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ll Chapters of 7년 짝사랑을 폐업했더니 길 건너 약사가 단골이 됐다: Chapter 31 - Chapter 40

80 Chapters

31화. 영업 방해 금지

해담은 손잡이를 고정한 뒤 나사를 손끝으로 한 번씩 눌러 봤다. 꽉 조인 쪽만 먼저 힘을 받지 않도록 조금씩 번갈아 맞췄다. 할아버지는 문 옆에 선 채 그 손을 보고 있었다.“나사도 그렇게 천천히 조여야 하나?”“한쪽만 먼저 꽉 조이면 손잡이가 비뚤어질 수 있어요. 그러면 열쇠가 맞아도 돌릴 때 걸립니다.”“그런 것도 다 봐야 하는구먼.”“문이랑 자물쇠가 같이 움직이니까요. 한쪽만 고쳐서는 안 될 때가 있어요.”할아버지는 손잡이에 손을 얹었다가 해담을 쳐다봤다.“이걸 내가 만져도 되나?”“아직 고정하는 중이라 조금만 기다려 주세요.”할아버지는 손을 거두고 고개를 끄덕였다. 왕두식은 옆에서 열쇠 꾸러미를 쥔 채 서 있었다. 해담은 나사를 마저 조이고 손잡이를 가볍게 움직였다. 안쪽 부품이 걸리는 소리는 나지 않았다.“이제 손잡이를 눌렀을 때 헛도는 느낌이 없는지 봅니다.”“내가 아까 돌릴 때는 뻑뻑했어.”“그때는 열쇠가 끝까지 돌아가지 않았죠?”“그래. 더 힘을 줘야 하나 싶었지.”“그럴 때는 힘으로 돌리지 않는 게 좋아요. 열쇠가 휘거나 안에서 부러질 수 있습니다. 문이 눌린 건지, 안쪽 부품이 걸린 건지 먼저 확인해야 해요.”할아버지는 문고리와 문틀을 번갈아 바라봤다.“나는 문이 잠겼으니 열쇠만 문제인 줄 알았네.”“열쇠가 잘 들어가도 문이 처져 있으면 걸릴 수 있어요. 이번에는 부품이 휘어서 바꿨고, 문틀은 더 손댈 필요가 없습니다.”해담은 빠진 부품을 공구가방 옆에 두었다. 할아버지는 그걸 내려다보다가 문틀에 남은 자국을 다시 살폈다.“어디가 문제인지 찾아내는 게 먼저구나.”“네. 급하게 열기보다 상태를 보는 게 먼저예요.”할아버지는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문고리를 잡지는 않고, 해담이 정리하는 손을 지켜봤다. 공구가방에서 드라이버가 부딪히는 소리가 났다.◎다음 날 아침, 해담은 유리문에 붙인 『도어록 설치 출장합니다』 안내문을 손바닥으로 눌렀다. 밤새 들뜬 모서리가 다시 붙었다. 가게 안에서는 열쇠 복사 기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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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2화. 보호자 방문

서후는 퀴즈판을 약국 문 옆에 기대 세웠다. 해담은 자물쇠를 탁자 한쪽에 모으고 열쇠를 종류별로 나눴다.“저는 그 가게 단골 오래 하는 거요.”서후의 말이 끝난 뒤에도 은결은 해담을 올려다봤다. 손바닥 위 열쇠 모양 장식을 한 번 더 확인하고는 책가방 안쪽 고리에 걸었다.“약사 삼촌은 소원도 가게에서 빌어요?”“네.”“그럼 누나 가게에서 자물쇠를 많이 사면 되겠네요.”“자물쇠는 약국에서 팔지 않습니다.”“그러면 열쇠를 복사하러 가면 되겠다.”서후는 대답 대신 퀴즈판을 문 옆으로 옮겼다. 해담은 은결의 책가방 고리가 빠지지 않았는지 손가락으로 확인했다.“잘 걸렸어.”“안 잃어버릴게요.”“집에 가서 문 열기 전에 열쇠부터 확인해.”“네.”은결은 책가방을 메고 골목 안쪽으로 갔다. 기념품 장식이 걸을 때마다 가방 안에서 작게 부딪혔다.해담은 자물쇠 놀이판에 남은 열쇠를 마지막으로 세어 보고 상자에 담았다. 아이들이 돌아가고 나니 탁자 위가 한결 비었다. 서후는 약국 앞에 남은 퀴즈 종이를 걷어 모았다. 염 여사가 문 안에서 나와 판을 접는 것을 도왔다.“행사는 잘 끝났네요.”염 여사가 말했다.“네. 아이들이 다치지 않아 다행입니다.”“풍선은 순경님이 안 불어서 더 다행이고요.”해담은 상자 뚜껑을 덮었다.“그분은 오늘 사람 지키는 일을 제대로 하셨어요.”“풍선도 사람을 놀라게 할 수 있죠.”서후가 퀴즈판을 안으로 옮기며 말했다. 해담은 잠깐 서후를 봤다가 상자를 들어 올렸다.그때 골목 큰길 쪽에서 반찬통이 부딪히는 소리가 났다. 단정한 단발머리 여자가 양손에 든 보자기를 고쳐 들며 약국 앞으로 다가왔다. 보자기 한쪽이 아래로 처져 있었다.“약사님, 이거 좀 받아요.”여자가 서후를 부르자 서후는 퀴즈판을 염 여사에게 넘기고 약국 밖으로 나왔다.“엄마, 무거우십니까?”“가져오긴 했는데, 손잡이가 자꾸 미끄러지네.”서후는 보자기 한쪽을 받쳐 들었다. 안에는 반찬통이 겹쳐 있었다. 반찬통 뚜껑 사이로 냄새가 났다. 해담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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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3화. 잠시 쉬어 갑니다

월요일 아침, 구해담은 계산대 서랍에서 장부를 꺼냈다.지난달 해당 기간에 적힌 금액과 이번 달 금액을 맞춰 보았다. 항목을 다시 나누고 계산기를 두드려도 결과는 같았다. 매출이 절반 가까이 줄었다.해담은 계산기 화면을 끄고 장부를 덮었다. 가게 안에는 쇳가루 냄새와 기계가 도는 소리만 남았다. 장부 모서리를 손톱으로 눌렀다. 계산기 버튼에 묻은 쇳가루를 닦고 다시 장부를 펼쳤다.유리문 밖으로 편의점 앞 키박스가 보였다. 기계에 열쇠를 넣은 손님이 화면을 확인하고 있었다. 잠시 뒤 작은 봉투를 들고 돌아섰다. 가게 문은 열리지 않았다.해담은 벽에 걸린 열쇠 블랭크를 종류별로 다시 걸었다. 이미 가지런한 판을 한 번 더 훑고, 한쪽으로 기울어진 열쇠를 바로 세웠다.「숫자는 그대로네.」전화가 울렸다.“구씨열쇠입니다.”“열쇠 복사하려는데, 기계로도 되더라고요. 거기서 하는 것과 뭐가 달라요?”손님은 편의점 앞에 선 듯했다. 해담은 통화하며 열쇠를 받아 확인했다.“기계는 정해진 모양으로 복사하고요. 이건 원본이 조금 닳아서 맞춰야 해요. 복사해도 바로 안 맞을 수 있습니다.”“그러면 얼마나 들어요?”“복사만 하면 3,000원입니다. 맞춰야 하면 먼저 확인해 드릴게요.”“기계는 2,000원이던데.”“네. 가격은 그쪽이 더 쌉니다.”손님은 잠시 말이 없었다. 해담은 열쇠의 홈을 살피고 손톱으로 가장자리를 훑었다.“그럼 사장님이 하면 더 잘 맞아요?”“제가 보고 깎으면 맞춰 드릴 수 있어요. 열쇠 상태에 따라 달라서, 먼저 확인해야 합니다.”손님은 가게에 오겠다고 하고 전화를 끊었다. 해담은 수화기를 내려놓은 뒤 장부를 다시 폈다.숫자는 여전히 절반이었다.가게 문이 열리고 손님이 들어왔다. 손에 든 열쇠를 해담에게 건넸다. 해담은 열쇠를 복사 기계 옆에 놓고 원본의 홈을 살폈다.“이건 기계에서 복사하면 안 맞을 수 있어요. 원본이 닳았습니다.”“그럼 여기서 해 주세요.”“네, 됩니다.”해담은 열쇠를 기계에 물리고 손잡이를 천천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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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4화. 부재중

약국 유리문 안쪽에서 서후가 종이를 반으로 접었다. 염 여사가 옆에서 물었고, 서후는 고개를 저었다. 접힌 종이는 계산대 아래로 들어갔다.해담은 구씨열쇠 유리문을 닫았다. 손잡이에 올린 손을 한동안 떼지 못했다.「진짜로 오지 마.」그 말이 가게 안에 남았다. 해담은 작업대의 쇳가루를 털고, 벽에 걸린 열쇠 블랭크를 종류별로 다시 걸었다. 가지런한 열쇠를 확인하고 나서야 셔터를 내렸다.다음 날 아침, 해담은 평소보다 일찍 문을 열었다. 유리문을 밀어 고정하고, 복사 기계의 전원을 켰다. 작업대 위 공구도 손 닿는 자리에 놓았다.길 건너 약국은 아직 문을 열지 않았다. 해담은 가게 안쪽을 정리하다가 유리문 밖을 봤다. 맞은편 영업시간 안내판에 적힌 9시가 보였다.셔터 앞은 비어 있었다.해담은 계산대 서랍을 열어 장부를 꺼냈다. 오늘 날짜를 적고, 지난 며칠의 매출을 확인했다. 숫자를 더하고 나누어도 결과는 달라지지 않았다. 장부를 덮고 열쇠 블랭크를 다시 걸었다.9시가 되자 약국 문이 열렸다. 서후는 유리문 안에서 염 여사와 짧게 이야기를 나눈 뒤 안으로 들어갔다. 해담은 손에 든 열쇠를 작업대에 내려놓았다.8시 20분이 아니었다. 서후가 매일 오던 시각은 아침이었다.해담은 열쇠를 집어 들고 손바닥으로 먼지를 털었다. 기계가 위잉 소리를 냈다. 손님이 맡긴 열쇠를 복사한 뒤 원본과 맞춰 보고, 손님에게 건넸다.“이제 잘 맞겠어요?”“네. 그래도 문에 넣어 보시고 걸리면 다시 가져오세요.”“알겠습니다.”손님이 문을 닫고 나가자 해담은 장부에 금액을 적었다. 손끝에 쇳가루가 묻었다. 앞치마에 문지르려다가 멈추고, 가게 뒤 세면대에서 손을 씻었다.점심 무렵, 봉 원장이 미용실 문을 열어 둔 채 가게 쪽으로 고개를 내밀었다.“해담아, 오늘은 가게가 조용하네.”“아직 점심시간이에요.”“미용실 유리창이 괜히 큰 줄 아니? 오전에 손님 한 명 왔잖아.”“그 한 명도 보고 계셨어요?”“골목 일을 보는데 그 정도야 봐야지.”봉 원장은 가위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1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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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5화. 다시 문 엽니다

“오라고 하셨습니까?”전화기 너머로 서후의 목소리가 들렸다. 해담은 셔터 앞에 선 채 손잡이를 쥐었다.“지금 오라는 말은 안 했어요.”“왜 안 오냐고 물으셨습니다.”“그게 오라는 말이죠.”“알겠습니다.”통화가 끊겼다. 해담은 휴대전화를 내려다보다가 셔터를 올렸다. 금속이 위로 말려 올라가는 소리가 골목에 퍼졌다. 안으로 들어가 앞치마 주머니를 확인하고, 계산대 위에 놓인 열쇠를 한쪽으로 치웠다.길 건너 약국에서 염 여사가 문을 열었다. 서후가 약국 안에서 나왔다. 흰 가운 안에 남색 니트를 입은 채였다. 손에는 놋쇠 열쇠가 들려 있었다.해담은 유리문을 열어 두고 작업대 앞에 섰다. 서후는 골목을 건너 구씨열쇠 앞에 멈췄다.“복사해 주세요.”“오늘도 그 열쇠예요?”“네.”해담은 열쇠를 받아 들었다. 오래된 놋쇠에는 손때가 묻어 있었다. 열쇠 머리를 한 번 살피고 기계에 물렸다.서후는 계산대 위에 1,000원짜리 새 지폐 세 장을 놓았다. 해담은 기계를 작동시켰다. 위잉 소리가 가게 안을 채웠다.“어제 문자는 봤어요.”“네.”“오늘은 안 오겠다고 한 것도요.”“네.”“그래서 전화했어요.”“알고 있습니다.”해담은 기계의 손잡이를 돌렸다. 놋쇠 열쇠가 떨리지 않도록 손가락에 힘을 줬다. 복사가 끝나자 열쇠를 꺼내 줄로 가장자리를 다듬었다.“어제는 제가 말을 잘못했어요.”서후는 해담을 바라봤다. 해담은 열쇠를 원본에 대어 홈을 맞췄다.“안내문 붙이지 말라고 한 건 맞는데, 오지 말라고까지 했어요. 그 말은…… 너무 세게 했어요.”“해담 씨가 원하지 않는 일은 하지 않겠습니다.”“그건 알아요.”“제가 허락 없이 붙이려고 한 것도 잘못했습니다.”해담은 줄을 내려놓고 열쇠 표면을 닦았다.“그 얘기를 하려고 온 거예요?”“복사하러 왔습니다. 그리고 오라고 하셔서 왔습니다.”“둘 다네요.”“네.”해담은 복사한 열쇠를 계산대 위에 놓았다. 서후가 손을 뻗기 전에 해담이 말을 이었다.“안내문은 약국에만 붙이지 말고, 양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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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6화. 사다리 사용 주의

토요일 오후, 해담은 한옥 대문 안쪽에 서서 빗장 자물쇠를 올려다봤다. 대문 위쪽에 붙은 쇠가 한쪽으로 기울어 있었다. 자물쇠 몸체는 오래돼 표면이 거칠었고, 빗장은 끝까지 들어가지 않았다.“문이 잠기기는 하는데, 바람 불면 저절로 빠져요.”할머니가 대문을 안쪽에서 밀었다. 빗장이 철컥 소리를 내며 틈에서 빠졌다. 해담은 손바닥으로 대문을 눌러 움직임을 확인했다.“이대로 두면 문이 열릴 수 있어요. 자물쇠를 내려서 안쪽을 봐야 합니다.”“오늘은 안 돼요?”“부품을 맞춰야 할 수도 있어서요. 오늘은 상태만 보고, 내일 다시 와서 고치겠습니다.”“그럼 내일은 문이 잠기게 해 줘요. 밤에 바람 불 때마다 잠이 깨서.”“네. 잠기게 해 드릴게요.”해담은 허리에 찬 열쇠 꾸러미를 옆으로 밀어 대문과 거리를 두었다. 앞치마 주머니에서 작은 수첩을 꺼내 필요한 공구와 부품을 적었다. 기울어진 나사와 닳은 빗장 끝을 살핀 뒤, 대문을 여닫으며 걸리는 곳을 확인했다.할머니는 문을 닫고 빗장을 손으로 눌렀다. 이번에는 끝까지 들어가지 않았다.“이렇게 힘을 줘도 안 되네요.”“빗장이 비뚤어져서 그래요. 억지로 밀면 더 닳습니다. 내일은 사다리도 가져와야겠어요.”“높아서 그렇지요?”“네. 위에 달려 있어서 발을 딛고 작업해야 합니다.”“그럼 내일 조심해야겠네.”해담은 수첩을 앞치마 주머니에 넣었다. 대문 옆에는 낡은 사다리가 세워져 있었다. 할머니가 잠깐 바라보다가 말했다.“저 사다리는 쓰지 말아요. 오래돼서 다리가 흔들려요.”“가져온 걸 쓸게요.”“잘됐네. 내가 사다리 위에 올라가 보라고 할까 봐 걱정했어요.”“할머니가 올라가시면 제가 더 걱정합니다.”“내가 젊을 때는 잘 올라갔어요.”“지금은 안 올라가시는 게 낫습니다.”“그 말이 맞아서 더 섭섭하네.”할머니는 대문을 다시 당겨 닫았다. 해담은 손으로 빗장을 받쳐 올려 걸리는 위치를 눈에 익혔다. 내일 작업할 때 몸을 어느 쪽으로 돌려야 하는지도 살폈다.“오늘 확인한 곳을 내일 다시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1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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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7화. 주의 뜨거움

수요일 오후, 구씨열쇠 안은 문을 열어 둬도 더웠다. 해담은 작업대 위 선풍기를 돌려 놓고 열쇠 한 개를 기계에 물렸다. 바람은 쇳가루를 흩뜨리지 않도록 낮게 틀었다.기계가 위잉 소리를 냈다. 해담은 손잡이를 천천히 돌렸다. 열쇠 끝이 조금씩 깎여 나왔다. 땀이 앞치마 안쪽으로 흘렀다.“오늘은 기계도 더 더운가.”혼잣말을 하며 손잡이를 돌리던 해담은 열쇠가 걸리는 소리에 손을 멈췄다. 기계 안쪽에 낀 작은 쇳조각을 빼려고 손등을 가까이 댔다.뜨거운 금속이 손등에 스쳤다.“아.”해담은 손을 홱 거두었다. 얇게 붉어진 자리가 손등에 남았다. 곧바로 수도꼭지를 틀어 손을 가져갔다. 물줄기가 손등에 닿자 따끔한 기운이 올라왔다.「기계한테도 정가를 받아야 하나.」해담은 손을 물 아래 두고 다른 손으로 수도꼭지를 조금 줄였다. 물을 끄지 않고 한동안 그대로 있었다. 가게 문 앞에 손님이 다가와 안을 들여다봤다.“사장님, 괜찮으세요?”“네. 잠깐 데었어요. 열쇠는 금방 봐 드릴게요.”손님은 손에 든 열쇠를 계산대 위에 놓았다.“제가 먼저 맡겨도 될까요?”“네. 어떤 문에 쓰는 열쇠인지 알려 주세요.”손님은 현관문 열쇠라고 말했다. 해담은 물에 손등을 대고 있는 채로 열쇠를 살폈다. 쇠가 닳은 정도와 홈 모양을 확인하고, 복사할 수 있는지 설명했다.“오늘 안에 되나요?”“네. 물에 손을 좀 더 대고 나서 하겠습니다. 잠깐만 기다려 주세요.”“천천히 하세요.”손님은 가게 안쪽 의자에 앉았다. 해담은 물을 끄고 손등을 조심스럽게 닦았다. 붉은 자리는 작았지만 손을 움직일 때마다 화끈거렸다. 해담은 작업대에 놓인 열쇠를 다시 잡았다가 손을 바꿔 쥐었다.그때 길 건너에서 염 여사가 약국 문을 열었다. 해담이 손등을 털며 기계 앞에 서 있는 모습을 본 듯, 염 여사는 약국 안으로 들어갔다. 잠시 뒤 서후가 가게 앞에 왔다. 손에는 놋쇠 열쇠와 작은 약 봉투가 들려 있었다.“손등을 데셨습니까?”“조금요.”“물에 대고 계셨습니까?”“방금까지요.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1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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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8화. 정전 시 손으로 내림

“그래서 저도 하루도 안 쉬었습니다.”서후의 말이 끝난 뒤에도 해담은 한동안 대답하지 않았다. 계산대 위에 놓인 연고를 바라보던 손이 천천히 내려왔다.“약사님은 참 꾸준하네요.”“그렇게 됐습니다.”“그렇게 됐다는 말로 7년을 설명할 수 있어요?”“제가 기다린 시간이라서요.”해담은 입술을 열었다가 닫았다. 서후는 약국으로 돌아가야 한다며 고개를 숙였다. 해담은 그의 뒷모습을 보고 있다가 벽의 열쇠 블랭크 판으로 시선을 옮겼다. 기울어진 열쇠 한 개를 바로 걸었다.가게 안에 기계 소리도 손님 목소리도 없었다. 해담은 손등을 한 번 펴고 접었다. 붉은 자국은 이제 거의 보이지 않았다.밖에서는 탁 사장이 정육점 문을 닫는 소리가 났다. 봉 원장은 미용실 앞을 쓸고 있었고, 엄 할머니는 두레슈퍼 평상에 앉아 깜이를 부르고 있었다. 골목의 가게들은 제각기 저녁 일을 이어 갔다.해담은 작업대에 남은 쇳가루를 털고 셔터를 내릴 준비를 했다. 시계는 8시 30분을 조금 넘겼다. 가게 문을 닫고 셔터를 내리면 오늘 일은 끝이었다. 8시 40분에 건너갈 이유도 없었다.그때 골목 입구 쪽에서 소리가 났다.퍽.바로 뒤에 골목의 불이 한꺼번에 꺼졌다. 가게 안 형광등과 작업대 조명, 맞은편 약국의 간판 불빛까지 사라졌다. 기계가 위잉 소리를 내다 멈췄다. 선풍기도 돌아가기를 그쳤다.해담은 손을 작업대에 얹었다. 기계 안에 열쇠가 물려 있었다. 방금까지 돌아가던 손잡이가 멈춘 채였다.“정전인가?”골목 바깥에서 봉 원장의 목소리가 들렸다.“다들 괜찮아요?”“괜찮아요!”해담이 대답하고 가게 문 쪽으로 갔다. 어둠에 눈이 익기 전까지 문틀을 손으로 더듬었다. 유리문을 열자 골목에도 불이 들어온 곳이 하나도 없었다. 가게 안쪽에서 바깥으로 새던 빛도 끊겨, 사람들 얼굴은 잘 보이지 않았다.“해담 씨, 다친 데 없어요?”맞은편 약국에서 서후가 물었다.“네. 약사님은요?”“괜찮습니다.”해담은 발밑을 살피며 셔터 스위치 쪽으로 갔다. 전동 셔터는 중간까지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1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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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9화. 견적 무료

“턱을 조금 내려.”해담은 미용 의자에 앉아 턱을 내렸다. 봉 원장이 어깨에 씌운 천을 목둘레에 여몄다. 가위가 머리카락을 자르는 소리가 짧게 났다.“얼마나 자를까?”“끝만 다듬어 주세요. 묶을 수 있게요.”“늘 묶고 다니면서 머리는 왜 기르니?”“묶을 만큼은 있어야 하니까요.”“그럼 끝만 다듬으면 묶을 만큼 남겠네.”봉 원장은 해담의 머리끝을 손가락으로 모아 길이를 확인했다. 해담은 거울 속 자기 얼굴을 바라봤다. 작업 앞치마는 벗어 두고 왔지만 손끝에 쇳가루가 조금 남아 있었다. 손등은 거의 나았다. 붉은 자국도 희미했다.“손은 괜찮고?”“네. 다 나았어요.”“기계에 손을 대면 안 된다고 했잖아.”“기계가 멈춘 다음에도 뜨거울 수 있대요.”“그럼 손을 대지 말아야지.”“열쇠를 빼야 하잖아요.”“손보다 도구를 먼저 써.”“도구를 써도 뜨거운 건 똑같아요.”“그럼 식을 때까지 기다려.”“손님이 기다리는데요.”봉 원장은 가위를 멈추고 거울로 해담을 봤다.“손님이 기다리는 것보다 네 손이 나은 게 먼저야.”“알겠습니다.”“대답은 잘한다.”가위가 다시 움직였다. 해담은 무릎 위에 손을 올렸다. 봉 원장은 자른 머리카락을 빗으로 털고 양쪽 길이를 맞췄다.미용실 안에는 파마약 냄새와 샴푸 냄새가 섞여 있었다. 창가 쪽 의자에는 손님 할머니 한 명이 앉아 잡지를 넘기고 있었다. 다른 할머니는 머리에 수건을 두른 채 봉 원장이 비워 둔 의자에 앉았다.“해담아, 머리 자르러 왔구나.”“네. 끝만 다듬으려고요.”“머리는 한 번 자르면 금방 짧아져. 나도 젊을 때는 길게 길렀는데.”“그랬어요?”“그럼. 우리 때는 머리 길게 기르는 게 멋이었어.”“어머니, 길게 기른 건 머리만이 아니잖아요.”수건을 쓴 할머니가 거들었다.“세월도 길게 길렀지.”두 할머니가 웃었다. 봉 원장은 해담의 머리끝을 한쪽으로 빗어 늘였다.“가만히 있어. 지금 움직이면 한쪽만 길어진다.”해담은 어깨를 내렸다.“저 가만히 있어요.”“말할 때마다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1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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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화. 시범 영업 중

가게 셔터가 바닥에 닿기 직전, 해담의 휴대전화가 울렸다.해담은 셔터를 다시 끌어 올렸다. 화면에 뜬 번호는 저장되어 있지 않았다.“네, 구씨열쇠입니다.”“사장님, 저 오기찬입니다.”“순경님이요? 무슨 일이에요?”전화 너머로 바람 소리가 났다. 그 사이에 금속 문짝이 덜컹거리는 소리도 섞였다.“상가 옥상 문이 닫혔는데, 밖에서 열리지 않습니다.”“안에 갇히셨어요?”“그렇습니다.”“다치신 데는요?”“없습니다. 문만 잠겼습니다.”해담은 셔터를 손으로 잡은 채 골목 건너편을 봤다. 늘봄약국 간판은 꺼져 있었지만 안쪽에는 불이 켜져 있었다. 유리문 안에서 서후가 계산대 주변을 정리하고 있었다.“어떻게 올라가셨어요?”“순찰 중에 옥상 쪽을 확인하려고 올라갔습니다. 문이 열려 있길래 들어갔는데, 바람에 닫혔습니다.”“문이 닫히면서 잠금쇠가 걸렸고요?”“네. 손잡이가 안 돌아갑니다.”해담은 전화기를 어깨와 귀 사이에 끼우고 작업 앞치마의 끈을 풀었다. 허리에 찬 열쇠 꾸러미를 계산대에 내려놓고, 문 열기 도구를 가방에 챙겼다.“옥상으로 올라가는 입구는 어느 쪽이에요?”“상가 뒤편 계단입니다. 옥상 문 앞에 있습니다.”“문 손잡이는 안쪽에만 있어요?”“바깥에도 있습니다. 그런데 움직이지 않습니다.”“그럼 잠금쇠가 물렸겠네요. 제가 갈게요.”“죄송합니다. 그리고 사장님, 이거 지구대에 말하지 마세요.”해담은 작업 가방을 닫다가 멈췄다.“순찰 중에 옥상 문에 갇힌 걸요?”“네.”“말하지 말라는 이유가 있어요?”“없습니다.”“그럼 왜 그러세요?”“제가 문을 잘 확인했으면 안 갇혔을 테니까요.”“문이 바람에 닫혔다면서요.”“문이 열린 걸 확인하고도 고정하지 않았습니다.”“그럼 다음에 고정하면 되죠. 일단 거기서 움직이지 마세요.”“알겠습니다.”해담은 통화를 끊고 가방을 들었다. 골목 맞은편에서 유리문 여는 소리가 났다. 서후가 약국 밖으로 나왔다. 흰 반팔 셔츠 소매가 팔꿈치까지 걷혀 있었다.“어디 가십니까?”“상가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1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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