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년 짝사랑을 폐업했더니 길 건너 약사가 단골이 됐다의 모든 챕터: 챕터 61 - 챕터 70

80 챕터

61화. 연인 할인 없음

월요일 저녁, 구씨열쇠의 작업대에는 낮에 맡겨 둔 열쇠가 차례로 놓여 있었다. 해담은 하나씩 복사해 장부에 적었다. 열쇠를 건네고 값을 받은 뒤에는 작업대에 남은 쇳가루를 털었다.벽의 열쇠 블랭크 판은 아침에 정리해 두었는데도 눈에 걸렸다. 해담은 손을 뻗어 아래쪽 칸의 열쇠 몇 개를 다시 걸었다.「그만 좀 만져.」앞치마 주머니에서 휴대전화가 짧게 울렸다. 화면에는 시간이 떠 있었다. 8시 19분. 해담은 작업대의 열쇠를 한 번 더 확인하고 계산대 앞으로 나왔다.잠시 뒤 유리문이 열렸다.“8시 20분입니다.”“시계는 잘 보고 있네요.”“늦지 않았습니다.”서후는 익숙한 놋쇠 열쇠를 계산대 위에 올렸다. 약국에서 가져온 열쇠는 날이 닳아 있었고, 고리에 작은 흠집이 났다. 해담은 그 열쇠를 집어 들었다.“오늘도 복사하러 왔어요?”“네.”“매일 오기로 한 약속은 맞지만, 진짜 매일 오네요.”“그렇게 말씀하셨습니다.”“제가요?”“내일은 제가 오라고 하셨습니다.”“그 말 한 번이면 계속 오는 거예요?”“네.”서후는 늘 그랬듯 새 지폐 세 장을 계산대 위에 놓았다. 해담은 돈을 확인하고 열쇠를 기계에 고정했다. 스위치를 누르자 위잉 소리가 가게 안에 퍼졌다.기계가 멈춘 뒤 해담은 복사한 열쇠를 들어 날을 살폈다. 작은 ㄱ 홈도 손끝으로 확인했다. 거친 곳을 다듬고 원래 열쇠와 맞춰 보았다.“됐어요.”서후가 열쇠를 받아 갔다. 계산대 위의 돈은 해담이 서랍에 넣었다.“서후 씨.”해담이 입 밖으로 내고 나서야 자신이 호칭을 바꿨다는 걸 알았다. 서후는 열쇠를 손에 든 채 해담을 바라봤다.“네.”“이제 이쪽이 맞죠?”“네. 좋습니다.”“대답이 빠르네요.”“기다렸습니다.”“호칭 하나를요?”“사장님이 불러 주실 때까지요.”“그 말은 약국에서 하면 안 돼요. 약사님이 손님을 기다리는 것처럼 들리잖아요.”“저는 지금 손님입니다.”“그러면 손님답게 다음 순서로 가세요. 열쇠 확인하셨으면 돌아가시면 됩니다.”“확인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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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화. 여름휴가 없음

8월 1일 일요일, 밤 9시가 조금 지났을 때 해담은 솔매천 산책길에서 서후를 만났다.해담은 남색 작업 앞치마를 두르고 있었다. 허리의 열쇠 꾸러미가 걸을 때마다 짤랑거렸다. 서후는 흰 반팔 셔츠 차림이었다. 손에는 편의점 아이스크림 두 개가 들려 있었다.“약국 문 닫고 바로 왔어요?”“네. 9시에 닫았습니다.”“저는 가게 셔터 내리고 정리하고 왔어요. 생각보다 늦었죠?”“아닙니다. 지금 9시 7분입니다.”“정확히 말해 주는 건 여전하네요.”“시간을 말씀드리는 건 어렵지 않습니다.”해담은 아이스크림을 하나 받아 들었다. 두 사람은 산책길 안쪽으로 걸었다. 벚나무 잎이 어두워져 잘 보이지 않았고, 개천 물소리가 가까이 들렸다. 걸음은 자연히 느려졌다.“오늘부터 여름휴가가 없는 데이트네요.”“휴가를 내지 않았습니다.”“저도요. 가게는 내일도 열어요.”“약국도 엽니다.”“그럼 1시간만 걷고 돌아가요. 각자 가게 문 닫고 나온 거니까.”“네. 10시까지 걷겠습니다.”해담은 아이스크림 포장을 벗겼다. 서후도 포장을 벗겼지만 한입 먹고는 손을 멈췄다.“달아요?”“네. 생각보다 답니다.”“아이스크림이니까요.”“알고 있습니다.”“그런데 왜 샀어요?”“같이 먹으려고 샀습니다.”“저는 좋아하지만, 서후 씨는 안 좋아하잖아요.”“한 입은 먹을 수 있습니다.”해담은 자기 아이스크림을 조금 내밀었다.“이것도 먹어 봐요. 이건 더 달지 않을 거예요.”서후는 해담이 들고 있는 아이스크림을 바라봤다. 해담은 팔을 내리지 않고 기다렸다. 서후는 고개를 조금 숙여 한입 먹었다.“이것도 답니다.”“그럼 오늘은 한 입으로 끝내요.”“네.”서후가 자기 아이스크림을 해담 쪽으로 내밀었다. 해담은 한입 먹고 고개를 끄덕였다.“이건 괜찮은데요.”“제가 먹은 것보다 덜 답니까?”“아니요. 똑같아요.”“그런데 괜찮다고 하셨습니다.”“저는 아이스크림을 좋아하니까요.”해담은 두 사람 몫을 번갈아 먹었다. 서후는 한입 먹은 아이스크림을 들고 걸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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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3화. 단체 목욕 환영

토요일 오후, 동명탕 카운터에서 해담은 손님이 놓고 간 수건을 바구니에 넣었다. 바닥에 떨어진 비누 거품을 밀대로 걷어 내고, 바닥이 미끄럽지 않은지 발끝으로 확인했다.목욕탕 안쪽에서 물소리가 났다. 카운터 위에는 순임이 가져온 반찬통이 두 개 놓여 있었다. 뚜껑을 열자 익숙한 냄새가 올라왔다.“해담아, 저기 수건 좀 더 꺼내 놔.”“아까 꺼냈는데요.”“그건 손님들이 다 가져갔잖아.”“수건이 수건을 낳는 것도 아니고, 금방 없어지네요.”“그러니까 더 꺼내 놓으라고.”해담은 창고에서 수건을 가져와 선반에 쌓았다. 한 장씩 모서리를 맞추는데 출입문이 열렸다.“어서 오세요.”순임이 카운터 안쪽에서 인사했다. 들어온 여자는 문 앞에서 잠깐 멈춰 실내를 둘러봤다. 단정한 단발머리에 손가방을 든 차림이었다.“목욕하려고 왔는데요.”“네, 편하게 들어오세요. 수건은 안쪽 선반에 있습니다.”“감사합니다.”여자가 지갑을 꺼내려 하자 순임이 먼저 말했다.“처음 오셨죠? 목욕비는 여기 적혀 있어요.”여자는 안내판을 살피고 돈을 내밀었다. 순임이 계산을 마치자 여자는 카운터 옆에 손가방을 내려놓았다.해담은 수건을 들고 있다가 여자를 다시 봤다. 얼굴이 낯설지 않았다. 늘봄약국에서 본 적 있는 얼굴이었다.“혹시 서후 씨 어머니세요?”여자가 해담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네. 구 사장님이시죠?”“네. 제가 해담이에요.”“서후한테 얘기 들었어요. 만나서 반갑네요.”해담은 수건 더미를 선반에 올려놓았다.“이쪽은 제 엄마예요. 동명탕 카운터를 맡고 있어요.”“안녕하세요. 진서후 약사님 어머니예요.”순임은 카운터 밖으로 나와 손을 내밀었다.“해담 엄마 채순임이에요. 어서 오세요. 여기까지 오시느라 힘드셨죠?”“아니에요. 버스에서 좀 쉬었어요.”두 사람은 손을 맞잡았다. 악수가 끝나자 순임이 여자의 손가방을 들어 카운터 안쪽 의자에 놓아 주었다.“목욕 전에 짐은 여기 두셔도 돼요. 귀중한 건 몸에 챙기시고요.”“고맙습니다.”“서후 씨가 어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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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4화. 연중무휴의 이유

8월 14일 토요일, 해담은 아침부터 구씨열쇠 셔터를 올려 두고 주문 장부를 정리했다. 여름 휴일을 앞둔 골목은 평소보다 조용했다. 봉미용실은 문을 열었지만 손님이 없었고, 탁씨정육 앞에는 배달 상자만 몇 개 놓여 있었다.해담은 남색 작업 앞치마를 두르고 왼쪽 벽의 열쇠 블랭크를 다시 걸었다. 종류별로 정리한 뒤에도 한 번 더 훑었다. 손끝에 쇳가루가 묻었다.가게 문이 열리자 해담은 계산대에서 고개를 들었다.“어서 오세요.”“사장님, 현관 열쇠가 잘 안 돌아가요.”손님은 열쇠를 내밀었다. 해담은 열쇠를 받아 복사 기계 옆에 놓고 모양부터 살폈다. 날이 조금 닳아 있었다.“이건 복사보다 문 상태부터 봐야겠어요. 열쇠가 휘지는 않았는데, 이대로 복사하면 문이 더 뻑뻑할 수 있어요.”“문이 오래돼서 그런가요?”“그럴 수 있어요. 잠깐만요. 원래 열쇠로 먼저 확인해 볼게요.”손님이 고개를 끄덕였다. 해담은 출장용 공구를 챙겨 손님을 따라 가게 앞까지 나갔다. 문은 열쇠를 두 번 돌려야 열렸다. 잠금쇠가 뻑뻑하게 움직였다.“열쇠를 새로 깎으면 지금보다 나아질 수는 있어요. 다만 문 안쪽도 손을 봐야 할 것 같아요.”“오늘은 열쇠만 바꾸면 안 될까요?”“제가 복사해 드릴 수는 있어요. 그런데 문이 그대로면 새 열쇠도 잘 안 돌아갈 수 있습니다.”손님은 문고리를 한 번 더 돌려 보고 생각했다.“그럼 문을 먼저 봐야겠네요.”“네. 원하시면 출장으로 확인해 드릴게요.”손님은 고맙다고 인사하고 돌아갔다. 해담은 공구를 제자리에 놓았다. 계산대 서랍에 손을 뻗다가 안쪽 장부를 살짝 밀어 넣었다. 꺼내 확인하지는 않았다.“구 사장, 아까 그 손님 그냥 보내도 돼?”봉 원장이 미용실 문간에서 물었다.“열쇠만 바꾸면 되는 일이 아니어서요.”“손님이 당장 해 달라는데도?”“잘 안 될 걸 알고 해 드리면, 손님이 다시 고생하죠.”봉 원장은 해담의 얼굴을 보더니 가위 손잡이를 손바닥에 두드렸다.“네 아버지가 하던 소리랑 똑같이 하네.”“아빠는 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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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5화. 새벽 출조

새벽 4시, 저수지 둑에 차가운 바람이 불었다. 구판길은 낚싯대 받침을 땅에 박고 줄을 풀었다. 낚시 조끼 주머니마다 작은 도구가 꽂혀 있었다.해담은 둑 아래 물을 내려다봤다. 어둠이 걷히기 전이라 물가와 건너편이 잘 구분되지 않았다. 챙겨 온 손전등을 켜자 좁은 빛이 발밑을 비췄다.“아빠, 이쪽에 두면 돼요?”“조금 더 안쪽에. 거긴 땅이 무르다.”해담이 가방을 옮겼다. 구판길은 낚싯대를 받침에 올려 두고 줄 끝을 살폈다. 진서후는 그 옆에 서서 아버지 손을 보고 있었다. 흰 반팔 셔츠 소매가 팔꿈치 위에 걸려 있었고, 바지는 흙이 묻지 않게 걷혀 있었다.“처음이니까 아빠가 다 알려 줄 거야.”해담이 말했다.“네. 잘 배우겠습니다.”“낚시는 배우는 게 아니라 기다리는 거야.”구판길이 말했다.“기다리는 것도 배우겠습니다.”서후는 고개를 숙여 낚싯대를 살폈다. 구판길이 낚싯대 하나를 건넸다.“이건 약사 양반 거야. 손잡이를 그렇게 꽉 쥐면 손에 힘만 들어가.”서후는 손가락을 조금 풀었다.“이 정도면 됩니까?”“응. 줄이 움직이는 걸 느낄 만큼만 잡아.”해담은 아버지가 서후에게 낚싯대를 내어 주는 모습을 지켜봤다. 서후는 낚싯대 끝을 확인한 다음, 아버지가 가리키는 곳으로 발을 옮겼다. 발밑을 한 번 확인하고 서는 모습이 약국에서 약병을 살피는 것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이제 미끼를 끼울게.”구판길이 작은 통을 열었다. 해담은 냄새를 맡고 고개를 돌렸다.“아빠, 이 냄새를 맡고 물고기가 오는 거예요?”“물고기한테 물어보면 알겠지.”“물어볼 수가 없잖아요.”“그래서 계속 하는 거야.”서후가 통 안을 살폈다.“미끼를 얼마나 끼우면 됩니까?”“바늘 끝을 가릴 정도.”구판길이 먼저 미끼를 끼우는 모습을 보여 줬다. 서후는 손끝으로 미끼를 잡아 바늘에 끼웠다. 한 번에 들어가지 않았다. 그는 바늘을 내려다보고 손을 바꿔 잡았다.“손 다칠라. 천천히 해.”“네.”서후는 손을 더 가까이 가져가지 않고 바늘 방향을 확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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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6화. 사진 촬영 중

9월 1일, 구씨열쇠 앞에 삼각대가 세워졌다. 사진사는 카메라 가방을 내려놓고 골목 양쪽을 살폈다. 구청에서 골목 가게 홍보 사진을 찍으러 온 참이었다.해담은 유리문을 닦던 손을 멈췄다. 남색 작업 앞치마에 쇳가루가 묻어 있었다. 손끝을 앞치마에 문질렀지만 가루가 완전히 지워지진 않았다.“사장님, 잠깐 괜찮으세요?”사진사가 물었다.“촬영이요?”“네. 골목 가게를 소개하는 사진이라 가게 앞 모습이랑 사장님도 같이 담으려고 합니다.”“가게만 찍으면 안 돼요?”“사장님이 계셔야 가게가 살아 보이죠.”해담은 유리문 손잡이를 잡았다. 가게 안쪽으로 들어가면 잠깐 숨을 수 있었다. 하지만 사진사는 카메라를 들기 전에 가게 간판부터 확인하고 있었다.“여기서 찍으시면 간판이 잘 나올 것 같아요.”“간판은 잘 나옵니다.”“그럼 사장님도 간판 옆에 서 주세요.”“제가요?”“네. 일하시는 모습이면 더 좋고요.”해담은 손끝을 내려다봤다. 쇳가루가 조금 남아 있었다.“손이 지저분한데요.”“열쇠집 사장님 손이니까 괜찮습니다. 일하시는 모습이잖아요.”“괜찮다는 말은 사진 찍는 분이 하시면 안 되는 거 아닌가요?”사진사는 카메라를 내리고 해담의 손을 잠시 보았다.“죄송합니다. 불편하시면 손은 안 나오게 찍을게요.”해담은 손을 앞치마에 다시 문질렀다. 사진사는 기다렸다. 당장 찍겠다고 다가오지 않는 게 그나마 다행이었다.“일단 가게 안을 찍으시고요. 저는 뒤에 있을게요.”“네. 편하신 대로 하겠습니다.”사진사가 카메라를 들고 유리문 너머를 살폈다. 왼쪽 벽의 열쇠 블랭크 판과 가운데 복사 기계가 화면에 들어갔다. 해담은 문 옆에서 한 걸음 비켜 섰다.“사장님도 조금만 안으로 들어오실까요?”“기계만 찍으신다면서요.”“가게 안을 먼저 찍고, 사장님도 한 장 찍어 보려고요.”“먼저가 어디까지예요?”사진사는 잠깐 멈췄다가 카메라를 내렸다.“가게 사진만 먼저 찍겠습니다.”“그렇게 해 주세요.”사진사가 셔터를 눌렀다. 카메라 소리에 해담의 손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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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7화. 열쇠고리 제작

9월 4일, 구씨열쇠 문이 열리자 은결이 가방을 멘 채 들어왔다. 큰 가방 끈이 한쪽 어깨에서 미끄러져 있었고, 아이는 손에 아무것도 들지 않았다.해담은 작업대 위의 열쇠를 내려놓았다.“은결아, 무슨 일이야?”은결은 대답하지 않고 가방을 바닥에 내려놓았다. 입술을 꾹 다물고 있다가 눈가를 손등으로 문질렀다.“열쇠 또 잃어버렸어요.”해담은 계산대 뒤로 돌아 나왔다.“집 열쇠?”은결이 고개를 끄덕였다. 눈물이 뺨을 타고 내려왔다.“어디에서 마지막으로 봤는지 기억나?”“가방에 넣었는데요. 딱지를 꺼내다가 없어졌어요.”“가방 안에 다시 찾아봤어?”“다 뒤졌어요.”은결은 가방 지퍼를 열어 안을 보여 줬다. 공책과 필통, 접힌 종이가 한데 엉켜 있었다. 해담은 종이를 하나씩 들어 바닥에 놓았다. 필통 밑에는 딱지 몇 장이 붙어 있었고, 가방 안쪽 주머니에는 빈 과자 봉지만 들어 있었다.“이 안에는 없네.”“그러니까요.”은결은 코를 훌쩍였다. 해담은 가방을 가볍게 흔들어 봤다. 안쪽에서 열쇠가 부딪히는 소리는 나지 않았다.“집에는 들어갔어?”“엄마가 문 열어 줬어요. 아직 안 나가셨어요.”“그럼 열쇠가 없어도 오늘은 괜찮겠네.”“엄마가 알면 또 목걸이에 걸라고 할 거예요.”은결이 고개를 숙였다. 가방 끈을 양손으로 잡아당기자 손등이 빨개졌다.“목걸이는 애들이 놀려.”“목에 거는 게 싫은 거야, 놀리는 게 싫은 거야?”“둘 다요. 열쇠가 앞에서 흔들리잖아요. 애들이 딸랑이 같다고 했어요.”해담은 아이가 들고 온 가방을 다시 살폈다. 잃어버린 열쇠를 당장 찾아 줄 수는 없었다. 그렇다고 목에 걸라고 하면 아이는 또 고개를 숙일 것 같았다.“그럼 목에 걸지 말자.”은결이 눈을 들었다.“안 걸어도 돼요?”“싫다며. 대신 가방에 단단히 달 방법을 생각해 보자.”“가방에 달면 안 떨어져요?”“어떻게 다느냐에 따라 다르지.”해담은 작업대 쪽을 보았다. 열쇠 머리에 홈을 내고, 고리를 연결하면 가방에 달 수 있었다. 문제는 은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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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8화. 추석 당일 휴무

“제가 부탁드리겠습니다.”해담은 서후의 손에 들린 가방을 보았다. 은결이 열쇠를 챙겨 다니는 모습을 확인하고 돌아온 참이었다.“원본 열쇠를 가져오세요. 그래야 깎죠.”“네. 가져오겠습니다.”“부탁만 먼저 하시면 안 돼요.”“기억하겠습니다, 해담 씨.”그 뒤로 며칠이 지나고, 9월 14일이 왔다.솔매골목 가게들은 추석을 앞두고 평소보다 일찍 문을 닫았다. 구씨열쇠도 늘봄약국도 당일에는 문을 닫기로 했다. 해담은 셔터를 내리기 전 가게 안을 둘러보고, 복사 기계 전원을 확인한 뒤 서후가 기다리는 정류장으로 갔다.서후는 작은 보따리를 들고 있었다. 해담도 채순임이 챙겨 준 반찬통을 양손으로 들었다.“그게 다예요?”해담이 서후의 보따리를 내려다봤다.“네. 어머니가 음식은 다 준비하셨다고 했습니다.”“그럼 우리 건 왜 들고 가요?”“어머니께서 가져오라고 하셨습니다.”해담은 반찬통을 내려다봤다. 뚜껑이 단단히 닫혀 있었지만 안에 든 음식은 조금 흔들렸다.“우리 엄마가 뭐라고 하셨는지 알아요? 빈손으로 가지 말라고 하셨어요.”“빈손은 아닙니다.”서후가 보따리를 들어 보였다.“그건 서후 씨 짐이잖아요.”“해담 씨가 든 것도 있습니다.”“제가 들고 있잖아요.”“같이 가져가는 겁니다.”해담은 더 대꾸하지 않고 정류장 의자에 반찬통을 내려놓았다. 버스가 오기까지 조금 남아 있었다. 서후는 휴대전화를 꺼내 시간을 확인했다.“버스가 곧 옵니다.”“몇 시예요?”“오전 10시 12분입니다.”“시간까지 알려 주셔서 고마워요.”“물어보셨으니까요.”해담은 서후의 가방 끈을 살짝 밀어 정리했다. 가방이 어깨에서 비뚤어져 있었다. 손을 거두자 서후가 해담의 반찬통을 들어 올렸다.“제가 들겠습니다.”“제가 들 수 있어요.”“알고 있습니다. 그래도 제가 들겠습니다.”해담은 반찬통 손잡이를 놓았다. 손끝에 쇳가루가 남아 있는지 앞치마를 입지 않은 손바닥을 한 번 문질렀다.“무거우면 말하세요.”“네.”버스가 도착하자 서후가 먼저 올라 짐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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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9화. 장터 참가 신청

9월 18일, 동명탕 휴게실 긴 탁자 위에 신청서가 펼쳐져 있었다.『솔매골목 가을 장터 참가 신청』이라는 제목 아래 부스 이름과 준비할 물건을 적는 칸이 나란히 놓였다. 봉숙자는 신청서를 한 장씩 밀어 주며 탁자 둘레를 돌았다.“먹을거리 부스는 음식 종류를 적고, 물건 파는 곳은 뭘 내놓을지 적어. 이름만 쓰면 손님들이 와서 뭘 파는지 물어본다.”“물어보면 대답하면 되지.”탁종팔이 말했다. 그는 신청서를 받아 들고 이름 칸에 먼저 글씨를 썼다.봉숙자가 탁 사장의 손을 들여다봤다.“탁씨정육이라고만 쓰면 되겠어?”“고기.”“종류는?”“고기 종류.”봉숙자는 손바닥을 내밀었다.“내놔. 내가 쓸게.”탁 사장은 신청서를 놓지 않았다.“내가 쓸 수 있어.”“쓸 수 있는 거하고 알아보게 쓰는 건 달라.”“고기는 보면 알아.”“장터 손님이 탁 사장 얼굴만 보고 고기를 알아맞히겠어?”“그건 못 하지.”탁 사장은 잠시 생각한 뒤 신청서에 덧붙였다. 봉숙자는 그 글씨를 확인하고 다른 사람에게 종이를 넘겼다.해담은 빈 신청서를 무릎 위에 놓았다. 부스 이름 칸에 『구씨열쇠』라고 썼다. 준비할 물건 칸에서는 펜 끝이 멈췄다.“사장님, 뭘 파실 거예요?”봉숙자가 물었다.“열쇠요.”“장터에 열쇠를 사러 오는 사람이 얼마나 있겠어. 그날 잃어버린 사람만 찾아오겠지.”“그럼 문 열기 출장 접수도 받아요.”“출장 접수는 부스에 앉아서 어떻게 받아?”“문이 안 열리면 전화하면 되죠.”“좋아. 대신 장터에서는 어디에 있는지 알아보게 써 둬. 손님이 골목을 헤매면 안 되니까.”해담은 준비할 물건 칸에 『열쇠 복사와 출장 접수』라고 적었다. 펜을 내려놓자 해담 앞에 놓인 물컵이 살짝 밀렸다. 서후가 탁자 위쪽에서 신청서를 접어 놓고 있었다.“늘봄약국은 뭘 적으셨어요?”“건강 상담과 약국 안내입니다.”“약국에서 평소에 하는 일이네요.”“장터에서도 할 수 있는 일입니다.”“약을 들고 나오시는 건 아니고요?”“필요한 약은 약국에서 안내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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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0화. 연습 중 출입 금지

해담은 다이얼에서 손을 떼지 않은 채 숫자 표시를 내려다봤다.“소리로 여는 거라면, 어디서 소리가 달라지는지 알아야 합니다.”서후가 금고에서 떨어진 자리에 서 있었다. 문화관 안에는 해담과 서후만 있었다. 벽에 붙은 부스 배치도와 금고 앞 표시선은 그대로였다. 해담은 다이얼을 잡았다.“문화관에 확인했어요. 연습으로 조금만 돌려 볼게요. 뻑뻑하면 바로 멈추고요.”“네.”해담은 다이얼을 천천히 돌렸다. 손가락에 닿는 금속의 감촉은 어느 곳에서나 비슷했다. 오래된 금속에서 마찰음이 났지만, 특별한 지점을 짚기는 어려웠다.해담은 손을 멈추고 귀를 가까이 댔다.“들렸어요?”“돌아가는 소리는 들었습니다.”“그건 저도 들었어요.”“다른 소리는 듣지 못했습니다.”“저도요.”해담은 다이얼을 반대 방향으로 돌렸다. 손목에 힘이 들어가자 손끝이 금속에서 미끄러졌다. 다이얼이 뻑뻑해지기 전에 손을 놓았다.“여기까지 할게요. 더 돌리면 안 될 것 같아요.”“네. 기록해 두겠습니다.”서후가 가져온 작은 공책을 펼쳤다. 해담은 다이얼을 돌린 방향과 대략적인 느낌을 말했다. 서후는 들은 대로 적었다.“소리가 달라진 곳은 없었습니다.”“아직 방향을 못 찾았으니까요.”“그렇습니다.”서후는 공책을 덮지 않았다. 해담이 다시 해 보겠다고 할 때까지 조용히 기다렸다.해담은 금고 앞에 쪼그려 앉아 다이얼의 표시를 살폈다. 숫자판은 빛이 바랬지만 읽는 데 문제는 없었다. 다만 다이얼이 낡아 손끝에 걸리는 느낌이 군데군데 달랐다. 그 차이가 번호와 관계있는지는 판단할 수 없었다.“금고를 여는 사람들은 이런 걸 다 듣겠죠?”“그럴 것 같습니다.”“서후 씨는 약을 볼 때도 손끝으로 봐요?”“약은 확인하는 방법이 정해져 있습니다.”“열쇠는 정해진 방법이 있어도, 손으로 깎는 사람마다 조금씩 다르거든요.”“해담 씨는 그 차이를 아십니까?”“자주 만지는 열쇠는요.”“그럼 금고도 자주 만지면 알게 됩니까?”“그건 또 다르죠. 제가 이 금고를 아는 건 아니잖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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