 번에 가려지지 않아 두 번 더 그었다.“이제 말해도 돼요.”서후는 종이를 살폈다.“수칙을 바꾸셨습니까?”“제가 물으면 대답해도 된다는 뜻이에요.”“알겠습니다.”서후는 문 앞에서 작업대 쪽으로 돌아섰다. 해담은 볼펜을 내려놓고 팔짱을 꼈다.“그래서 오늘은 어땠어요?”“감기 손님이 많았습니다.”“많았어요?”“오후에 기침하는 손님이 이어졌습니다. 열이 있는 분도 있었고요.”“약국 문 열자마자요?”“아침에는 많지 않았습니다. 점심 뒤부터 늘었습니다.”해담은 손끝으로 작업대 모서리를 두드렸다. 서후는 오늘 약국에서 있었던 일을 말하고 있었다. 그 사실이 낯설었다. 해담은 길 건너편 약국의 영업시간도, 약사 면허 액자도, 계산대에 놓인 작은 안내문도 알고 있었다. 하지만 그가 하루를 어떻게 보냈는지는 몰랐다.“그럼 약사님도 바빴겠네요.”“그렇습니다.”“밥은 먹었어요?”서후가 잠시 대답을 늦췄다.“점심은 먹었습니다.”“뭘로요?”“약국에서 먹었습니다.”“그건 장소고요.”“준비해 둔 것을 먹었습니다.”해담은 눈썹을 찌푸렸다.“뭘 준비해 뒀는데요?”“염 여사님이 반찬을 가져오셨습니다.”“그럼 그걸 드신 거네요.”“네.”“반찬 이름은요?”“나물과 달걀입니다.”“나물은 무슨 나물인데요?”“잘 모르겠습니다.”“먹었는데 몰라요?”“여사님이 여러 가지를 섞어 주셨습니다.”해담은 팔짱을 푼 뒤 볼펜을 집었다가 다시 내려놨다. 서후는 물어본 만큼 대답했다. 짧고 또박또박했다. 막히는 말도, 얼버무리는 말도 없었다.“약사님은 밥 먹을 때도 그렇게 말을 안 해요?”“같이 먹는 사람이 없어서요.”해담은 입을 다물었다. 서후는 아무렇지 않은 얼굴로 작업대 앞에 서 있었다. 가운 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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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화. 출장 중

해담은 대답하지 못했다.서후는 더 묻지 않았다. 작업대 위에 놓인 놋쇠 열쇠를 챙기고, 영수증을 접어 지갑에 넣었다. 문손잡이를 잡은 뒤에도 한동안 해담을 바라봤다.“오늘은 이만 가겠습니다.”“네.”“8시 20분에 오겠습니다.”해담의 손이 작업대 모서리를 움켜쥐었다.“그건 약사님 마음이죠.”“네.”서후가 문을 열고 나갔다. 해담은 그 뒤를 보지 않았다. 문이 닫히는 소리가 나고서야 손에 힘을 풀었다.「바보가 둘이네.」해담은 벽의 열쇠 블랭크를 종류별로 다시 걸었다. 이미 맞춰 둔 열쇠까지 하나씩 살폈다. 손끝에 쇳가루가 묻었다. 계산대 위에는 오늘 장부와 영수증이 남아 있었다.문을 닫고 올라간 뒤에도 잠이 오지 않았다. 가게 2층 창으로 약국 쪽을 보지 않으려 했다. 눈을 감아도 서후의 목소리가 떠올랐다.바보는 제가 했습니다.그 말이 무엇을 뜻하는지는 묻지 않았다. 물어보면 대답할 거라는 걸 알았고, 대답을 들으면 또 다음 질문이 생길 것 같았다.다음 날 아침, 해담은 평소처럼 셔터를 올렸다. 가게 문을 열고 기계를 켰다. 첫 손님은 복사한 열쇠가 뻑뻑하다며 돌아왔다. 해담은 열쇠를 받아 날을 살폈다.“문이 안 열렸어요?”“열리긴 열리는데 잘 안 돌아가요.”“제가 다시 맞춰 드릴게요.”해담은 열쇠를 기계에 물렸다. 날을 조금 다듬고 모서리를 줄로 갈았다. 손님이 기다리는 동안 해담은 잠금장치에 문제가 없는지 물었다.“열쇠가 닳았을 수도 있지만 자물쇠 안쪽도 확인해야 해요. 다시 걸리면 자물쇠도 가져오세요.”“알겠습니다. 사장님이 봐 주시니 안심이네요.”해담은 열쇠를 돌려주고 장부에 일을 적었다. 글씨가 평소보다 크게 기울었다. 장부를 덮고 다시 펴려다가 그만뒀다.봉숙자가 미용실 문을 열고 나왔다. 해담이 작업대 옆에서 빈 종이를 찾는 모습을 보고 안으로 들어왔다.“뭘 찾니?”“종이요.”“종이는 저기 있잖아.”봉숙자가 계산대 옆을 가리켰다. 해담은 그쪽을 봤다. 종이 뭉치가 있었다.“찾았네요.”“찾고 있었던 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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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화. 영업 재개 아님

탁 사장은 정육점 문을 열고 나와 전봇대 쪽을 봤다. 종이 아래가 들려 있었다. 그는 손에 든 행주로 손바닥을 닦고 전봇대까지 걸어가 종이 모서리를 눌렀다.“접착제가 약하네요.”해담이 작업대에서 말했다.“종이가 약한 거야.”“바람 불면 떨어지겠는데요.”“떨어지면 또 붙이겠지.”탁 사장은 종이를 한 번 더 눌렀다. 종이가 다시 들리자 손을 거뒀다.“저런 건 오래 붙어 있을수록 손님이 헷갈려.”해담은 유리문 너머 전단을 살폈다. 글씨는 컸고, 전화번호도 또렷했다. 탁 사장은 전단을 떼지 않았다.“떼면 제가 떼었다고 할 거잖아요.”“누가?”“봉 원장님이요.”“그 사람은 안 봐도 다 봤다고 하겠지.”탁 사장은 정육점으로 돌아갔다. 잠시 뒤 그는 손을 씻고 다시 나왔다. 이번에는 종이를 보지 않고 구씨열쇠 안을 살폈다.“아직 장사 안 하는 줄 알았는데.”“문만 열었어요.”“손님은 받으면서?”“오면 받죠.”“그게 장사야.”해담은 대꾸하지 않고 작업대의 열쇠를 돌려 놓았다. 탁 사장은 서후가 계산대 앞에서 기다리는 걸 보고 고개를 까딱했다.“약사 양반은 오늘도 정시에 왔네.”서후가 시계를 확인했다.“8시 20분입니다.”“그래. 그 시각엔 가게 문도 열렸고.”해담이 탁 사장을 쳐다봤다.“그런 말 하지 마세요.”“뭘?”“아무것도 아니에요.”탁 사장은 입을 다물고 정육점 쪽으로 물러났다. 서후는 열쇠 기계가 멈출 때까지 기다렸다. 해담은 복사한 열쇠의 날을 살피며 금속 가루를 털었다. 탁 사장이 다시 가게 앞으로 나왔을 때는 손에 포장된 고기가 들려 있었다. “약사 양반, 버티려면 고기 먹어야 돼.”◎해담은 평소보다 일찍 구씨열쇠에 내려왔다. 셔터 앞에 선 채 열쇠 꾸러미를 허리에서 풀어 문을 열었다. 안쪽 전등을 켜고 기계 덮개를 벗겼다. 쇳가루 통을 비우고 작업대도 닦았다.문을 열어 둔 채 셔터를 올렸다. 끝까지 올리자 골목이 한눈에 들어왔다. 해담은 셔터 손잡이를 놓고 출입문 앞에 섰다.『출장 중』 팻말은 문 안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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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화. 전화 주문 받습니다

3월 21일 밤 10시가 조금 지난 때였다.해담은 공구 가방을 들고 원룸 건물 앞 길을 걷고 있었다. 휴대전화가 울렸다. 화면에 저장되지 않은 번호가 떴다.“구씨열쇠입니다.”“저기, 지금 문이 안 열려서요. 출장 오실 수 있을까요?”여자의 목소리가 급했다. 해담은 걸음을 멈췄다.“열쇠가 안 돌아가요, 아니면 열쇠가 없어요?”“열쇠가 안에 있어요. 문이 닫혔는데 제가 밖에 나와 있어요.”“문 앞에 계세요?”“네. 원룸 건물 복도요.”해담은 건물 입구를 올려다봤다. 바로 앞이었다.“주소가 어디예요?”여자가 주소를 말했다. 해담은 건물 이름과 입구를 확인한 뒤 물었다.“본인 사는 집 맞으시죠?”“네. 제 집이에요.”“확인할 수 있는 신분증이나 계약서가 있으세요?”“휴대전화에 계약서 사진 있어요.”“그럼 도착해서 확인할게요. 문을 세게 밀거나 손잡이를 당기지 마세요. 자물쇠가 더 걸릴 수 있어요.”“네. 기다리고 있을게요.”통화가 끊겼다. 해담은 전화기를 가방 옆주머니에 넣고 건물 입구로 향했다. 그때 길 건너 늘봄약국 앞에서 셔터가 내려와 있었다.서후가 잠긴 약국 문을 확인하고 있었다. 흰 가운은 보이지 않았다. 남색 니트 위에 걸친 얇은 겉옷을 여미던 서후가 해담을 발견하고 길을 건너왔다.“사장님, 출장 가십니까?”“네. 여기 원룸 건물에요.”해담은 입구 쪽으로 턱을 가리켰다.“혼자 사는 분이 문이 잠겼대요.”“같이 가겠습니다.”“괜찮아요. 문 여는 건 제 일이에요.”“압니다.”“그러면 왜요?”“밤길이고, 혼자 계신 손님이라고 하셨습니다.”“그 말만 듣고 따라오면 어떡해요. 약사님도 집에 가셔야죠.”“약국은 닫았습니다.”“이미 닫았으면 더더욱 가셔야죠.”“같이 가겠습니다.”서후는 더 설명하지 않았다. 해담은 공구 가방을 다시 고쳐 들었다.“제 뒤에 붙지 마세요.”“알겠습니다.”“그리고 가게 일에 끼어들지 마요.”“알겠습니다.”“진짜 알겠어요?”“네.”해담이 먼저 건물 입구로 걸었다. 뒤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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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화. 문자 상담 가능

해담은 휴대전화 연락처를 열어 이름을 한 번 더 확인했다.『길 건너』진서후의 번호가 그 아래 저장돼 있었다. 이름을 그대로 저장하겠다더니, 정작 해담은 이름 대신 저렇게 적었다. 검색하기 편하다는 말은 못 하겠다. 길 건너 사는 사람이 한둘도 아닌데.「길 건너 하나뿐이네.」해담은 화면을 끄고 휴대전화를 계산대 서랍에 넣었다. 벽의 열쇠 블랭크 판에서 기울어진 열쇠를 바로 걸었다. 손끝에 쇳가루가 묻었다.3월 23일, 구씨열쇠의 문은 평소처럼 열려 있었다. 해담은 작업대 앞에 앉아 손님이 맡긴 열쇠를 살폈다. 열쇠 날에 마모가 있어 복사 전에 원본부터 정리해야 했다. 기계에 물리기 전까지는 손이 바빴다.문밖에서 짧은 벨 소리가 났다. 구씨열쇠 문에 달린 작은 종이었다. 해담은 고개를 들었다. 봉 원장이 미용실 앞을 지나가다 손을 흔들었다.“해담아, 잠깐 와 봐.”“지금 손님 열쇠 하는 중이에요.”“그거 끝나면 와. 볼 게 있어.”“수상한데요.”“그건 내가 알아.”“뭘요?”“네가 지금 안 오려고 하는 거.”봉 원장은 더 설명하지 않고 미용실로 들어갔다. 해담은 열쇠의 거친 부분을 줄로 다듬었다. 손님에게 열쇠를 건네고 복사 장부에 모양과 시각을 적은 뒤에야 앞치마에 손을 닦았다.봉미용실 안에는 손님 셋이 앉아 있었다. 봉 원장은 계산대 옆에 서서 종이 한 장을 손에 들고 있었다. 종이에는 굵은 글씨로 『구씨열쇠 재개업 언제?』라고 적혀 있었다.해담은 문턱에서 멈췄다.“이게 뭐예요?”“내기판.”“누가 이런 걸 해요?”“여기 있는 사람들이.”봉 원장이 종이를 펼쳐 보였다. 아래쪽에는 『4월』과 『여름』, 『안 한다』가 나뉘어 적혀 있었다. 『4월』 아래에는 이름 대신 동그라미가 다섯 개 그려져 있었고, 『여름』 아래에는 세 개가 있었다. 『안 한다』 옆에는 탁 사장의 이름이 적혀 있었다.해담은 종이를 낚아채려 했다. 봉 원장이 손을 들어 종이를 머리 위로 올렸다.“이리 줘요.”“안 돼.”“왜요?”“아직 결과가 안 났잖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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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화. 품절

“누가 물어봤어요.”해담은 휴대전화를 뒤집어 작업대 위에 놓았다. 화면이 보이지 않게 해 둔 것뿐인데도 메시지에 적힌 시각이 눈앞에 남았다.오늘은 8시 25분에 가겠습니다.감기 손님이 많습니다.약국에 감기 손님이 많은 건 약사님 일이었다. 해담이 알 필요는 없었다. 해담은 기계에 남은 쇳가루를 털고, 손님이 맡긴 열쇠를 장부에 적었다. 휴대전화는 다시 울리지 않았다.저녁 장사가 끝날 무렵, 봉 원장이 미용실 문을 닫으며 구씨열쇠 안을 들여다봤다.“오늘은 약사님 8시 25분에 온다며?”“누가 그런 말을 했어요?”“네가 휴대전화 보고 한 말.”“그 말 들으셨어요?”“그럼. 골목이 조용한데.”“미용실 안에 계셨잖아요.”“문 열고 있었지.”봉 원장은 가위집을 앞치마 주머니에 넣었다. 해담은 열쇠 꾸러미를 허리에 걸고 작업대 위를 정리했다.“약국에 감기 환자가 많대요.”“그러면 약사님이 바쁘겠네.”“그러니까 안 온다는 뜻이잖아요.”“그런 말은 안 했는데?”해담은 기계 스위치를 내렸다. 봉 원장은 더 묻지 않고 미용실 쪽으로 물러났다.“그래. 다 보인다, 다 보여.”“보지 마세요.”“그건 어려워.”봉 원장이 문을 닫았다. 해담은 약국 유리문을 보지 않으려 고개를 숙였다. 작업대 위에 남은 공구를 닦고, 벽의 열쇠 블랭크 판을 훑었다. 걸린 열쇠 하나가 비스듬했다. 해담은 그걸 바로잡고 옆의 열쇠들도 종류대로 다시 걸었다.늘 하던 일이었다.8시 20분이 되자 구씨열쇠 문에 달린 종이 울렸다.해담은 손을 멈췄다.문 앞에는 염 여사가 서 있었다. 약국에서 쓰는 앞치마를 두르고, 손에 놋쇠 열쇠를 들고 있었다. 서후는 들어오지 않았다.“사장님, 부탁 하나 해도 될까요?”해담은 열쇠를 바라보다가 염 여사의 얼굴을 봤다.“약사님은요?”“약국에 있어요.”“바쁘세요?”“감기 기운이 있어요. 제가 대신 왔어요.”염 여사는 열쇠를 작업대 위에 놓았다. 익숙한 놋쇠 열쇠였다. 해담은 말없이 열쇠 날을 살폈다. 매일 보던 모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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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화. 출장 가능

은결의 열쇠가 자물쇠 안에서 반쯤 돌아간 채 꼼짝하지 않았다.“움직이지 마. 손잡이도 당기지 말고.”해담은 계단참에 쪼그려 앉아 열쇠 머리를 살폈다. 은결은 책가방을 멘 채 문 옆에 서 있었다. 한쪽 무릎에 길게 긁힌 자국이 났고, 양말에도 먼지가 묻었다.“누나, 문이 고장 난 것 같아.”“문이 고장 났는지 네가 고장 냈는지부터 보자.”“내가 고장 냈으면 어떡해?”“고치면 되지. 일단 다친 데부터 봐.”해담이 손을 내밀자 은결은 얼른 무릎을 뒤로 감췄다.“별로 안 아파.”“안 아프면 숨을 그렇게 참을 필요가 없는데.”은결은 입을 꾹 다물었다. 해담은 책가방을 받아 계단 벽 쪽에 세웠다. 열쇠 꾸러미가 허리에서 짤랑거렸다. 한 손에는 반찬통이 든 가방이 들려 있었다. 채순임이 은결에게 갖다주라고 챙겨 준 반찬통이었다.“엄마 오늘 야간 근무야?”“응. 늦게 와.”“그럼 문 열릴 때까지 여기 있어야겠네.”은결이 고개를 끄덕였다. 해담은 자물쇠에 꽂힌 열쇠를 더 돌리지 않고 살짝 밀었다. 안쪽에서 걸리는 느낌이 났다. 열쇠가 휘었을 수도 있고, 자물쇠 안의 부품이 제자리에서 벗어났을 수도 있었다.“아까 어떻게 했어?”“열쇠 넣고 돌렸어.”“그건 봤고. 그 전에 문을 세게 밀었어, 당겼어?”“안 열려서 당겼어.”“몇 번?”은결은 손가락을 폈다가 접었다.“잘 모르겠어.”“잘 모르면 많이 한 거네.”“조금 했어.”“문은 그대로인데 네 무릎만 다쳤잖아. 다음엔 안 열리면 바로 불러.”“누나도 출장 가면 바로 안 오잖아.”해담은 자물쇠에서 눈을 떼지 않았다.“그래서 지금은 왔잖아.”은결은 무릎을 내려다봤다. 긁힌 자국에 먼지가 붙어 있었다. 피가 흐르지는 않았지만 피부가 벗겨진 부분이 붉었다.“아까 계단에서 넘어졌어?”“문 앞에 가다가.”“가방이 무거웠어?”“딱지가 많이 들었어.”“그걸 왜 가방에 다 넣고 다녀.”“모아야 하니까.”해담은 책가방을 발끝으로 조금 밀어 계단 벽에 붙였다.“네가 모으는 건 알겠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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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화. 재고 조사

3월 28일 일요일, 해담은 가게 문을 열자마자 열쇠 블랭크 판부터 확인했다.왼쪽 벽에 걸린 열쇠들이 종류별로 정리돼 있었다. 손님이 찾는 열쇠를 바로 꺼낼 수 있도록, 앞뒤가 바뀌지 않게 해 두는 게 해담의 버릇이었다. 오늘은 걸린 열쇠를 확인하는 데서 그치지 않았다. 작업대 아래쪽에 둔 상자를 꺼내고, 안에 든 블랭크를 한 종류씩 나누기 시작했다.“오늘은 또 뭘 그렇게 꺼내?”봉 원장이 미용실 문을 열고 안을 들여다봤다. 해담은 빈 상자를 발끝으로 밀어 놓았다.“재고 조사요.”“날 잡고 하는 거야?”“날 잡으면 더 미뤄요. 생각났을 때 해야죠.”“하긴. 네가 생각난 김에 하다가 다른 일 잡는 거, 여러 번 봤어.”“오늘은 안 그래요.”“그 말도 들었어.”봉 원장은 미용실 앞에 빗자루를 세워 놓고 안으로 돌아갔다. 해담은 대꾸 대신 상자 안의 블랭크를 길이와 머리 모양에 따라 나누었다. 흔하게 나가는 종류는 작업대 가까이에 두고, 오랫동안 손대지 않은 것은 따로 놓았다. 한 상자에 섞여 있던 작은 열쇠를 꺼내자 바닥에 쇳가루가 조금 떨어졌다.해담은 손바닥으로 쓸어 모아 휴지에 털었다. 빈 상자에 종류별로 담은 뒤 장부에 표시했다. 남은 수량을 전부 숫자로 적지는 않았다. 부족한 종류와 주문할 종류만 표시하면 됐다. 재고는 가게를 지키는 데 필요했고, 기록은 손님에게 값을 설명할 때도 필요했다.작업대 한쪽에 놓인 복사 장부와 공구는 움직이지 않게 벽 쪽으로 밀어 두었다. 기계는 끄지 않았다. 문을 열어 둔 동안 손님이 올 수 있었다.예상대로 얼마 지나지 않아 손님이 들어왔다. 집 열쇠를 복사하러 온 사람이었다. 해담은 원본을 받아 열쇠 날을 살핀 뒤, 벽에서 맞는 블랭크를 골랐다.“이걸로 되나요?”“네, 됩니다.”“예전 열쇠라서 맞는 게 없을까 봐요.”“모양은 맞습니다. 복사해 보고 잘 돌아가는지도 확인하셔야 해요.”손님이 고개를 끄덕였다. 해담은 열쇠를 기계에 물리고 스위치를 켰다. 위잉 소리가 가게 안에 퍼졌다. 기계가 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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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화. 개업 칠 주년

해담은 돋보기를 든 채 열쇠를 놓지 못했다.귀퉁이에 난 작은 홈은 다른 자국과 달랐다. 우연히 닳아 생긴 모양이 아니었다. 해담은 처음 열쇠를 깎던 날, 손이 떨려도 머리 한쪽에 반드시 남기던 표시를 떠올렸다. 자기가 만든 열쇠에는 작은 ㄱ 홈을 하나 냈다. 그때부터 지금까지 한 번도 빼먹지 않았다.“정말 제가 깎았어요?”서후는 계산대에 둔 지폐에서 손을 거뒀다.“네. 사장님이 만든 열쇠입니다.”“이걸 언제부터 갖고 계셨어요?”“개업한 날부터입니다.”해담은 돋보기를 내려놓았다. 열쇠가 작업대 위에서 가볍게 부딪쳤다. 놋쇠 표면에는 오래 쓴 자국이 있었고, 날의 모서리는 조금씩 닳아 있었다. 해담은 그 흔적을 다시 들여다봤다.“그날 약국 뒷문 열쇠였어요?”“맞습니다.”“자물쇠에 열쇠가 부러져서 문이 안 열렸던 거고요?”“네.”“그걸 아직도 쓰고 있다고요?”“그렇습니다.”해담은 작업대 한쪽에 놓인 장부를 봤다. 표지는 벌어져 있었고 첫 기록이 적힌 쪽이 펼쳐져 있었다. 글씨를 다시 읽지 않아도 그날의 출장 기록을 알고 있었다.『3월 2일 늘봄약국 뒷문, 문 열기·열쇠 1개, 30,000원』그날은 아빠가 허리를 다쳐 가게에 나올 수 없었다. 해담은 처음으로 혼자 출장을 나갔다. 다친 허리를 붙잡고 누워 있던 아빠가 열쇠 꾸러미를 건넸고, 해담은 그걸 받아 들고 약국 뒷문 앞에 섰다.기억 속의 문은 잘 열리지 않았다. 자물쇠 안에 부러진 열쇠 조각이 걸려 있었다. 해담은 그 조각을 빼내고 문을 열었다. 새 열쇠까지 깎고 나서야 출장 일이 끝났다.그때 만든 열쇠와 지금 작업대 위에 놓인 열쇠는 모양이 일치했다.“그날 제가 늦게까지 있었어요?”“40분쯤 걸렸습니다.”“오래 걸렸네요.”“처음 혼자 오셨으니까요.”해담은 그가 그 시간을 기억한다는 게 낯설었다.“약국은 그날 처음 연 거였죠?”“네. 개업 날이었습니다.”해담은 장부 옆의 열쇠를 손끝으로 돌렸다. ㄱ 홈이 보였다가 손바닥 아래로 가려졌다. 서후는 재촉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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