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odos los capítulos de 7년 짝사랑을 폐업했더니 길 건너 약사가 단골이 됐다: Capítulo 71 - Capítulo 80

80 Capítulos

71화. 금일 휴무

『금일 휴무』 팻말을 유리문에 붙이려던 해담은 테이프 끝을 손톱으로 떼다 말고 맞은편을 봤다.늘봄약국 유리문에도 같은 글씨가 붙어 있었다. 약국 안쪽은 불이 꺼져 있었고, 구씨열쇠 셔터도 내려가 있었다. 두 가게가 함께 문을 닫은 날은 명절 말고는 처음이었다.해담은 자기 팻말의 모서리를 한 번 더 눌렀다.“잘 붙었습니까?”“네. 이제 떨어질 일 없어요.”“그럼 가시죠.”서후는 약국 문 앞에서 작은 가방을 들고 있었다. 해담의 가방은 그보다 커 보였다. 안에 든 공구가 한쪽으로 쏠려 가방 밑이 처졌다.서후가 가방을 보았다.“공구를 가져가십니까?”“혹시 몰라서요.”“오늘은 가게를 닫았습니다.”“알아요.”“금고도 없고, 열쇠 복사도 없습니다.”“그것도 알아요.”“그럼 공구는 왜 가져가십니까?”해담은 가방 끈을 어깨에 고쳐 걸었다.“그냥요.”「그냥이 제일 위험하다.」골목 입구 평상에 앉아 있던 엄분이가 두 사람을 불렀다.“담이야, 약사 총각. 둘 다 문 닫은 거 맞지?”“네. 오늘은 쉽니다.”“둘이 같이?”“네.”엄분이는 두 가게 쪽을 번갈아 보고는 고개를 끄덕였다.“동네가 조용하겠네.”“장사 안 하는데도 조용하지 않을 것 같아요.”해담이 말했다.두레슈퍼 문 앞에 서 있던 봉숙자가 얼른 끼어들었다.“다 보인다, 다 보여. 두 가게가 동시에 문 닫는 거, 골목에 소문낼 만한 일이야.”“아직 아무 일도 안 했어요.”“같이 쉬기로 했잖아. 그게 일이야.”봉 원장은 해담의 가방을 내려다봤다.“그런데 그건 뭐니?”“가방이요.”“안에 든 거 말이야.”“필요한 물건이요.”“바닷가에 가는데?”“필요할 수도 있죠.”봉 원장은 서후에게 시선을 옮겼다.“진 약사, 해담이한테 오늘 공구 안 쓰기로 약속받았어?”“아니요.”“그럼 약속부터 받아.”“왜 저한테 시켜요?”해담이 따지자 봉 원장은 두 손을 펼쳤다.“내가 시키는 건 싫다며. 진 약사는 말 잘 듣잖아.”서후가 해담을 보았다.“오늘 공구를 쓰지 않겠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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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2화. 긴급 개문

구해담은 셔터를 올리다 말고 손을 멈췄다.철판이 반쯤 올라간 채 멈췄다. 어제는 별일 없이 올라갔는데, 오늘은 한쪽이 레일에 걸린 듯 삐걱거렸다. 해담은 셔터 아래를 살피고 손잡이를 다시 잡았다.“오늘은 얌전히 올라가자.”힘을 나눠 주자 셔터가 끝까지 올라갔다. 해담은 안으로 들어가 앞치마를 둘렀다. 허리에 열쇠 꾸러미를 채우고, 벽의 열쇠 블랭크 판을 종류별로 맞췄다. 어제도 확인했는데 손이 한 번 더 갔다.「생일이라고 들떴나.」구씨열쇠 안에는 쇳가루 냄새가 옅게 남아 있었다. 해담은 작업대 위를 닦고 복사 장부를 계산대 서랍에 넣었다. 아침 손님이 열쇠 복사를 맡기고 간 뒤에도 가게는 잠시 조용했다.맞은편 늘봄약국 문이 열렸다. 서후가 흰 가운을 입고 입구의 안내판을 바로 세웠다. 해담은 손에 들고 있던 천을 접었다.“좋은 아침입니다, 해담 씨.”“좋은 아침이에요, 약사님.”“오늘은 10월 4일입니다.”“날짜는 알아요.”“생일이시기도 합니다.”해담은 천을 작업대에 내려놓았다.“그것도 알아요.”“축하드립니다.”서후는 약국 안으로 들어갔다. 해담은 맞은편 유리문이 닫힌 뒤에도 잠시 그쪽을 봤다. 서후가 늘 하던 대로 약국 안을 정리하는 모습이 보였다. 해담은 시선을 거두고 공구함 뚜껑을 열었다.점심 무렵, 봉숙자가 봉미용실 문을 열어 둔 채 고개를 내밀었다.“해담아, 생일인데 점심은 먹었니?”“아직요.”“그럴 줄 알았다. 순임이가 반찬통 들고 너 찾아왔다가 동명탕으로 갔어.”“엄마가요?”“해담이 생일 밥은 내가 챙기겠다더라. 네 엄마가 네 밥을 챙기겠다는데 내가 무슨 말을 하겠니.”“원장님은 안 하셔도 돼요.”“나는 안 한다고 안 했는데.”봉숙자는 가위 손잡이로 해담을 가리켰다.“그리고 약사 양반도 오늘 네 생일인 거 안다더라.”해담은 공구함 뚜껑을 닫았다.“골목에서 모르는 사람이 있겠어요?”“내가 다 알렸지.”「그건 자랑이 아니고요.」봉숙자가 웃으며 안으로 들어갔다. 해담은 작업대에 놓인 공구함을 한 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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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3화. 장기 부재 안내

10월 11일 아침, 해담은 약국 유리문에 붙은 안내문을 읽었다.『장기 부재 안내진서후 약사는 가족의 수술로 2주간 자리를 비웁니다.약국은 대체 약사와 염금옥이 운영합니다.』해담은 안내문 아래쪽을 한 번 더 읽었다. 약국 안에서는 염 여사가 약장 앞에 서서 약을 정리하고 있었다. 흰 가운을 입은 낯선 약사가 계산대에 앉아 있었다.해담은 자기 가게로 돌아와 셔터를 올렸다. 작업 앞치마를 두르고 허리에 열쇠 꾸러미를 찼다. 벽의 열쇠 블랭크 판을 종류별로 살펴보다가 이미 가지런한 열쇠 하나를 다시 걸었다.「오늘부터구나.」맞은편 약국 문이 열렸다. 염 여사가 안내판을 바깥으로 돌려 세웠다. 해담과 눈이 마주치자 염 여사가 손짓했다.“사장님, 잠깐 오실래요?”해담은 가게 문을 열어 둔 채 길을 건넜다. 약국 안에서는 약 냄새가 났고, 계산대에는 새 약사가 앉아 있었다.“안녕하세요. 대체로 일하게 된 약사입니다.”“구씨열쇠 구해담이에요.”“염금옥입니다. 약사님 아버님 수술 때문에 잠깐 다녀오시게 됐어요.”해담은 안내문을 다시 보았다.“무릎 수술이라고 들었어요.”“네. 오늘 수술을 받으세요. 약사님은 부모님 댁 근처에서 병원 오가며 계실 거예요.”“얼마나 자리를 비우세요?”“2주 정도요. 상황에 따라 조금 달라질 수는 있는데, 우선 그렇게 안내해 두셨습니다.”염 여사는 계산대 아래에서 약국 열쇠를 꺼내 서랍에 넣었다.“약사님이 직접 말씀하셨어요. 약국은 제가 보고, 대체 약사님이 처방 확인을 맡아 주시기로 했습니다.”“그렇군요.”해담은 손을 앞치마에 문질렀다. 쇳가루가 묻은 손바닥이 천에 자국을 남겼다.“수술은 잘될 거예요?”“그렇게 되길 바라야죠. 약사님은 아버님 수술 날짜를 잡고 나서도 약국 운영부터 걱정했어요.”“그 사람답네요.”“사장님 가게에 못 가는 것도 미안해하더라고요.”해담은 대답을 바로 하지 않았다. 낯선 약사가 계산대 위의 약봉투를 정리했다. 종이 모서리를 맞춰 가지런히 쌓았다.“제가 그쪽 일은 괜찮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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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4화. 방문 상담

버스가 정류장에 멈추자 해담은 가방 끈을 고쳐 잡았다.휴대전화 화면에는 서후가 알려 준 병원 이름과 병실 위치가 떠 있었다. 해담은 메시지를 다시 열어 확인했다. 주소를 잘못 읽은 건 아니었다. 버스에서 내리기 전에도 몇 번이나 봤다.“여기가 맞네.”해담은 창밖으로 병원 건물을 확인하고 버스에서 내렸다. 가방 안에는 공구 몇 개와 천을 넣어 두었다. 병실 사물함 자물쇠를 고칠 생각은 없었다. 열쇠집 사장이 병원에 가면서 공구를 챙기는 게 이상하지는 않다고 스스로에게 말했다.「안 고치면 더 이상하지.」병원 입구에 들어서자 소독약 냄새가 났다. 안내판에서 병동을 찾아 엘리베이터를 탔다. 층에 도착한 해담은 복도 벽의 안내도를 살폈다. 병실 위치는 서후가 보낸 대로였다.병실 문 앞에서 안쪽을 먼저 봤다. 병실에는 침대가 나란히 놓여 있었고, 창가 쪽 침대에 진학수가 누워 있었다. 침대 옆에 놓인 사물함 문은 조금 벌어져 있었다. 서후는 침대 곁에 서서 아버지와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해담은 문턱에서 잠깐 멈췄다.서후가 먼저 고개를 돌렸다. 손에 들고 있던 물컵을 침대 옆 탁자에 놓았다. 서후의 눈이 해담의 얼굴에 머물렀다.“해담 씨.”“안녕하세요.”서후는 한동안 말하지 않았다. 진학수도 몸을 조금 일으켜 문 쪽을 바라봤다.“해담 씨가 여긴 웬일이야?”“아버님 뵈러 왔어요.”“내가 아버님이야?”“서후 씨 아버님이시잖아요.”“그렇긴 하지.”진학수는 침대 머리판에 등을 기댔다. 무릎에 얹힌 이불이 가지런히 덮여 있었다.서후는 해담 쪽으로 한 걸음 왔다가 멈췄다.“오신다고 들은 적이 없습니다.”“그러니까 놀라셨겠죠.”“네. 놀랐습니다.”“그런 얼굴을 하실 줄은 몰랐네요.”“어떤 얼굴인지 잘 모르겠습니다.”서후는 입술을 다물었다. 해담은 가방 끈을 쥔 손에 힘을 줬다가 풀었다.“전화로 병원 위치만 물어봤어요. 온다고 말하면 안 오라고 하실 것 같아서요.”“제가 안 오라고 하지는 않았을 겁니다.”“그 말은 믿을게요.”“그런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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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5화. 금고 개봉 행사

“다이얼은 제가 돌릴게요. 손대지 마세요.”해담은 옛 솔매우체국 안쪽에 놓인 금고 앞에 섰다. 남색 앞치마를 두르고 허리에 열쇠 꾸러미를 찼다. 가을 장터 구경을 하던 사람들이 문 안으로 모여들어 금고 주위에 둥글게 섰다. 문밖에서는 상인들이 장터 물건을 소개하는 소리와 사람들 발소리가 들렸다.봉숙자가 금고 옆에서 손바닥을 내저었다.“다들 조금만 뒤로 물러서요. 해담이가 돌릴 자리가 있어야지.”“저 정도면 넉넉한데.”탁종팔이 말했다. 봉 원장이 탁 사장을 돌아봤다.“사장님은 더 물러서세요. 나중에 금고 열리면 제일 먼저 안에 들어가실 것 같으니까.”“내가 왜 들어가.”“사진에 젊은 모습이 있으면 가져가실 수도 있잖아요.”“사진은 안 가져가.”탁 사장은 그렇게 말하고도 금고에서 한 걸음 물러났다. 사람들 사이에서 웃음이 났다.구판길은 사람들 뒤에 서서 금고를 바라봤다. 햇볕에 탄 얼굴에 낚시 조끼를 걸쳤고, 손에는 오래된 열쇠 꾸러미가 들려 있었다. 해담은 아빠를 보았다.“아빠, 안쪽으로 더 들어오세요. 문 열리면 잘 안 보일 수도 있어요.”“여기서도 보인다.”“다들 보러 왔는데 아빠만 안 보이면 안 되잖아요.”구판길은 대꾸하지 않고 사람들 옆으로 자리를 옮겼다. 그 뒤에 있던 진서후가 해담 쪽을 향해 고개를 숙였다.“해담 씨.”“서후 씨. 오셨어요?”“네. 아버지는 퇴원하셨습니다. 집에서 쉬고 계십니다.”“다행이에요.”“오늘 장터에 온다고 말씀드렸습니다. 아버지도 사진이 궁금하다고 하셨습니다.”해담은 서후의 얼굴을 살폈다. 왼쪽 눈 아래 작은 점이 그대로 보였다. 서후는 약국에서 입던 흰 가운 대신 남색 니트를 입고 있었다. 해담은 한 번 고개를 끄덕이고 금고로 몸을 돌렸다.“그럼 잘 열어야겠네요.”“해담 씨가 여시면 됩니다.”“그 말은 부담되는데요.”“제가 거짓말을 한 적은 없습니다.”해담은 다이얼을 내려다봤다.「말이 늘 정확해.」금고는 무릎 높이보다 조금 큰 철제 금고였다. 표면에는 먼지가 얇게 앉아 있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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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6화. 간판 상담

“저 간판, 내가 손으로 쓴 거다.”아빠의 말이 끝난 뒤에도 사진을 보는 사람들은 한동안 아무 말이 없었다. 해담은 사진 아래쪽을 받치고 있던 손을 거두지 않았다. 사진 속 간판은 노란 바탕에 검은 글씨였다. 지금 구씨열쇠에 걸린 간판도 그랬다. 글자 획이 조금 굵고, ‘열’의 마지막 획은 오른쪽으로 짧게 올라가 있었다.“아빠가 직접 쓴 거예요?”“가게 열 때 급하게 썼다. 간판집에 맡길 돈도 아꼈고.”“그 글씨가 지금 간판까지 온 거네요.”“그렇지.”구판길은 사진을 해담에게 돌려줬다. 사진 모서리를 잡은 손가락에 힘이 들어가지 않도록 해담은 아래를 받쳤다. 간판 아래에 선 아빠는 지금보다 얼굴이 덜 탔고, 앞치마도 새것처럼 보였다.“아빠는 저때도 무뚝뚝했어요?”“사진에 말투가 나오냐?”“안 나오니까 물어보는 거죠.”“그때도 지금도 똑같다.”봉숙자가 사진을 들여다보며 말했다.“그건 내가 똑똑히 봤어. 구 사장님은 가게 열 때도 말이 별로 없었어.”“봉 원장님이 그때부터 골목에 계셨어요?”“내가 미용실을 하기 전에도 이 골목에 살았지. 모르는 게 없어.”“저 사진은 아빠가 몇 살 때예요?”“그걸 왜 나한테 묻니. 네 아빠한테 물어.”“사진 속 아빠가 대답을 안 하시잖아요.”구판길이 해담을 보았다.“가게 문 열던 때니까 지금보다 젊었지.”“그건 저도 알아요.”“그럼 됐다.”사진을 다시 장부 옆에 놓은 뒤에도 해담은 간판 글씨를 몇 번 더 봤다. 아빠 손글씨가 원래부터 간판에 새겨진 줄 알았다. 글씨를 본떠 간판을 만들었다는 생각은 해 본 적이 없었다.그날 밤, 가게 셔터를 내린 뒤에도 해담은 계산대 안쪽에서 사진을 펼쳐 놓았다. 사진 속 간판과 유리문 밖 간판을 번갈아 보았다. 사진 속 글자와 현재 간판의 글자 모양은 일치했다. 검은 칠이 벗겨진 모서리와 오른쪽 아래에 붙은 작은 글씨만 달랐다.해담은 사진을 접지 않고 서랍에 넣었다.10월 25일 오전, 벽의 열쇠 블랭크 판을 종류별로 다시 걸었다. 모양이 맞는 열쇠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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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7화. 장부 마감

해담은 공책을 무릎 위에 올려놓았다. 서후는 철계단 가운데쯤에 앉아 공책을 내려다봤다. 두 사람 사이에는 계단 한 칸이 비어 있었다.해담은 표지를 손바닥으로 쓸었다. 모서리가 닳아 종이 속이 드러난 곳도 있었고, 표지에는 손때가 묻어 있었다. 공책을 펼치자 종이가 바스락거렸다. 계단 아래 가게에서는 셔터가 내려간 뒤의 쇳냄새가 희미하게 올라왔다.“이게 그 출근부예요?”“네.”“매일 적으셨다고 하셨죠.”“매일은 아니에요.”서후가 공책에서 해담 쪽으로 시선을 옮겼다.“빠진 날이 있습니다.”“몸이 안 좋으셨을 때요?”“그런 날도 있고요. 설이나 추석 당일에는 약국도 쉬었어요. 아빠가 가게를 넘겨주고 나서도 명절 당일만큼은 문을 닫으라고 했어요.”해담은 공책을 조금 돌려 서후가 보기 편하게 했다. 첫 장에는 날짜 대신 짧은 작대기들이 줄을 맞춰 그어져 있었다. 볼펜으로 그은 것도 있고, 연필 자국도 있었다. 중간에는 진하게 눌러 쓴 흔적이 있었다.“하나씩 그은 거예요?”“피로회복제 한 병 사러 갈 때마다요. 가게 셔터 내리고, 8시 40분에 건너가서 한 병 샀어요. 돌아오면 여기다 작대기 하나.”“2,523개가 있습니까?”“네.”“직접 세어 보셨습니까?”“세어 봤죠. 몇 번이나요.”“제가 봐도 됩니까?”“보여 드리려고 가져왔어요.”서후는 공책에 손을 대지 않았다. 해담은 그걸 보고 한쪽 입술을 살짝 올렸다.“읽으셔도 돼요. 페이지 넘기는 것도요.”“제가 넘기겠습니다.”“그럼 넘기세요. 종이가 약해서 조심해야 해요.”“알겠습니다.”서후는 손가락 끝으로 종이 모서리를 잡아 천천히 넘겼다. 작대기들은 줄마다 일정한 간격으로 이어졌다. 끝까지 빽빽하게 채워진 페이지도 있었고, 중간에 듬성듬성한 곳도 있었다. 해담은 서후가 페이지를 넘기는 동안 무릎 위 공책을 잡고 있었다.“날짜를 쓰지 않은 이유가 있습니까?”“그냥 작대기만 그었어요. 날짜를 쓰면 장부가 되잖아요.”“출근부라고 부르셨습니다.”“가게 출근부랑은 달라요. 그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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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8화. 부재 시 옆집 문의

“새 공책을 사 오면 첫 줄은 제가 쓸 거예요.”해담은 펜을 계산대 서랍에 넣으며 말했다. 서후는 계단 아래에서 고개를 끄덕였다. 깜이는 공책 위에서 내려와 난간 옆을 지나갔다. 해담은 고양이가 떠난 뒤 공책을 덮어 품에 안았다.“첫 줄에 뭘 쓸 겁니까?”“그건 공책을 보고 정할 거예요.”“알겠습니다.”“약사님은 뭘 쓸 건데요?”“해담 씨가 정하실 때까지 기다리겠습니다.”“또 기다려요?”“네.”해담은 대답 대신 공책을 들고 계단을 올랐다. 서후는 계단 아래에 남아 있었다. 철계단을 오르는 동안 공책 모서리가 앞치마에 닿았다.11월 20일 토요일 아침, 해담은 가게 문 옆에 안내문을 붙였다. 종이 위에는 『부재 시 길 건너로 문의하세요』라고 적혀 있었다. 아래에는 늘봄약국의 이름을 쓰지 않았다. 길 건너에 있는 가게는 하나뿐이었다.해담은 테이프가 들뜨지 않도록 네 귀퉁이를 눌렀다. 문을 닫고 밖에 나와 살펴보니 안내문이 유리문에 반듯하게 붙어 있었다.약국 문에도 같은 안내문이 붙어 있었다. 『부재 시 길 건너로 문의하세요』. 서후가 약국 안에서 문을 열고 나왔다. 흰 가운은 없었고 남색 니트 위에 겉옷을 걸쳤다. 한 손에는 종이가 든 봉투가 있었다.해담은 약국 문에 붙은 안내문을 읽었다.“똑같네요.”“문구를 맞추는 편이 알아보기 쉽습니다.”“누가 먼저 붙였어요?”“해담 씨가 먼저 붙이셨습니다.”“제가 붙이는 걸 보셨어요?”“약국 안에서 봤습니다.”서후가 문 옆의 안내문을 한 번 확인했다. 봉투를 든 손은 내려가 있었다.“이쪽은 오늘 붙이실 겁니까?”“네. 붙일 종이도 가지고 오셨나 봐요.”“그렇습니다.”“약국 문에 붙이면 되겠네요.”“그렇게 하겠습니다.”서후는 약국 유리문에 종이를 대고 테이프를 눌렀다. 해담은 구씨열쇠 쪽에서 그 모습을 지켜봤다. 두 안내문은 골목을 사이에 두고 서로를 향했다.두레슈퍼 평상에 앉아 있던 엄분이가 안경을 코 위로 올렸다.“이제 한쪽 문이 닫히면 건너가면 되겠네.”“문 닫고 어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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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9화. 열쇠 일괄 양도

셔터를 내린 지 10분이 지났다. 해담은 가게 앞에 서서 허리에 걸린 열쇠 꾸러미를 손으로 눌렀다. 짤랑거리는 소리가 멎었다.길 건너 늘봄약국 문이 열렸다. 서후가 밖으로 나왔다. 흰 가운 안에는 남색 니트를 입고 있었다. 두 손으로 유리병을 받쳐 들었다.“8시 40분입니다.”“알아요.”해담은 약국 시계를 보지 않았다. 7년 동안 늘 8시 40분에 길을 건넜다. 오늘은 그 자리에 서서 약국에서 나오는 사람을 기다렸다.서후는 몇 걸음 앞에서 멈췄다. 병 안에는 놋쇠 열쇠가 빽빽하게 들어 있었다. 유리병을 기울이지 않아도 열쇠 머리마다 새긴 작은 홈이 보였다.해담은 병을 바라봤다.“다 찼네요.”“네. 가득 찼습니다.”“뚜껑 닫을 때 부딪히는 소리가 났겠어요.”“병을 들면 났습니다.”“그걸 매일 들고 다녔어요?”“약국 서랍에 두었습니다.”“매일 복사한 열쇠도요?”“네.”해담은 두 손을 앞치마에 문질렀다. 쇳가루가 묻은 손끝이 남색 천에 닿았다.서후는 병을 내밀었다. 해담은 양손으로 받아 들었다. 유리가 차가웠다. 안에서 열쇠들이 작게 부딪혔다.“제 약국 뒷문 열쇠입니다. 하나도 빠짐없이 해담 씨가 깎았습니다.”해담은 병을 들어 안을 들여다봤다. 서로 다른 날 깎은 열쇠들이 모여 있었다. 날의 높이가 조금씩 달랐다. 열쇠 머리에 난 ㄱ자 홈도 하나씩 보였다.“제가 깎은 걸 어떻게 알아요?”“해담 씨가 처음 깎은 열쇠라서요.”“복사한 열쇠도 전부 제가 깎았다고요?”“네.”“약사님이 같은 열쇠를 가져올 때마다요?”“그렇습니다.”“하나도 안 빠지고?”“하나도 빠짐없이요.”해담은 병을 다시 내려다봤다. 유리 너머로 열쇠들이 겹쳤다. 어떤 것은 머리 부분이 반들거렸고, 어떤 것은 옆면에 쇳가루 자국이 남아 있었다. 손으로 깎은 흔적이 서로 달랐다.“이걸 다 모아 놓고 뭘 하려고 했어요?”“해담 씨께 드리려고 했습니다.”“왜요?”“해담 씨가 깎은 열쇠니까요.”“그건 이유가 아니잖아요.”“제게 중요했습니다.”해담은 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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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0화. 일요일은 쉽니다

해담은 셔터 손잡이를 잡고 아래로 당겼다. 금속이 레일을 따라 내려오며 골목에 소리를 냈다. 셔터가 바닥에 닿자 해담은 손을 떼고 문 앞에 섰다.간판 귀퉁이의 글씨가 새로 붙인 글씨였다. 노란 바탕과 검은 글씨로 적힌 『구씨열쇠』는 그대로였고, 오른쪽 아래에는 『일요일은 쉽니다』라고 붙어 있었다. 새 글씨는 예전 『연중무휴』와 비슷한 크기였다. 간판 아래쪽에 새로 덧댄 판이 조금 눈에 띄었지만, 멀리서 봐도 자연스러웠다.해담은 고개를 들어 한 번 더 읽었다.『일요일은 쉽니다』오늘은 1월 2일, 새해 첫 일요일이었다. 해담이 가게 셔터를 내려 둔 첫 정기 휴무일이기도 했다.길 건너 늘봄약국의 유리문에도 안내판이 걸려 있었다. 기존 영업시간 안내 아래에 새 종이가 붙어 있었다.『일요일 휴무』해담은 약국 문까지의 거리를 눈으로 확인했다가, 자기 가게 간판으로 시선을 돌렸다. 허리의 열쇠 꾸러미를 손바닥으로 눌렀다. 오늘은 열쇠를 쓰지 않아도 되는 날이었다.「진짜 쉬네.」골목은 평소보다 한산했다. 셔터를 올린 가게는 몇 곳에 그쳤다. 두레슈퍼는 문을 열어 두었고, 엄분이는 평상에 앉아 깜이의 등을 쓸어 주고 있었다. 봉미용실 문은 닫혀 있었지만 안쪽에 불이 켜져 있었다. 탁씨정육 앞에는 흰 앞치마가 걸려 있었다.엄분이가 고개를 들었다.“담이야, 간판이 바뀌었네.”“네. 오늘부터 일요일은 쉬려고요.”“쉬는 날도 생겼어?”“생겼어요.”“좋다. 문 닫혀 있으면 괜히 어디 아픈가 걱정했는데.”“그 걱정은 안 하셔도 돼요.”“걱정은 내가 알아서 한다.”엄분이는 깜이의 등을 한 번 더 쓸었다. 깜이는 평상에서 내려와 슈퍼 안으로 들어갔다.“약국도 쉬나?”“안내판 보세요.”엄분이는 안경을 코 위로 올리고 맞은편을 바라봤다. 약국 유리문 아래 새 종이가 붙어 있었다.“저기도 일요일 휴무네.”“그러네요.”“둘이 같이 쉬네.”해담은 대답 대신 간판을 올려다봤다. 그 말을 들으니 귀퉁이의 글씨가 더 선명해 보였다. 새 안내판을 붙인 약국 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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