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담은 식혜 그릇을 받아 들고 빈자리를 찾았다. 동명탕 휴게실 안에는 낮은 탁자와 접이식 의자가 놓여 있었다. 탁자 한쪽에는 회의 자료가 쌓였고, 맞은편에는 상인들이 둘러앉아 있었다.채순임이 식혜 통의 뚜껑을 닫으며 말했다.“그릇은 앞에 놓을게. 회의 시작하기 전에 한 모금씩 마셔.”“엄마, 나도 회의 자료 봐야 해.”“그럼 손에 들고 마셔. 식혜가 네 자료보다 무겁니?”해담은 그릇을 한 손에 들고 의자를 당겼다. 남색 앞치마는 벗어 두었지만, 손끝에는 쇳가루가 조금 남아 있었다. 손가락을 문지르자 검은 자국이 식혜 그릇 바깥쪽에 묻었다.“그릇에 묻었네.”순임이 그릇을 받아 들고 행주로 닦았다.“손은 씻었어?”“씻었지.”“그런데 왜 이렇게 묻어?”“열쇠집 손이라 그래.”“열쇠집 손도 회의 전에 씻어야지.”순임은 그릇을 다시 건넸다. 해담은 이번에는 그릇 가장자리만 잡았다.봉숙자가 탁자 위 서류를 한데 모았다. 보라색 브릿지가 휴게실 불빛 아래서 눈에 띄었다. 봉숙자는 가위집을 허리에서 빼 의자 옆에 놓고 앉았다.“자, 다들 앉았죠? 오늘은 키박스랑 번개열쇠 얘기부터 할게요.”“그 얘기만 하다 밤 되겠네.”탁종팔이 의자 등받이에 몸을 기대며 말했다. 흰 앞치마는 벗어 두었지만, 손등에는 정육점에서 일한 흔적이 남아 있었다.“밤 되기 전에 끝내려고 회의를 여는 거예요.” 봉숙자가 말했다.“끝내려면 말하는 사람부터 줄여.”“그럼 탁 사장님부터 줄여 볼까요?”“난 아직 말 안 했어.”“방금 했잖아요.”탁 사장은 대꾸하지 않고 식혜를 한 모금 마셨다. 해담은 종이 몇 장을 집어 들었다. 윗장에는 상인 모임이라고 적혀 있었고, 아래에는 오늘 다룰 내용이 짧게 정리돼 있었다. 키박스 이용 가격, 번개열쇠 출장 안내, 골목 상점 공동 홍보.서후는 맞은편 끝자리에 앉아 있었다. 흰 가운은 입지 않았고 남색 니트를 입었다. 소매는 단정하게 접혀 있었다. 서후 앞의 회의 자료도 모서리가 가지런히 맞아 있었다.해담이 눈을 들자 서후가
Last Updated : 2026-10-23 Read mor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